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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문나원

 

 

아침 열시, 여자는 '주름'하고 입속으로 뇌까린다
블라인드로 스며든 몇 장 햇살이 일렁임조차 없이 마룻바닥에 고인다
여자의 삶은 곧 삶은 빨래처럼 표백되곤 한다
주름 팽팽하게 당겨 올라가 집게에 집힌 채 집게발을 들곤 한다
세 아이를 키우며 꼭두서니처럼 잘게 썰린 여자는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는다
여자는 이제 너무 많이 읽힌 문장이어서 시들 수도 없다

청소기 안 먼지들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실뱀처럼 엉긴다
부엌에서, 여자는 알약을 삼킨다
"이것 좀 봐!"
아이가 유리병을 흔든다
병속의 벌이 붕붕거린다
쓰레기통 옆 죽어가는 생쥐 위로
우울증 환자의 머리에 덧씌워진 비닐봉지 같은 햇살이 고인다

값싼 비닐처럼 추억은 야윈다
여자를 잘 따르던 비숑 프리제는 이유 없이 밥을 굶기 시작하더니 보름도 채 안되어 죽었다
남편의 사업은 말린 고사리처럼 불어나고 아이들은 옥수수처럼 자란다
비교적 순조로운 날들이다, 여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단단했던 어제의 눈망울들은 어디서 물기를 버렸는가

그러나 저 살찐 햇살은 그늘의 혈연이다, 햇살은 그늘을 살찌운다
여자는 다시금 뇌까린다, 그나마 다행스런 날들이지 않은가
병속의 벌처럼 숨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만 빼면,

 

 

 

 

[당선소감]

 

내 안에 핀 꽃을 도려내었다. 내 것이면서 결코 내 것일 수 없는 것, 하지만 내 것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왜 모두 상처 입은 것들일까. 진물을 흘리고 있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달라던 어머니가 몹시 그리운 날이다. 술이 다 깨도록 새벽까지 창(唱)을 하시던 아버지도 그립다. 두 분의 한(恨)과 쓸쓸한 낭만이 나에게 시를 쓰도록 종용하였다.

내가 버린 것들과 나를 버린 것들, 그 불가피한 사이의 간극을 시로 쓰고 싶다.

이름 잃은 것들과 이름 없는 것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수술 후 회복 중에 당선소식을 들었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격려하고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오늘 아침 시를 쓴 사람만이 시인'이라고 하신 장옥관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축하해준 가족과 지인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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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여성 특유의 현실 감각에 주목

 

예심을 통과한 30분의 작품을 읽고 모두 여섯 분의 응모작을 다시 가려 뽑았다. '아빠가 돌아온다' 3, '우리는 바다를 떠도는 노숙자들' 4, '동학사' 4, '거짓말 공책' 2, '연습을 훔쳐보다' 4, '괜찮은 날' 3편이 그 작품들이다. 경쾌한 상상력과 낯선 이미지들, 언어의 숙련도가 눈에 띄었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 둔다. 작품들을 다시 검토한 후 우리는 이 후보작들 중 '연습을 훔쳐보다''봄날'에 주목했다. '연습을 훔쳐보다'를 투고한 분의 언어 솜씨는 매우 우수하다. 명확한 시적 결말은 언어의 힘을 충분히 드러내 준다. 그러나 언어적 재기에 치여서 통제력을 잃는 게 흠이다. "꽃잎 하나하나 빼며 허무는 허무虛無/요 며칠 허물어진 발자국들"과 같은 표현이 그렇다. '봄날'을 응모한 분의 작품들에는 전체적으로 일관된 주제와 시선의 힘이 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주제의식이 그것이다. 이 특징은 여성들이 현재 갖고 있을 여러 각별한 현실의 양상들로부터 나오는 것일텐데, 이에 대한 응모자의 인식도 뚜렷하다. "여자는 이제 너무 많이 읽힌 문장이어서"라는 구절은 상투적인 것인데 이 구절을 "시들 수도 없다"라는 표현으로 이어서 새롭게 반전시키는 능력 또한 주목할 만하다. 본심위원들은 이 작품과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들의 일정한 수준을 고려하여 '봄날'을 올해의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아깝게 낙선한 분들에게는 격려의 말씀을 보내면서 새 시인의 탄생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김명인(시인박수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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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뛰기 시작했다 / 임호

 

 
출근길,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

은행알들이 비좁은 그녀의 구두에 밟혀 터진다

 

"헬로 에브리바디~ 근데 내가 좀 바쁘거든요~!"

 

우리의 그녀는 바쁘다

우리의 그녀는 뛰지 않을 수 없다

어깨에 당겨 맨 앙증맞은 가방엔

있어야 할 약간의 센스와

없어도 될 약간의 의심을 담고

우리의 그녀는 뛴다

한꺼번에 많이 벌릴 수 없어 조금씩 뛴다

누군가에게 잡히지 않을 만큼씩 뛴다

먹이를 쪼는 비둘기처럼 뒤뚱거리며 뛴다

그녀는 뛴다

늦지 않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모자라지 않기 위해, 같아지기 위해?

 

그녀의 치마는 그녀가 선택할 수 없는 바람에 흩날리고

그녀의 가슴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안도로 출렁이고

그녀의 쇄골은 떡볶이처럼 흐느적거리고

그녀의 뺨은 뿌듯함으로 달아오른다

 

우리는 이런 그녀를 흐믓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그녀의 페이트런

그녀의 협잡꾼, 그녀의 앞잡이

상처의 방향이 다를 뿐

우리는 한 이불에서 뛰기 시작했다

누가 그녀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명랑한 그녀의 부주의를

누가 그녀를 모른 체 할 수 있겠는가

자꾸만 예뻐지는 그녀의 미래를

누가 그녀를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그녀만의 달콤한 모멸을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피앙세

도려낸 시간에서 흐르는 육즙을 받아 마시며

저 푸른 초원 위에 녹초가 되어 쓰러질 때까지 달리다가

돌아와 그녀가 사라진 엘리베이터앞에 앉아

포크를 움켜쥐고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는

우리는, 우리는 모두

그녀의 그녀

 

 

 

 

[당선소감]

 

기차 플랫폼에 앉아있다. 형형색색으로 머물러 있던 기다란 콘테이너 행렬이 서로 잡아당기는 소리를 요란하게 전달하며 다시 출발한다.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얼떨결에 끊고 한참 후에야 누군가 나를 잡아당겨주는 소리가 뒤늦게 심장에서 울려온다.

