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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속에는 누군가가 사는데 / 소은옥

 

 

언제나

나는

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에서

당신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만큼

투명한 기억들로 창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그것이 격자로 되었는지 석쇠로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햇볕이 가득 차오를 때마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황홀한 느낌

어떤 얼굴은 노랗고

어떤 얼굴은 구리 빛에 가깝기도 했지만

당신이 나를 굽어보는 그 만큼의 거리에서

하나의 세상이 무시로 열리거나 흩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어김없이 무심한 듯 들여다보기도 하고

어쩌면

보고 싶다는 것이 있다는 것

모스부호를 건지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일일지도 몰라

창은 묵직하게 침묵하지만 나는 말해요

어쩌면 운이 좋았다는 말과 동의한 그런 말들이

오늘도 반짝이는 빛이 창으로 들어와요

투명한 살갗 속 깊은 곳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실핏줄과

심장이 두근거리고

하얀 조각달 같은 얼굴도 마주 다가서네요

꼭 그 만큼의 거리에서

당신을 그려보는 자유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남겨진 입김의 흔적도

틀 안으로 박혀오는 빛의 프리즘도

아득하게 피어오르는 완충지대도

모두 파장 속으로 들어가요

건조한 햇볕과 거친 바람 그리고 오래된 기억들까지도

......

당신을 향해서 부풀었던 창이 꼭꼭 문을 닫네요

 

 

 

 

 

[당선소감] 더욱 정진해 훌륭한 시인으로 보답을

 

글을 쓰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화답을 하지 않더라도 시를 쓰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거나, 내 곁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라본 시선으로 무아(無我)의 얘기들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썼다가 다시 지우고 버려진 기억들을 차곡차곡 담아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어들이 저를 얼마나 뭉클하게 했는지요.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라 당황했었습니다. 비로소 글 속에서만 존재했던 무아(無我)의 세상이 문을 열고 저를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릴 분이 아주 많은데요. 우리 문학회 지도교수님, 하재룡회장님, 문진숙, 정인숙, 이정애, 오숙희. 열거하지 못한 동료 문우님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기회를 주신 전라매일과, 심사해 주시고 채택해 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훌륭한 시인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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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수미쌍관의 안정 속에 잔잔한 파장

 

속도와 경쟁의 자본논리가 압도하는 디지털문명 시대에 변방인들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안심리가 이번 응모작에서 산견되었다. 그런 속에서도 끝내 인간의 위의와 존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세계가 주목을 끌었다. 그동안 신춘문예에서 보아왔던 세상에 대한 비판적 리얼리즘 성향의 세계에서 존재와 실존에 대한 성찰과 탐구, 곧 인문학적 접근의 자세가 내면화 된 작품들이 최종심에 올랐다. 고경자의 기시감은 하나에서 둘이 되고 셋이 되는 우주의 생성원리를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어느 영혼의 갈급함에 비유하는 활달한 문장의 흐름이좋았다. 그러나 결구에 가서 시적 여운과 울림을 남기는 메타포적 공소성을 끝내 충족하지 못해 아쉬웠다.

 

최민지의 절벽 끝에서 우리는 깊습니다도 보다 차분하고 투명하게 가라앉은 정조와 울림이 선자의 마음에와 닿았다. 울지 않고도 울고,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언외언(言外言)의 간결어법이 선자의 눈길을 끌었으나, 결구가 허술하게 처리되어 안타까웠다. 이런 속에서도 소은옥 나의 창속에는 누가 사는데, 당신에 대한 기억의 세계를 거시(입자)와 미시(파장)의 불확정적사유의 세계로 형상화해가는 솜씨가 남달랐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그 만큼의 거리에서때때로 나타났다 흩어지고’,‘부풀어 오르는잔잔한 그리움이 창()을 열고 닫는 수미쌍관의 안정 구조 속에 뒤섞여 잔잔한 파장의 울림을 주고 있어 당선에 올렸다.

 

심사위원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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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션현혹이론 / 김해리

 

 

어쩌다가 얼룩을 들여놨군요

온순하게 풀을 뜯던 계절을 지나면

어슬렁거리는 야생의 냄새를 맡게 되죠

 

치료는 단순합니다

얼룩이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되짚어 보세요

 

눈을 감고 동물원에서 보았던 얼룩무늬를 불러보세요

처음 본 무늬는 어댔는지 언제 가슴이 뛰었는지

흰색과 검정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서로 먼저라고 우기는 모습이 회색으로 보일 대는

그냥 웃어주면 됩니다

 

우울한 날에는 얼룩무늬를 걸치고 외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줄무늬는 날시에 민감하니까

굵거나 선명하게 혹은 가늘고 희미하게 바귀는

마치 시각을 교란하기 위한 모션현혹이론처럼

온기란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달라지죠

 

검은색은 흰색보다 온도가 높다고 합니다

죽으면 더 깊어지는 사람처럼 말이죠

 

선생님, 그런데 이 말은 언제 멈추죠

말에게도 먹이와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제야 정신과 의사는 말을 멈추었다

 

검은 바지에 하야 ㄴ가운을 걸친 얼룩말

거침없이 달려와 표류 중인 보호색

갈기를 세운 열기가 주춤거리다가 숨을 고른다

 

 

 

[당선소감]

터널을 건너는 중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이 미끄러졌다. 함께 가던 그가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번엔 타박타박 말없이 앞서가던 그가 허방에 빠졌다. 손을 내밀었지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직감했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헛손질뿐이었다. 지쳐 눕고 싶을 때 병상에 있던 그가 멀거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일어서야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허방 깊숙이 들어갔다. 그제야 그의 고른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절망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 옆에서 나를 꼭 잡아주던 시는 희망이고 구원이었다. 시가 있어 숨을 쉴 수 있었고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손짓하며 다가오는 빛 한줄기, 천천히 일어선다.

