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상] 돌산에서 / 신재화

[우수상] 엄마의 부레 / 황보림

[가작] 애칭 / 김현철

 

 

 

떠리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728x90

 

 

[대상] 거문도 / 안재윤

 

 

 

[우수상] 여자만의 혈족 / 서상규

 

 

 

[가작] 바다에서 듣다 / 박찬희 

 

 

 

728x90

 

 

[대상] 시선집중 / 황은순

 

 

등대불빛이 바람에 구르다 물의 나이테에 엎질러진 순간 내 곁엔 당신뿐이야, 갯비린내 애돌던 동백꽃, 시선 집중으로 붉은 입술 내민다 철없이 나근대며 꽃잎 흔드는 뺨이 감미롭다 물너울에 훅 끼쳐온 등대의 해조음, 축복된 봄날의 술래라서 둘만의 유희가 저리 꽁냥꽁냥 하는 걸까 우우- 별들도 손잡는 푸른 밤이 3월을 뛰어넘는 섬 기슭,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짓궃게 휘파람 불어대는 바람의 오동도 마당을 기웃기웃, 후비는 파도에 등대허리 쑤셔도 진득한 자세로 어둠을 밝히는 것이 바로 너 때문이란 걸 아니? 멀리 두어도 언제나 꽃잠처럼 달려갈, 여보라는 듯 꽃잎을 부르는 여보!

 

* 꽃잠 : 신혼 첫날 밤의 잠

 

 

 

 

 

[우수상] 칼춤 / 길덕호

 

 

칼은 이곳 바다에도 있었다.

바다는 시퍼런 불씨를 하나 집어 들고

칼을 담글 때마다 하얀 거품을 울컥 토해낸다.

새털구름이 바다에 눈보라를 일으킨다.

 

둥둥 북소리가 울린다.

채낚기에서는 칼춤을 출 준비가 한창이다.

하늘은 바다와 쌍둥이의 얼굴을 하고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고개를 기웃

눈빛을 반짝이며 햇살에 눈살을 세운다.

선장은 하늘같은 바다 위에서 너른 마당을 차지하고

얼쑤 한바탕 장단으로 춤꾼들의 손길을 불러 모은다.

흥에 겨워 손재주를 넘는다.

 

한길 품속에도 모르는 것이 바다의 옷깃이다.

푸른 저고리 하이얀 치마를 갈아입은 바다

푸르게 부풀어 오른 하늘을 가져다가 물풍을 내려치고

벚꽃 치마로 해풍을 불러다가 채낚기를 채근한다.

바다의 품안에는 번뜩이는 칼들이 있고

칼은 춤꾼들의 목숨

목숨들 도열해서 태양을 사모하는 노래를 벼린다.

칼날은 속 물살 되어 일렁이고 눈부신 춤을 깊숙이 추고 있을 터.

선장이 시퍼런 속살에 하이얀 막걸리로 고수레를 하면

막걸리의 향내가 푸른 저고리를 타고 무지개처럼 부서지고

춤꾼들은 얼음 한 조각씩 입에 물고 새파란 미소를 흘린다.

초승달의 비릿한 미소가 바다를 가른다.

 

상모의 긴 낚싯줄을 돌리며 춤꾼들은

하나둘 별빛을 들었다.

칼들은 별무리를 따라 이리저리 군무를 추고

바다는 새하얀 치마 마구 흔들며

푸른 저고리에서 은빛 칼들을 시퍼렇게 꺼내 들었다.

별빛에 번쩍이는 칼들의 춤

바다의 옷고름도 하늘에 가 닿았다.

춤꾼들의 거친 이마에는 칼자국이 깊이 배었다.

춤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숨결은 칼이 되어 폐를 찌르고

두 손은 칼들을 쥐고 허공을 베고 있었다.

온몸이 환한 은비늘 칼들의 춤이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밤이었다.

 

둥-둥뱃고동 같은 북소리가 울린다.

채낚기에서는 칼들을 겸손하게 내려놓고

파아란 저고리를 가만히 바다 위에 올려놓았다.

잔잔해진 바다는 길 떠나는 관객의 모습으로

선미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태양은 불 꺼진 무대를 환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뜨거운 땀방울로

깊게 베어진 이마를 꿰매던 춤꾼들은

만선의 어진 마음으로 저마다의

칼을 하늘보다 더 높이

치켜들었다.

