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우수상] 문경새재에 갔다 / 최형만

 

조령에 서면 옛사람이 보인다

도포자락 너풀대던 선비도

봇짐 진 그림자도 서둘러 넘어가는 곳

억새풀 움켜쥔 돌길을 따라 걷다가

멀어지면 처음처럼 돌아본다

모가지가 얼어붙는 계절에 섰어도

새재의 풀포기는 피고 지고 또 피는 걸까

재를 넘어간 소식 없는 안부에

숨소리는 몇 갑자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빛이 다녀간 길마다 들숨을 품고

벗겨진 무늬엔 그 밤의 별빛만 총총

하늘재는 몇 개의 계절을 이고 살았는지

구릉의 말은 물처럼 흐른다

젖은 날숨이 바닥으로 기울 때마다

마른 결기로 흩어지는 청운靑雲의 이름

궁리를 다한 숨도 비껴섰을까

풋내 나는 흙내를 끌어안고

새처럼 휘어간 새재의 후예들

허기진 등골에 그을린 바람을 읽는다

기쁜 소식 죄다 달빛에 숨겨 놓고

천 길 바깥까지 걸어간 사람들

풋눈에 엎드려 문희*聞喜를 적어보면

고개는 그늘의 울음까지 기억하는지

한 시대가 문경聞慶을 불러온다

, 나는 호시절에 맨발로 왔구나

 

*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문경의 옛 지명으로 과거길과 관련 있다

 

 

 

 

 

[우수상] 문경새재, 멧발이 펼쳐지고 / 박봉철

 

 

험준한 길이라 새도 쉬어가게 하는

길마루에 젖어 고루한 고개처럼 유곡일까

깎아지른 벼랑의 이력들이 제 몫을 품은 채였다

 

숨 가쁘게 올라온 축성이 요충지가 되고

새재 곳곳 종일 수런대는 날갯짓, 새의 문자로 기록하는지

길목 몸피 마디마디 출렁이는,

이름 모를 나그네의 족적足跡이 선명하다

 

골골샅샅이 요충지로 이어가고

눈빗질에 목울대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사수하고 버티고 선

물오른 산줄기, 그 멧발이 펼쳐지네

 

녹음으로 짙게 물들이는

계절 초입 무성한 생각들이

늘 관문의 갑옷자락으로 휘날린다

 

한참을 걸어서

낮새껏 넘어가던, 너울가지 새재

철마를 타고 잊혀가는

한적한 발자취, 겅중겅중 달아나고

 

몸피에 그을린 너른 돌비석들, 즐비하고

저기 쭉 물레걸음하는 긴 관문,

총총 흙길로 뻗은, 문경새재는

고스란히 불그레한 역동域動의 몫이다

 

 

 

 
728x90

 

 

[대상] 조령진산도를 읽다 / 김영욱 

 

 

