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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를 잃어버린 아이 / 이설야 

 

아이야.

너에게서 새를 꺼내줄게

너의 입에 갇힌 새를 꺼내줄게

 

마카우 앵무새를 기르는 집이었지

조흐라 샤는 가사도우미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지

 

새장 속 값 비싼 네 마리의 앵무새

그중에 한 마리가 날아간 건 실수였지

잠시 새장을 열고 먹이를 주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사라진 새

사라진 세계

 

파키스탄 소녀 조흐라 샤는 겨우 여덟 살

조그만 손으로 아기 기저귀를 갈고 마당을 빗질했지

몇 푼짜리 동전으로는 평생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마카우 앵무새를 놓쳤다네

구름처럼 흩어진 새의 발자국

어디로 날아갔을까

 

주인에게 맞다가 뼈가 으깨어졌지

소녀는 새를 삼킨 하늘로 날아갔다네

날개를 펴서 구름다리 위로

커다란 새장 밖으로 날아갔다네

소녀가 살던 작은 마을에는

흰 깃털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있었지

 

새는 천사의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나

새를 찾아 천국으로 간 아이

 

하지만 천국엔 새가 없지

죽은 새만 있지

신을 찾다가 눈이 먼 죽은 새들

오직 죽어서 가는 새들만 있지

 

아이야.

새에게서 너를 꺼내줄게

새의 입에 갇힌 너를 꺼내줄게

 

 

박영근 시인을 기리는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회장 서홍관)가 제8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자로 이설야 시인을 선정했다. 시상식은 2022년 5월 14일 오후 4시 인천 신트리 공원 박영근시비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영근작품상은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올곧은 정신으로 치열하게 시 작업을 하고 있는 시인들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박영근 시인의 시 정신을 잇는 작품에게 상을 수여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만 원이 수여된다.

 

박영근 시인은 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1981년 《반시 反詩》 6집에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노동자 시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민중가수 안치환 작곡의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 시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제8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작으로는 이설야 시인의 <앵무새를 잃어버린 아이>가 선정되었다. 본심위원 박일환(시인), 박수연(문학평론가), 오창은(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수상작에 대해 “고통스러운 노동의 굴레가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도 작용하고 있는 지구촌의 비극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며, “최근의 젊은 시 문법과 현실의식을 고르게 펼쳐 보인 수작”이라며 선정 경위를 밝혔다.

 

이설야 시인은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집을 준비하며 일제 식민시기 부평 조병창 등 국내의 노동 이슈에서 세계의 어린이 노동, 난민 문제로 시선이 확장되었다”며, “특히 파키스탄의 8살 소녀 가사도우미 조흐라 샤의 이야기를 접하고 시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창작 배경에 대해 밝혔다. 이어 “뜻밖에 상까지 받게 되어 영광이다”라며, “조흐라 샤를 비롯하여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년, 소녀들에게 진 시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게 되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본심위원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수상 작품에 대해 “사건의 묘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시적 표현에 있어 문학적 성취가 있었다”고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번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한 이설야 시인은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데뷔했다.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굴 소년들>을 썼으며, 제1회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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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 김성규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올라가고

굴뚝 위에서는 모든 것이 훤히 보이지요

굴뚝 위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당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 흩어져 울었을 거예요

파업을 지지하러 몰려온 사람들도

이제 지쳤어 , 안 되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자기만의 굴뚝에서 연기를 피우는 사람도

굴뚝 속이라도 들어가 손바닥을 쬐고 싶은 사람도

내려오면 안 돼요 끝까지 버텨 보세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는 사람도

내려오라 목이 쉬어 소리 지르는 가족들도

굴뚝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보이지요

하얀 구름을 찍어내는 굴뚝도 이젠 좀 쉬어야지

모두가 굴뚝 주변에서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울 때

이야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구름이 될 때

지나가던 구름이 굴뚝 위에서 쉬다

근심 많은 사람들 이마 위로 쏟아질 때

드디어 굴뚝에서 연기가 멈추고 공장도 지쳐 쓰러졌어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가 밀린 잠을 자야지

언제 우리가 굴뚝 위로 올라왔지

굴뚝 위의 사람들은 언제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고

내려가야 할 사다리마저 치워지면

굴뚝 위의 사람이 종일 뱉어내는 한숨으로 안개가 끼고

지상의 인간들은 가끔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아 눈이 멀어버렸나봐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먼 곳을 보며 노래하네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 올라가고

 

 

 

[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듣고 무언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받아도 되는 상인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박영근 선생님을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이십 대의 어느 날 우연히 뵌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셨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너무 가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자랐고 시를 썼고 도시로 와서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바뀐 세상에 떠내려가는 모습이 앞으로 저의 운명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삼십 대의 어느 날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후 시비가 건립되었고 혼자 시비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소주 한 병을 사서 시비에 술을 따르고 저도 한잔 마셨습니다. 공원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쓸쓸한 날이었습니다.

 

민중, 어머니, 혁명, 가난이라는 말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간절함은 사라지고 웃고 적당히 서로를 위로하고 살아가려 합니다. 상처받고 미워하지 않으려 교양인이 되어 거리를 두고 살아가려 합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시간이 흘러 누가 이 시인을 기억해 줄까요. 기억이 점점 부서져 가고 있는데 누가 그 시절의 상처와 미움과 설움을 기억해 줄까요.

