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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7번 국도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 최주식

 

 

부산데파트 앞 버스정류소는 7번 국도의 시작 또는 종점

우리집은 종점이었어 산7번지 처음 보는 마이크로버스가

똑같이 생긴 집에서 똑같이 생긴 아이들을 실어 날랐어

똑같은 책가방을 메고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이 생기지 않은

한 여자아이를 좋아하던 어느 날 내가 전학 온 것처럼

그 아이도 전학을 가버리고 나는 인생이 무언가 오면

가는 것이라고 비정한 것이라고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하루는 종점에서 시작되었어

아침이면 늘 신발이 젖었어 밤새 파도가 다녀간 거야

파도는 7번 국도를 타고 온다고 그래서 종점에 내려

처음에 이상했던 일이 계속 일어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아

아무도 도망치지 못한 하루가 말라비틀어진 화분 사이로 걸어가면

아저씨 제발 화분에 물 좀 주세요 글쎄 파도가 화분만 적시지 않는구나 공허한 대답처럼 버스가 다시 오면 젖었다 마른 행주처럼

종점에서 시작되는 아침 젖은 신발을 신고 다니면 세상이 질척거려

자꾸 달아나고만 싶어 7번 국도를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을거야

파도를 만나면 내 젖은 신발을 두고 올거야 다시는

젖은 신발을 신지 않을 것이라고 똑같이 생기지 않은

여자아이를 닮은 다 큰 여자가 국수를 마는 집을 나선 날

종점에 버스는 한 대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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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나이 들며 무너진 마음, 그걸 잡아준게 詩

 

눈이 오네. 창밖을 물끄러미 보다가, 잠깐 나갔다 올까 속엣말을 하며 문을 여는데 그새 희미해진 눈발이 비 되어 내린다. 그래도 나선 길, 다시 우산을 챙겨 들고 동네 주변을 좀 걸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우산 위에 송골송골 맺힌 쓸쓸한 기분을 툭툭 털어내고 의자에 앉으니 전화벨이 울린다.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다. 거짓말 같다는 말, 정말이다.

 

서면 영광도서에 서 있던 이십 대 초반 무렵의 내가 보였다. 서점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시집들의 무게에 눌려 아, 저기 내 자리는 없겠구나 돌아서던 뒷모습. 그리고 시를 쓰지 못했다. 삼십여 년의 세월이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나이 드는 게 편해’라는 위약을 매일 유산균처럼 먹었다. 날들과 계절이 오고 갔다. 마음이 견디기 힘들 때 시를 읽으니 조금 나아졌다. 나도 모르게 무너지는 마음일 때 그것을 잡아주고 버티게 해주는 힘. 다시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똬리를 틀었다.

 

우연히 눈에 띈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 공고.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아내는 왜? 라고 묻지 않았다. 그래, 하고 싶었던 거 해. 눈물이 살짝 기쁜 마음은 잠시,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내가 시에서 얻은 위로만큼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시를 쓸 수 있을까. 이 상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는 것이리라.

 

김이듬 손택수 김참 심사위원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시를 써야 한다는 것. 꼭 갚아야 할 부채로 알겠다. 시에 대한 안목과 자세에 대해 가르침 주신 정홍수 류근 황인찬 이지아 선생님께 감사 인사 올린다. 아내 재인, 우리 아이들 성렬, 민서 고맙고 사랑한다.

 

 

 

[심사평] 3편 각축, ‘파도는…’ 공감의 폭 높은 점수

 

응모된 시의 경향은 다양했지만 대체로 서정적인 시, 실험적인 시, 새로운 감각의 시로 분류할 수 있었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시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다. 젊은 세대의 독특한 언어 감각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심사위원들은 십여 편의 시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뒤, ‘쪽방촌 오르트 씨’, ‘미행’, ‘파도는 7번 국도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세 편의 시를 놓고 마지막 논의에 들어갔다.

 

세 편의 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지만 단 한 편의 당선작을 뽑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세 편의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며 음미해보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깊이와 높이를 가늠해 보기도 했지만 세 작품이 각각 다른 개성과 장점이 있어서 심사위원들 간의 이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당선작을 내는 데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쪽방촌 오르트 씨’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았다. 기법적 완성도도 높았고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도 뛰어났다. ‘미행’은 담백하면서도 깊이와 품격을 지닌 좋은 시였다. 재치 있는 마무리도 인상적이었다. 풋사랑을 그려낸 ‘파도는 7번 국도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는 공감의 폭이 넓은 시였는데 특히 뒷부분의 반전이 좋았다.

 

좋은 시에 필요한 요소는 많다. 언어의 깊이와 생각의 높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공감의 폭 등이 그것이다. 최종심에 올라온 세 편의 시는 모두 이런 요소를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이 가운데 오늘날 우리 시에 가장 필요한 것이 공감의 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심사위원들은 공감의 폭이 가장 넓은 ‘파도는 7번 국도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당선작은 언어 감각이나 호흡 면에서는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이 점은 시를 계속 써나가면서 점점 좋아지리라 생각된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 선보일 좋은 작품을 기다려 본다.