 

6년 전 마흔 중반을 훌쩍 넘어서며 웬지 이렇게 살면 안 될 것다는 불안이 밀려왔고,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어보려는 방편으로 시의 문을 두드렸다.

 

출퇴근하는 광역버스에서 착상을 메모해놓았다가 주말 아침 일찍 동네 도서관에 들어앉아 시를 갈무리하고 다시 텃밭으로 나가는 일과가 자주, 꽤 오래 지속되었다. 신촌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시에 묶인 사람들과 합평하며 배운 오랜 시간은 아직도 문학과 시에 대해 막연한 감만 갖고 있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다 쓴 시들을 뒤돌아보면 부끄럽다.

 

나는 왜 시를 택했을까? 시는 내게 무슨 의미인가? '시적인 것'들은 어디에 있다가 언제 나타나는가? 무슨 자격증을 따도 시원찮을 마당에 왜 이른 아침에 시를 쓰고 앉아 있나? 이런 질문들과 싸우다 그만두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시가 설혹 내 인생의 장식물에 불과해지더라도 그냥 같이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 얼마 전의 일이다. 아마도 오늘 당선은 이대로 그 길을 떠나라는 재촉일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숙제를 다 풀지도 못했는데 '참 잘했어요'를 받은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시의 꼬리를 쥐어잡고 끝까지 매달려 가 보지도 않았으며 주소 모를 시의 근처에서 늘 서성거렸던 것만 같다. 그러므로 '이제 여기서 어떻게 한 발 더 내딛어야 하나'가 앞으로의 크고 두려운 숙제이겠으나 그보다 먼저 못다 푼 숙제를 풀어 채워 놓는 것이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양심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시의 불빛이 내게서 깜빡거리는지 지켜봐 주신다면 고맙겠다.

 

시는 늘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자리를 찍어주신 김근 선생님과 시의 끈적끈적한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이재은, 정희영, 조혜영, 정선율 그리고 미처 다 부르지 못하는 詩友들께 영광을 바친다. 뒷걸음 칠 때마다 등을 토닥여 주었고 당선소식에 핸드폰 너머 나 대신 울어준 아내 신경화와 사랑하는 두 아들, 그리고 가족들과 기쁨을 같이 하겠다. 책으로만 접한 시의 여러 큰 스승들과 언제나 무료로 나를 품어준 일산 대화도서관에도 감사를 표한다. 앞으로 내게 좋은 시를 내어 주리라 믿는 이 세상에도 미리 감사한다.

 

 

 

 

예스이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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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모두 열여섯 분의 작품이 본심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의 작품들이었다. 본심에 오른 응모자들의 작품에서는 대부분 서정시를 짓는 언어에 대한 충분한 수련이 느껴졌다.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신춘문예용이라거나 언어적 공교함에 머물러 있다거나 하는 문학상 심사평의 많은 말들도 실은 일정한 수준에 오른 작품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작품 중 본격적인 논의 대상으로 세 분의 작품을 먼저 골라 냈다. 「떨림」 「연어를 읽다」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 세 편이 그것이다.

「떨림」은 사물들에 대한 정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관찰력은 세계의 보이지 않는 면모에 대한 상상과 통할 터인데, 이는 서정시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이 작품이 주목된 것은 그 능력을 기이한 세계나 어색한 낯설음으로 몰아가지 않고 응모자 자신의 독특한 정서로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독특한 정서가 관념의 아득한 아우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 관념의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응모자 자신의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우려하였다.

 

「연어를 읽다」는 세계의 생명과 그것의 순환을 생태주의라는 이념에 실어 묘사한다.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이 상상력은 시의 언어가 곧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의 이념에 연결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름답다. 시의 편에서 보면 그 상상력은 설명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마지막 연이 그에 대한 우려를 갖게 했다. 시를 이완시키는 해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는 언어의 공교함이나 감각적 이미지 제작 능력에 있어서는 위 두 작품보다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 응모자만의 세계와 시각이 살아 있다. 출근길의 조바심을 현대인 모두의 조바심으로 확장시키는 시의 진술들에는 경쾌하고 맑은 삶이 들어 있는데, 시의 언어에는 가벼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늦지 않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모자라지 않기 위해, 같아지기 위해"라는 구절은 저 가벼움과 삶의 비애를 적절히 결합시키는 언어적 능력과 정서 조절의 방법을 잘 보여준다. 심사위원들은 이 새로운 경쾌함과 비애에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하였다.

 

심사위원 이시영,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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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떼 / 원보람

 

 

서른이 지나기 전에 두 번째 실업급여를 받았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햇빛줄기를 나눠먹었고

발끝마다 매달린 검은 노예들도 입을 벌렸다

요즘은 늘 다니던 길을 잃는 사람들이 많아

표지판은 너무 많은 곳을 가리키고

신호등은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만 보내지

도시 곳곳에 설치된 늪지대를 지나다가

영혼을 자주 빠뜨렸다

너무 바쁜 날에는 일부러 나뭇가지에

헌옷처럼 걸어두고 가기도 했다

늪지대에 악어떼가 나온다는 소문이 들렸다

노예들은 밤마다 주인을 뜯어먹었고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무거워지는

노예를 질질 끌다가, 끌려다니다가

 

악어는 심장부터 먹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상자 안에 있는 상자를 열면 나오는 상자 안으로

도시의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갔다

사각지대 안에서 조용히 자라는 아이들

뚜껑을 열면 어른이 되어 나왔다

우리는 시급을 받고 늪지대에 숨어

포크를 쥐고 악어떼를 기다렸다

돈을 모으면 함께 열기구를 타자고 했다

뿌리 얽힌 사람들에게 내리는 비를 지나

위로의 말이 들리지 않는 대기를 지나

구름 사이 피는 버섯처럼

둥근 머리로 허공을 밀어 올리며

계속 가자고 했다

추락하는 일에 익숙했으므로

겨울 내내 올라가는 열기구만 상상했다

악어는 울기 위해 먹이를 씹는다고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손 더 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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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고뇌하던 무수한 밤들… 詩는 애증의 연인"


