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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의 시간 / 안상학

 

 

지나온 날들을 모두 어제라 부르는 곳이 있다

염소처럼 족보도 지금 눈에 있는 어미나 새끼가 전부

지나간 시간들이 모두 무로 돌아간 공간을 보며 살아가는

황막한 고비에서는

그 이상의 말을 생각할 그 무엇도 까닭도 없으므로

 

남은 날들을 모두 내일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펌프가 있는 어느 작은 마을

사람이라곤 물을 길어 가는 만삭의 아낙과

뒤따라가며 가끔 돌아보는 소녀뿐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 황황막막한 고비에서는

굳이 그 이상의 말을 만들 어떤 필요도 없으므로

 

시간과 거리를 물으면 금방이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운전기사와 길을 잃어도 쥬게르 쥬게르(괜찮아 괜찮아)만 연발하는 가이드를 보면서 나는 모든 지나간 날들을 아래라 부르던 내 할머니의 시간에도 새겨진 게 분명한 몽고반점과, 싸울 때면 쥐게라 쥐게라(죽여라 죽여라) 악다구니를 쓰던 할머니의 지워지고 없는 몽고반점을 떠올리며, 고비에다 주막을 차리겠다는 사내와 쏘다닌 열흘 동안을 나는 모든 지나간 날들과 아직 오지 않은 나날들을 어제와 내일로 셈하며 동업할 생각을 해 보았다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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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 시인의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가 제23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고 창비는 11일 밝혔다. 본심은 이시영·장철문·정끝별 시인이 맡았고, 예심은 신철규 시인과 오연경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단은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한 시대를 증언하면서도 우리의 미래를 투시해내고 있다삶의 터전을 민속학적으로 재현해내는 백석 시와의 친연성뿐 아니라, 개인의 삶이 역사적 사실로 변성되는 과정에서 발산하는 시적 에너지가 어떤 담론의 흔적보다도 곡진한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로 선정된 안상학 시인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시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동시집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 평전 권종대: 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등이 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5·18문학상, 권정생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받았으며,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원이 수여된다. 수상소감과 심사평 전문은 창작과비평겨울호(194)에 실린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신동엽문학상·창비신인문학상과 함께 11월에 열린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축소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자야(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10월에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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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 황규관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웃음이 너무 많다 노래는

없고 이파리 한 장 내밀지 못하는

언어가 객차 안에 가득하다

 

이번 차는 등을 돌리자

모험은 건조한 형식이 아닌데

내 몸이 당신의 맥박을 차갑게 하는

이번 차는 내 것이 아니다

행선지가 너무 명확하다

 

진리여 법이여

폐허의 입을 틀어막는 환희여

 

이번 차는 모른 척 보내고

우두커니 혼자가 되자

혼자가 되어

멀리서 내리는 빗소리를 듣자

 

다음 차도 보내고

다음다음 차도 보내고

저물녘에 우는 늙은 새울음도 보내고

슬픔에 사로잡힌 영혼도 보내고......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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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에 황규관 시집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문학동네)가 선정됐다.

 

백석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창비는 지난 4일 본심 회의를 열고 올해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이같이 결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노동 경험의 핍진성을 존재론적 기원의 한 축에 두고, 다른 한 축에 분명하고 서늘한 자연 사물의 운행 원리를 배치해가는 '시인 황규관'의 서정성이 보물처럼 빛나는 결실"이라며 "나태와 일상을 거부하는 평범치 않은 '발언'이 촘촘히 박힌 이 시집은 한국 리얼리즘시의 한 수준을 보여주면서도 우리 시가 발딛고 있어야 할 현실과 그 광활한 지평선을 활짝 열어줬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황규관 시인은 1968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철산동 우체국' '물은 제 길을 간다'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 등과 산문집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나기' '리얼리스트 김수영' 등을 펴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고() 자야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10월에 제정된 상이다. 상금은 2000만원.