 

- 심사위원 : 김이듬, 김참,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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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 박재숙

 

 

침대에게 몸으로 물을 주는 건, 그에게서 달콤한 봄 냄새가 나기 때문이지 내 주변엔 봄이 너무 많아 침대도 나에겐 봄이야, 그건 아마도 침대를 향한 나의 일방적인 편애일지도 모르겠어

 

침대는 해마다 겨울이 알려주는 장례관습 따위엔 관심 없어 꿈과 현실 사이에서 철없이 스프링을 쿨렁거려도 푸른 봄은 여전히 아지랑이처럼 오고 있을테니까

 

침대 위에서 휴대폰 속 이미지나 사건들을 클릭하고 닫는 동작은 무의미해 그때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내일이 침대 커버처럼 단순해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침대의 생각은 참으로 명료해 홀쭉하게 들어간 배를 쓰다듬으며, 지난밤 겹의 무게 뒤에 펼쳐진 피로를 걷어내고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날 힘을 얻지, 그건 내일이 던져줄 공복을 향한 강한 의지인 거야

 

공복은 채움의 예비의식이기도 해 그러므로 내 침대는 늘 비어서 오늘 아침이 봄, 때때로 난 널 사랑해 내 생각대로 꽃피게 하고 싶어 레시피는 간단해 갖가지 감정의 재료들을 봄흙으로 만든 황토침대에 쏟아부으면 끝, 그럼 우린 하루 한 끼 제대로 된 꽃밭의 식사를 할 수 있어

 

사계절은 한결같아 언제나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불쑥 깨진 거울을 들이미는 봄의 손을 보고 있으면 거울 속의 내가 보여 나인 듯 내가 아닌 듯,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거울의 트릭이 보여

 

그래도 방언 같은 아지랑이의 말을 기억하는 내 침대는 여전히 오늘 아침이 봄

 

 

 

 

[당선소감] 혹독한 겨울 흔들어 봄을 일깨워준 시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닮아있다. 그날이 그날인 것 같은 오후, 나는 핸들을 잡고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와이퍼를 작동시켜도 앞이 흐려 답답하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휴대폰 벨이 울렸다. 국제신문 최승희 기자라고 했다. 갑작스런 당선 소식에 잠시 귀를 의심했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왈칵 눈물이 흘렀다. 자동차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갓길에 잠시 나를 정차시키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가만히 있는 나를 자동차가 어디론가 끌고 가는 것처럼 그 순간 나는 자동차 대신 구름 모양의 시를 타고 있었다. 그동안 오래 문학과 시에 목이 말라 있었다. 그래서 늦게 시작한 공부였고, 20218월에 허수경 논문이 통과되면서 중앙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늦은 공부에도 응원해주고 끝까지 등을 밀어준 가족에게 감사한다.

 

시의 압축미를 강조하셨던 이승하 지도교수님과 시가 잘 안 풀릴 때는 미술관을 가라고 말씀하셨던 이수명 교수님, 대학원 분과 수업시간에 시를 쓴다는 행위는 하나의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다고 묘사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던 조동범 선생님, 좌절을 느끼며 시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계속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셨던 박남희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시를 쓰면서 나만의 독창성으로 남이 할 수 없는 걸 내가 할 수 있다는 기쁨이 생겼다. 이제야 시의 끝자락에 빗방울 같은 나를 들여놓는다. 앞으로 보다 깊이 있는 시 세계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인이 되겠다.

 

끝으로 혹독한 겨울을 통과하고 있던 제 시를 신춘의 봄 뜨락으로 성큼 불러내주신 강은교 권정일 문태준, 세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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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유쾌한 상상으로 생명의 의지 캐낸 수작

 

국제신문 신춘문예 공모에 보내온 작품들을 읽었다. 어느 해보다 전반적으로 서정적 색채가 두드러져보였으며, ‘어머니의 존재를 포함한 가족의 이야기를 노래한 작품들이 많아 눈에 띄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가족이라는 두터운 관계와 그 관계에서 오가는 정감에 시심(詩心)이 쏠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이 토론을 이어간 작품들은 서부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중얼거림4, ‘흔들렸다2,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2편이었다.

 

서부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중얼거림은 너무나 질서 있게 꽂힌 도서관 서고와 검색대가 있는 열람실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그 공간에서의 작은 균열과 소란과 술렁거림과 이탈 욕망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시상 자체가 빛처럼 번득였으나 시어들의 선택과 활용이 다소 평이해 아쉬웠다.

 

흔들렸다는 하나의 존재에 투영되어 있는 다른 존재, 즉 존재들 사이의 유기적 연결에 주목한 작품이었다.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돌연한 충격을 주어 신선했지만, 함께 보내온 작품들이 이 작품과는 편차가 있어 당선작으로 내는 데에 주저하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시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이 시는 회복되는 어떤 생명력의 강인한 힘을 사물인 침대에서 발견해내는 수작(秀作)이었다. 봄의 절기가 갖고 있는 환함과 꽃핌과 탄력을 침대의 공간과 끊어지지 않게 미묘하게 연결시키는 솜씨가 돋보였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에서도 개성적인 신예의 출현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게 했다. 시단에서 특별한 시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강은교 권정일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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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가 고독에게 / 박소미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이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강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굴되지 않는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본다 그래 다시, 귀를 웅크리지 태아처럼,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떠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방 안이 점점 어두워진다

 

 

 

 

[당선소감] 아버지가 남기신 격려 글쓰기 원천

 

퇴직은 나를 회복하는 소중한 여정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만난 시가 나를 잣고 있습니다. 꿈에서 시실을 뽑아 명주달빛에 묶어두었습니다. 오른손으로 직관을 거머쥐고 미로를 돌면 더 깊은 미궁 속이었습니다. 그러면 왼손으로 잡은 펜이 향이 동하는 분칠을 요구합니다. 이나마 놓치면 영영 포기할 것 같아 조급해지기 일쑤였습니다. 꽃들이 화사를 빼고 가벼워지는 가을부터 어깨를 겯던 도반이 하나 둘 불려나갈 때, 비어가는 정원은 제게 욕심이었을까요. 사모하는 마음을 거두지 못합니다. 그 갈망은 월반 중입니다. 먼저 동행한다고 고집한 시는 지난해야 지속 가능한 애인입니다. 짙은 은유와 주렁주렁 매달린 형용사가 나의 허식(虛飾) 이란 걸, 기척도 없는 파지가 증명합니다. 여전히 미궁은 나를 가둡니다. 그 안에서 시가, 나를 복구하는 원본이 되게 합니다.

