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연착 / 노수옥

 

 

오전에 내린다는 비는

오후가 되어서야 쏟아졌다

아마도 우산들의 모의가 있었지 싶다

 

몇몇 우산의 후예는 지구 밖으로 날아갔다. 활짝 펴졌다. 그리고 다시 우기를 살피고 비의 입자를 감지했다. 가끔은 지구 밖에서도 비가 내린다고 빗소리 같은 잡음을 전송해 왔다

 

비는 늘 시시각각을 벗어난 적이 없다 어느 곳에서든 정시를 고집하지 않고 습도의 비율을 찾아다녔다.

 

연착이 없는 태양과 달,

단호한 날짜마다 태양과 달의 봉인 도장이 찍혀 있다

 

비가 내리는 동안 지상의 나무는 그늘을 따돌리고 잠깐 자란다. 타설된 오전에서 오후의 빗방울 화석이 발견되었지만 그건 인류의 역사를 밟고 지나간 거인의 발자국과 같은 과정일 것이다.

 

느닷없이 쏟아진 소나기는 저 아랫마을에 가서 깊어졌다

 

끊긴 오전에서 오후를 넘어온 시내버스 운전사는 연착을 설명하느라 바쁘고 왼손쯤에서 사라졌던 태양이 오른손에서 발견되었다.

 

이유 불문, 태어나는 일에는 연착이 없지만 태몽은 연착이 있다

 

약속은 대부분 내려야 할 곳을 놓친 사람의 입장이 아니다

중간에 교차로가 있고

속도의 결렬이 있고

아직 분실이

바닥에 닿지 못하는 이유다

 

 

 

쿠팡

 

deg.kr

 

- 에드픽 제휴 사이트로 소정의 수수료를 받습니다.

 
 

 

[당선소감] 모두와 기쁨 함께…"빗방울 같은 둥근 시인 되겠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건 내가 몰랐던, 모르고 있는 곳의 소식이라고 알려주는 듯 했습니다. 몇 마디 말 끝에 우산이 확 펴졌습니다. 제법 무게가 나갔습니다. 순간, 방바닥과 발바닥의 사이가 한 뼘쯤 들떴고 12볼트의 바람이 불어와 나는 잠시 홀씨가 된것 같았습니다. 왼쪽 가슴 아래가 저렸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아무런 질문없이 대답만 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지구 근처에서 우주의 먼 과거를 쏘아보는 제임스웹 망원경의 눈동자처럼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는 과거를 쓰는 자세를 잃지 않겠습니다.

 

신앙과 시의 길을 가르쳐주신 마경덕 선생님 존경합니다. 이승하 교수님, 중앙대 잉걸문우님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같이 공부한 롯데 평촌 문화센터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믿어주는 가족이 있어 모든 것이 처음이며 결과입니다.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한 남편 지준각씨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내 생에 최고의 선물인 윤정이 영진이 가정 축복하고 준빈 준우야 사랑해!

 

아직 비를 만나지 못한 구름이거나 말 못하는 사람의 손짓에 불과한 저를 선해주신 광남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끝을 동그랗게 모아들이는 빗방울 같은 둥근 시인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심사평] 사유의 발랄함·냉정한 시선…신인의 과감함 돋보여

 

십여 년 전부터 신인상에 응모하는 작품 속에서 응모자의 성별과 나이를 짐작하는 일이 무척 어려워졌다. 이번 심사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를 위해 인적 사항을 지우고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하는 방식의 영향이 크겠지만, 신선한 감각과 개성적 사유가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듯 투고된 작품들이 하나같이 세대의 구분을 지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시로 다시 한번 청춘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고투도 빛나 보였다. 응모작 중 어느 것 하나 뜨겁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다만 심사자의 입장에서는, 온몸으로 받아낸 자기 체험 없이 손끝으로 매만진 작품의 가벼움은 경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응모작 행간에 스며있는 사유의 농밀함과 시선의 깊이를 찾는 데 주력하였다.

 

이중 ‘마트료시카’ 외 4편, ‘말, 얇고 두텁고 다순’ 외 4편, ‘버드 세이버’ 외 4편, ‘슬리퍼’ 외 4편, ‘연착’ 외 4편을 시간이 허락하는 마지막까지 두고두고 읽었다.

 

‘마트료시카’ 외 4편은 사회적 메시지를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개성이 돋보였다. 이미지나 의미를 자기 시의 질서 안에 수렴하는 모습이 안정되어 있으나, 의미가 시의 맥락을 선도하려는 태도가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말, 얇고 두텁고 다순’ 외 4편은 자기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하지만 이미지로 구축된 시적 세계를 지탱해줄 시적 논리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서 아쉬움이 컸다. ‘버드 세이버’ 외 4편 역시 흥미로웠다. 시에서 다루는 제재가 현실과 밀착되어 있으되, 시인의 은유를 통해 현실에 종속되지 않고 시적 여지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균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 못해 전적으로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슬리퍼’ 외 4편은 나름 자신만의 개성적 문법을 만들어내고 있어 눈길이 갔다. 하지만 매 시편에서 반복되듯 드러나는 서술어의 변주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어조는 시에 가장 적절한 것으로 골라야 하는데, 시인의 간섭이 다소 지나치다 싶었다.

 

결국 당선작으로 ‘연착’ 외 4편을 선정했다. 응모작 5편 모두 오랜 수련의 흔적을 안은 채, 균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간혹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사유의 발랄함과 시적 대상을 뜨겁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발굴해내는 솜씨가 훨씬 값져 보였다. 당선작은 자전과 공존의 정확한 주기로 재단된 세계 속에서, 오히려 결렬이나 연착을 통해 이루어지는 우리 삶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연출해내고 있다. 사유의 깊이가 남다르고,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해내는 과감함이 신인으로서 기대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다만 시를 조금 더 현실로 팽팽하게 끌어당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시인으로 새로운 삶을 얻은 당선자가 세상과 교감하고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자기 시를 쓰며 오래오래 버텨주길 응원한다.

 

- 심사위원 : 김병호(시인·협성대 교수)

728x90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 / 이정임

 

 

잘방잘방

 

가을 강은 할 말이 참 많답니다

저렇게 눈부신 석양은 처음이라고 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도무지 닫혀 있던 입

흰 귓바퀴 꽃을 봅니다

안개 짙은 그 하얀 꽃을요

 

나는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한 바퀴 즐거운 나의 집, 두 바퀴 세 바퀴 현()을 타 봅니다 눈감고 오물오물 따라하는 어르신 핑 돌아 떨어지는 눈물 한낮의 요양원 창밖으로 찔끔 찍어 냅니다 사람들은 먼 나무위에 앉아 졸고 가을 강은 나를 자꾸 떠밀고 갑니다 알 없는 안경너머로 두 다리 유니폼의 건장한 날이 있습니다 서슬 퍼런 기백이 있습니다 백지로 두고 떠나자고 말한 적 있답니다 구절초 강아지풀 억새 어우러진 둔덕 제 모습에 반해 석양을 품은

 

비록 비위관(脾胃管)에 연명하지만 포르르 동박새 동백나무에 오르고 옛 기억 하나둘 돌아옵니다 참 맑은 하늘이 도리질 치다가 풀썩 잠이 들라 합니다 퐁당 물구나무를 서거나 물비늘을 따라 멀리멀리 헤엄쳐가기도 하는

 

가을 강은 심하게 몸살을 앓는 중입니다

 

소실점 잘방잘방 아스라이 붉은

 

 

 

 

[당선소감] "그늘진 곳 들여다보며 따뜻한 시 쓰겠다"

 

멀리서 오신 이름, 보름달보다 크고 둥근 뽀얀 박으로 덩그렇게 오신, 아무리 많은 보석이 쏟아진대도 저는 슬근슬근 톱질을 아낄 거예요.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초록초록 옛날 옛날에 말들이 뛰놀던 곳이라서 마리뜰이라고,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떠나 살고 마리뜰을 그리워합니다.

