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편지 / 이영춘
은행 창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춘천 우체국에 가면 실장이 직접 나와 고객들 포장박스도 묶어 주고
노모 같은 분들의 입출금 전표도 대신 써 주더라.“고 쓴다
아들아, 이 시간 너는 어느 자리에서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쓴다
나도 내 발자국을 수시로 돌아보겠지만
너도 우체국 실장처럼 그렇게 하라고 일러 주고 싶은 시간이다
겨울날 창틈으로 스며드는 햇살 받아 안듯
“비오는 날 문턱까지 손수 우산을 받쳐 주는 그런 상사도 있더라.”고 덧붙여 쓴다
살다보면 한쪽 옆구리 뻥 뚫린 듯 휑한 날도 많지만
마음 따뜻한 날은 따뜻한 사람 때문이란 걸 알아야 한다
빗줄기 속에서, 혹은 땡볕 속에서
절뚝이며 걸어가는 촌노를 볼 때가 있을 것이다
네 엄마, 네 외할머니를 만난 듯
그들 발밑에 채이고 걸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 눈 속에 옷을 입혀야 한다
공부라는 것, 성현의 말씀이란 것,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위에 사람을 보지 말고
사람 아래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라, 그러면
터널처럼 휑한 그들 가슴 한복판을 가득 채우는 햇살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아들아,
비오는 날 은행 창가에서 순번 기다리다 지쳐 이 편지를 쓴다
'국내 문학상 > 김삿갓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5회 김삿갓문학상 (0) | 2020.09.23 |
---|---|
제14회 김삿갓문학상 (0) | 2020.09.23 |
제13회 김삿갓문학상 (0) | 2020.09.23 |
제12회 김삿갓문학상 (0) | 2020.09.23 |
제11회 김삿갓문학상 (0) | 2020.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