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우리 모두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낯설고 예측불가인 상황에 부딪쳤다. 코로나 19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소통과 교류는 멈췄고 세상은 봄의 문턱에서 차가운 겨울로 되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순리대로 봄은 왔고 꽃은 피고 다시 초록의 물결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어려운 시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다시 희망의 등불을 켜들어야 한다. 문학의 불씨만은 가슴 속에 간직하여 서로에게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문학이 가진 힘이 이런 때 빛이 나리라 생각한다. 불안정한 시기임에 응모작이 적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응모해 주셔서 무척 기뻤다. 응모된 281편 작품의 1차 심사를 끝내고 본선 심사를 앞둔 시점에 문경 인근 지역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여 부득이 하게 심사가 미루어진 점에 응모자 여러분께 양해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작년에 비해 응모작의 수준이 훨씬 향상되었음을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다만 다시 지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잠시 언급하기로 한다. 응모를 할 때는 주최 측의 공모 의도를 좀 더 심사숙고 했으면 한다. ‘문경새재문학상’은 문경과 문경새재에 대해 알리고 문경에 대한 애정을 북돋우기 위해 시행하는 문학상이다. 작품 자체로는 너무나 훌륭하고 시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도 너무 난해하거나 현학적인 시는 곤란하다. 다수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해 반해 너무 성의 없이 인터넷 검색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시들도 있었고 표현은 요란한데 도대체 알맹이가 없는 시들도 실망감을 주었다. 문경과 문경새재라는 정해진 소재가 있는 시인만큼 그 소재를 얼마나 새로운 시각으로 형상화 시켜서 보여주는지에 심사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린다.
김완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김겨리 「문경새재를 읽다」, 오영록 「구름 공방」, 김향숙 「문경새재 아리랑」, 김영욱 「‘조령진산도’를 읽다」, 김국현 「태양의 꽃 오미자」, 이은정 「순례의 영토 문경새재에 들다」, 정영숙 「물박달나무의 해원」 최종 여덟 작품을 선정하여 거듭 돌려 읽고 심사숙고 하여 대상으로는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 우수상에는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와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로 확정했다.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는 다른 이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고지도 ‘조령진산도’ 읽어내기를 시로 이끌어온 시도가 훌륭했다. 사라진 호랑이의 존재를 통해 새재라는 공간을 단박에 신화 속의 영험한 공간으로 이동 확장시켜 놓았다. 공간의 이동을 통해 신령한 기운을 품은 호랑이의 발자국이 곧 우리의 발자국임을 상기시키고 그가 남긴 가죽은 길손들의 지름길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신화 속의 세계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 성황당의 오랜 귀목도 손을 펼친 단풍나무도 모두가 존재만으로 수호신이 된다. 이로써 새재는 보름달을 탄생시키고 장대한 산맥들을 길러내는 명당이 되었다. 아무나 찾을 수 없는 새재의 신성한 영역을 보아내고 시로 엮어낸 솜씨가 놀랍다.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는 문경새재를 한 권의 서책으로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읽어나가며 시를 완성했다. 막힘없이 읽히는 문장의 수려함이 돋보였다. 매끄럽고 적절한 표현으로 누가 읽어도 문경새재가 눈에 보이듯 아름답게 읽힌다. 자연이 발행하고 문경이 소장한 새재라는 책을 탐독하는 시인을 따라 읽는 이 누구나 함께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특히 낭송을 통해 새재를 전달하기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는 오로지 오르려고만 하는 욕심을 평생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새재의 세 개의 관문을 통해 말하고 있다.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애쓸수록 내려올 때는 허무감이 큰 것이 생이지만 그래도 놓지 못하고 자꾸 오르고 싶은 것이 인간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며 그 욕심을 내려놓고 한 꺼풀 허물의 벗을 수 있음을 안도한다. 새재가 내 안에 스스로 만들어둔 또 하나의 관문마저 훌쩍 지나가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문경과 문경새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통이 힘든 시기이지만 시를 통해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기를 기원해 본다.