 

까만 말고 하얀 나비고무신을 조르던 여름. 아버지 지게 위에 다소곳 따라오던 까만 머루와 어머니의 정갈하게 널린 하얀 빨랫줄, 오동나무에 걸린 하얀 눈 냄새, 참새 떼 날아오르던 닭장아버지는 눈 가래로 나는 싸리비로 눈을 치웠죠, 쓸다보면 어느새 다시 와서 살포시 앉던 녀석들 늦깎이 공부를 합니다. 한 번도 펴보지 못한 교과서의 잉크냄새가 미안해 휴학을 결심한 적 있지요. 감히 말하라면 저의 시는 오롯이 고향으로부터 옵니다.

 

홍유릉 둘레 길을 걷다가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방방 뛰다가, 뛰다가 날다가, 이렇게 덜컥, 오시다니요. 조용히 설레다가 처절하게 허기지다가 그러기를 10여 년, 많이 기쁩니다. 내일이 동지입니다. 일부러 느긋하게 하얀 밤을 샙니다. 동글동글 새알심을 만들며 빕니다. 제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버팀목 경진 현진 성후 고맙고 사랑해, 동생들아, 조카들아, 이제라도 고봉밥을 차려보자. 도향스님! 존경합니다. 불 켜놓고 자면 해롭다고 새벽마다 불꺼주고 가는 그 정성, 알지요.

 

사유의 힘, 치열하게 들여다보라, 운율 속으로 우렁우렁 명 강의 이지엽 교수님 고맙습니다. 김동찬 교수님, 시와 길 선생님들, 회장님 덕분입니다. 인사를 빠뜨려서 늘 죄송한 분이 계십니다. 꼭 뵈러 갈게요. 이런 큰 기쁨의 자리 마련해주신 광남일보와 관계되시는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부족한 제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립니다.

 

이 순간도 양로원에서, 요양원에서 고독으로 뒤척이고 계실 어르신들의 안녕을 빌어봅니다. 얼굴도 모르는 시아버님, 늘 다독여주시던 시어머님, 그리고 저희 7남매 곁을 일찍 떠나가신 친정 부모님께 이 영광된 상()을 바칩니다. 춥고 어둡고 그늘진 곳을 들여다보며 따뜻한 시를 오래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차곡차곡, 다시 시작입니다.

 

 

 

 

맛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균일한 울림따스하고 섬세한 서정 기대"

 

밤을 새워 영혼의 즙을 짠 문청들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시를 쓰면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지 않고 시를 쓴 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엔 끊임없이 시를 쓰는 이들이 태어나고 그들의 시에서 영혼의 위로를 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삶과 시. 지극히 이질적인 두 존재의 병치야말로 현생 인류를 설명하는 가장 따스하고 지적인 방식 아닐런지요.

 

점자책4, ‘트라이앵글4, ‘내 안의 붙박이장4,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4편의 작품을 읽는 동안 마음 안이 따뜻해졌습니다. 현실과 유리되지 않았고 난해시의 범람에서도 거리를 두고 있었지요. ‘시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해야하지?’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삶을 붙들고 있는 섬세한 현의 긴장이 느껴졌지요.

 

점자책의 주인은 손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의 꿈을 새들이 부리 끝으로 톡톡톡 문 열어 달라’ ‘혹등고래가 허공을 유영하듯 지느러미를 펄럭인다고 묘사했습니다. 세계를 인식하는 차이를 결핍감이 아닌 자신만의 이해로 받아들였지요. ‘트라이앵글은 작은 타악기를 통해 인간의 의미에 다가가는 인식의 바다가 있었지요 인간은 사랑을 이해하는 데 일생을 바친다와 같은 범상한 인식이 트라이앵글의 진동을 통해 다가오는 순간 시의 본질이 은유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 안의 붙박이장은 함께 응모한 별주부전이 생각날 때 쯤과 함께 우리 시의 고질적인 난해성을 극복한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낡은 가구와 고전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같은 인간의 본성을 쉬운 언어로 표현한 미덕이 있었습니다.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을 읽어가는 동안 제목이 주는 일시적인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심성이 맑고 착한 시였지요. 휠체어를 밀며 휠체어 안의 어르신에게 조용조용 가을 강을 얘기해 주는 모습이 따스했습니다. 쉬운 언어가 갖는 촉촉한 질감이 강 건너 무지개처럼 펼쳐지는 신비한 느낌이 있었지요, ‘내 안의 붙박이장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모두 당선작이 될 시의 품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을 당선작으로 정한 이유는 함께 응모한 숙부’, ‘내가 꽃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 봄 언저리 호박벌이 맨땅에서 구를 때와 같은 시편들이 지닌 균일한 울림 때문이었습니다.

 

따스하고 섬세한 서정의 물결이 세계를 향한 큰 울림이 될 수 있음을 당당히 보여주는, 멋진 시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심사위원 곽재구 시인

 
 
728x90

 

 

길찾기 / 김진환

 

 

차창 너머 낯선 가게들

잠시 눈 감은 사이에

내릴 정류장을 지나쳤나

인터넷 지도로 확인한다

버스의 노선과 파란 점의 위치를

 

나는 길 잃지 않았다

인터넷 지도에 따르면

이 길은 내가 아는 길

매일같이 지나는 왕복4차로

 

거기서 나는 흰색과 붉은색 보도블록의 배열을 배웠고

넘어져 뒹굴며 무릎으로 손바닥으로 아스팔트를 읽었는데

 

보도블록의 배열이 다르다

아스팔트의 굴곡이 다르다

 

인터넷 지도를 확인한다

버스가 정거장 몇 개를 지나는 사이

파란 점은 아직도 아까 그 길에 있다

 

멀리 손 뻗어 손바닥의 살점 패인 자리를 보면

핏기와 죽은 피부의 흰빛이 구분되지 않는데

 

하차 벨 소리가 울린다

흰 버튼 위로 붉은 등이 들어와 있다

뒷좌석 사람이 내 뻗은 팔을 보고

대신 눌러 주었다며 손짓한다

 

버스에서 내려 아스팔트를 만져본다

인터넷 지도를 확인하지 않아도

이 길은 내가 아는 길이거나

거기로 이어지는 길

걷다 보면 낯익은 가게들도 보일 것이다

 

 

 

 

[당선소감] 시인으로 거듭남…제 마음에 달려 있을 터

 

학기의 마지막 과제를 남겨두고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금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반가운 한편으로 겁이 났습니다.

저는 언제나 학생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시를 안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습니다. 김근 시인께 질문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시는 어떻게 쓰는 거지요?” 선생님은 다정한 목소리로 답하셨습니다. “선생님도 모른다.”

시를 모르고 시를 썼습니다. 매번 새롭게 배우면서, 제게는 시작(詩作)의 아무런 토대도 없는 것처럼, 언젠가는 저만의 미학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상상하며, 그런 날에는 등단하지 않아도 스스로 시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시인이 되지 못한 사람이 시인으로 낯을 들어도 좋을까? 하루를 꼬박 고민하고 결심했습니다. 제게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이 소식을 순수하게 기뻐하기로 했습니다.

