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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행간에 비친 주님 / 김재호


행간마다 저 깊은 곳에서 생수가 샘솟는다

엿새 동안 펼쳐진 좋았더라 좋았더라의 행진이 끝나고 그가 안도하며 긴 숨을 내쉬었을 때 시간의 동선에서 비켜선 선자의 낯익은 생각들이 상처
위에 앉은 수포처럼 증식되는 무수한 무중력의

밤하늘 별을 보며 올려드리던 기도는 유성처럼 스러져 가는데 화해의 손을 내밀던 날의 빛은 외마디 비명 같은 꼬리 남기며 사라지고 포도원을
서성이던 가슴엔 시작도 끝도 여반장이라 기포처럼 선명하게 흩어지는

향방을 모르기는 바람뿐 아니다 그가 동하면 서요 서하면 동이라 허물은 부스러기라도 벗어내야 하고 용서는 티끌이라도 탓하지 않으니 봄을 맞아
제 몸을 터뜨려 순례를 시작하듯 짓누르는 무게의 침묵을 벗으라 얍복 나루에서 환도뼈 꺾이리니

가죽옷을 짓고 무화과 잎으로 가린다고 덮이랴 유리 천정 위에 서면 수치가 드러나리니 오호, 통재라! 신이여 나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고백의
수직 물관을 당겨 거북등 같은 허물을 채우리니 한 생을 부리며 허세로 휘적이던 때 묻은 옷자락을 그의 강가에 벗어내려 하네

포도원 문 열고 들어선 별이 기억의 지층을 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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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이은심/ 종탑이 있는 마을

[우수상]

정범석/ 갯벌
오정순/ 어머니와 지우개
장헌권/ 어머니의 기도
최인경/ 생강 사람
곽홍란/ 겨울나무
강서경/ 당신
김희숙/ 바닥을 향한 시
이동주/ 매화
김은숙/ 올리브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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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우수상]

 

 

 

[우수상] 미역 / 이석재

 

 

시간을 정지시키면 외롭지 않으리라 여겼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기를 떠나보내며

부드러웠던 몸이 딱딱해져가는

서른 세 살의 사내가 맞이했던 그 춥고 적막한 어둠처럼

불안을 깨물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네

차가운 눈발 불 켜진 유리창에 투신하며 눈물이 되는

속 쓰린 새벽에도 그랬었네

낯선 사랑이 끼어들 수 없도록

잘 수축된 힘줄과 근육과 혈관 속에서

한결 헐렁해진 기억들이 따뜻한 갈증으로 수런거릴 때

양푼에 담긴 한 바가지 물속으로 번지점프를 하듯

아아 그렇게 몸을 던졌다네

정지되었던 시간이 풀려나는 느낌을 아는가

그 간질간질하면서도 스멀스멀 찾아드는

묘한 부활의 쾌감은

첫사랑의 느낌처럼 찾아온다네

오래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의 숨결처럼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온다네

혈관마다 연초록 피톨들이 콩콩콩 뛰어다니고

굳었던 근육들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내 안에 갇혀있던 두려움도 함께 풀려나

어디론가 재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보았네

바람의 손을 빠져나와 일렁이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펄럭거리며 사라지고 있었네

까닭없이 눈물이 핑 도는 맑고 시린 부활의 아침에 말일세

 

 

 

 

 

[우수상] 허수아비 / 이희경

 

 

알곡 여문 이삭이 바람을 묵상하는 동안

절정에 닿은 기운이 모자 위로 내려앉습니다

호흡 있는 이름을 누리며

고요의 언어를 통독한 목울대

신음도 묵음이기에 잠시 바스락거릴 뿐

참새의 간계를 단번에 알아차립니다

궁티 나는 가슴을 그늘에 가둔 채

검불이 되어 사라질지도 모르는 생애

좀이 슬지 않는 뼈대와 옷 한 벌은

비루한 영혼을 구원하신 주인의 증표입니다

황량한 아픔이 뼛속으로 스미는 저녁

들판에 흘린 외로움을 눈치챘는지

붉은 울음 만개하는 구름

화려한 옷이 최고라던 건너편 친구는

연신 마른기침을 합니다

바람을 타고 달아나 버릴까

곤고한 직립이 멍에처럼 버거워

볏단 속에 마른 눈을 구겨 넣고 돌아서다가도

헐렁한 육신으로 깨달을 수 없는 일체의 비결

혈연을 깨닫게 해준 말씀을 읊조리며

슬며시 고개 드는 겉사람을 밀어냅니다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해야할 일을 한 것뿐이라

십자가처럼 벌린 두 팔과 발목에

햇살이 대못을 박으면

고개 숙인 계절을 파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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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 통해 기독문화 지평 넓히려는 독자들 참여 열기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행사를 못해 작년 응모작품과 금년 응모작품을 더해 모두 4800여편을 심사했다. 한국문인선교회장 김연수 시인을 심사위원장으로 김수영 김원 김기동 석희구 신호범 심사위원 등의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50여편이었다.

최종심에선 심사위원장 이근배(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시인, 심사위원 김상길(전 신앙계 사장) 최규창(전 기독교신문 주필) 김소엽(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 회장) 김연수 시인이 지난 12일 최우수상에 이경은의 ‘어머니의 무릎’, 우수상에 이희경의 ‘허수아비’ 김태호의 ‘붉은 흙’ 이석재의 ‘미역’을 선했다. 최우수작 ‘어머니의 무릎’은 절박한 이 시대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모성에 투영, 시각화된 언어로 표현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응모해 신앙시에 대한 관심과 열망 그리고 시를 통해 기독문화의 지평을 넓혀 가려는 독자들이 많다는 긍정적인 면을 접했다. 하지만 영성과 예술이 일체를 이루는 완성도 높은 대상작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고 심사위원들은 입을 모았다.

