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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영화 / 이진우

 

서른다섯 번을 울었던 남자가 다시 울기 시작했을 때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람이 슬퍼지려면 얼마나 많은 복선이 필요한지

관계에도 인과관계가 필요할까요

어쩐지 불길했던 장면들을 세어보는데

처음엔 한 개였다가 다음엔 스물한 개였다가

그다음엔 일 초에 스물네 개였다가 나중엔 한 개도 없다가

셀 때마다 달라지는 숫자들이 지겨워진 나는

불이 켜지기도 전에 서둘러 남자의 슬픔을 포기해버립니다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니까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니까

이 사이에 낀 팝콘이 죄책감처럼 눅눅합니다

극장을 빠져나와 남은 팝콘을 쏟아 버리는데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다고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라고

누군가 중얼거립니다

이런 얘기들은 등뒤에서 들려오곤 하죠

이런 이야기들의 배후엔 본 적도 없는 관객을 다 아는 세력이 있죠

문득 다시 궁금해집니다

뻔한 것들엔 아무 이유도 없는지

안 봐도 안다는 말에 미안함은 없는지

우리의 관계는 상영시간이 지난 티켓 한 장일 뿐이므로

텅 빈 극장엔 불행과 무관한 새떼들이 날아다니고 있을테지만

그것들은 다른 시간대로 날아가지 못합니다

가끔 이유 없이 슬픈 꿈을 꾸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예스이십사

 

deg.kr

- 에드픽 제휴 사이트로 소정의 수수료를 받습니다.

 
 
 

[당선소감] 살갗이 있고 피가 도는 ‘살아있는 詩’ 써나갈 것

 

운이 좋았습니다.

 

겸손도 아니고 그것을 가장한 교만도 아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행운들을 지금 다 써버린 건 아닌지, 그래서 남은 인생을 불행하게 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까지 합니다.

 

감사한 분들의 이름부터 불러 보겠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이외의 다른 말은 떠오르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가족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감정을 충만하게 해주는 Bassment167의 멤버 철하와 봉겸이, 지금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주신 도원이 형과 종상이 형, 조금 많이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기를 바라는 지훈이, 그리고 제 부족한 시들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주신 유계영 시인, 서효인 시인, 박준 시인, 김기택 시인, 장석주 시인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 누구에게보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고집부리던 아들을, 그 일을 하다 허리를 다친 아들을, 그래서 몇 달째 생활비조차 주지 못하는 아들을 항상 사랑해주는 엄마에게, 가장 큰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심사평] 당선자가 시집을 낸다면 누구보다 먼저 살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열세 분의 작품들이 취업 절벽, 사회 양극화, 저출산, 이주 노동, 기후 재난 같은 사회의 현안을 제치고 기분에 쏠린 현상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기분이란 미시적 영역에 천착한 시편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이번 신춘문예의 공동 주제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을 지경이다. 현실에 반향하는 내면의 메아리이고, 생의 사소한 기미를 머금은 감정 생활의 한 조각이라는 점에서 기분을 배제할 이유는 없겠지만 이 쏠림은 다소 염려스럽다. 이것이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오늘의 비정한 세태를 반영한 징후이고, 자기애의 과잉 때문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 탓이다.

 

그렇다면 이 사소한 감정의 굴곡인 기분이 어떻게 시의 모티브가 되는가를 눈여겨볼 수밖에. 먼저 경험과 이미지 사이 표면 장력이 작동하는 힘이 느슨한 시, 얕은 경험과 조각난 이미지의 흩어짐으로 끝나는 시, 감각적 명증성을 견인하는 데 실패한 시를 걸러냈다. 최종으로 남은 ‘멜로 영화’ 외, ‘손자국’ 외, ‘연안’ 외 등등은 좋은 시는 “운명을 동봉한 선물”(파울 첼란)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생의 변곡점일 수 있는 순간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그러쥐고 모호함을 뚫고 나오는 시적 명증성을 붙잡은 한 응모자의 ‘멜로 영화’ ‘홈커밍데이’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이 시들은 범속한 생활 감정을 의미가 분광하는 이미지로 빚어낼 뿐만 아니라, 자연스 언어 감각과 섬세한 느낌의 표현은 시의 풍부화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었다. 숙고와 머뭇거림에서 길어낸 사유를 자기의 리듬에 실어 전달하는 능력, 능숙한 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듯이 시를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은 분명 귀한 재능이다. 이 응모자가 첫 시집을 낸다면 서점에서 누구보다 먼저 시집을 구입해 읽고 싶다는 게 우리 속마음이다. 당선 문턱에서 멈춘 두 예비 시인께도 아낌 없는 박수를 드린다.

 

- 심사위원 : 장석주 시인,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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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슈퍼 / 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서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씹던 껌을 껌 종이로 감싸도 새것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당선소감] 미래의 나, 미래의 에게 이젠 씩씩하게 걸어갈 것

 

나는 늘 어딘가 엉성한 아이였다. 단체 줄넘기를 하면 꼭 줄에 걸리는 아이, 큐브를 맞추는 데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아이, 대답이 느리고 말을 자주 더듬는 아이, 결정적인 순간이면 반드시 긴장해서 실수하는 아이. 자주 망신을 당했다. 내가 엉성한 존재라서 세계도 나를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자의식과 수치심이 비례했다.

 

수치심은 내가 느끼는 숱한 감정들의 형이다. 슬픔과 분노와 죄책감 같은 동생들을 데리고 나를 줄기차게 따라다닌다. 그런 수치심과 거리를 두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수치심을 파괴하기까지 한다. 사랑을 사랑해서, 세계를 사랑해서, 사람을 사랑해서, 시를 사랑해서 나는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다.

 

사랑하는 모든 것을 더 잘 사랑하고 싶은 마음, 그것마저 사랑이라고 믿는다. 나에게 시는 그 사랑에 대한 고백이자 답변이었다.

