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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철도문학상 운문부문 당선작] 최연수 노원숙 김정순


우수상
문득, 나비 / 최연수



설레는 햇살 한 짐을 들쳐 멘 나비,
철둑 개찰구를 가뿐하게 빠져나온다


허공 몇 장을 넘겨 행선지를 훑더니
빠듯한 시간,
단락도 쉼표도 생략한 채 달아오른 철길을 읽는다


레일에 꽂힌 날개가 책갈피가 되는 느낌을
나는 이쯤에서 읽는다


저만치 소실점을 끌고 오전이 달려오고


점점 커지는 녹슨 울림을 완독하지 못한 날개가
사뿐, 열차 선 밖으로 물러선다


아른아른 계절을 싣고
휘우듬 오월의 행간을 빠져나가는 열차소리


달리는 것밖에 모르는 열차처럼
날아갈 일밖에 없는 나비는
얼마나 많은 꽃의 운명을 통과했을까


노곤함을 어깨 한켠으로 비스듬 내어주는 여행길
뿌리 깊은 족보가 어느새 너울너울 멀어진다


내게서 이미 날아가 버린 편도의 인연들


문득, 마음을 빠져나가는 가벼운 날개를
앞섶에 꽂고 싶은데
내 들숨과 날숨을 읽지 못한 나비의 속독이
저만치 멀다


나를 벗어난 여행은 다시
익숙한 노선을 따라 돌아올 수 있을까


저 너머, 차표 한 장을 들고
막 여름을 향해 들어서는 백모란
깨알 같은 KTX시간표가 초속으로 넘어간다





우수상
사북 청년 / 노원숙

 
 
철길 끝에, 가만히, 누워본다


철길의 끝은 시작이 없어서
늘 끝에서 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이 철길 끝에서 태어나
철길 위에서 오지 않는 광차를 기다리다 돌아가셨다
객지에서 불어온 훈풍에 훌쩍 떠나고 싶었겠지만
아버지는 레일을 받치는 나무처럼 식구들을 껴안았다
유곽을 전전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귀향한 고모와
시꺼먼 러닝 자국과 함께 사우디에서 귀국한 삼촌을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철로를 붙잡고 납작 엎디어


사북, 후미진 탄광촌은 이제, 사람보다 석탄이 귀한 곳이다
눈 코 입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곳에 철길이 있다
철길 끝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가난한 아버지가, 아직도 내 손을, 뜨겁게 잡고 있다고,
일기에 쓴다, 또박또박


죽은 아버지가 일어나 갱도를 걷고 있다




우수상

소금가루 같은 시간들 / 김정순



겨울 우리는 겨울이라는 두 글자에서 모든 추운 것들을 다 연상했었다 눈 내리는 밤이었다 눈이 틈을 타고 뼈로 스밀 것 같았다 몸통만 남은 나무처럼 우리는 껍질마저 금방 벗겨질 만큼 헐었고 틈이 벌어져 있었다 온기는 등을 통해 벽 쪽으로 순간이동하여 몸이 떨리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누군가의 껌 씹는 소리 얼음 깨는 듯하던  아마 새벽 세시 무렵 다리 한쪽을 꺼떡꺼떡 흔드는 남자의 시선 끝에는 허벅지를 다 드러낸 어린 여자가 금연 푯말 아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지방의 어느 도시로 가는 중 이었다 버짐 핀 얼굴 볼에는 실핏줄을 하고 아침 해처럼 불쑥 솟을 초란한 희망을 품고 밤기차에 올랐다 그곳에는 해질녘이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에게서는 소금기가 묻어났다 바다가 있는 곳을 지날 때 창문을 열었던 것 같다 그때 품었던 어떤 생각들이 절여져 간기를 품었던가 보다 밖에서 서성이는 찬 기운들이 서러워 미운 게 많았다 밤 깊도록 불을 환히 켜두고 있는 집을 보았을 때 허연 소금가루같은 시간들이 떨어졌다




http://www.krcf.or.kr/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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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사북역, 이름 없는 열차 / 정재돈

 

불빛이 죽어버린 탄광촌, 차츰 이름이 희미해져가는 열차가 있다
허름한 옷 입은 오후가 아쉬운 탄식을 쏟아내며 갱 입구로 나왔다 
닫힌 탄광의 문 앞에 서서 입은 옷을 벗으려 하는 햇살, 아련한 옛 기억을 더듬고 있는 것일까

 

누구나 한때 헐벗은 적이 있지만 햇살은 연탄처럼 누더기 옷을 기워가며 입던 때를 잊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녹슨 철문 출입금지 푯말, 마치 외부와 단절하고 살아온 독거노인을 보는 것 같다 삭막한 오후의 하품이 갱 입구에 눌어붙었다