그 빈 자리에 우수작품 3편을 뽑아 아쉬움을 대신한다. 격려의 의미로 금년에는 장려상도 12명 선정했다. 김귀순의 ‘탁본’ 고명숙의 ‘봄동’ 길덕호의 ‘담쟁이의 기도’ 김해리의 ‘재봉틀’ 박수자의 ‘뜨게질’ 설봉수의 ‘어머니의 기도’ 양성진의 ‘나의 구들장’ 오윤석의 ‘그림자되기’ 오정순의 ‘혀밑에 숨겨둔 말’ 이동아의 ‘민들레에게’ 이혜정의 ‘가시품은 형틀’ 정대기의 ‘한줄기로 산다는 것’ 등이다.

- 심사위원 : 이근배, 김상길, 최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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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가죽성경 / 서김상규

 

 

하얀시트 위에 성경책이 누워있다

앙상한 뼈대를 덮은 가죽 표지에서

산소호흡기로 숨길을 열어 페이지를 펼친다

들숨 날숨이 자음 모음의 활자로

심전도 그래프에 말씀으로 엮인다

 

고된 생의 만년체로 살아나는 일대기

가난이 족보로 대물림된 땅뙈기에

가나안을 이루는 꿈을 일구었다

가뭄 들어 흙먼지가 날리는 황무지에

한 획 한 자 땀방울 틔운

초록 곡식을 문장으로 키워나갔다

어둠 속 행간에서 새날을 여는 언약으로

뼛속 시린 별빛으로 첫새벽을 깨웠다

햇살 의지로 힘살을 팽창시킨

충실한 노역 끝에 늦저녁을 맞았다

엣된 음절이 피톨로 여문 알곡을

황금률을 품은 경건한 기도로 거두었다

 

선한 양심을 양육하는 양식으로

가족들 생명 살림을 구원한 울림에

복음서로 넘겨지는 심전도의 모니터

 

가파른 세월 속에 등뼈가 굽은

심전도 그래프로 높새바람이 치닫는다

야윈 가슴을 십자가의 고통이 옥죄듯

가쁜 숨이 마지막 페이지를 연다

꺽은 선 그래프로 심장박동이 잦아들면서

푸른 지평선이 묵시록으로 닫힌다

주님 품에서 영혼으로 영면한 아버지

성경책으로 장정된 관 속에 든다

 

 

[당선소감] “한 점 일 획 극진히… 영광 올리는 시 쓸 것”

 

십자가의 형벌처럼 혹독한 겨울에서 부활하는 봄날이다. 모든 나무들이 흉터를 간직한 옹이는 예수님 손바닥에 박힌 못 자국이다. 그래서 나무는 십자가의 형상을 띠고 있지 않은가. 나무들에 수액이 올라와 새움을 틔우려 한다. 도마처럼 의심하여 거친 수피를 만져본다. 예수님의 음성이 손금으로 전해오는 듯 늘 시 한 편을 써놓고 믿음이 가지 않았던 불신을 감싸며 계시하는 그분의 목소리가 거룩하게 공명한다. ‘믿나이다’라는 심장 속 울림에 응답하듯 날아든 당선 소식. 한 점 일 획을 극진히 닦아 예수님께 영광을 올리는 신앙시를 쓸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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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 류인채

 

 

배가 볼록한 돋보기
아버지는 이 확대경으로
빛을 모으셨다


검은 동그라미로 본
그 밝은 약속을
한 획 한 획 정성들여 공책에 적어
자식들에게 주셨다


이 작은 돋보기 하나로
홍해를 건너고
가나안까지 거뜬이 넘어가셨다
우리가 잠들었을 때도
여리고성을 몇 바퀴나 도셨다


어둠 속에서 고요히 빛을 만나고
병상病狀을 들고 걷기 위해
쉬지 않았던 아버지,
치매도 살라 버리셨다


가끔 휜 융으로 유리를 닦으며
가슴에 자리 잡은 우상도
하나씩 깨트리셨다


내게 그 밝은 눈물 물려주신 아버지.
볼록한 중심으로 빛을 모아
아버지가 가신 하늘을 펼쳐본다


미처 가보지 못한 구석구석까지 환하다

 

 

[수상소감] "주님 나라 위해 나를 드립니다"

 

‘돋보기’는 새벽기도 때 불현듯 떠오른 영감을 표현한 시다. 응모하고 금식기도 하는 중에 출애굽기를 묵상했다. 모세의 탄생과 구원 이야기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듯 아버지의 고난 뒤에도 개인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모세가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고 예배자가 되자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일에 사용됐던 것처럼, 주님 나라를 위해 이제 나를 드리고자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영감으로 환상을 보며 하나님의 일이 사명이 되도록 받은 달란트를 사용하려고 한다. 믿음의 ‘돋보기’를 물려주신 아버지, 딸의 시를 읽고 감동해 목이 메는 어머니, 아내의 성장을 돕는 남편과 사랑하는 자녀들, 부천광림교회 이한배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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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기도의 연줄 / 허정진

 

 

푸른 영혼의 강가에 기대어

높은 곳 하늘 끝에 오르는 살진 방패연

덜커덩, 낯선 바람이 연줄에 올라타고 있다

 

구름의 포를 뜬 창호지 하나

한줄기 미풍에도 바르르 몸을 떨던

문풍지 우는 여린 마음

뼈마디 같은 꽁숫달에 몸을 일으키고

오래된 그리움을 풀어쓰기 한 장방형 연서

어둠 뚫고 새벽길 내려앉은 달빛처럼

둥글게 방구멍 낸 하늘걸음이 가뿐하다

 

햇살의 결과 겹으로 만든 연실은

한설삭풍에도 웅크려들지 않는

믿음의 푸새 먹인 생명줄

말도, 소리도 없는 미세한 떨림만으로

사지를 돌고 돌아 심장에 이르는 실핏줄처럼

이 끝과 저 끝을 연결하는 기도자의 동선

 

당기고 풀어내며 멈추는 일 없이

성령의 보금자리에 둥지 튼 연을 지탱하며

결코 놓치지 않는 언약의 끈

허공은 그걸 받아주려고

바지랑대 치켜든 빨랫줄처럼

밑줄 친 말씀 한 구절 팽팽히 잡아당긴다

누군가 위에서 당겨주고 있는 느낌

손안에, 짜릿한

그 응답!

