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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열차 그리고 고독 / 김안젤라

 

 

하얀 눈이 겨울바람에 제 멋대로 춤추며 흩날린다.

휘날리는 눈을 매섭게 몰아쳐가는 겨울바람은 무척이나 서슬이 퍼렇다.

 

서글픈 영혼의 가슴을 여지없이 풀어헤쳐 놓고

그나마 남아 있는 따뜻한 온기를 남김없이 빼앗아간다.

 

추워서 소름치는 겨울역 열차는 묵묵히 설 자리에 서서

혼란에 갇힌 가련한 영혼들을 무심하듯 기다려준다.

 

겨울열차는 헛헛한 영혼들을 태우고 윙윙 바퀴소리 내며

다른 이름이 달린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바람을 타며 흩날리는 하얀 눈은 씩씩대며 달리는

겨울열차의 코 잔등에 세차게 부딪치다가

 

아프기라도 하듯 갑자기 광활한 하늘을 날아 오르더니

맥없는 춤을 추며 흐트러져 왔다 또 흐트러져 간다.

 

뜻도 없이 장렬하게 부서지는 하얀 눈을

애처롭지만 그러나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는

 

고독한 영혼들은 까닭도 모를 속절없는 눈물에

어느 사이 두 눈이 흠뻑 젖고 마음도 흠뻑 젖는다.

 

외로운 영혼들을 무더기로 싣고

어딘가의 세상을 향해 달리는 적막한 겨울열차 안에는

 

기쁨에 찬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열차 안 스피커를 타고 흥겹게 울려 퍼진다.

 

그러나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고독한 영혼들에게는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오늘 이 밤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었던가?

회상하는 외로운 영혼들은 문득 심장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다

 

무심한 겨울열차는 자기 만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변함없는 소리를 지르며 절도 있게 잘도 달려나간다.

 

아프게 부딪쳐 오는 새 하얀 눈들의

소심하고도 거침없는 키스 세례를 무한정 받으며

 

무정한 심장으로 하얀 눈들을 하염없이 뒤로 제키며

광활하게 터져 있는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암울한 영혼들이 담고 있는 제각기 다른 울림의 소리가

열차 안에 몸 담고 있는 고독한 영혼들의 귓가를 아프게 때린다.

 

여전히 세차게 채찍질하며 질주하는 겨울열차는

영혼들의 가슴 속 안타까운 사연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적지를 잃어버린 가엾은 영혼들을 한 묶음으로 싸잡아

신나는 괴성을 지르며 새로운 세상 밖으로 자꾸만 몰아간다.

 

[당선소감]

할렐루야! 먼저 삼위일체이신 전능의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느 구석지고 고독한 장소에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기란 참으로 힘들다는 냉혹한 시련에 잔뜩 주눅이 들어 웅크리고만 있던 나의 삶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소망하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믿음의 삶, 성결의 삶을 추구하고자 오늘도 열정의 마음을 쏟아 부으며 믿음의 여정 길을 재촉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를 가든지, 어느 곳에든지, 눈부신 빛으로 찬란하기만 하다. 주님의 숭고한 사랑과 구원의 빛으로, 각 사람의 심령을 생명으로 비추어주시고 강건한 믿음의 길로 인도해주시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다가오는 새 해에는 좀 더 영과 진리로,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올려드리는 축복 받는 믿음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마음이다.

당선이라는 소식은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시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믿고 싶다.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신 한국기독공보사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면서 영육간 강건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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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스케일이 큰 환상적 영상

시부문에 응모 인원은 현저하게 줄었으나 응모자들의 작품 수준은 월등히 좋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신앙에 들려주는 러브레터' '버려진 돌 하나가' '부끄러운 하루를 보낸 오늘 가을이 찾아왔다' '늦가을, 나뭇잎의 기도' '겨울열차, 고독을 싣고' 등이었다. 이 중에서 당선작으로 '겨울 열차, 고독을 싣고'를 골랐다.

서사구조에 담은 예수탄생의 드라마이다. 고독은 원죄(原罪)를 지고 태어난 자들의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모티브로 극화(劇化)한 것이다. 스케일 큰 환상적 영상을 보여준다.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고독한 영혼들에게는~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구절처럼 시적 화자는 좌절하지 않고, "영혼의 목적지를 잃어버린"자들을 겨울열차에 태워 "새로운 세상 밖으로 자꾸만 몰아간다"고 했다. 고난의 기관차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우리 고독한 영혼들을 하늘나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가?