 

망연한 제게 동아줄을 내려주신 강은교, 안상학, 김참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실낱으로 수직 상승하는 사다리가 아닌 멍석 귀 삼겠습니다. 병상에서 목소리 뽑는 아버지가 또박또박, 힘주시던 여한 없이 쏟으라던 마지막 숙제, 제출합니다. 누런 삼베 거친 적삼이지만 너무 춥진 않으시죠. 시를 앓게 해주신 유종인, 정병근, 김이듬 시인님, 김포문예대학의 나란한 걸음이 있어 든든합니다.

 

함께 공부해주신 윤성택 시인님 감사합니다. 힘들 때 마다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가 되어준 시품 그리고 김부회 시인님과 달동인들, 나보다 나를 더 잘 지탱해 준 내편 쭌, 그리고 첫 독자가 되어준 도담, 모두의 응원 덕분입니다. 화장을 지우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민낯의 나를 받아들이는 그 여백이 시가 되는 풍경(風磬)을 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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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언어 다루는 솜씨·주제 전달 방식 참신

 

올해 응모작들의 수준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있었지만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보여주는 시들, 사회문제를 다룬 시들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많았다.

 

참신하지만 너무 긴 시들,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이야기를 엮는 솜씨는 좋은데 너무 긴 시들은 읽기가 다소 어려웠다. 시가 반드시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시를 사람의 몸매에 비유하자면 군살 없는 날씬한 몸매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줄여서 꼭 필요한 말만 남기는 것이 시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중 십여 편의 시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뒤, 윤상호 씨의 변기는 가능합니다’, 박신우 씨의 이인용 밥솥’,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세 편의 시를 놓고 마지막 논의에 들어갔다.

 

변기는 가능합니다는 사회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뛰어났으나 같이 보내온 다른 응모작의 살을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인용 밥솥은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시였지만, 같은 소재를 다룬 기성 시인의 특정 작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박소미 씨의 당선작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돋보였다. 함께 보내온 달리는 숲역시 당선작 못지않은 사유와 작품성을 담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런 점을 높이 사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의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 심사위원 강은교·안상학·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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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 / 정희안

 

 

우선 헐거워진 안구부터 조여야겠어 의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 네모난 메모는 너무 반듯했어 느슨해진 우리 사이에 필요한 건 떨림이잖아 사랑은 사탕 같은 것 길이와 깊이 중 어느 쪽이 좋을까 잠들지 않고 꿈을 꿀 순 없잖아 달리자는 남자와 달라지는 남자 수순은 잘못되었지만 수준은 비슷해 일용직 알바생의 심정을 너는 몰라 너는 내가 되는 경험을 해봐야 해 우리 모두 갑질 아래 새로 태어나곤 하지 사진을 정리하다가 시간을 정리해버렸어 미움은 미움에서 출발해 머리는 항상 미리를 준비했어 망설임은 사치야 네가 생일선물로 준 귀걸이처럼, 취업은 걱정 중 제일 으뜸이지 숲이 술을 대신할 순 없잖아 기능도 못 하면서 가능을 얘기했어 조직은 때로 조작도 해 유인하려면 유연해야 해 정말이지 절망스러웠어 그러니 우리 헤어지는 게 좋겠어 밀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빌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진절머리와 전갈머리는 무슨 관계인지 거울 속에 겨울이 있잖아 말 많은 세상 발밑을 조심해 그럼, 이제부터 그림 공부나 해볼까

 

 

 

 

202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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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꿈과 현실 거리 좁히는 건 끈기라 말하고파

 

어둠이 벗어두고 간 불면을 끌어안고 응답 없는 편지를 썼습니다. 아침이면 민낯을 대하듯 실망과 의심을 거듭했습니다. 남편은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오기가 생겼습니다.

 

병원 다녀오는 길에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마구 떨리는 내 손을 내가 꽉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울컥함은 참지 않았습니다. 겨울과 봄 사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계절이 있습니다. 다음 계절이 두려워 망설이다가 지각하는 학생처럼 늘 그렇습니다. 글쓰기의 출발점이었던 더딘 그리움을 이제야 떠나보낼 수 있겠습니다.

 

두 아들을 통해 보는 세상은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느 소설의 한 구절을 빌어 당부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꼭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꿈과 현실의 거리를 좁히는 건 행동이라고, 끈기가 곧 재능이 될 수 있다고 늦게나마 말할 수 있습니다. 부족함을 채우는 데 게으름 피우지 않겠습니다. 부끄러운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먼저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이끌어 주신 신정민 선생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시를 나누는 동인 모두 고맙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을 함께했던 미정, 혜옥 선생님 즐거웠습니다. 환하게 밀려오는 편두통을 맞이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심사평] 가벼운 언어와 무거운 현실 균형감 잘 갖춰

 

심사위원들은 대략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천여 편의 응모작을 살폈다. 첫째, 참신함이다.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의 원형을 보여줄 수 있는 참신함이 있는가를 살폈다. 둘째는 정확함이다. 소통을 위해서도 공감을 위해서도 어설픈 시적 허용에 기대기보다 정확하게 문장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가를 함께 살폈다. 마지막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발견하는 시의 눈을 갖추고 있는가를 살폈다. 일상의 소소한 장면에서도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발견하는 눈이 시적인 도약을 이룬다. 그것이 또한 시의 꿈일 것이다.