 

 

 

[수상소감] “선교문인 사명감 갖고 정진”

 

40여년 전 고등학교 때 신앙문예지 편집을 맡아 몇 달을 교회 다락방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그때는 등사기로 책을 만들었다. 교인들이 보낸 원고를 한 자 한 자 철필로 원지에 써서 등사기로 밀면 깨알 같은 글자들이 까맣게 박혀 나왔다. 그때의 보람과 감격이 새롭다. 신앙시는 주님의 시를 받아 적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시어를 다듬느라 시간을 손질했을 뿐, 마음 그대로 떨림 그대로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을 정성껏 담았다. 선교문인의 직분과 사명감으로 묵묵히 정진하겠다.

 

 

 

 

[우수상] 물 / 권병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절망의 이름으로 새겨진

까마득한 첫 번째 심판의 날에

슬픔을 딛고 찬란하게 떠오른 무지개를

온몸으로 품어 안고

담담하게 비춰주던

오색 빛깔 무지개의 집입니다.

 

저기 한 나그네가 앉아 있네요.

눈앞에 다가오는 환란이 두려워

선뜻 강을 건너지 못하고

쪼그라든 가슴만 후벼 파고 있네요.

나는 그에게로 다가갑니다.

그의 끊어진 환도뼈를 어루만지며

잔잔하게 흐르고 또 흘러내립니다.

 

어디에서 왔을까요.

지치고 곤한 인생길에서

눈물마저 말라붙은 사람이 있네요.

큰 짐을 지고 먼 길을 향해 걸어가다가

광야 끝 막다른 길에 다다른 사람입니다.

나는 그의 얼룩진 발을 품에 안고

먼지 한 올까지 씻고 또 씻겨주었습니다.

 

세월의 강을 따라 흐르고 또 흘러가다가

굴곡진 삶에 정수리까지 딱지가 앉아

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울어울어 서러운 눈물이 강을 이루고

바다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상처를 치료할 눈물 한 방울이

절실해 보였습니다.

이제 나는

온 세상으로 흐르는 물이 되려 합니다.

 

언덕을 흘러 골짝을 덮고

메마른 산천에 새 움을 틔우며

가난한 마음에 꽃을 피우게 하는

갈보리 산꼭대기의 눈물 한 방울을

이 한 몸에 가득 품어 안고

갈급한 영혼들을 향해

흐르고 또 흐르는 물이 되려 합니다.

 

 

 

[수상소감‘ “시로 선한 영향력 끼치고파”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40여년을 시를 쓰고 있다. 작품성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습관적으로 썼다. 최소한의 시적 요건이 갖춰지면 SNS를 통해 지인들과 나눴다. 모두 좋아해줬다. 그래서 가볍고 쉽게 시를 썼다. 그러다 더 좋은 시를 써보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고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지만 탈락했다. 그래도 계속 두드리니 이렇게 좋은 상을 받게 됐다. 앞으로도 좋은 시로 소통하고 시를 통해 선한 영향력도 끼치고 싶다.

 

 

 

[최우수상] 아버지의 장갑 / 전아름

 

 

노트를 살 때마다

아버지의 손 때 묻은 장갑 냄새가 난다.

새벽 여물을 주러가는

아버지의 발걸음.

그 몰래 따라 들어온 서늘한 냄새,

잠결에 이마를 때렸지만

언제나 나보다 먼저 부스럭거리는

저 어린 것들이 있어 분주하게 아침을 쫓고있었다.

서투른 대학 생활만큼

봉투는 얇았고 교재는 두꺼웠고 걸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저녁 우리 집엔

여물지 않은 생명들이 땅바닥을 비비고 있고

닭똥마저 귀한 양식처럼 든든하게 쌓여있으리라.

 

가난한 바람 벽 그 무거운 짐 진 우리 아버지

굽은 고목과 같은 그 나이테 보듬어주시는 하늘 아버지

해진 장갑 사이 씻어도 지울 수 없는

축축한 그 냄새 한 올갱이,

멀리 너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수화기 느린 목소리가

서울 학교 가는 길목마다 살짝 걸쳐져 있어

지하 자췻방 눅눅함마저 서늘하게 감싸버렸다.

 

젊음만큼 어두운 새벽

그 분주함을 가르는 어린 공기들은

귀에 익은 말씀처럼 내 방문을 두드렸고

시골집 감나무에는 감이 떨어졌다.

소 여물 흥얼거리는 아버지의 찬송 소리가

도서관 가는 길,

작은 별처럼 피어나 내 앞을 비추고 있었다.

