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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이름 없는 꽃 / 홍은서

 

[으뜸상] 아비새의 행복 / 허진영

[버금상] 별이 된 친구 / 김미영

[아차상] 오랜 친구 / 홍은지

[장려상] 내사람 / 김선희

[가작] 가을벗 / 백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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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아픈 손가락 / 정진애

 

 

"아빠 다리는 왜 짧아요?" 묻는 세 살 짜리 작은딸을

여섯 살 큰딸이 "아프시잖아" 하면서 머리를 쿡 쥐어 박더니

"밥 잘 먹고 말 잘 들으면 아빠 다리가 쑥쑥 자란다고 했지요?"

하던 딸들은 어느 새

어엿한 숙녀로 아빠의 버팀목이 되었네

 

 

사윗감 됨됨이 보다

의족인 다리만 보시는 게

그리 섭섭하기만 했는데

부모 마음 헤아리지 못한 나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어 있으니

 

약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줘도

아픈 손가락의 삶은 대신 할 수 없음에

엄마는 그리 반대 했으리

이제 와서

아파하는 손가락

바라보시는 엄마 더 아프실까

나 아파도 아프다 말 할 수 없다네

 

혹시나

우리 딸들

아픈 손가락의 엄마가 되어 달라면

나는

나는 어찌 하지?

 

 

[으뜸상] 희망 / 김은지

[버금상] 손가락 / 박희정

[아차상] 당신들의 뒷모습 / 유태경 

[장려상] 가족 / 김경구

[가작] 우리 가족 대통령 / 임명자

[가작] 파란 농부 / 박용진

 

 

 

제17회 혜산 박두진 문학제 전국백일장에서 하남문학아카데미 시창작반 소속 정진애 회원이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혜산 박두진 문학제 전국백일장은 혜산의 산실인 안성에서 박두진 재단과 한국문인협회 안성지부 주관으로 열렸으며 전국에서 초·중·고등학교, 일반인 등 700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미리 제시된 4가지의 시제(스마트폰, 친구, 손가락,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해 시를 창작했으며, 정진애 회원은 손가락 시제에 응모해 ‘아픈 손가락’이라는 제목으로 창작시를 응모했다.

정진애 회원은 그동안 하남문학아카데미에서 꾸준히 시창작 실력을 갈고 닦았으며, 이번 작품은 전국에서 참여한 700여 명의 참가자들 중 가장 으뜸인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대상)을 수상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하남문학아카데미는 2012년에 시작했으며, 올해는 소속 회원들 중 다수가 시인으로 등단하는가 하면, 시집 출간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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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어머니의 해 / 조효원

[으뜸상] 배꼽의 고향 / 최재호

[버금상] 꿈 / 최영철

[아차상] 그 시절 내 고향 / 서성표

[장려상] 술래의 꿈 / 손춘식

[장려상] 나의 고향 / 이수정

 

 

 

[심사평] 서정적 바탕과 사유의 진정성

 

이번 제16회 혜산 박두진 전국 백일장에 응모한 작품들을 허영자, 문효치 두 분 시인과 정진규 본인이 심사했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을 두고 심사하기 전에 세운 심사 기준은, 시는 어디까지나 오늘의 시가 아무리 지적 인식과 논리적 구조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서정적 바탕과 사유의 진정성, 작위적 행위를 떠난 순수성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에 묵언으로 동의하였다. 이런 점에서 부문별로 살펴본 결과, 무엇보다 눈에 뜨이는 점은 일반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서정성과 진정성, 순수성이 살아있으나 위로 올라갈수록 그 취약성이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어디서 오고 있는가.

 

첫째 축적된 체험이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오염의 수단으로, 그런 사유의 방법적 전개로 바뀌어지다 보니 이런 결과를 빚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둘째 시는 이러한 삶의 오염상태를 초월하는 서정적 수용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되었다. 

 

이 점을 윗세대의 응모자들은 극복할 수 있기를 권유해 두고자 한다. 그래서 시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저학년의 작품들부터 짚어보기로 한다.

 

초등부 저학년의 작품에서는 특히 현일초교 2학년 김다은의 「우리 고향은 엄마 뱃속」같은 작품이나, 충주시 남산초 2학년 이재윤의 작품 등이 특히 말의 결이 곱고 그 싱싱한 사유가 뛰어났다. <엄마 뱃속>에서는 고향의 영원성을, 바다에서는 뜨고 지는 해를 <매일매일> <풍덩풍덩>들어가고 나온다고 표현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건강하다.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렵지만 초등부 고학년의 평택 안일초등학교 송정민이 <숲길을 걸으며> <나는 숲속 환한 뮤지컬을 감상한다>는 표현도 뛰어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중등부 김다희가 어린이답게 자신에게서 <높이 솟아오를 수 있는 /힘찬 희망을>지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해>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있음도 매우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삶에 지친 어른들인 우리들에게 가히 힘을 주는 진정성이 있다.

 

고등부에서는 안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조효원의 「어머니의 해」가 독특했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해가 될 수 있는 그 극복의 이미지가 아름답다. 자식 앞에서는 <오월의 환한 햇살>이 되는 그 생명성을 어떻게 가볍게 지날 수가 있겠는가. 그 힘을 높이 샀다.

 

<그녀는 작은 희망을 촘촘히 박음질했다>고 표현하고 있는 고등부 충주여자고등학교 1학년9반 원유정의 「고향」도 시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삶의 아픔이 어려있었다.

 

대학 일반부의 작품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재호의 「배꼽의 고향」을 심사위원들은 시로서의 완성도 면에서 높게 평가했다. <배꼽>에서 어머니가 나를 잉태했던 시간을 한 척의 배가 항해하는 바다의 시간으로 자리바꿈하는 시의 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꿰어 맞추려는 어수선함이 눈에 거슬렸다. 어떤 면에서는 제주 방언을 시로 자리바꿈한 최영철의 「꿈」이 창조성이 뛰어났다 할 수가 있다. 작품이 너무 길어 산문화되고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이름 다랑쉬!/뒤란 숲은 청청한데 /집터는 무너지고 우물은 메워지고 / -------동구 늙은 폭낭이(팽나무) 주름 깊더군> 같은 데서 제주의 한 같은 것을 깊게 읽을 수가 있었다.

 

일일이 다 짚어드리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시에서는 무엇보다 서정성과 사유의 진정성, 그 순수성이 생명이다. 그래서 시가 있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점을 깊게 간절하게 촉구하면 좋은 시가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진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정진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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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 김참

 

사흘 내리 내린 눈이 모든 것을 덮었다. 구층 우리집도 눈 속에 파묻혔다. 냉기 도는 계단을 밟으며, 나는 일층으로 내려왔다. 현관을 박살내고 들이닥친 눈이 우편함 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오월도 끝나 가는데 무슨 눈이 이토록 퍼붓는단 말인가. 누군가 뚫어놓은 통로를 따라 막장 광부처럼 조심조심 걸었지만 눈 밖 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언 손 비비며 천천히 걷다 발을 헛디뎌 다른 통로로 굴러 떨어졌다. 꽁꽁 얼어붙은 사람 몇이 차가운 눈 위에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흔들어 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온기도 생기도 없었다. 어두운 통로를 휘감고 돌며 낮은 기타소리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한참 걸었지만 통로는 막혀 있었다. 언 손 불어가며 길을 내는 동안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배고프고 춥고 졸음도 쏟아졌으나 잠들면 얼어 죽을 것 같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갔다. 머리부터 발톱까지 꽁꽁 얼었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눈을 파헤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벽이 허물어지고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얼어붙은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여기 누가 있냐고, 아무도 없냐고, 아무도 안 계시냐고, 커다랗게 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이중기, 윤의섭, 길상호 등저 <사이펀문학상 수상시집>(사이펀 현대시시인선 12)
 

사이펀문학상 수상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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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즐거운 마음으로 Jazz 연작을 마무리

어떤 말로 수상소감을 시작할지 한참 고민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10월 어느 오후,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식이었습니다. 조만간 어느 문학상을 받을 예정이라, 제가 또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소식을 알려온 배재경 선생님이 다른 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사이펀 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려왔기에, 상을 받아도 된다는 건 알았지만 사실은 통화하는 동안 상을 또 받아도 되나? 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집에 와서 사이펀에 발표했던 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눈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시입니다. 저는 올해 들어와 Jazz 연작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이펀에 발표했던 시도 Jazz 연작에 포함시킬까 고민하다가 따로 제목을 붙여 발표했습니다. 사실은, 며칠 전 어느 잡지에 두 편의 시를 넘기며, 시작 메모에 Jazz 연작을 마무리 한다고 적었습니다. 올해엔 신작시 청탁이 더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한해 시 농사를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수상을 하며, 두 편의 시를 더 쓰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Jazz 연작을 마무리합니다. 시를 쓰는 시간은 늘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모두가 힘든 해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어나 처음 마스크를 써 봤고, 발을 다쳐서 깁스도 했습니다. 병원에선 입원을 하라고 했지만, 입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라도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아픈 발로 절뚝거리며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행복한 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한 해에 두 번의 상을 받게 되는 행운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사이펀 문학상은 더 특별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심사를 해주신 강은교 선생님, 김성춘 선생님께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 김참 시집 <초록 거미>(신생시선 58)
 

초록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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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정익진의 「유리 바다」 외 1편, 최휘웅의 「코로나」, 한정원의 「조슈아 나무 아래의 감자」 외 1편, 최은묵의 「리플리 증후군」 외 1편, 김참의 「미궁」 외 1편이었다.

본심에 오른 다섯 분의 작품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시력과 뛰어난 시적 테크닉 그리고 개성적인 언어의 운용을 보여주고 있어 수상작 한 분을 선정하는데 고심이 많았다

시적 긴장을 잃지 않고 주제를 치열하게 밀고 가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성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대상 작품들은, 현재 한국시의 다양한 목소리와 그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사이펀 문학상의 높은 위상을 짐작 하게 했다.

그 가운데 수상작으로 선정된 김참 시인의 작품들은, 불확실한 미궁 같은 삶 앞에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고통스런 현실의 삶을 큰 폭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전개 시키고 있어 높은 신뢰감을 주었다.