 

내 엉성한 발걸음과 어울리는 이상한 길을 끝없이 내어주는 시에게 고맙다. 그 길에 첫걸음을 내딛게 해 주신 한양여대 권혁웅 교수님, 장석남 교수님, 양연주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상한 길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알려 주신 이영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못생긴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 발자국이 더 멀리 나아가도록 힘을 보태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내 모든 용기의 근원이 되는 수정, 세리, 재아, 지은, 소정, 민경, 효린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고맙다. 혜정, 선우에게도 고맙다. 나보다 나를 더 믿어 준 연수에게 고맙다. 무한한 지지 속 연대감을 알게 해 준 한양여대 동기들에게 고맙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나의 가족. 이수기 씨, 고동진 씨, 그리고 동생들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오래전 누군가는 내가 머문 자리마다 꼭 흔적을 남긴다며 긴 꼬리 인간이라 놀려댔다. 흔적은 영혼의 때, 꼬리는 거추장스러운 그림자 같은 것이다. 내게는 그런 것이 성가실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제는 뒷모습 보이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씩씩하게 걸어가고 싶다.

 

무궁무진하고 이상한 미래, 미래의 나, 미래의 시에게로.

 

 

 

 

[심사평] 퉁치면서 눙치고, 하면서 하는 시적 패기 높이 평가

 

시의 봄은 세상의 봄보다 빨리 온다. 시의 나라에서는 새해 첫날이 새봄의 첫날이다. ‘신년문예가 아니고 신춘문예인 까닭이다. 엄동설한에 봄을 열어젖히는 신춘 시처럼, 시의 시제(時制)는 언제나 미래다. 천 년 전을 노래하는 시라고 해도 그 시가 좋은 시라면 시의 마지막 행은 미래로 열리기 마련이다. 이번 새해 첫날에도 시의 나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입국 비자를 발급한다. 시인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 시의 영토가 다시 넓어지는 순간이다.

 

입국 심사대에 올라온 본심 대상작 열 분 중 네 분이 남았다. ‘폭우’()는 일상의 균열을 포착하는 감각적 묘사와 시적 통찰이 빛났으나 예견 가능한 시적 구도가 아쉬웠다. ‘팝콘꽃’()은 가족이라는 근원적인 상처 혹은 폭력을 겨냥한 팝콘처럼 튀는 비유적 상상이 매력적이었다. 튀려는 시적 욕망을 조금만 더 제어했으면 싶었다. ‘’()은 언어를 어떻게 마르고 잇고 매듭짓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언어의 압침들이 꽂힐 언어 이전이나 언어 너머의 지점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졸업반’()을 내려놓는 데는 긴 논의가 필요했다. 그의 시편들은 시가 노래와 만나는 지점을 잘 알고 있었다. 리듬감이 좋았고 시의 완성도도 높았다. 시편들에서 엿보이는 시에 대한 열정과 내공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그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는 기시감이었다.

 

럭키슈퍼’()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최근 시의 파장 안에 있으면서도 지금-여기의 사회 현실과 청춘의 당사자성이 감지된다는 미덕이 있었다. 버려진 과일(홍시), 낙과(사과), 씨는 물론 껍질째 먹는 과일(자두), 그리고 부풀었다 터지는 단물 빠진 풍선껌, 헐렁한 양말, 납작한 동전을 먹는 자판기 등이 있는 럭키슈퍼가 화자의 현주소다. 젊은이의 미래와는 먼 오브제들이다. 화자는 농담 맛이 가득한 럭키슈퍼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화자의 동창이자 럭키슈퍼사장 딸은 감미료로 비유되는 대기업의 맛을 맛보고 있다는 대비도 능청스럽다. 퉁치면서 눙치고, ()하면서 통()하는 행운의 의미를 농담과 엮어내는 시적 패기를 높이 평가했다. 신춘 같은 미래를 향해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딜런 토마스), 그런 시의 힘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문재 시인 정끝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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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 않은 마음 / 강우근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해수면 위로 몸을 뒤집는

돌고래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매일 다른 색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있다.

버스에서 승객들은 함께 손잡이를 잡으면서 덜컹거리고,

승용차를 모는 운전자는 차장에 빗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편의점에서 검은 봉투를 쥔 손님들이 줄지어 나오지.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없는,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생겨나는.

어느새 나는 10년 후에 상상한 하늘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쥐었다가 펴는 손에 빛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그랬다.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당선소감] 는 우산이자 꽃이었고 세계에 맞서는 검이었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희망을 품어보는 것처럼, 구름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제가 흰 종이 위에 써나간 것을 시라고 불러주는 사람들 덕분에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시는 어렸을 적에 집에서 혼자 끄적이던 낙서와 닮았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해온 낙서 같은 것. 어제와 오늘도 했고, 내일도 하게 될 것.

 

저는 그 시간을 세계의 일로 만들기 위해 시를 선택했는지 모릅니다. 시는 다른 것들과 만나면서 저를 넓은 세상으로 데려갔습니다. 시를 쓰면서 손에 쥐었던 연필은 비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우산이 되고, 거름이 될지 알면서도 피어나는 꽃이 되고, 세계에 팽팽히 맞서는 검이 되었습니다. 매일 뜨는 햇빛처럼 시는 제가 살던 마을의 사람들을 새롭게 밝히고, 또 다른 마을로 모험을 떠나게 했습니다.

 

그 모험의 시작점에서 저의 소질을 알아봐 주셨던 명륜고 전희선 선생님 감사합니다. 서울예대에 진학하면서 문학이라는 모험을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헤매기도 했던 제게 시를 쓸 용기를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김언 교수님, 채호기 교수님, 김혜순 교수님 감사합니다. 문학의 즐거움을 알려주신 김태용 교수님, 정용준 교수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나의 시를 기쁜 마음으로 읽어주고, 얘기해 주던 규민이, 연덕이, 재영아 정말 고마워! 저에게 손을 건네주신 문태준, 정끝별 심사위원분에게 감사합니다. 좋은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자연을 보여준 엄마와 아빠, 그 자연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누나 사랑해!

 

어린 마음으로 오래 쓰겠습니다. 바보 같은 마음으로 성실하게 쓰겠습니다.