 

역설적으로 풍요가 우리를 더 가난하고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이 가난함과 추위 속에서 누군가 다시 시를 찾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세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며칠간 혼자 박영근 문학상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많이 부족한 저에게 상을 주시는 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며 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그 의미와 가까운 곳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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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기 언어와 타자의 언어가 섞이는 접촉의 그물망

 

박영근 시인은 긴박한 현실과 삶의 에너지가 바로 시를 낳게 한다고 했다. 그 긴장 속에서 시는 대체할 수 없는 언어적 싱싱함을 얻는다. 삶의 언어가 시적 성취를 획득하는 그 자리는, 바로 팽팽한 긴장의 순간이다. 시는 순간의 서정이며, 삶을 품은 언어다. 박영근의 시 세계와 연결되는 작품을 선정할 때, 언어적 싱싱함과 더불어 삶의 언어로서의 현장감도 중요하게 고려하게 된다. 7회 박영근 작품상을 선정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시적 성취와 더불어 언어적 현장감도 깊이 고민했다.

 

예심위원들이 추천한 총 14편은 모두 박영근의 시세계가 가지고 있는 미적 성취와 현실의 숨소리를 환기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그 중 안주철· 조말선· 김사이· 신철규· 김성규의 시를 놓고 숙고와 토론을 거듭했다.

 

안주철의 천변산책분노가 되기 전에 / 안타까움이 되기 전에” “남은 힘을 낭비하려고 천변을 걷는 모습을 그려 냄으로써 노동자의 모습을 해학적이고 반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수작이다. 조말선의 심야는 야간노동을 검정색이미지로 잘 형상화했으며, 작은 사물들을 내밀한 미의식으로 연결하는 시적 성취를 이뤄냈다. 김사이의 견고한 지붕 아래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체제의 억압을 단단해진 절망을 잘근잘근 씹는 분노와 함께 표현해냈다. 신철규의 인간의 조건은 우주적 상상력으로 코로나 19’의 위기에 처한 인간의 형상을 객관화하는 시대성을 획득한 작품이었다. 이들 작품은 2020년 한국 시문학의 한 성취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박영근의 시세계와 보다 더 긴밀하게 이어지는 작품으로 김성규의 굴뚝을 선정했다. 이 작품은 한국 노동계의 아픈 풍경인 굴뚝 고공농성을 시적 언어로 포착해냈다. 2014년부터 2015년에는 구미 스타케미컬 노동자들이 408일간이나 공장 굴뚝에서 농성을 벌였고, 2018년부터 2019년에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이텍지회 노동자들이 서울 목동 열병합 발전소 굴뚝에서 장장 426일간이나 농성을 벌였다. 파업 농성 노동자들의 절박함은 75미터의 굴뚝만큼 높고도 위태롭다. 김성규 시인은 굴뚝에 올라가내려오는 극단의 긴장 속에서 위의 세계와 아래의 세계를 대비시켜 그려냈다. 굴뚝 위 세상은 하얀 구름을 찍어내면서 먼 곳을 향하는 희망의 세계이고, 아래의 세계는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워내며 근심많은 사람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긴장하는 곳이다. ‘굴뚝 고공 농성을 둘러싼 긴장은 브레히트의 시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상과 현실이 팽팽하게 맞서는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적 형상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로 표현된 아픈 감각이 돋보인다. 유례가 없는 장기 농성 투쟁 과정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고단함을 시적으로 포착해낸 것도 소중한 성취다. 시인의 언어와 타자들의 언어가 섞이는 다중의 발성이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성규 시인은 힘없는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시편들을 쓰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피력했던 적이 있다. 7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이 그 귀한 마음에 큰 힘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성규 시인에게 깊은 존중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김해자(시인), 박수연(문학평론가), 오창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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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 가엾다 / 권혁소

 


배롱나무를 좋아하는데,
감나무도 한두 그루 있다면 좋겠는데
주춧돌 세운 여기는 배롱나무도 감나무도
뿌리 내릴 수 없는 수목 한계선

알면서도 나무 탓을 한다
현주玄酒 같은 사랑 한 번 하고 싶었는데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가여운 존재였을까,
잘라버리고 싶은 나무였을까
더 이상 뿌리를 뻗지 않는 나무를 뽑아내며
이제야 묻는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 것이냐고

등 돌린 그대가 저만치 걸어간다
그대가 가서 숲이 된다면 좋겠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말고 동짓달 하늘에 핀
초승달이 된다면 좋겠다, 이것이
빌 수 있는 마지막 축복 이라니

우리가 너무 가엾다

 

 

 

[수상소감]

 

양간지풍거세게 불던 날 밤이었다. 산골 이웃들과 봄바람 안주하여 술 한잔 걸치고 바람 너울대는 마당에 들어서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런데, 받았다.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입니다··· 모르는 전화를 반갑게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시 ?우리가 너무 가엾다?가 제6회 박영근작품상에 선정되었습니다··· 거부하지 않으신다면 수상소감 등을···”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고 했던, 생각하면 늘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박영근 시인, 아니 영근이 형···, 그 영근이 형이 따라주는 상이라니···.

