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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복숭아 경전經傳 / 김완수

태초에 꽃이 있었나
휑뎅그렁하던 과수원에
한 우주가 화창하게 팽창하면
꽃들이 먼저 제자리를 찾는다

봄날의 과수원은 연분홍빛 우주
나무마다 생명체가 깃들고
다음 삶을 위해
꽃들이 기꺼이 몸을 던지면
열매들도 행성같이 들어앉는다
여름 한철 우주가 발그레해진다

행성들이 달콤한 지각 변동을 할 때
이따금 유성같이 떨어지는 비
행성과 유성의 사생아인 듯
단내는 신비롭게 우주를 떠돈다

표면에 땀방울이 송송 내돋는 것은
행성마다 태양 주위를 돈다는 증거
또 다음 삶을 위해
순순히 손 놓는 일 있을 때
단내도 따라 낙하지점을 찾는다

복숭아에 새겨진 말씀들을 읽는 시간
우주의 속살을 한입 깨물자
내 기다림이 감탄사로 풀이된다





[최우수상] 도미桃味 / 이은영

맛을 품고 산다
까칠한 볼을 내밀고 역류하는 과정이
매 껍질의 갈피마다 거칠게 잡히고
맛이 고난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한 목차의 시작이라는 걸
뿌리부터 우듬지를 거쳐
목젖까지 넘쳐흘렀다

맛의 수위가 저렇게 붉을까
땅의 젖을 뿜어내고
나이테의 궤도를 밟아 자란 가계의 오랜 사슬
진물의 서두를 넘기면
흘러가는 실체는 고인 것들의 전기前記였다

맛은 거슬러 흘러가는 진화의 과정
혀의 계보들이 짜인 각본처럼 넘실되어도
쓴맛이 신맛으로 다시 단맛으로 윤회한다
체질을 걸러내며 잠식하고
선연한 통증을 비우는 거다
캄캄한 어둠의 뿌리가
환한 햇살의 속삭임에 웃음살 퍼진다

가지에 뻗은 강물을 꺾어보면
맛의 계보가 도드라지고
그제야 과육으로 펼쳐진
질펀한 강물의 본류를 헤아려 본다
어린 신부의 속살처럼 시각보다 촉각이
흠씬 여린 맛이다

투명한 원근에 말간,
기울기의 테두리는 옆구리의 심기
덜컥 미각으로 뜨거운 지라
어거리풍년처럼
너울 과육, 불꽃처럼 물컹거린다.






[우수상] 하늘 경전 / 김진우

푸르스름한 경문을 달콤하게 간직한 복숭아
거적을 덮고 오체투지하는 속내를
이파리 헤치며 듣고 싶다

한 알의 구절을 필사하는 날들
거저 주는 햇살을 받아 적고
쏟아지는 단비를 기록하며
뿌리로 스며드는 어둠을 고백한다

푸르게 단물 드는 줄거리
가지를 붙잡고 있는 새파란 햇병아리들
뿌리가 깊어질수록 내면도 견고해져
맑은 바람 드는 허공에 퐁당
절절한 빛깔로 절이다 보면
설법을 꿀맛처럼 맛볼 수 있다

흔한 수분도 아낄 줄 아는 복사나무 도반들
한낮엔 햇볕으로 거죽을 빚고
밤에는 달빛으로 속살을 채운다

겉장을 덮어도 묻어나는 하늘 맛
볕을 칠할수록 속이 깊어진다
안 보여도 구전으로 전한 진리
발그레 드러난 깨달음이 달다

태초부터 마주 보며 닮아가는 화엄경처럼
천지가 합심하여 빚어가는 경판
시공간을 초월해 무르익은 복숭아는
하늘 맛 제대로 든 하안거에 들었다





[우수상] 복숭아 가계家系 / 최형만
 
언덕길 트럭에서 한 생이 떨어진다
대열에서 이탈한 병사처럼
불안한 자국을 온몸에 새기는 중이다
허공에서 붉은 혈통을 그리다가
바람의 말을 묵언처럼 새기더니
짓무른 얼굴로 바닥을 구른다

실핏줄로 터지는 과육은
단물로 숨 가쁘던 내 처음을 닮았다
볕이 없어도 끓어오르는
무화과 속살처럼
나도 칼금을 긋고 왔다
진구리에 곡선의 시간을 접고서야
복숭아벌레 하나를 낳았다

누대의 기별이 갈비뼈로 들썩일 때마다
둥근 계보를 기록하는 계집아이

움푹한 내력을 쓱쓱 닦더니 한입 베어 문다
꿀볕에 번지는 볼이 불그스레하다
단내 나는 씨앗을 심는 중일까
어린 과즙이 태초의 자세로 배이고
어떤 상처는 다시 일가를 이루고,






[우수상] 흠과欠果 / 박봉철
 
마뜩찮은 평수가 흠 일색이다
나무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깊이 자리한 흠들
멍들고 찍힌 생채기들이 올가미다

서툰 손길로 죄어오는 기울기에
발그레 영글어가던 미색이 짙다
흠이야 이리 조신해도
개킨 상처, 물기 넘치는 진물이 되어간다

시린 눈길에
팔자 미간이 들락거리며
황경 175도, 내 흉측한 품을 시침질 한다

속 결핍缺乏이 아닌 흠은
죄다 운명일지도
무봉無縫의 결이 아니고서야 어딘가
제 모습을 흥건하니
평생 봉인했던 시퍼런 울음
닿은 날만큼 터져나오고

완경完涇을 열망하는
까칠한 껍질에게
쉬 달갑지 않는
된소리를 내며 붉어진다

컥컥, 폭염을 벗어나
헐어도 둥근 맛, 한입 물면 흠뻑 젖는 목젖

쉬이 도원桃源 아래
시큼 달짝, 새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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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황도의 맛 / 최미숙

울음은 실패를 이해할수록 진합니다

새들의 부리에 떨어진 이들과
적과(摘果)를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상자 속에서 둥글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평생 조연을 떠돌다가 침대 속에 누운
반신불수의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흉터는 베어 물린 과육의 독백입니다
메마른 입술이 중심에서 멀어진 때부터
침상에는 환한 복사꽃이 떨어집니다
단물을 빨리고도 살아남은 명랑한 맛
울음의 안쪽은 순간마다 말랑거립니다

과즙 밖은 무너진 선도仙桃의 세계 

맛은 등급의 세계를 거부합니다
흉터는 동족의 슬픔을 알아챌 수 있고
바닥에 엎드린 울음은 제 어깨를 빌려 줍니다
지상은 과즙 밖의 방향대로 움직일 테지만
울음이 질겨질 때 세계는 격동합니다

한 상자의 B급 황도를 집에 들이고
껍질을 벗겨 내면 단물이 멈추지 않는
아버지의 독백을 편들면서
나는 울음의 맛을 먹고 있습니다

뒷모습을 알아갈수록 맛이 깊어집니다





〔우수상〕복숭아 깎는 날 / 소수아

밤마다 엄마는 복숭아 조각을 머금곤 했다
가는 털이 돋은 몸 안에서
매일 복아(腹兒)의 부피가 팽창했기 때문이다

엎지른 계절에 돋은 튼살의 수만큼
그녀는 과육을 잘라내는 연습을 계속했다 
칼에 벗겨진 껍질이 많아질수록
매일 허공에 쪼그라드는 과실의 부피
가슴 속에 두고 온 허물을 꺼내 
여섯 다리로 재단하는 곤충의 영역처럼
집의 내벽은 복숭아의 단면을 닮아갔다

이따금씩 몸의 균형이 흔들리는 날이면
약사가 쥐어준 알약 봉지를 으깨
입술 사이로 그녀는 한나절을 곱씹었다
혓바닥 위 접질린 담홍색, 
무른 언어를 채집하며
거꾸로 매달린 채 잠결 끝으로 도망친 
자신의 두 발을 잡아 왔다
배를 비집고 나오려는 생명이 움칠댈수록
이불보로 둥글게 말린 몸통은
성장의 역사를 더듬이에 묶고
쉴 새 없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지구 아래로 침몰하는 오늘의 온도가
내일의 잠으로 복사될 즈음
앙글거리는 향기에 엄마는 날숨을 뱉었다
부엌에 놓인 복숭아 바구니
안에 익숙한 얼굴이 올려졌다

입 안 가득 베어 물은 이야기가 저녁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우수상〕복숭아語 / 서원일

설익은 복숭아 속으로 들어가
가만히 귀 기울이면
부름켜를 오르느라 흐트러진 철자들로 인해
어린 가지들이 부르르 몸 떠는 소리를 듣겠지.
복사꽃이 일러주는 간지러운 문장을
재잘거리는 단어들이
복, 복 따라 소리를 내다가
한 철이 지나는 동안 연한 언어만 듣겠지.
연하다는 것은 포용이라고
초여름 햇살이 포옹하는 소리를 듣겠지.
첫 페이지, 첫 문장이 늘 어려웠어.
자칫 줄거리를 들킬까봐
좁은 행간에 흔들리는 함축을 키우느라
씨방을 키우느라 
씨는 단단하여서 합장주(合掌珠)로 소망을 걷는 소리를 듣겠지.
개요는 가벼운 솜털처럼 일어나
한여름의 뜨거운 클라이맥스를 전개하고 있을 때
하나씩 떨구는 이유들
방금 지나간 소나기처럼 이유들에 젖고 나면
다는 해답을 모른다 해도 각각의 이유들이 함축되어 다가오는
마지막 문장이 떠오를 거야.