 

 

 

[수상소감] “말씀으로 삶의 위로받으며…”

 

화려하지 않아도 매일 하루의 바람을 견디고, 햇볕을 온전히 감당하며, 새벽마다 이슬을 상쾌하게 머금고 있는 길가에 핀 백합화를 보면서 나를 보는 듯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을 암송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공부했다. 힘들 때 기도하고 기쁠 때는 찬송을 불렀다. 말씀은 고단한 청년의 삶에 위로가 됐다. 매일 기도해주시는 한철동 목사님과 새벽기도를 하시는 부모님, 시 세계로 인도해준 정현우 시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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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신발 / 정경해

 


이른 아침 현관에 들어서니
어머니의 신발 한 켤레
구부정히 앉아 있다


새벽기도를 다녀오셨는지
가지런히 두 발 모으고
묵상 중이다


희끗희끗 서리 앉고
주름 깊게 패인 모습으로
무릎 꿇었다


진흙이 검버섯으로 피어
못 다한 간구하듯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삼백예순날 캄캄한 새벽
눈물 자루 무거워
뒷굽 관절이 다 닳았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 위한 기도로
온 몸이 까맣게 탄 채


퉁퉁 짓무른 눈
현관문 열어 놓고
소금 꽃 하얗게 불 밝혔다


밤새 세상을 떠돌던 내 신발,
마른 잎처럼 서성이는데


발바닥 지문 사라진
어머니 신발


아랫목으로 다가와
내 신발 감싸 안는다


뭉클,
어머니 신발 곁에 앉아
두 발 모은다


그분,
때 묻은 내 신발도 받아주실까?

 

 

[당선소감] “당신들의 기도 덕분… 주님만 보며 살 것”

 

잠깐 터널 속에 갇혔었습니다. 캄캄한 그 끝, 한줄기 빛이 손짓을 했습니다. 밤마다 두 손으로 퍼 올린 눈물, 주님이 받으셨나 봅니다.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의 기도 덕분입니다. 굽이굽이 재활의 길이 아득했지만 인내로 감싸주며 사랑을 준 가족들, 감사로 평생 섬기겠습니다.

 

여든 다섯의 어머니, 새벽마다 무릎 꿇어 주심 고맙습니다. 당신의 눈물로 인해 지금의 자리에 섭니다. 저도 내 아이들을 위해 눈물 바치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시는 스승 이승하 교수님, 고맙습니다. 나의 하나님, 이 영광 올립니다. 일평생 주님을 바라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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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항아리 / 노원숙
 

 

길 위의 햇살이 여러 번 열렸다 닫히고,
음력의 낮과 밤이 곰팡이처럼 피었다 지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서성이던 말 못할 소문들
갸웃, 돌아가고 나면
무릎 꿇은 간기마저 모두 껴안고 
제 몸을 내주곤 했을,

 

항아리 속, 고요하다 

 

장독대를 무수히 오가는 동안
나를 거쳐 간 수많은 상념들도 
발효와 부패의 어느 쯤에서 출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날것들의 거칠고 모난 이름을 호명하며 
굵은 소금 한 줌씩 행간마다 
켜켜이 뿌려주기도 했다

 

그 곁에서,
바람도 저마다의 발걸음으로 가라앉곤 하였으리
세상을 건너온 열매들 제 속의 과즙 비워내는 동안 
어두운 날짜들 솎아내던 나의 하루는 길었고
봄은 바람의 페이지를 저 홀로 필사하기도 했다 

 

깊고 캄캄하고 끝없는 기다림의 
내간체(內簡體) 
한 
권,
맛을 보자, 묵은 말씀들이 혀끝에서 환해지고

 


[당선소감] “균열 간 항아리는 버림받은 우리네 삶”

 

살아오는 동안, 때로는 가위에 눌려 죽음 같은 큰 아픔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 때 마다 사랑하는 주님께 뜨거운 기도를 드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균열이 간 항아리는 불완전한 사람에 의해 버림받은 우리네 삶을 닮았습니다. 그때마다 기도와 말씀을 의지해 기도하면 주님의 응답이 들려오곤 했습니다. 세상 한쪽에 깨져 있는 항아리 조각은 어쩌면 저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기쁨은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시를 향한 열정을 더 불태우겠습니다.

 

 

 

 

[우수상] 겨울나무의 꿈 / 이옥자
 
 
나무들은 하늘아래 내세울 게 없다
뿌리는 깊이 겨울잠에 들었고,
누더기 하나 걸치지 못한 알몸과
하늘을 향해 치켜든 마른 손가락들이
겨울바람의 날카로운 칼날과 맞서
온몸으로 흐느끼고 있다
 
긴긴밤이 깊어갈수록 흐느끼는 
나목들의 울음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진다, 그 울림은 마침내 
헐벗고 버림받은 자의 기도가 되어
캄캄한 밤의 공간을 넘어 하늘
문풍지까지 두드린다

 

밤새도록 하늘도 잠 못 이루고
그 기도소리에 귀기울이다가,
가슴속 아픈 먹구름들을
은총의 눈송이로 바꾸어
알몸의 가지와 메마른 손끝에
소망의 꽃송이를 하얗게 뿌려준다,
아, 은혜가 충만한 새벽이여…

 

겨울잠에 빠진 땅속뿌리들은
포근한 꿈을 위해 언 땅에도
하얀 이불을 덮어준다
남쪽바다에서 파도와 어우르던
봄바람이 불어와 이불을 걷어내면

뿌리들은 남쪽을 향해 귀를 열고
봄의 숨소리를 듣는다

 

나무보다 먼저 찾아온 봄볕이 가지들의
파리한 손끝을 어루만지면, 마디마디에
눈과 귀가 열리고 봄이 다가오는 발소리와
함께 꽃밭에 날아드는 벌 소리도 들으며 
가지마다 파란 하늘을 받들 것이다


 


[당선소감] “말씀으로 참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잎만 무성한 저에게 참열매를 맺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시를 읊고 쓰는 일은 삶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시를 쓰게 될 땐 두려움이 앞서 미뤄두었다가, 다시 젊은 날의 긴 꿈이 상기되어 도전장을 내민 시가 저의 실재요, 존재의 소리요, 삶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 소중한 이유를 찾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이제부터 비움의 끝자락이 만져질 때까지 말씀으로 채워가며 참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 할 것입니다.

