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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꽃 / 윤제림

 

 

붉은 꽃 지고 푸른 꽃 핀다

 

손차양을 하고 해를 향해 마주 서면

,뜨거운 이파리들의 눈부신 개선

열흘 싸움에 지친 꽃들이

피 흘리며 떨어져 눕고

상처만큼 푸른 꽃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어선다

 

이제 보니,

꽃들의 싸움도 참으로

격하구나

장하구나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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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18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윤제림 시인(61)의 시집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가 선정됐다.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근배, 최문자, 곽효환 시인은 최종 후보 5개 작품 중 윤제림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수상작은 인간다움과 상생(相生)에 대해 노래한 시집. 심사위원들은 윤 시인은 무심히 스쳐 지나갔을 법한 일상과 기억, 농담, 작은 기사, 광고 전단지, 소소한 사물 등 주변의 다양한 것들을 무겁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시로 만들어낸다고전적 미감과 세련된 페이소스로 미학적 개성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의 시에서 독서와 체험을 통한 독특한 미적 감각과 미사여구가 눈길을 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푸른 꽃의 일부 문구인 열흘 싸움에 지친 꽃들이 피 흘리며 떨어져 눕고/상처만큼 푸른 꽃들이/함성을 지르며 일어선다/이제보니/꽃들의 싸움도 참으로/격하구나/장하구나가 대표적. 한 심사위원은 아름답고 쓸쓸한 미감과 서정성 그리고 윤 시인만의 시적 개성에 영랑시문학상이 값진 격려와 동행이 돼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윤 시인은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너 해 전 꼭 이맘때 집이 화재로 전소되고 가족이 암 선고를 받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등 내게 잔혹했던 때가 있었다눈물 나는 상황에 바깥에 환히 핀 꽃을 보며 곧바로 생각난 건 영랑의 표현 찬란한 슬픔의 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많은 문학상 중에서도 한 번쯤 타고 싶다고 생각한 상을 받게 돼 대단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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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 박라연

 

 

누군가의

따뜻함은 흘러가 꽃이 붉어지게 하고

상처는 흘러가 바다를 더 깊고 푸르게 할까

 

티끌,이라는 이름부터 피라미 여치 패랭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어디까지 나아갈까 태평양

 

혹은 장미라는 이름으로 계급으로

붐비고 여물어가지만

 

제 이름의 화력만큼 이글거리는

애간장들에게

 

가만히

저를 열어 뿌려주는 엔도르핀을 만날 때

어떻게 인사하면 좋을까

 

사방이

그저 붉게 두근거리며 울어버릴 때

 

헤어진 이름이

깊고 푸른 바다로 걸어 들어가버렸을까

 

내 떨림의 물결 한가운데서 붉은

해가 떠올랐다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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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과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제17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자로 박라연 시인이 선정됐다.

 

영랑시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신달자)는 강진군청 회의실에서 가진 제3차 회의에서 예·본심을 거쳐 최종 수상 후보에 오른 박라연 시인의 시집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를 제17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수상작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는 괴로움이나 슬픔이 개인 차원을 넘어 만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랑시문학상 본심 심사위원에는 운영위원단의 추천에 의해 오탁번·김기택 시인과 문학평론가 김주연씨가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은 박라연의 시는 자아에 갇히지 않고 바깥을 향해 열려 있는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면서“‘오만 가지 밥 생각오만 가지 꽃으로피어나황하 코스모스 천지와 호랑나비 천지의 아름다운 농사가 되는 상상력은 일상의 걱정거리나 괴로움이 사물로 변화하며 자연적·우주적 에너지를 품어 아름다워지는 과정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보성에서 태어난 박 시인은 원광대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중진이다.

2008년 윤동주 문학상과 2010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박두진 문학상 등을 수상한 그는 시집으로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너에게 세 들어 사는 동안’,‘생밤 까주는 사람’,‘공중 속의 내 정원’,‘우주 돌아가셨다등이 있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우리 군과 동아일보가 올 봄 업무교류 협약식을 갖고 영랑시문상을 함께 운영키로 했는데, 첫 결실을 맺게 돼 기쁘다면서 "특히 영랑 시인의 시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평을 받은 박라연 시인의 수상은 인문도시 강진의 도시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상식은 다음 달 16일 오후 2시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에서 열리며, 수상자에게 상패와 상금 3000만원이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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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봉옥

 

 

우리를 숨죽이게 한 건 3.8선이 아니었다

검문하러 올라온 총 든 군인도

검게 탄 초병들의 날카로운 눈빛도 아니었다

기찻길 건널목에 붉은 글씨로 써놓은 말 섯!