오래도록 저를 학생에 붙잡아둔 것이 제 마음이었듯이, 시인으로 거듭남도 제 마음에 달려 있을 겁니다. 더는 학생에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학생의 마음을 버릴 수 없다면 학생의 마음으로 시를 쓰겠습니다. 제 언어를 스스로 책임질 수만 있다면, 그런 시인이 있어도 좋겠지요.

시는 느린 언어라고 믿습니다. 그 언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느리게 들여다보면 시는 그 안에서 느리게 느리게, 자꾸 무엇을 보여준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말, 오늘 참 많이 했군요. 제가 시를 믿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인가 봅니다. 텍스트 안팎으로 움직이며 다채로운 감각을 자아내는 언어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언어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언어가 사람들의 믿음과 함께 읽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까지 믿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도해주신 선생님들과 서로 응원하고 있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문우들, 곁을 지켜준 가족들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더 많이 망설였을 겁니다. 아울러 부족한 시를 눈여겨봐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떠리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문화사적 맥락 속 독창적인 목소리 확보

 

양보할 수 없는 시의 미학적 규범의 하나가 상투성과의 싸움이다. 어디서 한번은 본 듯한 기계적인 언어의 조합이나 문장, 누구나 알 수 있는 흔해빠진 생각과 당연시해온 사회적 통념과의 치열한 대결이 개성적인 작품 탄생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지 않는 작품들은 이미 누군가 힘들여 개척해 놓은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가는, 그러나 결국엔 모방의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 아류작亞流作에 불과하다. 무한히 사본을 뽑아낼 수 있는 사진의 음화陰畵를 의미하는 ‘클리세’ 내지 복사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코로나 정국으로 인한 우울하고 답답한 시대상황 탓일까? 막연한 불안과 절망 의식, 실업과 빈곤 등의 주제나 소재가 다수를 차지하는 응모작들을 보면서 소감 중의 하나가 그렇다. 각자 절실하고 소중한 주제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다루는 방식이 이미 공유된 명백한 사실들이나 타성화된 담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그 표현방식이 이미 한국시의 스테레오 타입화된 기성 시인들의 어법을 닮아있다는 것은 유감이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경향 각지의 응모자가 보내온 1129편의 시들을 꼼꼼히 살펴본 후, 심사자는 김재언의 ‘물 저울’ 외 4편, 정두섭의 ‘가족의 탄생’ 외 5편, 황명희의 ‘황금냄비’ 외 4편, 장윤덕 ‘그늘의 역사’ 외 4편, 김진환의 ‘길찾기’ 외 5편 등을 최종 심사 대상으로 삼았다. 이 응모작들 모두 다행히 그런 상투성의 혐의(?)를 슬기롭게 피해가고 있다. 특히 이들 작품들은 언어를 필요 이상으로 학대하거나 당대 사회의 관습이나 윤리도덕을 의심 없이 추종하는 데서 오는 감상적인 휴머니즘 차원을 벗어나 있다.

하지만 심사자가 최종 심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장윤덕과 김진환의 시들이었다. 그리고 장윤덕의 경우, 유장한 리듬과 활달한 문장 전개 속에서 펼쳐 보이는 시대정신과 민중의식이 여느 기성 시인 못지않은 시력(詩歷)의 소유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심 끝에 심사자는 결국 섬세한 관찰력과 그에 바탕한 정치(精緻)한 시적 패턴 읽기에 기반하고 있는 김진환의 시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일견 소박하게 보이나 막강한 힘으로 군림하는 시적 영향이나 생각의 통속성을 벗어나는데 그치지 않고, 바로 자신만의 세상읽기와 사유를 정직하게 펼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당선작으로 뽑은 김진환의 ‘길찾기’는 길 찾기 맵과 실재, 인터넷 지도와 실제 삶 사이의 괴리에 대한 설득력 있는 알레고리화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동시에 필요 이상 시적 장식이나 세련된 수사의 남용보다 자신의 체험과 그 영향에 대한 성실한 반성 및 성찰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삶의 감각과 실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비둘기 낙서’와 더불어 당선작은 이미 진부해진 기존의 생각이나 문체들을 자기 것 인양 포장하기보다 그것들을 시대적이고 문화사적인 맥락 속에서 저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확보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최종심에 오른 5명의 응모작들은 여느 문학매체들에 응모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수작들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그러기에 너무나도 아쉽게 당선의 문턱을 넘지 못한 예비시인들에게도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특별히 당선자에겐 늘 정진하는 시인의 한 명으로 오래 한국시단에 기억되길 바라면서 축하의 꽃다발을 건넨다.

 

심사위원 임동확 시인

 

728x90

 

 

키, 키, 키, / 한병인

 

 

키는 어딘가의 구멍에 꽂힌 채로 계단 하나 정도의 높이에 매달려 있을 것이고

키는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구멍 하나의 길이로 밖을 가늠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오늘이라는 높이에 매달려 있는 작은 새 한 마리를 상상한다

새의 감정은 한사코 키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구멍을 물고 있는 저 키의 속성이 새의 부리에서 왔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키와 새의 부리가 키, 키, 키, 웃음을 만들어낸다 서로 너무 꽉 맞아 떨어지는 속내를 키는 키 만큼의 길이로 유희하고 전유하는 까닭이다 쪼는 저들의 관성에서 부리는 점 점 더 높은 구멍으로 향하고, 그러나 언제고 다시 풀리는 키와 구멍들, 키를 닮은 수많은 부리들이 구멍을 통해 일제히 날아오르는 환상에 갇힌다 허공 어디쯤에서 키, 키, 키, 잠시 웃음을 만들어 낼 때에도 웃음이 울음에서 왔다는 소리의 의혹을 키, 키, 키, 웃음으로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키들은 단단한 부리를 부비며 한껏 오므려 보이는 것이다 오늘은 너무 뾰족하게 발음되는 키의 모양새를 제외하면 키, 키, 키, 웃음 몇 개는 여전히 내일에 남겨질 것이고, 키, 키, 키, 더 완벽한 웃음을 위하여 계단을 오를 것이고, 이제는 키, 키, 키, 울음에도 섞이고 키, 키, 키, 조금은 숨죽이다가 키, 키, 키, 낮게 흥얼거리다가 키, 키, 키, 울먹이다가 키, 키, 키, 소리 지르다가... 드디어는

키,

 

키,

 

키,

더 깊은 구멍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다

 

 

 

 

[당선소감] 언어가 스스로의 틀 깰 수 있도록 할터

 

신춘문예 시 당선 소식을 듣고, 기쁨을 전하기 위해 한 남성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터라 자부심과 신념이 단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를 병간호하다가 두 달 전 암 선고를 받고, 갑작스레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가족들은 그의 건강을 염려해서 아내의 죽음을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내의 존재를 덤덤히 여기던 그가 어느 날 말을 꺼냈어요. “마실 간 너희 엄마는 언제쯤 온다니.” “시골 집이 비어서…화분에 물도 주어야 하고….”

‘이제 당신의 아내는 평생 그녀가 가꾸던 깨밭에 묻혀 있어요.’ 이 말을 그에게 전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시달렸습니다. 최소한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어야 했다고 자책하면서…

그러나 그것은 저의 오만이었습니다. ‘너는 한 편의 시를 그에게 읽어줄 용기조차 없질 않느냐.’ 저는 끝내 그녀의 죽음을 그에게 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 당선 소식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시, 나의 분신 ‘키, 키, 키,’가 웃음 짓는 모양을 아버님의 침상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웃음이 울음에서 왔다는 소리의 의혹을 키, 키, 키, 웃음으로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조금은 숨죽이다가 키, 키, 키, 낮게 흥얼거리다가 드디어는 식물성의 언어로 깊은 구멍을 찾아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여러 모양의 사연 하나 쯤 간직하고 있으므로, 시적 언어가 만들어내는 복층의 향연들에 참여할 수 있는 처지이지요. 시 당선 소감 글을 쓰는 이 시간, 나 자신을 향해 한 구절의 생각을 남겨놓을까 합니다.