그 마지막 문장을 버티고 서 있는 복숭아 한 그루
이제야 너의 제목이 보여
세상을 향해 그토록 해보고 싶다는 너의 언어.

기다림.





〔우수상〕낙과 / 문정안

멍든 것들은 아프다
어제도 당신을 생각했다
아직 보드라운 털을 가진 존재이기를 바랐다
내가, 그대에게
놓치고야 그리운 사람으로 남은 우리가
짓무른 복숭아로 운다
달콤한 눈물은 끈적하게 집요하게 쫓는데
뚜렷한 향기만 지독했다
낙과로 데굴데굴 굴러버린 우리가
아직 나무였던 때를 기억한다
같은 것을 심던 순간을 추억한다
잎보다도 먼저 꽃으로 피어
붉게 따뜻하게 그리하여 뜨거웠던 시간
그 속에서 꽃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웠다
초록만 남은 순간마저 싱그러울 수 있었다
빈자리가 공허하다 생각했던 우리가
작은 열매로 익어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눈물이 났다
함께 있어도 늘 궁금했던 당신이
솜털을 내보였을 때
뜨거운 손들에 멍이 들까 차마 만져보지 못해
그냥 웃어보았다. 설레었다
연약한 것들은 예쁘다
당신과 내가 예뻤다
예뻐서 오래갈 수 없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벌레조차 먹지 못한 마음도
소나기에 떨어질 수 있음을 깨닫는 동안
바닥을 구르며 동그랗게 울고 있다
오늘도 당신을 생각한다
아직도 달콤한 나를 주워주기를
멍들이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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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복숭아의 시간 / 유혜영

연한 것들은
껍질로 벗겨지는 시간을 나긋나긋 받아들인다

거친 숨을 헐떡이며 쫓아오는 산그늘도
집나간 아버지의 흉흉한 소문들도
어머니가 감싸 안으면
까라져 버린 거품인양 사라졌다

어느 쪽으로 돌아누워도 배기지 않는
아이 업은 등처럼 말랑거리던 어머니
복숭아벌레처럼 들어앉아 단물을 쪽쪽 빨던 나
어깃장이 꽃뱀같이 똬리를 트는 날에는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나의 안녕이
낙과의 꿈을 키우며 독한 생각 하나를 삼켰다

아, 그때는 왜
과육처럼 차오르는 아득함이 그렇게 많았는지

뭉클뭉클
내안 깊은 곳에 어머니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어머니보다 늙은 복숭아나무에게서 듣는다

짓물러터진 가계를 단단하게 품은 씨 하나가
끈질긴 힘줄로 나를 끌어당겼다는 것을
그게 바로 나의 깔끄러움을 뒤집어쓴
어머니였다는 것을


 

〔최우수상〕시는 한 그루 복숭아나무 1) / 정수경

같은 자리에서 발을 자주 접질렸다
복숭아나무 아래였던 것 같다
발목은 부어오르고

말을 하듯이 쓰고 싶은데
복숭아뼈처럼
문장은 같은 곳에서 자주 부어올랐다

전정 적화 적과를 거쳐야
복숭아는 실해진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솎아 내기에 서투른

부어 오른 발목은 봉지 속에서 여물어 가고
햇살을 먹고

완성되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가 아름다운가

떨궈내지 못하는 한 그루 복숭아나무는
위태롭게 여름날을 보내고
습작을 하고

많이 흔들릴수록 맛은 깊어지고
많이 지울수록 문장은 끈적였다

복숭아는 단물을 머금었다 나는 완성되지 못했다

봉지를 따는 날 아름다운 발목을 봤다
어색한 시는 딱 한번 접질렸다
아마도 복숭아나무 아래였던 것 같다

1)시는 한그루 나무 : 김혜순의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용

 



〔우수상〕황도가 빛나는 밤 / 이가인

하늘의 채도가 낮아진 저녁
방 안에 회색 물감을 끼얹은 듯
시야가 흐려진다 약사는 야맹증 약을 주었고
엄마는 황도 하나를 내밀었다
어둠 속 뭉툭한 달 하나가 빛난다
손안에 쥐면 문드러질 듯
여린 살결의 달을 입안에 넣어보는 밤
엄마의 온도가 혀끝에서 뭉그러지며
노을 진 하늘색으로 녹아든다

밤마다 나는 여러 겹의 눈꺼풀을 가진다
나방처럼 불빛을 찾아 헤매지만
보이지 않는 빛, 손에 밴 냄새를 쫓는다
접시 위 여러 겹으로 쌓인 껍질은
엄마가 말 대신 두고 간 여러 개의 혀
하나의 혓바닥으로 빛을 발음하기엔 역부족,
껍질을 씹어본다 침과 섞인 황도는
미지근한 온도로 입안을 어루만지고
부풀어 오른 뺨이 복숭아의 살결을 닮아가는 중이다

입안의 채도를 가늠해본다
엄마의 온기가 느껴지는 복숭아 향은
갈 곳 잃은 혀의 중심을 찾는 황도면*
눈을 뜨면 여전히 우주 한가운데에 선 듯
태양의 궤도를 알려주는 황도와
보이지 않는 혀끝의 온도로
빛을 느끼게 하는 엄마의 손길이 있다
뜨거운 목젖 너머의 우주로
해와 달이 넘어가는 노란빛의 밤
방 안의 채도가 올라가고 있다
* 천구(天球)상의 태양의 궤도.

 



〔우수상〕복숭아 / 조지원

이에 금이 갔다, 무언가를 베어물면 왈칵, 눈물이 나던 가을이었다

가난을 잘 아는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놀았다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던 세상,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떨어져나간 아픔이 보였다 반쯤 마른 나뭇잎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 복숭아의 풋내처럼 푸르던 나의 침묵, 나무에 매달려있던 복숭아 하나를 땄다 채 다 익지 못한 슬픔이 손 안에 있었다

흔들리던 이가 빠지면 새가 날아온다고 믿었다 소란스럽던 새의 날갯짓보다, 새가 내려앉을 땅이 더 무서울 때가 있었다 가끔, 장판을 손톱으로 뜯으면 썩은 물이 올라왔다 지상도, 지하도 아닌 곳에서 우리는 빈손으로 창문을 두드렸다, 출구가 없는 사람들,

책상 위에 올려둔 복숭아에서 애벌레가 기어나왔다 단단한 벽을 갉아먹으면, 우리도 빛으로 나갈 수 있을까 구름 사이에 끼어있던 낮달 해도 아니고 달도 아니어서 갈 곳 잃은 푸른 빛 하나가 손바닥을 뒤덮고

크게 숨을 들이쉬면 어디선가 풋내가 났다 가난은 손에 쥐고 있을수록 그 향이 더 진하게 스며드는 것이어서, 손에서는 늘 복숭아 냄새가 났다 부러진 이빨 하나 쯤 가지고 사는 일이 부끄럽지 않을 때