 

시상식은 이달 하순쯤 방역 당국의 지침에 맞게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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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 나희덕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서정시마저 볼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파일에는 가령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 줌

손톱 몇 조각

한쪽 귀퉁이가 해진 손수건

체크무늬 재킷 한 벌

낡은 가죽 가방과 몇 권의 책

스푼과 포크

고치다 만 원고 뭉치

은테 안경과 초록색 안경집

침묵 한 병

숲에서 주워온 나뭇잎 몇 개

 

붕대에 남은 체취는 유리병에 밀봉되고

그를 이루던 모든 것이 <서정시>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서정시들과 함께

 

그들은 이런 것조차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화단에 심은 알뿌리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편지가 몇 통인지

숲에서 지빠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옷자락에 잠든 나방 한 마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하루에 물을 몇 통이나 길었는지

재스민차를 누구와 마셨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대출받았는지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저물 무렵 오솔길을 걷다가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

국경을 넘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이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 Deckname<Lyrik>.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쩨에 대해 수집한 자료집.

 

 

 

파일명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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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53) 시인이 올해 제21회 백석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출판사 창비는 6"나희덕 시인의 시집 '파일명 서정시'(창비)가 올해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수상작에 대해 "시인의 주변을 포함해 세월호로부터 아우슈비츠, 아프리카 초원의 누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에 편재한 죽음의 증후들 속에서 비극적 인식의 언어를 거침없이 토로했다""이제까지는 없었던 전혀 다른 시세계를 보여줬다. 이 시집이 리얼리즘 시의 예리한 갱신을 이뤘다고 평가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감시와 착취, 죽음과 절망이 도처에 존재하는 시대현실과 정면으로 맞서는 시집"이라고 평했다.

 

올해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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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 박성우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중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

 

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

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것

 

무심히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

 

 

 

웃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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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박성우 시집 웃는 연습이 선정됐다.

 

박 시인의 웃는 연습(창비. 2017)은 농촌 공동체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진솔하고 질박한 언어로 고향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이들의 면면과 갖가지 사연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포착한 통찰을 들려준다.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도시적 생활 감각과 속도를 존재의 한 부면에 상처처럼 새기기도 한다.

 

본심에는 고형렬(시인), 천양희(시인), 한기욱(문학평론가), 예심에는 안미옥(시인), 황규관(시인)씨가 심사를 맡았다.

 

심사위원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람살이 본연의 리듬을 창출해내고 이제는 희귀해져버린 토박이의 삶과 언어를 새롭게 발견한다는 점에서 백석의 시정신을 계승한다고 평가되어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박성우(47. 시인)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신동엽문학상과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 청소년시집 난 빨강, 사과가 필요해등이 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10월에 제정됐다. 창비가 주관해오고 있으며, 최근 2년 내에 출간된 뛰어난 시집에 주어지는 상이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원이 주어지며,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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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묵

 

 

검은 사내가 내 목을 잘라 보자기에 담아 간다 낡은 보자기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나는 구멍으로 먼 마을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날 연인들이 마을에 떨어진 보자기를 주워 구멍으로 검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꼭 한발씩 내 머리를 나눠 딛고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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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백석문학상에 신용목(43) 시인의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가 선정됐다고 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창비가 10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시대현실을 관통하는 가운데 타자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자유로운 언어적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세월호 이후의 시'가 다다른 일단의 성취를 보여줬다. 시인의 시력에 있어서도 한 절정을 이룬다고 평가돼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경남 거창 출신의 신 시인은 2000'작가세계'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작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노작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작은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에 이은 네 번째 시집이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1912~1996)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연인이었던 자야(子夜)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제정됐다.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을 심사해 수상작을 선정한다.

