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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 김미경

 

 

요즘 뒤에 있는 것들이 좋아집니다

 

당신처럼, M에게도 빈티지 공간 하나 있었죠 그때 M은 무척 어렸고, M을 업었던 등은 순하고 따뜻한 조도를 갖고 있었어요 잠투정하던 M이 눈물 콧물 번진 얼굴로, 그곳에다 새근새근 잠을 기대놓으면, 달빛도 베이지색 커튼을 수직으로 드리웠죠

 

그거 아세요

이 세상 어린 잠들은 모두 수직이 키웠다는 거

 

비밀스런 달의 뒤뜰도, 사다리타고 내려오듯 위에서 아래로 점점 깨어나고, 이따금 놀다가던 천왕성도, 목련꽃 켜 둔 그녀의 뒤란까지 따라왔던 초록 이파리도, 명지바람이 업어 키웠죠 달이 지구 그림자를 컬러로 인화해 준다는 뉴스가 뛰어다니던 날, M은 쓰러진 그녀를 업고 응급실로 달리던 중이었다는데요

 

건초처럼 가벼워진 그녀 몸이

M의 등에서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렸다는데요

 

그동안, 들판과 벼랑마다 피는 꽃이 달랐던 것도 다 그 이유였을까요 늙은 수직은 어린 수직 위에서 온전히 잠들기 어려웠을까요 그 등에는, 당신의 위급한 잠조차 기대기 아까웠던 걸까요

 

의사선생님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응급실에 불안한 숨을 눕혀놓고서, 시든 파 같은 그녀 등이, 그믐달보다 어둡게 식어가는 걸 보았다는 M, 어떻게 알았는지 공중을 열고 문병 온 태양도, 가로보다는 세로의 언어로 토닥이다 가고, 달도 허공에 벽지처럼 서서 회복을 기다렸다는데요

 

M의 빈티지 침대는

꿈속에서, 울고 보채던 어린 벼랑을 등에 업은 채

신음하다 눈 감았고요 숨진 침대를 상여가 -어영차 수거해갔죠

 

우리는 따뜻한 수직의 잠을 기억하는 족속들,

M을 본 건 며칠 후였습니다

 

잔뜩 웅크린 어깨로, 사망진단서 팔랑이는 손을 데리고 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그 앞을 스친 버스 안에는, 흔들리는 손잡이에 오늘 태어난 졸음을 기대놓은 사람들,

 

사람들이 저녁마다 집으로 향하는 것은, 자신의 등 어디쯤에 있는 벼랑 하나가, 어리거나 늙은 주인들을 애타게 부르기 때문, 당신이 퇴근하는 골목이 가끔씩 캄캄한 것도, 등에 업은 아기 깰까봐 가로등도 자는 척 눈 감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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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성경 말씀이 시와 저를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전혀 생각 못했던 당선전화를 받고, 하얀 밥물이 끓어 넘치듯 내 속에서 사계절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초년시절과 청년시절, 성인이 되어서까지 평생 시를 동경했지만 통성명도 못한 채 헤어지고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저는 필리핀에 살고 있습니다. 유년의 친구를 찾듯, 어느 날, 시가 저를 찾아와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하더니 새벽에도 저를 깨워 소재들을 툭툭 던져 주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매일 그것을 공부하며 쓰는, 시와의 즐거운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놀라운 시 창작 강의 채널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명희문학TV’는 제가 먼 타국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며 어려움을 겪다가 만난 최고의 생수였고, 그 동안 모르고 써왔던 시 창작 기법에 대한 큰 배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시에서 몰랐던 것들을 무수히 깨우쳤습니다.

 

이제 돌아보건대,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내게 말을 걸어주는 우주만물에게도 고맙습니다.

 

때로 제가 가장 지쳤을 때 손 잡아주시고 응원해주신 존경하는 스승님,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뜨겁게 시를 발굴하고 있는 시시각각과 다락방, 다줌 문우들, 앞으로 꼭 문우님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응원합니다.

 

교회 선교사님과 박시인님, 조시인님, 사랑하는 친구들 언니들 오빠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오래전 저의 어린울음과 칭얼댐을 포근하게 재워주시고 길러주신 하늘나라에 계시는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두 분의 등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음을 고백하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제 시의 손을 잡아주신 전남매일 신문사 담당자분들과 심사위원님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쉼 없이 더 정진하여 우주만물,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따뜻한 시인의 길을 열심히 걷겠습니다.