 

삼십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19835월에 조태일 시인이 움직이는 시라는 부제를 달아 역사와 더불어 살아가는 시 무크’ ??시인??을 복간했을 때 나는 아직 제일 싼 담배를 피우는 대학생이었다. 맘껏 책을 살 수도 없던 때, 춘천 청구서적한 귀퉁이에 기대어 서서 목차부터 찬찬히 읽었다. 거기서 처음 박영근이라는 이름을 만났고, 형의 시 ?앞날을 향하여??취업 공고판 앞에서?를 읽었다.

 

누렇게 바랜 책을 다시 열어 보니 ‘···어두운 소문들 부서지는 공고판 앞에서/살아있으므로 믿어야 할 앞날들···’에 밑줄이 쳐 있다. 그리고 나는 투고를 결심했던가.

 

1984민주·민중·운동·문학이라는 부제를 단 ??시인?? 2집을 통해 나는 등단이란 것을 했고, 형은 같은 책의 특집 좌담회(바람직한 문학운동을 위하여) 토론자로 참석해서 본격적인 노동자 입장도 아니고 먹물끼가 든 노동자라고 자신을 낮추면서도 당시의 지식인 주도의 운동 양상을 드세게 비판했는데, 많이 공감했던 것 같다. 어쨌든 형은 그해에 첫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를 청사에서 냈고, 나의 시는 조금씩 더 거칠어졌다.

 

형이 택시를 타고 춘천으로 왔던가 안 왔던가. 오라고 했던가 오지 말라고 했던가. 택시비가 있다고 했던가 없다고 했던가. 그런데 춘천 퇴계동 어디쯤에서 택시비를 계산하는 내가 보이는 환영은 뭘까. 지금은 배가 터지도록, 술집을 통으로 살 수도 있는데···.

 

형은 노동운동을 했지만 나는 고작 노동조합 운동을 한다. 형은 노동시를 썼지만 나는 고작 노동자 풍의 시를 흉내 낸다. 형은 기계와 여공과 가난한 과거에 맞서 치열했지만 나는 고작 시대와 불화하는 사랑을 불안해 할 뿐이다.

 

형과 이렇게 새로이 얽힌 것을 이제 어쩌겠는가. 형이 나를 다시 불러세운 것은 아마도 더욱 단단한 노동자로 살라는 뜻이겠지만, 내가 뭐라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힘차게 부르는 수밖에. 그렇게 함께 그리움을 달래는 일 밖에.

 

미욱한 졸작을 작품으로 격상시켜주신 심사위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졸시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의 민중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너무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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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세상에 대한 연민과 이해와 공생의 마음자리

 

박영근 시인은 시는 서정적 울림과 설득력 있는 현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저한 사유가 있더라도 서정성에 가닿지 못하면 시의 울림은 꺾이고 만다. 현실을 길러내는 언어의 파문 또한 중요하다. 심사위원들은 울림과 현실을 새기며, 6회 박영근작품상 선정에 숙고와 토의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박영근 시인의 시 정신을 잇는 빼어난 작품 1을 선정한다는 것의 무거움을 절감했다.

 

예심에서 올라온 15편의 시들은 모두 박영근의 문학정신을 잇는 특성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들 중 김선우· 김효연· 조말선· 이창기· 이현승· 최지인· 황인찬· 권혁소의 시편에 주목했다.

 

박영근의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와 깊이 닿아 있으며 죽은 지 오래인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쓴김선우의 천문, “보잘것없는 것들이 뭉치면 확성기가 되고 투쟁조끼가된다는 김효연의 지역뉴스, 심야식당, 야간분만 등 노동력의 시대적 변화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조말선의 야간조, “복지 생활자들의 숲이 된 작금의 변방과 소외를 다룬 이창기의 나쁜 꿈을 중점적으로 검토했다. 더불어 우리는 여전히 아우슈비츠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쪽에 인간은 있다는 압축된 인간선언 이현승의 호모 사케르와 이 시대 절박한 문제인 고독사와 주거문제를 소외된 노동과 결합시킨 수작 최지인의 도시 한가운데, 성소수자 문제를 독특하고 현장감 있게 다룬 황인찬의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등으로 좁혀서 의논했다.

 

단 한 편의 시로 작품상을 결정한다는 데에 적잖은 부담이 있었고, ‘시 자체냐, 시 정신이냐라는 논란이 될 만한 고민도 없지 않았으나, 박영근의 생애와 시 정신을 동시에 감안하며 범위를 좁혀서 의논한 결과 권혁소의 우리가 너무 가엾다를 제6회 박영근작품상으로 선정했다. 2019년 하반기에 출간된 시집 우리가 너무 가엾다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일반적인 저항시와 구별된다. 이 시는 대상과의 일체감을 이룬 채 시적 내면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동시에 타자를 부정하고 분리하는 세계 너머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품 넓은 사랑의 시학으로 채워진 시의 명징한 장소이기도 하다. 시인은 지치고 나뉘어 서로의 삶을 박탈하려는 갈라진 세상에 연민과 이해와 공생의 마음자리를 선물하고 있다. 밋밋할 만치 소박하게 독백하는 듯한 이 시는 언어라는 꽃에 인위적 데코레이션을 하고 향수까지 뿌리기도 하는 현재 시단에서 드물게 담백하고 솔직하다. 광장과 투쟁이라는 용광로를 통과한 쇳물의 생애를 거쳐온 자가 존재 자체에 바치는 경외와 겸허한 연민의 목소리가 시의 진정성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등 돌린 그대가 저만치 걸어그대가 가서 숲이 되었으면 좋겠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말고 동짓달 하늘에 핀/ 초승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빌 수 있는 마지막 축복이라해도, 그래서 우리가 가엾다해도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비록 사랑이 환상일지라도, 백두대간 병풍 아래 사는 시인의 바로 이 사랑의 축복으로 하여 동과 서, 남과 북으로 나뉜 대관령 진부령 모든 령들을 넘어설 수 있길 빈다. 수상을 마음 깊이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박수연(평론가), 오창은(평론가), 김해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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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익숙해져 갔다 / 조성웅