 

시상식은 이달 29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수상 시인에게는 상금 2000만원이 수여되며 수상소감과 심사평 전문은 계간 '창작과비평' 2017년 겨울호(178)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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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낙엽 / 장철문

 

 

아이는 새잎처럼 자라고, 나의 비유는 끝이 났다

올해 나는 잣나무 잎 지는 시기를 새로 알았다

송홧가루 날려 새잎 돋을 때다

꽃가루가 먼지와 섞이고 새잎에 빗방울 꿰일 때

 

나의 비유는 끝이 났다, 수맥이 옮겨간 숲처럼

나의 언어는

죽은 새의 부리처럼 갈라졌다

 

실뿌리에 축축하던 습기는 사라졌다

바라던 대로

오월의 산빛은 비유의 바깥에 있다

바라던 대로

파도와 비애는 언어의 바깥에 있다

 

비유는 죽고, 나만 앙상하게 남았다

내 생의 최대의 비유가

생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의 언어는 바닥을 드러냈다

 

변명의 여지도 없고, 불입할 낙장도 없다

 

오늘 잣나무가 쭉정이를 떨어뜨리는 시기를 새로 알았다

질펀하게 깔린 잣잎 위에

열매를 맺지 못한 작년의 잣송이들이 즐비했다

 

절필(絶筆),

아니면 녹음(綠陰)일까?

 

그 어느 쪽도 소식 없다

 

 

 

 

비유의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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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장철문(50) 시인의 시집 '비유의 바깥'(문학동네)이 선정됐다고 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창비가 2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좋은 시는 표현된 것 이상의 여백을 통해 더 큰 울림을 창출하기도 한다. '비유의 바깥'의 뛰어난 시들은 근래 한국시가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더 상회한다"고 평가했다.

 

장 시인은 1994'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마른 풀잎의 노래'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6월 펴낸 '비유의 바깥'은 네 번째 시집이다. 총 여섯 개의 매듭 안에 총 51편의 시가 나뉘어 담겨 있습니다.

 

백석문학상은 시인 백석(白石)의 업적과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연인이었던 자야(子夜)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제정됐다.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을 심사해 수상작을 선정한다.

 

시상식은 24일 오후 6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상금은 2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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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 / 백무산

 

 

가라앉은 것은 건져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항해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캄캄한 수심 아래 무거운 정적 속으로 배는 멈추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배는 오랜 시간 세상의 기술 다 동원해도 수백 층 매머드 빌딩 세우는 시간보다 더 오래 가라앉아 있어야만 한다

 

수십만 톤급 배를 함부로 주물러대지만 육천팔백 톤짜리 작은 배 하나 건져내지 못한다 세계에는 바닥을 건져 올리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순간에 거대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지식은 있어도 바닥을 인양하는 지식은 보유하지 못한 세계

 

하루아침에 거대한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막고 마천루를 들어올리는 기술은 있어도 저 버림받은 가벼운 목숨들 들어 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코끼리만 한 슈퍼돼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있어도 하루 일 달러면 살릴 수 있는 수억 명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기술은 보유하지 못한 세계

 

수만 킬로미터 상공에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수백억 킬로미터 태양계 밖을 항해하는 기술은 있어도 수십 미터 물 아래를 구조할 기계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정상 사회에서 일어난 정상 사고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상인 것은 건져낼 이유가 없다

 

세계의 신은 이제 구원을 위해서 오지 않고 심판을 하러 오지도 않는다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은 구조의 대상도 아니고 처분의 대상도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독재자는 이제 권력에 있지 않고 독재를 찬양하는 기술에 있다 모든 독재자의 공은 7이고 과는 3이다 진보주의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 기술은 첨단산업처럼 눈부시다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아우슈비츠도 731부대도 거기서 행한 생체실험으로 얻은 의학 지식으로 수많은 질병을 퇴치하고 죽은 자들보다 더 많은 인류를 구하지 않았느냐고 공이 7이지 않았느냐고

 

세계는 그렇게 간다 그래서 인양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 불을 붙일 수 있으나 끄지는 못하는 핵물질처럼 인양하지 않는 것이 세계의 합리성이다