 

1차 검토 결과 이주호, 윤계순, 최동출, 정희안 등 네 분의 작품이 최종 논의 대상으로 남았다. 이주호 씨의 작품은 젊은 감수성이 넘치는 언어 감각이 눈에 띄었으나, 아직은 덜 숙련된 채로 시가 완성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윤계순 씨는 꽤 오랜 숙련의 시간을 거친 작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 안정된 길을 따르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최동출 씨의 작품은 요즘 보기 드물게 웅장한 상상력과 언어가 눈길을 끌었으나, 마지막까지 확신을 줄 만큼 숙성된 세계라고 보기 힘들었다.

 

정희안 씨의 작품은 유사한 발음의 단어로 언어유희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면서도 삶의 세목을 깊이 있게 응시하는 시선을 담보하고 있는 점이 미더웠다. 특히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는 한없이 가벼운 언어와 한없이 무거운 현실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감으로 말의 재미와 사유의 깊이를 함께 성취한 수작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논의 끝에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한다. 당선인에게 축하를 드리며, 가장 가벼운 언어로 가장 무거운 세계를 지탱하는 시의 본령을 자기 기질대로, 자기 방식대로, 자기 고집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서 또 하나 새로운 언어의 건축을 보여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 심사위원 강은교 성선경 김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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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플러 씨 / 이규정

 

 

그는 서류들을 한 코에 제압하고 있다

바람의 두께에 따라 뒤집어질 수도 있지만

이미 꿰인 코는 염기서열을 갖는다

하얀 낱장에 뼈대를 두고 있는 얼굴들

 

묶인 것으로 질서가 된 몸이지만

위아래 각을 맞추는 것은 복종의 의미

자세를 낮추고 하나의 각도와 눈높이로 사열되어

제왕에 예의를 갖추듯 손발을 맞추고 있다

 

어떤 묶음도 첫 장 머리에서 움직이고

펄럭이는 팔과 다리를 갖게 된다

간혹 흩어질까 묶인 것들끼리 권이 된다

날개를 갖고 있어도

그 손에 한 번 잡히면 그만이다

 

입이란 하나의 입구

무엇이 채워졌을 때

뜬구름이라도 소화하게 만든다

솜사탕과 뜬구름은 종이 한 장 차이

단정하게 정리된 그의 입에

꽉 물려서 봉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적 있다

 

흐트러진 낱장들을 함구시키며 제압하는

따악, 그 소리

 

일침으로 조용히 봉할 줄 아는 그는

서류의 제왕이다

 

 

 

 

[당선소감] 영영 없을지도 모를 결승선 향해 뛰어가겠다

 

당선! 전화 받는 순간 기쁨과 떨림이 한 마당이었다. 한강 불빛이 명랑하게 보였다. 콩나물시루가 된 퇴근길 전철, 덜컹덜컹. 전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전철이 말꼬리를 자꾸 잘라 결국 내린 역이 동작역. 귀퉁이에 구겨진 그림자를 깔고 앉아 당선 소식을 이어서 들었다.

 

바람의 꼬리를 잘 살펴야 귀담아들을 수 있는 말들. 한강 요란한 불빛도 함구하며 그 뒤꿈치를 들어주고 있었다.

 

웃음을 찾기 위해 선택한 문학. 여러 번의 최종심과 여러 번의 낙선을 반복하면서 나에게나 가족에게나 어려운 시간이 많았다. 24살 때 처음 투고했던 신춘문예. 너무 멀리 와서 당선 통보를 받았지만, 오는 동안 무형으로 반짝이는 시 한 편이 늘 동행해줬었다.

 

구십 넘은 노모가 눈물을 흘리셨다. 아내는 바보같이 내 눈을 피했지만, 울먹이는 말투가 조금씩 감정을 넘쳤다. 길고 긴 장거리 마라톤을 뛴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결승선을 무시하고 계속 달릴 것이다. 영영 없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결승선을 향해 뛸 것이다.

 

문학의 장도에 길을 내어주신 국제신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위원 성선경 선생님, 이정록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 큰절 올립니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전문과정 교수님들, 반 친구들 가물가물하지만 기쁨을 나누고 싶다.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사랑하는 가족, 특히 아내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낱장이 권이 될 때까지 써서 그 제왕 앞에 웃을 수 있는 큰 시인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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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오랜 詩作 경험 엿보이는 상상력 돋보여

 

심사위원들은 시의 원형을 새롭게 제시하는, 혈기 넘치는 시를 기대하면서 작품을 읽었다. 탄력이 있고 개성이 넘치면서 새로운 안목을 펼쳐주는 시를 기대했다. 그래서 기시감이 있거나, 지나치게 안정적인 시편은 후한 점수를 주지 못했다. 당선작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심한 작품들의 수준은 높았다.

 

바다 경매2, ‘가내수공업4, ‘계단의 전개4, ‘스테이플러 씨3편을 놓고 토론을 이어갔다. ‘바다 경매2편의 시편 가운데서는 뿌리경전을 읽는 저녁을 주목해서 읽었다. 꽃과 잎의 세월을 다 보낸 연의 뿌리에서 어머니의 존재를 발견한 대목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다만, 함께 보내온 두 작품의 수준이 이에 미치지 못했다. ‘가내수공업4편은 생활의 감각이 돋보였다. 노동 등 육체를 움직여 일하는 사람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한 줌 삭힌 콩나물에는 한 사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와 같은 표현에서 보듯 감정이 흘러넘치는 점이 눈에 띄었다. ‘계단의 전개4편 가운데서는 매미의 시간이 단연 두드러져 보였다. 매미의 허물을 대낮의 시간이 벗어던진 투명한 흔적이라고 쓴 점은 매우 신선했지만, 이 작품 이외엔 평범한 수준이었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스테이플러 씨3편 가운데 스테이플러 씨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흔쾌히 합의했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은 고른 수준이었다. 시행이 앞뒤로 결속되고 보완되거나, 시행이 상상력을 통해 훌쩍 넘어서면서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광경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시편들이었다. 그만큼 오랜 시작(詩作)의 경험이 엿보였다. 당선작 스테이플러 씨는 서류를 철하는 도구를 시적 대상으로 다루지만, 의미는 중층적으로 읽힌다. 철심이 박힌 서류 낱장에서 나약한 개인의 창백한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자본사회의 냉담한 구조 안에 강압적으로 편입되고 규율되는 개인이 느낄 공포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로써 스테이플러는 사물 차원을 넘어서는 상징체로 거듭난다. 좋은 작품을 열정적으로 창작해 시단에 새롭고 산뜻한 바람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 심사위원 성선경·이정록·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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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을 묻다 /김형수