'늦가을, 나뭇잎의 기도'는 '겨울 열차~'의 서사구조와는 궤를 달리한 순연한 서정시의 전범이 된 작품이다. 당선작에 이어 가작으로나마 올려 여러 경향을 선보이고 싶었다. 이 작품은 서정시의 요체가 되는 자연의 사물에 동화(同化)되어, 순명의 노래를 부른다. 자연에의 순명(順命), 그것은 신에의 순명이다. 화자는 나뭇잎이 되어 순진무구한 무심(無心)으로 자연 속에 녹아들어간다. 단순, 간결한 언어구사가 화자의 감정 노출을 억제하면서 인상적인 서정시를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 외에 '언덕길을 오르며'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를 향해 오르던 현장을 순례하는 장면을, 무겁고 침울한 감정이 아니라 소망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발을 씻고 신발을 신으세요"라는 구원의 메시지를 본 것이다.

끝까지 선자를 고심케 했던 작품들 가운데 '신앙에 들려주는~'는 '그대'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해학적이고 우의적인 이야기로 전개된다. 잠자는 이의 모습을 보며 화자의 신앙적 고백을 끌어내는 작품이다. '버려진 돌 하나' 등의 작품들은 구상이나 쓰인 시어들의 짜임새가 시적 감흥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부끄러운 하루~'는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자신의 내밀한 일상을 돌아보며 참회와 명상의 시간을 펼쳐 낸 작품이다. 또 '바다의 비명' '시를 짓다' 등도 기록에 남기고 싶은 작품들이었다.

- 심사위원 박이도 교수/전 경희대 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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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肉筆로 새기다 / 제인자

 

넝쿨장미가 웃자라는 담장 아래 구두병원

꼼지락꼼지락 진종일 꿰매고 있다

바깥으로 무너진 뒤축은 뜯어내고

벼룻돌 같은 말씀 한 판 내리친다

헤벌어졌다 오므렸다 촘촘히 재는 입 모양

걸어온 길은 찬찬히 읽어야 보인다

우주를 필사하고 돌아온 햇살 알갱이도 다글다글 읽는다

생의 맨바닥 다독이듯 앞뒤 둘레 쓸어주는

저 손

어떤 말보다 안심이 되는 온기로

온 정신 손끝에 실어 손끝이 중심되어

한 땀 한 땀 흩어진 획 불러 모아 기워 보낸 어머니 편지

곧추세워 살라고 여태 꾸짖으신다

사람을 휘저어 놓는 고지식함

꾹꾹 눌러쓴 글발을 보면 부르르 가슴부터 떨린다

공중에 말아둔 짙푸른 세필

하늘 화선지 닿으면 헐렁헐렁해지는 넝쿨장미의 젖꽃판

선홍색 육필이 배달되면 부활한 예수가 찾아온다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철철 피를 흘리며 쓰시러 오신다

흙으로 빚은 몸에 새기는 영혼의 문장

* 요한복음 8장 6절~11절 인용함.

 

 

 

#풀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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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포도나무 / 신양옥

 

폭설과 한파에도

포도나무는 절기의 상속자답게 굽었던 등뼈를 치켜세운다

 

꽁꽁 언 나무의 손을 잡아주면

도화선을 따라 불이 타들어 가듯 마른 가지에 혈이 트이고

휘청거리던 허리에도 봄의 온기가 번진다

 

지난해 잘린 가지 끝에

딱딱하게 웅크린 시간의 지문은

방황의 길에서 되돌아오지 못한 탕자의 흔적인가

 

몸속을 떠도는 안개가 수없이 변곡점을 편입시키듯

나를 묵인하며 시작된 고백은

발자국을 지우며 따라오는 모래바람처럼

아직 내 안에 고여 있는 어떤 무게도 내려놓지 못했다

 

바람만 스쳐도 땅을 움켜쥐던 포도나무가

말랑말랑하게 햇빛이 고이는 환부마다 칸칸이 창문을 낸다

 

따뜻한 흉터는 다시 꽃이 피는 자리

생명의 숨구멍이 햇솜처럼 부풀어 오른다

 

화석처럼 눌려 있던 마음자리에

환하게 꽃눈을 터뜨려 새날을 품는 포도나무

높은 하늘이 꽃의 입구에 닿아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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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시는 기쁨이자 치유, 나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힘

'기독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잠시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막상 전화벨을 타고 전해지는 당선 소식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때마침 차창 유리에 부딪혀 내리는 빗방울이 천상의 선율처럼 다가와 크리스마스트리에서 반짝거리는 별빛 같았습니다.