제 마음을 읽어주시고 부족한 작품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넘어져 훌쩍거릴 때마다 마음 잡아주신 이경림 교수님 감사합니다. 가르침대로 시의 바른길로 걷겠습니다. 자상한 마음으로 이끌어주신 이종섶 선생님 감사합니다. 흐트러지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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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올해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은 총 174명의 750편이었다. 신춘문예라는 성격을 고려해 작품의 완성도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내밀한 인식과 도전적 문체에 관심을 갖기로 하고 심사에 임했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 수준은 높았으나 개성적인 목소리가 없어 선뜻 만족스러운 작품 찾기가 쉽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거론된 작품은 장윤덕의 「그늘의 역사」, 김종태의 「소행성 STGR」, 방미영의「고드름」, 김해리의「모션현혹이론」등 4편이었다.

먼저 장윤덕의 「그늘의 역사」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있는 ‘그늘의 역사’를 고즈넉한 산문체에 담담하게 엮어내는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시대적 풍경들을 묘사하면서 전제된 사유의 진술과 서사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김종태의 「소행성 STGR」은 시적 발상에 있어 독특함을 보여줬지만 후반부에서 평이한 낯익은 문법들로 인해 문장의 탄성이 떨어져 아쉬움이 컸다. 방미영의「고드름」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밀도 있는 접근으로 작품의 안정감과 완성도가 돋보였으나 소재면에서 새롭지 않고 문학적 상투성을 극복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김해리의「모션현혹이론」은 얼핏 시공을 뛰어넘는 사유가 난조를 보이는 듯하나 시적 압축과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가는 주제의식이 돋보였다. 곧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끝내 떨칠 수 없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가 사유의 세계로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응모작들도 선명한 이미지로 고른 수준을 보여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고 당선작으로 선했다.

- 심사위원 김동수, 김기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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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를 접다 / 송현숙

 

 

빈 박스를 접다 보면

오래된 주소가 비어 있거나 찢어져 있다

슬쩍 돌아가거나 뒤돌아섰던 지번들

한 개의 각이 접힐 때면

몇 해의 계절이 네 모퉁이를 거쳐 돌아온다

 

박스를 접다 보면 면과 면이 만나고

절벽이 생기고 작별하는 순간이 온다

 

박스를 접다 보면 나는 세상의 문을 하나씩 닫고 있다

검은 벽을 타고 가는 떠난 사람의 뒷모습처럼

우리는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박스를 풀다 보면

지나가는 하루를 버스 손잡이에 보름달을 걸어두고

입석으로 지나가는 달의 노선을 돌면

동쪽과 서쪽이 포개지는

주소 없는 저녁까지 도망 와있다

 

한 사람이 박스를 열고 나간 뒤

오래된 박스만 남아 있다

 

네 개의 각도가 이웃처럼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다

 

 

[당선소감]

시를 쓰다 힘들면, 배낭 하나 메고 혼자서 훌쩍 떠나곤 합니다. 늦은 시간 공항도착해서 헤매다 노숙도 하고 여행지를 무작정 돌아다녔습니다.

지금도 그 시간들이 오래도록 내면에 그림같이 붙여져 있습니다. 그러한 시간들이 내 시의 정서에 밑그림이 되었습니다.

중학교시절 시인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을 꾸는 듯합니다. 신문사에서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관악산 둘레 길을 걸었습니다.

나무 하나 하나에 의미를 생각하며 한참이나 걸었습니다. 저 소나무 한 그루처럼 나도 어떤 길목에서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혼자 서 있었던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는 나의 고독을 덜어주는 가족이자 동반자였으며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 무형의 존재였습니다.

때로는 힘들어서 놓아버리고 싶고 멀리 도망 왔지만 저는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시는 절망과 즐거움을 함께 하였습니다. 시와 좋은 인연을 끝까지 붙들고 가려고 합니다.

귀한 지면을 허락하신 전라매일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미진한 시를 선택하여 주신 심사위원님께 마음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는 모두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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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전라매일 신춘문예에 1,500여 편의 시가 전국적으로 고르게 투고됐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최주숙의 「벚나무는 천 개의 눈을 뜨네」, 권용례의 「옷장의 계절」, 문진숙의 「불꽃놀이」, 신귀자의 「팔자야 놀자」와 송현숙의 「박스를 접다」였다.

선자들은 시인이 구사하고 있는 언어의 참신성, 독창성, 작품성에 관심을 갖고 가능성을 중심으로 심사에 임했다.

최주숙의 「벚나무는 천 개의 눈을 뜨네」는 초월적 우주관, 권용례의 「옷장의 계절」은 ‘겨울의 옷장’과 ‘봄날의 새싹’에 대한 동일시, 그런가 하면 문진숙의 「불꽃놀이」는 신비롭고 역동적인 표현들로 심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내용의 공소성을 극복하지 못한 점이 지적되었다.

끝까지 고심했던 작품은 신귀자와 송현숙의 작품이었다. 신귀자의 「팔자야 놀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가치와 눈뜸의 치열성이 이를 끝내 뒷받침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에 비해 송현숙의 「박스를 접다」는 패배와 절망 속에서도 연민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갈구하는 휴머니즘적 시선이 그 배면에 깔려 있음을 알게 한다.

물론 상상력 부족과 상투적인 표현으로 시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은 아쉬움이 크지만, 그의 다른 응모작들도 고른 수준을 보여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고 당선작으로 올렸다.

- 심사위원 김동수 시인, 김기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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