 

 

끝내

그는 한 뼘 남짓한 H 빔 위에 모로 누워버렸다

그의 등 뒤에는 10미터 허공이 펼쳐졌다

 

가장 위험해 보이는 자세가 그래도 용접을 하기엔 최선의 자세

그는 허공조차 안전지대로 사용하는 법을 안다

 

몇 차례의 죽음을 넘어

오늘 하루분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까지

 

오로지

위험에 익숙해져 갔지만

그는 이 야만의 세계

삶의 안전을 위한 최고의 역능을 숙련했는 지도 모른다

 

난 한 뼘 남짓한  H 빔 위로 누운 그의 모습이

목숨을 살리는 방법 같고 삶의 안전을 위한 끈질긴 질문 같고

이판사판 한번 붙어보자는 고공농성 같았다

허공은 모로 누운 그의 모습을 닮아 수평을 이루었다

 

 

 

[수상소감]

 

아들 문성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지난 겨울방학 때 집에 놀러 온 문성이 친구들 중에 몇 명이 졸업하면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겠단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회한이 통증처럼 일었다. 입덧을 시작하던 날, 아내는 현대자동차에서 해고 됐고, 문성이 돌잔치 하는 날, 난 현대중공업에서 해고 됐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 그 고립된 바닥에서의 절규로 한 시기를 다 보내야 했다. 이 때 태어난 아이가 자랐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웠으나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겠단다. 나와 아내가 목표로 했던 건 비정규직 처우 개선따위, ‘불법파견 정규직화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투쟁은 패배 했다. 이미 낡은 운동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내가 참여했던 운동의 몰락은 아주 감각적인 통증으로 내 살에 박혀 있다.

 

여드름이 훑고 지나간 울퉁불퉁하고 쭈글쭈글한 내 얼굴의 거죽을 만지면 당분간 언어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오늘 이기지 못했지만 전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으로 변화는 가능하다고, 전망은 두꺼운 원전이 아니라 성장하는 아이들의 감각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성이 등하교를 시켜주면서 짬짬이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어렸을 적, 아들 문성이는 집회와 농성장이 자신의 놀이터였다. ‘비정규직 철폐머리띠를 묶은 투쟁 소년, 조문성이었다. 나보다 훌쩍 커 버린 문성이가 어느 날, “아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다고 내 삶을 비평해줬다. 그래 내가 잘하지 못했던 것, 아들 문성이 세대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 자신을 민주주의로 조직하고 평등의 새 지평을 열어가기를, 허공을 안전지지대로 사용하는 법을 알고 드러누워 기울어진 생의 불안정성조차 수평을 잡을 줄 아는, 위험 작업은 언제든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로부터 시작해 삶의 안전을 위한 최고의 역능을 숙련했으면 좋겠다. 세계를 운영할 수 있는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비상했으면 좋겠다.

 

잠시 갈 곳 몰라 정처 없던 날,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회에서 박영근작품상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박영근작품상이 허명이 되지 않도록 살겠다. 살아내는 게 찌질해질수록 자본주의 밖을 상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남은 생애, 내 시의 역할이 있다면 문성이 세대의 새로운 투쟁과 혁명을 지지하고 조력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낡지 않는 것이다. 박영근 선배도 이 싸움에 함께 해주시리라 믿는다.

 

 

 

중심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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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고도로 응축되었으며 시적 압축성이 뛰어난 노동시

 

4455! 13년이라는 국내 최장기 투쟁사업장 콜텍(콜트는 투쟁 중임), 노사는 최근 부당해고에 대한 협상을 갖고 명예복직 등에 최종 합의했다. 합의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암울한 노동 현실을 여실히 볼 수 있다. 당연히 사과해야 할 사측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박영근 시인은 60년대 산업화 이후 암울한 노동 현실을 가장 먼저 직시, 노동시의 다양한 길을 열고 닦아놓은 시인이다.

 

노동 현실의 암울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왔고 앞으로 더욱 심화되어 갈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문제 담론 전쟁에서 자본이 노동을 이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는 노동의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된다. 아울러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방법으로 노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확장과 질적인 제고, 유연성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 노동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한 독자와의 친밀성과 서정성을 더욱 받아들여야 한다.

 

추천위원들로부터 받은 추천작들에 대한 논의에서 지난 박영근작품상의 수상작들이 너무 예리하고 직설적 경향이 있었다.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젊은이의 언어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좀 더 유연한 시 쪽으로 선정해나가는 것이 박영근의 시를 확대시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 등이 제시되는 등 논의와 고심 끝에 <위험에 익숙해져 갔다>를 수상작으로 합의, 결정했다.