사라진 호랑이가 배꼽을 떨어뜨린 곳은 이쯤일 거야

성곽 옆구리에 엎드려 숨소리에 귀기울여봐

고깔 운무 쓰고 돌아앉은 어미 산

새재를 품에 안은 그림자도 우뚝한데

골짝 물길이 실핏줄로 감아 도는 등고선 한가운데

어느 멸망한 종족의 태실이 있지

예로부터 태를 묻은 곳엔 복이 들었지

장돌뱅이들이 등목을 하던 삼복더위에도

털옷을 걸치고서 평생을 떠돌았을 호랑이가

죽어서도 숲의 으쓱한 쇄골에 덮어둔 가죽은

하룻밤 묵어가는 길손들의 지름길 되고

봄비도 티 나지 않게 몸 낮추는 곳이 있다면

바로 여기 성황당 어디쯤일 거야

처녀치마로 둘러쳐진 아름드리 귀목을

노령의 소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있는 무림에서

아침햇살도 동티가 나지 않게 만다라를 그리는데

흙꽃 위에 두툼한 그늘막을 덮어주는 단풍 손은

어느 내생의 천수보살일까

길이 나기 전부터 탯줄을 품고 있던 이 숲은 보름달의 태반

오래전 궁예가 반달 같은 활을 내려놓고

신의 태엽을 발굴한 물의 나이테가 생사윤회의 바퀴라면

지아비의 발등 위로 불거진 핏줄은 사방으로 뻗은 산맥

못 박힌 발바닥에서 팔자로 갈라진 샛길은

괴나리봇짐 지고 호랑나비로 날아가는 활주로

이 울창한 안개들이 숨겨놓은 수구막이숲

길섶에 묻혀 있는 호랑이의 발품은 미래의 족보라지

예로부터 혈을 지른 자리에서 영웅이 났지

대대로 기를 받는 명당이 있다면

백두대간 등줄기를 제 피로 서늘하게 적시며

진달래꽃밭서덜로 새끼들을 밀어낸 어미의 자궁처럼

옴폭해서 아늑한 여기 이쯤일 거야

 

 

 

 

[우수상] 문경새재를 읽다 / 김겨리

 

 

한 걸음 한 걸음이 문장인 길이 있다

능선으로 제본된 목차마다 행간이 경건한 순례,

일목요연하게 펼쳐지는 둘레길이 고금으로 웅숭깊다

 

철릭을 입은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첫 장을 넘기자 새재의 서곡인 주흘관에 당도하니

관문교 물소리가 풍경風磬이 울리듯 애잔한 건

쥘부채 펴듯 펼쳐진 서사를 다 서술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일출과 일몰로 빚은 윤슬로 밝히는 너덜길 따라

조곡관에 이르러 다리쉼하듯 산세를 굽어본다

발자국과 손길, 와 철로 한 칸 한 칸 쌓은 성곽은

쉼표 없는 문장, 행갈이도 없이 편집된 질곡의 역사다

그랭이 공법으로 축조된 문장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차곡차곡 집필되고 있으므로

 

등고선에 밑줄 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능선을 넘는다

주흘관에서 조곡관을 지나 조령관에 이르고 나서도

뉘엿뉘엿 지는 해가 부봉에 걸려 있는 것은

아직 다 읽지 못한 새재의 내력을 체득하려 하기 때문인가

 

능선을 넘고 계곡을 지나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관문

문경새재, 오체투지체로 휘갈겨 쓴 절필의 장르여!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문맥이 섬세하다

곳곳마다 탈자와 마모된 비문으로 편집되는 역사이지만

반으로 접어 놓고 두고두고 읽어야 할 지침서이기에

서표로 꽂아 놓은 달빛도 문장 부호가 되는 문경새재는

사계절의 의태어로 빚은 경전을 아직도 집필 중이다

 

 

 

나무가 무게를 버릴 때

 

nefing.com

 

 

 

[우수상]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 김완수

 

 

문경 새재 세 관문을 바람처럼 지나간다

볕 드는 곳마다 나는 물박달나무 냄새

당신과의 기억에 쓸릴 때마다

울음이 회갈색으로 조각조각 벗겨져도

단단한 냄새가 발자국을 찍으며 앞서가면

나는 새가 허공에 흘린 소리 같은 바람이 된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봉우리들은

누군가에겐 통곡의 벽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사모(紗帽)의 신기루였을 것이다

땅에 발을 묻은 풀만 봐도 울컥하는 이라면

넘어서려는 마음은 흘려보내고

새처럼 길을 돌아내릴 줄 알아야 한다

산그늘이 젖무덤같이 봉긋봉긋해질 때

발부리에 차이던 생각들도 집을 찾는다

 

나는 아픔과 자기 연민의 사생아

나락에 떨어져 본 사람만이

가없는 길을 오르는 일의 덧없음을 안다

골바람을 배웅하고 문경으로 돌아설 즈음

퇴적된 표정에서 오래전의 얼굴이 돋아난다

나는 내 안에 또 하나의 관문을 만들며

어제가 남긴 길을 훌쩍 지나간다

이미 길을 잃고 찾은 길엔 이정표가 없어

돌아올 때는 세상에 없는 바람이 된다

 