‘감각을 투명하게 두어라, 언어가 스스로의 틀을 깰 수 있도록.’

지금까지 한병인의 시 당선 소감문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시와 사랑과 시적 언어에 대하여 일상의 생각을 전하면서 소감문을 대신하였습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새해에도 사랑하는 제 곁의 모든 분들에게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예스이십사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사유·다양한 시적 구사 위한 궁리 돋보여

 

1000여 편의 엄청난 응모작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임효빈의 ‘나는 언제나 파혼한다’, 김정아의 ‘미라처럼’, 한병인의 ‘키, 키, 키,’ 등 세 편이었다.

‘나는 언제나 파혼한다’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을 본 것처럼 ‘빠져드는 시’였다. 익숙한 세계와 시어를 다루지만 ‘다른 것’을 가지고 있는, 일테면 나뭇가지에서 다른 나뭇가지 끝으로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듯한 시 쓰기가 예쁜 파문을 연속적으로 일으켰다. 어떤 면에선 나무랄 데 없는 시였지만 마찰이나 거슬림이 끼어들 여지가 적어서 주저되었다.

‘미라처럼’은 마른 멸치를 통해 자유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을 겹쳐놓고 거기서 멸치 머리와 배를 따듯이 마지막까지 내줘야 하는 것들을 분해해 내는 솜씨는 분명 큰 덕성이지만, 시가 어떻게 끝날지 훤히 알 수 있다는 점이 아쉬었다.

고민 끝에 ‘키, 키, 키,’를 당선작으로 민 이유는 앞의 두 시편보다 철이 덜 든 언어의 맛, 그리고 사유와 다양한 시적 구사를 적용해 보려는 궁리가 투고된 전체 시 가운데 가장 돋보인 때문이다. 특히 몇 줄쯤 없어도 좋을 느슨해진 뒷부분의 동어반복이 자꾸 마음에 쓰였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시적인 촉수가 민감하다는 것을 믿었다.

키는 키 너머에서 무언가를 발생시키기 위해 공을 들인다. 키는 “구멍에 꽂힌 채로” 몸을 한 번 바꾼 다음 “오늘의 높이에 매달려 있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된다. 이제 하나이면서 둘인 ‘키’는 비웃음 같은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더 높은 구멍으로 향하고”, 그리고 “환상에 갇힌다”. 그러나 종국에는 “더 깊은 구멍으로” 떨어져 내려야만 한다. 그런 나락이 음울하지 않고 경직되어 있지 않은 점이 그의 시의 장점이다.

키는 매달려 있지만 일이 있고, 새의 부리는 다물리고 아프지만, 날개가 있다. 인생은 고달프고 몸은 무겁지만 너와 나, 혹은 두 세계를 잇는 통로라 할 법한 ‘흥얼거림’이나 ‘울먹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시가 그런 흥얼거림이나 울먹임으로 살짝살짝 날개를 들어올리며 공중으로 나아가는 그런 시였으면 좋겠다.

누군가 좋은 시가 아닌데 좋은 시처럼 보이려는 것을 독자는 제일 싫어한다라는 말을 했다. 한병인씨를 시단에 내보내면서 시간이 흐른 후 그가 좋은 시인이라는 것이 확인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선자(選者)의 기도와도 같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한가지 기록해 두고 싶은 것은 열세 살 어린이 김한희가 응모한 사실이다. 그 시들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무럭무럭 크고 점점 나아질 것이니 많이 읽고 많이 쓰기를 부탁한다.

 

심사위원 황학주 시인

 

 

728x90

 

 

혀를 삼키는 나무 / 조경환

 

 

그를 떠나보낸 건 혀였다

혀가 어른이 된 나무를 스튜디오에 불렀다 

머나먼 이국으로 흙 한 줌, 물 한 모금 보자기에 싸여 보내졌다

어른의 모습으로 그가 돌아왔다

-어머니 찾으러 왔어요

1번 카메라 앞에서 젖은 가지를 후드득 턴다

붉은 혀가 더듬더듬 어떻게 살았느냐며 묻는다

허공에 파노라마처럼 나무의 성장과정이 실금처럼 얽히고 설킨다

-누굴 원망한 적은 없는 걸요

심호흡 한번으로 다 풀 수 없다는 듯이 고개떨군다

-우는 법도 잃어버렸어? 혀가 묻는다

-오는 내내 비가 내렸어요

더 가벼워지지 않으려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날아왔죠

뿌리를 내리기까지 나무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새 뿌리에 새 말이 고인다 새 흙이 덮이고

새 잎이 수북이 쌓인다 

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꺾꽂이 된 거군요

혀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혀가 3번 카메라를 보는 사이 

내가 어미라는 말이 들린다

혀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저음이다

아랫입술 밑에서 나오는 작은 소리다

갑자기 그가 꺼이꺼이 운다 

혀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그의 등을 두드린다

어른이 된 나무가 몸속 깊이 혀를 꿀꺽 삼킨다.

 

 

 

 

[당선소감] 더 크게 집을 짓고 마당도 넓혀 시로 쓰다듬자

 

신문사에 원고를 보낸 후 아내에게 말했다. 무조건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해달라고 했다. 아내는 이유를 먼저 묻는 평소의 대화방식과 다르게 “조경환 신춘문예 당선”이라고 내 말을 반복해 말해주었다. 당신 입으로 말해주면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늦은 동지죽을 쑤었다며 이웃 아주머니께서 보내주신 따듯한 동지죽을 막 먹으려는 차에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 손을 잡고 입학식에 갈 때처럼 떨림 반 설렘 반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니 떨림이 더 컸다.

처음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훗날 한 권의 자작시집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수없이 망설이다가 결국 묵은 습작시를 책상 위에 출력해 놓았다. 모두 왜소해 보이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습작의 시간도 제대로 갖지 않은 20년 가까운 공백은 컸다.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못도 치고 흙도 덧발라보았다. 그러나 상태는 나아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집을 낼 욕심으로, 처음 시 쓰기의 기초를 놓아주신 전원범 교수님께 보따리를 싸들고 갔다. 책으로 내고 싶으니 눈 한번 맞춰주시라는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근본 없는 자식처럼 아무데도 이름을 올리지 않고 책만 내면 되겠느냐고 책하셨다. 그래서 더 지도해주시기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여러 문을 두드렸다.

시를 쓰면서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생에 대한 감사 또한 상처 일부라도 용광로 안에서 녹아 섞이지 않으면 공허하다. 깊이깊이 숨어버린 상처를 찾아 꺼내놓기도 해야 하고 내 주변의 상처들까지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날’이라는 마음의 작은 집 하나를 지어두고 살면서 외출도 하고 그리움이나 연민 등을 초대도 하며 살았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외박은 하지 않겠다는 묵시적 규율도 정해두었다.

그러나 기왕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많은 것을 가둬두지 말자. 풀어 놓자. 그것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자. 그러면 집을 왕래하는 것들이 스스로 치유되고 나 또한 치유되리라 믿기로 했다. 더 크게 집을 짓고 마당도 넓혀 시로 쓰다듬자. 호호 불어서 치유되는 일상들이 내 주위에 몇은 있게 하자. 꿈을 꾸자.