 

수상작은 짧지만 고도로 응축되었으며 시적 압축성이 뛰어난 노동시다. 현장 노동시의 중요한 덕목인 체험과 경험을 최대한 살렸으며 노동 현장의 팽팽한 긴장감이 높다. 아울러 암울함이 짙어가는 노동 현실에 대한 공감대의 폭을 대폭 넓혔다.

 

- 심사위원 : 염무웅(평론가), 고형렬(시인), 정세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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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은 미워하며 자라고 사랑은 사랑하며 자란다 / 김수상

-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창립 22주년에 부쳐

 

 

일본군이 동학 농민군을 죽일 때

농민군의 사지를 소나무에 묶어놓고

묶인 사람의 정수리에

송진을 바른 소나무 가지를 뾰족하게 깎아

망치로 박아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불을 붙이는데,

정수리에 박힌 나무못에 불이 붙으면

, , !

농민군들 머리 터지는 소리가

10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어디 동학군뿐이겠나

대구의 10

제주의 4.3

광주의 5

총으로 쏴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죽인 나라에

아직 우리가 살고 있다

 

일제에 빌붙고 군부와 독재에 아첨하며

온갖 영화를 누린 사람들은

아직까지 권력의 단맛에 취해

대대손손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데

빛바랜 창호지 같은 얼굴을 한 우리들은

창천(蒼天)의 하늘 아래 별로 부끄러움이 없다

 

외국인 200만 명이 우리 땅에 살고 있다

같은 말을 쓰면서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사람들을 민족이라 부른다

그게 민족이라면 그런 시절은 이제 곧 지나가지 않겠는가

 

우리가 우리를 무참하게 학살하고 때려죽인 이유가

아직도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민족에게 총칼을 겨눈 반역의 죄인들이

광장의 맑은 햇빛 아래 끌려 나오지 않았다

 

인간은 어디까지 선할 수 있고

인간은 어디까지 악할 수 있는가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이 되는데

혼백은 혼()과 백()으로 나누어진다

()은 몸을 빠져나와

위패 안에서 살다가 하늘로 올라가고

()은 사람의 몸에 남아 흙이 되고 바람이 된다

억울한 영혼은 백()이 되어 눈을 뜬 채 땅에 머문다

내가 왜 죽임을 당했는지

내 무덤을 내가 파서 왜 생매장을 당해야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생(相生)이 먼저가 아니고

해원(解寃)이 먼저다

원한을 풀어야 같이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민족은 해묵은 낱말이 아니다

민족은 폐기되어야 할 말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른 참혹한 죄가

가을밤의 별처럼 자꾸 돋아나는 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자꾸 되돌아봐야 한다

어머니가 동구 밖에서 우리를 보낸 뒤에도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를 지켜보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저지른 죄를

무릎 꿇고 고백해야 한다

 

영원한 이념은 없고

영원한 민족도 없어라

세상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모든 사람은 같은 민족이어라

세상의 그늘 안으로

맑은 햇볕 한 줌 쥐고 달려오는 사람은 모두가 같은 민족이어라

선하고 맑은 마음만이 인간의 역사 앞에 오래 살아남아

별처럼 빛날 것이다

 

민족은 세상의 아픔을 함께 하는 사람들

민족은 세상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들

민족은 세상의 불의에 항쟁하는 사람들

민족은 진실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

민족은 핏줄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

사랑으로 사랑하면 기쁘지 아니한가

우리는 사랑공화국에서 법도 없이 푸른 맥박으로 사는

사랑의 사람들이다

미움은 가고 사랑은 오라!

거짓은 가고 진실이여 오라!

 

 

 

편향의 곧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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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회장 서홍관)가 제4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자로 김수상(52)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미움은 미워하며 자라고 사랑은 사랑하며 자란다이다.

 

심사위원회(위원 염무웅, 고형렬, 정세훈)시의 기교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를 초월해, 외롭지만 역사의 아픔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꿋꿋이 시의 미덕과 참다운 도리를 다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근대 개항기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학살, 일제강점기 친일, 군부독재 시대 광주의 5월까지 우리가 어설프게 유폐시킨 역사를 꼼꼼히 호명해 현재, 더 나아가 미래에 접목하여 시의 진실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수상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은 시인이 사는 동안 감당해야할 형벌입니다. 산양은 천길 벼랑에 뿔을 걸고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런 자세로 시인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1966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김수상 시인은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중퇴한 이후 시와표현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랑의 뼈들’(삶창), ‘편향의 곧은 나무’(한티재)를 펴냈고,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가 펴낸 성주가 평화다’(한티재)에도 여러 편의 시를 담았다. 김 시인은 현재 대구경북작가회의 사무국장, 대구민예총 이사, 성주 별동네공동체 이사를 맡고 있다.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는 오는 512() 오후 430분 인천 북구도서관 평생학습1실에서 시상식을 연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등의 작품을 남긴 노동자시인 박영근(1958~2006)을 기리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는 2015년 작품상을 제정했다. 1회 수상작은 문동만 시인의 소금 속에 눕히며, 2회 수상작은 박승민 시인의 살아 있는 구간, 3회 수상작은 성윤석 시인의 셋방 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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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방 있음 / 성윤석