 

광부들의 땀 냄새 묻은 철로, 자식이 꿈이고 희망이었을 고된 삶의 현장, 생존의 끈으로 묶여있던 인차가 덩그러니 멈춰있다. 차츰 이름이 지워져 가는 열차들, 사북역 철로를 따라 가장들의 텁텁했던 한숨이 갱 입구까지 줄지어 앉아있다

 

만차의 꿈을 달리던 사북의 시간은 멈췄고 지난날 산업 전사들의 애끓는 숨소리도 멈춰있다. 나는 문득 갱 입구, 군데군데 남아있는 시커먼 흔적들에게 미안했다. 낡은 철로는 차츰 밤으로 향하고 희미한 달빛 속으로 마지막 석탄냄새가 풍겼다

 

광부들의 혼이 피어난 사북역, 그들의 애끓는 가슴앓이가 지천의 산에 애잔한 야생화로 피어났다. 갱도 안에 별처럼 아름답게 박힌 흔적들, 문득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석탄을 가득실고 나에게 깜냥깜냥 다가올 것만 같다

 

 

 

 

 

 

   

[우수상] 마지막 기차와 기관사 / 이숙희

   

아까시나무의 집* 남자가 기차에 올랐다

영원히 닿지 못할 행성의 간이역들을 향해

같은 속도를 내며 그는 타원으로 돌고 있었다

기차는 알 약 한 봉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마지막 운행을 위해 레일 위에 섰다

몇 몇 사람들은 잿빛 코트를 입고

창가 의자에 기댄 채 캡슐처럼 녹고 있었다

경춘선 기차의 가뿐 숨소리가 그르렁 거리며

지나왔던 과거의 길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아직식지 않은 커피 잔에는 벽보의 낙서들이 흔들린다

남자는 햇살의 밸브를 열어 언 강물 위에 풀어 놓았다

어디로 갔을까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물새소리

철길 옆 나뭇가지엔 흉흉한 소문들이 웅성였다

산의 허물을 밀어내고 터널을 빠져 나오던

기차는마디마디 꺾어진 몸뚱이 봉합하듯 어둠을 메워 넣고

바퀴에 감겨있던 기억들을 녹슨 레일 위에 펼쳐놓았다

강둑을 돌아 산모퉁이를 기어오르다 돌아보며

등 뒤에 버려진 무관심의 껍데기를 바라본다

그때 철컥철컥 귓전에 울리는 마지막 기침소리

멈춤 신호등 멈춤 신호등 멈춤 신호등

고독한 절지동물이 더듬이를 땅에 내려놓는 날

봄나물이 가득한 밥상을 누군가 흰 눈으로 덮어주었다

방금 전 폐역이 된 종착역이 쾡 해진 눈으로 작별인사를 한다

남자가 기차에서 내려 길을 걷는다

한때는 차창 밖으로 보였을 풍경들이 뒤 따라 오고 있다

오래된 철근 구조물이 링거를 맞고 폐목이 새 삶을 꿈꾸는 곳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복 입은 남자는

어느 경치 좋은 강변 가를 달리는 꿈을 꾸고 있을까

텅 빈 철로 위에 레일의 자유로운 영혼이 두 팔 벌려 누워있다

 

* 아까시나무의 집-정우영 유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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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정선역의 어머니 / 장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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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속의 두 와불 / 정성수

 

차창은 풍경들을 계속 뒤로 던지고 신문의 끝장을 펴 들었을 때였다

문득 어깨에 얹혀오는 머리

가만히 밀어냈다 여자가 몸을 한 번 뒤척인다

또 다시 얹혀오는 머리

가벼이 코 고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반쯤 누워있는 와불이다

어깨를 뺀다는 것은 이승에서 죄를 짓는 일일 것 같아서

나도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함께

와불이 되기로 하였다

생면부지 남여가 순간 살림을 차렸다

남자가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여자가 밥을 짓고

시시덕거리며 소꿉장난 같은

신접살림을 차린 것이다

기차가 터널을 뚫고 들을 지나 소리치며 강을 건너가는 사이

두 와불은 만리장성을 쌓고

억겁의 인연으로 서로를 묶었다

한 말의 깨가 쏟아지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남자와 여자는 황망히 꿈속에서 이승으로 돌아왔다

나는 비몽사몽이었고

여자는 날렵한 솜씨로 화장을 고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울역 에스케러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여자

뒤를 돌아본다

기차가 마지막 어깨를 한 번 들썩인다 여기가 인연의 종점이라고

 