 

 

 

 

 

[심사평] 마스크, 소독된 병실코로나 시대 투영한 詩語 돋보여

 

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토를 가려 한다. 한 편의 시는 매번 새로운 길을 가려 한다. 그 길에 앞장 설 신예에게 기대하는 것은 모험의 불꽃일 것이다. 본심 대상작인 열두 분의 작품들은 고르게, 시적 모험의 흔적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전 지구적 재앙의 영향인지 고립된 현실에 대한 암중모색 속에서도 희망 혹은 미래에 대한 사유가 눈에 띄었다. ‘자두’ ‘소문은 눈을 즐겁게 해요’ ‘단순하지 않은 마음을 놓고 오랜 숙고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자두는 젊은이들의 일상과 세태를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디테일한 감각에서 삶에 대한 애착과 부정이 동시에 느껴지며, 절제된 감정에서는 숨겨진 절망과 분노가 감지된다. 무엇보다 자두라는 물성에 대한 천착과 그 상징성은 이 시의 비유적 깊이를 더해준다. 그러나 이 디테일한 묘사가 때로 산문과의 경계를 묻게 했다. ‘소문은 눈을 즐겁게 해요는 검은 봉지 속 고구마에서 싹튼 순을, 실체 없는 소문에서 돋은 뿔로 비유하고 있다. “아낌없이 썩은 고구마가 딸려 나왔다는 통찰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소통 방식을 풍자한다. 모범 답안과도 같은 시적 완성이 오히려 낯익음으로 다가왔음을 밝혀둔다.

 

최종적으로 단순하지 않은 마음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일일(日日)의 단일하지 않은, 갈래와 가닥이 많은 사건들이 어떻게 내면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주목한 작품이다. 돌발적이고, 바뀌고 달라지며, 충돌하고 흩어지는 일상, 그것이 곧 우리 존재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말한다. “마스크”, “소독된 병실과 같은 시어를 통해서는 코로나 대유행의 사회적 상황을 투영하고도 있다. 무엇보다 마음과 같은 관념어를 제목으로 내세우면서도 정공법으로 개진해가는 뚝심에서 앞으로 펼칠 시작(詩作)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갖게 했다. 한국 시단의 일신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문태준, 정끝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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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 고명재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2020 신춘문예 당선시집

 

nefing.com

 

 

[당선소감] 사랑하는 것들 사라져도 이야기는 남아 있겠죠

 

어렸을 적,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은 문을 열어둔 채로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 사라질 거면 저 많은 별과 두꺼운 전화번호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꽃은 왜 피고 수퍼 앞 고양이는 왜 목을 긁는지, 그 모든 것들이 알고 싶었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키워주신 혜능 스님이 작년에 세상을 비우고 걸어가셨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랑이 떠나면 가슴 한가운데에 번개처럼 금이 생기는데, 그 금 위로 사랑의 강물이 흐르게 된다는 걸 요즘에 와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야기가 남습니다. 몸이 사랑이 됩니다. 또한 그 이야기와 사랑조차 시간에 녹아 다 사라진대도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눈부신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사랑하는 김문주 선생님, 사랑의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의 스승이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처음 이곳에서 선생님이 강의했던 날, 칠판에 쓰신 라는 글자가 제 이마를 뚫었어요. 창이 흔들렸죠. 속이 일렁거렸어요. 창밖은 봄이었는데, 선생님이 나긋나긋 시를 읽어주셨는데, 바로 그때 저는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이상한 확신에 휩싸였어요. 시를 이야기할 곳도, 배울 곳도 없던 이곳에서 저에게는 선생님 단 한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시였어요.

 

소중한 기회를 주신 문정희, 정호승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영남대의 스승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함께 시를 쓰며 걸어온 현정이, 송이, 유신아. 우리 계속 같이 걷자. 같이 산책하자. 동우, 현수, 혁준, , 대희형, 승빈, 지영, 상회, 수정, 주은 늘 고마워요. 끝으로 어머니, 아버지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하면서도, 밤이면 시를 읽어주신 두 사람. 저는 두 사람 덕분에 '사랑의 바깥'을 몰라요. 영재만 알지. 영재야, 이건 형이 처음 말하는 건데, 너는 형아가 쓴 시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사람이란다.

 

 

 

 

[심사평] 오르내리는 바이킹의 공포와 인내, 우리 삶 비춰

 

언어는 소통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 시의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의 한 단면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그것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에 본심 심사 대상이 된 시의 경우, 소통하기 어려운 시가 많았다. 인간의 삶은 존재하지 않고 언어만 존재해서 그 언어의 유기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시의 그릇에 제각기 놓인 추상적 관념적 언어를 통해 언어의 난무(亂舞)를 보았다. 삶의 내용이 내포되지 않은 시의 언어는 그 의미를 잃는다. 의미를 잃고 형식만 남음으로써 소통이 불가능한 시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한국 시의 위기다. 그러나 최종심까지 논의된 몇몇 작품은 그런 위기감을 다소 진정시켜 주었다.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소통 가능한 언어로 쓰였으나 폭우에 떨어진 사과의 의미에 보다 깊은 사색의 비유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초행'은 화장한 유해를 들고 산을 오르는 과정을 대화체로 쓴 작품이다. 그러나 과정에 치우친 나머지 그 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죽음의 의미에 대한 독자성이 부족했다. "다시는 안 볼랍니다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차 한 대가 쌩하니 지나가는 겁니다" 등에서는 유해를 모시는 진정성에 의구심이 일었고, "검은 봉투에 흰 가루를 품에 꼭 안고"에서는 응축되지 못하고 풀어진 점이 있었다.

 

'진심으로'는 진심에 대한 양의성이 있었다. '진심'을 진심(眞心)으로 이해했을 때는 시에 생명력이 있었으나 사람 이름으로 파악했을 때는 평범한 일기 같은 산문성이 두드러졌다.