 

 

수갑도 없이 들어갔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간혹 햇빛에 널어 말렸고

붉은 벽돌이 그려진 벽지도

발랐습니다

기껏해야 한 생의 자세를

생각해서 들어간 감옥입니다

낡은 침대며, 깨진 거울까지

미리 짐은 다 뺐습니다만,

심심해하실까 봐 버려진 화분

하나 업어와 살려놓았습니다

소철나무 화분은 거리에서 살며,

병따개며, 잘린 신용카드를

받아놓고 있습니다

혼자 살았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무기징역을 받은 감옥이지요

그까짓 노역형

앞으로 백 명의 설울쯤은

수면고문만으로도 진술을 받아줍니다

사랑했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나는 모범수였고

다시 자유를 외치는 잡범들의 거리로

이송됩니다

뾰족구두를 따라가는 바람과

길을 가로막고 서는 오월의 바바리 나무들

이 감옥에서 살면,

집과 감옥이 모두 나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조그만 창밖을 바라보며

한 생의 자세를 생각하면 먼 곳에서

길들이 두텁게 이곳으로 흘러들어 오는

게 보입니다

갓 출소해 어두워진 두부를 씹는

별 들도 보입니다

어두컴컴한 벽을 질러야, 갈 수 있지만,

나한테 똥 사고

검사도 되고 의사도 되었다고

깨진 변기가 늘 꼬르륵 목이 잠기는,

밤하늘도 잘 보입니다

 

 

 

[수상소감]

 

소식을 듣고 한순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시를 쓰면서 문학상과는 별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걸 잘 지켜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상이라는 것은 쓰는 자에게 격려의 의미가 크겠지만, 때로는 사람을 오만하게 하고 게으르게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무 살 무렵 공장 아르바이트와 입주 과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민중시로 습작을 했고 민중시를 참 많이 쓰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리얼리즘, 새로운 민중시를 쓰고 싶었지만 그 당시 저의 시들은 그 뜻을 투영할 만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대학을 나와 지방신문사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자연히 모더니즘과 도시시를 쓰기 시작했고 첫 시집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 11년쯤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았고 문학과는 별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땅에는 고 박영근 선생님처럼 치열하게 살고 쓰는 분들이 더러 있었고 저는 변변찮은 재능과 성실하지 못한 태도를 가진 자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년 전 저는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 하지 못했던 새로운 리얼리즘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들의 뒷면을 낱낱이 뒤집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마도 오늘 제게 상을 주신 건 고 박영근 시인께서 이 후배를 눈치채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의 가시고자 했던 세계, 새로운 리얼리즘의 세계로 초대해 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위적이면서도 졸작인 저의 시 셋방 있음을 선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신뢰할 수 있는 시인이 되도록 쓰고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170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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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성윤석의 셋방 있음은 시적 화자가 자신이 살던 셋방을 비워 내놓으면서 내건 광고문의 형식으로 그 방에서 살던 자신의 가난하고 남루했던, 하지만 그렇게 가장 낮아서 오히려 거리낄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삶을 담담하게 표백하는 시이다. 그 작은 셋방은 옹색하고 가난하여 자유롭지 못하므로 감옥이지만 한 생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던 곳이어서 당당한 집이고 자유의 공간이기도 했던 곳이다. 이 시는 이처럼 겸허함과 오연함으로 강제되거나 자발적인 가난을 긍정하는 차분하고도 깊은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역시 남루하지만 견고했던 지상의 집을 버리고 저 추운 눈길로 떠나는 시인의 깊은 고독을 아프게 보여주었던 박영근의 시 이사와도 어딘가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성윤석의 셋방 있음이 풍요와 가난이 대극을 이루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아래로부터 이겨나가는 도저한 긍정의 힘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16년의 한국 시단이 낳은 매우 소중한 성과라는 점에 합의했으며, 이는 또한 고 박영근 시인의 깊은 가난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시세계와 결코 멀지 않다는 점에서 제3회 박영근작품상의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동의하였다.

 

-심사위원: 정희성(시인), 백무산(시인), 김명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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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구간 / 박승민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릴 때 진짜 버리는 거다.

길은 끝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끝날 때 비로소 끝난다.

그 살아 있는 한 구간만을 우리는 뛸 뿐이다.

저의 몸이 연필심처럼 다 닳을 때까지 어떤 흔적을 써보는 것인데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부여받고 평생,

눈밭에서 제 냄새를 찾는 산 개처럼 킁킁거리다가

자기 차선과 남의 차선을 넘나들며 가는 것이다.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기 전까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차올라오는 파도처럼

자기를 뒤집기 위해 자기 목을 조우지만,

눈밭에 새긴 수많은 필체 중 성한 문장은 없고

잘못 들어선 차선에서 핏덩어리로 뭉개지고 있는 몸.

쏟아 붓는 백매(白梅)는 얼굴에 닿자마자 피투성이 홍매(紅梅)로 얼어붙는다.

자신의 영정(影幀)을 피하듯 모두들 눈길 옆으로 붙지만

이 신랄한 현장이 현실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릴 때까지

보석(寶石)이 아니라 보속(補贖)의 언덕에 닿기까지

남의 차선과 자기 차선을 혼동하며 가는 것이다.

유족도 없이 혼자 장지까지 가보는 것이다.