시를 쓰기 시작한지 10년 만에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소감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시를 붙잡고 보냈던 무수한 밤들이 쏟아집니다. 시는 저에게 애증의 연인입니다. 사랑을 보낼 때는 차갑기만 하더니 괴로운 날이면 언제나 곁에서 아픈 시간을 함께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쓰는데도 내 시들은 언제까지 책상 위에만 머물러야 하는지 좌절하다가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보내고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되었을 때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선 소감을 쓰는 지금 홀로 시를 쓰는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알지도 못하는 당신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고, 몸이 아플 만큼 애쓰지 말고 애증의 연인과 오래 사랑하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지난날을 돌이켜볼수록 고생도 아니고 낙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저는 글을 배우고 쓰는 동안 즐거운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았습니다. 단순한 고생이라면 좋았겠지만 한국에서 글을 쓰며 경험한 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회의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기술이 좋은 사람들이 개소리를 아름답게 써서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목격하기도 했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창작자들을 개소리로 속여 이용해먹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가 오아시스가 아니기에 앞으로도 사막을 헤매야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글을 쓰는 일이 너무 좋아서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해왔고, 버텨낼 거라고 말한다면 분명 거짓말일 것입니다. 몇 년 전 낙산공원 근처 카페에서 합평을 했었습니다. 서로의 시를 붙들고 열을 올리다가 문득 노을이 지는 광경을 보았고, 우리는 약속한 듯이 창가를 바라보며 한동안 침묵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그 순간 온전히 평화로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기루 같은 그 순간들이 마음에 깊이 남아 오래도록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기쁜 일들은 모두 사막을 함께 걸어온 친구들과 교수님들 덕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가슴이 뛰어서 잠을 잘 못 잤다는 아빠와 너무 기뻐서 울었다는 엄마, 사랑합니다. 그리고 착한 내 동생들과 나를 구원한 고양이 다니, 언제나 애정한다. 마지막으로 책상 너머로 시를 내보일 기회를 주신 대전일보사에 마음을 전하며, 어두운 새벽에서 나올 수 있도록 이름을 불러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언어가 아름다워지는 만큼 성숙해지는 인간이 되겠습니다.

 

 

 

검은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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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평범한 시어 속 풀잎 같은 날카로움 느껴져"

 

사람의 눈에 닿으면 동행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말이 있다. 노래가 되고 싶어서 춤까지 추는 언어가 있다. 시인은 그 율려와 함께 춤을 추는 사람이다. 그런 노래는 시인의 깊은 마음 바닥을 짚고 나온다.

 

심사자의 눈과 가슴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시를 기다렸다. 오래된 서당이나 과거시험장의 시가 아니라, 저잣거리와 편의점과 고시원이 즐비한 골목길의 흥얼거림을 원했다. 태초와 시원의 바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 터진 입술과 언 뺨을 때리고 가는 질풍의 시를 기다렸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만만치 않은 시를 읽으며, 심사자들은 긴장했다. 물론 좋은 시만 있는 건 아니었다. 때론 현란하고 모호했으며, 오랜 학습의 지층에 눌려 화석화된 문자도 있었다. 화장이 지나쳐서 돌비늘이 된 언어들도 있었다.

 

우리는 원보람 시인의 「악어떼」 외 3편에서 싱싱하게 팔짱을 끼는 젊은 숨결을 만났다. 미래의 역량이 느껴졌다 .무의미하고 불분명한 감각으로 사유되는 시의 범람 속에서 그의 시는 오롯했다. 평이한 시어 속에 긴장의 풀잎을 날카롭게 세워놓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현실을 정직하게 읽을 줄 알았다. 언어와 표현법 뒤에 숨지 않았다. 가슴에 이미 시인의 자세가 자리를 잡은 증거였다. 손끝 재주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 진물과 용광로에 펜을 찍는 당찬 의지에 손을 들어주기로 흔쾌히 합의했다. 풋풋한 결점을 덮기에 충분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외 4편,「탄금」외 2편이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손에 남았음을 덧붙여야겠다. 두 분은 이미 충분한 관록이 느껴졌다. 「어메이징 그레이스」외 4편은 아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에 함몰되지 않고 팽팽한 운율로 시적 순간을 발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시에 일정한 틀이 생긴 건, 혹 응모작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이마 위에 견고한 벽이 생긴 걸까? 오래 망설이게 했다.「탄금」외 2편은 우리말의 가락과 정서를 잘 형상화한 수준 높은 시였다. 다만, 전통적인 것이 흔히 그렇듯 오래 쓴 수수 빗자루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만큼 언어의 깊이에 닿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에 들지 못한 분들도 이미 시인이다. 시를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다. 막 여행 차표를 받은 당선자는 출발지에 섰다고 여기시길 바란다. 선외 분들은 갈아타야할 승차시간이 조금 지체됐다고, 마음 토닥이시길 부탁드린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시영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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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공 / 성영희

 

그에게 깨끗한 옷이란 없다

한 가닥 밧줄을 뽑으며 사는 사내

거미처럼 외벽에 붙어

어느 날은 창과 벽을 묻혀오고

또 어떤 날은 흘러내리는 지붕을 묻혀 돌아온다

사다리를 오르거나 밧줄을 타거나

한결같이 허공에 뜬 얼룩진 옷

얼마나 더 흘러내려야 저 절벽 꼭대기에

깃발 하나 꽂을 수 있나

 

저것은 공중에 찍힌 데칼코마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작업복이다

저렇게 화려한 옷이

일상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끊임없이 보호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 거미가 정글을 탈출할 때

죽음에 쓸 밑줄까지 품고 나오듯

공중을 거쳐 안착한 거미들의 거푸집

 

하루 열두 번씩 변한다는 카멜레온도

마지막엔 제 색깔을 찾는다는데

하나의 직업과 함께 끝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가 내려온 벽면에는 푸른 싹이 자라고

너덜거리는 작업복에도

온갖 색의 싹들이 돋아나 있다

 

 

 

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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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병상에서도 놓지 않은 시  뜻깊은 퇴원축하선물"

 

아프기 전에는 아프지 않은 것들을 보려했고 아프고 나서는 아픈 것들이 혈육 같아 보였다. 한동안 몸에 병을 들이고 나른한 잠에도 휘청거렸다. 그동안 낭비한 자정과 새벽의시간이 더없이 그리웠다. 이상하게도 시는 그립지 않았으나 주절주절 내가 나에게 털어놓는 잠언이 그리웠다.

