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평사리 토지문학제 대상 시부문 당선작] 김혜영
실종
신천댁이 사라졌다
사흘 전까지도 웃으며 고기도 드시고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고 하지만
십수 년 전 영감이 사라지고 나서
아니 그 이전 고물고물한 아이들의 젊은 엄마일 때
설거지물을 텃밭에 뿌리러 나올 때면
가끔씩 검은 머리와 눈썹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과 그 친구들이
대청마루에 북적일 때면 담박에
선명한 색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간격이 너무 멀어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새 날을 헐어낼수록 새 밤을 흘려보낼수록
온 몸의 빛깔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홀로 빈 집에서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마당 들어서며 부르면 느릿느릿 걸어나오곤 했다
옷감의 물이 빠지듯 짙은 색에서 옅은 색으로
형체가 사라지고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날이 늘어갔다
명절이나 휴가철 자식들이 들르는 날엔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시간이 흐르면 온몸의 색이 바랬다
벽 속으로 사라지는 날이 잦아지고
옅은 회색빛을 띠다가 허공에서 불쑥
한 팔이 솟아나곤 했다
일 년 전 작은 딸이 부산으로 모셔갔을 때
실루엣만이 따라갔다가 한참 후
겨우겨우 뒤따라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다시 고향집 돌아와 한달 후
신천댁 벽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2014 평사리 토지문학제 대상 시부문 당선작 심사평
세상이 도무지 요령부득이라는 느낌, 뭔가 떳떳치 않고 답답하다는 느낌은 한두 사람의 것이 아닐 듯하다. 이런 시절에 시를 잡고 견디는 노릇은 갑절의 고달픔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갈피를 잃고 마음이 분노와 미움에 휩쓸리면, 날은 서겠으되 감화력의 폭을 잃기 쉽다. 그렇다고 호시절의 꽃노래와 말놀이를 계속하자 해도 스스로 용납하기 어렵거나, 흥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시절의 세간사에 민감한 것만이 전부일 수 없는 차원이 또한 시에는 분명 있는 것이어서, 마음의 정처를 세우는 일이 더더욱 간단치 않다. 어느 쪽이든 심호흡을 요하는 시절이다. 하기야 유사 이래 기구하지 않은 시절이 얼마나 있었는가.
다만 좋은 시라면, 그 형태가 어떠하건 사사로움을 넘는 대속과 희생의 차원을 지니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 그럼으로써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 나와 남을 아우르는 ‘우리’라는 것을 어느 수준에선가 구현하게 된다는 것은 말할 수 있는 듯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신인상의 심사는 대체로 한 세대 쯤 앞의 사람들이 맡는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다) 인생과 언어의 새로운 사용법, 새로운 질감, 새로운 창법에 민감한, 모험심 가득한 젊은 후보자들에게 이것은 부담이자 갈등일 것이다. 심사위원으로 대표되는 기성의 것들은 불가피하게 보수적이고 방어적이며 몸이 무겁기 때문이다. 신인들은 바로 그런 미적 기득권을 돌파해야 한다. 자신의 매력으로 흡인하고 승복시켜야 한다. 그럴 때라야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새롭되, 수긍되는 미적 새로움’이라는 이율배반의 요구가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낯섦에 대한 기성체제의 신중함이 실은 진정한 새로움에 대한 간절함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립적인 것 간의 종합을 도모하는, 상극과 상생, 적대와 의존의 동시적 지양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 ‘우리’를 구성하고자 하는 정신이야말로 모든 신인 선발제도의 본질이자 지혜인 것이다. 따라서 신인선발제도는 일견 새로움에 대해 방어적이지만 실은 진정한 도전과 패기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 결코 기성의 겉멋만 따라 익힌 애늙은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해두고자 한다.
예심위원들의 수고를 거쳐 본심에 회부된 것은 모두 16분으로, 대체로 고르고 높은 수준의 시들이었다. 다만 원만하고 덕스러운 시들에 비해, 전위적 모험과 도발의 언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한편 섭섭했다. 독회를 거쳐 네 분으로 다시 압축했다.
<거미집 외>는 언어에 대한 노련함과 시적 조형 감각이 도드라졌지만, 바로 그 이유에서 미루어졌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 탄력을 부여하는 감각 훌륭했지만, 어디선지 낯익은 조제방식과 구성원리가 거슬렸고, 현학과 허세의 우려가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콩이 기원 외>는 풍부한 방언의 활용으로 매력적이었다. 이것은 백년도 안 된 인위적 ‘표준어’ 체계에 의해 제압되고만, 문어 기호화한 우리 글, 말의 현실에 대한 각성으로서 의미있는 것이었다. 입말의 생명성에 젖줄이 닿아있지 않으면 글말은 결코 온전할 수 없다. 그 뜻을 높이 사면서도, 다할 자리와 덜할 자리를 분간하는 심미적 균형감이 더 섬세하게 단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토우의 도시 외>는 세계를 향한 차분하고 깊은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이미지나 언어의 과용 없이도 깊이를 감당해내는 시적 구심력이 남달랐다. 다만 본 상의 운영규정을 넘는 경력으로 인하여 최종검토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실종 외>는 고르게 높은 수준이었을 뿐 아니라, 눈의 깊이와 신선함이 감동적이었다. 우리 사회가 지난 백년의 근대화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자리의 쓰디씀을 그의 시들은 서늘한 시선과 상상력으로 포착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진지함과 시선의 신선함을 높이 사고, 표제작품인 <실종>을 당선작으로 삼는 데에 합의했다. 점차 색이 바래가다 마침내 벽 속으로 스며 ‘실종’을 완성하는 신천댁의 이미지는 가볍지 않은 울림을 동반한다. 다만 중복적이라고 느껴지는 대목들이 정돈된다면 좀더 시가 팽팽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다는 점을 조심스럽지만 덧붙여 둔다. 깊고 아름다운 시인이 될 것을 믿는다.
심사위원 (강남주, 김사인)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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