 

끝으로, 제가 주저앉을 때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으로, 나와 시를 특별하게 묶어주셨던 나의 목자 되신 예수님께 오늘의 영광을 돌립니다.

 

 

 

[심사평] 시적 사유의 깊이와 상상력에 중점

 

책상에 쌓인 원고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삶이 팍팍한 시대에도 문학을 향한 열기는 뜨겁다는 것을 느꼈다.

 

시적 사유의 깊이와 시적 구성, 상상력의 폭과 넓이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그중에 ‘광합성 야구’, ‘서부 우회도로’, ‘기억제본공장’, ‘등등’이 군계일학처럼 눈에 들어왔다.

 

‘광합성 야구’는 아버지의 서사를 ‘오렌지’와 연결한 참신성이, ‘서부우회도로’는 ‘누룽지 냄새’로 그려낸 그리움의 풍경이, ‘기억제본공장’은 책을 제본하듯 기억을 제본해 나가는 상상력이, ‘등등’은 “수직”을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표현한 점이 참신했다. 엄마의 등도 햇살도 벽도 수직성으로 ‘어린 것’들을 키워낸다는 발상의 능력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작품들이 일정한 수준에 올라와 있어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울림의 폭이 큰 ‘등등’에 손이 갔다. 함께 투고한 작품들에서도 사회적 현상과 문제를 바라보고 새롭게 표현하는 등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 소통의 폭이 큰 점도 믿음이 갔다. 큰 축하를 보낸다. 큰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당선되지 못한 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 심사위원 :강대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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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 강일규

 

 

산부인과 병원 근처엔 혼자 우는 울음이 많다

팔을 벌리고 부를 이름이 없어
한낮에도 울음이 바람을 끌어안고 멸망을 낳는다

저만치 뒤따라오던 아내가
전봇대를 붙잡고 이름 없는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다

미안
미안

건너편 정류장에서도
한 여인이 어리어리한 앳된 딸아이를 끌어안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대기실에서 마주쳤던
한 남자와 한 남자가 보호자란 인연으로
눈빛이 스칠 때마다 놓친 연과 놓은 연을 위로했다

아내의 울음이
자궁 밖으로 다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 반 근을 샀다

 

 

 

 

 

[당선소감] 아픈 이들 보듬는 따뜻한 시 쓰겠다

 

시클라멘 화분에 영희 씨 젖꼭지만한 붉은 망울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꽃을 터트리기 전 베란다에서 햇살을 즐긴다는 그녀, 피고 지면 또 다른 꽃대가 올라온다 했습니다.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을 때가 여름이라고 했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요” 라는 말에 물기 어린 글을 썼다 지우고 다시 또 쓰고….

오늘, 꽃이 피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첫눈이 내리는 퇴근길이었지요. 한겨울에 이토록 화사한 꽃을 피우다니…. 올해를 넘기지 않아 다행입니다. 눈발이 바로 땅에 닿지 못하고 공중에 부유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들도 심장이 뛰는구나.’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운전을 멈춰야 했습니다. 눈의 방향을 따라 걸었습니다. 큰길의 환한 불빛을 의지한 골목은 차갑고 희미했지요. 내 시작의 지향점과 닮아 있습니다. 삶의 무게를 시의 무게로 받아들일 때까지 겸허한 자세로 정진하겠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아프고 힘든 이들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시를 쓰겠습니다. 그런 글들이 모여 내 자신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기쁨에 가장 빨리 전염된 나의 영희 씨, 연수와 지연이 사랑해. 그동안 응원해 줘서 고마워.

시의 첫 걸음을 올곧게 일깨워 준 강희안 교수님, 인문학 강의로 시적 사유를 확장 시켜 준 소설가 연용흠 교수님, 좌절과 절망으로 방황할 때마다 시의 연을 단단하게 붙잡아 준 이돈형 시인님, 시의 길에서 만난 수레바퀴문학회와 시깡패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제게 따뜻한 손 내밀어 주신 강대선 심사위원님과 전남매일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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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고통받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

 

책상 위에 쌓인 응모작을 읽었다. 정성을 다해 보내온 시들이라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시대에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고독과 우울한 내면을 다룬 시가 많았고 가족 서사와 함께 일상을 소재로 한 시들도 적지 않았다. 사유의 깊이를 언어로 형상화한 시에 먼저 눈이 갔다.