 

 

 

 

젓가락 위를 달리는 기차 / 김봉래

 

삼촌은 누워서도 빨간 깃발을 흔들었다

한 낮에는 가슴까지 러닝셔츠를 밀어올리고

앙상한 갈비뼈를 따라 두 손가락이 칙칙폭폭 달렸다

열차가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엔

대기하던 한 쪽 팔이 어김없이 번쩍 들렸다

삼십여 년 넘게 반복해온 수신호이기에

생각하지 않아도 반응하는 것이리라

삼촌이 기차놀이를 시작한 시기는

그의 며느리에게 존댓말을 할 무렵부터이다

어느 날은 부엌의 모든 젓가락으로

하루 종일 철로를 만들었다

언제나 자로 잰 듯 정확하던 삼촌은

누구에게나 균등한 간격으로 침목을 놓았었다

단 한 줄, 생의 구김조차도 허락할 수 없었는지

제복은 물론이고 깃발에도 다림질을 하곤 했다

레일이 땅속으로 이동하고

건널목 관리소가 철거된 후에도

한쪽 벽에 단정히 걸어둔 역무복을

한동안은 매일아침 입어 보던 삼촌,

한 해를 꼬박 기차놀이에 몰두하더니

불현듯 그만두고 액자 속으로 들어갔다

삼촌의 영정 앞에는 작은 향로와 젓가락이

건널목 관리소와 레일처럼 놓여있다

기억 저편으로부터 열차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삼촌의 젓가락위로 열차가 진입하자

환하게 웃고 있던 삼촌은

아직 벽에 걸려있는 제복 속으로

스르르 스며든다

 

 

 

 

해발435m* 기적 소리 / 정석교

 

길이란 죄다 돌아가야 하는 줄 알았던, 철로의 시작은 내 곁에서 출발했다. 골골마다 억척스런 삶을 토닥이고 폐탄장 돌아 온 기적 소리 플랫폼 안겨오면 느티나무아래 숨어 은밀한 편지 읽던 누이며 시절과 평행선을 긋던 응어리진 삼촌의 마음도 강물은 검다는 동심을 마중하던영동선 열차, 마분지 차표 한 장 덥석 받아주었다

 

이별과 재회, 옹송옹송한 이야기 지그재그 단숨에 풀어낼 수 없는 스위치 백 73년 가파른 길, 해마다 속으로만 붉게 익는 무화과 태생처럼 한 길로만 지켜내던 수줍은 긴 연정(戀情) 가파른 길 몇 번의 늘임표 쉼표를 찍으며 직진이 아니어도 후진으로도 넘을 수 있다는 것 앞만보고 달린 내 생의 과석방지 턱 같은 나한정역, 모든 기차는 여기서 보란 듯 명쾌한 기적을 울렸다

 

플랫폼 빨간 장미꽃 오래 기억하는 부부 장승 사진 한 장 찰칵, 기적소리처럼 찍혀가는 유월 산내마을 골골 푸른 메아리로 곱게 펴 너른 캔버스에 하나둘 그려내는 수채화 속도를 탐하지 않는 뜨거운 것 목이 메었다. 강릉 발 1686 무궁화호 대전 발 3225 화물열차 전송하는 깃발 속으로 오르내리는 해발435m 그 길, 저 우렁찬 것 품은 아름다운이별 받아들여야 한다

 

쉬이 오르고 싶었을 그 정상의 행렬 바쁜 세월의 갈증을 풀고 한 박자 쉰 여유 해발435m 기적 소리, 샐빛 그리운 막장 안 노광부 오랜 기침소리 관통하고 솔안터널 열어가는 청량리 발 1641 무궁화호, 딴딴한 산맥의 푸른 꿈 새로운 타전을 시작한다. 굽은 길 높은 길 열었던 73년 기적 소리 품고,

 

* 스위치백(Switch Back) 구간인 삼척시 도계역과 통리역 사이의 고도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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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뉴시스】박희송 기자 = 단편소설 부문 '역(驛)에서'가 제4회 철도문학상 일반부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사장 김광재)은 한국철도문화재단과 공동 주관으로 30일 오후 2시 한국철도시설공단 3층 대회의실에서 '제4회 철도문학상 시상식'을 갖고 단편소설 등 5개 분야 당선자 20명에 대한 표창과 상금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서 일반부 최우수상인 국토부장관상은 단편소설 부문 '역(驛)에서'의 차정은씨가 영예를 안았다.

우수상으로 수필부문 '그 플랫폼엔 당신이 있었다'의 전지원씨가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상을, 시부문에서는 '기차속의 두와불(臥佛)'의 정성수씨가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장상을 각각 수상했다.