 

 

이천여 년 전의 방가지똥 씨앗이

스스로 발아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한 해밖에 못 사는 풀이 때를 기다린 것이다

 

사랑할 만한 세상이 오지 않아

이천 년 동안 눈 감은 태연함이라니

고작 일 년 살자고 이천 년을 깜깜 세상 잠잤다니

 

그런 일이 어찌 꽃만의 일이랴

우리도 한 천 년쯤 자다가

살고 싶은 세상이 왔을 때 눈 뜨면 어떨까

 

사람이 세상을 가려 올 수 없으니

땅에 엎드린 바랭이들 한 천 년쯤 작정하고

나무를 묻었다는 매향(埋香)의 기록

 

, 어느 어진 왕이 천 년 후를 도모했던가

 

침향이 되면 누구라도 꺼내 아름다운 향기로 살라고

백 년도 아닌 천 년을 걸어 나무를 묻었단다

그것은 사람이 땅에 심은 방가지똥이었다

 

한 해 지어 한 해 먹던 풀들이

천 년 후의 나무 씨를 뿌렸다는,

우리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뿌듯한 매향에 관한 몇 줄의 글

읽고 또 읽고

노오란 꽃을 든 미륵이 눈에 어른거렸다

 

 

 

 

미륵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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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막 싹 틔운 나의 시채찍과 격려 해주시길

 

큰 산 앞에 섰다.

 

두렵기만 하다. 시라는 것이 알면 알수록 더욱 거대한 산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그래서 두렵다.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0년쯤 전의 일이다.

 

개인사가 힘든 시기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그 어려웠던 때 시가 나에게 왔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힘들 때마다 시 한 줄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그런 한편으로 시인이 되고 싶었다. 물론 문청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공부 없는 객기만 앞섰다.

 

요즘 시는 아주 어렵거나 너무 쉽거나 두 가지 중 하나다.

 

어려운 시는 독자가 외면하고 너무 쉬운 시는 독자가 경멸한다.

 

나무의 목숨값에도 미치지 못할 가벼운 시집들이 버젓이 나온다.

 

시인은 넘쳐나는데 시는 멀어지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수많은 문청은 지금도 시대의 각혈로 글을 쓰고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 막 싹을 틔운 나의 시에 많은 채찍과 격려가 함께하길 빌어 본다.

 

부족한 글에 손 내밀어 주신 정일근, 손택수, 조향미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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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전체적으로 고른 성취로 안정감 돋보여

 

수사의 과잉이 사물과 현실을 왜소하게 한다. 문장들은 매끄러우나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지 않고, 이미지는 넘치나 소비되기에 급급하다. 또한 전반적으로 삶과 시에 대한 예각적 인식보단 장황한 요설과 실험실에서 배양된 인위적 표현들이 유사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일근 심사위원, 조향미 심사위원, 손택수 심사위원

예심 인상기를 공유하며 본심에 올린 최종 대상작은 권수찬, 김형수, 김현곤, 박민서의 작품이었다. 이들의 응모작은 적어도 언어 실험실의 폐쇄성과 자의식 과잉 그리고 지나친 경험 추수로부터 미학적 거리를 확보하면서 개인의 방언을 소통의 장으로 옮겨오는 데 모두 성공하고 있었다. 자신의 시대와 몸을 관통한 언어로 좀 더 자연스럽게 공적 음역을 확보할 수 있다면 머지않아 성과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먼저 권수찬은 드물게 사회학적 렌즈로 시대 현실을 조명하는 힘을 보여주었으나 안타깝게도 인식이 감각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현곤은 성큼성큼 내딛는 남성적 어법에 호감이 갔으나 이분법적 문명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김형수와 박민서의 작품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박민서의 작품은 이미지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아슬아슬 위태로운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는 힘에 있어서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다. 김형수의 경우는 기시감이 문제적으로 다가왔으나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과 성취로 안정감을 주었다. 위태로운 새로움과 오래된 울림 중 격론 끝에 간신히 선택된 미륵을 묻다는 지층에서 캐어낸 미륵처럼 시간을 뛰어넘는 울림을 간직하고 있는 시다. “고작 일 년 살자고 이천 년을견딘 이 빛나는 시적 순간이 한 해 지어 한 해 먹던 풀들의 삶에 뿌리를 내리면서 측정 불가의 우주적 시간 단위로 시인을 밀어가길 바란다.

 

- 심사위원 정일근·조향미·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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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 / 김순옥

 

 

방을 빼라는 집
주인의 목소리가 뜨거워
엉뚱한 방에 들어가 누워보아요
문지방에 끼인 돌멩이가 으스러져요
감긴 눈을 씹었어요


생선꼬리라도 주세요


돌멩이가 입 안에서 굴러다녀요
미안해요 뱉을 수가 없어요
입 깊숙이 밀어 넣어 볼까요?