그말이 급한 우리를 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두 다리로 짱짱히 버티고 서 고함을 지르는 섯,

그 뒤엔 회초리를 든 호랑이 선생님이

두 눈 부릅뜨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커다란 방점이 떠억 하고 찍혀 있는 것 같았다

멈춤 정도야 뭐 말랑말랑한 말로 느껴질 뿐이었다

섯에 비하면 정지나 스톱 같은 말도 그저

앙탈이나 부리는 언어로 느껴질 뿐이었다

남에서 올라온 내 발 앞에 꽝,

대못을 박고 가로막는 섯!

그 섯 가져와 자살 바위 옆에 세워두고 싶었다

그 섯 가져와 기러기 떼 날아가는 노을 속에

슬그머니 척, 걸어두고 싶었다

 

 

 

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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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이 주최하고 ()영랑기념사업회와 시전문지'시작'사가 공동주관하는 제16회 영랑문학제가 오는 26일부터 이틀간 영랑생가 일원에서 열린다.

 

16회 영랑시문학상에는 오봉옥 시인의 '!'이 선정됐다. 26일 오후 5시 영랑문학제 개막식장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공광규 시인과 김경복 문학평론가(경남대 교수)영랑시문학상의 성격이 서정성·민중성·향토성에 있음을 규정하고 이 가운데 대상 시집을 검토한 결과, 오봉옥의 시집 '!'이 김영랑시문학상 성격에 가장 부합하다는 합의에 이르러 올해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오봉옥 시인은 1985'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이후 '지리산 갈대꽃','붉은 산 검은 피',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노랑' 등의 시집을 통해 향토적 서정에 기반한 남도 서정을 잘 드러냈고, 무엇보다 당대의 부조리와 모순적 현실에 대해 민중적 시각에 입각해 민중해방의 염원을 강렬하게 제시했던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이번 수상 시집 '!'은 민중적 삶에 대한 연대와 희망을 발견하면서 자신의 존재론적 사유를 심화해보임으로써 시적 진경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오봉옥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영랑 선생의 삶과 시는 사무사의 정신을 가르치는 표본이었다. 선생을 통해 '맑음''곧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배웠다며 영랑시문학상 수상자라는 그 영예로운 호칭에 걸맞게 부끄럽지 않은 삶과 시를 쓸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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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권력 / 고재종

 

 

꽃을 꽃이라고 가만 불러 보면

눈앞에 이는

홍색 자색 연분홍 물결

 

꽃이 꽃이라서 가만 코에 대 보면

물큰, 향기는 알 수 없이 해독된다

 

꽃 속에 번개가 있고

번개는 영영

찰나의 황홀을 각인하는데

 

꽃 핀 처녀들의 얼굴에서

오만 가지의 꽃들을 읽는 나의 난봉은

 

벌 나비가 먼저 알고

담 너머 大鵬(대붕)도 다 아는 일이어서

 

나는 이미 난 길들의 지도를 버리고

하릴없는 꽃길에서는

꽃의 권력을 따른다

 

 

 

꽃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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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영랑문학제 및 세계모란공원 감성여행이 오는 27일과 28, 전남 강진 영랑생가 일원에서 열린다.

 

강진군과 ()영랑기념사업회가 김영랑의 시정신과 민족혼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영랑문학제 및 세계모란공원 감성여행은 김영랑이 살았던 당시 사회상을 재현한 거리 극으로 서막을 연다.

 

이후 영랑시문학상 시상 및 축하공연과 청자 전시·판매, 모란화분 전시·판매, 차와 시의 어울림, 아나바다, 영랑시집·기념품 판매 등 다채로운 행사로 꾸며진다.

 

27일 오후 1시부터 북치는 동동구루무장수가 이끄는 ‘1930, 다시 찾은 영랑의 봄을 주제로 한 거리극에 엿장수와 모던보이, 일본 순사들이 행렬을 이뤄 관람객들의 추억 샘을 자극한다.

