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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창문의 오후 / 김흥현

 

 

한 사람이 지나간다

 

나는 안쪽에서 네모를 집어

눈앞까지 끌어당긴다

네모가 커졌는데 모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다시 네모에 넣고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도

마찬가지다

 

움직이는 사람들을 빼면 움직이는 것이 없는데

나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본다

 

햇빛의 끝이 뾰족해진다

눈이 찔려서 움직이는 것들이 흐릿해진다

네모에서 보푸라기가 일어난다

보푸라기를 컵에 주워 담아도

솜사탕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네모의

왼쪽을 늘리고

오른쪽을 늘렸는데

하나로 만나 점이 된다

 

사람이 계속 지나가서 사람들이 된다

네모 안에 사람들을 모아도

아무 말 없이 지나간다

 

나는 시작은 했는데 끝이 없는

쳇바퀴처럼 원을 그리고

네모는 덜커덩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당선소감]

 

저는 라보로 퀵서비스를 합니다.

 

2010년에 순경에서 경사까지 20년 재직하였던 경찰직에서 해임되면서 공장 일용직, 대리운전을 하다가 2018년에 상처를 하여서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통째로 부정하는 나날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마음을 닫고 살다가 SNS에 글을 쓰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산지역대 지평 동아리를 청강생으로 찾게 되면서 시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꼴찌 언저리를 맴돌았던 선린상고가 최종학력이라서 입학을 주저하고 있을 때 포기하지 않으면 졸업한다라고 말을 해준 선배로 인하여 국어국문과에 용기를 내서 입학하였고 본격적으로 시 창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이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피해자 진술서나 보고서 정도만 써 왔고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아서 맞춤법, 문장의 주술 관계부터 배우게 되었는데 시를 빨리 써보겠다는 생각과 다르게 이것을 왜 배우지하는 회의를 가졌던 부분이 결국은 저의 내면을 넓히고 글을 쓰는데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시를 많이 찾아 읽어야 했습니다. 방송대 중앙도서관을 경유 RISS에서 9MB 분량의 시 등 자료를 찾아서 읽고 1주일마다 1편씩 시를 써 온 결과물이 문학상인데 방송대 학생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첫발을 내딛게 해준 유병근 선생님, 면도칼로 구석구석 해부를 해서 벽을 마주 보게 하다가 곧 대상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뛰고 있는 심장을 마주하게 된다라며 독려해 준 조말선 선생님 고맙습니다.

 

학교생활과 시 창작에 도움을 준 선배님, 쇼핑백 가득 시집을 챙겨 준 학우, 함박웃음을 짓게 하는 학우님들, 응원해 준 딸과 아들 모두 고맙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작년 방송대 문학상과 문예지 2곳에 응모했다가 낙방한 사실이 있습니다.

낙담하고 포기하려던 저에게 문학상이 다시 일어나라고 합니다.

힘껏 다시 써보겠습니다.

 

올해 태어난 손녀가 자라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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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나 / 남택규

 

 

숭고함은 어디서 올까

누군가 나로 하여금 닭을 잡게 한 한다 난생처음 배를 가르게 한다

 

오밀조밀 장기들을 맨손으로 매만진다 미끌미끌 따뜻하다 의사가 나의 심장을 만져도 이럴까

 

그만 나는 막막해져 얼른 배를 닫는다 속울음을 들었다 그것은 비릿함 가까운 데다

 

아무렇게나 내장을 꺼내는 손으로 인삼 대추 쌀을 차곡차곡 채우는 칼날 위 아슬아슬한 식() 풍경, 순간 뇌우가 들이친다 식탁에 칼이 꽂혀 부르르 떨고 맨발로 황급히 빗물이 차오르는 거리로 뛰어드는 이도 있겠지, 그래 삶은 누군가의 온기를 끊임없이 배반한다

 

현실에서 가능한 답을 찾아가는 나에게도 한 가지 궁금한 건 혹 내가 개복한 상태에서 의료진도 없이 나 홀로 남겨질 때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수술대에도 기대지 않고