그중에 ‘뒷모습’, ‘여우야 여우야’, ‘미역국’ 등이 시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뒷모습’은 시장의 노파를 새우로 비유하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어시장에서 노파의 삶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좋았으나 너무 쉽게 풀린 부분이 있고 함께 제출한 시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해 아쉬움을 주었다.

‘여우야 여우야’는 코로나19로 격리된 상황을 동요로 표현한 발상이 신선했다. 하지만 몇몇 시어들이 전체적인 시적 긴장감을 반감시켜 작품을 선정하는 데 망설이게 했다.

‘미역국’은 아기를 잃은 ‘아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다른 이들의 아픔과 함께하는 지점에 마음이 갔다. 코로나19 시대에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울림이 컸다. 나머지 작품의 수준이 고른 점도 신뢰를 주었다. 축하드린다. 깊은 울림을 주는 참신한 서정성을 기대한다. 당선되지 못한 분들도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강대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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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천국 / 현이령

 

 

아버지가 아침 일찍 공원 숲으로 간다. 노란 조끼를 입고서, 숲이 아닌 것들은 모두 줍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 아버지와 아버지 사이 쓰레기를 줍다가 잘못 건드린 개미집에서 후드득 쏟아져 나오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버지를 물고 개미는 개미를 물고 이끼처럼 들러붙어 저녁을 먹는 우리 집. 아버지의 집에는 아버지도 모르는 집들이 많아. 나는 개미처럼 더듬이가 자라고 발로 툭 치면 무너져 내리는 불안들.

바닥을 잘 더듬는 내력이 우리의 유전자에 있지만 나는 한낮에도 까만 개미가 무섭다. 땅바닥을 쳐다보다 땅이 되는 게 꿈인 아버지가 떵떵거리지 못하는 건 기우뚱한 어깨 때문.

개미는 개미에게 의지하고 의지는 의지에 기대고 아버지의 몸을 기어 다니는 수많은 개미 떼. 아버지는 밤마다 방을 쓸어내지만 개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었다 허물었다 오롯이 사라지는 비밀의 집.

새집을 달아 주러 온 나는 새 운동화로 개미를 밟는다. 거대한 발자국 아래 무너진 한 뼘 그늘. 머루 열매 같은 눈알을 꼭꼭 숨긴 아버지.

나는 울먹이며 신발을 턴다. 자꾸만 들러붙는 개미들의 그림자. 숲이 사라져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당선소감] "당신의 삶이 시였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어둡고 좁은 내 방에서 오랜 시간 시와 동거해 왔습니다. 사이가 좋다가도 등을 돌리기도 하고 때로는 기나긴 외사랑에 울기도 했습니다. 다가가면 멀어지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자주 가슴앓이를 했고 자주 절망했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이 지나 새로운 빛 한 줌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어둠에 익숙한 저에게 무작정 뚫고 들어온 이 빛이 두렵고 설레고 막막합니다. 힘든 일이겠지만 천천히 조금씩 눈을 떠 보겠습니다. 더 깊은 바닥을 보고 그 차가운 바닥 아래에 있는 뜨겁고 융숭한 것들에게 기꺼이 가슴을 여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예민한 더듬이와 에움길을 마다하지 않는 올곧음으로 비밀의 집을 지어 나가겠습니다. 나의 몸 안을 기어 다니는 수많은 개미 떼들, 이제는 기쁘게 아프겠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이 지구에서 절망과 희망의 어디쯤을 시로 더듬으며 가겠습니다.

 

졸시를 선택해 주시고 손잡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남매일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 동안 곁에서 시의 나라로 안내해주신 이용헌 시인님, 저도 이 아득한 나라의 돋을볕이 될 수 있을까요? 가장 좋아하시는 막걸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3년 동안 문학이란 애물을 품고 도반으로 걸어온 시옷문학회 동인들께도 애틋한 마음을 전합니다. 제일 먼저 기뻐해 주셨을 하늘에 계신 아빠, 당신의 삶이 시였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아프도록 사랑하는 내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맘을 전합니다. 느리지만 끝내 시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말이 내 것을 사랑하는 방식이라 믿습니다.