내가 굽이굽이 지나온 시간은

이 고개에서 허물을 벗고 숨 돌리는데

마냥 오르려 하던 당신은 지금 안녕하신지

 

 

 

꿈꾸는 드러머

 

nefing.com

 

 

 

[심사평] 불안을 밟고도 시의 꽃은 핀다

 

2020년 우리 모두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낯설고 예측불가인 상황에 부딪쳤다. 코로나 19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소통과 교류는 멈췄고 세상은 봄의 문턱에서 차가운 겨울로 되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순리대로 봄은 왔고 꽃은 피고 다시 초록의 물결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어려운 시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다시 희망의 등불을 켜들어야 한다. 문학의 불씨만은 가슴 속에 간직하여 서로에게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문학이 가진 힘이 이런 때 빛이 나리라 생각한다. 불안정한 시기임에 응모작이 적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응모해 주셔서 무척 기뻤다. 응모된 281편 작품의 1차 심사를 끝내고 본선 심사를 앞둔 시점에 문경 인근 지역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여 부득이 하게 심사가 미루어진 점에 응모자 여러분께 양해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작년에 비해 응모작의 수준이 훨씬 향상되었음을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다만 다시 지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잠시 언급하기로 한다. 응모를 할 때는 주최 측의 공모 의도를 좀 더 심사숙고 했으면 한다. ‘문경새재문학상은 문경과 문경새재에 대해 알리고 문경에 대한 애정을 북돋우기 위해 시행하는 문학상이다. 작품 자체로는 너무나 훌륭하고 시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도 너무 난해하거나 현학적인 시는 곤란하다. 다수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해 반해 너무 성의 없이 인터넷 검색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시들도 있었고 표현은 요란한데 도대체 알맹이가 없는 시들도 실망감을 주었다. 문경과 문경새재라는 정해진 소재가 있는 시인만큼 그 소재를 얼마나 새로운 시각으로 형상화 시켜서 보여주는지에 심사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린다.

 

김완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김겨리 문경새재를 읽다, 오영록 구름 공방, 김향숙 문경새재 아리랑, 김영욱 조령진산도를 읽다, 김국현 태양의 꽃 오미자, 이은정 순례의 영토 문경새재에 들다, 정영숙 물박달나무의 해원최종 여덟 작품을 선정하여 거듭 돌려 읽고 심사숙고 하여 대상으로는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 우수상에는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와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로 확정했다.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는 다른 이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고지도 조령진산도읽어내기를 시로 이끌어온 시도가 훌륭했다. 사라진 호랑이의 존재를 통해 새재라는 공간을 단박에 신화 속의 영험한 공간으로 이동 확장시켜 놓았다. 공간의 이동을 통해 신령한 기운을 품은 호랑이의 발자국이 곧 우리의 발자국임을 상기시키고 그가 남긴 가죽은 길손들의 지름길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신화 속의 세계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 성황당의 오랜 귀목도 손을 펼친 단풍나무도 모두가 존재만으로 수호신이 된다. 이로써 새재는 보름달을 탄생시키고 장대한 산맥들을 길러내는 명당이 되었다. 아무나 찾을 수 없는 새재의 신성한 영역을 보아내고 시로 엮어낸 솜씨가 놀랍다.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는 문경새재를 한 권의 서책으로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읽어나가며 시를 완성했다. 막힘없이 읽히는 문장의 수려함이 돋보였다. 매끄럽고 적절한 표현으로 누가 읽어도 문경새재가 눈에 보이듯 아름답게 읽힌다. 자연이 발행하고 문경이 소장한 새재라는 책을 탐독하는 시인을 따라 읽는 이 누구나 함께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특히 낭송을 통해 새재를 전달하기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는 오로지 오르려고만 하는 욕심을 평생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새재의 세 개의 관문을 통해 말하고 있다.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애쓸수록 내려올 때는 허무감이 큰 것이 생이지만 그래도 놓지 못하고 자꾸 오르고 싶은 것이 인간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며 그 욕심을 내려놓고 한 꺼풀 허물의 벗을 수 있음을 안도한다. 새재가 내 안에 스스로 만들어둔 또 하나의 관문마저 훌쩍 지나가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문경과 문경새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통이 힘든 시기이지만 시를 통해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기를 기원해 본다.