 

당선작 '바이킹'은 한 남녀가 놀이기구 바이킹을 타면서 한순간 겪게 되는 고통과 공포를 통해 우리 삶의 절망과 희망이 교직되는 순간순간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재적 삶이 바이킹을 타는 행위로도 재해석되었다.

 

바이킹이라는 배를 타는 안식과 기쁨보다는 배가 좌우의 방향으로 높이 오르내릴 때 경험하게 되는 위험과 불안, 고통과 인내 등이 바로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실과 같다는 의미가 암유돼 있다. 당선을 축하한다. 당선자는 한국 현대시의 미래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 심사위원 정호승, 문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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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당신 / 문혜연

 

 

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이름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

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

나는 당신의, 당신은 나의 이름을

새들에게 우리는 우리일까요

 

우리를 대신할 말을 찾아요

수많은 단어들이 사라져요

뻐끔거리던 입술들이 짝을 짓습니다

입술을 부딪치며, 서로에게 옮아가는 인간들

새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날아다닙니다

새들은 새들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부리를 부딪치는 새들은

정다운 만큼 가벼운가 봐요

 

자신을 닮은 사람을 세 번 만나면 죽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지렁이와, 지렁이 모양 젤리

그걸 공포라 할 수 있나요

머리와 꼬리를 알 수 없는 젤리는

달콤하고 모호한, 주인모를 관계들

우리는 점점 닮아 가는데

누가 누굴 닮은 건지 모를 때는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지금

2%의 당신 자신과, 98%의 당신의 당신

순도 높지 않은 당신, 그리고 나

끝 모를 바닥으로 가라앉아요

 

새들은 언제나 아득한 높이에서 웁니다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물에는

새의 밑면만 지나갑니다

깊이 가라앉은 바닥, 그곳에서 우리는

떠오를 수 없는 낮은 음, 낮은 울음

 

새들의 이름은 그들의 인사가 됩니다

우리의 울음도 우리의 내일이 될까요

안녕, 당신, 안녕

유언 같은 안부를 주고받아요

우리는 새들의 세계에서도,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인간은 역시, 새들에게는 이해받을 수 없나봅니다

 

 

 

2019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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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몰라서 아름답던 순간들사랑을 담아 쓸 것

 

서촌에 있는 이상의 집을 두 번 찾아가고, 두 번 실패했습니다. 첫 번째는 내부를, 두 번째는 외부를 수리 중이었습니다. 늘 어디를 허물고 있는 이상의 집을 보며, 어쩌면 세 번째 방문에도 이곳은 제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게는 시가 그랬습니다. 다다르고 싶은, 그러나 늘 스스로 허물어지는 집. 완전한 순간을 영영 모를 것만 같아 두려웠습니다. 안과 밖을 다 허물고 나면, 그 후엔 무엇이 남을까요. 끝없는 부서짐 끝에 남은 것이 아주 작은 돌 하나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걸까요.

 

지금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작은 돌이 주는 아픔을,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감사히 쓰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모를 때 사랑이 생겨난다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당신의 모든 것을 알 때 당신은 제 것이 아닙니다. 몰라서 아름답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사랑을 담아 시를 쓰겠습니다.

 

딸의 느린 발걸음을 쓰다듬으며 비춰 주시는, 가장 큰 나의 해와 달, 엄마 아빠, 감사해요. 동생 해정, 너는 나의 큰 자랑이야. 이서화씨, 당신의 글에 대한 열정이 늘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시의 뼈와 살, 그 사이를 흐르는 피의 뜨거움을 알려주신 최승호 교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시를 읽는 눈이 얼마나 깊고 넓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신 유성호 교수님, 처음 제 글을 보여 드리던 떨림을 다시 느낍니다. 부서지고 또 부서지면서도 나눠주신 온기로 다시 쓰겠습니다.

 

 

 

 

 

[심사평] 새와 인간의 관계 통해 이 시대 사는 '우리'를 성찰

 

시가 운문의 세계인데도 산문적 진술의 세계를 현란하게 드러낸 시가 많았다. 행갈이와 연 구분이 무시된 산문 형태 시를 많이 투고하는 현상은 한국 시의 미래를 위해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내적 운율과 침묵으로 함축되는 시의 본질적 부분이 신인들의 시에서 도외시되는 까닭은 산문성에 기울어진 한국 시단의 유행을 비판 없이 쉽게 따른 탓이다. 산문 시대일수록 시인이라면 시의 고유한 본질을 지켜나가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시를 왜 써야 하는지 그 필연성마저 결여돼 사유의 얄팍함이 엿보인다. 시의 본문은 물론이고 제목에까지 외래어나 외국어를 남발하는 점은 그 필연성의 결핍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최종심까지 거론된 시는 '당신의 당신' '만년설' '사랑하는 언니' 세 편이다. '사랑하는 언니'는 어미가 통일돼 있지 않은 데다 지나치게 연 구분이 많아 전체적으로 발랄하지만 다소 가벼워 보인다는 점, '만년설'은 오랜 습작 과정이 느껴질 정도로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반면 구태의연함으로써 신선미가 부족하다는 점이 큰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으로 결정한 '당신의 당신'은 시적 감각이 신선하고 섬세하며 사유의 개성이 깊어 신뢰가 갔다. 새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내면적 삶을 성찰하게 하는 높이가 돋보였다. 당선자는 더욱 노력함으로써 한국 시의 미래가 되길 바란다.

 

- 심사위원 : 문정희,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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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문서 / 이린아

 

 

잠자는 돌은 언제 증언대에 설까?

 

돌은 가장 오래된 증인이자 확고한 증언대야. 돌에는 무수한 진술이 기록되어 있어. 하물며 짐승의 발자국부터 풀꽃의 여름부터 순간의 빗방울까지 보관되어 있어.

 

돌은 한때 단죄의 기준이었어.

 

비난하는 청중이었고 항거하는 행동이었어.

 

돌은 그래.

인간이 아직 맡지 못하는 숨이 있다면 그건 돌의 숨이야. 오래된 공중을 비상하는 기억이 있는 돌은 날아오르려 점화를 꿈꾼다는 것을 알고 있어.