늙은 복숭아 껍질에 돋은 거웃이
천일동안 타고 있대요
꽃을 달고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노랗게 곪아가는 눈
저만치
나는 엄마보다 더 늙었고
낯익은 젊은 여자 하나
생뚱맞은 얼굴로 거울을 빠져 나가요


불 꺼진 방 아랫목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요

 

 

 

 

[당선소감] 내 안에 끓고 있는 시어들 계속 퍼담아 내고파

 

눈 내린 비암산 계단을 오르며 앞서 걷는 학우들의 등에 나의 표정을 새기고 햇살에 차가운 입김을 데우는 동안 우리는 선구자를 목 놓아 불렀습니다. 시인의 고향을 찾아 서러운 나무가 되어 바람을 끌어안은 그곳에서 간절한 소망 하나를 주머니에 담아 온 며칠 후 질문 하나를 던지듯 날아온 소식에 쓸쓸한 등을 기댈 곳이 내게도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잠시 어리둥절한 틈을 타 기쁨이 봇물 터지듯 차고 넘쳤습니다.

 

저승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제 얼마만큼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지, 지나온 시간 속에 시가 있었고 중년의 문턱을 넘었을 때 중독처럼 다시 다가온 시는 내 안의 어두워지는 순간에 진심을 담아낼 힘을 주었습니다. 내 안에 끓고 있는 하얀 시어들, 나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시어들이 눈물에 찍혀 하나둘씩 떨어지곤 했습니다.

 

마음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지면을 허락해 주신 국제신문과 더 용감하게 시를 쓸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강영환 선생님, 곽재구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금보다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시의 진실이라며 적당한 시의 중독을 가르쳐 주신 김륭 선생님, 아버지 같은 미소가 보고 싶습니다. 아파할 때마다 힘이 되어 주었던 오 선배님을 비롯한 반문 선배님, 글쌈 문우님 고맙습니다. 하얀 손수건을 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수고했다며 등을 토닥여 주던 남편과 시를 쓰면서 행복해하는 엄마가 정말 보기 좋다는 나의 숨과 같은 진영, 은영 고맙고 사랑합니다.

 

어린 시절 나의 우주였던 아버지, 어머니 아프도록 사랑합니다.

 

 

 

 

 

#풀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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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여성 세입자 미묘한 감정 변화 섬세하게 포착

 

투고작들을 읽으면서 설레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 작품들로 인해서 한국시의 미래가 열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경쟁한 작품들은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신선한 감각의 내용도 좋았고, 고유한 육성도 청취할 수 있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 아쉬웠다. 생각에 비해 언어들의 부피가 과도한 경우가 있었다.

 

최종심에 남은 작품은 이희주 님의 '하현', 황미현 님의 '나선형 화석', 김순옥 님의 '질감' 3편이었다.

 

'하현'은 밤 하늘가에 뜬 하현달을 만두의 형상에 빗댄 작품이었다. 만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방법을 시에 버무려 놓으면서도 만월에서 하현으로 이울어가는 시간의 경과도 함께 활용했다. 그러나 '한 여자를 다 돌아 나와야 먹을 수가 있는' '그때 굴뚝연기는 온 동네에 맛있는 소문을 퍼뜨리고'와 같은 표현이 모호하고 평범해 작품 전체의 재치 있는 상상력을 제한했다. '나선형 화석'은 정밀한 묘사를 보여주었으나 너무 인위적으로 다듬어서 자연스러운 시상의 유로(流路)를 방해했다.

 

'질감'은 세입자의 생각과 감정을 담담하게 그리되 그것의 미묘한 변화를 잘 포착한 작품이었다. 갈등하는 마음속을 겉으로 드러냄은 물론 늙어감에 대한 한 여성의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심사위원들은 김순옥 님의 시 '질감'을 당선작으로 흔쾌히 결정했다. 자신만의 시 세계를 펼쳐 한국 시단의 변화를 이끌어가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곽재구 강영환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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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 이명우

 

 

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붙는 스티커를 뜯다가

스티커 뜯기를 멈추고 산동네를 떠났다

멈추고 떠날 때는 다 지운 것이어서

지운 것은 없는 것이어서

없는 여기 산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

 


대문을 겹겹이 도배한 스티커 화려하기조차 했다

긁히고 찢긴 조금도 아물지 않는 가업

허파와 심장과 위장이 모두 철대문에 붙어

겨울 냉기를 고스란히 빨고 팽팽해졌다

 


추락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력서를 쓰고 찢고 쓰고 찢었던 것

부도난 회사의 대표였던 이력은

지급기일을 넘긴 어음처럼 휴지였던 것

부도를 막기 위해 오래전에 빌린 사채가 펄럭이며 휴지를

산동네 꼭대기까지 얼마나 난타해댔던가 

 


골목을 돌며 전봇대 기둥과 자주 부딪친다

골목에는 늘 똑같은 소리로 이자가 와 달라붙는다

눈치 없는 거미줄에 발걸음에 와 걸린다

발이라도 와 걸어주는 이것이 거미줄의 눈치

 


잠만자는직장여성환영 오십세이상알바모집 선원大모집

배달부즉시출근가능 일수당일대출 신용불량자도대출可

 


얼어붙은 전봇대를 덮이는 환영, 가능, 대박,

대문에 붙어서 스티커를 뜯어내고 있는 아들이 보인다

컴퓨터 게임 대신 싫증 모르는 스티커 뜯기 놀이

경첩이 떨어지려는 대문을 어서 받쳐보려는데

 


어제까지 떼어낸 적색 신불자대환영 스티커가 

어린 아들의 등에 세습처럼 붙어 있다

 

 

 

 

 

달동네 아코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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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긴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년 넘게 시를 써오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를 쓸 수 있는 직업을 찾았으나 시를 쓰라고 배려해주는 편한 직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시 쓸 시간을 벌 수 있을까 해서 숙박업을 하다가 있는 돈까지 다 까먹었다. 시 때문에 여유롭던 나의 생활은 팍팍해졌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시를 통하여 내면을 치유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었다.