 

심사위원 : 황봉학, 엄정옥, 박윤일, 도명희

 

728x90

 

 

[대상나는 문경새재의 저녁으로 눕는다 / 황종권

 

 

이것은 곰의 갈비뼈 속으로 난 길이다

저 억새풀이 곰의 털이라는 것은 바람만이 안다

뻣뻣하지만 구불거리는 나무는 곰의 이빨

 

돌부리에 넘어진 무릎만이 비로소 신발 끈을 매고

첩첩 뿌리로부터 멀어지는 꽃들이 곰의 위장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발자국을 밀어올리는 것은 길이 아니라

곰의 숨소리, 으스스 별자리가 돋는 것도

제 등허리를 바위에 긁은 까닭이다

 

발목이 늘 벼랑인 사람들이 있다

떨어지지도 주저 않지도 못하는 힘으로

아비가 될 사람들은 발목에 불씨를 지폈으리라

아니 발바닥에 물집 잡히는 힘으로

신열 들키지 않게 제 짐을 산맥에 맡겼으리라

 

문경새재, 산적도 피해 가는 길

피처럼 붉은 달, 곰의 내장을 밝혀준다

울 수 없어 노래하고 노래할 수 없어

발목으로 저녁을 불러들였을 나의 아비들

젖은 눈썹을 지닌 사람은 저 고원이 고향이다

 

바람마저 곰의 뼈를 빌려 노래하는 문경새재

흙바닥에 나의 이마가 찍혔다

달밤은 춥고 나는 닳도록 걸어야 할 길이므로

목 길고 허리 가는 억새꽃밭의 저녁으로 눕는다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

 

nefing.com

 

 

 

 

[우수상문경새재 / 최재영

 

억새풀 우거진 고갯길에 달빛이 휘황하다

조령과 주흘을 곁에 둘러앉히고

굽이굽이 넘어 온 길을 둘러보는데,

달빛을 가득 품고서야

비로소 환해지는 옛길이다

새들은 벌써 다 건너갔을까

오래된 그리움들이 폭설처럼 쏟아지고

막사발은 천년의 비경을 품고 고요하다

수백리 물길을 여는 초점(草岾)*에 이르러

새재를 넘던 옛사람을 생각한다

물굽이 시퍼렇게 일으켜 세워도

못다 이룬 꿈이었을까

아슬아슬 벼랑길을 비껴가는 바람은

계곡마다 눈물꽃을 피워내느라

허기진 산기슭 한사발은 들이켰으리

먼 후일 가슴 뜨거워진 내가 찾아와

다시 맨발로 천년을 거슬러 오르리니,

달빛이 슬어놓은 푸른 전설이

아직도 구슬픈 아리랑곡조로 흘러가는

, 문경새재

 

초점(草岾): 낙동강 발원지 중 하나 (태백 황지, 영주 순흥, 문경 초점)

   

 

     

 

 

[우수상문경새재 / 심강우

 

문경에서 나는 박달나무는 홍두깨가 되었지요

주흘산 조령산을 넘어온 구름이 보자기란들

사시장철 굽잇길 다듬잇돌을 시늉하던 걸음

성황당 고개에서 비손을 하던 여인,

자드락자드락 해동갑으로 잇대던 구김살

어이 다 싸맬 수 있을까요

 

