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피사의 사탑에서 종이컵이 떨어졌다

05학번 허용수

한 잔 따라드릴게요 밤바람을 견디기 위해 몸속에 맥주를 꾹꾹 담아두는 어머니 수직축을 잃어버린 후 부터였다 보수공사에도 불구하고 구부정해지는 그녀의 각도를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움켜쥐면 그대로 구겨지는 마음처럼 종이컵 옆구리가 움푹 파여 있다 허리가 꺾인 채 방향을 잃은 삶이 하루에 1mm씩 기울어지고 있던 거다 네 아버지의 가장 큰 업적은 철근과 자신이 동시에 떨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 일이란다 하지만 종이컵은 자유낙하 하지 않는걸요 무너져 내리는 옥상에서 헛디딘 발이 살아남고 싶었던 바람과 함께 밤바람에 휩쓸린 것뿐이에요 그의 가슴속 매일 밤 소주 한 잔 들이키며 채워 놓는 허공 있잖아요 그 면적이 받았을 공기저항을 생각해보세요 속 빈 종이컵이 흔들린다 잇자국 남겨진 주둥이가 젖어 있다 찌그러지는 미간 너무 오래 머금고 계셨네요 빳빳하던 어머니가 맥주 한 잔에 시무룩해지면 종이컵을 털어낸다 하나 둘 남은 방울이 동시에 마저 떨어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