 

물에 잠긴 것은 그대로 놔두고 이제 애도도 거두고 정상사회로 가라고 재촉하고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하듯이 그들은 안다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이 정상사회를 들어 올리는 부력이라는 것을

 

비참한 신체를 튀어나온 눈들 문드러진 손톱을 함몰한 가슴들 폐를 잠식하는 움을들 절단된 신체들 구조의 대상이 아니라 버림받음과 떨어져 나감과 절단은 관리의 대상일 뿐

 

언제나 침몰하지만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것 침몰한 후에는 침몰하는 일은 언제나 일어났던 일로 만들어내는 것 침몰하는 이른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 되게 하는 것 세계의 상식적인 질서가 되게 하는 것

 

무엇 때문에 인양할 것인가 인양할 이유가 사라진 것 무엇 때문에 구출할 것인가 구출의 이유가 사라진 것

 

그래서 세계의 신은 이제 구원하러 올 필요도 심판을 하러 올 필요도 사라진다 책임은 소멸되고 비참은 오직 관리될 뿐이다

 

무엇을 인양하려는가 누구는 진실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그걸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을 건져 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고 희망이 세상을 건져 올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은 희망으로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의 폐허다

 

 

 

폐허를 인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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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시인 백무산(60)의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창비)가 선정됐다고 상을 운영하는 출판사 창비가 4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백무산은 현실에 굳건하게 두 발을 딛고 시를 생산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잔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혹은 그곳에 발 딛고 무심한 듯 생각을 펼쳐보일 때 문득 그것들이 현실 너머의 장면처럼 느껴진다""절실하기만 하다면 현실과 초현실은 한끗 차이라는 것, 동전의 앞뒷면처럼 결국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그의 시는 실현해 보인다"고 평했다.

 

상금은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 6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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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낯선 / 전동균

 

 

물고기는 왜 눈썹이 없죠?

돌들은 왜 지느러미가 없고

새들이 사라지는 하늘은 금세 어두워지는 거죠?

저토록 빠른 치타는 왜

제 몸의 얼룩무늬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맘모스라 불리던 왕들은

맨 처음 씨앗을 뿌리던 손은 어디로 갔나요?

 

꼭 지켜야 할 약속이,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온 건 아니에요

우연히, 누가 부르는 듯해 찾아왔을 뿐이죠

누군지 모르지만, 그래서

잠들 때마다 거미줄이 얼굴을 뒤덮고

아침의 머리카락엔 불들이 흘러내리는 걸까요?

 

한 처음,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웃게 해주세요

지금 구르고 있는 공은 계속 굴러가게 하고

지금 먹고 있는 라면을 맛있게 먹게 해주세요

 

꽃밭의 꽃들 앞에 앉아있게 해주세요

우리처럼 낯선

꽃들이 피어있는 동안은

 

 

 

우리처럼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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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전동균(52) 시인이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우리처럼 낯선’(창비)이다.

 

백석문학상은 시인 백석(1912~1996)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문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백석의 연인이었던 고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제정됐다. 최근 2년 내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한다. 상금은 1000만원이고 창비가 주관한다.

 

심사위원을 맡은 문학평론가 최원식 씨는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속절없이 허락한 그 신에게 오히려 참회를 요구하는 반종교성을 통해 구원에 대한 갈구와 구원 없는 현대의 묵시록이 극적으로 전경화하는데, 그렇다고 꼭 비장 또는 감상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해학이 따뜻하다고 평했다.

 

전 시인은 1962년 경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소설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오래 비어 있는 길’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우리처럼 낯선등을 냈다. 현재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상식은 19일 오후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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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 / 엄원태

 

 

검붉은 벽돌담을 배경으로

흰 비닐봉지 하나,

자늑자늑 바람을 껴안고 나부낀다.

 

바람은 두어평 담 밑에 서성이며 비닐봉지를 떠받친다.