 

기쁨은 기쁨끼리 몰려다니는지 당선이라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 자리는 투병생활을 마치고 퇴원축하를 하는 자리였다. 병중에 있으면서도 시를 놓지 않았던 것을 지켜본 환우들이 분명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며 퇴원축하와 함께 당선을 미리 축하해 주었었다. 수화기 속의 메시지는 며칠 전 꿈속에서 보았던 하얀 고봉밥그릇에 담긴 듯 만개한 벚꽃으로 만발하고 있었다. 권위의 장을 열어주신 대전일보와 부족한 글을 끝까지 놓지 않고 선해주신 나태주선생님, 이정록선생님께 더없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누구보다 좋아하실 친정어머니 그리고 저의 빈자리를 묵묵히 지켜준 남편과 사랑하는 딸 다영이와 아들 연욱에게도 이 지면을 빌어 감사와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전역 후 두 달 동안의 아르바이트로 이 시의 소재가 되어 준 아들에게는 각별한 애정을 더한다. 또한 오랜 시간동안 서로 다독이며 시의 길을 걸어온 문우들과 아픈 중에도 서로 위로와 힘이 되었던 환우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어느 순간 아픔이 밀려왔듯이 어느 순간 기쁨이 밀려와 새로운 길 위에 선 지금, 대전일보신춘문예의 전통과 시 정신을 이어받아 따듯하고 인본적인 시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벅찬 기쁨을 갈음한다.

 

 

 

[심사평] "좋은 시는 종이를 박차고 나와 독자를 환대한다"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글쟁이들의 펜 끝에서 새봄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할 게다.

 

201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은 208명이 953편을 응모했다. 원고를 펼칠 때마다 꽃향기가 일고 꽃씨가 터졌다. 오래된 거름냄새가 풍겼다. 논두렁의 제비꽃부터 도심 복판의 팬지까지 다양한 봄 풍경을 만났다. 어느 꽃은 수증기가 꽉 찬 하우스에서 자신만의 시적 포즈로, 분간할 수 없는 시야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제 꽃잎의 빛깔만을 자랑하느라고 열매와 뿌리의 둥근 사색과 사투를 다 담아내지 못한 경우는 북을 돋워주고 싶었다. 꽃대나 이파리만으로도 땅 속 구근과 꽃씨의 과거와 꼬투리의 미래까지 볼 수 있는 여백이 큰 작품을 기다렸다. 전년보다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이 향상이 되었고 신선한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

 

최종심에 든 작품은 성영희 님의 페인트 공  3, 박성수 님의 오렌지 홈런  4, 양순승 님의 어머니의 문장을 쓰다  2편이었다. 참신한 문장과 감정의 절제력과 현실을 읽어내는 시인의 진정성 등을 두루 갖춘 작품에 심사자의 마음이 모아졌다. 서울의 양순승 님은 진정성과 다정함이 장점이었지만 다년생 화초 같은 오래된 소재와 표현의 익숙함이 마음에 걸렸다. 광주의 박성수 님은 그 표현의 참신함이 감동으로까지 잇대어지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떠돌았다. 곧 뿌리모자가 묵직해져서 시적 기둥을 잘 받치리라는 기대를 주었다.

 

당선의 영광은 자연스레 인천의 성영희 시인에게로 모아졌다. 좋은 시는 스스로 종이를 박차고 나와 독자를 환대한다. 살아서 꿈틀거린다. 시의 명랑성이 잔치마당을 만들고 언어유희는 가락을 이루며, 그 노랫말이 현실이라는 구들장에서 온기를 끌어올리며 굴뚝연기처럼 하늘로 퍼진다.

 

신명 좋은 시인의 탄생을 축하한다.

심사자들의 눈이 어두워서 선외로 밀려난 분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나태주 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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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 / 정율리

 

 

하늘에는 울타리가 없다

이 쪽 저 쪽으로 몰려다니는 철새들

초승달로 기러기 행렬이 지나간다

 

하늘을 맹수라 불러보다 깜짝 놀란다

이동하는 저 철새들의 몇 마리는

땅으로 혹은 바다위로 곤두박질 칠 거다

초승달이 몇 마리 삼키고

구름이나 혹은 비바람이 또 몇 마리 삼키겠지

 

기러기들 서둘러 달빛을 벗어나려

한밤의 속도로 튕겨져 나온 행렬

어둠에 묻힌 채 날고 있다

하늘은 야생이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려는 난무(亂舞)의 태생지다

 

밤낮이 자유롭고 계절도 마음대로 바꾼다

낮과 밤은 서로 피해 다닌다

가끔 날아가는 비행기가 지상으로 떨어지고

하늘을 날아오른 집이며 자동차들이

구겨진 채 떨어진다

빈 껍질만 떨어지는 걸로 보아

저 하늘에 포악한 야생의 무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울타리가 없으니 야생이다

날아가는 것들은 무엇에 쫓긴 듯 서둘러 날아간다

낮과 밤이 맹수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폭식을 하고

낮엔 낮에 보이는 것들을 사냥하고

밤엔 밤에 보이는 것들을 사냥한다

조용한 날들이 없는 입이다

 

 

 

[당선소감] "편견없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수 있도록"

 

신춘문예에 응모를 시작한지가 딱 7년째입니다. 한 두 번은 최종심에 앞서 늦은 저녁 같은 전화를 받은 듯도 합니다. 신문사들마다 나이를 물어보곤 했었습니다만 꼭 나이 때문은 아닐 거라고 자위自慰와 결의를 다짐하곤 했었습니다. 빛나는 결과를 앞에 놓고는 늘 염치의 눈치를 보겠지만 이번만큼은 좀 뻔뻔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이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 나태주,이정록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선소식을 전해주신 국장님,'제가 나이가 많은 데요'하고 얼버무릴 때 괜찮습니다, 라고 위로해 주신 말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머리 숙여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전일보에 누가 되지 않도록 명예를 지키겠습니다.

 

대전일보의 마음이 그러하듯 편견 없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정서에 미력이나마 시로 힘을 보태겠습니다. 끝으로 곁에서 항상 힘을 보태준 임봉춘씨 감사합니다. 세 딸과 아들 동근아, 며칠 전 첫 아들을 출산한 며느리 은정아! 너희들이 있어 기쁨에도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리고 5대 독자로 우리가족에게 온 온복아, 세상엔 이런 기쁨이 많단다.