 

 

 

 

[가작] 고진멸치 / 이성배

 

 

이리 잠 와보이다 뽀짝 댕겨안즈이다

이것 쬐깜 묵어보이다

지름이 솔차니 올라 노리끼리헌 거이 영 맛내요

으치요 짭짜름해도 겁나게 맛내지다

많이 잽히질 않은께

그물에서 살았을 때 바로 삶아

입 벌린 채 등이 오그라진 거이 진짜 멸치당께

어창에서 죽은 걸 삶으믄

빤듯빤듯허니 보기는 좋을랑가 몰라도

벨 맛태기는 없당께

여수 고진멸치하믄 최고로 알아주지다

요새도 장마당에 가믄 고진멸치라 속이서 포는디

영 맛이 다르당께

성 밖에서 나서 여숫머리로 시집 왔은께

평생 요 바다만 보고 살았지다

뭐라 해싸도 멸따구만한 게 없어라

볶아묵고 꼬치장에 찍어묵고

국수 삶거나 된장국 끼릴 때 육수로 제일이지다

심심헐 때 주전부리 삼아 묵으믄 더 좋코

큰 괴기 항개도 안 부럽당께

지 잘났다꼬 고개 빳빳이 쳐들고 거들먹거리는 놈

알고 보믄 다 허깨빈껜

꼬리 띠고 지느러미 짤라내고

억쎈 뻘다구 발라노믄 반도 없지다

 

대가리는 왜 띠고 똥은 또 왜 버리요

대가리하고 똥까지 묵어야 참맛을 알지

짭고 비리고 쓴 것 항꾼에 씹어야

나중에 달달허당께

사는 것도 똑 같애

쓴 맛 짠 맛 다 보고 마지막에 단맛이 나지다

작고 못났다고 세상 원망할 거 항개도 없당께

멸따구가 요 바다를 맛내게 허듯이

작고 못난 것들이 세상맛을 내게 항께

멸따구 맹키로 항꾼에 모여 부대끼며 사는 작고 못난 놈들이

서로를 따땃허게 보듬아주고

세상을 포근하게 안 헙디요

 

몇 년째 멸따구 보기 힘들더만 그나마 올해는 사정이 쬐깜 낫소

바다는 삼 년이란께

이 년 내리 허탕 쳐도 한 해만 잘 건지믄 살 수 있지다

물방에도 계속 그물을 던지믄 한 번은 만선을 허지라

맨날 만선 허믄 안 헐 놈 어디껏소

그물도 안 놔보고 괴기 없다는 놈 도둑놈 심보지

세상 바다도 마찬가지 아니겄소

고기 드는 디다가 부지런히 그물질 해야지다

 

샛바람이 터져부렀네

낚시 걷고 언릉 일어나이다

할아버지는 저 바람을 도깨비 씹허는 바람이라 하더만

밤 새 자도 않고 지랄용천 헌다고

긍께 금방 그칠 바람이 아니당께

사는 거이 바람 안고 물을 거슬러 가는 거랑께

심들다고 노 안 저스믄 밀릴 수밖에

포구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그러다 좌초되거나 침몰허는 거지다

 

에이다

이거 가꼬 가서 묵소

꼭꼭 씹어 묵으믄 바다의 참맛을 알꺼요

고진멸치 짠맛이 여수에 참맛이지다

 

 

 

 

 

728x90

[대상] 거문도 / 김미나

 

 

 

 

[우수상] 여자도 홍련 / 윤경예

 

꼬막 캐는 여자 몸에서 자란다는 홍련이 있다

홍련의 꽃대 위에서 달의 언덕이 자랐다

 

빛보다 어둠에 먼저 가닿은 별자리로 왔다는

꼬막들, 아랫도리 다 젖는 것도 모른 채

달을 숨기고 꽃을 들키려고

여자도로 들어왔다고 한다

 

포말로 흩뿌려진 남편은 잊은 지 오래됐다고

그녀를 벗은 뻘배가 파도 쪽으로 머리를 둘 때

갯뻘 해안선은 눈부시게 깊어졌다

 

깊어진다는 것은 주름이 많다는 것이 아니다

꼬막 골처럼 눈을 슬쩍 감아주는 것이다

오늘도 물길을 놔버린 수평선처럼

서로 넘어뜨리며 한 몸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꼬막 캐고 돌아온 자리, 개흙 뒤집어써도

