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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 / 김세영


절지동물보다 마디가 많다
그들보다 무게가 많아
아파서 못 쓰게 된 마디가 많다


직립으로 걸을 때부터
발가락 마디마디들
발목, 무릎, 고관절들이
크랭크축처럼 움직여 왔다


앞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손가락 마디마디들
손목, 팔꿈치, 어깨 관절들이
삼단노선의 노잡이처럼 움직여 왔다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캐스터네츠 소리를 낸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팔을 들면 어깨 마디에서
일어서면 무릎 마디에서
뚝,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꼬리뼈 마디를 텔로미어*처럼 깎아내는
손목시계의 초침의 칼날이
매장된 기억의 무덤을 파헤쳐서
소리 뼈마디 하나를 보여준다


내 손목을 놓지 않으려던 굳은 마디의 손목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는 노송의 가지처럼
뚝, 꺾어지며 들렸던, 그 마지막 소리를


직립원인이 된지도 백만 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도 서툰 직립보행으로 발목이 잘 접질리고
등뼈 마디마저 가끔 삐끗하여
유인원의 보행법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짧고 마디 진 다리로 긴 몸통을 받쳐 들고
산악열차처럼 올라가는 절지동물의 보행법을
깔딱고개에서 흉내 내어 볼 때가 있다


절지동물보다 마디가 많다
그들보다 오래 살아
굳어서 못 쓰게 된 마디가 많다.


* 세포 속에 있는 염색체의 양쪽 끝단에 있는 부분을 말하며, 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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