베어 물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우수상〕여름, 도원桃園의 밤 / 김형미

두 뺨에서 불그스레 돋아나던 맹세는
복사꽃 지자 뿔뿔이 흩어졌다
허방을 짚듯, 봄이 되면
꽃물 번지는 산등성이 도원을 몇 번이고 찾았으나
나무는 그늘만 키우고 있었다
봄바람에 그댈 잃고 난 후
꽃이 피면 꽃문을 열고 들어가 묻곤 했다
저버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하여
대답 대신 능선 따라 고요만이 부풀어 올랐다
눈동자에 고인 슬픔이 달빛에 이우는 밤
세월에 씻긴 환부는 차츰 희미해졌지만
추억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는다
허공의 하중을 견디는 일은 남은 자의 몫이었다
당신의 향기가 고인 한 덩이 별빛의 무게
모두가 떠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이
산 무릎에 기대어 기운 너머를 그릴 때에도
땅위에서 뭇별을 키우는 복숭아
그 쓸쓸하고 달콤한 맛을 한 입 베어 물면
상처 난 마음 기스락까지
하르르하르르 별빛 쏟아지는
여름, 도원의 밤이 천년의 꿈처럼 깊어간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 28편(이름 없이 제목만 있는 작품)을 꼼꼼히 탐독했다. 모두 나름의 발화를 통해 시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복숭아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여 대상과 풍경을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놀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작품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았다. 1차적으로 복숭아와 관련된 단어와 이미지를 슬쩍 끼워 넣기만 한 작품을 제외시켰다. 예컨대 ‘복숭아’란 시어를 지우고 ‘자두’나 ‘사과’를 넣어도 별 의미 변화가 없거나 시의 맛이 그대로인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로 시적 상상이나 의인화가 작위적인 경우 제외시켰다. 상상이 단순히 동화적이거나 이야기성에 무게를 두고 펼쳐져서 피상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 시적 상상 자체에 비중을 두지 말고, 울림과 내밀함을 향해 상상이 움직여서 스며들게 해야 함을 기억하기 바란다.
세 번째로 설명적 진술을 길게 늘어놓는 경우 제외시켰다. 설명적 진술들은 단순히 상황 전달에만 급급해서 ‘진술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불필요한 진술은 읽는 사람을 따분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네 번째로 과거 회상식 구조를 도식적으로 드러낸 시들을 제외시켰다. 복숭아에 대한 기억이 실감나게 다가와야 하는데, 수필적 발상으로 애절한 사연을 쭉 나열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다섯 번째로 식상한 묘사나 과도한 표현으로 작품이 가진 지배적 정서를 어색하게 한 경우 제외시켰다. 익숙한 표현은 싱싱하지 못한 과일과 같고, 과도한 표현은 맛만 잔뜩 부풀린 과일과 같다. 묘사보다 중요한 것은 시적 정황에 꼭 맞는 메시지를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감상에 의존한 작품과 시적 사유가 겉도는 작품을 제외시켰다. 대상이 가진 겉의 속성과 더불어 안쪽의 속성을 내밀하게 읽어내지 못한 작품은 표피적인 슬픔, 표피적인 서러움, 표피적인 그리움 등과 같은 가벼운 느낌만을 전해준다.
최종적으로 남겨진 작품은 「복숭아의 시간」, 「시는 한 그루 복숭아나무」, 「황도가 빛나는 밤」 세 편이었다. 이 세 편은 모두 위에서 지적한 단점을 극복하여, 자신 만의 목소리로 제재인 복숭아를 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고심과 고심 끝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1등, 2등, 3등을 가려냈다.
최우수상을 한 「시는 한 그루 복숭아나무」는 복숭아의 속성을 시창작의 과정 속에 녹여내는 솜씨가 탁월했다. 발상도 다른 작품에서 보지 못한 것이어서 신선했다. 그런데 기성 시인의 작품에서 제목을 인용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유명한 시인의 작품에 기대지 말고 자신 만의 직관으로 제목을 썼더라면 이 작품을 1등으로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쉬움과 함께 어렵게 응모작을 내려놓았다.
우수상을 한 「황도가 빛나는 밤」은 색채이미지를 활용해 내면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연이 산만했고 작위적이었다. 채도 이미지 하나로 집약되게 하면서 마무리 하면 좋았을 텐데, 의지적으로 많은 이미지를 한꺼번에 쏟아 부어서 오히려 ‘울림’을 주지 못했다. 작품의 스케일이 커보이게 하려고 우주적 이미지를 끌어온 것이 정서를 반감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종 대상으로 선정된 「복숭아의 시간」은 ‘복숭아 = 어머니’라는 익숙한 패턴을 보여주는 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가진 아가페적 사랑을 미학적 완결성으로 빼어나게 극복하고 있어서 든든했다. 복숭아의 가진 특징을 구심력으로 하여 정서를 하나의 지점으로 끌어당기는 솜씨가 범상치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인식이 타성에 빠지지 않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짓물러터진 가계를 단단하게 품은 씨 하나가/ 끈질긴 힘줄로 나를 끌어당겼다는 것을/ 그게 바로 나의 깔끄러움을 뒤집어쓴/ 어머니였다는 것을”과 같은 표현을 통해 내밀한 본질 탐구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울러 세 편의 수상작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시적 진정성이 물씬 묻어난 「복숭아」 「여름, 도원桃園의 밤」을 우수상에 올렸으며, 등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화관을 쓰고 여행을 한다」의 작품에도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음을 밝힌다. 그리고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다음번엔 위에서 제시한 여섯 가지의 감점 요인을 극복하여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길 바란다.

< 하린 시인 약력>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졸업.
2008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이 있고,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와 시창작 안내서 시클이 있음.
청마문학상 신인상(2011)과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2015), 한국해양문학상 대상(2016)을 수상.
중앙대, 한경대, 광주대, 협성대, 서울시민대, 열린시학아카데미, 고양예고 등에서 글쓰기 및 시창작 강의를 함.
현재 계간 열린시학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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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 〕복숭아 / 전선용

 

달이 몰락한 골목에서 떨어진 유년을 줍는다
술 취한 사내가 더위에 끌려가는 언덕배기
복숭아를 담은 봉지가 비틀거린다
보름달을 따왔노라고 소리치며 귀가한 아버지
물컹한 복숭아를 잠든 내 입에 물리곤
까칠한 턱수염을 볼에 비볐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얼굴만큼 불그레한 복숭아
복숭아 과육이 배여 나온 진득한 기억은
머릿속에 포스트잇처럼 붙었다가
여름이면 밤하늘을 물끄러미 보게 했다
그 해 별은 왜 그리 반짝이던지,
별이란 별은 죄다 당신별이라 했다
별을 유난히 좋아해서 복숭 씨 같은 별을 삼키고
울대에서 키우길 서너 달,
아버지는 북쪽 하늘에 점지해 둔 별자리로 갔다
복숭아 밭뙈기 몇 마지기 살 돈을
왜 병원에 주느냐고 버틴 건 순전히 나 때문
늦은 귀가도 별을 사랑한 것도 다 자식을 위해서였다
학명에도 없는 복숭아 별자리가 내 기억 속에 들어서고
아버지와 나만 아는 밤하늘에
복숭아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제 11회 복숭아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박영우 (시인,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심사평에 앞서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하는 복숭아문학상 심사를 맞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또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문학상 운영과 지역문학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오신 청미문학회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투고한 작품들은 저마다 사연을 담은 나름대로 수준을 갖춘 의미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심사를 위해 몇 가지 기준을 마련하였다. 첫째로, 얼마나 시적 요소들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예를 들면 운율, 이미지, 신선한 표현 등이다. 둘째로,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공감력 있게 풀어내고 있는가. 셋째,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작품 속에 얼마나 잘 녹여내고 있는가. 넷째, 앞의 요소들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한 편의 시로 형상화시키고 있는가 등이었다.
이러한 기준에 맞춰 최종심에 다섯 편의 작품을 선정하였다. <복숭아>11, <복숭아의 꿈> 19, <무른 복숭아> 21, <입, 덫> 18, <장날> 1 이 그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복숭아>와 <복숭아의 꿈>이 대상을 두고 겨루게 되었다. 두 작품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고 있는 수작이었다. 먼저 <복숭아>는 일단 ‘복숭아’라는 시적 대상을 시적화자인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별’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면서 이끌어가는 시상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그에 비해 <복숭아의 꿈>은 시적 대상에 대한 참신한 착상과 표현이 시선을 끌게 하였다. 특히 ‘복숭아’의 이미지를 화자의 내면 깊이 있게 끌어들여 ‘당신’에게 다가가고자하는 심리를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고심 끝에 <복숭아>를 대상으로 결정하였다. 그 이유는 시적 대상인 ‘복숭아’의 이미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시적 표현이나 구성 면에서도 완성도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들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작들이었다. 특히 <입, 덫>은 참신한 발상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제재의 시적 형상화 면에서 아쉬운 작품이었다. <장날>도 사연을 제재의 특성과 잘 연결시켜 전개하고 있는 점은 좋았으나 너무 이야기가 길게 풀어진 느낌이었다. 시적 응축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무른 복숭아>도 내용이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복숭아’와 ‘아버지’를 연결시켜 가족을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표현해주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으나, 좀 더 세부적이고 자연스런 시적 흐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상자들의 입상을 축하드리며 더 좋은 작품으로 문단에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복숭아 문학상 당선소감문>

 

