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고려장高麗葬 / 전선용
땅이 붉게 상기되어 곡소리를 낸다
잔혹한 살상의 고동 소리
무덤의 골짜기에 시뻘건 눈물이 흐르고
문상객 없는 입관 터에
굴착기 엔진 소리는
죽음을 알리는 진혼곡이다
그들이 남긴 여적餘滴은 간단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비명횡사非命橫死 한 짐승은
수의 대신 거적을 걸쳤고
유대인이 죽어간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뒤뜰 구덩이에 매립되었다
땅을 밟으며 흐느끼는 상주의 허탈한 비명
사천死川을 따라 굽이쳐 흐르는 절규가
민들레 홀씨 되어 흐른다
마을 어귀에 외부인 출입금지 표식이
근조 리본처럼 펄럭이지만
애도하는 향은 어디에도 피우지 않았다
그리고
묻힌 곳에 짐승의 비명碑銘
국화 한 송이도 없었다
노을은 핏빛 되어 서산을 삼키고
상주가 짐승의 흔적을 주울 때
상주의 그림자도 말없이
지워지고 있었다.
녹슨 낫 / 한영희
아버지는 낫으로 연필을 깎았다
밤마다 마루에 앉아 낫질을 하며
어린 자식들을 위해 중얼중얼 주문을 걸었다
자식들이 연필을 쓰지 않을 나이가 되자
시퍼렇던 아버지의 낫은 녹슬어갔다
손바닥 굳은살이 아리는 밤들
자식농사가 한창일 때
아버지의 낫질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베어지는 것들의 비명소리도 높아졌다
낫의 깊이가 얇아질수록
손의 파닥임도 힘을 잃어갔다
새벽 문틈으로 새어나온 아버지의
잔기침 소리가 마당에 출렁인다
밤새 또 무엇을 위해 마음의 낫을 들었는지
자식들 위해 도려낸 조각이 수북하다
날을 세우고 울타리를 지켜낸 아버지를 위해
동트기 전, 녹슨
낫을 갈아야겠다
[심사평]
2014. 3.3일부터 4월 30일까지 약 2개월 동안 접수된 이번 제9회 한국농촌문학상에는 전국방방곡곡에서 시, 시조, 동시, 동화, 수필, 소설 등 약 630여 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예년에 비하여 많은 편이었다.
5월5일에 한국영농신문사에서 심사위원 5명이 예비심사를 시작하였다. 그 이후 약 12여 일 동안 계속 심사를 한 결과에 따라 결심에 오른 작품을 가지고 5월 17일 한국영농신문사에서 결심심사를 하였다.
신인은 물론 많은 기성작가들이 응모에 참여하였으므로 수준 높은 표현력, 작품성 등을 비롯하여 문학성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농촌문학이 추구하는 정체성이 결여되어 탈락된 작품들이 있었던 점은 아쉬운 일면이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작품들이 영농(營農)의 현상을 관광적(觀光的)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즉 들녘의 모습, 농촌의 풍경, 작물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그 느낌 등을 마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을 찍듯이 표현을 하고 그 내용들을 설명해 나가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농촌에 대한 정체성을 기본 바탕으로 깔고 그 안에 문학성, 구성성, 창의성을 엮어서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켜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약했다는 생각이다.
배, 사과, 고구마, 논, 밭, 모내기, 논둑길, 등등의 현상들인 농촌의 상황을 겉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그런 영농(營農)들의 안에서 활동하고 직접 체험하면서 교감(交感)하거나 대화(對話)하고 농촌에 대한 아픔이나 슬픔이나, 기쁨 등등, 그런 애환(哀歡)들과 함께 하면서 상처를 치료해 나가거나 고통을 이겨내는 감동(感動)이나 교훈(敎訓)을 주는 작품들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동시에 작품을 읽는 독자층에게는 농촌을 사랑하게 하고 그 사랑을 시작으로 농촌을 이해하거나 영농(營農)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갖게 해주는 정신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 농민들에게도 격려를 해주고, 용기를 갖게 하면서 밝은 희망을 주어야 하는 작품들이 적었던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농촌을 바라보는 느낌에 대한 표현은 어디까지나 조연(助演)이지 주연(主演)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가 흙이 되고, 벼가 되고, 농부가 되거나 각종 작물이 되어 활동하는 장면이 주연(主演)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농촌문학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모든 입상 작품들은 어느 정도 농촌문학이 지향하는 내용으로 정체성을 비롯한 그 문학성이 드러난 작품들이었고 특히 대상을 수상한 ‘상머슴 실록’은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감동성을 주었던 작품이어서 모든 심사위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아 선정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작품에 응모해주신 전국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내년 10회 응모작에서는 더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어지기를 바라면서 심사평에 대신한다.
심사위원장 양승본 / 심사위원 이근배 이대영 김봉진 이광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