꿈을 갖도록 해주시고 펼칠 수 있도록 부족한 저를 북돋아 한 계단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광남일보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동인활동으로 어깨를 나란히 해주신 여러 문우들과 선배 작가님들께 감사드린다. 특별히, 도전을 망설일 때, 그리고 여러 고비 때마다 본인들의 창작열을 나에게도 아낌없이 나누어주며 응원해주신 두 분의 동화작가 김명희 선생님, 임성규 선생님과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글쓰기가 어느 때는 실없어 보일 때도 있었겠지만 화병에 물 갈아주고 딴전부리는 아내의 속마음이 더없이 고맙다. 눈 맞추는 것만이라도 잘 해보겠다며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잘 자라준 딸·아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유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입양 글감…민족사의 비애 인내의 언어로 전개

 

시의 역할과 기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다른 공연예술과 영상예술이 사람들 주변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와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핸드폰의 발달로 인해 모든 예술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게 되자 더 이상 시를 찾지 않게 된 듯도 싶다. 이제는 책을 펴고 앉아 읽으며 즐기던 기존의 고급 예술인 시가 설자리를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투고된 원고는 상당했다.

어쨌거나 선자는 정성을 다해 읽으며 원고더미를 줄여갔다. 우선 15편의 우수작을 골라낸 뒤 읽고 또 읽으며 엄선을 거듭해 나갔다. 마침내 좋은 작품 7편이 남게 되었다. 이렇게 엄선을 하는 과정에 투고한 사람의 이름도 확인이 되었다. 아는 이름이 있으면 과감하게 떨어뜨렸다. 역차별을 당한 셈이다.

최종 예심에 오른 시 7편은 김향숙의 ‘달의 계곡’, 김정순의 ‘필사의 밤’, 조수일의 ‘낯선 조문’, 김휼의 ‘악어가 사는 집’, 김현곤의 ‘남간재 구름다리’, 이호영의 ‘모퉁이 찻집에서’,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였다. 이들의 시 7편을 중심으로 투고자의 나머지 시들도 거듭 검토한 결과 김현곤의 ‘남간재 구름다리’, 이호영의 ‘모퉁이 찻집에서’,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를 남기고 나머지는 옆으로 밀어냈다 그런 뒤 다시 또 남은 3편의 시를 여러 차례 숙독했다. 거듭 숙독한 끝에 우선 먼저 김현곤의 ‘남간재 구름다리’를 제외시켰다. 이호영의 ‘모퉁이 찻집에서’와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만 남게 된 것이다.

이호영의 ‘모퉁이 찻집에서’는 서정이 풍부한 시, 공감이 풍성한 시이다. 하지만 그런 장점과 달리 예의 시와 함께 투고된 시들에는 추상적 관념이 많았다. 이호영의 시적 역량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는 뜻이다. 읽고 또 읽은 끝에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를 2019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의 당선작으로 뽑기로 했다.

나머지 시들도 우수하지만 이 시는 ‘머나먼 이국’으로 입양을 떠났던 아이가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와 어미를 찾는 방송국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선은 아이를 나무로, 그 나무를 이국으로 떠나보낸 원인을 혀로 알레고리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 재미와 함께 전개되고 있는 민족사의 비애를 인내의 언어로 전개하고 있는 면도 긴장감을 준다. 민족사의 비애와 함께 섬세한 운산이 담겨 있는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를 당선작으로 민다.

당선된 사람에게는 축하를, 낙선된 사람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은봉 시인(광주대 명예교수)

 

728x90

 

 

첫 차 / 심상숙

 

 

환한 덧니가 영정을 물고 있다
부음은 여태 기다리고 있었구나
이곳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혜화동 대학병원 장례식장 한 밤의 보일러 굉음이 블랙홀이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눈발, 국밥 말아먹듯 휩쓸려간다

 

눈 덮인 교복과 찹쌀떡 모판을 방 윗목에 세워 두고
모나미 볼펜과 파카 만년필 좌판 그리고 문구 캐비닛
끝내 가보지 못한 장학생 대학 합격증을 끌어안고,

 

영정 속 덧니는, 네모 속으로 문상객이 내어 준 사각의 추억을 끌어 들인다

 

종로에서, 덕수궁에서 우리 한 번 마주 친 적 있을까

흰 국화꽃 대궁 끝에 떨어질 듯 매달린 저 눈빛
아직도 인연이 남았는지 팽팽하다

 

단단한 잇몸 뚫고 좋은 내색이듯 빛나는 뻐드렁 덧니, 누군들 함부로 웃지 못한다 알 굵은 사과나 날 고구마
를 통째로 베어 물어 아귀 귀신 달래듯 자리를 내어 줄 뿐이다


막차 전철도 끊어져 눈 쌓이는 저녁
총알택시 대신
대학병원 아무 집 영정 앞 뜨신 바닥에 덧니로,
앉혔다가 꼭두새벽 일어서는 자리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nefing.com

 

 

 

[당선소감] 삶과 정면으로 마주쳐 살며 읽고 또 읽겠다

 

눈이 내립니다. 애기동지 짧은 해가 저물었습니다. 뜻밖의 당선소식을 받습니다. 담담합니다. 한 때 당선이라는 흔들림보다, 에밀리 디킨슨의 서랍 속으로 깊숙이 원고를 밀어 넣는 일도 좋겠습니다.

문득 떠 오른 생각하나, ‘더 잘 살아야겠구나’ 더 사랑했어야 했습니다. 귀담아 들어주고 함께 만나 담소를 나누었어야 했습니다. 시간을 파는 가게를 찾던 나, 나는 이제부터 나의 시간을 파는 가게를 차려야 합니다. 타고난 시인도 아닌 내가, 책을 읽고 쓰고 수없이 들여다봐야 하는, 시를 쓴다는 일은 발가락 닳는 노정입니다.

눈이 내립니다. 창밖으로 눈이 쌓입니다. 아파트 터를 닦느라고 앞산을 퍼내었습니다. 헐어낸 비닐공장 돌 자갈 위로, 흔들리던 개 망초 꽃무더기와 칡꽃 향기, 뱀 구멍 위로 눈이 쌓입니다. 저 멀리 피어나는 산마을 불빛을 지우고 눈이 쌓여갑니다. 산이 솟아있던 자리, 새로 생겨난 공중으로 눈이 날립니다. 햇살이 창槍을 던져 처음의 공중을 관통할 때, 허허로운 한 생이 태어날 것입니다. 허공은 투명한 어둠으로 무수한 눈발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나는 새로 생겨난 허공의 웅얼거리는 소리 껴안으며 비로소 내가 됩니다. 골짜기 눈바람으로 숨이 찬 그가 내게로 환히 다가오기에 나는 있는 것 입이다. 산 너머 하늘이었다가 맑은 밖이 되었다가.

부족한 저의 글을 눈여겨 들어주신 광남일보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삶을 성찰해가는 보다 깊은 사유를 길어올려 보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나의 삶과 정면으로 마주쳐 살며 읽고 또 읽겠습니다.

‘시는 자신의 잿더미에서 다시 태어나 조금 전 자신으로 무한히 되돌아가도록 창조되어 있다’는 폴 발레리의 담론처럼 시인은 느낌을 전달해 줄 뿐입니다. 영감靈感, 그것은 독자에게 속하며 독자를 위해 예비 된 것입니다.