오월에도 눈이 내리는 이곳, 통로는 막혀 있고, 거리에는 얼어붙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암울한 도시, 그러나 어두운 통로 끝에서 들려오는 낮은 키타 소리가 있고, 멀리 불 켜진 창들이 아직도 보이는 도시,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고,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가는 이 곳, 우리 사는 곳, 음악과 눈송이, 꽃을 감각적으로 대비시킨 김참 시인의 환상적인 시편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수상자 김참 시인께 축하를 드리고, 본심에 오른 시인들께도 건강과 건필을 빈다.

- 심사위원 김성춘(시인. 전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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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연오랑 유문 / 송은유

뭍섬의 경계가 느슨해지면

유독 노을만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손잡은 사람이 손을 맡긴 이유를 물으면

무거운 저녁 하늘만 대답할 것 같다

도착하지 않은 파도가 미리 당신을 지우는 사이

내 발목은 나와 모르는 사이가 된다

 

당신이 섬월처럼 잠든 사이 내 몸 어딘가 곡선이 자란다 물새는 희박하고 종일 노을이 부서지고 있었다 바위는 왜 당신을 모시고 갔나요 나는 하강하는 것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멀리 떠나온 것들의 대답이 쌓이면 섬이 된다 동해는 여전히 해가 뜨지 못했고 섬은 다시 유쾌해지기 위해 수척해진 이유를 묻지만 잠든 당신은 내게 아픈 발자국일 뿐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행간도 사막이겠다 모래섬을 배운 이후 익사를 위해 조용해지는 법을 배운다 동쪽보다 내가 먼저 해 뜨는 풍경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낮을 숨기는 방식이라고 말했고 모래와 모래의 오차가 커질수록 망부의 노래가 쌓여갔다 섬의 후렴을 따라 부르다 내 안에 숨은 당신의 둘레를 꺼내 먹는다 

 

돌처럼 무른 마음 

틈새로 저 멀리 흰 돛이라도 보일까 

 

섬 안에 몸을 눕힌다 

노을이 끝난 사람처럼 고백하다가 

무섭게 나를 파먹는 섬을 본다 

 

까만 내 안에 살던 등대섬 

불이 꺼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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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바람의 눈을 꿰다 / 김성배

[우수상] 호미곶에 회유한 쇠고래 / 서상규

 

 

 

 

[우수상] 불의 정원 / 황현자

어머니! 제가 사는 마을엔 불이 꺼지지 않고 타는 정원이 있습니다

수십만 명 밥그릇이 담긴 화로가

오십년도 넘게 쇳물처럼 출렁이고

열기에 놀란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납니다

어머니! 이곳은 바다가 육지사이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요

양수처럼 큰 파도 없이 돛 없는 배들이 달처럼 떠다닙니다

모감주 씨주머니처럼 떠돌던 우리도 바람에 실려 정착한 곳이

이곳입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글싸라기 같은 꽃이 원추꽃차례 가지에 염주처럼 피어있고

장마 오기 전 급비를 뿌려주는 모감주 가로수 길을 걸어

불의 정원까지 가고 싶습니다

나루끝에서 정원까지 한 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가는 길엔 로즈마리 향이 도시의 향수로 뿌려져 있답니다

어머니! 밤이 되면 영일대 전각으로 가 바다에 뜬 달과 함께

밤바다 모래사장을 거닐고 싶습니다

밤바다 출렁이는 이곳의 전설들을

엣날 들려주시던 이야기로 듣고 싶습니다

멀리 등대에선 아버지가 돌아오실 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달이 장난칠 구름도 없는 밤이면

정원의 불도 고로의 불도 등대의 불도

달빛과 함께 서로 밝기를 뽐내는 회향한 밤입니다

어머니! 제가 사는 마을엔 불이 꺼지지 않는 정원이 있습니다

포항문인협회(회장 서숙희)는 지난달 30일 ‘제13회 포항소재문학상’ 작품 공모 수상자를 발표했다.

최고상인 대상에는 송은유<사진>(경남 거제시)씨의 시 ‘연오랑 유문’에 돌아갔고, 소설 부문 최우수는 배현수(경북 포항시)씨의 ‘지미’, 시 부문 최우수는 김성배(경기도 부천시)씨의 ‘바람의 눈을 꿰다’, 수필 부문 최우수는 김태선(경북 포항시)씨의 ‘구름 날개를 단 환호공원’이 입상했다.

대상 작품 ‘연오랑 유문’은 언어의 유려함과 무리 없이 끌고나가는 힘이 돋보이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은유 씨는 “2021년 힘든 시기에 무명의 시인에게 시를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신 포항문인협회 관계자 분들과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며 “지구 곳곳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시인들께도 호미곶의 뜨거운 내일이 식어가는 심장에 큰 힘이 되어 주기를 기원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 씨는 국어교육학 석사로 문학동인 Volume 2021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제3회 남구만신인문학상 수상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월부터 10월 31일까지 3개월간 공모한 포항소재문학상 작품 공모에는 전국 각양 각지에서 시 부문에 111명 378편, 소설에 39명 40편, 수필에 41명 89편이 응모됐다. 시상식은 12월 4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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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나비 판화 / 최영희

 

 

요양병원 치매 병동의 노인들은

일어나면 끌을 가지고 저마다 뭔가를 새긴다

삐꺽거리는 침대에 걸터앉아

혀끝에서 사라진 말을 곰곰이 떠올린다

양각으로 드러나는 동그라미 얼굴

조각조각 파내면

초록 비린내를 풍기는 눈동자

병실 밖 세상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한 마리 날갯짓이 방향을 잃는다

끌로 깊이 그어낸 네모난 집

풍경을 잘못 도려내 사라진 어린 시절

난해한 지도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닫힌 출구에서 문고리만 덜컹거린다

어둠이 깃들어 기억할 순 없어도

바람의 문신을 채워 날개를 그린다

균형이 맞지 않아 한쪽으로만 기우는 기억

물감 자국만 남아있을 뿐

지워진 그림자는 볕으로도 찍을 수 없어

꽃이 피지 않는 그림은 미완성이다

날카로운 끌로 파내기를 반복해도

좌우가 뒤섞인 노인의 오늘은

판화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한다

 

 

올해 20회를 맞는 김포문학상의 대상에 소설부문 박하성(경북 김천)씨의 <떠도는 섬들>이 선정됐다.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회장 송병호)와 의)우리의료재단 김포우리병원(이사장 고성백)이 함께하는 제20회 김포문학상 전국공모에 전국의 신인 작가 및 문인들이 응모해, 예심과 본심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김포 문학상 및 신인상 부문별 선정 결과가 나왔다. 김포문학상은 올해로 20회째로 회가 거듭할수록 응모율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으로, 현재 총 상금은 1,500만원이다.

올해 김포문학상의 우수상에는 시 부문 최영희(서울 금천)씨의 <나비 판화 외4편>과 시조부문 이숙자(경기 파주)씨의 <바리스타 카페 외4편>이, 수필부문 수상작품은 고옥란(광주광역시 광산)씨의 <덤 외 1편>등 총 4명이 선정됐다.

한편, 김포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김포문학 신인상에는 장년부 수필부문 문승운(운양동)씨의 <우리의 딸들 외1편>과 장년부 시부문 김옥란(고촌읍)씨의 , 청년부 시부문 홍지은(풍무동)씨의 <3초 외 4편>등 총 3명이 선정됐다.

이번에 본심 소설과 수필 부문을 심사한 백시종 소설가는 심사평을 통해 "본심에서 올라온 수십 편의 글들이 모두 아쉽고 안타까웠다. 작품의 완성도와 범상치 않은 문체, 잘 짜여진 스토리 등 깊은 사유 속에서 건져낸 존재의 의미와 자유로운 영혼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들이 많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 부문을 심사한 허형만 전 목포대교수는 "탄탄한 시적 사유와 따뜻한 시선으로 본심에 올라온 시들이 각기 실존적 삶의 의미와 깊은 사유를 드러내고 있었다"라고 전하며, 심사를 하면서 전반적으로 느낀 소감으로 "요즘 시를 왜 어렵게만 쓰려고 하는지, 독자와의 원활한 소통은 물론 작품을 통해 내면적 삶을 성찰하게 하고 따뜻하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고 전했다.

한편, 김포문학상 시상식은 2021.12.4.(토) 오후 ‘2021 김포문인협회 송년의 밤’에 앞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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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소쇄원에서 쓰는 간찰(簡札) / 김나비

 

 

[우수상] 오동의 향기 / 강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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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 강일규

 

 

산부인과 병원 근처엔 혼자 우는 울음이 많다

팔을 벌리고 부를 이름이 없어
한낮에도 울음이 바람을 끌어안고 멸망을 낳는다

저만치 뒤따라오던 아내가
전봇대를 붙잡고 이름 없는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다

미안
미안

건너편 정류장에서도
한 여인이 어리어리한 앳된 딸아이를 끌어안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대기실에서 마주쳤던
한 남자와 한 남자가 보호자란 인연으로
눈빛이 스칠 때마다 놓친 연과 놓은 연을 위로했다

아내의 울음이
자궁 밖으로 다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 반 근을 샀다

 

 

 

 

 

[당선소감] 아픈 이들 보듬는 따뜻한 시 쓰겠다

 

시클라멘 화분에 영희 씨 젖꼭지만한 붉은 망울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꽃을 터트리기 전 베란다에서 햇살을 즐긴다는 그녀, 피고 지면 또 다른 꽃대가 올라온다 했습니다.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을 때가 여름이라고 했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요” 라는 말에 물기 어린 글을 썼다 지우고 다시 또 쓰고….

오늘, 꽃이 피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첫눈이 내리는 퇴근길이었지요. 한겨울에 이토록 화사한 꽃을 피우다니…. 올해를 넘기지 않아 다행입니다. 눈발이 바로 땅에 닿지 못하고 공중에 부유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들도 심장이 뛰는구나.’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운전을 멈춰야 했습니다. 눈의 방향을 따라 걸었습니다. 큰길의 환한 불빛을 의지한 골목은 차갑고 희미했지요. 내 시작의 지향점과 닮아 있습니다. 삶의 무게를 시의 무게로 받아들일 때까지 겸허한 자세로 정진하겠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아프고 힘든 이들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시를 쓰겠습니다. 그런 글들이 모여 내 자신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기쁨에 가장 빨리 전염된 나의 영희 씨, 연수와 지연이 사랑해. 그동안 응원해 줘서 고마워.