때까치 울고 오목눈이 직박구리 추임새에

저 멀리 조령관 너머 수안보 지나 한강으로

신수 훤한 도포자락을 언제 또 보려는지,

옷고름에 젖은 사연 낙동강 굽이마다

새재라 새재, 눈 밝은 새들의 기별도

마애비로 남아 하인의 옹심도 선비의 큰마음도

가루를 자청한 기와 조각이 되었지요

 

새재에 불던 바람은 길이 되었지요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한 줄로 꿴

오르막 내리막 패랭이 쓴 장꾼이 걷던 길

넘으면 시름이요 앉으면 푸념이라던

질경이 바랭이 억세게 핀 황톳길

가도 가도 첩첩산중 애옥살이 닮은 길

어이 다 지울 수 있을까요

 

새재를 넘어도 새재

새재에 못 미쳐도 새재

사람살이 천길만길 다함없는 발짝으로

문경에 가면 우리 한세상 닮은 새재가 있지요

경사를 들을 날 있다고 문경聞慶

계절이 빗장을 걸고 새들이 문지기를 서는,

새재가 있어 문경이 완성된 그런 곳이 있지요

 

 

 

 

전망대 혹은 세상의 끝

 

nefing.com

 

 

 

[심사평] 재 넘어가는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들

 

문경은 주흘산, 황장산, 희양산, 대야산 등 수많은 명산이 솟아있고 가파른 고개 문경새재가 있는 곳이다. 새재 길 구비에는 문경새재아리랑 가락이 박달나무 푸른 잎새를 흔들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의 못 다한 꿈은 여궁폭포 흰 물줄기로 흘러내린다. 문경 전통 찻사발에 담긴 말차의 연둣빛은 마음을 헹구어주고, 붉은 보석 오미자와 문경 꿀사과는 우리의 몸을 정화시킨다. 이렇게 문경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풍성한 특산품으로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시를 통해 이곳 문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문경새재를 전국으로 알리고자 문경새재문학상을 제정하여 공모하였다. 작년에 개최한 문경새재 창작 시 공모를 좀 더 문학적인 성취도가 있는 좋은 작품을 얻고자 문경새재문학상으로 승격시켰다. 응모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총 178편의 많은 작품이 투고되었고 작품 수준도 향상되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심사를 하면서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우선 지적하고자 한다.   한 편의 시가 위대한 건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은 세계가 이웃과 가족처럼 통하는 시대이다. 인터넷으로 문경과 문경새재를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접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정보는 정보일 뿐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시는 단순 정보가 지니지 못한 감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검색 한 번에 다 보이는 정보를 짜깁기해서 만든 시는 시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또한 시는 시인만의 눈으로 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경새재가 판에 박힌 활자 속의 장소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상상속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시가 가진 힘이다. 여기에 낭송을 통한 소리의 힘이 더해지면 그 감동의 폭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일부의 시들에서 안일하게 단순히 정보의 짜깁기로만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저것 문경에 대한 것들을 이어 붙여 도무지 내용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문장도 하나의 생명체이다. 앞 뒤 흐름이 있고 전체적인 조화가 있어야 한다. 함축된 시어라 해도 불구의 문장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 어떤 시들은 시작은 좋았으나 마무리가 허술해서 안타까움을 주었다. 마치 덜 그린 그림 같이 좋은 색감과 바탕으로 시작했으나 마무리를 안 하고 끝낸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심사위원들이 안타까워했던 점은 응모자의 무성의한 태도이다. 공모 요강이나 공모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아무 관련이 없는 시들을 보내오는 경우이다. 적어도 문학상에 공모를 한다면 공모 요강을 꼼꼼히 훑어보고 공모를 하였으면 한다.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시를 쓰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진 시인들도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문경새재’에 관한 시를 쓰면서 ‘문경세재’라는 오자는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자신이 쓰려고 하는 소재나 제재에 대해 이름도 정확히 모르면서 어떻게 그곳에 대해 쓴 시가 감동을 주겠는가. 그것은 정말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대상은 황종권의 「나는 문경새재의 저녁으로 눕는다」 로 돌아갔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문경새재의 표면적인 풍경을 그리는 것에 그쳤다면 황종권의 작품은 시각이 달랐다. 문경새재를 품은 깊은 골짜기와 산들을 곰으로 형상화한 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저녁이 오도록 높고 험한 고개를 넘어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아비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 또한 그 길을 닳도록 걸어야 함을 담담히 말한다. 주흘산 영봉을 지나 뒤를 돌아보면 봉우리들이 곰이 돌아앉은 형상이라는 점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거대한 곰의 위장 속으로 난 길을 따라가며 발자국을 밀어 올리는 숨소리를 듣고 곰이 긁어 만든 별자리를 본다는 것은 문경새재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또 단순한 하나의 고개에서 누구나 걸어 넘어야 하는 생의 고개로 확장되는 시의 전개가 훌륭했다. 대상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음을 밝힌다.

