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 묵향 / 리호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 거요
나는 돈키호테, 잡을 수 없다고 하는 저 하늘의 별을 잡는
적도의 펭귄0
벼루에서 부화시킨 난에 하얀 꽃이 피었다
마모된 자리를 찾아 B플랫 음으로 채웠다
제 몸 갈아 스민 물에서 서서히 목소리가 자랐다
노송을 머리에 꽂고 온 사향노루가 어제와 똑같은 크기의 농도를 껴입고
불씨를 건네는 새벽
그늘을 먹고 소리 없이 알을 낳는 스킨다비스 줄기 끝에 햇빛의 발걸음이 멈춘 그 시각
무장해제 된 상태로 소파에 누운 평각의 그녀가
봉황의 눈을 깨트리며 날았다
익숙한 무채색으로 난을 치듯 아침을 그렸다
향 끝에 끌어당긴 빛으로 불을 놓으면 곱게 두루마기 걸치는 묵향
단테가 잠시 머무르기로 한 지상의 낙원이 검은 호수 속에서 걸어 나왔다
[가작] 그리운 지구 / 조철형
비빌 언덕이 없어 제때 일어서지 못하는 소처럼
바람막이가 없는 삶은 찬바람이 숨어들기 안성맞춤이다
사람들은 올곧게 뻗은 나무가 보기에 좋은 법이라고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종달새처럼 앵무새같이 말을 한다
언덕 없이 살아온 나무는 제 발밑에 언덕 한 줌 그늘 한 줌 키운다
그늘에는 기댈 등이 없는 원초적 서러움을 품은 셀 수 없는 생명, 생명이
저마다 킁킁대며 몸을 비비며 자라난다
내 아버지가 언덕이 없었듯이 언덕을 소유한 적 없으므로
언덕의 기쁨을 태초부터 맛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등을 자근자근 밟고서 춤추어 본 적 없는 나는
생의 절반을 절룩거리던 아버지의 슬픔이 붉은 등을 타고 기어올라
목 뒤에 둥그렇게 작은 집 하나 지어 놓은 것을 보았다
내 작은 손으로 그 집을 잠깐 만져보는 날이면
물컹한 눈물이 분수처럼 치솟을까 봐
저만치에서 까치발을 한 채 내 작은 몸을 비틀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버지의 붉은 등을 점점 닮아 가는 등을
내 아이에게 보여주기 싫은 밤이면 바람 되어 윙윙거리며 야간비행을 한다
오로라에서 푸른 빛 내 별을 향해 온전한 기도를 올린 후,
내 아이가 잠들고 있는 그리운 지구를 향해 빛의 속도로 돌아온다
가작(입선)
양진영-폐가를 어루만지다
김은호-책의 장례
유지호-밀물
송종관-고공의 낚시터
서해웅-아스퍼거증후군
장경동-어제
손우호-청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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