시의 첫 걸음을 올곧게 일깨워 준 강희안 교수님, 인문학 강의로 시적 사유를 확장 시켜 준 소설가 연용흠 교수님, 좌절과 절망으로 방황할 때마다 시의 연을 단단하게 붙잡아 준 이돈형 시인님, 시의 길에서 만난 수레바퀴문학회와 시깡패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제게 따뜻한 손 내밀어 주신 강대선 심사위원님과 전남매일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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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고통받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

 

책상 위에 쌓인 응모작을 읽었다. 정성을 다해 보내온 시들이라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시대에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고독과 우울한 내면을 다룬 시가 많았고 가족 서사와 함께 일상을 소재로 한 시들도 적지 않았다. 사유의 깊이를 언어로 형상화한 시에 먼저 눈이 갔다.

그중에 ‘뒷모습’, ‘여우야 여우야’, ‘미역국’ 등이 시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뒷모습’은 시장의 노파를 새우로 비유하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어시장에서 노파의 삶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좋았으나 너무 쉽게 풀린 부분이 있고 함께 제출한 시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해 아쉬움을 주었다.

‘여우야 여우야’는 코로나19로 격리된 상황을 동요로 표현한 발상이 신선했다. 하지만 몇몇 시어들이 전체적인 시적 긴장감을 반감시켜 작품을 선정하는 데 망설이게 했다.

‘미역국’은 아기를 잃은 ‘아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다른 이들의 아픔과 함께하는 지점에 마음이 갔다. 코로나19 시대에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울림이 컸다. 나머지 작품의 수준이 고른 점도 신뢰를 주었다. 축하드린다. 깊은 울림을 주는 참신한 서정성을 기대한다. 당선되지 못한 분들도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강대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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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가마리 포구 / 박병란

 

[가작] 모슬포에선 못 쓸 것은 없다 / 김성배

 

 

 

[심사평]

 

5회 서귀포 문학작품 공모 시부문에 응모한 작품 편수는 359편이었다. 응모 편수만 놓고 보더라도 서귀포 문학작품 전국공모가 전국의 수많은 문인들로부터 관심 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부문 심사는 심사위원들이 블라인드 처리된 응모작들을 돌려 읽은 뒤, 각자 간추린 작품을 다시 논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심사평에 먼저 알려드려야 할 사항은 무엇보다 서귀포 문학상의 심사 방향이다. 이것은 문학상 공고란에 명시된 공모 주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명시된 공모 주제는 서귀포시의 삶, 역사, 자연, 문화, 사람, 전설, 신화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 내용들은 소재로 분류될만한 성격의 것들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공지된 주제 내용이 심사의 방향일 수밖에 없음을 전제해야 한다. 이로써 서귀포 문학상의 취지가 선명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응모 작품들은 대부분 서귀포 관련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소재를 취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것들에 육화되지 못한 채 나열과 이미지 설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소재로써 체화된 단어들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거나, 잘 알려진 서귀포의 이미지 포장에 활용된 아쉬움이 컸다.

 

반면, 일상의 육화가 이루어진 작품들은 그 내용이 서귀포로 이어지는 연계고리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굳이 서귀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납득되는 삶과 사람이 작품에 드러났다. 실제 작품 속에서 타지역의 지명이 혼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무난한 작품성의 성취를 보여주지만 심사 방향과는 다소 거리 있는 작품들도 아쉽지만 최종심에서 제외되었다.

 

논의를 거쳐 압축된 두 작품은 가마리 포구’, ‘모슬포에선 못 쓸 것은 없다였다. 두 작품 모두 서귀포라는 소재의 형상화를 무리 없이 잘 거쳤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자의 경우, 그것이 서귀포라는 상징성을 잘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후자의 경우에는 작위적인 연결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누가 봐도 맨도롱 호게따위의 수사는 억지로 채집한 소재라는 게 자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논의된 장단점을 고려하여 심사위원들은 두 작품을 각각 가작으로 선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이뤘다.

 

가작 당선자들께 축하를 보낸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당선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성취도를 보여준 여러 응모자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나기철,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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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스모루, 새들의 집 / 김신숙

 

 

새는 날아가지

날아가다 언젠가는 구름이 되지

스모루라는 새는, 스모루라는 구름은

바다부터 가파르니 날갯짓이 비탈지다

아버지가 소작하던 귤밭있던 자리는

지금은 붉은 열매가

아파트 불빛으로 익어가고

오랜 세월 망보던 자리에 둥지를 튼

아버지, 아버지라는 새

연대 아래로 트럭 흐르는 소리

일 끝난 아버지 손 씻는 소리

가파른 땅은 등 굽어 걸어야 겨우

발자국 소리 별빛으로 비틀거리며

날 수 있을까

술 취한 사내가 휘청거린

망팟으로 내려가는 길

빈 주머니는 가파른 구름으로 환생하고

스모루라는 이름으로 숨이 마르고

아버지는 먼저 하늘로 날아갔다

연신 고개만 주억거리며

새들의 말을 듣는 연습이 필요하고,

뿔소라의 말을 건져올리며

젖어서 날 선 마들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엔

새도 보이지 않는다

그 텅 빈 날개,

숨 마르는 경계

스모루가 날아오른다

 

 

 

 

 

[가작] 마라도의 꿈 / 김선호


 

 

 

 

[심사평] 서귀포의 매력을 시적 감동으로 채워줄 작품을 기다리며

 

올해로 제4회째를 맞는 ‘서귀포 문학작품상’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 수는 모두 504편이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첫 회부터 어떤 정보도 개입되지 않은 블라인드 심사로 진행되었으며, 오로지 작품성으로만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린다.

 

이번 응모 작품의 경향을 살펴봤을 때 삶의 이야기를 시에 녹여내려 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삶의 고단함과 서귀포의 전설, 서귀포의 상징성을 나타내려고 애쓴 작품들이 눈에 띄어서 작품을 읽는 맛이 났다. 잊고 있던 서귀포라는 이름을 꺼내어 불러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삶의 경험이나 이야기를 시의 소재로 쓴다는 것은 관념성이나 추상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 경우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직접 경험일 경우에도 ‘시’가 갖는 함축과 비유, 상징으로 이야기를 녹여내지 못하면 날것으로 남아 일기나 산문처럼 흐르기 쉽다. 아쉽게도 그런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서귀포’라는 지명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수사법을 동원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결국 ‘시’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감동이 사라져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서귀포적이면서 시적인 응집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스모루, 새들의 집’과 ‘마라도의 꿈’ 그리고 ‘무태장어*의 편지’를 최종심에 올려놓고 고심하였다. ‘스모루, 새들의 집’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지명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스모루’라는 제주의 지명을 다른 사물로 치환하는 참신함과 그것을 통해 ‘아버지와 새’라는 이미지를 끌어낸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서귀포문학작품상’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에는 주제나 표현에 있어 다소 미숙하고 가벼워 보였다.

 

‘마라도의 꿈’은 마라도의 이미지를 내면화하여 표현하는 데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하지만 문장들이 자기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주제에서는 멀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마라도의 꿈’이 보이지 않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당선작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무태장어*의 편지’는 서귀포라는 지명의 특색을 잘 살린 작품이지만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의미의 문장들로 긴장을 놓쳐버리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쩔 수 없이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시적 표현에 있어서 끌리는 작품도 더러 있었지만 형식만 있거나 이미지만 있거나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서귀포문학작품상>에 부합하는 이렇다 할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고심에 고심을 했지만 당선작을 내지 못하고 가작에 그치게 되어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서귀포의 매력을 담은 감동적인 작품들이 줄줄 나오길 기대하며 여기서 마친다.

 

심사위원 오승철 유홍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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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자에 복효근 시인 - 뉴스사천

[뉴스사천=강무성 기자] 제9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자로 복효근 시인이 선정됐다. 박재삼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정삼조)는 2022년 박재삼문학상 본심 심사결과, 복효근 시인의 (현대시학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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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박재삼문학상 이병률 시인 수상 - 뉴스사천

[뉴스사천=강무성 기자] 제8회 박재삼문학상 시상식이 10일 오후 3시 박재삼문학관 다목적실에서 열렸다. 올해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별도의 부대행사 없이 문학상 시상식과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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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을 수 없는 가만히 동호회 외 6/ 변윤제

 

 

가만히 멈춰라.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시작된 동호회.

 

가만히 멈추는 건 무엇인가요 멈추는 것과 가만히 멈춤은 무슨 차이일까요.

먼지떨이를 쓸어내리며 생각했습니다.

수백 갈래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고민했습니다. 먼지떨이로 사람을 때리면 회초리가 되고요. 먼지떨이로 반찬을 집으면 젓가락이 되는데.

가만히 멈추면 가만히가 무엇이 되지요?

 

요를 펴면서도 생각했어요.

이불로 나를 돌돌 말아 쥐는 사람아. 김밥 놀이를 시키며 내 숨을 사라지게 하는 사람아. 어머나.

오이의 기분은 희박하구나? 그래서 안쪽이 창백하구나.

 

그대여.

내게 가만히를 명령한 그대야말로 가만히의 명수.

타르트를 파는 저 세탁소를 보아요.

가루가 떨어져요. 옷걸이엔 밀가루 포대가 잔뜩 걸려 있답니다. 세제 대신 흰 가루 쏟아지고.

 

왜 우리는 항상 가는 곳만 가야 하나요?

이 세탁소에 온 손님은 아무도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새하얀 건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당신만이 매일 저 세탁소에 옷을 맡겨요. 검고 푸른 옷마저 희게 만드는 저 세탁소를.

완벽한 하얀색을.

가만히는 그렇게 꾸준한 일. 늘 하는 것을 늘상 반복하는 일. 그런데 제게도 가만히라니요?

 

가만히를 일생 기르면서 가만히를 가만히 가르치는 당신.

제자리에 멈춰 돌아가는 세탁기 군단.

 

진정한 의미의 세탁에 대해.

당신은 알고 있었고.

당신이 찾아온 옷가지는 타르트가 되었고. 포도 향이 나고. 어떨 땐 빳빳한 쿠키의 감촉이 제 목젖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가만히 있어.

그 말이 제 유년을 하얗게 탈색하는데.

발버둥.

