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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편지 / 이영춘

 

은행 창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춘천 우체국에 가면 실장이 직접 나와 고객들 포장박스도 묶어 주고

노모 같은 분들의 입출금 전표도 대신 써 주더라.“고 쓴다

아들아, 이 시간 너는 어느 자리에서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쓴다

나도 내 발자국을 수시로 돌아보겠지만

너도 우체국 실장처럼 그렇게 하라고 일러 주고 싶은 시간이다

 

겨울날 창틈으로 스며드는 햇살 받아 안듯

“비오는 날 문턱까지 손수 우산을 받쳐 주는 그런 상사도 있더라.”고 덧붙여 쓴다

 

살다보면 한쪽 옆구리 뻥 뚫린 듯 휑한 날도 많지만

마음 따뜻한 날은 따뜻한 사람 때문이란 걸 알아야 한다

 

빗줄기 속에서, 혹은 땡볕 속에서

절뚝이며 걸어가는 촌노를 볼 때가 있을 것이다

네 엄마, 네 외할머니를 만난 듯

그들 발밑에 채이고 걸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 눈 속에 옷을 입혀야 한다

 

공부라는 것, 성현의 말씀이란 것,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위에 사람을 보지 말고

사람 아래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라, 그러면

터널처럼 휑한 그들 가슴 한복판을 가득 채우는 햇살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아들아,

비오는 날 은행 창가에서 순번 기다리다 지쳐 이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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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나비 / 최동호
  -아내에게

 파도 위로 호랑무늬 깃을 펼치며
 대지를 움켜쥔
 나비가 날고 있다
 대양너머 저 멀고 먼 산언덕에서
 작은 들꽃 무리들이
 피었다
 지면서
 비바람 헤치고 찾아올 나비를 기다리고
 구름 뒤의 달은
 나뭇잎에 매달려 쪽잠 자며
 고치에서 부활하는 영혼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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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문화재단이 김삿갓(난고 김병연)의 문학적 업적과 시(詩) 정신을 기리기 위해 주최하는 ‘제14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로 김남조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지난해 발간된 시집 ‘충만한 사랑’이다.

김삿갓문학상심사위원회(위원장 문효치)는 ‘충만한 사랑’에서 절실하게 그리워진 시간들이 미학적 문양(紋樣)으로 천천히 번져오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고 평했다.

김남조 시인은 “좋은 작품, 좋은 시인이 많고 많음을 잘 알고 있기에 어느 시인의 좌석에 앉아 그의 수저를 쥐고 앉게 된 경우처럼 여겨져 수상이 감사하면서도 혼란스럽다.”며 “자유의 시인, 시인의 자유라는 시 정신의 중심적 계보를 세우신 시인 김삿갓의 큰 문학을 흠모하고 기념하는 상을 수상하게 돼 과분하고 영광스럽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김남조 시인은 1950년 연합신문이 주최한 시 ‘잔상’으로 등단해 첫 시집 ‘목숨’ 등그동안 30여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상식은 10월 5일 영월 김삿갓문학관에서 열리는 제21회 김삿갓문화제 개막식에서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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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렸다 / 나태주

돈 가지고 잘 살기는 틀렸다

명예나 권력, 미모 가지고도 이제는 틀렸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명예나 권력, 미모가 다락같이 높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는 시간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허락된 시간

그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써먹느냐가 열쇠다

그리고 선택이다

내 좋은 일, 내 기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르고 골라

하루나 한 시간, 순간순간을 살아보라

어느새 나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기쁜 사람이 되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틀린 것은 처음부터 틀린 일이 아니었다

틀린 것이 옳은 것이었고 좋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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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문화재단(이사장 박선규)은 김삿갓(난고 김병연)의 문학적 업적과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한 김삿갓문학상에 시집 '숙맥노트'를 발표한 유안진 시인이 선정되었다고 1일 밝혔다.