 

우수상은 최재영의 「문경새재」 심강우(본명:심수철)의 「문경새재」 두 편으로 선정되었다. 공모 요강에 공지된 것처럼 문경새재문학상은 문경새재시낭송대회와 함께 개최된다. 당선작은 다음 낭송대회의 지정 시로 지정이 되어 낭송이 된다. 그러므로 낭송시로서의 적합성을 함께 본다. 리듬감과 전달력이 있어야 하고 너무 장시이거나 단시이면 곤란하다. 이 두 편의 작품은 그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최재영의 「문경새재」는 달빛 속의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느껴지는 감흥을 잘 표현했다. ‘달빛을 품고서야 가득 환해지는 길’처럼 세밀한 관찰과 새들도 넘기 어려웠다는 험한 고개를 어찌 오갔을까에 대한 의문을 ‘새들은 벌써 다 건너갔을까’ 라는 물음으로 아우르고 있다. 가파른 초점에 이르러 느낀 그 옛날 청운의 꿈을 안고 이 고개를 넘어갔을 옛사람에 대한 연민을 ‘바람이 눈물꽃으로 피워내느라 허기진 산기슭을 들이켰’다고 풀어내는 점도 좋았다.

 

심강우의 「문경새재」는 문경새재를 넘던 사람들의 애환을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좋았다. 과거보러 떠나는 선비의 꿋꿋한 꿈도 비손하던 여인의 간절함도 길 위에서 생을 다 보내는 장꾼의 발걸음도 이제는 모두 한 줄기 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세상만사 많고도 많은 사연과 일들도 시간이 가면 다 바람이 되고 단단한 마음도 세월 앞에서는 가루가 되어 흩어짐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다. 험한 고개 가로막고 있어도 사연 깊은 강물 놓여있어도 천길만길 걸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생과 새재의 공통점을 시로 잘 나타냈다.

 

문경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보내주신 많은 작품들이 있었으나 모두에게 당선의 영광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당선되신 분들에게는 축하를 다른 분들에게는 다음 기회의 기약을 드린다

 

 

<본심에 오른 작품>

 

<순례의 길 / 최형만> <문경새재를 걷다 / 양소은> <문경새재의 봄 / 강수화> <문경새재 / 한춘화><아직은 주흘산이 / 김국현> <새재의 밤 / 길덕호> <문경새재에서 / 이생문> <문경새재 / 박덕은><문경새재, 바람따라 / 박진옥> <문경새재 / 서희정> <새재여, 문경새재여 / 박영원> <말하는 나무 /  조긍><과거길의 화법 / 홍경흠> <먼데서 오고 있을까요 / 이 훈> <꽃바람 / 길덕호> <토끼비리 / 최정희><박달나무 숲에는 메아리가 산다 / 이원규> <붉은 꽃, 오미자 / 김국현>

 

심사위원 : 엄정옥, 도명희, 황봉학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