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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괭이 한 자루 / 김상규

 

삽괭이 하나가 아버지를 짊어지고 서 있다.

논에 가서 삽괭이 대가리를 땅에 박고 막 흔들 때,

지렁이 한 마리가 걸려 넘어오지 않더냐.

고놈의 지렁이가 무시로 길어서

꼭 장마철 갈천(渴川) 같더라.

고놈의 지렁이가 배때기로 땅을 기는 것을 보니

꼭 네 어미가 네 나을 때 지르던 괴소리 같더라.

고놈의 지렁이가 눈도 없이 앞으로만 치달리니

꼭 내 인생과 같더라.

고놈의 지렁이가 땅으로만 대가리를 박는 걸 보니

네 할아버지가 보고플 때 마다 산소에 찾아가

머리만 주악거리는 내 꼴을 보는 것 같더라.

더 이상 밭일을 못하는 아버지가 아직도 나를 짊어지고 있다.

흙에서 흙으로 이어지는 내리사랑을 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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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 이지원

 

여름이 마음 급해 손을 뻗을 즈음

우리 할매 앞마당엔 감꽃이 흐드러졌더라.

달짝한 감꽃 내가 온 마당에 스몄어도

억센 울 할매 생을 닮은 큰 손에는

매운 마늘 쫑대만 꽃다발처럼 묶여나가고

웅숭깊이 묻어 뒀던 고단함이

나지막한 가락 되어 흐르면

흙장난하던 손녀도 괜시리 마음이 맵더라.

이맘때쯤 돌아오던 큰아버지 제사에

시들은 감꽃마냥 앉아 있던 울 할매는

온통 생을 잃은 갈빛이더라.

스스로 제 몸을 썩히던 뒤뜰 병들은 나무와 같이

속으로 서걱서걱 부서지던 우리 할매......

들큰한 그 향내에 울렁이지 않던 이는

울 할매 밖에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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