 

이어 4시 영랑생가 특설무대에서 갖는 개막식에 올해 영랑시문학상 수상자인 고재종 시인과 영랑의 전기 동화를 쓴 김옥애 작가의 사인회가 열린다.

 

특히, 이번 행사는 세계모란공원 감성콘서트를 비롯해 강진의 모든 사물을 꽃의 인문학으로 풀어낸 사진전과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축제 이튿날에는 제15회 전국영랑백일장과 전국영랑시낭송대회가 오전 10시부터 영랑생가와 강진아트홀에서 진행된다. 올해는 관람객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당일 심사 발표 및 시상할 계획이다.

 

시문학파기념관 김선기 관장은 화사한 봄 모란이 피는 계절에 15회 영랑문학제 및 세계모란공원 감성여행을 열게 돼 기쁘다면서 “1930년대 사회상을 재현한 특별한 행사부터 각종 버스킹 공연은 물론, 평소 만나기 힘든 작가들의 사인회가 열리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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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양항로 / 오세영

 

 

엄동설한,

벽난로에 불을 지피다 문득

극지를 항해하는

밤바다의 선박을 생각한다.

연료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나는

화실(火室)에서 석탄을 태우는

이 배의 일개 늙은 화부(火夫).

낡은 증기선 한 척을 끌고

막막한 시간의 파도를 거슬러

예까지 왔다.

밖은 눈보라.

아직 실내는 온기를 잃지 않았지만

출항의 설렘은 이미 가신 지 오래,

목적지 미상,

항로는 이탈,

믿을 건 오직 북극성, 십자성,

벽에 매달린 십자가 아래서

어긋난 해도(海圖) 한 장을 손에 들고

난로의 불빛에 비춰 보는 눈은 어두운데

가느다란 흰 연기를 화통(火筒)으로 내어 뿜으며

북양항로,

얼어붙은 밤바다를 표류하는,

삶은

흔들리는 오두막 한 채.

 

 

 

북양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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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영랑 시문학상을 수상한 오세영 시인에 대한 시상식이 28일 오후 영랑생가에서 진행됐다. '시작' 대표 이재무 시인, 심사에 참가한 나태주 시인 등 여러 문인들이 축하를 위해 시상식장을 찾았다.

 

영랑 김윤식의 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2003년 처음 제정된 영랑 시 문학상은 지난해에 발간된 시집 중 등단 15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송수권, 고은, 신달자, 김지하, 장석주 시인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나태주 시인은 오세영 시인은 순수서정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사회의 속악성과 물질문명의 허위성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 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시작품으로 형상화함으로 시적인 외연을 더욱 드넓게 확대 재생산해온 시인으로 평가되어 왔다.”며 수상 시집 가을 빗소리에서 시인은 노경에 이른 투명한 눈으로 사물과 인생과 세계를 조망하면서 더욱 넓고 깊은 사유의 시세계를 펼쳐 보이고 이다."고 평가했다.

 

오세영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자신의 마음과 육신의 고향은 유년 시절을 보낸 전남 장성과 사춘기를 보낸 전북 전주라고 밝히며, “50년 문학 생애를 거치며 많은 상들을 받았다. 그런데 전라도에서 만든 상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태어난 고향에서 주는 상이기도 하고, 고향에서 인정을 해주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자부심이 든다. 많은 상을 받았지만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영랑문학제는 시상식에 이어 전남도립공연단, 뮤지컬배우 김차경 시낭송, 섹소폰 유상호 공연 등 축하공연이 이어졌으며, 오후 730분부터 시문학 축제의 밤이 진행됐다. 문학관장들의 애송시 낭독, 색소폰 공연, 군민 시 낭독 등으로 영랑생가의 밤이 시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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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의 둘레 / 고진하

 

 

홀로 산길을 걷다 자주 발걸음 멈추는 곳

두루미천남성 군락이 있지

긴 헛줄기 끝에 긴 모가지를 쑥 뽑아올리고

외로이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두루미를 닮아 친해졌어

 

가시덤불과 바위들이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울퉁불퉁한 오르막길 하염없이 걷다

호젓한 꽃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다보면

외로움이 출렁, 온몸을 흔드는 순간도 있지만

 

입석(立石) 같은 외로움이

또 한 번 출렁, 한 무더기 빛으로 쏟아지기도 하네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일