 

 

 

 

 

 

[심사평] 예심 통과한 39편 모두 감동 주는 수준작… 대상 없어 아쉬워

 

 

예심에서 올라온 39편의 작품은 신앙시로서 모두 손색이 없었고 수준도 상당했습니다. 심사위원 3명이 대상과 최우수작, 그리고 우수작을 뽑기로 하였으나 심사위원 전원이 대상 없는 최우수작으로 ‘신발’(정경해)을 뽑았습니다. 우수작으로 ‘항아리’(노원숙)와 ‘겨울나무의 꿈’(이옥자)을 골랐습니다.
 
최우수작 ‘신발’은 이른 아침 새벽 기도에 다녀오신 어머니의 신발을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생각해 본 시인이 ‘돌아오지 않는/아들 위한 기도/온 몸이 까맣게 탄 채’란 표현을 쓰며 어머니의 신발에 얽힌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시는 읽는 이의 가슴을 감동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 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잔잔한 감동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삼백 예순 날 캄캄한 새벽/눈물자루 무거워/뒷굽 관절이 다 닳았다’와 ‘퉁퉁 짓무른 눈/현관문 열어 놓고/소금빛 하얗게 불 밝혔다’에서 보듯 신앙으로 삶에 다가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수작 ‘항아리’는 소금의 역할을 신앙의 성숙 과정에 비유했습니다. 항아리 속에 담겨 있는 된장과 간장은 소금과 섞여 오랜 기간 발효 과정을 거쳐야 맛이 듭니다. 신앙인으로서 소금의 역할을 꿈꾸는 시인의 간절한 생각이 ‘깊고 캄캄하고 끝없는 기다림의/내간체/한/권/맛을 보자 묵은 말씀들이 혀끝에서 환해지고’ 란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적절한 표현과 문장의 아름다움에 읽는 이의 가슴을 열게 했습니다.

 

우수작 ‘겨울나무의 꿈’은 겨울나무에 신앙인을 빗댄 작품입니다. 전편에 담겨 있는 이야기와 표현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나무들은 하늘아래 내세울 게/없다’란 구절에서 ‘겨울바람의 칼날과 맞서/온몸으로 흐느끼고 있다’란 구절까지 신앙인은 단단한 의지와 강단이 있습니다. 건강한 신앙인의 자세, 바로 그 모습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희생과 봉사, 자신까지 모두 남을 배려하는데 쓰겠다는 마음가짐은 올바른 마음입니다. 이야기를 시 속에 담는 기술이 상당합니다.

 

- 성기조 (심사위원장·시인)

 

 

 

 

국민일보·한문예총 제8회 신춘문예 신앙시 당선작 발표

최우수상 정경해 ‘신발’, 우수상 노원숙 ‘항아리’ 이옥자 ‘겨울나무의 꿈’


국민일보와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이사장 최일도·회장 김소엽)가 공동 주최한 ‘제8회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에서 정경해의 ‘신발’이 대상 없는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성기조 심사위원장은 11일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잔잔한 감동으로 극복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며 “최우수작을 포함해 본심에 올라온 시 모두 신앙시로서 손색이 없고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오른 작품을 높이 평가했으나 세밀한 시적 구성을 갖춘 대상작은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신발’을 대상 없는 최우수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우수상은 노원숙의 ‘항아리’, 이옥자의 ‘겨울나무의 꿈’이다. 당선자 정경해(60) 노원숙(57) 이옥자(76)는 모두 여성으로 오랜 기간 시나 글을 써온 이들이다.

 

시상식은 26일 오전 10시 총연합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월드비전빌딩 9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최우수작 수상자는 등단 시인으로 예우한다. 신앙시 공모에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교도소와 군부대 등에서 800여명이 4500여 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교도소에서 응모된 시 중에는 아름다운 그림을 곁들인 작품도 있었다.

 

심사위원장인 성 시인을 비롯해 심사위원인 전규태 유자효 시인은 본선에 올라온 39편을 놓고 최종 심사했다. 그 결과 최우수작 1편, 우수작 2편, 밀알상(장려상) 10편, 모두 13편을 선정했다.

 

제8회 신춘문예 신앙시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최우수상 정경해

△우수상 노원숙 이옥자

△밀알상 구본흥 김숙희 김정석 김지영 김지은 서미라 유택상 윤종환 이종섭 최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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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 /  이재창

 

 

 

가을이 노랗게 떨어진

 

늙은 은행나무 아래는

 

휑하니 비어있는 의자 하나

 

낮은 몸 잔뜩 구푸린 채

 

낯선 이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녹슨 다리에 굽은 허리

 

색 바래 검버섯 피어있고

 

한쪽 귀퉁이는 이미 썩어

 

흉하게 내려앉아버렸다

 

오랜 세월 동안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처럼

 

오지도 않는 이를 기다리다

 

홀로 늙어버린 빈 의자

 

방황하는 젊은이라도

 

삶에 지친 가장이라도

 

짝 잃어 외로운 노인이라도

 

누구든지 받아주고 싶은 데

 

언제든지 받아줄 수 있는 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더 늙어 보이는 빈 의자엔

 

가을햇살만 노랗게 내려와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다

 

기다란 그림자만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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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빨간 담쟁이 / 최남규

 

 

 

 저 장밋빛 불길! 저것은 생명의 절규다!

안으로 안으로만 타오르는 저 불길은,

 

카라코람 산맥이 앞을 턱, 가로막아

절망의 벽이 두억시니처럼 일어설 때

 

동서남북 어디에도 길은 없어

차라리 벽을 향해 눈길을 든다

 

절망의 벽을

소망의 계단으로 삼는 도전

 

안간힘 다해 옹벽을 기어오르는

저 오체투지의 피투성이 몸짓!

