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고 또 벗고 / 황경순
심해(深海)에 사는 키다리게
탈피를 위해 얕은 물로 대이동을 시자ㄱ한다
헌 껍데기를 버리고 새 껍데기가 나기까지
2주일 동안 사투가 시작된다
눈빛만 살아있고
속살이 드러나 말랑말랑해진 키다리게
거대한 기오리의 뱃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물고기 떼에게 뜯어 먹히기도 한다
일부의 희생으로 한 편에선 짝짓기도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감수해야만 하는 2주일
그 2주일을 버텨야만 몸이 1.5배 죽죽 늘어난다
무거워진 몸이지만 발걸음도 가볍게
다시 심해로 힘차게 돌아간다
100년을 사는 거대한 3.5미터 키다리게
거미처럼 몸통보다 다리가 길어
심해에서 천하무적 종횡무진하는 키다리게
20번이나 헌 옷을 벗고 또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나날이 새로워지는 키다리게
비슷하게 100년 가까이 사는데 자라지도 않고
쪼그라드는 인간,
쪼그라들수록
벗고 또 벗고
눈은 빛나야 하는데
나날이 새로워져야 하는데
이제 그들은 흔적도 없다
깊이깊이 숨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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