아울러 차권영 군의 詩 '도라산역'이 중고등부 최우수상을, 김유진양의 단편소설 '기차나들이'가 초등부 최우수상 수상 등 총 20개 문학작품에 대한 시상을 했다.

철도문학상은 철도시설공단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의 공동 후원으로 일반부·학생부로 나눠 지난 6월1일부터 8월15일까지 작품 공모를 거쳐 한국작가회의 문동만시인,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소설가 등이 참여한 분야별 심사위원회의 엄정한 1·2차 심사를 통해 10월10일 최종 당선작을 선정, 발표했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철도문학상은 철도를 소재로 문학창작 활동을 촉진,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도하는 철도를 널리 알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철도의 이미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2009년부터 전국 초·중·고등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5개 부문(동시, 시, 시조, 수필, 단편소설)별로 다양한 작품을 공모, 우수작에 대해 시상하고 있다.

이날 시상식에 이어 '철도문화유산의 보존·활용을 위한 정책세미나'를 열어 우송대 이용상 교수(한국철도학회장)의 '20세기초 동아시아 철도 비교연구', 석림건축연구소 이기욱소장의 '문화재 철도시설물의 활용현황 분석 및 대전철도보급 창고 활용방안 연구'에 관한 주제발표와 철도문화유산 보존·활용을 위한 관계 전문가의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철도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그 동안 소홀히 해 왔던 '철도문화유산 활용 및 철도가치 증대방안' 등 철도문화 진흥을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됐다"면서 "철도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heesk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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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기차 / 하수현


1


뽀얗게 얼어 입을 다물고 있는

그 겨울 차창을 통해

낯선 설국(雪國)을 오래오래 내다보았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

설원은 아직도 눈보라가 있는 바다였고,

나는 나비인 채 눈보라를 헤치며

겨울을 꿈결처럼 순항(巡航)하고 있었지.


겨울밤에 남긴 독한 술이

여행 가방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에는

눈꽃으로 피어난 나뭇가지들이 찬바람과 수런거렸네

내 가슴을 통째로 흔드는 저 눈꽃은

달리는 열차에 시선(視線)을 보내기도 했지만

두고 온 먼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결국 안겨 주었네

내게 시선을 보낸 것은 눈꽃만이 아니라

농가의 나무집들, 뿔이 무성한 순록들,

시베리안허스키의 검은 눈망울도 마찬가지였지.


눈보라의 군무(群舞)에 하얗게 질려 있는

자작나무의 행렬,

그 행렬과 함께 설원을 흐르는 열차는

하바롭스크역을 몇 번의 기적(汽笛)으로 깨웠네

이제 막 눈을 뜬 플랫폼에

도열해 있는 저 하얀 입김들은

아시아인, 유럽인, 그리고 지구촌 가족들이 지닌

꿈의 명찰이었네

플랫폼에서 잠시 뜨거운 숨을 고른 후에

열차는 설원의 서쪽을 향해 다시 달음질쳤네.



2


마침내 저 멀리에,

장대(長大)한 바이칼 호수의 수면에서

생명의 물안개가 쉼 없이 피어오르는 것을

가슴을 열고 온몸으로 보았네

저것은 유라시아의 젖줄, 우리의 시원(始原)이었지

바이칼 호수의 남쪽 언저리를

혹은, 호수에서 피는 안개의 허리를 감싸 안고

열차는 이르쿠츠크를 향해 가고 있었네.


기나긴 철로 위를 갈 때에

눈보라의 견고한 발톱이 열차를 붙잡기도 했네

삶이란 바로 저 철로를 가는 것이라 여기며

언제나 전력(全力)을 다해 달리지만

삶에도 역(驛)이 있어서 영혼들은 잠시 쉬어 가는데,

그건 마치 날갯짓에 지친 새들이

햇살이 누운 산록에 날개를 내리는 것과도 같지.


지친 발걸음을 좀 더 가볍게 하기 위하여

발목마저 벗어 던질 수는 없었네

삶의 궤도를 강물처럼 흘러가야 하는데

흘러가는 일조차 저절로 되진 않으니 내 어쩌나,

열차는 겨울의 한 자락을 언 입으로 꼭 물고서

기나긴 시베리아를 미끄러지듯 흐르는데

아아, 저 설원의 함성이,

알 수 없는 절규의 행렬이 자꾸만

내 등 뒤로 비켜 가는 것을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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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철도문학상 당선 결과 발표

 

안녕하세요. 한국철도문화재단입니다.
제 3회 철도문학상 결과를 다음과 같이 알려드립니다. 