얼음장을 내려치는 도끼날 끝으로 전해오는 찡한 떨림, 그 떨림을 나누렵니다. 강물은 왜 흘러야하는 것인지, 뒤에 있는 높은 산은 왜 앞에 있는 산보다 더 낮아 보이는 것인지, 궁금한 시를 쓰겠습니다. 백년, 이백년 후 과학으로 반드시 증명될 우주 한 구석의 작은 비밀을 발견 하여 그 느낌을 전달할 것입니다.

몇 년 사이, 내가 시를 써 보겠다고 나서면서 부터 만난 사람들, 그들은 아름다웠습니다. 꼭 시를 쓰지 않더라도 시詩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많았습니다.

내가 만난, 내가 아는 모든 분들께 감사말씀 전해드립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가르쳐 주시고 응원해 주셨던 일, 결코 잊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심방 오셨을 때 ‘제 딸이 무슨 일로 그렇게 골몰한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도와 달라’고 기도하는 구순 어머니, 언제라도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남편, 그리고 아들, 딸의 가족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지켜보며 기다려 주어서 참으로 편안하고 든든한 둔덕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심사평] 일상성 속에서 덧니가 새로움을 물었다

 

천여 편의 투고작을 읽으면서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전국 어디나 할 것 없이 신춘문예 투고작들의 수준이 일정한 수준에는 올라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기성이라고 해도 하나도 문제 될 것 없는 작품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국 각지에서 시창작 수업이 진행되고 있고, 그곳에서 수학한 이들이 문단에 등용하고자 응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응모자들의 주소지도 일정 지역에 한정되어 있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광남일보가 광주전남을 토대로 하고 있는 지역지임에도 불구하고, 응모자들의 주소지는 대부분 서울경기이거나 부산 경남 제주도를 가리지 않았다. 인구에 비례해서 응모자들의 주소지가 분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전국의 어느 일간지의 신춘문예가 되었건 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추측 가능하게 한다.

응모작도 상당하였고, 그 수준도 시적으로 일정한 경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었다. 하지만 여러 투고작들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가, 시어의 운용에는 그럴 듯한 경지를 보여주면서도 문장의 근본인 띄어쓰기에 서툴거나 문법적 결함을 보인다는 점이다. 기본기가 안 되어 있으면서 시적인 언술을 익히는 연습에만 매달렸기에 그런 웃지도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일 게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시적 언어가 맞춤법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맞춤법도 모르고 시를 쓰는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아무리 치장을 잘 하더라도 본바탕이 형편없다면, 순간의 치장이 벗겨진 후의 모습만 더 흉측할 뿐이다.

투고작들은 대체로 시대의식이나 거대 담론을 말하지 않았다. 언어 실험을 통한 언어 너머를 탐구한 작품도 별로 없었다. 리얼리티를 통해 현실을 묘사하거나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도 눈에 띄지 않았다. 시 속에는 삶의 모습마저도 풍경으로 머물고 있었다. 견자의 시각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대상과의 거리가 일정한 시편들이 대부분이었다. 설령 시적 화자가 그 풍경 속에 있을 때도 ‘바라보는 자’의 시선만 남아 있었다. 삶이나 풍경에 투신하거나 그곳에서 뒤섞여 있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최종적으로 고민했던 작품은 6명의 작품이었다. ‘섬에서 작약을 줍다’, ‘촛불’, ‘동백꽃 여관’, ‘첫차’, ‘매생이국을 끓이다’, ‘사과의 형식’ 등이었다. 먼저 ‘사과의 형식’은 대상을 보는 시각에 개성이 있다. 또 시를 끌어가는 방법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개성이 시의 완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섬에서 작약을 줍다’와 ‘동백꽃 여관’은 글을 오래 써본 사람의 솜씨이다. 그러나 시와 산문의 경계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좋은 산문도 시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언어의 밀도에 있다. 또한 시어와 시어가 만났을 때 화학반응이 일어나야 한다. 일상어와 시어의 차이이다. ‘촛불’은 감정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좋다. 생각이 깊다. 그러나 시는 감정의 해설이 아니다.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첫차’와 ‘매생이 국을 끓이다’였다. 두 작품 모두, 시작을 낯설기 하기 기법을 사용하였다. 독자의 시선을 끈다. 메타포에도 능하다. 두 사람에게 남은 문제는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개성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학적 수련을 더 정직하게 한 이는 ‘매생이 국을 끓이다’의 투고자고, ‘첫차’의 투고자는 전체적인 투고작이 한 사람의 것인지 의심이 가기도 하였다. 즉 사유의 자기화와 표현방법의 체화가 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첫차’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자기의 모든 작품에 애정을 갖기보다는 자기 작품에서 어떤 작품이 더 나은가를 분별하는 것도 시인이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덧니가 새해를 물었다.’ 긍정의 요소를 바탕으로 하나의 개성을 이루길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이대흠(시인 ·천관문학관 관장)

 

728x90

 

 

스웨터 / 황성용

 

 

엄마 영정사진을 찍는 날

 

일생의 좌중을 한 번에 멈추고 그 안에서 골몰히 앞을 바라보는 한방의 시선, 시장 냄새도 들어간다

 

느슨했던 안이 넘어졌는지 엄마의 얼굴이 카메라 앞에서 손님 쪽으로 살짝 기운다

 

엄마 스스로 올올이 물 수 있는 어금니 하나로 얼굴을 살짝 들어 올린다 힘들었던 무게는 내리고, 쪼그렸던 다리는 반듯이 편다

 

푸르른 날과 무성한 날을 곱해도 영이 되는 적자의 숲에서 내려오지 못해 항상 엄마의 앞치마는 땀으로 젖어 있다

 

비누칠을 해도 빠지지 않을 때 방망이질의 쓰임에 따라 한 방에 끝내려고 사진사는 필요 없는 각도를 버린다

 

버릴 컷을 버려진 시간으로 남아 있을 때 엄마는 살림의 다이어트를 위해 땀방울 하나하나 털실로 꿰매는 절약 스웨터(sweater)

 

코가 빠져도 스웨터의 구멍을 버리지 않는 센스, 엄마는 유산의 단추 하나를 남겨둔다

 

나는 아침을 먹기 전에 빼빼한 삶의 스웨터로 찍힌 영정사진을 찾으러 간다

 

 

 

 

 

미련없이 밤

 

nefing.com

  

 

 

[당선소감] 그 손들에게도 내 장갑을 드리겠습니다

 

적(籍)이 하나 생겼다. 감당할 수 있을까. 밖은 아직도 추운데, 준비해둔 월동 품목은 장갑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격식이다. 초라하게 꾸며지고, 쓸 공간도 적지만 장롱 속에서 또 1년을 기렸던 의지의 표현이다. 눈이 올 것 같은 밖을 자꾸 쳐다본다.

그 장갑의 기원은 알 수 없다. 본능일 지도 모른다. 집을 수리했던 작년을 봐도 기술자들은 맨손이었다. 화장실 물이 새고, 아래층 원성으로 이어질 때 해법은 수리 밖에 없었다. 수리 업체에서 당당한 개선장군처럼 방문했을 때, 그들의 위세에 밀려난 다섯 손가락들, 어쩌면 열등의 음표로 반주를 해야 할 처지였는지도 모른다. 나약해서 감추고 싶었던 손을 위해 전면으로 등장했던 손가락들 고마워요.

그곳은 아직도 소멸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움이 되었을까. 손가락을 세어보면 안다. 하나에서 수 백 까지, 그러나 그 노정에는 노모 밖에 없다. 새벽부터 호미를 잡고 곰반부리 풀을 매면서 지킬 여생, 결국 거대한 어머니해일로 몰려올 것이다. 겉치레 없는 그 맨손에 극진한 예의를 보낸다.