 

나는 천천히 둥글게 몸을 만다 얼굴이 배에 닿지 않는다 잠깐의 열패감, 이런 기분일까 다시 추스르며 손가락으로 위 창자가 있을 배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간다 센서등은 복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기도는 사절, 다만 낮아서 아름다웠으면,

 

 

 

[가작] 울음의 질량 / 이정미(이마리)

 

비가 허공을 딛고 안전하게 내려와요

머리맡으로 옮겨온 하룻밤의 오아시스도 담겨있어요

고무장갑 손끝으로 물방울이 속눈썹처럼 떨어져요

예전의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지금도 외줄을 타고 내려와요

창밖 난간에 유리알들이 매달려있어요

떨어지면 산산조각 날 쏭알쏭알 벌레알들,

저것들은 누가 분실한 노래일까요

사내가 추락하면서 남겨진 코팅장갑 한쪽이 보여요

몸보다 먼저 떨어진 비명도 그를 지켜주진 못했나 봐요

사내의 아내는 박보살이에요

알아요, 자신의 운명까지 점칠 순 없었다는 것

그런 것쯤 이 골목에선 이미 단물 빠진 소문

낮달이 아라비안나이트의 단검처럼 우윳빛 조등을 걸었네요

주방 한 켠에 방치된 나는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싱거운 침묵이라도 조리할까요? 당신의 입맛에도 단물이 빠진 것을 알아요

다시 비가 와요

비는 질기게 시간을 밀봉하고

오후는 하얗게 질식된 사체에요

움직이던 모든 순간들이 창백하게 지워져요

당신은 어느 별에서 지워졌나요?

고무나무 숲에서 맨발로 나를 받아내던 거친 손등

그녀도 무중력 속으로 풍선이 되어 떠올라요

슬픔에도 세금이 붙는 세상을 아세요?

카드 한 장으로 울음의 질량이 입력되는 그 마을은 여기서 멀죠

죽은 코팅장갑 속으로 걸어 들어간 고무나무 숲이

지하 울음들을 모조리 삼킨다고 중얼대는 흰 소리가 들려와요

나는 이제 습기 찬 소리들을 받아낼 수 있지만

내 몸으로 흡수 시킬 수는 없어요

어둠이 코팅 된 시간을 낮이라고 부르자

태양이 나를 녹이네요 나의 붉은 계절은 모두 밖에 있어요

내 심장은 곧 낡을 거예요

발뒤꿈치까지 끌려오듯 그림자를 키우는 여자를 알아요

인대가 늘어진 여자, 누군가 뱉은 껌처럼 던져졌어요

수술방 차가운 침대에

수술 장갑을 온몸에 껴입은 누군가 들어와요

소독약 냄새가 구겨진 나를 뒤덮어요

고무나무 숲으로 빗소리가 천천히 걸어와요

나는 오래도록 썩지 않는 나무의 혈흔이에요, 붉고 질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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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의 푸가

(장민기 / 명지전문대학 문창 2 )

 

해바라기 농담

(하승훈 / 상계고등학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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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 (김혜린 / 숭실대학교 문창 4 )

 

 

 

시계 모양을 한 골목 / 장수민 

 

 

종로에는 몸통이 긴 괘종시계 모양을 한 골목이 있다
그 골목의 노인은 시간의 빈틈을 찾아낸다
눈가를 구기느라 몇 겹의 주름을 가진 백발의 수리공
그의 눈에 두꺼운 돋보기 하나 끼워져 있다
어두운 시계방 책상 앞 옅은 불빛 하나 빛나고
잔뜩 굽힌 몸 뒤로는 새마을 금고, 박힌 큼직한 달력
그 옆에 누래진 국가 유공자 증서 걸려 있다