토악질. 새하얀 구토물의 겨울. 가만히 동호회가 발버둥으로 완성되고야 마는데.

 

가만히에게 편지를 씁니다.

가만히야.

나는 한 번도 너 같은 종류의 가만히는 원한 적 없어. 나 혼자만으로 충분한 가만히 동호회.

가만히 부르는 순간 가만히 있던 그림자가 떨어져나가고.

제 털을 가만히 기르고 있던 먼지떨이가 부서져버리고.

벽에 가만히 스며들고 있던 내 등이 내 척추에서 떨어져나가서.

사방이 저로 가득한.

동호회라기보다는 가만히 의회에 가까워집니다. 가만히로 구성된 제국일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가만히 다가오는 비명에 대해.

가만히 나라의 폭군으로서 명령합니다.

 

꺼져.

가만히 꺼져.

세상 모두가 일제히 발버둥친다면, 진정한 가만히가 완성되는 것?

 

시속 칠백 킬로미터로 달아나는 가만히 국민들.

도저히.

도저히.

결정적으로 나는 가만히 있게 되는 겁니다.

 

코끼리가 없는 코끼리 유치원이나 마찬가지예요.

코끼리가 들어오는 순간 알게 되는 거죠.

우리가 무엇을 동경했는지.

육중한 네 다리와.

유치원을 기둥째 뿌리 뽑는 압도적인 코.

우리 귀여움이 바라왔던 파괴적이고 절대적인 힘.

 

그대여.

가만히 멈추라고요?

가만히야.

나는 나의 가만히를 끌어안습니다.

가만히의 기다란 코가 내 목을 살며시 조릅니다.

, 가만히.

그리하여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가만히 동호회.

 

 

 

 

최류자들

 

 

인도에서 온 아디타

 

냉장고에 넣은 여권은 기한이 줄어들지 않는다 믿는다. 아디타의 여권은 늘 차가운 곳에 케밥을 파는 그는 자신을 터키 사람이라 소개한다. 며칠째 팔리지 않는 양고기에 기름을 덧바르면서. 화전하는 걸 보면서.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건 편지. 수증기가 올라오자 종이 접히는 소리. 당신 불법으로 온 거 맞잖아. 유통기한 지난 거라고. 배탈이 났다는 남자가 아디타의 뺨을 갈겼다. 두어 번 더 후려갈겼다. 노래를 부르며 양고기에 기름을 바르는 아디타. 기름기름. 고기고기.

 

안부의 나라

 

손님이 정말 많은 시장이었대요. 아무도 없어요. 어떤 날엔 제 가게에만 비가 내려요. 일인용 먹구름, 일인용 우울, 일인용 불법 체류, 일인용 범법자.

단 한 명도 앉힐 수 없는 비좁은 가게. 흰 앞치마를 입고 행주를 위로했어요. 돼지고기 전단지를 위로했고. 뚝뚝 떨어지는 기름방울을 위로했고. 위로를 위로했습니다.

제가 부친 돈은 잘 갔나요. 전화를 걸면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제 소식을 걱정하기엔 그곳이 너무 행복해져서. 찬란이 영영 안부가 되어서.

 

일자리 소개소의 창가

 

우표로 쓰기에 적합한 증명사진들. 시장 골목마다 내가 데려다놓은 체류자들. 휴지에 항공권을 그리고 선물해주었다.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한 사람은 앉아서 잠들었다. 힐을 벗겨주었고. 패딩을 벗겨주었고. 또각또각 그 사람의 구두가 그자를 버리고 가는 걸 보았다. 비행기는 대체로 어항 속을 날고 있다.

 

대필

 

아디타는 돈을 많이 벌어요. (받아 적는 척한다.) 어제와 그제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어요. 눈 내리는 식혜 속을 함께 거닐고 싶어요. (??) 오늘은 물론 항상 기분이 좋아요. 잘 안 보이던 눈도 제대로 보이고요 (그는 머뭇거린다.) 정말이에요. 제 걱정은 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에요.

 

소개소 창가엔 언제나 뿌연 안개. 제대로 쳐다보면 빼곡히 흰 우표가 붙은 창문. 걱정과 염려가 실질적으로 이곳의 눈을 가린다.

괜찮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입속에 어두운 복도가 보이고. 괜찮습니다. 다시 들려오는 소리 속에 복도에 구멍이 뚫리고. 그 복도를 오려내는 건 빛나는 가위. 편지를 부치지 않는다.

 

유통기한

 

어느 날 세계지도가 그려진 거울이 배달되어왔다. 지우개로 가장 먼 나라부터 지우기 시작했다. 한 체류자가 그 거울을 냉장고에 집어넣으려 하는 것을 보았다. 말리지 않았다. 그들이 안타깝게 여겨질 때 그들을 더욱 이용한다.

 

 

 

 

기분의 중력과 부력

 

 

혀를 질끈 깨물면 햇살의 방향이 달라지고

좋아

좋구나, 라고 발음하는 일만으로 기분에 부력이 돈다

정신병원에 갇혔던 스무 살 병상이 꼬리 치며 사라지는 뒷모습

 

그때, 꼬리는 의지랑 무관하게 헤엄쳤다

몸통이 꼬리에 매달려

수많은 물속을 여행 다녔지, 포식자를 피해 온 가족이 도망간 외할머니의 수조, 쉬는 시간이면 몰려와 날 때리는 물고기들, 어항을 빙빙 도는 정신병에 걸렸던 스무 살 폐쇄병동, 나를 둘러싼 부모의 동공, 그 물살과, 지느러미 사이로, 힘차게 헤엄쳐 다녔지

꼬리 짓이 더욱 세게, 왜 나에게? 몸통의 의문과 꼬리의 운동은 먼 곳, 온몸이 경쾌한 리듬을 그리다가

 

어느 날 바라던 바처럼 땅으로 걸어올라와

두 팔, 두 다리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지, 밤마다 창밖서 끈적이는 즙이 흘러들고

 

천장에 아가미가 달렸어, 어느새 주억거리는 소리 속

수없이 많은 비늘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그때의 몸을 걸어나갔고, 결국 꼬리에게, 왜 그랬어, 그런 여행을 왜 떠나게 했어, 파문이 되돌아오는 결 속

평범하게 잠이 들었지만

 

그러나 그날엔

커튼을 순식간에 젖힌 아침인데도

볕이 주춤거리며, 일렁거리며, 망설이는 파도처럼 밀려들었지

동틀녘 육지에 올라온 생선이

제 안의 초점을 조금씩 되찾는 모습을 보았듯이

 

이제 헤아릴 수 있어

물고기였던 사람의 기분엔 언제나 중력과 부력

 

침대에 누워 또 한번 혀를 깨무는 거야

그러면 침대 속 남아 있던 물결이 출렁거리고

좋은 게 뭔데? 까먹고 살면 안 돼? 그런 중얼거림도 꼬리 칠 수 있지

 

죽어가던 비늘이 태양을 향해 솟구치고, 보여

우릴 둘러싼 것 중 가장 강한 중력을 가진 저 별

태양 곁엔 늘 쏟아지는 비늘

눈부신 물결 속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등을 마주대고 잔 밤과, 그런데도 무사히 졸업하던 날의 기억, 강박당한 나를 둘러싼, 다정한 폐쇄병동 환자들, 어느새 꼬리가 그곳을 헤엄치고

잊고 있던 기분의 중력이 나를 계속 끌어당기면

 

아니야, 역시 오늘은 기분이 좋아

발음하며

날 뒤덮은 비늘을 하늘로 솟구치게 해

그들은 하늘에 침잠하고, 짙푸른 아침 물살의 색을 빚어내지

창공, 내 기억으로 출렁이는 수면

다시 혀를 질끈 깨물면

 

 

 

 

민트초코가 유행이라서

 

 

치약을 넣고 라면을 끓입니다

유행이라면 뭐든 해보고 싶으니까요

제겐 적당한 동질감이 필요할 뿐

치약에게도 따뜻함은 필요하지 않겠어요?

국물까지 마셔도 죽진 않을 거예요

한때 흰 국물 라면이 유행일 때도 있었잖아요

이 면을 마지막으로 저도 퇴장할게요

꿈이 생기고 말았잖아요

민트초코의 결정타를 날리겠다는 야심까지가,

 

라면을 들고 지하철에 탈 거예요

가스버너에 불을 지피고 역무원이 출동할 때까지

흰 연기 피어오르는 눈앞에서

도시 괴담처럼 살아남는 거죠

화가 날 때마다 저는 이를 닦던 사람

칫솔과 치약에게 성을 내던 사람

민트초코가 유행이라니

치약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가 온 게 고마울 따름

이제 위장은 잘 닦인 치아처럼 번쩍일 테고

참신하다는 말은 모욕적일 뿐

치약 라면이라 해서 칫솔을 들 필요는 없죠

논리적일 필요가 없는 곳에서

젓가락을 들고 치약 거품 속으로

하얀 구멍 구멍의 더 구멍 아래로

자꾸 그렇게 곁눈질하지 말아요

세상에 대한 안목이 생겨버릴 것 같잖아요?

한 가락도 나눠주지 않을 거예요

 

 

 

 

귀신고래의 마을

 

 

애초 증조모가 내게 맡긴 일은 고래의 귀지가 될 만한 파도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녀와 같이 고래 귓속을 걸으면 천장의 선홍빛이 귀지에 내려앉고.

부스러기마다 불이 들어와 밤에도 사방이 어둡지 않았다.

 

고래 귓속에 무엇이 들어올 때마다 새로운 장소가 발견되곤 하였다.

씨앗이 닿아 초원이 된 고막.

귓바퀴 소용돌이를 하릴없이 걷자 트랙이 되었고.

그녀와 함께 그곳을 종일 걸으면 사지에 소용돌이 문양이 돋기도 했다.

 

나는 불이 들어온 귀지를 들고 고래의 외이도를 탐험했다. 파도 무늬 그려진 귀지.

처음엔 푸른빛이나, 점차 황금빛이 감도는.

혈색이 닿으면 핏줄아 돋는 그것에게.

내가 부스러기에 얼굴을 가까이 대면 두 볼에 붉은 기운이 선명해졌다.

 

광대 안쪽이 마그마가 흐르는 것처럼 뜨겁다가, 이내 온몸이 싸늘해졌다.