더위가 그렇게 기승을 부리더니 소나기 한줄금으로 한기를 느끼는 아침,
복숭아 문학상 당선 소식을 접했다,
여름 내내 무거웠던 골방이 가벼워지는 기분
쪽문을 열고 성큼 다가온 가을을 맞는다.
그저 감사한 마음 뿐,
우리시 임보, 홍해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포엠바움 정 찬을 포함한
정형무, 조홍래, 그리고 일일이 호명하지 못한 문우들께도 고마운 마음이다.
더불어 졸시를 대상에 올려주신 심사위원께도 머리를 읊조려 경의를 표한다.
문학에 목이 말라 허덕이는 내게 단비 같은 이 수상은 시 농사의 밑거름이 될 터,
더 아름다운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이 더운 여름을 잘 견뎌준 어머니께도 감사드리며
물심양면으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모든 지인들과 기쁨을 같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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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권상진 외

 

[대상]
별자리 / 권상진


 

1
고향집 어귀 삐뚜름한 복숭아밭에   
붉고 선명한 별자리가 내려앉았다
밤하늘의 한 끝을 힘껏 당겨서
대문 앞 삽자루에 묶어 놓았는지
별들의 간격 사이에 향기가 팽팽하다

 

실직 이후 섭섭게 팔려간 저 밭뙈기가
가난한 식구들의 몇 계절을 일구는 동안
아버지는 반듯한 밭 하나를 가슴에 품었다

 

'복숭아나무를 심을란다, 어메가 참 좋아하셨지'

 

흙도 한 줌 없는 마음밭에는 올해도
헛꽃만 피었다 지고 있었다

 

2
모깃불 연기가 구수한 밤이었다
할머니는 평상에 누워 거문고자리 돌고래자리를
손가락 그림으로 그려주었고 할머니 옆구리에
기대앉은 나는 소쿠리 가득한 복숭아를 꺼내
공중에 그려놓은 별자리를 본뜨는 여름이었다

 

아들 보다 자주 본다는 읍내 의사는
할머니가 복숭아밭에서 키운 것은 별이라 했다
땅에서 하늘을 경작하는 일을 치매 농법이라 하였고
노구에서는 이제 별의 향기가 난다 하였다

 

할머니의 거처를 복숭아밭으로 옮기는 날
나는 하늘에 별자리 하나를 새로 그려 넣었고
아버지는 밭 가장자리에 묏자리를 그려 넣었다
빚이 반, 밭주인 인정이 반인 좁은 거처에   
옮겨온 별의 향기가 파다하다

 

'올해는 복숭아가 풍년인갑다'
   
아버지 목소리가 환한 별자리를 헤치며
우주의 귀퉁이를 돌아 나오고 있었다

 

 

 


[최우수상]

입덧 / 제인자

 


내가 눈이 작은 이유는
복숭아를 못 먹어서라고
한 알만 먹었어도 당신을 닮았을 거라고
나만 보면 찾으시네 잃어버린 복숭아
엄마의 과원에 탯줄 매달고 심장소리 전송할 때
수북이 쌓아 올린 과일가게를 돌며
탐스런 복숭아 곁눈질로 베물고 또 베물고
향기로운 과육 한입 군침 삼키고 또 삼키고
부끄럼 타는 열아홉 새댁의 태기
참을성이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하네
메슥메슥 게워 내던 한여름의 뒤꼍
매미는 얼마나 자지러지게 울던지...
흐드러져 분홍물 듣던 봉선화는 어떻고...
평생 되풀이하는 울 엄마는 짱짱한 아흔
햇사레복숭아 상자 앞에서 주름마다 웃다가
서러움 북받쳐 입맛이 쓰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속설을 믿네
복숭아나무 같은 엄마의 자궁
그 푸근한 방으로 숨어들면
정말 눈이 커질까 엄마가 복숭아를 드시면
나는 믿을 수 없는 속설을 믿고
눈이 커다란 아이를 낳았네
농익은 황도 털옷을 벗기자 꼭지에 새겨진
상형문자, 어여쁜 손녀의 배꼽!
엄마 두 볼 가득 단물 고이네
꽃구경 가요 엄마 복사꽃 피면

 

 

 

 

[우수상]

열여덟, 복숭아에게 / 김민정

 


운동장 한가운데 찡그린 얼굴이
쨍한 햇빛에 반짝거리는 모래 알갱이들보다 눈부시네
두근거리는 내 심장의 심박수를 양분 삼아서
그렇게 곧게 자라나고 있는 것일까
마알간 네 얼굴에 온몸이 저려오네
우리 집 마당에도 너를 닮은 아이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가지에 가득 앉아 있어
가지의 지휘를 따라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는 구름처럼
나는 너의 말 한 마디에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유영하며 둥둥 떠다니고
내 마음 속 정원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꽃밭이 생겼어
도화를 따서 꽃잎점을 치는 것이 내 일과야
너도 날 좋아한다 안 한다 좋아한다 안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밤마다 달님을 가리고 익숙한 얼굴이 고개를 드네
매일 밤, 내 방 창문으로 만월이 찾아오고 있어

 

 

 

 

[우수상]

은퇴 / 박혜은

 

 

수십 년간 일하던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듯
엊그제 아버지는 복숭아 과수원을 뒤엎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맺힌 굵직한 매듭의 힘으로
복숭아 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부러뜨리다
마침내는 자식 같던 당신의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고야 만 아버지
밤새 일하고 지쳐 잠든 당신의 손등을 쓸어본다
새벽바람을 맞은 듯 오소소 일어난 살비듬
바스락거리는 그 거친 감촉을 더듬어 본다
언제 한 번 복숭아 과육처럼 촉촉했던 적 있었나
복숭아 열매를 감싼 포장지처럼 버석거릴 뿐
그렇게 메말라 있던 당신의 손이
내 철없던 시절 기억의 창을 열어젖히면
기다렸다는 듯 복숭아 향기가 줄달음질 친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잰걸음으로 굽이 길을 돌아
복사꽃처럼 달아오른 뺨을 식히며
시골집 앞마당에 들어서면
가지 끝 조롱조롱 매달린 복숭아를 따주던 당신
처녀의 뺨처럼 물오른 과육을 사이좋게 베어 물 때,
입 안 가득 퍼지던 그 맛이 아직도 달큰한데
이제 당신의 기억은 미각을 잃고
어설프게 추억을 더듬는 둥근 눈은
복숭아나무가 심겨져 있던 구덩이처럼
움푹 팬 채, 메마른 울음을 울고 있다

 

 

 

 

[우수상]

복사뼈 / 고은강

 

 

고속버스가 복사밭을 지난다
복숭아 냄새가 창틈으로 들어오다가
잔상처럼 흩어진다
그새 복숭아 향 유년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어릴 적 나무 사이로 숨고 뛰놀던 복사밭 과수원길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 나의 다리에는
잘 익은 복숭아 한 알이 맺혔다
퉁퉁 부어오른 복사뼈를 보며 울던 나의 유년은
입 속에 달콤한 과일만 넣어주면 조용해졌고
고요를 따라 붓기가 빠져갔다
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선
엄마 등에 업혀서 지나오던 과수원 길에는
내 주먹보다도 커다란 복숭아를 달고 있는 나무들
묵묵히 수십 개의 복숭아를 견디는 저 관절들이
얼마나 아플지 생각해줄 정신도 없이
복숭아 향에 취해 눈물을 과즙삼아 머금어야 했다
잊고 있던 유년을 다시 맡게 되었을 때
얄궂은 복사뼈는 어느새 부었던 만큼 자라 있었고
버스가 과수원을 다 지나갈 무렵
그리운 나의 복사뼈가 간지러웠다

 

 

 

 

 

 

 

 

 

제10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 박영우 (시인,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올해로 복숭아문학상이 10년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우수한 작품과 신인 발굴을 위해 노력해 오신 박승열 청미문학회장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10년 세월만큼이나 응모 작품의 수준도 해마다 더욱 새로워지고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 중 권상진의 <별자리>, 제인자의 <입덧>, 김민정의 <열여덟, 복숭아에게>, 고은강의 <복사뼈>, 박혜은의 <은퇴>를 최종심에 올리게 되었다. 그 심사 기준은 첫째,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시적 특성에 맞게 풀어내고 있는가? 둘째, 표현이나 시상 전개가 제재의 특성이나 주제의식에 맞게 신선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가? 셋째, 얼마나 독자들에게 공감하고 울림을 주고 있는가?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복숭아’라는 제재와 잘 조화시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작품마다 나름대로의 완성도가 있었으나, 너무 자신의 이야기에 치우쳐 운율이나 형식 등이 너무 산문적으로 흘러버리거나, 표현의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한 작품들은 선외로 하였다.