노인은 잊혀진 시간들을 감고 있다
시간을 흩어지게 하는 그는
조그만 부품들이 펼쳐진 책상의 가장자리에서
곳곳에 흠집 난 돋보기 너머로 녹이 슨 태엽을 본다
몇십 년간 팔목에서 묵직하던
칠이 조금씩 벗겨진 손목시계를 쥐고
멈춘 톱니바퀴를 맞물리게 한다
초침과 분침이 지나온 시간을 훑어낸다

그는 부러진 시간을 고친다
창고에서 발굴된 부품마저 닳아빠진 괘종시계
닦고 닦아도 먼지가 내려앉는 시계를 쥐고 있다
1950년경 부러져 멈춰버린 시간이 그로 인해 흘러간다
시계 골목이 좁아져갔으므로 자처했던 부랑자에서
1953년 군복을 벗던, 많은 이의 우상으로 돌아가는 노인

하루내 시간을 감아내고 나면
그 짧은 골목만 시계 바늘을 한껏 돌려놓은 듯
색 바랜 간판들이 펼쳐진다
사라지는 햇빛을 따라 금은방들은 하나둘 셔터를 내리고
수리공은 까마득한 어둠이 머물고 가는
괘종시계 모양을 한 골목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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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대나무 / 김명숙

 

 

빈 속인 것이

촘촘한 촉수로 허리를 세웠다

 

흰 눈발이 대숲에 날려

우 우 바람소리 거센 날엔

서로 휘청대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대숲의 푸른

틈 사이로 바람과 햇볕이 드나든다

빼곡한 틈새지만 서로 날은 세우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

더 깊숙이 뿌리 내린다

 

밖은 허공,

의지할 것은 서로의 균형뿐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있다

 

바람이 분다, 세상사

얽히고설켜도

함게 가야하는 길, 대나무처럼

그 만큼의 거리에서 서로 바라보면서

 

가지 사이로

폴폴 날아다니는 새들의 비상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으리

 

 

 

그 여자의 바다

 

nefing.com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은 지난 12월 18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방송대 대학본부 본관 3층 소강당에서 제43회 방송대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총 551편의 작품이 접수되었으며, 뜨거운 경쟁을 펼쳤던 방송대 문학상 시 부문엔 김명숙 시인의 작품 “대나무”가 가작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방송대문학상은 방송대 학생 중 훌륭한 문학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해 출판문화원이 매년 시행하고 있는 현상공모의 행사로서 평소 등단을 꿈꾸는 사람, 글쓰기에 자신 있는 사람,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언제든 도전 가능한 문학상이다. 공모전은 문단에 등단한 문인이 아닌 방송대 학생이라면 누구라도 응모할 수 있고, 모집 부문은 시·시조, 단편소설, 희곡 및 시나리오, 에세이, 동시·동시조, 단편동화 등 총 6개 부문이다. 지금까지 ‘방송대문학상’에서 배출된 수상자들은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를 비롯한 여러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여 한국 문단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응모 기간은 2018년 8월 5일(월)~10월 31일(목)까지였으며, 방송대문학상은 국내 대학교내의 문학상 중에서도 명실상부 전통 있고 명망 있는 문학상으로 꼽힌다.

 

시. 시조 부문 예심 심사는 11월 9일(토) 출판문화원 회의실에서 이성혁 문화평론가가 했으며, 심사기준은 ▲주제의식 ▲창조성 ▲실험정신 ▲표현력 ▲구성력에 두고 심사를 했다. 시. 시조 부문의 본심 심사는 11월 22(금)에 방송대 겸임교수로 있는 손택수 시인이 맡아했다. 

 

손택수 심사위원은 “김명숙의「대나무」는 독창성이 어떤 유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질감의 문제라는 인식을 뒷받침하는 지표다. 이 시인은 ‘시’로 규정된 기왕의 미학 체계를 단정하게 수렴하면서도 ‘시’로 명명되지 못한 ‘시적’인 것을 향해 비약하는 힘이 있다. 