증조모는 그럴 때 내 목덜미를 낚아채 고래 귀 바깥으로 집어던졌다.

그 밖은 노을의 너머와 맞닿은 곳, 나는 지평선 아득한 곳에서 집까지 헤엄쳐왔다.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며 매타작이 쏟아지는 집.

지붕을 휘감은 넝쿨이 허름한 집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증조모를 만나고 왔단 얘기에 부모가 고개를 저으면.

그들 귀에서 귀지가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모의 안쪽에도 누군가 걸어가고 있을까.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나의 아이라거나.

그들 귓속엔 회초리 소리가 몰아치는 숲. 칼날 서걱이는 정원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다만 그들의 귀지를 모아 고래 귓속에 데려가보고 싶었다.

그러면 고래는 어떻게 될까. 나를 받아들인 고래가 처음 만든 장소가 어디였을까.

기억나지 않는 그곳이 무척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귀지가 필요해졌다.

고래 귓속에서 증조모는 더 깊숙한 곳으로 걸어가고. 내 몸은 커져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늘었기에.

 

좁은 곳에 몸을 밀어넣을 때. 이런 소리가 들렸다.

겨울이 왔다. 고래 귀지에 꽃이 피는 계절이야.

이파리가 무성할 때. 고래는 숨을 거두고 대신 심해 깊숙한 곳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단다.

 

고래가 가라앉은 바다에 빛이 들어오리라 생각했다.

선홍빛이 유자형을 그리며 내려앉고. 물살이 불이 붙은 것처럼 환해질 때.

멀리서 보면 물결 사이 새로운 핏줄이 생긴 듯, 빛이 들어오리라고.

나는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고래 귓속으로 내 큰 몸을 힘껏 밀어넣었고.

 

 

 

 

알파카 부인의 안데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아뇨, 전 주방세제가 다 떨어진 날에 태어났는데요. 행주를 비빌 때 나는 마찰음. 푸른 열 자국에서.

수세미에 불어터진 살갗이 벗겨질 때. 밑에 발굽이 보일 때에. 그릇 두드리면 과일 향 번지고.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챌 때.

 

이토록 목이 길고 귀는 쫑긋 서 있고. 침을 잘 뱉는 내가 누구인가를 마주볼 때.

핥으면 죽는 과일인데요. 먹어보겠어요. 그저 과일을 흉내낸 냄새. 눈을 감았다 뜨면.

 

어쩌면 부엌은 가짜들의 골목. 줄기가 자라버린 그릇. 사과 냄새 매달린 접시까지.

그러니 탄생이 가능합니다.

두 팔을 두 다리로. 온몸에 털이 자라고. 부엌의 바닥. 아니. 거의 맨틀이라 볼 수밖에 없는. 지옥이라 불러도 될 지하에서. 땅이 융기하면.

더 가능해지는 네 개의 다리.

 

사이에서 남미식 키친에 당도한다면. 얼룩을 지우고 있는 자. 얼룩을 사라지게 하는 자.

그러니까 불가능해지는 얼룩. 희미해지는. 투명이 되는 얼룩. 그것은 바로.

더욱더 오세요. 그게 나. 우리가 사람이었다고요? 그렇게 살았으면서도 그렇게 믿어요?

 

그런 말은 알파카나 줘버리라고요. 목젖 뒤에 거리가 있고 거기까지 넘어오세요. 오세요. 눈에서 연기를 뿜으며.

가능해지세요. 이 부엌은 골목의 봉우리. 솟아올라 도시를 산맥으로 만들 정상. 능선을 잇댄다면. 당신의 어깨 곁에.

우리들의 모든 손목 능선에. 이 능선이 가닿는다면.

 

식칼을 쓰며 나는 손을 베였습니다. 사실 안 쓸 때도 베였습니다. 당신을 마주볼 때.

극장에서. 거리에서. 동사무소. 뒷골목에서. 카페에서. 개가 짖는 노을 옆에서 꽃무늬 담벼락과 들쳐지는 바지와.

막말을 내뱉는 택시와 식당에서. 곁과 곁.

물에도 날이 달린 이 도시에서. 당신은 왜 그렇게 목이 긴가요? 침을 왜 뱉나요? 왜 그렇게 우나요?

나의 털 속으로. 서슴없이 파고든 무수한 손가락.

 

이런 건 안 좋은 습관이라니까. 깨끗하게 부엌을 관리해야지.

 

퉤퉤- 이 침 뱉기는 설거지를 위해 쓰입니다. 뱉는 소리와 함께 쓰레기봉투 벗겨지고. 내가 알파카가 아니라면?

아닌 거죠, .

다시 퉤, 소리에 맞춰 씻겨나가는 것. 내 방식대로 깨끗해지는 것.

 

* 세사르 바예호

 

 

 

 

망고가 아닌 모든 이유

 

 

망고를 태운 부드러운 재.

칠흑의 가루 곁에 누워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별은 망고에 매달려 그대로 과육의 색이 되지만. 그 빛이 과일의 유일한 색인 것처럼 한사코 맺혀 있지만.

 

태웠을 때는 검구나.

태양이 어떻게 끝날지 알 것도 같다. 이건 우주 한 알의 색.

 

귓속에 어두운 설탕이 쏟아진다. 한 번도 닿은 적 없지만, 영원히 오고간 어떤 지옥이.

 

검은색. 오히려 남국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적도 아래. 혀를 내밀면 자오선 녹아내리고. 소금기와 물빛. 혀뿌리부터 옮겨 적히는.

 

바다 밑엔 늘 몇 점의 어둠이 가라앉아 있다. 내 머릿속 꼭 세 개나 네 개 이상은 들어 있는 누군가의 해골처럼.

그때 나의 기분은,

두통약이 밀려들어올 때 내 두통의 마음. 백사장에 닿아 꺼져가는 포말의 심경.

망고를 온 가지에 매달고 썩히는 나무를 본 적도 있지. 지나치게 익은 과실은 뚝뚝 물을 흘리고.

처음 보는 종의 개미떼는 항문이 노랗게 젖어 있다. 줄지어 잇닿는 행렬은 마치 벌레가 되었다고 할 수밖에.

 

버켄스탁으로 긴 줄을 짓밟을 때. 저마다 다른 명도로 빛나는 솜털만큼의 볕이.

바삭바삭 부서질 때.

 

심장은 뛰고. 두근거림에 맞춰 몸에서 무언가 새어 나왔다. 파도처럼 흩어지는 벌레떼.

그때 벌레는 부드러운 물. 그래. 과육의 성질.

 

망칠수록 익어가는 부위는 어디에나 있었어.

망고 나무가 내 정수리에 자신의 물을 흘리고 있을 때. 순간 달콤해지는 고민들에게.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머리칼 한 올 한 올 타들어가는 게 느껴지고 달콤하고 유려한 재가 되어갈 때.

두피마저 부드럽고 따뜻한 재로 변해갈 때.

 

그건 내가 내 생각들에게 적어 내린 답장.

결심이라 말하진 않겠다.

평범한 사람의 불행이 내게 닿지 못한다는 것. 평범한 사람의 행복도 결코 내가 맛볼 수 없다는 얘기.

머릿속엔 온통 망고 굴러가는 소리. 나 자신이 타오르는 한 그루 망고 나무 일 적에. 이건 망고가 아니어야 하는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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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홍직이 고개 / 강신월

 

[차상]

박수봉()

김숙희(시조)

 

[차하]

김윤옥()

정연숙()

박영숙(동시)

송경애()

 

[장려상]

김영부()

박혜료()

서대원()

안창섭()

이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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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공원 외 4/ 남현지

 

 

눈앞에 호수가 있고

나는 시민과 조경이 익숙한 듯이

벤치에 앉아서

 

방금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다가

묶여 있는 개를 바라보는 회사원처럼

호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배가 부르다는 게

큰 개가 묶여 있다는 게

 

누가 길을 물어서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호수만 보이는데

 

꿈에서는 나도 찰랑거리다가

귀를 기울이면 자신이

물결처럼 쏟아져서 깨어났다

잉어 몇마리와 엉겨붙은 물풀을

떼어내면서

 

호수는 잘 묶여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건물처럼

고요하게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생각하면서

호수를 따라 걸었다

삼십분 전에 본 사람이

다시 옆을 달리고 있다

 

 

 

 

빛의 생산

 

 

전기 좋아해요?

이제 그만

그걸 자연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담배를 마지막으로

집에 불타오르는 물건이 없어졌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전기를 좋아하는구나

 

전기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만두 없는 세계

슬프지만 그럴 수 있고

종달새는 본 적도 없고

나 없는 세계는 지금도 뭐

 

언제부터

고통 없는 세계

그건 상상을 안 합니다

 

자연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봄기운이 완연한

오늘 날씨 이야기처럼 다들

두줄을 넘기지 말라고

고통에게 차례를 지키라고

말할 거라면

 

사물들은 다 잘 있습니다

가끔 고장이 나고

그것을 고치거나 버립니다

빛이 깜빡거리면

문제가 있는 거고

 

담배는 진짜 끊었습니다

 

 

 

 

퇴근

 

 

첫눈이 내리는데

갑자기 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사과 상자 안에서

더 붉어진 사과 이야기

 

나무는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그만큼의 붉은색을

중개인들의 몫으로 넘겨주었다

 

모자라요?

가게 주인은 상한 사과를 덤으로 넣어주고

나는 충분하다고 다시 빼낸다

 

한밤중에 사과는

검은 봉지 안에서 조금 더 붉어지고

나무는 멀리서 눈을 맞고 서 있다

뭘 잘못한 사람처럼

엉거주춤하게

 

버스를 긴 줄로 기다리다가

집을 향해 걸었다

도로에 집으로 가지 못한 차들이

눈을 맞고 서 있고

떨어진 사과 하나는

붉은색을 들고 굴러갔다

 

 

 

 

앙코르 와트의 버섯 상인

 

 

간에 좋아요

살이 빠집니다

 

상황버섯을 팔던 상인은

실은 돈을 모아서

포카라로 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거기서 인류의 멸망을 기다릴 거라고

관광객들에게

포카라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히말라야의 산기슭

 

나는 기쁩니다

버섯은 얼마입니까

 

 

 

 

 

실업자가 야구 보는 이야기

 

 

분명한 마음이 있었는데요

사라졌습니다

 

고장 난 사람처럼 야구만 보았습니다

공이 뭐라고

공은 분명한데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니까

개의 마음을 알 것 같고

공의 궤적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야구를 보는 동안

아픈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공을 보는 개의 마음은 알아도

나를 보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은 모르겠는데

엄마는 내가 멀쩡해 보여요?