시는 저에게 기쁨이자 치유였고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둠 안에서 빛 부스러기를 꺼내는 것처럼 고통 속에서도 시 쓰기만은 놓을 수 없었습니다. 상처와 흉터가 보기 싫은 흔적이 아니라 그 상처와 흉터의 자리에서 끝내 꽃이 필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기쁜 소식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한국기독공보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전주중부교회 박종숙 담임목사님을 비롯한 성도님들과 여러 문우님, 기도로써 응원해준 가족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하늘에 계신 그리운 아버님께도 이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며 더욱 정진하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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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남기고 간 자리 / 노원숙

 

 

무창포, 밤의 입구에 닿았다

바람이 수면 속을 내달리는 동안
파도는 아코디언처럼 제 몸의 주름을 꺼내 해풍을 연주한다

썰물에 앙상한 제 뼈를 다 드러낸 무창포, 이곳의 명물은 모세의 기적이다
성경 속 모세가 도시 어느 쪽으로 난파됐는지 알 수 없는 지금
나는 몇 모금 목마른 그리움을 해풍에 적시기라도 하려는 듯
무작정 이곳까지 밀려들었고, 눈부신 인파들의 야광 같은 웃음들 속에
이 밤, 자객처럼 나도 그 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박혀든다

무창포, 이곳에 다다르면
문명저쪽 한낮의 연체된 갈증들과 밀린 일상의 근심들조차
한낱 갈매기의 새우깡 반 토막 보다도 작아지고 마는,
누구든 이곳에서 오면 바닷물을 찍어 오래전 구약성서의
안쪽에서 밤새 하나의 새로운 출애굽을 써내려가도 좋을,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아침이 되자
누군가의 호미 속에서 오래된 말씀 하나 진주알처럼 반짝, 들춰진다

 

 

[당선소감] "시처럼 우엉처럼 젊어지고파"

 

지난 늦가을에 우엉을 수확했습니다. 잘 챙겨 먹으면 '20년 젊어진다'는 우엉. 한 계절 창고 한편에 깊이 잠들어 있었던 그것들을 며칠 전 꺼내 손질하느라 머리를 잘라 냈습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열흘쯤 방치했었는데, 잘려진 우엉 머리에서 연둣빛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접시에 물을 받아 올려두었는데 크리스마스이브에 보니 튼실한 싹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생명의 외경을 느꼈습니다. 무참히 잘려져도 죽지 않고 자라는 저 우엉! 저 새싹처럼 그렇게, 저도 시련이 올 때마다 시를 향한 집념을 촉수처럼 키워왔습니다.

 

서울에서 온 한 통의 전화는 제게 우엉 싹과 같은 에너지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의 행운! 하늘의 주님께서 주신 참으로 큰 선물입니다. 무엇보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기독공보 관계자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에게 깊은 가르침을 주셨던 김명희, 이설영, 채석준, 김산, 정병근, 문정영, 이화은 이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또한, 그동안 함께한 문우님들께도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지금도 시 공부를 하시는 모든 분들의 앞날에도 행운이 꼭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시를 쓰면 나이보다 더 젊어진다'는 말씀을 믿으며 좀 더 열심히 시창작에 매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저를 알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즐거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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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성서에 기록된 인물에 대한 시적 변용 잘된 작품, 文彩ㆍ비유 개성미 돋보여"

응모작품을 읽고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일은 투고자 못지 않게 선자로서도 기대감으로 긴장하게 된다. 신인들이 어떤 작품들로 한국문단에 등장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대다수의 작품들은 시적 소재나 대상을 날 것으로 취했기에 생경한 소재주의에 머물고 말았다. 외골수의 신앙정서 혹은 성서의 역사적, 신화적 팩트를 시인의 의식으로 수용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재현해내는 과정이 미흡하거나 생략되었을 때 문학작품으로써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없다.