 

여러 번 신춘문예에 응모하였으나 최종심에만 몇 차례 올랐을 뿐이다.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좌절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올해까지 등단이 안 되면 등단을 포기하겠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국제신문으로부터 당선 소식을 듣고 힘을 얻어 다시 시를 쓸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린다. 어머니는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 막내아들인 나를 걱정하시며, 누님한테 유언까지 남겼다. 지난달 16일이 어머니의 사십구재였다. 구인사에 내려가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다.

 

시의 길로 이끌어주신 강인한 선생님, 정숙 선생님, 조연향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시마패 회원님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시를 쓰며 만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딸, 아내, 다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남송우 박남준 안상학, 세 분 심사위원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심사평] 삶 현실감 있게 보여준 공감 능력 높이 평가

 

한국 문단의 새 별이 되기 위해 시 부문에 응모한 이들의 연령층은 20대에서 60대에 걸쳐 있었고, 지역은 전국적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참으로 많았다.

 

332명 응모자의 숫자만큼 작품의 우열도 편차가 컸다. 시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작품에서부터, 기성의 시를 초극해보고자 하는 의욕에 넘친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시편까지 다양했다. 이들을 두고 시의 응축적인 구성력, 개성적인 상상력, 이미지화의 능력, 그리고 리듬 의식이 잘 융합된 빛나는 별이 될 작품을 골라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1, 2차의 거름을 통해 남겨진 작품들은 수준작이 많아 심사자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했다.

 

본격적인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황미현의 '다랑어 도마氏', 이은주의 '개인별 오아시스', 종이정의 '묵화',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 이명우의 '스티커' 등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황미현 이은주 종이정 3명은 투고된 다른 작품들이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과 같은 높이의 수준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와 이명우의 '스티커'가 최종 논의 대상이 되었다.

 

전자는 개성적인 상상력이 장점으로, 후자는 삶의 진정성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공감력이 높이 평가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고단한 오늘의 삶을 무리 없이 이미지화한 후자에 심사위원 모두가 더 공감하여, 이를 당선작으로 밀었다. 새로운 별이 된 것을 축하하며, 큰 별로 성장해 나가길 빈다.

 

심사위원 남송우 문학평론가, 박남준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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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령 또는 우리의 王 / 김분홍

 

 

이것은 두 짝, 권력에 관한 보고서이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당신은 스킨십을 좋아해

 

자르려는 자와 붙어 있으려는 자의 대립으로 각을 세우고

같은 말을 쫑알대는 손가락에 권력이 붙는다

 

살을 섞으며, 당신을 사랑했다

뼈를 추리며, 당신을 증오했다

 

같은 동작을 세뇌시키는 당신은

뼈대만 남은 마지막 자존심

당신의 부름에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12월의 볼륨까지는 고백이 필요하다

 

온몸을 좌우로, 상하로 굴곡 있는 성격을 만든다

당신의 몸에서 땀방울이 떠나고 있다

권력의 잔고가 쌓인다

가슴에 왕을 만들 때까지 밥그릇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아령을 찌그러뜨리며 근로자들이 첨탑 농성을 하고 있다

아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우리의 왕

 

당신의 권력에 군살 한 근 붙지 않는다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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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늦은 나이에 이룬 등단의 꿈 소중히 키우겠다

 

시는 들숨과 날숨이며 근육 운동이라고 말한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을 읽으며 시가 아령이라고 상상합니다. 군살 없이 잘 다듬어진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화해 불가능한 단어들을 조합시켰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개미처럼 문장들을 이리저리 옮겼으나 는 나를 외면했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일 빼고는 시를 읽고 썼습니다. 뿌리를 신고 있는 화분 속의 신비디움이 긴 목에 꽃망울을 매단 날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잊을 수 없을 감동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렇습니다.

 

시를 쓰겠다고 27년 다닌 회사를 박스 한 개에 포장했을 때, 나를 왕비처럼 대접하겠다고 격려해 준 남편, 사랑하는 아들 재훈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자식들 기도를 하시는 눈먼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어린왕자를 그려주던 권영란, 1 2일로 시 이야기를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진혜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계실 김영남 선생님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시인이라는 평생 직업을 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 선생님 특별히 감사합니다. 누가 되지 않도록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더불어 국제신문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심사평] 활달한 어조에 흥미로운 상상력 응모작 중 압권

 

시단에도 성형이 대유행이다. 잘 빚어진 작품들은 많으나 고유한 생기를 찾기가 힘들다. 뿌연 관념과 성찰 없는 묘사와 휘황하기만 한 이미지의 더께가 시의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장황한 요설까지 더하여 사물과 현실의 빛나는 구경은 갈수록 희박해져 간다. 꿈틀거리는 생의 비의를 추적하면서 경화된 시어의 권위를 의심하는 불화와 불온의 젊은 시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착잡한 예심 인상을 교환하며 심사진은 각 2편씩을 가려 뽑아 모두 여섯 분의 작품을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응모자들 모두 산문적 일상을 품고 떠오르는 시적 부력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최종심에 남은 것은 성영희와 김분홍의 작품이다. 고른 기량과 자신만의 고유한 화법을 가지고 있어서 두 분 모두 당선의 자격이 있었다. 성영희는 더러 튀어나오는 비문과 산문적 진술이 거슬렸으나 사물을 초점화해서 날카롭게 묘사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김분홍의 경우는 무엇보다 언어와 사유의 힘이 팽팽한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특히, 활달한 어조에 흥미로운 상상력을 담은 '맹꽁이 울음'과 드물게 사회학적 상상력을 선보인 '아령 또는 우리의 '은 전체 응모작 가운데 단연 압도적이었다. 자칫 알레고리의 단순성에 빠질 위험이 없지 않았으나 명징한 현실 인식과 날렵한 진술이 오히려 알레고리를 중층적으로 해석하는 힘이 되고 있음을 주목했다.

