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철도문학상 운문부문 당선작] 최연수 노원숙 김정순
■ 우수상
문득, 나비 / 최연수
설레는 햇살 한 짐을 들쳐 멘 나비,
철둑 개찰구를 가뿐하게 빠져나온다
허공 몇 장을 넘겨 행선지를 훑더니
빠듯한 시간,
단락도 쉼표도 생략한 채 달아오른 철길을 읽는다
레일에 꽂힌 날개가 책갈피가 되는 느낌을
나는 이쯤에서 읽는다
저만치 소실점을 끌고 오전이 달려오고
점점 커지는 녹슨 울림을 완독하지 못한 날개가
사뿐, 열차 선 밖으로 물러선다
아른아른 계절을 싣고
휘우듬 오월의 행간을 빠져나가는 열차소리
달리는 것밖에 모르는 열차처럼
날아갈 일밖에 없는 나비는
얼마나 많은 꽃의 운명을 통과했을까
노곤함을 어깨 한켠으로 비스듬 내어주는 여행길
뿌리 깊은 족보가 어느새 너울너울 멀어진다
내게서 이미 날아가 버린 편도의 인연들
문득, 마음을 빠져나가는 가벼운 날개를
앞섶에 꽂고 싶은데
내 들숨과 날숨을 읽지 못한 나비의 속독이
저만치 멀다
나를 벗어난 여행은 다시
익숙한 노선을 따라 돌아올 수 있을까
저 너머, 차표 한 장을 들고
막 여름을 향해 들어서는 백모란
깨알 같은 KTX시간표가 초속으로 넘어간다
■ 우수상
사북 청년 / 노원숙
철길 끝에, 가만히, 누워본다
철길의 끝은 시작이 없어서
늘 끝에서 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이 철길 끝에서 태어나
철길 위에서 오지 않는 광차를 기다리다 돌아가셨다
객지에서 불어온 훈풍에 훌쩍 떠나고 싶었겠지만
아버지는 레일을 받치는 나무처럼 식구들을 껴안았다
유곽을 전전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귀향한 고모와
시꺼먼 러닝 자국과 함께 사우디에서 귀국한 삼촌을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철로를 붙잡고 납작 엎디어
사북, 후미진 탄광촌은 이제, 사람보다 석탄이 귀한 곳이다
눈 코 입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곳에 철길이 있다
철길 끝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가난한 아버지가, 아직도 내 손을, 뜨겁게 잡고 있다고,
일기에 쓴다, 또박또박
죽은 아버지가 일어나 갱도를 걷고 있다
■ 우수상
소금가루 같은 시간들 / 김정순
겨울 우리는 겨울이라는 두 글자에서 모든 추운 것들을 다 연상했었다 눈 내리는 밤이었다 눈이 틈을 타고 뼈로 스밀 것 같았다 몸통만 남은 나무처럼 우리는 껍질마저 금방 벗겨질 만큼 헐었고 틈이 벌어져 있었다 온기는 등을 통해 벽 쪽으로 순간이동하여 몸이 떨리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누군가의 껌 씹는 소리 얼음 깨는 듯하던 아마 새벽 세시 무렵 다리 한쪽을 꺼떡꺼떡 흔드는 남자의 시선 끝에는 허벅지를 다 드러낸 어린 여자가 금연 푯말 아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지방의 어느 도시로 가는 중 이었다 버짐 핀 얼굴 볼에는 실핏줄을 하고 아침 해처럼 불쑥 솟을 초란한 희망을 품고 밤기차에 올랐다 그곳에는 해질녘이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에게서는 소금기가 묻어났다 바다가 있는 곳을 지날 때 창문을 열었던 것 같다 그때 품었던 어떤 생각들이 절여져 간기를 품었던가 보다 밖에서 서성이는 찬 기운들이 서러워 미운 게 많았다 밤 깊도록 불을 환히 켜두고 있는 집을 보았을 때 허연 소금가루같은 시간들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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