 

돌은 바람을 몸에 새기고 물의 흐름도 몸에 새기고 움푹한 곳을 만들어 구름의 척후가 되기도 해. 덜어내는 일을 일러 부스러기라고 해. 하찮고 심심한 것들에게 세상 전부의 색을 섞어 딱딱하게 말려 놓았어. 아무 무게도 나가지 않는 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것도 사실은 인간이 쌓은 저 딱딱한 돌의 축대들 때문일 거야.

 

잠자던 돌이 결심을 하면 뾰족했던 돌은 뭉툭한 증언을 쏟아낼 것이고 둥그런 돌은 굴러가는 증언을 할 거야.

 

단단하고 매끈한 곁을 내주고 스스로 배회하는

돌들의 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이 굴러다닌 거야.

아무런 체중도 나가지 않을 때까지.

 

 

 

 

2018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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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불화 다독이다 알게 된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치와 쓸모없음은 분명 어떤 상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던 핀잔들이 오늘, 이렇게 기쁜 일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인간의 존엄은 지속 가능한 현재에 있다는, 언젠가 누구에게 들었던 충고도 이해되는 순간입니다.

 

한때 스스로와 타자 사이를 화해시키려 애썼음을 고백합니다. 그 불화를 다독이다 시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를 보이고 들었던 악평들에 감사합니다.

 

뮤지컬 무대에서 수백 번 읽고 외웠던 가사가 어느샌가 노래로 쏟아져 나올 때, 붕붕거리던 노래가 다 빠진 그때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던 것이 시가 아니었을까 의심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 의심을 믿습니다.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공연 끝난 무대의 쓸쓸함이 제게는 시였습니다. 노래는 제게 이율배반이라 힐책하고, 시는 주눅이나 챙기라 또 힐책했습니다. 이제 그 양립과 쌍방으로부터 조금은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정희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쓰고 또 쓰겠습니다. 저 스스로가 양립과 쌍방이 되겠습니다. 움직이는 결단이자 따뜻한 소통의 지향점이 되겠습니다.

 

어머니라서 존경하는 신명희 여사님, 당신은 여전히 제게 확신 없는 난해(難解)의 밑줄입니다. 온정을 가진 내 소중한 오빠 이욱진, 영원한 지지자 아버지께 감사와 뜨거운 포옹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집을 선물해준 조해은 선생님! 격려와 지지를 주신 김종환, 권세훈, 조민영 은사님, 나의 애틋한 벗 성연지, 유은숙, 조민정. 고맙고 고맙습니다.

 

 

 

 

 

[심사평] 현란하지 않게돌에 비친 시대정신의 단면

 

신춘문예 투고 시를 읽으면 가슴이 뛴다. 한국 현대시의 오늘과 내일을 파악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한다. 마치 아이돌 가수들이 현란한 춤 동작을 앞세우다 정작 노래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신춘문예 투고 시 또한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언어의 춤이 지나치게 현란해 시의 본질을 잃고 있어 안타깝다.

 

최종적으로 거론한 작품은 그림자 꿰매기’(문수빈) ‘오늘의 기원’(김성열)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장현) ‘저녁 기도’(정동일) ‘망망’(이철우) ‘돌의 문서’(이린아) 6편이었다.

 

그림자 꿰매기는 그림자를 통한 인간관계 실체의 탐구 정신이 엿보였으나 전반적으로 관념적이라는 이유로, ‘오늘의 기원은 현실의 고통을 구체화한 점은 좋았으나 언어 사용이 구태의연하다는 점에서,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는 춤추는 남녀의 모습을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저녁 기도는 하루의 삶을 성찰하는 태도는 진지하지만 내용에 연결성이 없고 산만하다는 점에서 제외됐다. ‘망망은 해도(海圖)를 인생과 역사의 지도로서 인간 해방과 자유를 은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였지만 서사의 구체성 부족 등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당선작 돌의 문서는 진실한 증언이 요구되는 이 시대의 이야기로 읽힌다. 침묵을 옹호하는 시대에서 침묵의 증언을 요구하는 시대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 시 전체를 관류하는 정신이다.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안정적이어서 신인답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당선자가 돌에 새겨진 문서의 구체적 내용을 앞으로 두고두고 시로 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심사위원 문정희(시인),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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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 유수현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

 

서로의 이해는 아귀가 맞지 않았으므로 나는 왼손으로 문을 열고 너는 오른손으로 문을 닫는다

 

손을 잡으면 옮겨오는 불편을 참으며 나는 등을 돌리고 자고 너는 벽을 보며 자기를 원했다

 

악몽을 꾸다 침대에서 깨어나면 나는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애인을 바라보며 우리의 꿈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악몽 중 하나였지만 금방 잊혀졌다

 

벽마다 액자가 걸렸던 흔적들이 피부병처럼 번진다 벽마다 뽑지 않은 굽은 못들이 벽을 견디고 있다

 

더는 넘길 게 없는 달력을 바라보며 너는 평화, 말하고 나는 자유, 말한다

 

우리의 입에는 답이 없다 우리는 안과 밖

 

벽을 넘어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

 

어둠과 한낮 속에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티브이를 끄지 않았으므로 뉴스가 나오고 있다

 

 

 

 

2017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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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답장 없는 편지첫 답장을 받았습니다

 

답장 없는 편지를 쓰다 처음 답장을 받은 마음입니다. 이 느낌이 신기해 꽃병에 넣어 기르고 싶습니다. 물을 주고 또 지켜보고 싶습니다. 잘 묶어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습니다.

 

문정희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 감사합니다. 축하해주실 때 칭찬받은 아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윤한로 선생님, 배은별 선생님, 김유미 선생님. 처음 시를 쓰는 재미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남진우 교수님, 박상수 교수님, 천수호 교수님.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지윤아, 은경아, 유수야. 매번 나 반겨줘서 고마워. 원석아 네 방 더러워서 내가 청소하고 나온 거 잘했지? 깨끗하게 나랑 오래 만나자. 의석이 형, 태희 형, 윤희 누나, 다영 누나, ·누나로 나한테 있어줘서 고마워. 성원아, 가원아 맛있는 곳 있으면 소개해줘. 다 같이 가서 맛있게 먹자.