당선작 노원숙의 '바람이 남기고 간 자리'는 성서에 기록된 인물에 대한 시적 변용이 잘된 작품이다. 모세의 신명(神命)에 따른 행적을 시적변용을 통해 음미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발견한다. 내면의 신앙심이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어 자연발생적으로 발현되는 결과이다. 여기에 시어의 문채(文彩), 제시된 비유들의 개성미가 돋보인다. “~아코디온처럼 몸의 주름을 꺼내 해풍을 연주"하거나 "자객처럼 나도 그 속에~ 그림으로 박혀"버리는 수사(修辭)들이 신선하다.

시속의 화자는 무창포 해변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기적을 체현하고있다. 그리고 드디어 갈라진 바다에서 "~오래된 말씀 하나 진주알처럼 반짝, 들춰"내고 있다. 화자는 무창포로 성지순례를 가서 출애굽시기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비의(秘儀)를 경험한 결과를 시의 언어로 표상한 것이다. 기독교 신앙시의 한 전형(典型)이 됨직하다. 함께 묶은 다른 작품들도 별 수준차이가 없어 그의 역량을 믿을 만 했다. 

끝까지 내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고홍숙의 '들판 라디오' 등이 있다. 그리고 최수현의 '아름다운 소원' 등과 박숙영의 '일몰의 그림자'등의 시인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한다.

- 심사위원 박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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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의 죽음 / 강민석

 

결국 모든 말이 죽었다.
입이 얼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우린 그 눈보라 속에서 아무런 말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먼저 죽었다.
우린 서로를 밤하늘처럼 오랫동안 바라보았고
사랑은 별빛처럼 제 빛을 찾아갔다.
살기를 갈망하는 몇몇만이 간혹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뒤이어 고맙다는 말이 죽었다.
어떤 이들이 옷을 벗어 자녀들을 입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해
우리는 고맙다는 말의 죽음을 묵묵히 응시해야만 했다.
살기를 갈망하는 몇몇만이 간혹
두툼한 옷 사이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말들이 차례로 죽어가고
끝으로 삶이라는 말이 죽었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엮어 몸을 덮었고
지금이라는 말이 남긴 유품들을 태워 몸을 녹였다.
살기를 갈망하는 몇몇만이 간혹
수 천 킬로미터 밖에서 활을 쏘듯 삶이라는 말을 했다.

결국 모든 말이 죽었다.

내가 그 꿈에서 어떻게 깨어났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말들은 살고 말들이 애타게 부르던 것들은 죽어버린 이 세상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세상은 뜨겁고
사랑은 어느 그림자 틈에 혼자 쓰러져 잠이 든 것인지
사랑한다는 말만이 꽃단장한 영정사진처럼
길거리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다.
상주도 없는 거리에서 나는 상주마냥 우두커니
너를 기다린다.

 

 

 

 

 

[당선소감]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 좋은 그리스도인 되고파"

 

꽃이 만개한 화분보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화분이 더 갖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미 피어난 꽃보다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갖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화분에 담긴 식상한 푸른빛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언젠가 피어날 화사한 꽃을 상상하는 일은 시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쁘면서도 제 분수 이상의 큰 상을 받는 것 같아 쑥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제가 쓴 시가 매혹적인 꽃처럼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앞으로 피어날 어엿한 꽃송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뽑아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쑥스럽지만 기쁜 마음으로 상을 받고, 쑥스러운 만큼 더 정성스럽게 제게 맡겨진 화분을 가꾸어가는 것이 제 시를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것에 대한 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언제나 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고 신뢰해주는 아내에게 가장 먼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내의 지혜로운 사랑이 저를 얼마나 하나님과 가깝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딸 예채와도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직 당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나이이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한 아빠의 마음입니다. 시의 '시옷'도 모르던 제게 처음 시를 가르쳐주신 김소연 시인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닮고 싶은 시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더 성숙한 시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글보다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고 싶습니다. 좋은 시인이기보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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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비유와 상징이 절정에 놓일 때 여운 증폭됨 기억하길 당선작, 현대인의 황폐화된 심성 역설적으로 추적"

 