 

폭풍 속에도 변치 않는 향일성이

피를 움켜쥔 손가락을 옹벽에 박고 있다

 

생의 겨울이 오는 종심의 길목에서

마지막 남은 목숨을 사르는 노잔

 

안으로 안으로만 다진 소망에 불을 댕겨

자신을 밀어 올리는 불길이 된다

 

발돋움한 일편단심 한 줄기 갈망

천성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저 불길-

 

손바닥만치 남은 여생 죄다 모두어

절규하듯 하늘 보좌로 불꽃을 올린다

 

 

 

 

 

 

[우수상] 눈 속에 핀 한 달란트 / 임용남

 

 

 

싸락눈이 탱크같이 내리는 날

 

당신은 극빈을 동구 밖으로 밀어내려고

삼손의 나무꾼이 되셨다

그의 냉가슴은 늘 만선을 꿈꾸었고

호미 끝으로 새벽이 눈을 뜬다

때론 소쩍새 울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의 발가락을 몰아낸 진흙들이 고무신을

점령했을 때 나는,

양떼들이 모여 사는 성경책 속을 걸었다

그의 관자놀이 쪽으로 눈물의 강이 흐른다

그곳에 한 장의 편지가 떠다닌다

그 편지를 읽었다

성자 같은 천개의 은하수를 가슴에 안고

폭풍만이 떼 지어 사는 길을 걸었다

 

지금, 바람에게 그늘을 내어주고 있다

영혼이 없는 양을 안고,

천상으로 가는 가시밭길을

오르고 또 오르고 있다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푸르게 들려왔다

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우수상] 가을이 눕는 소리 / 허미강

 

나무의 귓가에는

툰드라* 벌판, 바람의 노래가 들리나보다

 

살뜰히 수액(樹液) 거두어 지친 철새의

입가를 적셔주고

나날이 수척해가는 가을 나무

 

땅 속 벌레와 풀씨들 덮어 주려

파리한 낙엽, 기꺼이 바스라진다

 

국화 향기 훔치는 길고양이 잔등에

어른거리는 감나무 그림자

 

기우는 노을은 땅거미 지도록

서녘 자락에 온기 펴 바른다

 

기도를 움켜쥐고 달려 온 손돌바람**

빈 가지 휘감고 위를 향해 차오른다

 

된서리 엉기는 밤

먼 산 부엉이의 선 울음소리

 

* 툰드라-늘 강풍이 몰아치는 북극해 연안 동토 지대

** 손돌바람-(순우리말) 11월 말경 부는 매서운 찬바람

 

 

 

 

[심사평] ‘침묵의 울림’ 가슴에 다가오는 작품들

 

국민일보와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에 대한 호응도와 작품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제7회째인 올해에는 지난해의 배에 이르는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1320명의 응모자가 각자 3편씩 제출한 약 4000편을 10명의 예심위원들이 읽고 30편의 후보작으로 압축하는 큰 수고를 했습니다.

 

본심으로 올라온 후보 작품들을 놓고 유승우 박이도 김소엽 김후란 시인 등 4명의 심사위원들이 지난 10일 연합회 회의실에서 심사를 했습니다. 2차로 고른 작품들은 소리 내어 낭독하면서 논의를 해 만장일치로 선정하는 신중한 심사과정이 있었습니다.

 

좋은 시는 그 가장자리에 침묵의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했던 봐레리의 표현대로 시의 완성도에는 그 시를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침묵의 울림이 가슴에 다가와야 합니다. 특히 다른 신춘문예와는 성격이 다르게 시로서도 성취도가 있어야 하지만 그 바탕에는 신앙심이 녹아들어 있어 자연스럽게 기독교 정신이 전해져야함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수상작을 비롯해 응모작 모두 신앙심 위에 아름다운 시의 집을 지었다고 하겠고 국내외에서 작품들을 보내와 이 행사의 뜻과 격을 높여준 점 고맙게 생각합니다.

 

영예의 대상에는 ‘빈 의자’(이재창)를 선정했습니다. 작품은 읽고나서 어떤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묘한 여운이 있습니다. 현란한 수사나 과장된 표현 없이 깊은 내면의 성숙도가 배어 있습니다. 낡은 빈 의자는 누군가가, 아니 누구든지 고단한 이가 와서 앉기를 기다려줍니다. 삶의 행보가 바쁘고 고달픈 현대인들에게 이리 와서 내 품에 기대라고 두 팔을 벌리고 기다려주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최우수상의 ‘빨간 담쟁이’(최남규)는 첫 구절부터 읽는 이를 끌어당기어 범상치 않은 작품세계를 연상케 했습니다. ‘안간힘 다 해 옹벽을 기어오르는 저 오체투지의 피투성이 몸짓!’으로 흔한 담쟁이가 이렇듯 도전하는 생의 불길로 살아나면서 뜨거운 신앙심을 일깨워주는 호소력 강한 작품입니다.

 

우수상의 ‘가을이 눕는 소리’(허미강)는 시적 서정성과 완성도가 돋보인 점이 높이 평가되었고 ‘눈속에 핀 한 달란트’(임용남)는 격조 있는 이야기를 시의 은유법과 반전하는 표현으로 재치 있게 써낸 매력 있는 작품입니다. 위의 작품 모두 주제와 접근방식은 다를지라도 시로서의 완성도와 그 기조에는 기독교 정신의 영험성이 감돌고 있어 올해의 신춘문예 신앙시 수상작으로 선정합니다.