밀물은 갯뻘 냄새마저 말갛게 씻어준다

홍련 오는 동안, 추위가 발등을 뒤덮어도

뒤꿈치는 가벼워지고 발톱은 갈라지지 않았

 

홍련이 피었다 진다 저 노을이

뻘에 빛을 처바르는 일

해안선을 친친 감고 나오는 큰 꼬막이 있다

 

 

 

 

[가작] 아버지의 후리소리 / 김영욱

 

 

728x90

[대상] 방파제에서 / 고은희

 

 

 

 

 

[우수상] 어머니의 바다 / 강성백

 

 

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오면

어머니는 으레 바다로 나가셨다

무너져라 눈이 오는 날에도

고개를 숙이고 갯벌을 뒤져

바지락을 캐냈다

거기가 무덤인 줄 모르고

풍랑이 데려간 아버지 발치에서

바지락을 캐냈다

 

 

오늘도

뱉어낸 바다를 당겨놓고

뼈 묻을 곳을 찾는 늙은 짐승처럼

오래오래 갯벌을 뒤지는 어머니

 

 

어머니는 사십 년 넘게

젊어 돌아가신 아버지 제상祭床 위에

마알간 조갯국을 올리셨다

그 위에 간절한 다음 生을 올려놓고

그 고요 속을 들어오신 아버지께

오래도록 그리움을 건네었다

 

 

무엇이 저토록 죽은 자와 산 자를 하나로

이어 끝없이 데려가는 걸까

이미 떠나고 없는 공음空音 하나가

커다란 공명통이 되어

생과 사의 이격離隔을 울리는 밤

짙은 향내 속으로

촛불이 휜다

 

 

 

 

 

[가작] 선착장 불빛은 무릎이다 / 박복영

 

 

 

728x90

 

[대상] 고래의 혈통 / 태동철


  고래좌에서 족보로 대물림 된 혈통이다 가훈을 거역하며 먼 거리를

맹목으로 연 항해, 성년이 된 지문으로 지느러미를 펼치고 윤슬 이는

부럭을 타넘으며 청색시대의 비린내를 파도에 풀어나간다 바다에선

용골을 엮은 등뼈를 낮춰 겸손한 가슴으로 물살을 품고 심장의 마력

에서 혈기로 피를 달궈 생을 탕진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망각한다 방

탕한 방황으로 점점 거칠어지는 파랑에 좌표를 잃는다 난바다에서

표류하는 세월이다 해류가 소용돌이치는 암초에 부딪쳐 이물이 파손

되고 고물로 유서를 쓰듯 물이랑을 뻗친다 심연 아래로 침몰하는 순

간 고래가 예인선으로 떠오른다 태풍에도 끊어지지 않는 수평선으로

힘줄을 풀어 구명줄을 단단히 묶는다 고래 힘줄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파도 끝에서 아득히 추락하는 아뜩한 공포에 속죄하는 마음을 감싸듯

품는다 사랑의 징표로 등에서 분수공을 활짝 열어 비산하는 물보라로

오색무지개를 띄워 올린다 온몸에 벅찬 용서의 울림을 퍼뜨린다 생명

선을 끌어당기는 거룩한 핏줄에 이끌려 닻별이 뜬 항구에 닿는다 아버
지가 심해 속 무덤으로 돌아간 자리에 오동도가 언약의 등대불빛을 밝

혀 심장 동맥에서 동백을 피운다







[우수상] 하화도 소묘 / 이연자


누가 벗어던져두고 갔나, 저 꽃신


날이 어두워지면서 동백은 불길을 피워낸다

꽃신에 번진 물기를 말리기 위한 까닭이다


얼마나 깊이 들어왔을까, 꽃나무들이

살길 놓치지 않으려고 물소리를 펼치고 접는다


뒤꿈치 긁다가 나도 꽃나무에 얽혀본다

꽃나무는 고향집 마당까지 나를 끌고 간다

금빛 초록이자 어미 냄새 잊어버린 지

너무 오래되었지만, 내 잠이 자꾸 시끄러원진다


꽃가루처럼 기침을 토해내는 어미, 나를 낳고

바다를 등에 지고 다니는 소라게가 되었다는데

나는 낙타도 아닌데 꿈길을 잘도 건너간다

아니 어미의 무덤을 끌어 올리는 밧줄이다


절벽 물무늬 모여 어미 눈썹 그리는 것이

아름다운 태몽이었다면

나는 몸부림치는 꽃신 가까이 어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물총새 날아갔다가 되돌아오는 저녁인데

