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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픈 부위를 수정했다 / 정지윤

 

크레인 밑을 지나 사랑니를 빼러 간다

높은 것들은 먼발치에서 팽팽하다

 

썩은 이를 빼내기 위해

멀정한 이를 빼내야 할 때

사과를 씹으며 벗어 던지던 모자들을 떠올린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나는

아픈 부위를 수정했다

하지만 쉽사리 꺽이지 않던 마음의 각

빤히 보이는 벽은 투명해 틈이 없다

 

마취가 끝난 거대한 잇몸

사랑니를 빼고서 나는

다시는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혀로 더듬는다

나는 빈자리를 혀로 밀어내듯

썩은 이를 입 밖으로 밀어내고 싶다

타워크레인은 닿을 수 없는

높이를 향해 속수쳐 오르고

나는 혀에 걸리는 바람마저 불편하다

 

비가 내리고 크레인이 깎아 내린

수직의 낭떠러지는 끝이 보이지 않아

먼발치가 오히려 가깝다

 

그래 움직여야 할 통증의 순간,

피할 수 없는 발치의 순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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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민중문학상 신인상 발표  (0) 20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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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민중문학상 신인상(시) 심사평

이은봉(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시인)

입력 2012-01-30 13:44:29 l 수정 2012-01-31 10:37:14

인터넷 종합언론 〈민중의 소리〉가 주관한 제1회 ‘민중문학상’ 신인상 시 부문에 응모된 작품은 우선 숫자의 면에서 굉장했다. 여타의 문예지나 신춘문예의 경우와 비교해보더라도 그 심미적 수준이 크게 뒤지지 않았다. 물론 개중에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다루는 기본적인 능력조차 의심이 되는 작품도 없지는 않았다. 이들 작품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예심의 수준에 이른 작품을 고르는 데만 꼬박 하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예심에 적용한 일차적인 기준은 현실성에 기초한 완미성이었다. 아무리 ‘민중문학상’이라고 하더라도 시라고 하는 언어예술형식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특징을 성취하고 있지 못하면 예심에 넣기가 어려웠다. 물론 작품성, 예술성이라는 일차적인 기준이 충족되었다고 하더라도 ‘민중’이라는 가치와 어긋나면 당연히 예심작으로 선정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깊이 철해 있으면서도 좀 더 차원 높은 언어의식, 심미의식이 반영된 작품을 예심의 일차적인 대상으로 선정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민중문학상

민중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 좌측 위부터 정지윤(당선작), 송정섭(우수작), 이병철(우수작), 이인성(우수작)



이런 기준으로 응모작을 읽은 결과 예심에 통과된 작품은 「나는 아픈 부위를 수정했다」외 10편, 「주둥이 붉은 개들의 봄」외 9편, 「패스트푸드」외 9편, 「쪽방 해바라기」외 9편, 「나이의 무게」외 9편, 「연어를 만나다」외 9편, 「가을 사과밭」, 「장생포 촬영기」9편, 「미래는 과거로부터 온다」외 9편으로 대강 압축되었다.

이들 작품을 두고 면밀히 검토한 결과 어렵지 않게 한 사람의 당선작품들과 세 사람의 우수작품들을 선정할 수 있었는데, 정지윤의 시들을 비롯해 이병철, 송하문, 이인성의 시들이 그것이었다. 당선자인 정지윤의 시들 중에서는 「나는 아픈 부위를 수정했다」, 「가벼운 상속」, 「내시경」, 「흔들리는 집」, 「바닥, 같은」, 「오리무중」이 깊이 관심을 끌었다. 우수자인 이병철의 시들 중에는 「맨발로 오는 신부」, 「주둥이 붉은 개들의 봄」, 「향기로운 폭력」, 「붉은 눈」, 「담쟁이와 열기구」가, 송하문의 시들 중에는 「패스트푸드」, 「악어가 걸어간다」, 「빚 권하는 사회」, 「난분분 혁명공약」, 「나는 CEO」가, 이인성의 시들 중에는 「디알로」, 「버려진 꽃」, 「쪽방 해바라기」, 「오후」, 「서울행 민들레」가 두루 주목이 되었다. 결국 장시간 논의 끝에 이들의 예의 작품을 택해 당선작과 우수작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당선자인 정지윤의 시들은 위의 기준 이외에도 오늘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과 관련해 알레고리와 풍자의 기법을 들이미는 솜씨가 무엇보다 돋보였다. 2011년의 노동계를 풍미한 희망버스와 김진숙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연상시키는 시 「나는 아픈 부위를 수정했다」를 비롯해 「가벼운 상속」, 「내시경」등 지금의 현실이 지니고 있는 아픈 부위를 심미적 우회로로 포착하는 솜씨가 도드라지는 것이 그의 시였다.

우수자인 이병철의 시들은 「주둥이 붉은 개들의 봄」, 「담쟁이와 열기구」등에서 볼 수 있듯이 생태의식에 기초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도시 변두리의 소외된 삶이 안고 있는 황폐함에 눈길을 보내고 있어 관심을 끌었고, 송하문의 시들은 「패스트푸드」, 「나는 CEO」 등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각종 ‘먹거리’가 안고 있는 부정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가운데 좀 더 새로운 눈으로 생태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주목이 되었고, 이인성의 시들은 「버려진 꽃」, 「쪽방 해바라기」등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의 생생하게 깨어 있는 현실을 다양한 비유적 장치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어 매력을 발했다.

다름 아닌 이런 연유에서 정지윤의 예의 시들을 당선작으로, 이병철, 송하문, 이인성의 예의 시들을 우수작으로 뽑아 인터넷 종합언론 〈민중의 소리〉가 주관한 제1회 ‘민중문학상’ 신인상 시 부문의 수상작들로 밀기로 했다. 막중한 사명을 띠고 신인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미는 이들 새로운 시인 모두 앞으로 큰 성취가 있기를 진심으로 빈다.

심사위원

예심:황규관(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 시인)
본심:도종환(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시인)
이은봉(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시인,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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