 

산벚나무 꽃잎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던 때, 눈물젖은 내 뺨을 서늘히 어루만지던 그 바람이다.

 

병원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 통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속수무책 깍지 낀 내 손가락들을 가만히 쓰다듬어주던 그 바람이다.

 

제 몸 비워버린 비닐봉지는

하염없고 하염없는 몸짓을 보여준다.

저 적요한 독무는

상처의 발가락마저, 두 발마저, 지워버렸다.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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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주관하는 제15회 백석문학상에 시인 엄원태(63)'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가 선정됐다.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된 작품에는 상금 1,000만원이 제공된다.

 

엄원태의 이번 시집은 따뜻한 입김처럼 잡념 없는 사람의 잡음이 없는 말이 잔잔하게 독자의 마음속을 파고든다. 그것이 그의 시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사람. 내면의 풍경에 당도해 있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타나 호수가' '고통의 임계 지점'을 지나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시집의 표제작처럼 그의 시는 멀리서 천천히 먼 우레처럼 결국엔 우리에게 다시 올 것이다.

 

시인 엄원태는 1990년 계간문학지 '문학과사회''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침엽수림에서''소읍에 대한 보고''물방울 무덤''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대구시협상 등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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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 최정례

 

 

내 속에 캥거루가 있다면 믿지 않겠지요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캥거루가 새끼를 주머니에 안고 겅중겅중 뛸 때

세상에 별 우스꽝스런 짐승이 다 있네

그렇게 생각했지요

하긴 나도 새끼를 들쳐 업고

이리저리 숨차게 뛰었지만

그렇다고 내 속에 캥거루가 있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요

TV에서 캥거루가 권투를 하는 걸 보았어요

사람이 오른손으로 치면

캥거루도 오른손을 뻗어 치고

왼손을 뻗으면 다시 왼손으로 받아치고

치고 받고 치고 받고

사람이나 캥거루나 구별이 안 되더라구요

호주나 뉴질랜드 여행 중 느닷없이

캥거루를 만나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앞발을 내밀어

악수를 청할 수도 있겠더라구요

나는 가끔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캥거루 주머니에 빗물이 고이면 어쩌나 하는 식으로

우리 애들이 살아갈 앞날을 걱정하지요

한번은 또 TV에서

캥거루가 바다에 빠진 새끼를 구하려다

물속으로 따라가 빠져 죽는 장면을 보여주더라구요

그 주머니를 채운 물의 무게와

새끼의 무게를 가늠하다가

꿈에서는 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지요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한밤에 이렇듯 캥거루 습격을 당하고 나면

영 잠이 안 오지요

이따금

캥거루는 땅바닥에 구멍을 판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그 구멍으로 아무것도 안 한다네요

나도 쓸데없이 구멍을 파고

아무것도 안 하게 되네요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nefing.com

 

 

14회 백석문학상에 시인 최정례(57)의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가 선정됐다고 이 상을 주관하는 창비가 12일 밝혔다.

 

5년 만에 독자들을 찾아온 최정례의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54편의 시들은 기억의 편린과 편린, 그 겹침의 통증이 전작보다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 시집이다. 시인은 여전히, 기억을 통한 현실의 재구성과 거리두기의 감정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훨씬 더 밀도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금은 없는 것을 현재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상 운영위원회는 "최정례의 시집이 이전에 비해 훨씬 깊고 진실해진 느낌이다. 분명한 전언에 접근하면서도 삶의 깊은 어느 곳을 울려내고 있다"고 선정 배경을 전했다.

 

6회 창비장편소설상에는 김학찬(29)'full'이 뽑혔다.

 

창비는 "소재에 대한 장악력이 좋고 인물들이 생동감 있게 살아 있으며 간결한 대화를 위주로 전개되는 스토리텔링 솜씨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고 밝혔다.

 

상금은 백석문학상 1천만 원, 창비장편소설상 3천만 원으며 시상식은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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