꽃신은 별과 달이 엉키기 전에 나를 알은 체 한다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바람처럼

봄눈 이고 가는 봄빛처럼

어미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꽃신에 누워 있었다






 

 

728x90

 

[대상] 숨이 붉어지는 방 / 황종권

 

 

붉은 여우가 왔다 일출이 절벽을 딛고 오기 전에 왔다 목덜미 가진 것들을 파헤치고 왔는지 주둥이가 붉었다

 

마을에서는 볏이 붉은 것들 몇 마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지붕에 발자국이 찍힌 것으로 보아 수컷은 아니고 암컷이라고 했다 붉음과 어둠의 경계에 산다는 동백이라는 소문만 들렸다

 

여우는 향일암 염주를 물고 천년을 내딛고자 했다 그러나 물고기들 풍경 속에서 헤엄칠 때마다 짓뭉그러진 입술과 타다만 향기가 절벽을 키우고 있었다

 

 

세상의 그 어떤 해일에도 더렵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절벽의 힘으로 몸에 붉은 기운을 밀어 넣는 것들이 있다

 

 

제 배설물을 꽃잎으로 바꿔놓는 붉은 여우, 그늘에 들 듯 제 영혼을 동백으로 씻고 있다 저건 그냥 막막한 나무일뿐인데, 봄밤이 들어가는 문이다 들어가면 숨이 붉어지는 방이다.

 

 

 

 

 

 

[우수상] 여수의 사랑 / 이종섭

 

 

 

[가작] 금오도 / 박덕은

 

수천 년 철썩철썩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묵언 수행한 섬은

종교다

 

최초의 말씀이

뻘밭의 간기 머금은 등고선 사이로

촘촘히 박혀 있어

믿는 자들은 누구나

엄숙히 허리 굽혀

우비적우비적 캐야 한다

 

점자책 같은 자갈밭길 더듬거리며

교리를 이해하려는 추종자들이

뭍의 소란함 뒤로하고 이곳으로 모여든다

포교는

늘 일탈을 꿈꾸는 표정들로 퍼져 나간다

 

꼬박꼬박 하루에 두 번

살그랑 살그랑 붉어지는 물마루도

여기서는 특별한 경전이 된다

 

제멋대로 자라난 울음도

가벼이 잦아들 수 있다는 듯

너럭바위는

뜨겁고 차가운 발바닥을 위로 향하고

가부좌로 앉아 있다

 

갈바람통 전망대 앞바다에서

상괭이*들은 짐짓 설파하듯

살아서도 죽어서도 똑같다는 미소를 지으며

치솟는다

 

 

 

728x90

 

 

 

[대상] 여수항 멸치잡이배 / 이병일


 

어질어질한 물 그늘이 스며오듯이
꽃나무들같이 번져오는 것들이 있다네

 

흰빛으로 밝게 저무는 것들이
멀리서 뒤척이며 떠밀린 멀미를 부른다지

 

그 희끗한 것들이
그 희끗한 것들이

 

바다의 색채마저 바꿔놓을 때

 

멸치잡이배는 푸른 고래의 입이 되어

 

아가리 가득 반짝이는 빛을 담고 있다네

 

무늬가 희고 푸르고 희고
그러나 고래의 눈엔 빛처럼 꿈틀거리는
섬세한 잔가시나무를 가진 것들을

 

바다로부터 잡아 올리고 있다네

 

해질녘부터 그날 새벽까지

 

꺼끌꺼끌 잠을 털고

 

더러운 손으로 그물을 길어 올리는, 그러나 고래의 탈을 쓴

 

여수항이 멸치잡이배를 오밀조밀 풀어놓고 있다네

 

 

 

 


[우수상] 장군의 섬 / 김형미
- 장군도*

                                             

붉은 꽃이 지자
바람은 몸을 비틀었다

 

뒤를 버려야 앞으로갈 수 있는 목숨의 길

 

두려움의 꽃대는 강력하여
베어내는 칼끝이 그믐처럼 휘었다

 

구걸하는 것은 목숨이 아니라서
쓰라릴수록 눈물은 단단해졌으므로
설움을 뭉쳐 목책을 쌓았다

 

꽃피는 바다를 지키는 일이라면
물속인들 꿈속인들 쌓지 못할 성이 있으랴

 