곧 새해가 됩니다. 모든 분들께 건강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스이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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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존재의 깊은 통찰·진중한 삶의 발걸음 박수"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그 첫째 기쁨은 1985년에 시작된 대전일보 신춘문예가 1999년 우여곡절의 춘궁기를 거쳤다가 올해 부활한 일이다. 또 하나는 시 부분 응모작을 심사하는 즐거움이었다. 모든 시는 영혼의 파란만장이다. 그 파란만장이 드리운 수심과 파고와 물보라에 함께 젖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이곳저곳에서 시가 죽어간다고 장송곡을 읊조리지만, 외려 새로운 부흥기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을 읽는 내내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새로운 시인과 눈빛을 나누며 맞절하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다. 부족한 홍보에도 241명이 987편의 시를 응모했다.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선자들이 주목한 시는 김식씨의 <명랑한 그림>외 4편, 이명선씨의 <그린 토마토>외 2편, 정율리씨의 <맹수>외 4편이었다. 김식씨의 시는 전체적으로 신선했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 물방울처럼 새로운 이미지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딱히 한 작품을 선할 수가 없었다. 몇 번 읽다보니 사막을 걷듯 밋밋했다. 신선한 언어와 새로운 기법도 도식성에 빠질 수가 있구나. 경계하기 바란다. 손발을 삶의 바닥에 밀착시켜보는 어떨까? 아쉬움이 남았다.

 

이명선씨의 작품도 신선도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작품마다의 편차가 많았다. 독자를 미로로 끌고 가다가 작가가 외려 독자의 후미로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독자의 출구와 작가의 출구가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행간에 간혹 친절한 안내도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랜 논의 끝에 정율리씨를 당선자로 뽑았다. 정율리씨의 작품은 모두 고른 수준이었다. 존재에 대한 깊은 해석과 중층적 사고 등은 다른 이의 작품보다 월등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가 휘발되는 시인을 많이 보아온 터라서 시인의 길을 오래 걸어갈 진중한 발걸음에 박수를 보내기로 했다. 분명 좋은 시인이 되리라. 선에 밀려난 다른 시인들의 아쉬움을 대신해서라도 각고의 길을 걸어가길 당부한다. 우리는 모두, 나이보다 작품이 일찍 늙는 일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당선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자리에 호명하지 않았어도 이미 좋은 시인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신작시를 쓰리라. 시는 또렷하게 작가를 응시한다. 서로 눈길 피하지 말자.

 

심사위원 나태주·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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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 / 구민숙

 

 

빨랫줄에 매달린 빗방울들
열일곱 가슴처럼 탱탱하다
또르르! 굴러
자기네들끼리 몸 섞으며 노는
싱싱하고 탐스런 가슴이 일렬횡대, 환하니 눈부시다
그것 훔쳐보려 숫총각 강낭콩 줄기는 목이 한 뼘 반이나 늘어나고
처마 밑에 들여 놓은 자전거 바퀴는 달리지 않아도 신이 났다
빗방울의 허물어지지 않은 둥근 선 안에는
주저앉지 않은 꿈들이
명랑한 송사리 떼처럼 오글거리고
서른여섯 나는, 물컹해진 나의 그것과 비교하며
녀석들을 살짝 만져보고도 싶다
그래, 내게도 저런 가슴이 있었지
열일곱, 연분홍 유두가 장식처럼 화사하던,
주눅 들지 않은 노래로 충전되어
금방이라도 둥실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만 같던

나는 바구니에 담아 내 온
일곱 살 아이의 반바지와 말 안 듣길 소문 난 신랑의 양말과
목욕 수건들과 75 A컵 내 분홍 브래지어를 널지 못한다.

 

 

 

[당선소감] ˝시는 곧 내 삶…꿈꿀 수 있어 감사˝

 

많이 부끄럽습니다. 아직 시인이 될 그릇이 못 됨을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밥 짓고 빨래하고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모든 일들이 시와 같아야 함을, 그 모든 일들이 이미 시임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욕심 부리고 옹졸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아직 시인이라는 이름을 받기에는 멀었지요.

하지만 한 편으론 참 기쁩니다. 3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당선의 소식이 마침내 제 몫이 되었다는 것이 꿈처럼 낯설지만 그래도 이 기쁨 무엇과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저의 무엇을 보고 부족한 저의 손을 들어 주셨는지 심사위원님과 대전일보사에 빚을 진 기분입니다.

이 부끄러움과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길바닥만 내려다보던 제가 이제 손차양을 하고 길 너머를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 너머에 닿으려면 쪼그려 앉아 제 마음속 강물 줄기 오래 바라다보는 일 더 많아야 함을 압니다.

새벽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평생을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사신 아버지, 당선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던 남편과 나의 보석 두 아들들 그리고 처음 시에 입문해서 아무 것도 모르던 제게 가르침을 주신 권선생님과 등단문의 산방거인님께 감사드립니다. 네 기쁨이 온전히 내 기쁨이 된다던 친구와 서림문학회 동인들 감사합니다. 평생 삶으로써 시를 쓸 것을 당부하신 중학교 은사님의 말씀이 앞으로 제 글의 지표가 될 것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일이어야 함을 또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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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메시지 분명하고 시적 논리 합당˝

 

예심을 거쳐 선자들에게 넘어온 스무 분의 30여 편의 시들 중 선자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당선을 겨룬 작품은 다음 세 편이었다.

<멀리 보는 잠언>은 요즈음 유행하는 시들의 시류에 편승하고 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인식하는 감각은 신선했고 형상화 방식 또한 개성적이었다. 특히 “석양 무렵 던져진 새들에게서 붉은 사과향이 난다” 같은 표현에서 보이듯 그는 느낌을 형상화하는 데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시상의 전체적인 전개가 추상적이고 모호했으며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그 메시지가 불분명했다. 시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의 한 양식인 한 추상적 전언의 약점은 더욱 치명적인 것이다.

<허물어지는 것들>은 앞의 작품과 달리 이른바 메시지가 분명한 사실주의적 기율의 시였다. 그러나 그의 시는 현실의 ‘재현’에 충실한 나머지 그 현실적 모사를 한 단계 뛰어넘는, 이른바 시적 비약의 순간을 자기 작품에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약점을 범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들이 피랍선원들과 아홉시 뉴스, 조간 속 활자들을 거쳐 지난 암흑의 시절 “외삼촌이 허물던 야심한 밤들”에까지 육박하고 있으나 그 너머, 다른 세상을 구현하려는 데까진 미치지 못한 채 그야말로 현실의 모사 속에 갑갑하게 갇히고 말았다. 네루다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지만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 또한 죽은 시인이라는 말을 이 시인은 명심하기 바란다.