 

- 심사위원 김후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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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울음 / 이진환

       

숲에서 하나 둘 나무를 세고가면

나무가 되었다 숲이 되었다 고요가 되었다

고요가 깊어지자 웅크리고 있던 숲이 안개처럼 몸을 푼다

불신의 늪이 꿈틀거려서다

 

한 때, 뿌리 뻗친 늪에서 마구잡이로 우듬지를 흔들어대다

새 한 마리 갖지 못한 나무였다

눈도 귀도 없는, 그 몸속으로

흘러 다니던 울음을 물고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릴 적 어둑한 논둑길에서 두려움을 쫓던

휘파람소리와 함께 가슴을 졸이던 눈물이었다

 

울음의 반은 기도였으므로,

 

안개의 미혹(迷惑)에서 깨어나는 숲이다

고요란 것이 자연스럽게 들어서서 허기지는 저녁 같아

모든 생명이 소망을 기도하는 시간이 아닌가

두려움의 들녘에서 울던 오래된 울음이

징역살이하듯 갇혔던 가슴으로 번지고 있다

 

기도를 물고 돌아오는 새들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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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달란트 꺼내주신 주님께 감사

 

“예수님!/ 저희에게 은혜로/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우리를 위해/ 저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거/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예수님!/ 다음엔, 제가/ 제가/ 대신 죽을 게요.” 초등학교 2학년 한 여학생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고백으로 설교를 시작하신 목사님은 “어느 누가 쉽사리 이런 고백으로 기도를 할 수 있을까”를 반문하셨습니다. 부끄러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주신 달란트를 40여년 동안 헛간에다 처박아뒀던 죄인을 조용히 부르시고 녹슨 호미 다 닦아서 손에 들려주시며 늦었지만 이제부터 나가서 저 넓은 지경에서 김을 충실히 매라 하십니다. 한순간도 선별된 삶을 살지 못한 죄인을, 지겹지도 않게 지켜보신 겁니다.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긴 세월 보내고 뒤늦게 시작하는 나를 보며 속이 까맣게 탔는지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우리 뚱이, 각시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 많지만 동행하며 등을 기대주었던 김진수, 고마워요. 영광은 주님의 것입니다.

 

 

 

[심사평] “종교적 관념을 예술적으로 형상화”

 

국민일보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에 대한 응모자의 뜨거운 열정이 매우 기쁘다. 다만 종교적인 관념이 예술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돈독하고 깊은 신앙심이라 할지라도 그런 관념을 작품 속에 녹여 넣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에 대한 신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신앙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해야 비로소 신앙시가 된다.

 

예술적 형상화를 쉽게 말한다면, 그림을 생각하면 된다. 한마디로 ‘이미지를 말로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림 속에 어떻게 관념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를 머릿속에 자꾸 그려 보아야 한다. 예술이란 느낌으로 그 세계를 교감(交感)하는 것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발상이나 구성, 기교 등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수감각과 버무리지 못한 탓으로, 아쉽게도 예심에서 대거 탈락해 4000편의 응모작 가운데 30여편만이 본선에 올라 왔다. 역시 본선에서도 종교적인 관념을 보다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가려내기 위해 유승우, 주원규 시인 등 본심 심사위원과 함께 심의를 거듭한 끝에 전원 합의에 의해 이진환의 ‘오래된 울음’을 대상작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미지의 예술적 형상화와 비유, 상징이 잘 조화되어 세련미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기성작가의 영역을 뛰어넘는 수작이라 하겠다.

 

첫 연의 “숲에서 하나 둘 나무를 세고가면 / 나무가 되었다 숲이 되었다 고요가 되었다 / 고요가 깊어지자 웅크리고 있던 숲이 안개처럼 몸을 푼다 / 불신의 늪이 꿈틀거려서다”에서 보듯 바로 뛰어난 이미지의 형상화를 이루고 있다.

 

최우수작으로 선정한 박신열의 ‘봄의 부활’은 호흡이 짧다는 점을 뺀다면 대상감이다. “구멍 난 몸둥이에 꽃이 핀다”라든가 “어둠이 웃자 / 사내의 장미와 / 일용할 햇빛이 쏟아졌다” 등은 압축된 놀라운 이미지의 그림이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김명주의 ‘봄날의 기도’와 김복현의 ‘새벽길’도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 중 시적 구성에서 가장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 좀 더 정진하면 좋은 시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밀알상(장려상)으로 선정된 14편의 시들도 수상작 4편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꾸준한 시적 정진을 바라마지 않는다. 당선 또는 입선된 분 모두에게 축하의 말을 드리며, 밝은 문운을 빈다. 아울러 시적 표현을 응축한 많은 작품들을 보내준 응모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 심사위원장 전규태(시인, 문학평론가,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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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에 / 유지호

 

 

붉은 울음이 온 바다를 적시고 있다

아직 못다 한 말이 남아 있음이다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미련이 각혈을 토해낸다

허기진 꿈을 찾아 쉬지 않고 달려온 길

때로는 구름이 시야를 가려 길을 잃었다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쳐서 제 길을 놓치기도 했다

휘청거리는 몸짓으로 영혼을 팔아 어둠을 찾았다

폭우가 쏟아지면 불안정한 기단이 몰고 온

이상기후와 태풍으로 내 안의 뿌리들은 쉽게 뽑혔다

한 낮의 빛살이 길을 잃고 하루에도 몇 차례 사이렌이 울렸다

매일 복권방을 배회하며 황금을 캐러 눈빛을 모았다

삶의 편견으로 몸을 가누지 못해 오후가 휘청거리고

육체가 정신보다 몇 배 더한 중량으로 물구나무 선 채

내가 그인지, 그가 나인지 나를 찾지 못하는 시간이다

발가벗은 마음을 펼쳐놓고 울부짖는 하루의 종착역에서

달려온 길을 후회하며 기원을 심는 하루가 짧기만 하다

해가 지고 나서도 식지 않는 그 붉은 힘은 무엇일까

내일의 생명이 부르는 소리에 심장이 떨린다

어둠이 한 올 한 올 매듭을 지으며 다가와도

불꽃처럼 타 오르는 믿음은 꺼질 줄 모른다

그리움의 끝으로 마음이 열리고 시름이 녹아 내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붉은 눈물로 하루를 돌아보게 하는가 보다