사시四時와 더불어 바다의 초입에서
풍찬노숙을 견디는 장군의 섬

 

저 만치 홀로 피안에 들고
벌어진 기억사이로 해마다 봄은 꽃을 불러
슬픔의 간격을 메우고 있다
 

*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섬

 

 

 

 

 

 


[가작] 다시 햇살이 된다 / 함영옥
- 향일암에서

                                     

어제 저녁이었던 아침은
향일암에선 다시 햇귀로 뜬다
계단이 지어 놓은 돌틈을 밟으며
햇살은 맨 먼저 법당 앞을 기웃거린다

 

간절함은 펄펄 뛰는 바다를 재운다
가슴이 잦아든다
그리움이 찾아온다는 기별이다
여기저기서 파도가 뒤척일 때면
나는 향일암으로 돛을 올린다
수평선조차 아득한 소용돌이 속에
배 한 척 띄우면
모난 세상은 누그러지고
채워지지 않는 구석들
만선이 된다

 

파도를 일으키는 건 언제나 바위였다
그러나 수천 년도 넘게 부대끼며 살아내서
바다를 다독이는 것도 바위였다
밀물로 몰아쳐 어쩔 줄 모르던 하루도
그냥 못이기는 척 썰물을 따라 나선다
바다 물결이 젊은 숨결로 들어 올리던 아침

 

이제 어둠은 졸음 겨워도 좋다
두 다리로 닻을 내려도 좋다

 

 

 

 

 

 

 

 

 

 

[심사평] 다도해 건너는 동백

 

해양문학이라고… 익히 들어왔지만 선자(選者)로선 이렇듯 실무적(?)으로 ‘해양’을 접해보긴 처음이다. 예심을 거쳐 선자에게 넘어온 시 작품은 모두 60여 명의, 3백 여 편이었다. 그야말로 시가 펼쳐 보여주는 아름다운 여수 바다였으며, 만 파도를 헤쳐 나온 사람들의 굳센 삶의 내용이 장관이었다.

 

해양을, 여수를 사랑하는 이들의 귀한 시편들 중 1차, 2차에 걸친 속독으로, 다시 한 차례의 정독으로 다음과 같이 8명의 작품을 우선 선정하였다. 즉, 7번의 「春 夏 秋 冬」 등 9편, 9번의 「장군의 섬」 등 5편, 15번의 「금오도」 등 6편, 32번의 「소리도 해녀민텔」 등 5편, 45번의 「다도해 건너는 동백」 등 10편, 69번의 「게놈프로젝트」 등 6편, 70번의 「물 위의 산」 등 5편, 71번의 「푸른 뿔」 등 8편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작품(시인)들 중 다시 7번, 15번, 32번, 69번, 70번, 71번의 작품들은 또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하고 제외하였다.