뒤에 두고 온 두루미천남성이 던져준 빛이네

 

저물녘 산길을 내려오다 보니

이미 오래전 입적해버린 새의 주검 위로

나뭇가지에 열린 새들 뱃종뱃종 명랑의 둘레가 되고

 

 

 

명랑의 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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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영랑시문학상에 고진하 시인 '명랑의 둘레'가 선정됐다. 22일 전남 강진군에 따르면 올해 영랑시문학상에 강원도 원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진하 시인의 '명랑의 둘레'(문학동네)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29일 영랑생가에서 열리는 영랑시문학의 밤 행사에서 진행된다.

 

김창한 영랑기념사업회장은 "예심과 본심을 거쳐 엄격히 심사했다""수상자로 선정된 고진하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전했다.

 

고진하 시인을 선정한 심사위원단은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는 고진하는 성()과 속()이 갈등하고 화해하고 공존하는 삶의 과정을 특유의 사유와 감각의 방식으로 탐색해 온 시인"이라며 "영랑 선생이 평생 일구어낸 자연 서정의 깊이와도 친밀하게 상통한다"고 밝혔다.

 

고진하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꽃망울이 터지려고 팽팽해지는 3월에 수상 소식을 들었다""수상 소식을 듣고 반갑다기보다는 약간 긴장이 되고 이런저런 이유로 제 마음도 팽팽해졌다"고 말했다.

 

영랑시문학상은 2015년에 발간된 모든 시집을 대상으로 예선에서 10권을 골라 본선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시상식은 제13회 영랑문학제가 열리는 29일 오후 5시 강진 영랑생가 입구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한편 29일 열리는 영랑문학제는 풍물패(길놀이)를 시작으로 영랑시문학상시상, 영랑골든벨, 청자 및 모란화분 전시, 영랑시집 및 기념품판매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30일에는 전국영랑백일장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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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송 / 범대순

 

 

우리가 무등산이 좋은 것은

눈을 감아도 그 동서남북

서서 바라보는 자리가 화순인 듯 담양인 듯

광주 어디 서서 보아도 크고 넉넉함이며

우리가 무등산이 좋은 것은

춘하추동 계절 없이 넘어선

언제나 붉은빛이 푸른빛이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만 자색의 꿈

우리가 무등산이 좋은 것은

알맞게 높고 알맞게 가난하고

그 안에 수많은 장단과 고저

역사가 바위가 되고 흙이 된 긴 이야기

평생 한 번만이라도 원노니

낮에도 별들이 내려와 노는

너덜겅같이 밤에도 태양이 뜨는

침묵이 바로 함성인 큰사람 같이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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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태어난 시인 범대순 시인은 1958<문학예술>에 시 '승무'로 널리 알려진 조지훈 선생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주로 활동했던 시인은 올 1월 무등산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집 <무등산>으로 제12회 영랑시문학상을 받았다.

 

이번 시집은 범대순 시인이 평생동안 1,100번의 무등산 산행 그 가운데 160번의 허락된 정상 1,100고지 서석대 등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 숫자는 그의 말에 따르면 숫자가 아니라 스토리다. 그 속에는 무모하게 홍수를 이기려다 119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이야기, 영하 30°C 하의 서석대, 섭씨 35°C 하의 산행으로 심장의 모터가 꺼질 뻔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도의 원로시인 범대순 시인은 동양정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서양적인 감수성과 모더니즘 시 방법을 결합함으로써 한국 현대 서정시에서 독특한 개성의 영역을 개척해왔다. 또 공동수상자 김종철 시인은 실존적 삶의 성찰과 존재론적 생의 인식을 신성사적 지평으로 확대하고 고양해 온 역량 있는 중진 시인이다.

 

한편, 12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자 두 분이 올해 타계하여 강진의 문인들은 물론 문단 안팎에서 안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12회 영랑문학제 때 시상하기로 결정한 두 시인 중 먼저 범대순 시인이 타계한 데 이어 김종철 시인까지 5일 오후 타계했다.