 

새해부터 아주 조금 울겠습니다. 시와 나의 동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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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고통 받는 존재에 대한 공감 시인의 중요 덕목

 

700여 편의 응모작들을 읽었다. 코로나 시대의 어둡고 우울한 사회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고향이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생활 시편들이나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들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다보니 너무 직설적이거나 감상적인 경우가 많았고, 타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언어적 모색이 아쉬웠다. 그런 중에 발견한 <커튼콜>, <긴장의 재구성>, <개미들의 천국> 등은 참신한 발상과 시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수작이었다.

 

<커튼콜> 외 4편은 경쾌하고 발랄한 언어 감각을 지니고 있고 독특한 소재와 형식을 통해 다채로운 시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적 인식이 충분한 깊이를 확보하지 못하고 재치에 머무르거나 낭만적 우화에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긴장의 재구성> 외 4편은 사유의 폭이 넓으면서도 집중도가 있고 시적 대상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돋보였다. 현실의 문제를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사유는 독창적이지만, 전달력이 떨어지거나 거칠고 어색한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개미들의 천국> 외 4편은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간결하고 섬세한 언어로 삶의 비애와 불안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는 어떤 간절함을 지니고 있으나 감정을 함부로 발산하거나 낭비하지 않는다. 당선작인 <개미들의 천국>에서 공원 청소부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슬픔은 절제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먹먹하게 읽힌다. 힘이 없고 고통 받는 존재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시인의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에서 당선자의 시선과 마음에 신뢰가 갔다. 그 마음의 힘으로 앞으로도 아름다운 시의 길을 열어가시길 기원한다.

 

- 심사위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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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인간 / 김범남

 

  허름한 옷 입고 재즈만 듣는다. 사랑의 원가에 애착의 비용을 들인다. 가끔 일상은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거리와 집

착의 변수에 비례해 만각된다. 비위에 거슬리는 언행으로 허덕거린다.


  나머지도 인간이다.


  이틀간 잠만 잔다. 수면 부족과 의욕상실증이 만든 침착함이다. 잉여가 없는 느린 속도를 즐긴다. 기억은 꿈을 만들고,

우연은 희망이 된다. 액세서리 지식을 걸치고 동굴로 들어간다. 틈을 타고 빛이 침투한다.


  방관자도 나머지 일부다.


  역방향과 정방향, 선택을 종용한다. 기울어진 생각으로 방향을 찾는다. 모순이다. 모서리와 모퉁이도 나머지다. 일부가

모여 전부가 된다. 구석을 찾을수록 신경은 예민해진다. 평면의 날카로움이 보인다.


  남는 인간이 나머지다.
  남은 인간도
  나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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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를 읽는 사유의 맛, 시인 역량 가늠하기 충분”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있었을까요. 간절함이란 상자를 설렘으로 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읽으면서 먼저 심사기준에 못 미치는 시를 상자에서 덜어내었습니다. 억지로 쓴 시, 형식만 시인 시, 엄살과 과장이 넘치는 시, 시적 자유란 이름으로 비문을 마구 늘어놓은 시, 밋밋한 문장을 행만 갈라놓은 시 등이 먼저 상자를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나머지 인간’ 외 4편과 ‘지리산 편지’ 외 3편이 남았습니다. 다시 몇 편을 더 뽑았지만, 또 두 편만 남아서 우열을 겨루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가 당선돼도 영광스러운 제1회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겨루다가 선에서 밀려난 작가의 작품은 삶을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읽어내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문장을 명랑하게 다루면서도 의미의 벼릿줄을 놓치지 않는 시였습니다. 그런데 왠지 오십 년 이전의 어느 농촌 마을을 거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춘문예 응모가 아닌 개인 시집에 들어가면 어색하지 않았을 텐데, 새로운 시와 시인을 기다리는 신춘문예라서 아쉽게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선작으로 뽑힌 ‘나머지 인간’ 외 4편은 행간이 넓고 의미가 깊게 압축된 시였습니다. 언뜻 보면 불친절하지만, 촘촘한 의미의 집을 열고 들어가면 시를 읽는 사유의 맛을 한층 느낄 수 있는 시들이었습니다. 각 연과 행이 직조한 복층 구조는 시인의 역량을 가늠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 공감과 감동이라는 보편적 예술 가치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나 혼자만의 어깨 울음에서 모두의 어깨춤으로 나아가는 시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선에서 밀려난 분들에게는 곧 더 좋은 일이 당도하리라 믿습니다. 거듭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 심사위원 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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