 

도훈이 형, 철용아 우리 계속 시를 쓰자. 호숫가 여인숙에서 바라보던 철길처럼 오래오래 이어지자. 종연이 형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시 쓰고 읽어준 거 정말 고마워요. 성연아, 재한아 이제 좋은 형이 아니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사랑해.

 

다희야 술 마셔줘서 고맙고, 지원아 네가 우체국을 찾았기에 이 공모를 낼 수 있었다. 꼭 만나자. 상원아 매일 밤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말이 꿈이 되었다.

 

안또니오 신부님, 레문도 수녀님 군생활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브리엘 학사님 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안드레아, 엄마 데레사, 형 이냐시오와 시몬, 이유 없이 사랑해주기에 항상 미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시를 읽어줄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당신이 오늘의 사람일지 내일의 사람일지 내가 죽은 후의 사람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뿐입니다.

 

 

 

 

[심사평] '무엇이 우리 삶의 진실인가' 질문을 던지다

 

오늘날 한국 시의 큰 병폐 중 하나로 소통의 결핍과 부재를 들 수 있다. 시를 쓴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이 서로 소통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적 삶과 동떨어진 비구체성, 환상과 몽상의 방법으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언어적 태도, 개인의 자폐적 내면세계에 대한 지나친 산문적 천착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이러한 시들을 제외하고 시적 형성력의 구체성이 높은 작품을 우선하기로 먼저 논의했다.

 

본심에 오른 15명의 작품 중 최종적으로 거론된 작품은 곽문영의 마법사 K’, 이광청의 초콜릿’, 이은총의 야간비행’,노경재의 캐치볼’, 신성률의 신제품’, 유수연의 애인등이었다. 이 중에서 신제품애인을 두고 장시간 고심했다.

 

신제품은 구멍가게를 하며 늙어가는 한 내외의 삶을 신제품에 빗댄 시다. 옛것을 통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하고 있는 시로, 발상은 신선하나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한 산문적 안정감이 오히려 시적 형성력과 신선미를 잃고 있다고 판단했다.

 

애인은 시대적 삶의 투시력이 엿보이는 시다. 오늘의 정치 현실을 통해 무엇이 우리 삶의 진실인가 질문을 던지는 시다. 그러나 단순히 정치 현실을 바탕으로 세태를 풍자한 시라기보다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삶의 진실을 추구한 시다. 여와 야, 적과 동지,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 서로 적대하는 관계가 오늘의 정치 현실적 관계라면, 이 시는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더는 넘길 게 없는 달력을 바라보며 너는 평화, 말하고 나는 자유, 말한다에서 알 수 있듯 인내를 통한 평화와 자유의 관계가 현실적 삶의 진정한 원동력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에서도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실은 그 가치의 공존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오늘 우리의 삶을 애인 관계의 공생성에서 찾아내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하는 데에 성공한 이 시를 통해 내일 우리의 삶은 분명 사랑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문정희(시인),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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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 안지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자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 때에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 시간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언젠가 손을 맞잡았던 적이 있지, 짧게

우리라고 불릴 시간은 딱 그만큼이어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당신을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오래 마주보고 있기엔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나 투명해

표정은 쉽게 미끄러지고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 등이 보이는 오늘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게

기일 축하해,

 

 

 

 

2016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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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불면에 시달린 날들 이제 푹 자고 싶어요

 

극심한 불면증이었다. 열대야를 기르는 나날. 지옥에는 다 자란 내가 있다고 믿으며 매일을 버텼다. 내게 죄를 부여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하루에 삼켜야 할 알약이 늘어나는 만큼 내가 소화해야 할 내일이 쌓였다. 하루 열두 시간 노동을 해야 서울살이가 가능했다. 퇴근길 버스는 늘 기분 나쁠 정도로 따뜻하고, 나는 언제나 잠깐의 사람. 버스에서 내리면 가야 할 집은 있지만 정착할 수 있는 집은 없는 사람. 나는 꿈에서조차 잠이 든 척을 했다.

 

이런 제게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신 정호승, 문정희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려요. 명지대학교 김석환·이재명 교수님, 품에 넘치도록 저를 꼬옥 안아주시는 신수정 교수님, 다정한 편혜영 교수님, 감사합니다. 늘 저를 예뻐해 주시는 남진우 선생님, 부족한 제 언어에 힘을 실어 주시고 다듬어 주셨어요. 영원한 나의 캡틴, 이영주 선생님께는 언어라는 틀에 차마 다 담아내지 못할 마음뿐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마음 써주신 천수호, 박상수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 올립니다.

 

빛나는 순간에 항상 함께해준 윤수, 지윤, 주혜, 은혜, 예솔. 나의 꽃들. 앞으로도 함께하자. 나의 안식처 희정 언니, 애틋한 선화. 계속 글 쓰자. 오래오래 축하해준 태우 오빠, 고마워. 보고 싶은 민용 오빠, 인영, 보배 언니. 지원, 유경, 지애, 양정. 너희를 떠올리면 내 마음은 이미 대구야. 나보다 더 기뻐해준 지향, 보람 언니 고마워요. 건강하자, 지수. 내 대학생활의 즐거움, 흑풍. 제 시의 처음을 읽어준 선희, 혜민, 은희 언니. 용준 오빠. 명지대 시모임, 이미 나에겐 최고의 시인들. 그리고 내 영혼의 쌍둥이 우선. 내가 심해로 가라앉을 때 넌 내 산소통이었어.

 

엄마, 기철. 당신들은 나의 원동력. 내가 시를 쓰는 이유. 나의 수호천사 이모, 고마워. 이모부도. 할머니, 고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당신들의 기도 덕분에 제가 숨을 쉽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제야 답합니다. 사랑해요.