참 맹랑한 애들의 장난이었으리라. 벽면 환경정비 사업으로 벽화를 그려놓았던 곳에 낙서를 했다. 글씨보다 그림에 더 익숙했던 터인지, 사람의 모습을 멋대로 그려놓았다. 괴상망측하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손의 동심이다. 언덕을 뛰어올라 놀이터로 향하는 내비게이션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리 끼어보고 저리 끼어보고 해도 너무 헐렁한 삶, 그 장갑이 어느새 천명(天命)에 있었다. 존재를 알아가는 시기가 된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고 집으로 돌아와 우물물로 등목을 하시던 부모의 그런 생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새벽바람은 차지만, 트럭에 실려 가는 그 장갑들의 하루는 누추한 구석의 허리를 잡아주느라 밀리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장갑으로 들어갈 리 없는 주먹이다. 그래, 손을 펴보는 거야. 갈대의 흔들림이 없었던 들 어찌 강가의 추억이 생기겠는가. 느긋한 저녁놀을 바라보니, 한 없이 편안해지는 장갑의 배경도 있다.

적(籍)에 하나 올린다. 무의식적으로 뻗었을 뿐인데 그것이 손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의심했고, 번뇌했고, 앙탈을 부렸다. 오면서 손 로션은 마르고, 거칠거칠 해졌다. 척박한 곳으로 이르는 길에 누군가 다른 손을 내밀면서 잡아 주었다. 손이 된 장갑이었다.

필명을 잠깐 빌려준 아내와 큰 딸, 작은 딸 사랑한다. 그리고 내게 따듯한 장갑을 선물해준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심사평] 시적 대상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 돋보여 

 

참된 시인에게 한 세계의 위대함은 그 크기나 부피에 있지 않다. 그들은 현상적으로 볼 때 지극히 사소하거나 쉬 눈에 띄지 않아 지나치기 쉬운 세부적 진실에 더 민감하다. 통상적인 척도로 따질 수 없는 값어치라 할 수 없는 값어치에 주목하는,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에서도 넉넉히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할 줄 아는 자가 바로 올바른 의미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시적 포즈와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경향각지의 예비시인들이 보내준 800여 편의 투고작들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통적으로 이들이 접근하고자 하는 시의 자리는 결코 화려하거나 거대한 곳이 아니다. 정교하게 구축된 사회체계나 윤리도덕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작고 소박한 인간적 진실과 가치가 이들이 주목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투고작들 중에서 최후 심사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달을 품은 마을’(김형미), ‘어머니의 수업’(최류빈), ‘스웨터’(이영예·본명 황성용)이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먼저 김형미의 ‘달을 품는 마을’은 여타의 투고자들과 달리 80년 5월광주의 원혼들이 묻혀 있는 망월동을 소재로 ‘곧 터질 것 같은 물집처럼 부풀어 오른 집을 등에 지고, 슬픔의 출구를 찾고 있는 한 방울 둥근 고요’로 대변되는 새로운 의미부여와 역사해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집집마다 아픈 사연’이나 ‘슬프도록 아름답게’ 식의 상투적인 표현 등이 보여주듯이 아직 극복되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최류빈의 ‘어머니의 수업’은 기성의 시에 물들지 않는 시상 전개와 특유의 시적 어법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멈춰, 서, 응시해’(‘고등어 자반’)와 미세한 늦춤과 끊기를 통한 새로운 의미맥락의 형성은 그가 탁월한 언어감각의 소유자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다만 이미지와 이미지의 간극이 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분명하거나 ‘분해’나 ‘연민’, ‘인고’나 ‘경외감’ 등 관념어가 돌출 하는 등 좀 더 숙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심사위원 임동확 시인

 

728x90

 

 

둥근 길 / 문귀숙

 


허풍빌라에서 내린,
수백억 상속녀가 떨어뜨리고 간
셀 수 없는 동그라미의 말들
깔깔 거리다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꽃뱀의 뱃속 같은 골목을 후진으로
나오는 오늘 일진은 구부러진 끗발이다
금요일을 발광하는 네온사인을 비켜선
흐린 그림자 하나, 번쩍 손을 들었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웅얼거리는 목소리
백미러로 읽어야 하는 목적지가
번져 읽을 수 없다
붉은 신호등 하나를 넘으며 자정의 경계를 넘었다
어떤 넋두리도 용납되는 할증의 시간
갈림길 마다 좌회전을 외치며 더 흐려진 그림자
젖은 넋두리에 수몰된 길을
재탐색하라고 내비*가 얼굴을 붉힌다
붉은 기운이 부족한 사납금만큼 미터를 올리고
대낮처럼 환한 불면의 광장을 지나고
늙은 벚꽃나무가 떨어뜨리는 흐린 시간을
지나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길
더 이상 택시로는 갈 수 없는 길
내비가 멈췄다
그림자의 손가락 끝에 만월이 걸렸다.
 
*내비게이션

 

 

 

 

둥근 길

 

nefing.com

 

 

 

[당선소감] "나의 시 쓰기는 사람과 풍경을 알아가는 과정" 


세상과의 교감은 열린 정신에서만 가능하다. 많은 삶들이 길을 찾아 떠돌다 돌아오곤 한다. 나의 시 쓰기는 사람과 그 사람의 풍경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시를 왜 쓰는지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은 적이 없다.

 

누군가를 왜 좋아하냐고 물을 때 난감하듯 시를 쓰는 것도 그렇다. 무엇인가 내게 다가오고 그것을 언어의 형식을 빌려 드러내면 서툴지만 시가 된다. 그렇게 십년을 쓰고 지웠다.

 

스무 살의 나는 빨리 늙고 싶었다. 어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괜찮다는 일에 상처받기 일쑤였다. 어른이 되면 세상이 초연하게, 바라보듯 살아지는 줄 알았다. 현실은 여전히 나를 허둥대게 한다.

 

하지만 이 서툰 삶이 덮어주고 안아주는 주위 사람들 덕분에 나쁘지 않다.

 

땅에 발 딛고 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회현실을 시의 세계로 옮겨보는 작업, 내가 그들은 안는 방법이다.

 

시 쓰기에 주춤대는 내 손을 잡아주는 전화를 받았다. 크리스마스에 근무라 김치찌개를 넉넉하게 끓이고 있었다. 들 뜬 목소리의 통화가 끝나자 딸아이가 다가와 가만히 안아주었다. 늘 지켜 봐주는 가족들에게 '나 좀 멋지지 않아?' 라고 자랑하며 이 좋은 기운을 나누어 주고 싶다.

 

일곡시회를 이끌어주시는 고재종 선생님, 광주대학 신덕룡 이은봉 선생님께 이제라도 배움에 보답을 하게 되어 기쁘다.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광남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좋은 글을 쓸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해 본다.
 

 

 


[심사평] "당선작, 詩를 밀고가는 힘 좋았다" 


좋은 시는 어떤 것인가. 동서고금을 통해서 변치 않는 것은 좋은 시는 음악성(가락ㆍ리듬)과 회화성(그림ㆍ이미지)을 잘 갖추되 삶을 이끌어 올리는 힘이 엿보여야 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다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는 있지만 보지 못하는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데 시의 운명과 책무가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시인이 되려고 하는 자는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도 동시에 담아내는 숨쉬는 그것들과 끊임없이 접신(엑스터시)하고 밀교해야 한다는 데에 시와 시인의 운명이 요구하는 그것일 터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광남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작품을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온라인시대인지라 응모자들이 가히 전국적이었다. 서울, 경기, 강원, 경상, 충청, 전북을 비롯하여 광주전남에서 의욕적인 시작품이 들어왔다. 그런데 '시는 짧고 소설은 길다'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지나치게 지루한, 마치 콩트나 단편소설의 한 대목을 잘라다 놓은 것 같은 작품들이 많아 작금의 한국시의 병폐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최종에 오른 세 사람의 작품은 믿을 수 있는 대목이 많았다. 먼저 '탑의 형식' '장수하늘소의 꿈' 등의 응모자는 현대시의 특징 중의 하나인 판타지의 기법이 너무 지나치게 드러나서 시적 리얼리티 즉 감동이 따라갈 수 없었다.