    하지만 최종심에 오른 다섯 편의 작품들은 앞서 제시한 심사 기준들을 충족시키는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권상진의 <별자리>는 특별한 시적 기교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 경험을 제재와 연결시키며 시적 형식을 살리면서 서사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큰 공감을 주었다. 특히 ‘할머니’, ‘아버지’ 등 가족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고향’, ‘복숭아’라는 제재를 통해 ‘별자리’로 연결시켜나가는 우주적이고 자연적인 상상력이 매우 신선하였다.


제인자의 <입덧>도 제재가 갖는 특성을 ‘입덧’이라는 이미지와 연결시켜 시상을 전개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고 마지막 부분에서 ‘손녀의 배꼽’으로 연결되는 상상력이 신선했다. 김민정의 <열여덟, 복숭아에게>는 ‘복숭아’의 특성을 시적화자의 내면과 연결시켜 이미지화시키려는 의도는 좋았으나 좀 더 내밀한 심리나 신선한 표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고은강의 <복사뼈>는 여행 중 우연히 맡게 된 복숭아의 향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년 시절의 추억을 어머니의 진한 사랑과 복숭아라는 제재의 특성을 잘 연결시켜 이미지화시킨 점이 인상적이었다. 박혜은의 <은퇴>도 공감력을 주는 좋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시의 전반적인 이미지가 너무 우울하고 무거운 느낌이어서 제재의 특성을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어보였다.


    입상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길 바란다.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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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성장기 / 이숙희

가지마다 풍경들이 하나둘씩 매달려
계절의 나무에선 땡그랑땡그랑 소리가 난다
어린 햇귀를 발라 발갛게 익어가는 과실들
아삭 베어 문 입속으로 스며드는 달큼한 기억
녀석은 아까부터 거울 앞에서 씨름 중이다
몇 년 전부터 하나 둘씩 뽑아내던 턱수염이
제법 많아져 면도를 하고 있는 게다
여드름을 피해 요리조리 깎아 보지만
서툰 면도날이 팽팽한 감정을 건드렸는지
꽃잎 같은 살갗위로 핏방울이 뚝 떨어졌다
선홍빛 복사꽃에선 어린 별들이 쏟아졌다
한숨의 무게가 수풀을 짓누르던 어느 해,
생사경을 헤매다 낙과의 순간을 이겨내고
햇사레를 꿈꾸며 열매를 키우던 복숭아나무
햇살의 젖동냥을 마친 여린 잎들 다부숙한데
면도가 끝나고 화장실을 나오는 아들의 얼굴에
언제 달아놓았는지 복숭아 한 알 턱 밑에 달려있다
흠집 난 복숭아가 멋쩍게 웃고 있다
황도의 달콤한 기운이 방안 가득 차오른다.
        


[최우수상] 꿈결의 문을 열면 / 서종은

웅크려 잠이 든 엄마의 꿈결엔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네
설 잠 속에 좀 걷다보면 나오는 오래된 나무
엄마는 밤마다
복숭아 향긋한 내음이 난다던
할머니를 만나고 오네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육이 바람을 감싸고
검은 머리카락은 살랑 춤을 추네

며칠째 초승달만 뜨던 여름 밤
엄마의 눈꺼풀에도 달무리가 드리웠네
그간 시계바늘도 지쳐 업을 놓아버린
무더운 날들이 얼마나 지난 걸까
곧게 난 속눈썹 옆으로
엄마의 밤이 여러 갈래로 뿌리를 내렸네
눈 꼭 감았다 뜨면 겨울이 온다던 엄마는
여름 햇살을 치맛자락에 모아
한가득 자신의 주름 사이에 켜켜이 쌓아두고
엄마의 향기가 그대로 밴 꽃봉오리에
호호 햇살을 불어주었네

여름이 무르도록 익어
여기 저기 살갗이 패인 보름달이 드리우고
바짝 마른 가지 그 많던 꽃들은
탐스럽게 발그레 볼을 붉히네
엄마의 긴 열대야 처럼
옹이로 남은 나의 시간은
엄마나무 그림자를 따라
뽀얀 껍데기에 같은 길을 새기네

긴 여름밤을 맞으며
엄마의 밤처럼
내 꿈결의 문을 열 준비를 하네



[우수상] 천년의 꿈 / 임미리

붉은 야산 개간하여 과수원 주인을 꿈꾸었다.
연분홍 꽃잎, 나비처럼 휘날리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어린 복숭아나무 자식인 양 소중하게 다루었다.
부풀어 오르는 꿈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쳐도
과수원이란 이름을 얻으면 주인이 되는 줄 알았다.
나무에 종처럼 매여 더부살이 같이 살아온 긴 세월
나무는 이제 주인을 닮아 옹이진 고목이 되었다.
폐원을 하면 몇 푼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으니
베어버리자고 설득하는 자식의 눈빛 속
붉은 욕심 뱀의 혀처럼 꿈틀거렸을까.
비록 고목이 되었지만 하나의 생명체란다.
붉은 꽃잎의 향기 실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날아가
인연의 고리처럼 연결된 복숭아들
자식들 밥 굶기지 않고 오늘을 살게 해 주었단다.
은인 같은 생명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늙은 나무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면서
‘천년을 빌려준다면’*을 주술처럼 흥얼거린다.
아버지는 그 천년을 다시 벌어도
나무에 매달려 아낌없이 살겠다는 듯 웃는다.
당신의 소중한 마음 나무는 읽었을까.
올봄 복사꽃 수줍은 듯 만발하더니
연분홍 복숭아 나뭇가지에서 주렁주렁하다.

* 박진석 노래 제목


[우수상] 복숭아나무 산부인과 / 곽남경

거미줄과 햇살을 엮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는 오후
드디어 완성된 연둣빛 배냇저고리

태아를 품은 복숭아의 자궁들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복숭아나무는 임신 중

미지근한 바람이 왔다갔다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는 어느 날
실눈 뜬 초승달이
자리를 지킨다.
덩달아 잠을 못 잔 풀밭이
하품하는 새벽녘

복숭아나무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울음소리가 연달아 터진다.

매일 밤 모든 나뭇가지를 오므리고 기도하던
복숭아나무 부부가 드디어
털옷을 입은 열 쌍둥이를 낳았다.

청아한 햇빛이 땅을 밝게 물들이는 이른 아침
초여름을 알리는 물소리가 반짝거린다.


[우수상] 달빛 시집 / 김용신

쭉쭉 뻗어나가는 생각의 줄기에는
부드러운 종이로 운율을 뒤집는
바스락 울림이 있습니다.

느릿느릿 시간은 더디게 가지만
한 장 한 장 책장을 빠르게 넘깁니다.
바스락바스락.
둥그럽게 꺽이는 종이
그 속엔
아직 물이 오르지 않는 푸른 문맥이 있습니다.

솜털의 미세한 숨결까지도
생생하게 붙들고 있는 바스락거림은
공기 빠진 타이어처럼 정지되어 있는 흐름을
팽팽하게 잡아당깁니다.

딱딱한 문맥이        
튀밥처럼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상상의 꼭지점을
갉아먹는 벌레는 저 아래로 추락시키는가 하면
최고의 발화점을 새가 쪼아 부패시키기도 합니다.        

무언정진의 잠시 침묵의 방으로 들어가
햇살과 빗물 그리고 강한 바람으로 단련되어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찌익익.
마침내 바이올린의 첫 음을 뚫고
뚝, 푸른 봉인이 개봉되는 환희의 순간입니다.        
그 속엔
밝은 빛의 둥우리
어머니의 사랑이
달빛으로 출렁 가득 고여 있습니다.

