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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해송다방은 펄떡거리는 그리움을 판다 / 김성배

      

한 권의 해금강을 마저 읽지 못한 채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 나왔다

세꼬시 바람을 씹다가

잇몸이 아린 바다

괭이갈매기 울음에 발목이 잡혀

책갈피로 끼어둔

해송다방 박 양의 애달픈 눈웃음을 꺼내본다

재만 남는 십구공탄처럼

오늘 하루 더 뜨겁게 쉬어갈까

동백꽃 홑이불을 덮은 수평선을 걷을 수 없다

성에로 낀 그리움이

호호 입김 불며 나온 파도 소리의 배웅에

그냥 눌러 살아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한 생 비려 보는 것도……

 

 

 

 

 

[금상] 지심도의 덩굴손 / 장병길

 

지심도의 나팔꽃 덩굴손

수면을 긁으며 몰려오는 바닷바람에 휘청한다

춤사위라 말하는 것은 지구 끝에서 행하는 언어의 유희다

핏물처럼 밑도 끝도 없이 묻어나는 

그 무엇

며칠 동안 손안에 공기만 쥐었다 폈다 한다

파도처럼 멈추지 않는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부러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그 허공 속에

그 무엇이 있는 것인지

이 순간 애타게 잡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소나무숲을 뚫고

오동나무 붉은 꽃에 앉아 앞바다 너머 거제도를 바라보며

빠져나오지 못할 블랙홀 같은 허공에 갇혀 

두 팔을 허우적거린다

그것은

뭍이 되고 싶은 꿈일까 뭍에서 떨어져 나온 아픔일까

덩굴손이 뻗는 허공에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투명한 것들만이 자욱하다

몇 날 며칠

쉬지도 자지도 않고 마른 눈물을 삼키면서

원하는 곳까지  수 있을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 열망을 끝까지 가지고 있다면

지심도의 해무가 걷힌다

쉿 예단은 금물이다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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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학동몽돌 해변에서 / 최재영

 

학이 비상하는 소리였을까

달빛 머금은 검은 돌들이

밤새 달빛을 토해내는 소리였을까

숨 넘어가도록 차오르는 파도는

물거품 부글거리는 생의 내륙까지

막무가내 제 속내를 들이미는 중이다

달빛을 베고 날아올는 학은

몽글몽글 돌 부딪는 소리를 물어나르며

멀고 먼 시간 속을 항해하는 지도 모른다

태초 이래 두근거리며 열고 닫힌 해안선

간밤에도 젖은 눈을 감았다 치켜뜨는지

무수한 물방울이 튕겨오르고

밤이면 수천 개의 별들이

멀리 은하까지 해안선의 표정을 타전한다

흑진주 몽돌은 수억 광년 떨어진 별들의 흔적이다

깊어진 연륜을 다독이며

젖은 날개를 터는 학 한 마리

마침내 눈부신 비상을 시작한다.

 

 

 

 

 

[은상] 멸치들의 반가사유상 / 이서

 

여기는 외포항, 작고 비린 것들이 밝고 명랑하다

살아서는 줄줄이 달고, 죽어서는 외려 고소한 것들이다

 

나는 저 흰 뼈들이 그려내는 바다와 소금의 죄를 생각한다

잠잠한 햇볕의 침묵에 드는 저 외포항 멸치들,

희끗희끗 기묘하게 빛나고, 다시 일어설 줄 모르지만

금세 홀쭉해지는 눈알엔 블루의 창과 문이 달려 있을 터이다

 

외포항의 골목들이 썩어 문드러지도록 아름다울 때

침침하게 억눌린 한낯이지만

비린 것들의 저의가 여기저기 빼곡하게 박혀 빛난다

 

종이 상자에 차곡차곡 바다를 쟁이는 멸치를 곡씹으면

군데군데 섬 그늘이 녹아 흐르기도 하였다

 

혀끝을 당기는 희고 자잘한 해안선이 뒤척뒤척 일기도 하였다

 

멸치 향에 중독된 하루는 더러워질 필요도 없듯이

그렇게 잠깐 푸른 색과 흰 빛의 영혼을 빌릴 수도 있다


멸치의 맑은 울음들이 가장 흔한 수좌에 들 때

나는 저 멸치들의 반가사유상이 한낱 그늘이었음을 안다

그러나 저 흰 것들의 은하가 꽃을 피운다고 해도

아름다운 성운이라고 명명해도 바다는 또 풀렁이고 또 접힌다

저 접히는 시간이 고독해서 나는 멸치가 하얘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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