 

영랑기념사업회 김창한 회장은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영랑문학제를 취소하자는 일부 이사들의 의견도 있었고, 시상만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면 단위 행사까지 취소하는 분위기에서 군과 협의를 하는 등 다각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였다면서 내년 행사에 시상할 계획이었는데, 두 분의 수상자가 올해 타계하셔서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창한 회장은 5일 조화를 보내 유족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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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상] 시간 고속열차를 타고 / 전석홍

- 사랑하는 우진에게

 

 

1

산골 간이역에서 시간 고속열차를 탔느니라

고빗길 평탄한 길 수없이 오르내리며

거쳐 온 세상은 아름다웠어라

 

화평한 가정은 힘의 샘이었느니

신이 주신 귀한 가족이 있어

힘껏 뛸 수 있었고 행복했노라

 

2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왔다가

기다림 없이 지나가 버리는 것

무명의 이 시간을 네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너 뿐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간다가훈 이어받아

분초를 하늘의 무게로 알고

너만의 땀으로 네 꼬리표를 붙여야 하리

 

3

시간 고속열차는 무한에서 무한으로 달린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어느 간이역에서

맨몸으로 혼자 내려야 하는 것

몸과 영혼은 가고 남는 것은 오직 이름뿐이리니

네 이름에 검은 덧칠을 하지 말아야 하리

정직, 성실, 신의의 표지를 꽝꽝 못 박아

간이역에 애릴 때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하리

 

 

 

시간고속열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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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영랑시문학상 본상에 장석주(59) 시인의 시집 '오랫동안'(문예중앙)이 선정됐다고 계간 '시와시학'이 봄호에서 밝혔다. 특별상에는 전석홍 시인(79)의 시집 '시간 고속열차를 타고'(시학)가 뽑혔다.

 

이번 시집은 장석주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으로 지난 시집 몽해항로를 출간한 이후 1년 만에 발표하는 55편의 신작시들이 실려 있다. ‘주역시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번 시집은 시인의 방대한 독서와 동양 사상에 대한 깊은 천착을 바탕으로 한 노자, 장자에 대한 주석 달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삶은 온전히 책 읽기와 글쓰기에 바쳐져 있다. 삶을 관조하고 그것의 비의를 찾아내는 깊은 시선이 이로부터 나온다. 또 이는 삶을 단순히 대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인의 생체험을 수반하고 있다. 그리하여 체험의 기록이면서 명상의 기록인, 놀라운 깊이의 시집이 탄생했다. 주역의 속화된 가르침을 깨고, 주역의 안팎에서 세계의 모습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의지를, 그것도 순수한 실패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단은 주역이라는 사유의 그물로 삶과 세계의 법도와 원리를 심도 있게 포착해 나아가면서 현대시의 폭과 깊이를 밀도 있게 형상화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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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시문학상은 김영랑(19031950) 시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시인의 고장인 강진군이 주최하고 영랑시문학회와 계간 '시와시학'이 공동주관한다. 시상식은 426일 오후 6시 강진군 강진읍 시문학파기념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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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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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도둑 산길 / 이성부

 

 

신새벽 벼랑에 엉클어진 철조망을 딛고 넘어

칠팔 년 전 내려왔던 산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가지 말라는 길을 가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심하게

가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 죄를 짓는 일이 이럴진대

오늘 하루 산행이 무사할지 제대로 될지

걱정이 슬그머니 배낭을 잡아 끌어내린다

길은 풀섶에 가려져 끊어질 듯 희미하고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뻗어나서

자꾸 앞을 가로막는다 사는 일도 이렇게

갈수록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많아진다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

내가 훔친 산길이 고요하게 흔들거린다

길이 끝나는 데서 넓은 너덜겅이 가파르다

까마득한 비탈 바위덩어리들을 밟거나 피해 가거나 건너뛰거나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위로만 올라간다

전에 내려왔을 적에는 미처 몰랐는데

너덜 오름길이 이리 팍팍하다는 것 오늘 알겠구나

평생을 쌓아 올린 욕망이 무너져 내린다면

치솟는 꿈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다면

이렇게 나뒹굴어 널브러지고 눈 부릅뜬 몰골이 될까

이 폐허로 무엇을 만들겠다고 저리 이빨들을 갈고 있을까

세찬 바람에 내 몸이 휘청거린다

여기서 자칫 떨어진다면 저 깊이 모를 어둠 속으로

내가 먹혀들어 가 사라질 것은 뻔한 일

부엉이바위에서 그가 역사 속으로 몸을 던져버린 일도

저 치욕의 끊임없는 광풍이 등 뒤에서 그를 자꾸

떠다밀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결단 다음의 짧은 허공에서 그는 눈을 감은 채