7번의 경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눈 여수의 풍광과 「여수의 맛」을 소개하고 자랑하는 등의 ‘기획’이 돋보이긴 했으나 시대적으로 많이 뒤처지는 언어감각과 시적 완성도가 문제였다. 15번의 작품에 대해서도 7번과 같은 내용의 지적을 하고 싶다. 그리고 32번의 경우 착상은 기발한 데가 있으나, 그것을 온전히 소화시켜 형상화해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조급증이나 지나친 자신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으니, 앞으로도 모쪼록 유념하시기 바란다. 69번의 경우 작품 「게놈프로젝트」에서 불필요한 언어유희를 즐기고 있는데, 진정성에 ‘트러블’이 생기기 십상인 그 점 선자로선 결코 달갑게 평가해줄 사항이 아닐 것 같다. 70번의 작품 「물 위의 산」이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에 비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나타내고 있으나, 그 외 작품들은 좀 더 가차없는, 그러면서도 주도면밀한 퇴고 과정을 거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71번에겐 32번에게와 같은 지적을 하고 싶다. 언어운용 등에서 자신감이 지나쳐 거기에 가려진, 정작 자신만이 보지 못하는 ‘독자의 불만이나 이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고심 끝에 53번의 「다시 햇살이 된다」 등 5편, 9번의 「장군의 섬」 등 5편, 「여수항 멸치잡이배」 등 10편, 이렇게 모두 세 시인의 15편의 작품을 ‘당선작(가작, 우수작, 대상)’ 군(群?)으로 결정했다. <가작>을 차지한 53 번의 경우 대상을 두고 서둘러 자아도취하거나 ‘쫄지 않고’ 끝까지 차분하게 관찰하는 소중한 장점을 가졌다. 이 점 앞으로도 잘 살려나가시길 바란다. 단, 언어가 지나치게 소박한 것 같으니, 앞으로 열심히 잘 극복하시기 바란다. <우수작>을 거머쥔 9번의 경우 작품 「장군의 섬」이 참으로 ‘우수’했다. 『붉은 꽃이 지자/바람은 몸을 비틀었다//뒤를 버려야 앞으로 갈 수 있는 목숨의 길//두려움의 꽃대는 강력하여/베어내는 칼끝이 그믐처럼 휘었다』 감각적이고도 서늘한 사유를 지닌 이 시가 그러나 ‘동봉’해온 다른 시들을 ‘작품성’ 쪽으로는 전혀 견인하지 못했다. 다만 「장군의 섬」 1편이 나머지 작품들까지 ‘우수’하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작품 간의 편차가 심한 편이다. 앞으로 한 편, 한 편, 시를 쓸 때마다 한 마디, 한 마디도 놓치지 말고, 그야말로 ‘절차탁마’하시기 바란다. 거기에 비로소 진정! 시 쓰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선자가 마침내 당선작으로 뽑은 작품은 45번의 시, 여수항 멸치잡이 배」이었다. 그리고 ‘동봉’해온 시들, 즉 「다도해 건너는 동백」 「어부림, 테트라포드」 「여수항을 위한 찬가」 「 「쇄빙선 일기」 등의 작품이었다. 45번이 보내온 작품엔 드넓은 해양이, 여수 앞바다가 참 많았다. 그런데, 그리하여 45번은 45번의 작품들끼리, 그러니까 위에 적은 45번의 작품 5편끼리 저들 앞자리를 두고 다퉜던 것 같다. 그만큼 45번의 작품은 그 수준이 고르다는 이야기이다. 『흰빛으로 발게 저무는 것들이 / 멀리서 뒤척이며 떠밀린 멀미를 부른다지 / 해질녁부터 그날 새벽까지 꺼끌 꺼끌 잠을 털고』 『눈뜨고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벼랑이 내게 있어//바다에게 재갈 물린 뚱뚱한 침묵으로 떠오를 때!』 『항해를 시작하는 아일랜드 행, 선장은 먼 바다가 침묵과 절규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렇듯 45번의 몇 몇 작품에서 몇 구절 뽑아봤지만 일정한 톤의 목소리가 감각적이면서도 안정감을 보이고 있어 좋다. 그러나 45번 역시 절차탁마가 부족한 것 같다. 군데군데 허사와 군더더기가 보인다. 뼈를 깎듯 스스로 해소해야할 일이다.

 

상은 물론, 칭찬이다. 당선자 분들 오늘 마음껏 춤 춰도 좋겠지만, 이 지면에 활자화된 자신의 시,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는 시간도 참 소중하고 유익하리라 믿는다. 축하드린다.

 

문인수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메모 :
728x90

 

 

728x90

 

[우수상] 서시장, 그 틈새소리를 굽다 / 강경아

타닥타닥 혼잣말들이 괄호 속에서 튄다
어둠은 한숨보다 아리게 먼저 다가오는 법
질긴 가난의 혈색에 대해 묻지 않아도
생의 끝자락은 늘 창백한 것이어서
희뿌연 근심의 무게를 재어보다가
까닭 없이 목울대를 치며 붉게 충혈되는 것이
쓴 소주잔을 꺾는다

진급이니, 연말정산이니, 적당하게 썰어 놓은 나완 상관없는 뻔한 이슈들이,
불편한 신념들이, 자존의 가치들이, 불판을 바꾸듯 회전되고 있을 때

젓가락이 무겁다

봉분처럼 부푼 금붕어의 부릅뜬 동공이
식당그릇에 묻혀 버린 아내의 뒷모습이
고시원 단칸방 어린 남매의 시린 발들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돼지껍데기처럼
밤새 질겅질겅 씹혔다

타닥타닥 튀는 저 살아있는 꿈틀거림 속에서
타전되는 무중력의 푸른 외침
뒤집자
뒤집자
뒤집어 보자,
짧고 여리게 터지는 아직 내겐 쓸 만한 희망들
눈 속에서 더 단단해진 그 경쾌한 방백(傍白)들
생의 반대편 안자락까지 노릇하게 달궈지는 눈빛들이 환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