       -       다       음        -

♣ 일반부 (5名)

최우수 : 화서역 승강장 10-2 (이신재)
   우수 : 꿈의 통로 (정선진)
   우수 : 막차를 기다리며 (오정순)
   우수 : 겨울로 가는 기차 (하수현)
   우수 : 완행열차와 어머니 (이철)


♣ 중고등부 (6名)

최우수 : 종착역 (김기윤)
   우수 : 외딴 마을 간이역 (나유진)
   우수 : 기차역에 유년을 묻다 (김주희)
   장려 : 간이역 (이승혁)
   장려 : 밤에 퇴근한 기차 (김석곤)
   장려 : 승부역으로 가는 기차 (강지형)


♣ 초등부 (9名)


최우수 : 철길 (김현준)
   우수 : 그때와 같은 마음 (장혜진)
   우수 : 기차는 추억을 달린다 (손윤영)
   우수 : 기차 (최다인)
   장려 : 기차여행 (황하운)
   장려 : 기차 타고 할아버지댁으로 출발 (안성현)
   장려 : 지하철 (양민석)
   장려 : 애벌레기차 (심진호)
   장려 : 기차를 타고 만주 벌판으로 (강찬이)


작품 당선되신 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추후 자세한 사항은 개별통보 예정)


 

한국철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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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에서 / 김미외

   

하루하루를 바람받이로 살다가

낡아만 가는 스스로가

거추장스럽다 못해 버겁기만 한 날

잊혀 진 존재였다가

그리움이 되어버린 간이역에서

새벽의 여명을 맞이하고 싶다 

낯선 이름 적힌 차표 한 장 그러쥐고

천천히 시간 사이를 달려 도착한 그 곳엔

오롯한 의자 몇 개, 푸른 하늘과 조각구름

맨드라미, 백일홍, 코스모스가 피어있을게다 

나는 그 곳에서 달리는 열차를 만나면

함박웃음으로 손 흔들던 오래전의 아이처럼

멈춤 없이 달리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눈시울 붉히는 노을 내리면

서늘바람과 함께 철길을 걷고

이슥토록 어둠별과 눈웃음 나누다

새벽노을 속 풀꽃 여는 아침

거미줄에 매달린 이슬을 밟고

어슬렁어슬렁 아침 사냥 나서는 거미처럼

찾는 이 없고 반기는 이 없어도

꿈과 희망을 바퀴로 끼워

또 다른 시간을 향해

삶을 덜컹거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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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원역 / 최 윤

 

태백을 넘어온 소식들이

쿨럭이며 해발 700여 미터의 고지를 오른다

눈(雪)처럼 소복해진 눈두덩을 비비며

꿈많은 이들의 고단함을 실어나르던 완행열차

충혈된 쇳소리 길게 울리며

숨가쁘게 올라온 산맥의 장대한 등뼈가 꿈틀거리고

차창 눈시린 계곡마다 성에꽃이 피고 진다

잠시 숨을 고르는지 둔탁한 앞발을 모으고 섰는 태백선

산굽이를 밀어내고 깊은 토혈을 뱉어내느라

기적소리 허기진 칭얼거림이 낮게 휘어진다

늙은 역무원이 고원에 서서 깃발을 흔든다

아득한 시공을 견디며 흩날리는

저 오래된 한 점 노숙의 별, 별들

그가 늙어가는 동안

검은 탄광은 잊혀진 풍경이 되었고

이제 누구도 막장인생을 말하지 않는다

뼈 아픈 시간들이 소복소복 쌓여있는 역사를 뒤로 한 채

잠시 정차했던 추억과 사연들

푸른 불빛을 삐걱이며 어디로 저어가는가

폭설이 내리고

자미원은 또 혼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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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역 / 김명화

 

이정표엔 갓 싹을 틔운 페인트 냄새가 푸릇하다

승강장엔 무궁화며 분꽃이며 금잔화 모여 앉은 모습

봉숭아는 꽃물 빨간 첫사랑을 나누고 있다

바람은 아지랑이를 서너 대 피워 물고 망초꽃 무더기를 내뿜는다

열차시간표를 찰칵이며 찍는 사시나무 한 그루

구름은 이마 위에 손챙을 만들어 철길을 내다본다

길 옆 미루나무의 시계바늘은 정오

탱탱, 느슨한 쇳길을 담금질하는 햇살은 발이 뜨겁다

잘디잘게 부스러진 돌들의 끊어진 신경돌기가 쭈뼛거리고

기차의 질주본능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철로가 서서히 날을 세우자

헐떡이며 달려온 그림자가

평행선을 긋느라 가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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