껍질이 사락사락 벗겨지는
무른 힘이 혀끝에 감기며
달콤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복숭아나무 한 그루에서
달빛 시집이 좌르르 쏟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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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복숭아의 꿈 / 하채연
 
어머니의 구부린 무릎이 복숭아를 닮아간다
풋내 나던 세월은 하얀 껍질 속에서 익고
낡아 해진 치마폭 사이로 비치는 살결은
여생을 다하느라 과도가 되어 까슬해진다
매끈한 가지를 엮는 은빛 주름 밑으로
흰 무릎에 곳곳이 파고든 숙성의 흔적
여름의 기억이 시린 관절을 따라 번지고 있다
신문지가 싸고도는 활자들의 달콤한 세상을
따스한 볕으로 무르익게 한 어머니
잎사귀가 바람을 접는 한밤에는
잠시 복숭아를 달무리에 담아두는데
밤이 계절만큼이나 긴 이불을 걷어내고
꿀샘를 펼쳐 열매가 말랑하게 익어간다
온종일 땡볕에 담금질한 속살을 식히며
복숭아를 따던 태몽을 되새기는 시간
과육을 치마폭에 주워 담다 놓치고
무른 무릎은 중력을 멍으로 머금지만
주홍으로 빛나는 과즙이 온 밭에 가득하다
나는 오래전 어머니가 따온 복숭아
밤마다 행성처럼 열리는 열매를 골라
한 입 베어 문 꿈이 오늘도 태어나고 있다




[최우수상] 넌 나의 복숭아나무 / 한영민
  
바다에 별똥별이 떨어지듯이
네가 퐁-하고 뱉은 씨 하나가
푸른 물결 일렁이며 나에게로 떨어졌지.
그리곤 단단한 심장 속에 자리 잡았어.
그러더니 어떤 날은
자꾸만 간지럼 태우는 너의 노래 소리에
내 맘 가득히 메아리로 퍼지더니
너로 촉촉이 스며드는 심장에
새싹 하나가 돋아나더라.
사월의 봄 향기에 취했는지 네게 취했는지
널 바라보기만 해도 배시시 웃음 지었고,
싱그러운 여름을 닮은 너의 미소 때문인지
파도가 몰아치듯 두근거렸지.
너의 뿌리가 내 심장을 더욱 움켜잡을수록
그렇게 걷잡을 수 없게
가지가 자라났고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더라.
너를 향한 꽃들이 무수히 피었고,
내 붉은 마음을 닮은 수줍은 열매가 맺혔지.
온 몸 가득 단내 풍기는 내 마음이
그렇게 너에게로 닿기를
내 스무 살 심장에 자라난
복숭아나무 한그루.
베고 싶어도 베어낼 수 없는
깊은 내 첫사랑.



 [우수상] 복사꽃 그녀 / 김수진
 
봄이 피운 복사 향에 밤잠을 설칠 때가 있다
전화가 불통이던 허구헌 날,
누군가는 밤을 껴안고 잠들기도 했다
동네 사내들의 달콤한 말에
황급히 손으로 두 뺨을 가리던 그녀는, 베트남 여자이다

종종걸음으로 나이 많은 남편의 그림자를 뒤따른 날엔
그녀의 뒤꿈치가 붉게도 갈라터졌다
웃자란 꽃잎들이 모국어로 모여 울던 날,
그녀가 도망쳐 나온 자리에는
복사나무 몇 그루가 환하게 출렁거렸다
배곯은 바람에 엮여 온 부모님 목소리가
와락 쏟아져 내린다, 나뒹군다

여자는 말없이 능소화빛 하늘을 바라본다
언제부터 여자는 말수가 줄어든 것일까
하루 한 끼의 느슨한 시간은 어쩌자고 이렇게 긴지,
위태롭게 흔들리던 여자의 연애담이 폭삭 주저앉는다

한 줌 고요가 비좁은 밤을 둘러싼다
비칠비칠, 여자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복사향이 묻어난다
여자의 하얀 살갗이 분홍빛으로 부풀어 오른다
여자의 꿈자리에 별이 한 송이씩 피어날 것만 같다



[우수상] 복숭아의 마지막 생육점 / 노점섭 
 
내가 사는 세상
한 해가 짧아 울고 싶어도 거울이 없는 얼굴표정
쌓인 과거가 없는 내 몸은 너무 밋밋해
어쩌다 바람은 밀어를 흉내 낸 악성 코드로 남아
상처는 다시 건너오지 못할 강이었지만
그래도 잎들의 놀이터는 햇살을 빨아 나를 키운다
낮과 밤의 온도 따라 어른이 되는
더 둥그러지고 더 무거워지는
푸른 옷에서 선분홍으로 화장하는 여인이 되고
행복지수는 100도로 끓는다
달콤한 언덕을 넘는 계절은 여인의 입술 같은 거
지금 어느 시점의 달력이 내 몸을 더듬고 있는지
햇살을 반죽하는 두뇌는 오직 단맛의 생각
음지와 양지가 생을 나누어 당도의 질을 높이는 것
바람은 배달부처럼 맛있는 소식을 전한다
여름은 복숭아 향이 부르는 소리
시집 갈 종착역, 기다림에 더욱 얼굴 붉어지고
문을 두드리는 손길

팔려가는 사랑에 나무는 빈손으로 서 있고
마지막 생육점의 끝 표시 어디쯤
내년에도 이 주소로 맛있는 소식 안고
복사꽃 편지가 또 오겠지

    

[우수상] 햇살의 거미줄 / 윤영규
    
햇살은 거미줄이 되어
많은 곳에 그물을 놓았다
윗말 김씨네 농장 복숭아는
촘촘하게 햇살이 거미줄을 쳤다
뿌리도 햇살의 자국이 되어
단물을 물관으로 올려 보냈다
수밀도(水蜜桃)의 그윽한 단내가
날벌레 날짐승까지 몸살을 앓게 한다
모두 햇살의 거미줄에 걸린 탓이다
아내는 한그루 복숭아나무 아래서
햇살의 무늬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해를 훔쳐 주었다

 

 

 

 

 

[심사평]

     올해도 복숭아문학상에 응모해주신 응모자 여러분들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해마다 심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의 수준도 높아져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복숭아문학상의 지명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문화적 관심과 수준 또한 높아졌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수준 높은 작품을 심사하기에 앞서 몇 가지 심사 기준을 정했습니다. 첫째, 시는 기본적으로 운율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주제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참신한 시상(詩想) 전개와 이미지의 결합입니다. 셋째, 앞의 두 가지 사항을 전체적으로 얼마나 완성도 있게 연결시키고 있는가입니다.
    이런 기준에 의해 최종 입선작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예선에서 탈락된 작품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앞서 지적한 대로 너무 이야기에 치중한 나머지 시적 리듬을 살리지 못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산문에 가까운 작품들은 선외로 하였습니다.        
     특히 장원으로 뽑힌 <복숭아의 꿈>은 리듬이나 시적 표현, 그리고 ‘어머니의 무픞’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시적 전개가 매우 참신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전체적인 시적 완성도에서도 특별히 흠잡을 데 없는 수작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또한 차상으로 뽑힌 <넌 나의 복숭아나무>도 참신한 시적 발상이 맘에 들었습니다. 1,2행의 “별똥별이 떨어지듯이/ 네가 퐁-하고 뱉은 씨 하나가”로 시작되는 ‘복숭아씨’를 통한 ‘너’와 ‘나’의 정서적 두근거림을 복숭아의 성장 과정과 연결시킨 시적 전개가 깜찍하고 상큼한 공감을 높여주고 있는 점에 좋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입상자 여러분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면서 더욱 분발하여 빛나는 문학적 성취를 이루길 기원하겠습니다.

 

박영우(시인, 경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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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복숭아 신부 / 이미순


허공에 보름달 환히 켠 나무의 향이 번진다

가지들 휘청휘청 단내 흐드러지는

복숭아 마을, 햇살 꽃무늬 원삼을 입고

바람 족두리 쓴 새색시의 웃음으로 밝다.

달콤한 향기로 열매 맺은 저 신부,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는지.

연지곤지 찍은 얼굴 아름다운 그녀

촉촉한 빗방울 당도를 품은 입술로

다소곳이 신방으로 들어간다, 비 온 뒤

며칠 동안 그 방의 습한 공기를

몰아내던 바람, 창호지 얇은 꽃문에

작은 구멍을 몰래 뚫는 그때, 문짝을 활짝

열어젖히고 훤칠한 신랑이 신방으로 들어간다.

틈 사이로 복숭아 신부를 힐끔거리던

새소리가 나무그늘 안쪽에 붉은 노을로 물들고

신랑이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황홀한 밤,

주례자 햇살이 흘리고 간 그 꽃종이에 쓴

신부의 이름은 황도복숭아,

푸른 나뭇잎 한 잎 한 잎 무늬를 품은

꽃문에 보름 달빛이 환하게 번진다.






[최우수상] 복숭아를 읽다 / 김태일


하늘에 창을 내지 않아도 물큰 붉은 달이 만져지는 때가 있다.