 

아름다움처럼 모르겠는데

나 없이 내게로 오는

그 마음들은

 

아무도 사할을 넘지 못하도록

투수와 타자가

긴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쉽게 하나가 되는데

그러려고 모인 거니까

 

온 힘을 다하여 야구를 보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공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던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

매일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던 전화기를 잊을 때까지

그러면 프랜차이즈 스타가 이적해도

돈이 모자라면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는 팬들만 남아서

 

내가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어리석지 않으려면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요

포지션이 없으면 게임이 안 되고

응원팀이 없으면 야구가 재미없습니다

공놀이죠

돌아오지 않는 공도 가끔 있지만

야구에서는 돌고 돌아야 합니다

 

야구가 끝나면

아픈 사람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답장합니다

사회보장제도를 알아보자고 말합니다

의사가 알려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따라서

 

차라리 돈을 많이 벌지 그랬어........

그렇게 말해주는 시가 있었다면

저작권으로 농담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맥주가 지겨워요

사라진 마음이 지겹습니다

공은 왜 자꾸 돌아와?

 

 

 

 

 

[심사평]

 

올해 창비신인시인상 응모에는 총 1138명이 귀한 작품을 보내주셨다. 많은 편수와 비례하여 미덕을 갖춘 작품이 많았기에 벅찬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팬데믹을 맞아 서로 마주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었는데, 그사이 많은 분들의 언어의 밭에선 시가 이토록 풍성하게 가꿔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심사위원들뿐 아니라 시를 읽고 쓰는 모든 분들에게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심사위원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응모작들을 검토한 뒤 4인의 작품을 최종 검토작으로 삼아 논의를 진행했다.

 

변신의 귀재9편의 작품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언뜻 시적 연결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져 산발적이고 파편화된 진술이 아닌가 염려되었지만 개성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표현들이 많았다. 작품 간의 편차가 있었는데 조련등이 빼어난 작품으로 꼽히는가 하면 트럭등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언급되었다. 시라는 장르가 무조건 하나의 정념을 보여주며 가지런하게 정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가 지니는 울퉁불퉁한 가독성의 영역이 있다면 이 응모자가 앞으로 보여줄 세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내 앞의 동경 씨 내 뒤의5편은 시를 전개하는 방식의 능란함이 눈길을 끌었다. 한행씩 떨어뜨려 놓으면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행과 행이 만나서 연을 이루고 한편의 시를 이루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만들어지고 인상적인 이미지가 펼쳐졌다. 그것은 편안한 방식으로 시를 이끌어가면서도 자유롭고 거침없는 시행의 운용을 통해 자기의 목소리를 분명한 언어로 드러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 까닭에 세련된 방식과 그 안에 담긴 목소리의 결합이 온전히 본인의 것으로 체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얼마쯤 의구심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응모작 전반에 드리워진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도 미더움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손에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당선작과 함께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빛의 정원4편이었다. 투고된 시들의 편차가 적고 이미 완성도 있는 시세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심사위원 모두가 동의했다. 또한 고유의 시적 서사와 정서가 풍부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는 점에도 주목하였다. 다만 시들이 기대고 있는 이미지나 세계가 다소 좁고, ‘이나 미래등 시적인 이미지들을 가져오는 방식이 상투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넓은 방향으로 시세계를 확장해나간다면 분명 단단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계속해서 써달라는 응원의 말을 보탠다.

 

호수공원4편은 언뜻 수월하게 읽히는 말을 맵시 있게 엮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현실에 닿은 채 출발한 시의 시선은 지금 이곳에 정박해 있기보단 멀리까지 나아갈 줄 알았고 그를 다 경유하면서도 처음 자리에 버젓이 놓여 있던 어긋남을 응시할 줄 알았다. 매 작품마다 마지막 구절이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생활에 깃드는 외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침착하게 궁리하는 이의 면모가 근사하게 드러났다. 시가 다가왔다가 물러날 때마다 남기는 감정의 파동이 천천히 길게 이어진 탓에 논의를 시작하면서부터 마칠 때까지 모든 심사위원들이 손에서 좀처럼 놓지 못한 작품이다. 시에도 독자가 다시 돌아보도록 만드는 장력과 그를 유지하는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면, 이 시편들은 그 힘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호수공원4편을 제21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으로 정한다. 당선자께서는 자신만의 화법으로 구축한 세계를 의심하지 말고 시로 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일'을 더욱 자유로이 해주었으면 한다. 낙선을 하게 된 분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보내주신 작품을 통해 머지않아 다시 만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감히 예감하게 해주셨다. 다른 무엇이 아닌 를 마주하는 태도가 이토록 치열한 이들이 함께 쓰고, 읽고 있으니 우리는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옥고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 양경언, 유병록, 이근화, 주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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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혜원

 

 

당신은 손의 윤곽이 열쇠와 닮아서 아침에 손을 떨어뜨린 사람

 

내 손은 정오의 구멍처럼 환하고

V자로 깎아 낸 아홉 개의 벤 자리와 여덟 개의 이가 있는 당신의 열쇠는

부드러운 곡률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쉽게 통과하네

타인의 주머니에 쉽게 손을 맡기고

 

열쇠를 만지듯

가볍게 만지작거리고

 

백 년 동안 열쇠가 녹고 있지

 

녹은 자리가 예뻐서

당신이 또 손을 어루만지면

 

너무 헐거워

 

당신은 한 번도 내 손을 열지 못했지

다른 손이 필요하다고 믿었지

윤곽이 녹아서

 

백 년 동안 열쇠만 깎았지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한 일은 최선을 다해 손을 오므렸던 일

 

손을 펴면 열쇠의 깎은 자리가 사라지고

내 주머니에서 손이 사라지고

 

주머니에 타인의 열쇠가 가득하네

 

어느 날 모르는 손 하나를 쥐면

자물쇠의 깊이만큼 긴 구멍이 생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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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편이다 당선작 / 나종훈

 

 

우리 엄마들은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금 간 식탁을 버릴 때도 그들의 누렇고 긴 이야기를 파란 봉투에 담을 때도 가느다란 바람이 간결하게 불었다 비밀스런 이야기들은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턱이 빠진 창문을 넘었다 그럴 때면 매미 대가리가 가득한 지붕에서 우아한 고양이들이 말을 더듬었다 머리부터 나오지 못한 사생아는 주인 없는 의자를 만들고 버리고 만들고 버리곤 했다 반복되는 요일은 흔들리는 요람처럼 소문을 토해냈다 그런 편이었다 토스트가 만드는 소리는 지나치게 의존적이었다 난생처음 먹은 계란 프라이엔 거짓 맛이 노랗게 뒤엉켜 있었다 전혀 새로운 종으로 분류된 조류의 춤 같았다. 오후의 텅 빈 놀이터와 요리가 멈춘 부엌에 똑같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장롱 위엔 회초리가 장롱 안엔 가족사진이 있었다 거의 그런 편이었다 먼지 쌓인 책장처럼 계절은 고요히 다가왔고 중립을 지키던 남자들의 입술에도 눈이 쌓였다 의자에서 떨어진 노을은 높임법을 자주 틀렸다 아이들은 사진 속 지평선을 바라보며 어렴풋이 말을 배웠다 대부분 그랬다 그런 편이었다 옥상에 누워 수를 배웠다 얼어붙은 도마를 두드리는 수는 계절보다 한 수 위였다 반사적인 칼질이 그랬다 그런 편이었다

 

 

 

[당선소감]

 

 

일기장 같은 친구와 평생을 함께 할 수는 있겠지만 용기가 없었다.

날 닮은 부분이 너무 많아 부끄러웠다.

다듬어지지 않은 표정을 들킬까 도망가기도 했다.

몇 년을 말없이 지내기도 했다.

 

화목제로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린다.

부족한 저의 시를 좋게 봐주신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진지한 태도를 가르쳐주신 이승하 교수님에게 감사드린다.

 

눈이 많이 온 새해 이글루를 아이들과 만들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다 당선 연락을 받았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전화였지만 의외로 차분한 나에게 놀랐다.

만들고 온 직후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보고 기뻐해 주는 아내와 아무것도 모른 채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고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가족에게 너무 고맙다.

나를 만들어준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도 감사드린다.

 

 

 

 

 

배춧잎이 시들어간다 / 박희연

 

 

1.

먹다 남은 배추 겉잎이 시들었다.

속잎이었던 그 겉잎은 싱싱했다.

싱싱한 것을 시들게 만드는 내공은

내게 있을까 시간에 있을까.

돌아보면 내 삶은 혐의로 가득 차

어깨가 움츠러들고 손이 오그라든다.

불안은 종종 표면적을 작게 만든다.

배춧잎이 조글조글 말라붙었다.

 

 

2.

가까이서 보면 크고 멀리서 보면 작다.

표면적을 작게 만드는 방법 하나

당신과 거리를 두는 일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인류애는

서로가 서로에게 보균자라는 혐의를 두는 것

 

3.

오래된 습관처럼 해가 뜨고

어제저녁 먹다 남은 배춧국을 먹는다.

TV에 비친 한 정신병동에서

누군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죽거나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죽어나간다.

저 죽음의 이면에도 아랑곳없이

당신과 나는 숟가락을 놓지 않는다.

우린 너무 많이 배양되었고

너무 오래 변이를 거듭해왔다.

 

4.

남은 배춧잎이 또 시들었다.

속잎마저 이울어 더 이상 시들 일이 없을 때

난 헛헛한 마음에 기침을 한다.

불안이 고조된 열차 안에서

어느새 오래된 습관처럼 사람들이 물러선다.

배추는 배추의 불안과 혐의로

나는 나의 불안과 혐의로

당신은 당신의 불안과 혐의로

세계는 세계의 불안과 혐오로

아주 작아져버린 당신이 때때로 그리울 수도 있겠다.