 

또한 예측 가능한 사유의 흐름을 비틀어 도약시키는 마지막 연의 갈무리 솜씨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시가 지나치게 뜻에 포박되지 않도록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사유의 깊이와 명료한 이미지가 어우러져 웅숭깊은 음역을 갖게 되리라 믿는다.” 라고 평했으며 ‘예상한 변화만을 허락하는 시가 아니라 위험하지만 자유로운 곳으로 우리를 밀어가는 시인의 가능성’을 내세워 작품을 선정했다고 설했다. 당선작은 2020년 신년호부터 방송대 신문인 KNOU위클리에 소개된다.

 

한편, 김명숙 시인은 시인과 아동문학가·가곡·동요작사가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초.중학교 논술강사, 사회교육강사, 문해교육사로 후학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시집 

 

<그 여자의 바다>를 출간했으며, 가곡<달에 잠들다.> 외 45곡과 음반과 악보로 나온 동요 86곡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제54회, 57회 4.19혁명 기념식에서 가곡 <그 날>을 작시하여 합창곡으로 편곡돼 추모 공연된 바 있으며, 제60회 현충일 추념식에선 국가보훈처에서 의뢰한 추모곡 <영웅의 노래-충혼가>를 작시하여 서울현충원에서 연주된 이후 국가의 큰 행사에서 끊임없이 불러지고 있다.

 

또한 <새싹>은 2011년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천재교육)에 등재되었으며, 2008년 국립국악원 생활음악에 공모 선정된 <화전놀이>, 제5회 BBS불교방송 동요대회 우수상<연잎에 비 내리면>, 2015년 KBS 창작동요 노랫말 <오월>, 2019 제주어창작동요제 <쇠소깍 여행>등이 우수상으로 당선되었다.

 

수상으로는 부천예술상, 한국동요음악대상, 창세평화예술대상, 문예마을문학상, 도전한국인상, 제5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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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탈 / 오금님

 

몰라봐서 미안해

국보인 줄 모르고 여태 내가 쓰고 다녔어

'

하회 별싯굿 탈놀이에 등장하는 아홉 개 탈 중

유일하게 턱이 어뵤는 이매탈

실눈 웃음이 턱없이 슬퍼 보이는 탈

 

허 도령 꿈에 나타난 산신령이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려면 아무도 모르게 탈을 만들어

춤추어 노여움을 풀어주라 했다는데

짝사랑한 이웃 처녀가 엿보는 통에

미처 다 만들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지

 

꼽등이처럼 휘어진 콧날 아래

드러난 입술과 턱선으로 표정을 읽을 수 있지

초랭이가 놀려도 웃기만 하는 너를 보고

착한 것도 병이라고 수군거려

 

탈은 이미 굳어버린 내 얼굴도장

그 뒤에 숨겨진 익살을 알아주는 이가 있을까

 

한쪽 다리를 절며 슬금슬금 다가와

돈 많은 가짜 양반 흉도 보고 스님 연애사도 얘기하지

네거 웃으니 너를 보는 관객들도 웃어

웃을 일 없는 탈놀이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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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배 / 김해리

 

고향 빈집을 찾았을 때

마루 밑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검정 고무신

 

밤이면 헐렁해진

아버지의 고무신을 끌고 다니며

채마밭 귀퉁이에 오줌을 누곤 했다

찔끔거리던 오줌이 신발 속으로 파고들어도

이웃집 셰퍼드가 칠흑처럼 캉캉거려도

오줌에 젖은 발이

신기하게 포근했다, 무섭지 않았다

 

아버지의 발자국만 따라갔다

흔들리며 굽어가는 등을 보고

이유도 모른 채, 뒤뚱뒤뚱 뒤를 따랐다

그렇게 아버지는 똥오줌을 받아내며

우리의 영토를 다져놓고

평생 한 번뿐인 여행을 떠나는데

그 여행길에 구두 한 켤레 준비하지 못했다

 

오종종히 화인처럼 찍힌 상처 위로

말없이 먼지를 뒤집어쓴 저 빈 배

늘 삐걱거리던 노는 멈추었고

꿈꾸듯

망초꽃 출렁이는 긴 강을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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