 

다음으로 '동행' '저녁의 합석' '천년웃음' 등의 응모자는 시 속에 서정성과 서사성을 잘 교직하는 저력은 엿보였으나 삶을 눈뜨게 만드는 '아픔의 힘(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성 혹은 카타르시스의 힘이라고 말했다)'이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둥근 길' '플라잉 가이' '장구' 등 3편을 응모한 문귀숙 씨는 전체적으로 작품의 구성이 탄탄하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적 능력을 잘 보여주었다. 시를 밀어 올리는, 끌고 가는 힘(에너지) 그리고 시적 의지가 좋았다. 음악성과 회화성 그리고 민요정신(Ballad Esprit)을 두루 갖춘 점이 크게 사줄만했다.

 

다만 모더니티와 언어의 나이브한 참신성, 리리시즘의 부족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우리시대를 깊이있게 통과하는 담론을 현미경과 망원경으로 동시에 보여주면서 정진하기를 기대해본다. 새해를 맞아 당선시 '둥근 길'로 출발하는 문귀숙 씨가 나름대로 꽉 찬 '만월'을 보여주고 있어 독자들을 기쁘게 할 것으로 믿는다. 축하한다.

 

심사위원 김준태 시인

 

728x90

 

 

레몬 / 김완수

 

 

레몬은 나무 위에서 해탈한 부처야

그러잖고서야 혼자 세상 쓴맛 다 삼켜 내다가

정신 못 차리는 세상에 맛 좀 봐라 하고

복장(腹腸)을 상큼한 신트림으로 불쑥 터뜨릴 리 없지

어쩌면 레몬은 말아

대승(大乘)의 목탁을 두드리며 히말아야를 넘던 고승이

중생의 편식을 제도(濟度)하다가

단것 단것 하는 투정에 질려

세상으로 향한 목탁의 문고리는 감추고

노란 고치 속에 안거한 건지 몰라 들어 봐,

레몬 향기가 득도의 목탁 소리 같잖아

 

레몬은 반골을 꿈꿔 온 게 분명해

너도 나도 단맛에 졀여지는 세상인데

저만 혼자 시어 보겠다고

삐딱하게 들어앉아 좌선할 리 없지

가만 보면 레옴은 말야

황달 든 부처가 톡 쏘는 것 같아도

내가 단것을 상큼하다고 우길 땐

바로 문 열고 나와 눈 질끈 감기는 감화를 주거든

파계처럼 단맛과 몸 섞은 레몬수를 보더라도

그 둔갑을 변절이라 부르면 안돼

레몬의 마음은 말야

저를 쥐어짜면서 단맛을 교화하는 것이거든

 

레몬은 독하게 적멸하는 부처야

푸르데데한 색에서 단맛을 쫙 빼면

모두 레몬이 될 수 있어

구연산도 제 가슴에 맺힌 눈물의 사리(舍利)일지 몰라

레몬이 지금 내게 신맛을 포교를 해

내 거짓 눈물이 쏙 빠지도록

 

 

 

 

꿈꾸는 드러머

 

nefing.com

 

 

 

 [당선소감]  "타자와 사회 치유하는 시 쓰고 싶다"

 

돌이켜 보면 신춘문예 열병을 앓아 온 내 장년기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불혹의 나이를 넘기도록 십수 년 동안 신춘문예에 낙방해 오면서 글쓰기에 대한 회의와 스스로에 대한 책망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연시면 나는 늘 깊은 침잠의 겨울잠에 빠져들곤 했다. 하지만 그 열병은 결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열병이 나 자신을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도 그 중독에서 쉽게 헤어날 수 없었다. 열병이 심해질수록 절실함은 더했다.

 

특히 시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런데 태산 같은 세계에서 갈팡질팡하며 시작(詩作)을 창작열의 뒷전에 두던 중 시조를 접하면서 절제의 미덕을 배웠고, 정형에서 확장된 자유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한 해는 내게 참 뜻깊은 해였다. 시심(詩心)의 고삐를 부여잡은 지 오래지 않았는데도 시는 내가 기울인 시선만큼 가능성이란 응답을 줬다. 그리고 그 정점은 아마도 지난 크리스마스 전날에 선물처럼 날아든 당선 소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두 번째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이었음에도 그 기쁨은 남달랐다. 게다가 문청들에게 신선한 도전의 장()을 마련해 준 광남일보에 간택된 것이니 그 자부심이야 오죽했을까.

 

들뜬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먼저 지난 도전의 시기에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를 받았음에도 시의 응답이란 변함없는 확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내 신념을 누구보다 믿고 기다려 주신 어머니와 미국에 있는, 사랑하는 여동생 내외, 그리고 외로운 글쓰기로 휘청거릴 때마다 든든한 지지대가 돼 준 문우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또 내 신념에 명징한 이정표가 돼 준 광남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앞으로 나 자신보다 타자(他者)와 사회를 치유하는 시를 쓰고 싶다. 문청들이여, 결코 좌절하지 마라. 절실하면 꿈은 꼭 이루어진다!

 

 

 

 

누가 저 황혼을 굴리는가

 

nefing.com

 

 

 

[심사평]  "비판적 사유, 경쾌 통렬한 풍자로 전개"

 

600여 편의 투고작들은 우울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전반적으로 죽음이나 상실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았다. 그 중 세 사람의 시가 마지막까지 남겨졌는데, 이들의 시에 담긴 세계 역시 무겁게 침전되어 있는 모습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절망의 바닥에서 희미한 한 줄기 빛을 길어 올리는 일일 것이다.

 

'19910530일 생' 4편은 어두운 자화상이나 불우한 가족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내 안에는 한 마리 짐승이 산다"거나 "저울에 올려놓은 돼지고기처럼 / 어머니의 죽음 을 재본다"에서처럼, 그의 시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그 연원이 깊고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을 좀더 객관화하고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직설적인 차원을 넘어서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반면 '테오에게' 4편은 소재나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란한 편이지만, 충분히 체화되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다양한 시적 형식과 화자의 설정, 유니크한 리듬 등은 무엇을 써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잘 보여준다. 시행이나 이미지의 연결에 있어서도 적절한 비약을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다만, 화려한 언어감각이 내실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집중력이나 되새김질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

 

'레몬' 4편은 나머지 두 사람에 비해 투고작 전체의 수준이 고른 편이고, 개성적인 목소리와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시인 이상의 방을 자신의 유폐된 내면과 연결한 '이상(李霜)의 방', 벤치에 앉아 출전의 기회를 기다리는 후보 선수의 애환을 담은 '벤치 워머',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하지만 정작 자신의 병은 돌보아주는 이 없는 '신경정신과 닥터 김의 하루' 등은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를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무방하지만, 세상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경쾌하면서도 통렬한 풍자를 통해 전개한 '레몬'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그의 시가 "거짓 눈물"을 거슬러 "신맛의 포교"를 힘차게 해나가기를 기대한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