 

 

 

[수상소감]

 

박영근 시인이 백석의 말마따나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버린 지 만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저는 좋은 시인은 활자를 넘어서서 그의 죽음까지가 그의 마지막 시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영근과 김남주 시인은 우리 후학들에게 가장 시적인 죽음의 한 전범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역사적 역주행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리고 이것을 뒤집을 동력을 상실한 채 세월호그 자체의 역사를 견뎌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차라리 두 시인의 죽음이 부럽기조차 할 때가 있습니다. 과연 오늘날까지도 박영근 시인이 살았다면 어떤 시적 몸짓을 보여주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오싹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마 이런 점을 미리 예견한 듯 박영근 시인은 채 오십을 채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박영근 시인은 우리 현대시사에서 노동시 혹은 노동자 시인이라는 칭호를 평론가들로부터 맨 처음으로 승인받은 시인이지만 그의 노동시는 여타의 노동시와는 질적으로 다른 자신만의 독자적 미학세계를 선취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의 시적 지향점은 노동자 중심이라는 편협성을 벗어나 인간해방이라는 보다 더 보편적 가치로까지 확장되었으며 더 주목할 점은 기존의 노동시의 병폐라고 할 수 있는 상투적 형식미를 끊임없이 갱신하려고 했던 그 파괴성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식화된 미학을 끊임없이 전복하려 했던 박영근 시인의 이런 전위성혹은 파괴성이야말로 박영근 시의 핵심이며 그가 가혹하리만치 외부와의 싸움 못지않게 내부진영과 불화하게 한 동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내·외부에 걸친 하나의 불덩어리였으며 그의 삶은 고독 그 자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생각을 추슬러보면 그의 때 이른 죽음은 그러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결과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제2회 박영근작품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올바른 문학적 방향성에 대해서 늘 고심하고 있는 저로서는 이 상이 그렇게 이상하지만도 않다는 생각입니다. 박영근 시인은 살아 있는 매 순간 현실 혹은 문학의 보수화와 끊임없이 충돌했고 마침내 죽음까지도 하나의 시로 완성해버린, 여전히 제 문학과 문학적 죽음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 고독해지겠습니다. 그래야만 박영근 정신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끝은 끝으로 이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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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미성과 현실성의 양 날개로 균형 잡힌 작품

 

박영근작품상을 두 해째 진행한다. 우리는 박영근 시인이 시와 삶으로 보여주었던 뜨거움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시의 완성에 있어서나 현실의 싸움에 있어서나 항상 최선을 지향했다. 시의 완성이 현실의 완성이고 현실의 싸움이 시의 싸움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박영근작품상은 시나 현실 어느 한 편에 기울어져 있지 않은 작품에 주어져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한국문학사를 채워온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문학상들이 점점 더 그 이름과 무관한 문학적 편향에 기울어지는 때에 문학상의 이름에 걸맞은 작품을 찾아내고 격려하는 일은 더욱 더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다. 박영근의 이름으로 상을 주는 일은 한 해의 좋은 작품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의미 외에도 그 삶의 현실적 치열성을 평가하는 일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의미는 물론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좋은 작품은 언제나 좋은 현실을 예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추천위원들이 넘겨준 작품들을 열독한 후 심사위원들은 세 작품에 주목했다. 살아 있는 구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백한 번째의 밤이 그것이다. 모두 자신들의 시적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살아 있는 구간은 생명의 실존적 의미와 그것의 현실적 긴장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눈길을 걷는 사람들의 풍경을 삶의 고난과 연결시키면서 쏟아 붓는 백매(白梅)는 얼굴에 닿자마자 피투성이 홍매(紅梅)로 얼어붙는다고 시인이 쓸 때, 이 작품은 삶과 고통을 시적 상승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특별하다. 점점 역사적 퇴행의 길로 치닫는 세상에서 삶과 시를 온전히 일치시키고 있는 시인이 현실의 부조리와 삶의 고난을 위트와 재치로 극복하는 장면은 애틋하기까지 하다. 독자들은 고난당하는 시인의 영혼과 가족 때문에 안타까움에 사로잡히면서도 세상을 굳건히 견디는 시인 때문에 미소 지을 수 있다. 시인이 이럴 수 있는 것은 그의 강인한 현실의식 때문인데, 그 투사적 태도가 아들 앞에서 한없이 평범해지는 장면은 묘한 페이소스로 귀결된다.

 

백한 번째 밤은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려는 감각과 고통을 승화시키려는 동화적 상상력이 잘 결합된 작품이다. 시적 애매성이 동화적 투명성과 충돌하면서도 의미의 확산을 야기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신비한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가 그 신비를 잃지 않는 곳에서 미지의 세상이 환기되는 것이라면 바로 그 환기력이야말로 문학의 한 역할일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오랜 논의 끝에 살아 있는 구간을 박영근작품상의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심미적 완성과 현실적 대응력을 모든 시의 양 날개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은 그 양편을 잡은 채 균형감 있는 언어 능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작품이 어떤 눈에 띄는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 작품이라는 다소간 애매한 기준이 심사위원들의 견해를 통일시켰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두 시인이 곧 박영근의 이름으로 축복받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 또한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 심사위원: 정희성(시인), 나종영(시인), 정세훈(시인), 박수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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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속에 눕히며 / 문동만