문경은 주흘산, 황장산, 희양산, 대야산 등 수많은 명산이 솟아있고 가파른 고개 문경새재가 있는 곳이다. 새재 길 구비에는 문경새재아리랑 가락이 박달나무 푸른 잎새를 흔들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의 못 다한 꿈은 여궁폭포 흰 물줄기로 흘러내린다. 문경 전통 찻사발에 담긴 말차의 연둣빛은 마음을 헹구어주고, 붉은 보석 오미자와 문경 꿀사과는 우리의 몸을 정화시킨다. 이렇게 문경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풍성한 특산품으로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시를 통해 이곳 문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문경새재를 전국으로 알리고자 문경새재문학상을 제정하여 공모하였다. 작년에 개최한 문경새재 창작 시 공모를 좀 더 문학적인 성취도가 있는 좋은 작품을 얻고자 문경새재문학상으로 승격시켰다. 응모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총 178편의 많은 작품이 투고되었고 작품 수준도 향상되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심사를 하면서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우선 지적하고자 한다. 한 편의 시가 위대한 건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은 세계가 이웃과 가족처럼 통하는 시대이다. 인터넷으로 문경과 문경새재를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접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정보는 정보일 뿐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시는 단순 정보가 지니지 못한 감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검색 한 번에 다 보이는 정보를 짜깁기해서 만든 시는 시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또한 시는 시인만의 눈으로 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경새재가 판에 박힌 활자 속의 장소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상상속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시가 가진 힘이다. 여기에 낭송을 통한 소리의 힘이 더해지면 그 감동의 폭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일부의 시들에서 안일하게 단순히 정보의 짜깁기로만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저것 문경에 대한 것들을 이어 붙여 도무지 내용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문장도 하나의 생명체이다. 앞 뒤 흐름이 있고 전체적인 조화가 있어야 한다. 함축된 시어라 해도 불구의 문장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 어떤 시들은 시작은 좋았으나 마무리가 허술해서 안타까움을 주었다. 마치 덜 그린 그림 같이 좋은 색감과 바탕으로 시작했으나 마무리를 안 하고 끝낸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심사위원들이 안타까워했던 점은 응모자의 무성의한 태도이다. 공모 요강이나 공모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아무 관련이 없는 시들을 보내오는 경우이다. 적어도 문학상에 공모를 한다면 공모 요강을 꼼꼼히 훑어보고 공모를 하였으면 한다.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시를 쓰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진 시인들도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문경새재’에 관한 시를 쓰면서 ‘문경세재’라는 오자는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자신이 쓰려고 하는 소재나 제재에 대해 이름도 정확히 모르면서 어떻게 그곳에 대해 쓴 시가 감동을 주겠는가. 그것은 정말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대상은 황종권의 「나는 문경새재의 저녁으로 눕는다」 로 돌아갔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문경새재의 표면적인 풍경을 그리는 것에 그쳤다면 황종권의 작품은 시각이 달랐다. 문경새재를 품은 깊은 골짜기와 산들을 곰으로 형상화한 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저녁이 오도록 높고 험한 고개를 넘어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아비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 또한 그 길을 닳도록 걸어야 함을 담담히 말한다. 주흘산 영봉을 지나 뒤를 돌아보면 봉우리들이 곰이 돌아앉은 형상이라는 점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거대한 곰의 위장 속으로 난 길을 따라가며 발자국을 밀어 올리는 숨소리를 듣고 곰이 긁어 만든 별자리를 본다는 것은 문경새재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또 단순한 하나의 고개에서 누구나 걸어 넘어야 하는 생의 고개로 확장되는 시의 전개가 훌륭했다. 대상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음을 밝힌다.
우수상은 최재영의 「문경새재」 심강우(본명:심수철)의 「문경새재」 두 편으로 선정되었다. 공모 요강에 공지된 것처럼 문경새재문학상은 문경새재시낭송대회와 함께 개최된다. 당선작은 다음 낭송대회의 지정 시로 지정이 되어 낭송이 된다. 그러므로 낭송시로서의 적합성을 함께 본다. 리듬감과 전달력이 있어야 하고 너무 장시이거나 단시이면 곤란하다. 이 두 편의 작품은 그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최재영의 「문경새재」는 달빛 속의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느껴지는 감흥을 잘 표현했다. ‘달빛을 품고서야 가득 환해지는 길’처럼 세밀한 관찰과 새들도 넘기 어려웠다는 험한 고개를 어찌 오갔을까에 대한 의문을 ‘새들은 벌써 다 건너갔을까’ 라는 물음으로 아우르고 있다. 가파른 초점에 이르러 느낀 그 옛날 청운의 꿈을 안고 이 고개를 넘어갔을 옛사람에 대한 연민을 ‘바람이 눈물꽃으로 피워내느라 허기진 산기슭을 들이켰’다고 풀어내는 점도 좋았다.
심강우의 「문경새재」는 문경새재를 넘던 사람들의 애환을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좋았다. 과거보러 떠나는 선비의 꿋꿋한 꿈도 비손하던 여인의 간절함도 길 위에서 생을 다 보내는 장꾼의 발걸음도 이제는 모두 한 줄기 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세상만사 많고도 많은 사연과 일들도 시간이 가면 다 바람이 되고 단단한 마음도 세월 앞에서는 가루가 되어 흩어짐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다. 험한 고개 가로막고 있어도 사연 깊은 강물 놓여있어도 천길만길 걸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생과 새재의 공통점을 시로 잘 나타냈다.
문경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보내주신 많은 작품들이 있었으나 모두에게 당선의 영광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당선되신 분들에게는 축하를 다른 분들에게는 다음 기회의 기약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