무엇을 보았을까 과연 세상은 아름다웠을까

아아 죽음의 한순간은 생각건대 순결한 것인데

나는 살겠다고 기를 쓰며 바위 모서리를 잡아당긴다

나는 아무래도 시정잡배들과 다를 것이 없나 보다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기는커녕

내 한 몸 추스르기에도 이리 쩔쩔매는구나

길을 찾아 다시 숲속으로 접어든다

사람의 발자국이 얼마나 많이 쌓여져서

이 험한 곳에 이런 차분한 길이 되었을까

이렇게 몇 차례 너덜과 숲길을 오르내리다가

벼락 치듯 비명을 내지르며 달아나는 멧돼지 내외

땅을 흔드는 육중한 덩치의 저 민첩함

그를 따라 흩어지는 얼룩무늬 새끼들 예닐곱 마리

나도 놀라고 두려워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자연은 말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저절로 살아 커서

저희들끼리 살랑살랑 춤추며 노래한다

이것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낀다

허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의 욕심은 끝이 보이지 않아

사람의 뜻대로 개입하고 간섭하고 파괴하고

깊이 들어가 소리와 내음과 흔적을 퍼뜨리면서부터

녀석들은 집주인이 길손에게 쫓겨나듯 터전을 잃어버린다

나는 사람이 만든 죄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녀석들의 평화를 깨뜨렸다는 데서

이 자연에게 칩입자가 됐다는 생각으로 송구스럽다

놀라 도망쳐 숨죽이고 있을 녀석들이 짠하다

발걸음 재촉하여 마지막 너덜에 이르렀다

누군가가 돌들을 쌓아 갈지자로 길을 만들어놓았다

고맙기도 하고 부질없기도 하다

문득 사람 낌새를 느끼며 위를 쳐다보니

시꺼먼 젊은 사내 하나 멈추어 서 있다

나를 내려다보며 인사를 한다 그도 혼자다

나 같은 녀석이 또 있구나 안심하고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악수를 한 다음 헤어져 간다

오늘 하루 처음 만난 사람이

내가 왔던 길을 내려가며 사람 내음을 보탤 것이다

이제부터가 공룡능선이다*

금지된 산길 구간은 지났으니 붙잡힐 일은 없겠으나

내 마음은 여전히 내가 도둑놈이어서 맑지 못하다

다시 가슴 벌렁거린다

벌써 한나절이 지나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쉬엄쉬엄

찰지게**올라가야 한다

 

* 설악산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 사이의 능선, 외설악과 내설악을 가르는 경계선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의 한 부분이다.

** ‘차지게의 전라도 사투리.

 

 

 

 

도둑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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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투구꽃 / 최두석

 

 

사노라면 겪게 되는 일로

애증이 엇갈릴 때

그리하여 문득 슬퍼질 때

한바탕 사랑싸움이라도 벌일 듯한

투구꽃의 도발적인 자태를 그려본다

 

사노라면 약이 되면서 동시에?

독이 되는 일 얼마나 많은가 궁리하며

머리가 아파올 때

입술이 얼얼하고 혀가 화끈거리는

투구꽃 뿌리를 씹기도 한다

 

조금씩 먹으면 보약이지만

많이 넣어 끓이면 사약이 되는

예전에 임금이 신하를 죽일 때 썼다는

투구꽃 뿌리를 잘라 잘게 씹으며

세상에 어떤 사랑이 독이 되는지 생각한다

 

진보라의 진수라 할

아찔하게 아름다운 꽃빛을 내기 위해

뿌리는 독을 품는 것이라 짐작하며

목구멍에 계속 침을 삼키고

뜨거워지는 배를 움켜쥐기도 한다

 

 

 

 

투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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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시와시학이 강진군 영랑기념사업회와 공동 주관하는 제9회 영랑시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이성부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도둑 산길'이다. 그리고 우수상은 시집 '투구꽃'의 최두석 시인이 선정됐다.

 

심사위원회는 산행을 통해 얻은 생명에의 깨달음과 자기성찰을 원숙한 필치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30일 오후 7시 강진 영랑생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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