 

 

억울한 원혼은 소금 속에 묻는다 하였습니다

소금이 그들의 신이라 하였습니다

 

차가운 손들은 유능할 수 없었고

차가운 손들은 뜨거운 손들을 구할 수 없었고

아직도 물귀신처럼 배를 끌어내립니다

이윤이 신이 된 세상, 흑막은 겹겹입니다

차라리 기도를 버립니다

분노가 나의 신전입니다

침몰의 비명과 침묵이 나의 경전입니다

 

아이 둘은 서로에게 매듭이 되어 승천했습니다

정부가 삭은 새끼줄이나 꼬고 있을 때

새끼줄 업자들에게 목숨을 청부하고 있을 때

죽음은 숫자가 되어 증식했습니다

그대들은 눈물의 시조가 되었고

우리는 눈물의 자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곱 살 오빠가 여섯 살 누이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줄 때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먼저 보내고

아가미도 없이 숨을 마칠 때

아이들보다 겨우 여덟 살 많은 선생님이

물속 교실에 남아 마지막 출석부를 부를 때

죽어서야 부부가 된 애인들은 입맞춤도 없이

 

, 차라리 우리가 물고기였더라면

이 바다를 다 마셔버리고 살아있는 당신들만 뱉어내는

거대한 물고기였더라면

 

침몰입니까? 아니 습격입니다 습격입니다!

우리들의 고요를, 생의 마지막까지 번지던 천진한 웃음을 이윤의 주구들이

분별심 없는 관료들과 전문성 없는 전문가들이

구조할 수 없는 구조대가

선장과 선원과 또 천상에 사는 어떤 선장과

선원들로부터의……습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3층 칸과 4층 칸에

쓰린 바닷물이 살갗을 베는

지옥과 연옥 사이에 갇혀버렸습니다

우리도 갇혀 구조되지 않겠습니다

그대들 가신 곳 천국이 아니라면

우리도 고통의 궁극을 더 살다 가겠습니다

 

누구도 깨주지 않던 유리창 위에 씁니다

아수라의 객실 바닥에 쓰고 씁니다

골절된 손가락으로 짓이겨진 손톱으로

아가미 없는 목구멍으로

오늘의 분통과 심장의 폭동을

죽여서 죽었다고 씁니다

그대들 당도하지 못한 사월의 귀착지

거긴 꽃과 나비가 있는 곳

심해보다 짠 인간과 인간의 눈물이 없는 곳

거악의 썩은 그물들이 걸리지 않는 곳

말갛게 씻은 네 얼굴과 네 얼굴과

엄마아 아빠아 누나아 동생아 선생니임 부르면

부르면 다 있는 곳

 

소금 속에 눕히며

눕혀도 눕혀도 일어나는 그대들

내 새끼 아닌 내 새끼들

피눈물로 만든 내 새끼들

눕히며 품으며 입 맞추며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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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 추천위원들의 추천을 거쳐 심사위원들에게 전달된 작품들의 면면은 충분히 상징적이다. 박영근 시인이 세상과 불화하면서 보여준 시편들의 자리를 그 작품들은 탄탄하게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뚜렷한 경향성이 박영근작품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라고 심사위원들은 동의하였다. 최근의 여러 문학상들이 그 상에 내걸린 이름의 문학적 상징과 무관한 나눠주기식 수여라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은 더 소중하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이미 다른 문학상을 수상한 경우는 제외하기로 하였다. 중복 수상을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심사기준은 박영근이 추구한 시적 완성도이다. 박영근의 그 까다로운 심미안은 이미 작품의 내용-형식 차원을 넘어서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넘어서는 것이지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시의 완성도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집요하고 깊게 추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의 고통을 상식적으로 다루거나 참신한 언어만을 공교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모두 박영근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심사위원들은 생각하였다.

 

이런 기준 아래 박영근작품상으로 결정된 것은 문동만의 소금 속에 눕히며이다. 지난 1년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는 세월호의 처참한 비극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문동만의 이 시는 그 비극이 발생하고 모두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을 때 어렵게 써진 작품이다. 경악의 감정 때문에 대상에 대한 미적 거리가 허용되지 않던 시기에 소금 속에 눕히며는 힘겹게 어떤 성취를 보여준다. 세월호는 단순한 침몰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이 저 압도적인 권력으로부터 습격을 당하고 있는 사건이라는 인식을 튼튼히 보여주는 성취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비극에 대해 분노하고 슬픔을 공유하려는 큰 공력이 들어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그 난경 속에서 이 작품이 도달하고 있는 모든 마음과 정신의 언어를 존중하여 1회 박영근작품상수상작을 결정하였다. 한 가지 밝혀둘 사실은 지금 세월호와 관련한 어떤 행위에 상을 수여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점에 대해 심사위원들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논의가 오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 소금 속에 눕히며는 세월호를 추념하는 시인들의 작품집에 수록된 것이다. 고민을 했고 그러나 결정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결국 함께 작업한 모든 시인들에 대한 평가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함께 작업한 모든 시인들의 힘으로 이 처참한 세월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월 속에서 박영근작품상이 환한 웃음으로 축하될 수 있는 날이 그리하여 언젠가 올 것이다.

 

- 심사위원 나종영, 도종환, 박수연, 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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