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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배 / 김해리
고향 빈집을 찾았을 때
마루 밑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검정 고무신
밤이면 헐렁해진
아버지의 고무신을 끌고 다니며
채마밭 귀퉁이에 오줌을 누곤 했다
찔끔거리던 오줌이 신발 속으로 파고들어도
이웃집 셰퍼드가 칠흑처럼 캉캉거려도
오줌에 젖은 발이
신기하게 포근했다, 무섭지 않았다
아버지의 발자국만 따라갔다
흔들리며 굽어가는 등을 보고
이유도 모른 채, 뒤뚱뒤뚱 뒤를 따랐다
그렇게 아버지는 똥오줌을 받아내며
우리의 영토를 다져놓고
평생 한 번뿐인 여행을 떠나는데
그 여행길에 구두 한 켤레 준비하지 못했다
오종종히 화인처럼 찍힌 상처 위로
말없이 먼지를 뒤집어쓴 저 빈 배
늘 삐걱거리던 노는 멈추었고
꿈꾸듯
망초꽃 출렁이는 긴 강을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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