<비 온 뒤>는 우선 깨끗하게 정돈된 작품이며 메시지가 분명하고 시적 논리가 합당하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의 결점을 충분히 뛰어넘고도 남는 작품이었다. “빨랫줄에 매달린 빗방울들/열일곱 가슴처럼 탱탱하다/또르르! 굴러/자기네들끼리 몸 섞으며 노는/ 싱싱하고 탐스런 가슴이 일렬횡대, 환하니 눈부시다”라는 첫 부분의 표현들에서 보듯 이 시는 어느 날 우연히 목격된 ‘빗방울들’에서 시적 사념을 출발시켜 그것을 약동하는 언어의 충전으로 끌고 나가다가 마침내 그것을 ‘시로써’ 터트릴 줄 아는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선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괜스리 어렵거나 추상적이거나 한 표현 한 구절 없이 자기 소리를 하나의 작품 안에 오롯이 담아낼 줄 아는 그 시적 절제 또한 믿음직스러웠다. 한마디로 싱싱하고 단정하며 마지막 연에서 보듯 장난기 어린 웃음이 배시시 행간 밖으로 삐어져나올 듯한 작품이다. 선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면서 그의 감각이, 그의 언어가 사념과 철학을 동반하며서, 오늘의 유행에 주눅들지 않으면서 더욱 깊은 세계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오세영,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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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애벌레 / 이종섶

 

 

낡은 책장은 망치로 부수는 것보다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
나무의 이음새마다 박혀있는 나사못
숨쉬기 위해 열어놓은 십자정수리를 비틀면
내장까지 한꺼번에 또르르 딸려 올라오고
허물처럼 남아있는 벌레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붙어있는 것들을
대여섯 마리씩 잡을 때마다
하나 둘 떨어져나가는 책장의 근육들
바닥에 납작 주저앉을 무렵엔
한 줌 넘게 모인 애벌레가 제법 묵직했다
가지와 가지 사이를 물고
깊은 잠을 자야했던 동면기가 끝나면
훨훨 나비가 되어 숲속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책장이 늙어버린 탓에
애벌레만 집을 잃고 말았다
꼼지락거리는 것들 땅바닥에 던져버리려다
회오리돌기가 마디마디 살아있어
공구함에 보관해둔다
상처도 없고 눈물도 없으니 언젠가는
다시 나무속에 들어가 살게 될지도 모른다
밤만 되면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소리
나무의 빈 젖을 물고 싶어 오물거리는 소리
고아원의 밤이 깊어간다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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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시는 진실한 나의 평생친구”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와 함께 걸어온 듯 했으나 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시는 날마다 나의 위로와 기도가 되었으나 나는 돌아서면 시를 잊어버렸다. 시는 나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었으나 나는 결코 시의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시가 나에게 찾아와 조용히 말을 걸 때마다 나는 귀 기울여 들어주지 못했고 내 길을 가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시 쓰기를 한 이후는 오히려 내가 시를 붙잡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고, 동시에 시를 절망하고 원망하는 일이 많았었다. 뒤늦게 다시 손을 벌리는 내가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친구와 함께 계속 한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또다시 저울질 하곤 했었는데, 바로 그 순간 시가 슬며시 내게로 와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오랜 친구와의 반가운 해후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이제 서로의 마음을 깊이 알고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그동안 시가 나를 친구로 대해주며 나를 지켜주었던 것처럼 나도 시를 내 진실한 친구로 대하며 살고 싶다. 친구 이야기를 잘 듣고 잘 전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이 친구를 내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제일 먼저 감사드린다. 가족과 함께 몇몇 이름도 부르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 선미와 두 딸 가을과 하늘, 시를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최영환 조수일 백미경 시인, 시의 깊이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박은영 시인, 함께 동행하고 싶은 최은묵 시인.

무엇보다 심사위원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그 뜻을 알고 더욱 정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18일에 본심이 끝났으나 성탄선물을 드리려고 24일에 전화했다’는 대전일보사에도 가슴 벅찬 감사를 드린다.

 

 

 

 

바람의 구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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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독특한 상상력… 개성 돋보여”

 

결심에 오른 작품들의 수준은 작년보다 높았다.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나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려고 노력한 점 등에서 대부분의 작품이 일정 수준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신춘문예 투고작들이 종종 그렇듯이 요설로 인해 불필요하게 글이 길어진 작품이 많다는 점, 그리고 개성적인 작품이 드물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중에서 다섯 사람의 작품이 거론되었다. ‘흑백필름’은 착상의 신선함에서, ‘털과 향로’는 섬세한 언어구사에서, ‘졸참나무 숲’은 주제를 추구하는 힘에서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약간씩의 결점도 가지고 있어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미진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과 ‘책장애벌레’를 놓고 꽤 오랜 시간 숙의하였다.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추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던 때문이다.

‘그녀의 집’의 지은이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다양한 시어를 자유롭게 엮어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특히 이 작품은 장애를 가진 몸으로 아이를 길러내는 여인을 토마토 나무와 연결하여 건강성을 추구한 짜임새 있는 전개가 좋았다.

‘책장애벌레’는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낡은 책장을 부수는 과정을 담은 이 시는, 해체된 책장 자체보다 책장을 지탱하였던 나사들에 주목하였다. 나무를 물려 책장을 구성했다가 할 일을 잃은 나사들에게 연민과 애정을 표현한 이 시는, 이 시대에 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상실감을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숙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시적 표현의 세련미보다는 개성 쪽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책장애벌레’는 생생하고 힘이 있어 감동을 창출하는 데 좀 더 강했다. ‘그녀의 집’도 당선작이 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좌절하지 말고 좋은 시를 쓰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명인, 양애경 / 예심 심사위원: 이정록,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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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 최재영

 

 

연두빛 내력들이 제 몫의 봄을 키우느라
햇살을 끌어 모으는 중이다
허공 한구석 팽팽해지고
골목에 나앉은 늙은 여자들
볼우물 가득 생의 이력을 오물거리는지
골목은 하루종일 분주하다
봄의 한 복판에서 출렁이는
저 환한 푸념들
가지마다 탱탱하게 들어차는 수런거림
한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
지상과 허공 그 짧은 간극으로
물오른 생의 주름들이 펼쳐지고
음탕한 농담 한 두 마디 건넬 때마다
자지러지게 흩어지는 쭈글쭈글한 웃음소리
잠시 생을 붉게 물들이는
봄날 눈(眼)빛 환한 기억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담장에 기대앉은 봄꽃들
한동안 그들이 피워올린 검버섯을 따라 올라가고
여기 짧은 환희, 봄은 덫이었나.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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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든든한 버팀목 동인들에 감사”

 

오랫동안 불면과 함께 지냈다.

