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꽃 / 윤제림
붉은 꽃 지고 푸른 꽃 핀다
손차양을 하고 해를 향해 마주 서면
아,뜨거운 이파리들의 눈부신 개선
열흘 싸움에 지친 꽃들이
피 흘리며 떨어져 눕고
상처만큼 푸른 꽃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어선다
이제 보니,
꽃들의 싸움도 참으로
격하구나
장하구나
동아일보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18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윤제림 시인(61세)의 시집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가 선정됐다.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근배, 최문자, 곽효환 시인은 최종 후보 5개 작품 중 윤제림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수상작은 인간다움과 상생(相生)에 대해 노래한 시집. 심사위원들은 “윤 시인은 무심히 스쳐 지나갔을 법한 일상과 기억, 농담, 작은 기사, 광고 전단지, 소소한 사물 등 주변의 다양한 것들을 무겁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시로 만들어낸다”며 “고전적 미감과 세련된 페이소스로 미학적 개성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의 시에서 독서와 체험을 통한 독특한 미적 감각과 미사여구가 눈길을 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시 ‘푸른 꽃’의 일부 문구인 “열흘 싸움에 지친 꽃들이 피 흘리며 떨어져 눕고/상처만큼 푸른 꽃들이/함성을 지르며 일어선다/이제보니/꽃들의 싸움도 참으로/격하구나/장하구나”가 대표적. 한 심사위원은 “아름답고 쓸쓸한 미감과 서정성 그리고 윤 시인만의 시적 개성에 영랑시문학상이 값진 격려와 동행이 돼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윤 시인은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너 해 전 꼭 이맘때 집이 화재로 전소되고 가족이 암 선고를 받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등 내게 잔혹했던 때가 있었다”며 “눈물 나는 상황에 바깥에 환히 핀 꽃을 보며 곧바로 생각난 건 영랑의 표현 ‘찬란한 슬픔의 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많은 문학상 중에서도 한 번쯤 타고 싶다고 생각한 상을 받게 돼 대단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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