 

김삿갓문학상심사위원회(위원장 문효치)는 유안진 시인의 시집 '숙맥노트'는 짧고 간결한 몇몇 화소(話素)를 엮어 한 편의 서사를 제시한 점이 독특해 이야기시라고 해야 할 시 형식의 시도 등 표현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위원회는 "삶에 대한 인식을 새로운 이야기 형식에 담아내는 격조 높은 시세계를 열고 있었던 것으로 유안진 시인의 시적 모험과 그 성과를 높이 사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유안진 시인은 “시대의 유일한 환기통, 무소유로 부유했던 자유인 난고 시인상을 받게되어 영광이기에 앞서 무한 부끄러울 따름이며, 다만 앞으로 제대로 삿갓선생의 문학과 삶의 철학을 조금이라도 닮으라는 격려와 채찍으로 여기며 염치없이 받겠다."라고 전했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유안진 시인은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거짓말로 참말하기》 《둥근 세모꼴》 《숙맥노트》 등 17권의 신작시집과 시선집 <세한도 가는 길>, 산문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또한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목월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공초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많은 수상 경력이 있으며 현재 서울대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1일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김삿갓유적지에서 개최되는 제19회 김삿갓문화제 개막식과 함께 가질 예정이다.

 

영월군은 수상자의 대표시가 담긴 시비가 현지에 건립되어 김삿갓유적지를 찾는 문학인들과 관광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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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다 / 신달자

 

거실에서는 소리의 입자들이 내리고 있다

살 흐르는 소리가 살 살 내리고 있다

30년 된 나무의자도 모서리가 닳았다

300년 된 옛 책장은 온몸이 으깨어져 있다

그 살들 한 마디 말없이 사라졌다

살 살 솰 솰 그 소리에 손 흔들어주지 못했다

동거하는 것들은 목숨처럼 멈추지 않고

소리의 고요로 고요의 소리로 흐르고 있다

조금씩 길어나르는 손이 있다

멀리 갔는가

사라지는 것들의 세계가 어느 흰빛 마을을 이루고 있을 것

나 거기 가끔 몽환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모습 보이지 않으나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내 집의 부스러기 내 몸의 홑겹 살비듬들 보인다

다 닳는다

내 손가락 은반지는 가끔 살 벗겨지는 소리를 낸다

다 어딘가로 흐를 것

 

흘러내리는 소리

흘러가는 소리

멀리 사라지는 소리

소리와 소리가 흐르는 소리

 

이 깊은 밤 창 안이나 창밖이 모두

나와 함께 고요히 자신의 살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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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옹이 / 홍신선

 

겨우내 따귀 떨던 풍설(風雪)의

그 가혹행위 담아낸 숙근초(宿根草)의 내공은 얼마나 얼얼한 것인가.

 

그 쑥대밭이던 난리 때 두세 집 건너 한 집 꼴이던가,

피 묻은 옷가지를 평생치 눈물로 빨고 헹궈낸 아낙들의 속념은 어떤 것인가.

 

여섯 달 만에 백골로 출현한 독거남 중장비 기사,

유서처럼 남긴 쪽방 허공엔

익명의 이 사회가 놓은 올무인가

달랑 그의 생을 옭아맨 머리칼 몇 올 느슨히 풀려있었다는데

 

마침, 워킹 코스의 너테 위에 엉덩방아 찧으며

골반 뼈 부서졌을 저 백수 늙은 햇볕은 또 비명을 얼마나 길게 삼키는가.

 

그만한 옹두라지는 누구에게나 삶이 극한에 이르러서야 단단하게 압축된 파일이라고

그만한 옹두라지는 누구에게나 먹먹한 이력들 압축한 콘텐츠라고

막 방한복 벗은 공원의 뭇 나무들은

되레 천연스럽다 못해 능청인데

 

칠 벗어진 벤치에 쭈그려 앉아

나도 오늘은

마음자리 확 내리받아 깔고

내 기억 바탕화면의 옹두라지나 압축풀기로 가만 검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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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 강희근

 