불편한 이름 하나 가슴에 간직한 채 수년을 흘러왔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고 새벽녘 수시로 찾아들던 까닭모를 설움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새 머리맡에서 수군거리는 은유의 모퉁이만 스쳐도 그 밤은 행복했다.
눈을 뜨면 무수히 쏟아지는 허물……, 나는 얼마나 자주 절망을 내몰아야 했던가.
시 쓰기는 항상 어렵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이곳까지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크고 작은 사소한 상처들이 생의 변두리로 나를 밀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의 흔적 하나씩 생길 때마다 내가 견뎌야 할 시간은 깊고 또한 어떤 목표라고 여기던 것들은 점점 멀어지는 순간을 경험하면서 매번 쓰디쓴 독배를 마시곤 했다.


지사연수로 대둔산을 산행하게 되었는데 그곳 정상에서 어떤 새로운 다짐을 새기고 있을 때 전화를 받았다. 골목길…… 내 생의 상처가 자라고 그 상처가 다시 꽃이 되어 피어나는 곳, 바람이 들어차면 그곳에 뿌리내린 모든 삶이 다시 환하게 들썩거리는 곳……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길을 나는 오래도록 사랑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내 언어의 뿌리도 그곳을 지나치지 못할 것이고 오래오래 곰삭아 깊은 맛이 우러나는 언어가 그곳에서 피어날 것이다.


내 안에 푸른 독이 스미기를, 내 안에 갇힌 사유들이 자유롭게 햇빛을 볼 수 있기를, 그래서 날카로운 칼날로 나를 벨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 편 한 편 시를 쓸 때마다 다짐을 한다. 삿됨없이 시를 쓰도록, 내 시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또한 절실하지 않은 그 무엇을 나는 애써 미화하고 있는가를…….


이미 올 봄에 이승을 떠나신 어머니, 당선소식에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예쁘다고 말해준 남편, 아침도 잘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를 제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이들, 모두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내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의 지사장님과 이곳 평택의 영어를 책임지는 사무실의 선생님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 같은 시원 동인님들과 이 기쁨을 같이 하겠다. 부족한 작품에 손 들어주신 대전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큰 절 올립니다

 

 

 

루파나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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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적 미학 절묘한 표현 돋보여”

 

예심을 통해 올라온 작품은 16명이 출품한 80여편이었다. 이 중에서 본심을 통해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네 명의 다섯 작품.

 

‘그해 겨울…’(허남훈)은 아프가니스탄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시였다. 변압기 공장에서 손가락마저 잘리고 임금마저 받지 못한 채 고향인 카불로도 갈 수 없는 처지인 형을 한국인 화자의 시선으로 그렸다. 이 시는 과거의 리얼리즘 시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품 속에 감상주의의 낙인이 깊게 남아있다.


‘맛있는 두부’(최성춘)는 이채롭고 속도감 넘치는 시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말랑말랑한 두부는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두개골이 갈라져 피가 나듯이/ 녹슨 냄새와 국물은 흘러나왔다”처럼 식탁에 차려진 두부와 오토바이 사고의 기억을 합성시켜 특이한 시적 활력을 생성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후반부로 갈수록 활력을 살리지 못한 채 상투형으로 마무리된 것이 흠이다. 시는 소설처럼 연속된 서사가 아니라 비연속의 연속적 서사다. 텍스트에 너무 친절한 서사를 부여한 점이 이 시의 최대 약점이었다.

 

‘떠들썩한 식사’와 ‘검객 사오정’(김영식)은 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떠들썩한 식사’는 “오후 두시의 강변 뷔페 안” 창가 식탁의 어느 청각장애부부의 “부지런한 필담”을 마치 그 부부의 일원이 된 듯 세밀하게 전하고 있다. 또 ‘검객 사오정’은 “황사 휘날리는 도시 비탈을 순례”해야 하는 자본주의 세일즈맨의 ‘검법(판매술)’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두 작품의 결점을 굳이 찾자면 작품들이 너무 고요하게 완성됐다는 점이다.


“연두빛 내력들이 제 몫의 봄을 키우느라/ 햇살을 끌어모으는 중이다”로 시작되는 ‘골목길’(최재영)은 응모작들 중 단연 돋보이는 따뜻한 작품이다. 총 20행의 시행들이 저마다의 밀도로 촘촘히 살아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볼우물 가득 생의 이력을 오물거리는지/ 골목은 하루종일 분주하다”와 같은 표현은 그야말로 순간포착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또 시적 미학을 충분히 쏟아놓은 마무리 역시 뛰어나 심사위원들은 일치된 마음으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김명인,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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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거울 / 정용화

 

 

얼어있던 호수에 금이 갔다

그 틈새로 햇빛이 기웃거리자

은비늘 하나가 반짝 빛났다

그동안 얼음 속에서

은어 한 마리 살고 있었나보다

 

어둠에 익숙해진 지느러미

출구를 찾아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 속을 헤엄친다.

넓게 퍼져 가는 물무늬

한순간 세상이 출렁거린다

 

깊고 넓은 어둠 속에서

너를 지켜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픔 속에서 반짝임이 나온다

반짝이는 모든 것은

오랜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

 

금이 간다는 것은

또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다

깊이 잠들어 있는 호수 속에서

물살을 헤치고 길이 꿈틀거린다

 

 

 

 

나선형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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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참된 미학 지향해 나갈것

 