 

 

 

[당선소감]

 

제가 있는 사무실은 지하예요. 아주아주 커다란 빌딩의 지하여서인지 겨울이 긴 곳이지요. 처음 근무를 하던 5월에도 난로를 옆에 끼고 있었어요.

 

여기 추위는 칼날 같은 매서움이 아니라, 싸늘하게, 아무도 모르게 뼛속까지 채우는 기운이에요. 이 기운이 갉아낸 제 뼈마디가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리지나 않을까 싶어요. 마치 바람 속에 사라진 마꼰도처럼요. 욕심이 앞서 마르께스의 또 다른 책이 없을까 뒤적이는데 딱히 끌리지 않네요. 하나 무작정 읽고 싶었던 건 절판이고요.

 

늘 마음에 걸리던 몽테뉴 수상록을 다시 들었습니다. 여태 책꽂이에 꽂아두고 답답하기만 했는데 오늘은 웬일로 읽고 싶더라니까요. 처음과 달리 어려움도 덜하고요.

 

며칠 전 제가 별 감흥도 없이 무뎌진다고 했잖아요. 씁쓸하던 참에 이런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사변(思辨)으로 거적때기를 씌워 나의 감수성을 둔하게 만들고 있다.”

 

어디다 갖다 붙이냐 하겠지만 그냥 그 말로 제 아둔한 감수성을 위로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사변할 수 있도록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정신은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갈팡질팡하고, 이런저런 공상의 막연한 들판에서 줏대 없이 방황을 한다는데, 딱 제 꼴입니다.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의지인지 아닌지 몰라 쩔쩔맵니다. 아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나요? 그리고도 아님, 제가 당당히 맞설지 모르는 비겁자인가요?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바이. 200511. K에게. 희연드림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되는 옛날 영화처럼 자료를 찾다 발견한 메일 하나.

난 아직도 모르기만 해서

알 때까지 읽고 써보기로 한다.

 

알 때까지 써볼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신 상상인 신춘문예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졸시에 낙점을 찍어주신 이병률 시인님, 권혁웅 시인님께 감사드린다. 변덕스러운 내 시를 한결같이 읽어주신 이산하 시인님, 권미강 시인님, 조연희 시인님께 감사드린다. 그런데 K! 난 과연 알 수 있을까?

 

 

 

 

[심사평]

 

1회 상상인 신춘문예 응모자는 330여 명이었다. 그 중 9명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올랐다.

 

시의 세계는 시 쓰는 자들의 아우성으로 완성된다. 신인들의 시를 대면하는 자리에서는 그 생각이 더 치민다. 폭발력이라든가, 자유로움을 기대하지만 그것도 잠시. 예지를 바랄 수 없는 내 안경으로 뭘 고르겠다는 것인가 싶어 나를 누른다. 그렇게 동물적으로 읽게 된다. 동물적으로 받아들이되 나도 모르게 신뢰하기. 나는 이런 마음으로 원고 앞에 앉았다.

 

권혁웅 시인과 나는 본심에 오른 시들 가운데 좋았던 시들과 좋았던 응모자들을 거론했다. 그 가운데 겹쳐 호명된 두 사람의 이름은 심사 분위기를 긴장시켰다.

 

우선 나종훈은 분위기를 충족시켰다. 읽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분위기는 누구나, 아무나 만드는 것이 아닐 것인데 전체 시를 꼼꼼히 읽게 만드는 전개 방식이 호감이었다. <, 그런 편이다>은 섬세했으며 <타락한 교집합>에서는 패기가 출렁였다. 신춘문예에 어울린다 할 수 있는 시격을 만나게 해준 신인의 면모 또한 궁금해지는 시였다. 안 해도 되는 말을 감히 애정을 기울여 꺼내자면 다만 몇 편의 시에서 안정적인, 입체적이지 않은, 갇힌 듯 답답한 몇몇 줄의 위태로운 가 걸렸다는 것이다.

 

배춧잎으로 그가 몸담은 시대와 그가 고통하는 세계를 그리는 데 성공한 시, 박희연의 <배춧잎이 시들어간다>는 열거의 촘촘함이 매력이었다. <나는 아직 허공에 닿지 않았다> 역시 나뭇잎이 등장하는데 나뭇잎이 전면에 주도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닌데도 나뭇잎이 없다면 이내 시가 허물어지고 마는 아찔함이 닥쳤다. 시에서의 감동이라는 것은 그런 등짝이 있어야 제 맛인 것 아닌가.

 

일단 나종훈, 박희연으로 압축되기는 했으나 그래도 놓치는 것은 없는지 세세한 살핌을 시작했다. <검은 개> 6편을 응모한 이은희의 시는 제목들이 시선을 끌었다. 제목부터 대작의 포즈가 압도적이어서 집중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시들은 좋은 이미지들이 서로 붙지 못하고 각자 분리되거나 잘려져 있었다. 좋은 시가 하나하나의 이미지들이 뒹굴며 전진하면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그러기엔 끊겨 있음으로 그저 평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즐거웠다. 마지막 시를 응모원고에 포함시킨 건 제 살을 깎아내리는 판단이었다. 시라고 하기엔 너무도 먼 작품이었다.

 

낯설지만 신선하다고 볼 수 없는, 시가 아닌 것 같은데 분명히 시로 향하고 있는 향일성이 좋았던 <별똥별> 5편을 투고한 한경훈의 시들은 날것의 느낌이 팽팽하고 지성의 결도 딴딴한데, 상체 앞쪽에다 힘을 빡 주고 있는 것이 거슬리기도 하면서 또 이쁘기도 하였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세공 연마를 거친다면 곧 지금까지 만날 수 없었던 시인이 될 거라 기대한다.

 

결국 우리는 두 분의 당선자를 모신다. 나종훈의 <, 그런 편이다>에서 펼쳐 보인 미의식과 박희연의 <배춧잎이 시들어간다>의 삶을 향한 시선의 순도는 이번 상상인 신춘문예의 성취이자 시세계로의 참신한 진입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두 시인에게 당선 소식이 도착한다면 책상 위에 생기와 활기 또한 내려앉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 심사위원 : 이병률(시인)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작품 가운데 다음 네 분의 작품을 추천했다.

 

<No.4> 7. 말을 세공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통념과 달리 시는 인공어의 일종이다. 일상적인 말들은 소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들과 비슷해져야 한다. 반대로 시의 말은 다른 말과 제 자신을 구별하려고 하며, 바로 거기서 미적 효과가 생겨난다. 시편마다 구사하는 말놀이(이름 때문에 오해하기 쉬운데, 이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는 자리다)가 자연스럽고 싱싱하다. 다만 (응모자가 미처 몰랐을 수도 있는데) 다른 시인들의 소출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별똥별> 4. 자연과학 분야의 용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와서 썼는데, 그게 또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시의 역사가 일러주는 것은 시의 지평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유머와 우화가 이과 출신 쌍둥이처럼 구별할 수 없이 한 몸이다. 이 길로 계속 나아간다면 우리 시의 특별한 개성이 될 것이라 믿는다.

 

<, 그런 편이다> 5. 문장을 반복하고 변주하면서 만들어내는 유장한 말투가 매력적이다. 능수능란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능수能手이고 능란能爛이다. 유려하게 문장을 엮어가는 손과 화려하게 펼쳐지는 말들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 가꿔온 말들의 정원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쉽게도 장시에서는 장력張力이 조금 약해지는 것 같다.

 

<나는 아직 허공에 닿지 않았다> 6. 시편마다 세상의 모습이, 살아온 내력이, 사람들의 사연이 촘촘한데, 그 풍경과 이력과 이야기가 한 지점에 맺혀 있다. 이 지점이 시가 발화發火, 發話, 發花하는 지점이다. 모티프라고도 부르고 은유라고도 부르는 그 곡절에 정확히 스타카토가 찍혀 있다.

 

이 가운데 두 분의 작품이 다른 본심위원의 추천과 일치했다. 논의 끝에 두 분의 작품 모두 선하기로 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 권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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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선 / 정유나

 

 

피터 팬에게서 도망친 그림자는 오늘 밤도 우리의 골목에서 숨죽이고

껌뻑거리던 형광등조차 눈을 감아버린 방 안에서 일기를 쓰는 중이야

울고 싶은 일들이 차고 넘쳐서 구석으로 숨겨놓아도 자꾸만 쓰러지는 밤들

악몽을 꾸는 게 싫어서 잡은 속눈썹을 비비며 밤을 참아보려고 했지

이불 위로는 고백하지 못할 거짓말과 징크스들이 흐트러진 채,

심연 속에서 놀란 어깨를 쓰다듬어 주던 엄마의 가는 손가락들

다정하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진심 근처를 맴돌다 흩어지던 낱말들

낯선 이름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쓸 때면 손톱 밑에서 자라나던 부끄러움

얼버무리며 모른 척 고개를 돌렸던 게 서로의 마음에 빗금을 긋는 일이라면

헝클어진 집 안에서 아이처럼 쪼그려 울던 엄마를 기억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을 수 없어서 뒷걸음질 치던 어린 날의 초상

이상하지, 엄마는 분명 나보다 큰 사람이었는데, 작은 엄마의 그림자를

차곡차곡 접어 서랍 깊숙이 숨겨놓았어, 나는 성장통만 가득한 비대증을 앓던 아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나의 궤도 밖으로 이탈하거나

소중한 것을 담던 거울이 먼지에 쌓여 더 이상 빛나지 않을 때,

엄마의 청춘이 녹아 있는 나의 얽ㄹ 위로 사춘기의 끝자락이 드리웠지

그때서야 난 평생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거야

침대 위로 새겨진 엄마의 외곽과 둥그렇게 떨어지던 옆모습

붉게 변한 콧잔등으로 잠든 엄마의 들을 톡톡 두드리다가

나를 품고 있던 세계가 으스러지는 것을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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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출구의 기도 / 안광수

 

 

오늘 하루도 힘껏 살자!

아침 6시 30분에 눈을 뜹니다

 

형, 어제 빅이슈 판매 어땠어요?

홈리스 월드컵 사진을 독자들이 좋아하셨지, 너는 어땠니?