내가 복숭아에서 연어의 몸짓을 본 건 새털구름 속에 은둔하던 바람이 잠시 나와 복숭아 곁에 머물 때였다. 바람에 살결이 닿은 섬모가 잠시 휘청이는 사이 찰랑 팔랑 수백만의 흰 물결 디디며 여름을 건너온 나무의 발자국이 보이고 발자국 속에 뙤약볕 쓸어 담는 가지의 질긴 힘줄 도드라진다. 나무가 무릎에서 무지개를 꺼내 하늘에 던지면 둥글, 달이 되는 복숭아 한 알. 젖을 열어 수액 방울방울 떨어뜨리면 아기 새처럼 입 벌려 쑥쑥 크는 아이들, 발그스름한 볼에 복사꽃 닿으면 남극처럼 맑아지는 눈동자들, 올망졸망 나무의 물관 속에는 연어의 아가미를 단 엄마, 발자국 퍼덕이며 거꾸로 헤엄쳐 오르고 아이들은 박수를 치고 박수소리는 장대비처럼 자라가고.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연어의 붉은 살 함부로 베어 물진 못할 거야. 아이들은 연어 속 엄마의 살을 먹고 자랐으므로, 복숭아의 하늘은 연어 살보다 붉을 것이므로.


들리지 않는가, 복숭아 옷깃 살짝 들면 지금도 우리 엄마 뙤약볕 돌돌 말아 머리에 이고 여름의 발자국 지우는 소리.






[우수상] 복숭아나무의 두레박질 / 박광희


한밤중, 두레박질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매미 울음소리 달아올랐던 복숭아밭에서

누군가 그릇 가득 물을 채우는 소리

뿌리에서 우듬지 끝으로 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

저 끝없는 복숭아나무의 눈 시린 노동

어디 쭈글쭈글한 곳은 없는지

둥글고 팽팽한 얼굴 하나 만들기 위한

물 긷는 소리로 복숭아밭은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리하여, 아침이면

나무들의 둘레가 어제보다 환해져 있다

달디 단 과즙으로 벌떼와 진딧물을 불러 모으듯

모두 깊이 잠든 밤에도 나무들은 뜬눈이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눈빛 까만 아이들과 착한 아내를 위하여

과육 속으로 녹아들 햇살과 바람을 다스리는

이 밤 여울물 거슬러 오르는

나무들의 힘찬 좽이질, 무딘 손끝에

둥근 달과 별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것이다

이 여름 옹골차게 물을 긷고 있는 것이다






[우수상] 황도의 사랑학개론 / 한상림


심장에 새겨진 붉은 내력을 읽어 보세요

23.5도 갸우뚱 돌고 있는 작은 별에서 태어나

사방에 분홍꽃등 밝혔던 날

간지럽던 발가락 끝에 곰살곰살 뿌려주던 달빛,

그 달빛 품으며 사랑이 시작 되었어요

아기씨 하나 몰래 감추고

엄마가 되게 해 달라 매일 밤 기도 했지요

젖니를 깨물며 튼실해진 속살,

그 여린 속살 감추기 위해 까끌한 것이

햇살 탓만은 아니었어요, 바람은 때때로

험상궂은 소나기를 몰고 와 괴롭혔지만

잘 물러지려면 먼저 단단해져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자, 조심스럽게 벗겨 보실래요

달디단 속 살 한 입 살짝 베어 보세요

온 몸이 들큰해 질 거예요

황금빛 무른 속살을 설탕으로 잠재워볼까요

지난 밤 뒤척이며 흘리던 눈물도 섞어

쓰라린 상처와 잘 버무린 다음 팔팔 끓여주면

맨살 부비며 농익었던 지난여름 사랑이

서서히 녹아내릴거예요

말랑말랑 할수록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달콤한 맛을 내거든요, 잘 우러나거든

차갑게 식혀서 유리병에 담아 자장가도 불러주세요

잠시 단꿈에 빠져들 수 있게요

아참, 단단히 봉해야만 비밀이 보장 되어요






[우수상] 넉넉한 방房앞에서 / 한관식


저녁이 어제처럼 당도했네.

잘 익은 복숭아 물이 저녁을 염색하네.

애교 버무린 하늘이 닿을 듯 가깝네.

山이 된 산새는 날아가

山으로 피고지고 울음만 무성하네.

창가에 그 울음 앉아 땅거미처럼 앉아

누이야, 부르면 안개가 먹먹하고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쌀뜨물 같은

그리움이 어깨를 움켜잡고 있네.

이제 식탁 주위에 복숭아로 촛불처럼 밝혀야하네.

나그네도 가던 걸음으로 멈춰

속 깊은 저녁 방 앞에 生을 내려놓네.

노을은 시들고 바깥은 둥둥 섬처럼 떠다니고

내 품은 오지게 여울로 구성지네.

한 입 배여 문 복숭아가 우울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아침을 열고 있네.



 

 

 


[심사평]


  복숭아 문학상이 어언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복숭아가 해마다 풍성한 결실을 맺듯 복숭아문학상도 이제는 명실상부한 전국적 대회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에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총 응모 편수 387편 가운데 예선을 통과한 작품은 33편이었습니다. 결선에 오른 작품들은 나름대로 ‘복숭아’라는 제재를 자신의 시적 체험과 연결시켜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준을 마련하여 심사에 임했습니다.


1. 주어진 제재와 자신의 시적 체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가?

2. 시상 전개와 시적 표현들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신선한가?

3. 얼마나 자연스럽게 주제의식이나 시적 정감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등의 조건에 부합하는 작품을 심사하여 6편의 최종 입선작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미순의 <복숭아 신부>와 김태일의 <복숭아를 읽다>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였습니다. 이미순의 작품은 시의 운율적 특성과 내용이 잘 어우러진 점에 점수를 주었고, 김태일의 작품에서는 제재를 읽어내는 깊이 있는 심미안과 참신한 이미지의 사용 등에 더 좋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산문시의 특성상 시적 표현에 비해 시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운율의 흐름이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 들었던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결국 전체적으로 ‘복숭아’라는 제재를 우리의 전통적 혼례 의식에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시적 완성도에서 앞선 이미순 씨의 작품을 장원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입상을 축하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우리 문단을 이끌 훌륭한 문인으로 다시 만나길 바라겠습니다.


- 박영우 (시인,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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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어미 복숭아의 태교일기 / 정하연


나는 하늘농원의 황도복숭아

햇살 한 알을 잉태하고 있어

내 몸을 덮은 부드러운 외피에선

달짝지근한 젖내가 나고,

나는 여름의 등허리에 기대 앉아

태교를 하는 중이야

아침 해가 짜내는 누런 즙을 받아먹으며

내가 조금 더 익어가는 걸 느낄 때

속에서 복사꽃 한 송이 피어나 듯

온 몸이 간지러워, 나뭇잎을 베고 누워

나이테를 더듬거려 보면

무릉도원의 계절을 만날 수 있어

내 몸에 새겨진 계절의 무늬를 바라보며

풀빛 들판을 뒹구는 꿈

너도 나와 같은 무늬를 새기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잎맥 따라 번져오는 미몽의 시간