매서운 기세로 겨울이 당도했습니다
바라보던 눈빛 그대로 두고 이파리 다 떨군 나뭇가지는
그 모습만으로도 춥습니다 하지만 나뭇가지 속에는
겨울이 푸른 어둠으로 꿈꾸고 있음을 믿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시를 품고 살았습니다
문학은 내게 있어 미완성적 허기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시가 되기 위해 기다리던 사물들이 언어를 만나
갇혀있던 존재에게 제 이름을 붙여주고 작고 하찮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면서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내안의 또 다른
나를 다독여야했습니다
언젠가 수필집에서 꿀벌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원래 꿀벌은 몸집에 비해 날개가 작아서 날 수 없는데
꿀벌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날개짓을 해서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나 역시 꿀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선 부족한 글에 눈 맞춰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생을 부여해주신 부모님과
인생의 동반자이면서 같은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남편,
예비 시인인 딸 혜미와 함께 당선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십년동안 변함없이 시창작을 지도해주신 배준석 선생님과
안양여성문학회 문우들에게 이 영광 돌리고 싶습니다
날카로운 지적 아끼지 않았던 박남희 선생님과 문학을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던 인사동 착시 모임도 꼭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입니다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간절히 날기를 원하기
때문에 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인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신 대전일보사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참된 미학을 지향하는 시쓰기로 보답 하겠습니다

 

 

 

 

서투른 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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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완성도ㆍ날카로움 돋보여

 

수천편의 응모작 가운데 함민복 이정록 시인의 엄격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우이정의 빈컵외 정재영의 밤톨, 다이아몬드외 등 17분의 시 70여편이었다. 다시 심사위원 두 사람이 나누어 읽고 추려낸 것은 김영식의 떠들썩한 식사, 김명희의 노트북, 이지혜의 곰달래길 사람들, 정재영의 손이 쥔 손, 그리고 정용화의 금이 간 거울외 등이었다.

 

이 작품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최종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곰달래길 사람들’, ‘손이 쥔 손’, ‘금이 간 거울3편이었다.

 

곰달래길 사람들은 안정된 시 정신과 표현이 너무나 모범적인 것이어서 좋은 작품으로 판단되었으나 바로 그점이 동시에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손이 쥔 손은 너무 작품성이 농익어 그만 터져버릴 것 같은 원숙함이 장점이었으나 동시에 그것이 신인다운 패기나 신선도에 있어 아쉬움으로 작용하였다. 오랜 고심과 논의 끝에 금이 간 거울을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당선작은 작품의 완성도도 높고 시적 사유의 깊이 또한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예리하고 신선한 감각이 신인으로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아픔 속에서 반짝임이 나온다/반짝이는 모든 것은/오랜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금이 간다는 것은/또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다라는 구절등에서 볼 수 있듯이 틈의 틈을 날카롭고 섬세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어둠 속에서 빛이, 무에서 존재가 생성되고 존재가 비로소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존재론적 사유를 보여주는 것도 장점과 가능성으로 부각되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면 좋은 시인으로 성장해갈 것을 믿고 우리는 이 작품과 시인을 당선작으로 선정할 것을 합의할 수 있었다. 당선자의 각고 정진과 선외 예비 시인들의 새로운 분발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심사위원 김재홍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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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뱃사공 / 김면수


갈잎의 노래로 자란 바람이 구름에게로 가 입김을 불면

입김의 무게 만큼 쏟아지는 햇살을 한 올 한 올 모으고

저녁 강가에 산란을 하며 물이 든 노을은

수심 깊은 바다로 가 유년의 추억이 된다

밤이면 낡은 목선에도 훤히 불 드는 전구

그물마다 달과 별과 스무 살 꿈이 싱싱하게 꿈틀거린다

세월은 어머니 이마에 주름진 햇살 눈부시게 그려 놓고

갈잎의 노래로 손을 든다 이제 나는 깨어나는 바람이다

 

 

 

 

2005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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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새벽에게 물어 물어 詩에게로 갔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다시 멀어지던 詩에게서 절망을 느끼고
새벽이면 다시 물어 절망을 주섬주섬 모으고
내 안의 스승처럼 아침 빛 다 새어 들도록 詩에게로 가 눕고…
잠들기 전 내 끝내 내뱉지 못하고 절망이 되어 버린 詩들을 찾고…

당선 소식을 접하고 얼마의 기나긴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몇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이미 지친 몸을 마음이 다독거려주었고
詩 세계로 몰입할 때, 내 이상국은 가까운 곳에 존재함을 보았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사람을 위해 詩를 쓰면서 애인을 사랑했다.
갑자기 싫어진 詩를 보면 애인은 나에게로 와 집 하나 지어 주고
그 안에 세월 그 무엇으로도 퇴색될 수 없는 사랑을 심어 주었다.
詩人이란 천명의 주제로 하여금 좀 더 나은 발전과
매사 성심으로 정진할 수 있는 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애인 문미정에게 사과 반쪽을 나누듯 당선의 영광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순간 펜을 꺾어 갈잎의 노래로만 재우려는 내게 도약할 수 있는
힘과 열정을 보이지 않게 배로 승화시켜준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바람과 뱃사공’ 미학적 성취감 돋보여

 

1500여 편의 응모작들 가운데서 일차로 40여 편을 고르고 다시 10편, 또 다시 5편을 고르는 방식으로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김면수씨의 <바람과 뱃사공>과 강란숙씨의 <상수리 나무의 우듬지를 보며>였다. 이 두 편은 특별히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나 시도 예술의 한 분야라는 것을 감안해서 메시지 전달력보다 미학적 성취감이 돋보이는 <바람과 뱃사공>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바람과 뱃사공>은 길이가 매우 짧은 단시이다. 그래서 무언가 크고 난해하고 문제적인 것을 높이 평가하고자 하는 우리 문단의 풍조로 에서는 언뜻 소품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시란 가능하면 짧은 진술에 함축된 철학과 단단한 형상력을 지닐수록 좋다. 그러한 의미에서 당선작은 최근 우리 시단의 유행이라 할, 쓸 데 없는 사변 중심의 신경증적 시에 대해서 충분히 경종을 울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햇빛처럼 반짝거리는 감각적 이미저리, 잘 짜여진 구성력, 하나도 흐트러짐 없는 언어의 조사, 참신한 상상력이 하나로 결집되어 이루어진 참으로 보석같은 작품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마지막 시행의 ‘이제 나는 깨어난 바람이다’와 같은 시행은 인생에 대한 시인의 내적 성찰이 예리하게 드러나 있다.

<상수리나무의 우듬지를 보며> 역시 한편의 시로서 나무랄 데가 없는 작품이다. 생활에서 발견한 시인의 인생론적 진실이 감동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을 높이 샀다. 그러나 형상력에서 다소 미흡하고 신인으로서의 패기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고로 최후선까지 오른 분들의 작품으로는 강현자씨의 <종발자국>, 주영국씨의 <아내의 푸른 손>등이 있었다.

심사위원 김종해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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