물박물관 공원 슈퍼에 가 컵라면을 사 먹는다거나

종이 커피를 빼 마신다거나

해변 부둣가까지 나가 허름한 아꾸국에

막걸리 한 잔 마신다거나

파리 날리는 엿판 놓고 가시개 장단 맞추는

엿장수,

그에게 엿처럼 녹아 먹지도 않을 엿 두어 봉지 산다거나

수산물 이동 차량의 떠리미 설명에 주머니 아낌없이

바닥까지 턴다거나

시골 장바닥에 가 거리빵 이삼천원어치 사 갖고 온다거나

오다가 그 거리빵 내음에 취해 유년

물컹물컹 씹는다거나

눕거나

앉거나

주방장이 되거나 지휘자가 되거나

희멀건 곰탕에다 고춧가루 확 뿌려 넣거나

확 후라이를 하거나

그렇게 어디로 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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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군(군수 박선규)이 시선(詩仙) 김삿갓(난고 김병연)의 문학적 업적과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돼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는 김삿갓문학상 수상자로 송수권(72) 시인이 선정됐다고 27일 밝혔다.

  강희근 심사위원장은 “송수권 시인은 1975년 문단에 오른 이래 한결같이 시 세계를 넓히고 깊이를 더해 한국 서정시의 수준을 올려놓고 있음을 심사위원 모두가 인정했다”며 수상자 선정 배경을 밝혔다.

  수상자로 선정된 송수권 시인은 1940년 전남 고흥 태생으로 지난 1975년 ‘산문(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한 이래 14권의 시집을 펴낸 중진 시인으로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역임한 바 있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10월 20일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김삿갓 유적지 일원에서 개최되는 제15회 김삿갓문화제 개막식과 함께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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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에 정진규 시인이 선정되었다

 

김삭삿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문효치)는 9월19일 수상자 선정을 발표하면서 “심사위원 모두가 정진규(71세) 시인의 시적 도모와 성취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주목했으며, 수상작인 「사물들의 큰언니」는 이 시대 우리 문학의 최대 성과의 하나라는 데에 공감했다.’며 수상자 선정 배경을 설명하였다.

 

정진규 시인은 시에 산문형태를 도입, 詩性과 散文性의 구체적 통합을 이루었으며 서정적 억양의 생명률과 환상의 파도가 있는 새롭고 견고한 詩美學을 구축하여 온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래 15권의 시집을 낸 중진시인으로 한국시인협회장과 한양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월간「현대시학」의 주간을 맡고 있다.

 

김삿갓문학상은, 방랑시인 김삿갓(난고 김병연)의 문학적 업적과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시상식은 10월1일 오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김삿갓문학관 광장에서 개최되는 제14회 난고 김삿갓문화제 개막식에서 상패와 상금 1천만원, 대표 시비까지 제작하여 제막식도 함께 진행한다.

 

 

 

사물들의 큰언니 / 정진규

 

   모든 직속들 가운데는 第一番(제일번) 직속이 心腹(심복)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모든 사물들의 큰언니가 반드시 있다 작은 언니들도 충실하게 따라 웃는다 부처님의 직속, 건달들이 대로변에서 공즉시색 색즉시공 열심히 탁발을 하고 있다 큰 느티의 직속, 매일 아침마다 첫 번째 햇살로만 첫물로만 쟁이고 쟁여 터뜨린 이파리들, 초록 金剛(금강)들로 큰 그늘을 드리우신다 공기의 직속, 바늘구멍까지 파고들어 고이고 고이는 들숨 날숨의 숨결들이 고랑을 내고 있다 저녁노을의 직속은 돌아오는 되새 떼들의 방향을 한바탕 그려내는 속도의 색채를 펼친다 패랭이의 직속, 눈이 오는 초겨울까지 홑겹의 꽃잎만으로도 오지 않는 사람의 길목을 지키는 사랑의 곁간을 지니고 있다 나의 직속, 바람들이 근간에 마른 풀들 전신으로 궁구는 벌판에서 고꾸라지고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直前(직전)을 예감한다 무엇이 다가서고 있는가 사물들의 큰언니, 작은 언니들아, 꽃피는 實體(실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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