이 나무의 수액은 당도가 얼마나 될까

나무뿌리는 나를 지탱하는 탯줄,

오늘도 힘껏 내 몸을 붙들고 있어

바람이 내 껍질을 핥고 가고

새들이 나를 위해 태교음악을 들려주는 오후

무른 과육 속의 집을 허물고 네가 피어나는 날

나는 누구보다 달콤한 어미가 될 거야

진통보다 성급한 밤이 찾아오고

내 머리 위로 뚝뚝

과즙 같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어






[최우수상] 복숭아 / 이서연


붉은 노을 빛 한 겹 벗겨 내면

들리는 저녁 깊게 익어가는 소리

골목에 세워진 가로등이

노오란 복숭아 한 알 매단다


단내를 찾아 날아든 날벌레 쫓는

사내의 부채질이 잠잠해진다

반듯한 상자 대신 한 무리로 담긴 복숭아

봉긋한 복숭아 한 알 베어 물면

한 겹 한 겹 바람을 날라주던 흰나비의 날갯짓과

깨어나지 못한 애벌레의 악몽

늦가을을 기억하며 찰박이는 봄 햇빛

씨방에 가득 울리는 황조롱의 노랫소리가

입 안으로 가득 들어온다

나는 눈을 감고 무른 살점을 혀로 꾹 눌러본다

철지난 과일들을 팔던 사내의 더딘 사계와

수화기 반대편에서 들려오던 어린 딸의 목소리

급하게 끊어 삼킨 한 그릇 식사

늑골을 들락거리던 폭염의 오후가

입 안으로 흘러든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동그란 가로등 불빛이 환하다

저 커다란 복숭아 한 알

한 여름 밤 사내의 무른 잠이

혼몽하게 익어간다






[우수상] 꿈꾸는 복숭아나무 / 서재천


낭창낭창한 팔 초록머리 나풀거리며

가을 햇살에 붉은빛 감도는 한 광주리

싱싱한 꿈을 꾸고 있는 여자

햇빛 무지개 오색 잠자리날개 펄럭이며

파란하늘 궁전 새털구름마차 끌어당기다가

잉꼬 노래 선율타고 가지 사이사이 실바람

은빛 찬란한 모시나비 펑펑 쏟아 붓다가

자유로운 영혼이 깃든 닻별 눈이 반짝반짝하고

뽀얀 젖으로 씻은 어깨

하얀 솜털드레스 차려입은 아기천사와

손잡고 무궁한 하늘을 훨훨 춤추며 날다가

빨간 조개볼 위로 손을 펴 눈 받침하고

초록별 감치다 해찰하는 낮달을 슬쩍 훔쳐보다가

이따금 부드러운 입술 달콤한 미소 벙글어지는데

아찔한 사랑에 홀랑 빠져버린 심장 하나

콩 콩 콩, 백마 탄 왕자님을 껴안고 초원을 달리는지

분홍빛 얼굴 발그레 아롱다롱

시방

내 속이 다, 환하네






[우수상] 잘 익은 무늬 / 김유자


뿌리를 거슬러 올라

가장 먼 가지 끝에 맺히기 시작할 때

꽃잎 위로 꽃잎이 내려덮여

갇힌 벌이 잉잉거린다

나뭇가지에 걸린 별들이 머뭇거릴 때

닿을 곳 잃은 말(言)들은 봉긋하게 솟아오르고

떠난 이유도 말하지 않은 입술은

봄 마다 화르르 피고

나무 아래를 서성이던 발자국들이 동그랗게 쌓여

나뭇잎 눕는 방향으로 떠났다

햇빛의 주름 진 손이

주렁주렁 달린 기억을 쓸어주었다

살짝 누르기만 해도 무늬가 번지는, 살 냄새 나는,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문다

오래 된 입맞춤이

입술 밖으로 흘러내린다






[우수상] 복숭아는 괜찮아요 / 윤소진


좁은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간들바람 눅눅한 방 안을 살피더니

할머니의 살결 위로 솜사탕처럼 녹아든다

읽히지 않는 책처럼 시간을 더듬는 손

나는 푸른 잎 한 장 덮어준다

달빛의 촉수마저 희미해진 밤

복숭아나무가 어제보다 더 자라난다

나는 가장 무거운 어둠 속에서 헤엄을 치며

별들이 갉아 먹은 과일을 찾아 헤매인다

양 손에 과일이 쥐어지면 나는 천천히 걷는다

해가 떠오르기 전 어둠을 닦아내며 걷는다

할머니 입 속의 하얀 성벽은

내 오랜 기억 속에서도 무너져 있었다

새색시의 붉은 뺨을 닮은 복숭아

그 둥근 본연의 모습은 잊으신 건지

궁둥이를 냉큼 치우라며 호통을 친다

나의 시간 속에 어린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본다

열린 입 속으로 들어갈 하얀 속살들만

잘라내어도 복숭아는 괜찮아요

보송보송한 껍질은 뽀얀 솜털이 반질거리는

손녀인 여진이가 가장 좋아하니까요

나와 함께 자라나는 나무들은

나선형으로 둥글게 새겨지는 나이테 속에

할머니와 나의 시간이 겹쳐서 새겨진다

다시 찾아오는 밤

별들의 선한 공격을 받으며 잠든 할머니의 얼굴

나는 몇 번이고 그 얼굴을 읽고 또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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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여인 / 이병철 [대상]

 

햇살에서 찰랑, 물소리가 들린다

복숭아나무 우듬지는 파란 깃발을 흔들고

허공마다 잠에서 깬 물결무늬의 기지개

멀리 보이는 구름들은 절해의 외딴섬이다

고기떼처럼 살랑거리는 잎사귀 사이로

성큼성큼 부풀어 오르는 분홍색 파도

너는 신열처럼 만개했구나

피부는 고운 결마다 붉은 빛을 뿜어내고

가늘고 투명한 솜털 위엔 하얀 숨이 굽이돈다

잎새 하나 파르르, 잡아 흔드는 엷은 바람

너는 달콤한 향기로 내 코를 자극하고

내 입술 위로 이슬 머금은 네 입술이 겹쳐질 때

수평은 무너지고, 세상의 모든 직선이 구부러진다

 

 

 

 

 

 

장호원 복숭아 / 최인숙 [최우수상] 

 

대숲에 바람이 들어서면

긴 휘파람 소리가 납니다

휘파람은 날아서 항아리 속에 담깁니다

침묵을 퍼내고 둥근 속을 어루만지며

오래 기다렸던 손길로 파고듭니다

모난 곳 없이 둥근 손짓입니다

둥근 손짓에 깊이가 생겨납니다

채움과 비움을 생각하는 동안

항아리엔 달빛과 낮은 자장가 소리 가득하다 비워지고

비워지다 다시 가득합니다

그 위에 붉은 뺨에 패인 보조개도 스칩니다

젊은 어머니 처음 젖을 물렸던 날

내 울음소리도 저렇게 붉었겠지요

 

 

 

 

 

 

복숭아 / 허영둘 [우수상]

 

도공은 보이지 않는다 달이 백도처럼 익고 있는데 달항아리 빚던 사내 여기 없다 낙관 한 점 붉게 찍어놓고 하늘은 모르는 척 말이 없어 거처 모르는 바람의 행방이나 가늠해 본다 칠월은 고매한 정신마냥 푸르고 장인이 목숨으로 지키는 가마 속 열기에 여름은 명품으로 완성된다

 

초록 불길에 달이 아주 익어 밤길마저 환할 때 다시 그는 오리라

 

옹기종기 매달린 항아리들, 달을 가득 채운 달항아리들에게서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비할 바 없는 향기를 깨물면 이른 봄부터 햇빛 쓸어 모으던 비질 소리 들리고 햇살 뭉쳐 물레를 돌리던 손금 없이 맨질한 손이 만져진다 바람의 가닥을 한 줄 한 줄 고르던 고집스런 그의 숨소리, 달빛에 떠는 심장도 물컹 씹힌다

 

가마 속 불길 잦아들고 달을 모두 비운 항아리들, 머물 수 없는 달처럼 지체 없이 저물어야 할 때, 빈 항아리를 짊어진 한 사내 가을이 오는 길로 뉘엿뉘엿 가고 있다

 

 

 

 

 

 

황도 복숭아 / 오아녜스 [우수상]

 

매미울음소리에 둘러싸인 복숭아밭

키 작은 나무들이 잎을 흔들고 있다

복숭아를 감싼 노란 종이 속을 들추는 바람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황도 복숭아 아래

먼저 익은 복숭아들 멍이 든 채로 떨어져 있다

 

갈라진 벽 틈을 회색 시멘트로 메꾸고 있는

늘푸른 노인전문 요양원

5층짜리 건물이 층층이 색을 덧칠한다

시멘트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3층

치매를 앓는 할머니들만 모여 있는

306호 문 속으로 울음소리가 절여 있다

더 이상 돌볼 수가 없어 이곳에 맡겨진 할머니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 어쩌다 오는 날이면

황도 복숭아 통조림만 가득 놓고 간다

끊긴 가족들의 발걸음 잊어버리도록

황도 통조림 캔 하나 따서 주는 보호사들

숟가락으로 잘게 쪼개준 황도 베어 물며

할머니들은 외로움을 삼킨다

새들이 날아와 단물을 빨아먹는데도

손을 휘젓지 못하던 할머니들

멍이 든 복숭아처럼 축 늘어져 있다

기저귀 찬 곳에 난 땀띠를 박박 긁을 때마다

할머니 가둔 요양원도 긁어버리고 싶은지

창밖을 바라보며 인상을 쓴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초코파이만 먹는 할머니에게

치약을 건내는 할머니

제 아픔들은 잊은 채 서로를 돌본다

 

늦은 오후, 보호사가 빈 침대 시트를 정리 한다

침대에 앉아 고양이 울음소리 내던 할머니 자리엔

여름 햇살이 대신 드러눕는다

침대 옆 서랍장 안으로

따지 않은 황도 복숭아 통조림 가득 열려있다

 

 

 

 

 

 

복숭아 / 박동미 [우수상 ]

 

붉은 뺨 부비는 저 여린 초록

살아 온 날들은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산 허리 돌아 어디쯤

몸을 풀어놓을까

바람에 부풀린 그림자가

쟁쟁한 햇살과 어렴풋한 추억,

하나의 형상이 혁명처럼

오래도록 펄럭거리고 있다.

 

달콤 새콤 한 잎 물고

하늘 바라보면

푸근한 어머니 같고

달덩이처럼 고운 누이가

하늘에 떠 있네요

복숭아 꽃잎 환하게

밝히던 봄날의 기억도

아슴아슴한 그리움으로

내 가슴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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