제15회를 맞은 기독공보 신춘문예가 연륜을 더해 갈수록 투고되는 작품들도 고르게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다수의 응모작품들이 어천정심(語淺情深)이나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은 시를 시 되게 하는 특질을 소홀히 여기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언어의 경제(經濟)'라는 말처럼 시는 '말하면서 숨기고 숨기면서 말하는' 비유와 상징이 절정에 놓이게 될 때 그 여운이 증폭됨을 기억했으면 한다. 선자(選者)들은 우선 12명의 작품을 1차로 추려낸 다음, 숙독(熟讀)과 논의 결과 '말(言)의 죽음'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말(言)의 죽음'은 현대인의 황폐화된 심성을 펼쳐 보인다.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 '사랑'이나 '고마움' 같은 인간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내면의식의 흔적을 역설적으로 추적해간다. 우리 삶 속에서 사라진 사랑이 가식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사랑'이나 '고마움' 따위의 언사(言辭)는 "결국 모든 말이 죽었다"고 사망진단을 내린다. 사랑과 자비의 말씀을 몸소 행위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참사랑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시 속의 화자(話者)는 "너를 기다린다"고 오늘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간절한 소망과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도 짜임새 있는 시적 형상화를 보여주고 있어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가작으로는 논의 끝에 '꽃에 대하여'를 뽑았다. 길지 않은 시행(詩行)으로 언어의 절제를 살리면서 꽃의 존재론적인 시점(視點)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것을 신앙적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구성과 조탁(彫琢)의 솜씨가 놀랍다. 세상의 꽃이란 꽃은 아주 작은 꽃일지라도 하나하나 창조주의 완벽한 창조물로서 신성(神性)을 드러내고 그것은 또한 오직 한 분 예수님을 위한 존재이며 그 한 분은 또 꽃보다 '사람(우리들)'을 더 사랑한다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복음의 핵심을 담아내고 있다. '내 마음에 자작나무 숲이 있어' 등 함께 응모한 작품들도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서 시작에 대한 내공(內功)이 느껴진 점도 든든하게 생각되었다. '바늘귀'는 끝까지 선자들의 마음에 남은 작품이었다. 바늘귀를 중심으로 하여 시적 화자와 아내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로 이어지는 가족과 지상의 삶 나아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성경 말씀으로 실을 꿰는(연결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그러나 함께 응모한 작품들간의 편차가 다소 크다는 점이 다음 기회를 한번 더 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이 외에도 '감나무 전등' '고향' '결석(結石)' 등의 작품들도 선자들의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었다. 입상하신 분들께는 축하와 가일층의 분발을, 입상하지 못하신 분들께는 지속적인 습작을 부탁 드린다.
 

심사위원 박이도ㆍ권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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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낙타 / 조경섭

 

 

1.

방울 소리가

사막의 단색 시야를 밀어낸다

 

2.

낙타가 광야를 지나 협곡 앞에 섰다

바람도 한꺼번에 들어갈 수 없다며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한때는 제 덩치만 한 적막을 몰고 다녔다

그런 그가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

어찌할 바 모른다

이제 이곳만 빠져 나가면

지상의 경계는 하늘뿐이다

 

3.

보이지 않는 길의 여백을 넓히기 위해

며칠이고 굶어 몸집을 줄여본다

살아 있는 어떤 것도 통과할 수 없다는 바람길,

털오라기 하나도 마음대로 빠져나가기에는

버거운 세상의 두께 앞에서

힘없이 무릎 꿇을 때

지식, 열정, 용기 따위는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나의 의지, 나의 고독, 방울소리까지도

 

4.

지금껏 누구를 위해

나를 내려놓고 살아 보았던가

그토록 먼 길을 돌고 돌아

바람 불면 지워질 길, 내 영혼의 마른 땅

모래가 증명하는 것은

여전히 사막이라는 이정표뿐

 

5.