 

오래전, 아침 6시 30분

빚 독촉 전화와

형은 언제 사람 될래 잘난 동생과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겨워

30만원을 훔쳐 가출했지요 룰루랄라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습니다

 

다 내 것 같았던 세상은 내 돈 30만 원을 갉아먹고

80만원에 나를 추포도 섬 일꾼을 팔아넘겼지요

지하도 노숙 생활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또 지친 하루들

죽어버릴까

그러다가

 

안녕하십니까, 사랑과 희망의 잡지 빅이슈입니다

 

지금은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 앞에서

동냥을 하는 어르신 한 분과

파지를 팔며 생활하는 다른 누숙인 사이에서

임대주택의 꿈을 외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부모님과 동생에게 반드시 갚고 싶은

30만 원의 열 배 백 배를 외치고 있습니다

 

빅이슈 동료들과 노숙인들과

가출한 사춘기들을 위해 판매금액을 세어 보면서

간절한 기도를 외치고 있습니다

 

전철이 또 한대 도착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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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고시원 / 이재원

 

 

안전화 동여매고

막노동 현장으로 나선다

인력사무실에서

공치고 오는 길

바람에 휘날리는 검정 비닐 봉다리

어매,

행상 파하고 사과 담아 귀가하시던

어매, 

생강 보따리 이고 장에 가시던

광장 비둘기는 끼릭끼릭 장난치며

지난 밤 추위 이기려 마신 뒤 토한

밥알 먹고 있다

꾸꾸르 꾸꾸

비둘기 꽁무늬 따라가면

어매 자궁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방은 216호

슬리퍼 신고 쭈뼛쭈뼛 방으로 들어왔다

옆방 217호에서 웃음소리 난다

혼자 왜 웃을까

내일은 어디로 팔려갈까

혹시 또 데마찌*

 

희망고시원

네 개의 벽 틈새

희망은 어디 있을까

 

* 일감을 공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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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없는 방 / 서명진

 

 

어린 시절 나는 어두운 우리집이 싫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은 항상 어두웠다

 작은 창마저 막혀 있어 한낮에도 햇빛조차 들지 않던 검은 방

그 작고 어두운 방에서 일곱 식구가 오글오글 모여 살았다

 

아버지는 원래 없었다

 

내 나이 열일곱 살에 시작한 첫 직장생활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서 빵 만들 준비를 하고 공장장인 동네 형이 나오면 같이 만들어서 아침 8시엔  빵을 매장에 진열해야만 했다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후에 빵과 케이크를 만들고 저녁이 되면 내일 만들 빵에 대한 준비를 했다

미리 반죽해서 빨간 통에 담가 놓으면 아침에 숙성이 되어 빵을 만들 수가 있다

그제야 나는 청소하고 쉴 수가 있었다

 

내 잠자리는 제과점 내 전등이 하나뿐인 어두운 방

여기도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자려고 누우면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몇 번씩 깨곤 했다

제과점엔 정말 쥐가 많았다

어른 팔뚝만한 쥐도 여러 마리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그런 쥐들이 수시로 내 방을 드나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불을 켜고 잤다

불을 끄고 자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

그때야 쥐와 시끄러운 소리에 익숙해질 수가 있었다

 

천구백팔십오 년 구의동 독일제과점

 

아버지는 원래 없었다

농사지을 땅 한 평이 없어 엄마는 허드렛일 하러 다니시고 누나와 형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갔다

 

한 달 일하고 받은 월급 사 만원

은행에서 첫 통장을 만든 후 시장에서 엄마와 동생들의 선물을 샀다

그때만큼은 내가 굉장한 부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늘도 빵을 만든다

누이를 닮은 보름달 빵

형을 닮은 곰보 빵

엄마를 닮은 단팥 빵

빨간 반죽 통에서 숙성되는 내 가족의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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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호사비오리* / 김영욱

 

 

길가 오리(五里)마다 서 있는 오리나무는

고향집 오라비 같은 조선 오리나무

 

비 오는 날이면 짝 잃은 나막신 하나

삼천리를 마다 않고 떠내려 와

검둥오리처럼 웅덩이에 둥둥 떠다니는데,

 

시커먼 숲 그늘이 산봉오리 넘보면

물갈퀴를 감추고

오리 떼로 날아오르고

 

멍석그늘 위로 흐르는 구름

풀무불로 뒤집느라 얼굴 익어버린 홀아비는

댕기머리 늘어뜨린 어린 각시

못내 기다리는지,

 

노을 벌겋게 달아오르면

눈이 매워 함지박에 눈물범벅 비비고

가마에서 푹푹 삶아지는 토종 오리마저

진흙 속에 부리를 박고 뿌리를 내리려는데,

 

사방오리 아니요 물오리도 아니요

털 없는 천둥벌거숭이

조선토박이

 

오 리마다 이정표로 서 있는 오리나무는

우수리 강가에서 시베리아 벌판에서

날아들던 호사비오리

올려다보고

 

바람 부는 날마다

날갯짓을 시늉하던 삼십년,

신원미상 노숙자

미수(米壽)의 홀아비는

죽도록 고향말투 버리질 않고

 

* 오리과의 겨울 철새로 우리나라에서 사라진지 62년 만인 1988년에 강원도 남대천에서 한 쌍이 시체로 발견된 걸 마지막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으나, 최근 철원과 춘천 등지에서 이따금 작은 무리가 발견되고 있다.

 

 

 

 

제1회 한탄강 문학상 대상에 김영욱 시인 차지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연천군은 지난 6일 연천읍 고문리에 위치한 종자와시인박물관 복합커뮤니티관에서 김광철 군수를 비롯해 신광순 관장, 이돈희 시인 등 운영위원 및 수상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한

ww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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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초라는 사건 / 정월향

 

 

오로라로 부릅니다. 양파 속에 앉아 있는 당신과 당신 속에 앉아 있는 양파의 조합. 껍질 사이로 터지는 흰빛의 회오리, 이글루라 부릅니다. 천년 전에 내린 비가 기다리고 있는 집. 오래된 사건으로 다시 태어나는 집. 얼음과 얼음으로 마주 앉았습니다. 거대하고 동그란 악수. 반갑습니다! 평화로운 저녁을 만들었습니다. 얼음이 얼음일 때의 공포와 얼음이 얼음을 버릴 때의 쓸쓸함을 쌓아올렸습니다. 이누이트라는 말은 선뜩한 날고기. 길고 느린 석양의 조합. 결론을 알면서도 오늘의 손가락을 구부리는 이유. 비명을 지르면서 냄비를 놓지 못하던 엄마와 손바닥을 빨갛게 태우던 아빠의 시간. 양파의 흰 피는 화끈거리고 양파 속에서 찬바람 부는데 손 안의 오로라가 자꾸 미끄러집니다. 흰빛의 현란함이 위대, 라거나 장엄으로 불릴 때 한 방울의 내가 흘러내리던 사건, 걸쭉하게 웅크린 이글루 위로 위대와 장엄이 쏟아집니다. 

 

 

 

 

'진주가을문예' 당선작 발표... 27년 운영, 올해로 종료

시 정월향, 소설 기명진 당선... 1995년부터 운영, 남성문화재단 해산 따라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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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나무는 번진다 / 이진환

 

 

빈 가지엔 허공뿐일까

농밀한 채색을 하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던 산천이
붉은 기운에 머문 잠시

찬 기운이 거두어가는 땀 밴 자리에
보이지 않는 잎새를 준비하는 나뭇가지를 보고서야 혹독한 겸손을 본다

눈발 서럽게 덮어오는 빈 몸에도
우듬지의 묵묵함이 노을과 함께 내려앉는 새들의 둥지가 되고
밑동의 후덕함이 어스름과 함께 기어드는 것들의 거처가 된다

나서지 못하는 걸음을 두고
시름 깊은 날엔 강을 대신 흘려보내고
좋은 날은 구경삼아 구름을 대신으로 산하를 굽어보며
무심하여 헐벗을까 빈자리마다 다독이는
여린 뿌리들이 키 높이에도 어깨를 하고 내딛는 소란이 치열하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바람몰이가 성장의 통점이 되어
빈 가지를 말아쥔 뿌리의 힘이
한 점씩 옮아오는 냉기를 떼어내며 결핍에 겨운 나이테를 돌아 나올 때
침 마른 호흡은 수액에 감춘 새싹의 맥박이다

방정식의 삶이 아닌,
생명의 근원인 바닥의 함수로 자연에 순응하는
나무는 우연이 아닌 필연의 협연으로 조화를 이루는 산천을 갖는다

나무는 번진다

나무를 감싸고 계곡을 건너는 바람에 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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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함소입지 / 정두영

 

 

젖 불기 기다리던 포대기 속 울음이

기다 걷다 발서슴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젖은 달 마르도록 손금 다 닳리도록

다랑논 어느새도

장돌림 어지간도

어쩌다 사기막도

어차피 갖바치도

다시금 애옥살림 누게막에 돌아오지 않았다

거시기고 아무개라 사초마저 뭇풀인데

죽기야 하겠나

주기밖에 더 하겠나

한목숨 시위에 걸고 왜바람 가로질러

다시 보는

다시 봄에

김치 치즈 스마일

웃음보 터트리는 걸음나비 포인트로

돌아온

봄의 씨앗 무명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수상] 뼈들이 전하는 말 / 박복영

 

 

허허벌판 꽃 무덤아래

알 수 없는 뼈들이 엉켜 있다

돌멩이를 파헤쳐 열수록

지층이 물고 있는 뼈 조각들

이름 없는 목숨들이 층층으로 덮여 있었다

누군가는 동물 뼈라 했고

어떤 이는 나뭇가지라고도 했다

손가락뼈들은 주먹을 쥔 듯 말려 있었고

머리뼈는 앞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붓으로 꺾인 무릎 뼈에 쇠구슬이 박혀 있었다

어느 연대의 시간을 관통했을

쇠구슬은 녹슬어 삵아 붉었다

빗소리와 눈보라를 삼키며 연명했을 뼈들

침묵으로 견뎌온

슬픔의 역사를 물고 있다

열면 열수록 뼈들의 전언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개미떼가 의병 같았다

한 방향으로 돌진했을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너진 뼈 조각이 물고 있는 함성이

단번에 흘러나오듯

드러나는 무릎 뼈에 박혔을 총성

부를 이름조차 사라진 자리에

그날들이 발굴되는 동안

저쪽의 꽃 무덤이 흔들리며 또 붉어지고

겹겹이 묻힌 그 날의 항전은

뼈 조각으로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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