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 차호지
오전이 다 가도록 누워 있었다 몸을 뒤척이고 이불을 걷어내고 다시 덮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바깥에서 열차가 들어오며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천장에 창문 무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방 안에는 필요한 것이 모두 있었지만 한번 사용하고 난 것을 다시 사용할 수는 없어서 새 것을 가지려 누군가 나가야 했다 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와야 했고 돌아오면 다시 누워야 했다 누워서 창문을 보다가 창문을 창문이라고 생각해도 되는지 묻고 아직 그래도 되겠지요? 그래선 안 된다고 대답한 사람이 창문을 찾으러 나갔다가 바깥에는 창문이 여러 개 있어 어느 것을 가져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며 무엇이 새 것인 창문입니까? 창 밖으로 보이는창문을 가리키며 이것이다 저것이다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말했던 사람이 창문을 향해 나가고 열차에서 내린 사람이 열차에 타기 위해 열차가 멈추는 동안 창문을 통과한 새가 방으로 들어오고 새 것이었던 새를 찾으려 천장으로 걸어오는 사람이었던 이들과 천장에서 멀어지는 열차를 보며 침대에 누워 말했다 여기에 오기까지 통과해온 창문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 안은 너무 좁고 들어온 것들이 나가지 않고 있었다고
모험 / 차호지
친구는 떠났다. 내게 책을 맡기고 갔다
나는 책과 함께 떠났다
품에 안긴 책은 자구 흘러내린다. 나는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다
친구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책을 데려갔으면 좋겠다
집을 찾아갈 수 있겠니?
책을 안고 구부정하게 걷는다
집에 가자. 책에 대고 말한다. 계속 말한다
책이 말을 하면 친구는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도망간다. 내가 왜 도망을 가고 있지?
도로는 텅 비어 있다
책을 가방에 넣으려고 하자 서점 직원이 나타나 내가 책을 훔친다고 말한다
카운터포인트 / 차호지
방금 총성이 들렸다고 아침 조깅을 즐기던 외국인이 말했다. 나는 해변에 넘어져 있었다. 아직 개와 산책하는 주인도 없는 모래사장에. 없는 모서리에 걸려 넘어지는 척을 했는데 정말 넘어져버렸다. 파도치는 해변을 보고 파도가 밀려가고 밀려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밀려가고 밀려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서. 여기 봐요. 무릎에 모래도 조개도 묻지 않았어요. 아가 깨진 유리를 발로 밟았는데 상처도 없어요. 밝히는게 없었거든요. 느낌이 이상해서 신발을 벗었는데 여기 바닥에 아무것도 없어요. 모래사장에서. 그렇게 여기서 같이 걷기로 한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신기하다. 신기해서 같이 와보고 싶었어. 수화기 너머에서 그 사람은 춥다고 말했습니다. 감기에 걸렸느냐고 물으니 밖ㅔ 눈이 내리고 잇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여름이고 그 삶과 나는 같은 호텔에 묵고 잇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거짓말이 속상해 울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달랩니다. 그렇지만 눈이 오고 있는데 눈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잖아. 그렇지. 눈이 오지 않는데 오고 있다고 말하면 그것도 거짓말이지.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우리는 왜 언제나 이럴까 왜 만날 수 없을까 골똘히 생각하며 걷다가 외국인을 만나고 외국인에게 말하고 외국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총성을 듣고 생각이 났다.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발사되었던 것이다.
캉기 / 차호지
캉기 씨는 유명하다. 친구와 나는 종종 캉기 씨 이야기를 한다. 그날도 캉기 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 사람 캉기 씨 아니야? 친구가 말했다. 창밖을 보니 캉기 씨처럼 생긴 사람이 걷고 있었다. 세상엔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많지. 그런데 그건 정말 캉기 씨였다. 친구와 나는 창문 너머 캉기 씨의 걷는 옆모습을 보며 캉기 씨의 본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친구는 그걸 알고 있고 나는 모르고 있다. 나는 멋쩍어하며 진자 이름이 캉기 씨인 캉기 씨에 대해 생각한다. 캉기 씨는 나의 먼 친구와 함께 본 단편 영화제의 단편에 조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캉기 씨의 이름을 보지 않았다면 주인공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던 사람이 캉기 씨였다는 걸 몰랐을 거였다. 펄럭이는 하얀 이불 빨래를 배경으로 캉기 씨의 옆얼굴이 정지해 있다. 친구는 울기 시작한다. 작년에 죽은 친구 캉기 씨 생각이 난다고 했다. 친구가 핸드폰에 저장된 캉기 씨 사진을 보여주었다. 캉기 씨는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다. 친구와 나는 캉기 씨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한참 이야기했다. 그동안 친구와 나는 자리를 계속 옮긴다. 좌석은 텅텅 ㅂ비어 있다. 캉기 씨는 무척 천천히 걷고 있다. 걸으면서 가가워지고 있다. 친구 얼굴에 캉기 씨 옆얼굴 모양으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캉기 씨의 이마와 캉기 씨의 코와 코가 닿아 있다. 그림자는 점점 둥글어진다. 얼굴 위에 얼굴이; 덮인다. 캉기 씨가...... 우리는 계속 이야기한다. 캉기 씨는 이쪽을 보고 있었을까?
의인법 / 차호지
친구가 말했다 나는 일찍 죽을 거야 죽겠다는 말이야? 묻자 그건 아니라고 했다 친구는 건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종일 어딘가 아프다고 했다 다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프거나...... 친구는 물병 뚜껑을 열지 못할 만큼 힘이 약했지만 그렇다고 애를 스면 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친구가 내민 물병을 나는 열어 왔다 그런 말 하지 마 말하면서도 친구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게 정말일 것 같았다 깨어 있는 대부분 시간에 친구는 잠을 잤다 잠을 자는 동안 친구의 친구들이 친구를 찾아왔다 친구는 아직 자고 있어 아직도? 곤란한 얼굴로 친구의 친구들이 떠나갔다 그들은 이전에도 몇 번인가 친구를 찾아왔었다 다음에 또 올지는 모르겠어 새벽녘 잠시 눈을 뜬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다 친구는 알겠다고 말하고 금방 다시 잠들었다 친구는 이제 잘 깨어나지 않는다 나는 친구 대신 친구의 일을 보는 게 익숙해진다 뚜껑을 돌려 여는 것처럼 내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친구 대신 친구의 옷을 사고 친구의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 몫의 밥을 먹었다 친구의 일을 하고 친구가 받아야 할 돈을 받았다 그 돈으로 누워 있는 이불을 바꿀 것이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따뜻한 이불이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는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친구는 점점 늦게 눈을 뜬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친구가 일어나게 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일찍 죽게 될 거야 나를 노려보며 말할 것이다
'문예지 신인상 > 문학과사회신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0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선작 (0) | 2020.08.07 |
---|---|
제19회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 김지연 (0) | 2019.12.06 |
제18회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0) | 2019.06.09 |
[스크랩] 2017년.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 윤은성 (0) | 2017.08.16 |
2016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 강혜빈 (0) | 2016.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