자잘한 별빛이 통통 튀는 모래바다

나를 사막의 빗금무늬로

감싸고 있던 거푸집이 해체된다

털과 가죽, 살과 뼈, 화석이 된 그리움조차

나는 뭇별처럼 세상에서 분리되고

목숨이 통째로 녹아 실이 되어 나오더니

비로소 바늘귀에 들어가는 순간,

 

방울소리 가까운 하늘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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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낮잠 / 윤주영

 

한낮

할머니가 낮잠을 주무십니다

하얀 틀니 사이로 엷은 미소를 지어내며

행복한 꿈을 꾸시는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손주들의 부축을 받으며 외출을 하십니다

강아지도 꼬리치며 배웅을 하고

방금 돋아난 노란 싹도 배냇짓처럼 방긋 웃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손수 빗자루 질을 하시던 골목길을 지나

한때 청소와 빨래로 봉사를 해주던 보육원 앞길

꽃들이 도열한 꽃길로 걸어가십니다

꽃들은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여왕의 행차처럼 환호를 하며

할머니의 발자국마다 꽃가루를 뿌립니다

꽃길은 할머니의 영원한 소망의 나라, 평생에 한 번도 가 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할머니는 긴 한숨을 몰아쉬며 지나온 뒷길을 돌아봅니다

꽃길 속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뒷길도

앞길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고운 인심이 있고 서로사랑하고 서로 아껴주는 마음이 있을 때 더욱 아름다워지는 세상,

할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나봅니다

꽃길 속에 할머니는 구름을 타고 걷듯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모처럼 긴 나들이를 하시고 가벼운 단잠에 취하신 할머니

할머니 방에 아름다운 백목련 한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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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의 기도 / 김윤희

 

자작나무 숲길

잎사귀 헤집고 들어온

햇살 받아

풀잎 이슬 초롱 달고

네 길목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숲속이라도

때론 가시덩굴 돌밭 길 절벽도 있어

돌부리 헤이고 휘청하는

위태한 순간들 있게 마련

그래도 뒤 돌아보지 말고

쉬지 말고

가다보면

목 축여 주는 옹달샘 있고

갈대 피리 부는 멋진 바람도 만나기 마련

하늘 햇살 닦는 언어가

만인의 귀에 조용히 오는 언어 되어

오는 숲길이 그곳이니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비바람 거스리는 것처럼

계절 바뀌어도

모든 사랑이 가시꽃 둘레에서

불꽃처럼 뛰는 열정이 되어

그늘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 것이 그곳에 있어

보이지 않는 언어가 네 반석이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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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 / 추영희

 

밀레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버린 저녁종

한 때의 유물 같은 평화로

낡은 종탑에서 타종되는 하루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들에 닿았다 돌아오는

저녁 거느린 종소리 아름답다

할 뻔 했다

밤새 종 안으로 웅크려 들었다가

생육하고 번성한 것들 하루 내 생사

시퍼렇게 내미는 새벽종

희망의 입구라

할 뻔 했다 대책 없이

굶주린 땅 죽어가는 아이의 눈도 목격한 햇살

주르르 흘린 혈변 같은 저 노을 또한 아름답다

할 뻔 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만든 뜻 따라 생육하는 말로

붙여진 온갖 것들 번성할수록

종소리와 종루의 헐어진 속들 위장약을 틀어넣으며

절룩절룩 붉게 돌아오는 저녁

마지막 생기를 불어 축복하던 피조물들 그 뜻대로 부디

낡은 종탑 반대편 땅에서도 은은한 소리로 저물어

번성하는 포성과 울음 대신 삽을 꽂아놓고 조용히

손 모으고 있는 가난한 부부와 아이들

밀레의 만종으로 다시 그려진다면

오래된 그림 속에서 걸어나오는 종소리

이젤을 넘어뜨리고 경건하게 부활하는 저녁

저 혈변이 천사의 거룩한 피가 되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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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 / 함국환

 

파묻혀서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다

나뭇결 사이에서 기지개를 켜며

언제든지 뛰쳐나올 태세이다

 

허공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가지에 분신을 매달려고

자신을 결박하며 단련했다

 

널빤지에 생선비늘 무늬가 가득하다

비린내를 즐기셨지만

생선을 굽지 않으셨다

 

중식시간마다 생선을 먹으며

나이를 하나씩 뒤집어 본다

벗겨도 벗겨도 남아있는 나이테,

나이테가 감싸던 옹이는,

 

빠진 구멍 속으로

바람이 도둑처럼 들어가곤

이내 사라졌다

 

툇마루에 빠진 옹이를

슬며시 끼어 넣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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