 

 

 

 

 

[심사평] 소통의 · 죽음에 대한 역설적 인식 돋보여

 

최종심까지 올라온 16명의 시 50여 편을 읽고 느낀 공통점은 '소통로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두루뭉수리여서 쓴 사람 혼자만 읽고 서랍 속에 넣어두어야 할 시를 읽게 되는 고통은 무척 컸다.

 

"이전의 이후의 반물질과/ 무기체의 감각/ 물렁뼈에 속하는 밤/ , (), 현실/ 가느다랗게 흐트러져가는 형상에 대한/ 신뢰는 얼마나 대단한가."(이현정 '벽에 걸어놓은 외투는 살아 있다' 부분)

 

한 예에 불과하지만 최종심에 오른 시는 대부분 시 스스로 독자의 이해를 거부한다. 현란한 기교가 난무하고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산문성이 두드러진다. 시의 심장이 은유라면 그 은유의 심장이 피를 흘리다 멈춘 듯하다. 다양성이 미덕인 시대에 그 다양성을 긍정한다 해도 지나칠 정도로 관념적이다. 마치 관념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는 서정과 구체에 뿌리를 내린 비관념적 소통의 시는 이미 낡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시는 낡았든 새롭든 소통의 통로를 통해 써야 한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흐르지 않는 꽉 막힌 수도관을 통해서는 물 단 한 잔도 받아 마실 수 없다. 그동안 한국 시단은 뒤틀린 추상과 관념의 언어로 구축된 불통의 시를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관용하거나 방치해왔다. 행과 연 구분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필연성이 결여된 산문 형태의 시와 관념적 불통의 시가 한국 현대시의 미래라고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오늘의 현상은 한국 현대시가 어떤 한계에 다다른 부정적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구어체로 이루어진 당선작 안지은의 생일 축하해는 당선작이 될 만큼 작품으로서 우수성이 탁월했다기보다는 소통 가능한 시가 그래도 이 시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생일 축하해는 삶과 죽음을 동질 관계로 인식한 바탕에서 쓴 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일상의 순간에 만나 깊은 애증의 대화를 나눈다. 죽음이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이라는, 기일이 생일이고 생일이 바로 기일이라는 이 역설적 인식은 죽음을 도외시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종심에서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박은지의 공유지, 박진경의 다이빙, 이종호의 작은 방, 이현정의 북극점 한 바퀴등이다. 이 작품들에 대해서는 시는 언어로 이루어지며 그 언어가 지닌 구체의 본질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 심사위원 정호승 시인, 문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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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현우

 

 

면과 면이 뒤집어질 때, 우리에게 보이는 면들은 적다

금 간 천장에는 면들이 쉼표로 떨어지고

세숫대야는 면을 받아내고 위층에서 다시

아래층 사람이 면을 받아내는 층층의 면

면을 뒤집으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복도에서, 우리의 면들이 뒤집어진다

발바닥을 옮기지 않는 담쟁이들의 면.

가끔 층층마다 떨어지는

발바닥의 면들을 면하고,

 

임대 희망아파트 창과 창 사이에

새 한 마리가 끼어든다.

부리가 서서히 거뭇해지는 앞면,

발버둥치는 뒷면이 엉겨 붙는다

앞면과 뒷면이 없는 죽음이

가끔씩 날선 바람으로 층계를 도려내고

접근금지 테이프가 각질처럼 붙어있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할 때 내 면을 볼 수 없고 네 면을 볼 수 있다 반복과 소음이

삐뚤하게 담쟁이 꽃으로 피어나고 균형을 유지하는 면, 과 면이 맞닿아 있다

 

어제는 누군가 엿듣고 있는 것 같다고

사다리차가 담쟁이들을 베어버렸다

삐져나온 철근 줄이 담쟁이와 이어져 있고

밤마다 우리는 벽으로 발바닥을 악착같이 붙인다

맞닿은 곳으로 담쟁이의 발과 발

한 면으로 모여들고 있다

 

 

 

2015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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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가슴속 마지막 흰 눈한 알 한 알 잊지 않고 꼭 먹겠습니다

 

정현우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것이 귀라는데, 묻고 싶었다. 할아버지를 껴안고 들썩거리는 아버지 등허리에 내 얼굴을 실컷 묻고 싶었다. 닫힌 자물쇠가 조금씩 열린다. 먼저 심사위원님들 감사합니다. 가능성을 열어주신 박주택 선생님께 이 영광 올립니다. 격려해주신 이성천, 안영훈, 이문재, 김종회 경희대 교수님들 고맙습니다. 항상 용기 주신 노은희 작가님, 아들 세건, 영감 주셨던 전기철 선생님 사랑합니다. 임경섭 선배님, 작은 거인 민지, 문예창작단 감사합니다. 보랏빛 나무 빵수 누나 유학 멋지게 마치길. 그린마인드 요리, 맑은 민혜, 광렬 호열 삼촌 경주 갈게요. 이병철, 서윤후, 김산, 정형목 시인 건필하시길. 벗 진걸, 준기, 기문, 학수, 기혁, 대진, 대학원 동기들, 경석, 순자, 광배, 연주 행복하길. 나의 우상 혜경, 혜은, 하늘색 꿈 지윤 누나, 가족 같던 김보민, 박지현, 김희수 아나운서님, 인생의 스승 나의 피터팬 KBS 박천기 PD, 조력자 김홍련 작가님, 귀감을 주셨던 방귀희 선생님 함께하고 싶어요.

 

미군으로 복무 중인 누이, 오랫동안 투병해 온 아버지, 그리고 당신. 방 한 칸에서 살았던 여섯 살, 방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당신을 따라 분리 수거함을 뒤지곤 했습니다. 옷이며 신발이며 저에겐 보물이었고 날개였습니다. 기억하나요. 할머니의 입술에 당신 입술을 맞추던 날, 할머니가 소복이 눈으로 쌓이던 날, 가슴속 가장 큰 방 속에서 당신과 있었다는 것을. 당신의 따스한 방이 되고 싶어요. 남부럽지 않은 지금도, 분리 수거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나의 은인, 정삼선 사랑합니다. 시를 놓지 않던 십년의 겨울, 제 가슴속 마지막 흰 눈이 날립니다. 한 알 한 알 잊지 않고 꼭꼭 먹겠습니다. 살아가겠습니다.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어나더커버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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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우리 시대 삶의 다양한 을 성찰

 

본심에 오른 응모작 가운데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정현우), ‘우산 없는 혁명’(고원효), ‘야간개장 동물원’(박민서) 세 편이었다.