 

장고 끝에 심사진은 세련된 수사의 범람 가운데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잃지 않는 김분홍을 당선자로 선정하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하였고 자폐적인 언어 미학에 빠진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최영철 전동균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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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물방울 / 김유진

 

 

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밤을 깐다
복도가 나오고 수 많은 문이 보인다
벌레는 아주 가끔씩 빛처럼 부서졌다
그때 흔들린 손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한 말을 다시 반복하는 뉴스는 보았다
나는 물을 마신다 물이 흩어진다 수 많은 문이 열린다
흩어진 수 많은 껍질을 문이라 할 수 있을까

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윗부분 중간을 칼집 내어 잡아 당긴다
형광등은 자주 깜박거렸다
천장 한쪽 구석에 거미줄이 불빛에 걸려 움찔하면
아무도 없을 때 더 시끄러워지는 나는
그동안 꾼 꿈과 마주치고 다양해진다
초인종이 울린다 나는 다시 한 곳에 모인다

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거울을 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어본다
웃음이 길게 늘어지며 읽을 수 없는 표정들이 지나간다
냉장고에 붙여 놓은 명언들이 노랗게 바래지고 있다
자주 삶은 베갯닛과 닮았다
인쇄해두고 한 번도 가지 않은 여행지를 자꾸 머리 속에서 내몬다
종이를 본다 얼룩진 곳이 단단하다

창문 위에 물방울이 가득 맺혀 있고
방에서 물방울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당선소감] 아버지 붙들고 흘리던 눈물, 영광으로 다가와

 

날씨가 몹시 흐렸고 이내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하루를 생각하고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흐릿하게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의 당선 소식. 잠시 휴대전화를 의심하고 귀를 의심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어쩌면 내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올여름 폐암 수술을 하신 아버님께 제일 먼저 이 기쁨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술하지 않으시겠다던 아버지 붙들고 울며 흘리던 그 눈물이 바로 오늘의 영광인 '단단한 물방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숨 고르고 돌아보니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참신한 상상력으로 늘 새로운 시의 길을 안내해 주신 김영남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의 손을 놓으려 할 때마다 다시 용기를 북돋아 준 이기홍 선배님, 심명수 선배님, 그리고 정동진역 회원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언제나 저를 최고로 믿어주는 송경수 씨, 당신이 있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첫 독자가 되어 쓴소리를 거침없이 해준 지혜, 지연, 나경에게 사랑한단 말 전합니다.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는 동생들 완희, 영진, 병관, 정희, 종일이와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음지의 숨소리를 건져 올려주신 김명인 선생님, 박태일 선생님, 최영철 선생님 고맙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을 약속하오며 제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국제신문사에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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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온건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일상의 풍경 자아내

 

신춘문예 투고시가 두 켜로 나뉜 지는 오래다.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소수 전문시와 흔한 생활시 다수가 그들이다. 그만그만한 표현력을 갖춘 전문시는 우리 사회에 시를 꾸준히 학습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생활 감각을 담아낸 소박한 생활시 또한 문학이 삶의 중요한 취향문화임을 한결같이 일깨워 준다.

문제는 이런 속에서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한 작품이나 새로운 시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적당한 수준의 언어감각을 바탕으로 소극적인 표현성에 머문 작품이 대종이다. 올해 투고시 또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뽑는 이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셋이었다. 조유희의 '고양이의 대화법', 김태형의 '비 내리는 공단', 그리고 김유진의 '단단한 물방울'이 그들이다.

'고양이의 대화법'은 고양이를 대상으로 삼은 날렵하고도 예각적인 인상화다. 글감으로서 흔한 고양이를 시인 나름의 신선한 서정 공간으로 감싸고자 했다. 표현주의적인 필치까지 겨냥한 역량이 뛰어났다. 거기에 견주어 '비 내리는 공단'은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 풍경에 대한 집중적인 응시가 빛나는 작품이다. 대범한 수사로 그려 담은 날카로운 현장성은 시인의 넉넉한 뒷심까지 엿보게 한다. 앞서 가는 삶보다 뒤서는 삶이 차라리 건강할 수 있음을 일깨워 주는 시다. 그럼에도 두 편 모두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완성도가 떨어졌다.

'단단한 물방울'은 방에 앉아 밤을 까는 가벼운 일상을 독특한 상상적 직조술로 즐긴 작품이다. '고양이의 대화법'처럼 표현성을 극도로 좇지도 않았고, '비 내리는 공단'과 같이 현실의 무게에 표현이 밀리지도 않았다. 그만큼 온건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풍경을 자아낸 셈이다. 이 작품이 지닌 나날살이에 대한 섬세한 상상력은 아무나 넘볼 경지가 아니다. 함께 보낸 '핀셋' 또한 좋은 작품이었다. 당선작으로 밀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두어 군데 막연한 진술이 흠을 키웠다. 따라서 뽑는 이는 김유진의 '단단한 물방울'을 즐겁게 당선작으로 민다. 힘차게 날아오를 앞날을 기대해도 좋으리라. 더욱 가혹한 말의 형벌 속으로 쉼 없이 내려서기 바란다. 

 

심사위원 김명인 박태일 최영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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