 

야간개장 동물원은 지상의 거울로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헤아리는 상상력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낮에는 잠을 자다가 밤에만 나타나는 천상의 동물들을 통해 야성을 상실한 채 일상에 매몰돼 살아가는 현대인의 처지를 반어적으로 노래한 이 작품은 단아한 이미지의 직조가 인상적이었다.

 

우산 없는 혁명은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올해 외신면을 달군 홍콩의 우산 혁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쉽고 친근한 어조로 쓰였음에도 이런 유의 시가 빠져들기 쉬운 상투성에서 벗어나 있었고 우리 현실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재기와 사유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은 평면 측면 얼굴 경계선 바닥 방향성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면이란 단어를 활용하여 우리 시대 삶의 다양한 을 성찰한 작품이다. 인간이든 건물이든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면들의 만남과 어긋남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로부터 갖가지 문제가 발생한다고 이 작품은 들려주고 있다. 이 시에 담긴 지혜는 통속적 잠언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서 오래 되새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세 작품을 앞에 놓고 장시간 고민과 토론을 거듭하다 선자들은 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다른 두 응모자의 경우 여타의 투고작들이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한 반면 정현우의 작품은 모두 고른 수준과 밀도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 본심에서 논의된 응모자로는 바람의 혈관의 김민구, ‘자백의 김창훈 등이 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다른 응모자들에게도 건필을 기원한다.

 

- 심사위원 정호승(시인남진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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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 최현우

 

 

부슬비는 계절이 체중을 줄인 흔적이다

비가 온다, 길바닥을 보고 알았다

당신의 발목을 보고 알았다

부서지고 있었다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몸짓이 처음 춤이라 불렸고

바람을 따라한 모양새였다

날씨는 가벼워지고 싶을 때 슬쩍 발목을 내민다

당신도 몰래 발 내밀고 잔다

이불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듯이

길이 반짝거리고 있다

아침에 보니 당신의 맨발이 반짝거린다

간밤에 어딘가 걸어간 것 같은데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돌았다고 한다

맨발로 춤을 췄다고 한다

발롱*! 더 높게 발롱!

한 번의 착지를 위해 수많은 추락을!

당신이 자꾸만 가여워지고 있다

 

* 발레의 점프 동작

 

 

 

2014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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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눈이 내렸다오늘은 암호를 해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랭보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아팠다고, 외로웠다고 자랑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시를 앓는 사람들이 다 아프고 외로워서 혼자 특별하게 피 흘린 척할 수가 없다.

 

시와 현실의 압력 차이로 사람이 펑 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며, 희망과 절망을 양 겨드랑이에 한쪽씩 목발 삼고 걸었다. 편한 쪽으로 기대려다가 자꾸 넘어졌다. 주저앉는 곳은 어디나 골목이 되었다. 그 담벼락에 실컷 낙서나 하다, 침도 뱉다가, 날아다니는 나방을 세어보기도 하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희망과 절망에 같은 힘을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십원짜리 동전을 세우는 일 같았다. 그러니까 아주 가끔씩만, 나는 희망도 절망도 아닐 수 있었다.

 

김혜순·송찬호 두 심사위원께서 호명해주셨다. 스무 살 때 허연 시인이 영혼에 열병을 심어주셨다. 불치병이 되었다. 박찬일 교수님과 김다은·윤호병 교수님께 목구멍의 생선가시처럼 걸려 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이형우 교수님과 많은 술잔을 기울였고, 임경섭 선생님과 거짓말처럼 한 약속이 있다.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추계 학우들의 축하 때문에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고, 부모님께 아직도 반찬 투정하는 아들이고, 내게 미현은 여전히 반짝거린다.

 

간밤에는 목발을 잠시 내려놓고 주저앉아 길게 자란 발톱들을 깎았다. 날이 밝았다. 이곳에 눈이 내렸다. 그 위로 누군가 모스부호처럼 흘린 발자국, 오늘은 해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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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발뒤꿈치 들고 도약을 시인이여, 더 높게 발롱(점프)!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광고의 말과 현란한 드라마 대사 속에서 시가 나아갈 길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구름·사랑과 이별, 버려진 구두 한 짝, 창문의 덜컹거림, 전화기 속의 흐느낌등을 질료 삼아 늘 그래 왔듯 묵묵히 시를 쓰는 것. 황지우 시인은 "시란 금방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인데도,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떠 마신다"고 하였다. 갑갑한 소화불량의 사회에서 시는 더욱 예민해졌고 더욱 갈급한 형식이 되었다.

 

이번 본심에 오른 작품 중에서 송민규의 '곰팡이로 만드는 바람소리', 조창규의 '불안한 상속', 서문정숙의 '시간여행자들', 최현우의 '발레리나'를 주목해 읽었다. 위 응모작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인으로서 외침은 있되 아직 그 울림이 뚜렷하지 않고 자기만의 웅얼거림에 갇혀 있는 듯했다.

 

고심 끝에 최형우씨의 '발레리나'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발레리나''한 번의 착지를 위해' 거듭 삶을 연습해야 하는 발레리나의 내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시에서 계절로부터 '부슬비'의 가는 발목을 발견하거나 바람으로부터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원시의 무용을 발견하는 응시의 시선이 돋보인다. 발레는 발뒤꿈치를 들고 돌거나 도약과 착지를 거듭해야 하는 고된 춤이다. 시도 이와 다를 게 무어랴. 당선자는 오래 습작기의 열정을 내려놓지 말기 바란다. 새로운 시인에게 시가 발롱! 더 높게 발롱!

 

- 심사위원 : 김혜순,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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