 

 

 

[수상소감] 믿음으로 지켜봐 준 가족들에 감사

 

밤새 온몸이 욱신거리는 몸살을 앓았습니다. 거친 살갗을 뚫고 움이 트는 믿음을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계 불량의 늪에서 늘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이 손을 내밀며 한 걸음 다가오면 나는 두 걸음을 달아났습니다. 스물 네 시간 술래 잡이의 하늘이 제가 가는 곳마다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제 마음을 열어 밝은 빛을 보겠다고 다짐합니다. 믿음으로 늘 지켜봐 주는 아내, 반듯하게 자라는 두 아들과 함께 작은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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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한편 한편, 놀라운 시적 이미지로 신앙의 본질에 접근”

자연의 사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이 사물들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순수감각으로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진 느낌을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 시적 이미지이다. 현대시를 사물시(事物詩)라고 하는 것은, 현대시의 창작이 곧 사물의 속성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의 속성(屬性)이 곧 하나님의 뜻이며, 창조원리이며, 우주정신이다. 이처럼 사물과의 교감(交感)이 이루어지는 것을 ‘신과의 대화’라고 한다. 나를 비워 빈 그릇과 같이 될 때 성령이 오시어 내 순수감각과 교감하는 것을 방언이라고 한다. 시적 이미지는 곧 그 시인의 방언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대상(大賞) 작품을 결정하기 위해 두 분의 심사위원이 숙의한 끝에, 제인자의 ‘달팽이’를 선정했다. 나의 생각과도 일치하여 이의 없이 결정되었다. ‘달팽이’는 딱딱한 집을 지고, 푸성귀 잎을 먹고 사는 무른 몸의 생물이다. 그가 “수돗물 세례 받고 빗장을 지르면 / 안으로 걸어 닫은 캄캄한 한 채의 집이지요”에서 보듯, 달팽이의 생태적 속성을 그냥 제시했지만, 이 두 행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이미지의 형상화이다. 형상화된 이미지는 비유와 상징의 보고이다. 시인은 달팽이와 나의 생태적 속성을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신앙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무른 몸, 딱딱한 집, 채식’이다.

다음으로 김승철의 ‘은총’을 최우수로 선정해 내놓았다. 나도 동의했다. 김승철은 ‘은총’이란 기독교적 관념어를 제목으로, “새가 못이 되어 날아와 박힌다 / 외마디 신음만 들릴 뿐,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로 / 달이 새파랗게 질려 보고만 있다”에서 보듯, 어떤 극적 상황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은총’이란 관념을 순수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이런 상황적 이미지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이 ‘은총’이란 영적 현상을 느낄 수 있는 상황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새, 못, 나무’이다.

그리고 정미경의 ‘그렇다면, 나사들은’과 유지호의 ‘해질무렵에’를 우수로 선정했다. 정미경은 “낡은 옷장 하나 / 아파트 공터 한쪽에 웅크리고 있다”로 시작하여, 낡은 옷장의 해체과정을 이미지로 형상화해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쓰던 가구에서 나무라는 본질로 돌아가는 옷장의 빈 곳에 “차곡차곡 수납되는 먼지들의 나이테 / 문득 날아든 풀씨 하나 싹을 틔우고”에서 보듯, 많은 비유와 상징을 안고 있는 이미지가 놀랍다.

유지호의 작품은 “붉은 울음이 온 바다를 적시고 있다”로 시작하여, “그래서 하나님은 붉은 눈물로 하루를 돌아보게 하는가 보다”라는 신앙적 언술로 마무리한다. 또한 “어둠이 한 올 한 올 매듭을 지으며 다가와도”와 같은 아름다운 은유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믿음은 꺼질 줄 모른다”와 같은 직유의 이미지로 마무리한다.

많은 작품이 응모되기도 했지만 작품의 수준도 그만큼 상승했음을 느꼈다. 국민일보의 신춘 신앙시 공모는 참으로 하나님이 내리신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 심사위원장 유승우(시인, 문학박사, 인천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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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사들은 / 정미경

 

 

낡은 옷장 하나

아파트 공터 한쪽에 웅크리고 있다

이미 세월 저쪽으로 종적을 감춘 문짝

옷가지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고양이 그림자가 차곡차곡 겹치고 비워지는 사이

목련 나무 마른 이파리 몇이 누워 있다

그렇다면, 나사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를 조이던 시간

나사가 헐거워지자 자주 삐걱대고

아귀가 맞지 않았다

나사 풀린 사람처럼 자주 입이 벌어졌다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 나사들이

나를 바깥으로 내몰았다

공터에 뿌리박은 옷장

나뭇가지 그림자들을 받아 건다

밤마다 가로등의 지친 눈빛을

오갈 데 없는 바람들을 재워준다

차곡차곡 수납되는 먼지들의 나이테

문득 날아든 풀씨 하나 싹을 틔우고,

비워서 더 많은 소망을 채우는 날들

시간의 나사가 풀릴수록

나는 점점 나무가 된다

나무들은 질긴 나사

제자리 하나 꽉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수상소감] 지치고 힘든 이들을 위해 더 정진


간절한 기도들이 깨어나는 계절입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새 잎을 피우는 나무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초록이 전해주는 말을 듣습니다. 내 안에도 새봄이 깨어납니다. 힘든 시간을 견딘 언어들에게 따스한 희망을 전해줍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에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시를 쓰기 위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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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사장 김성기)와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이사장 김삼환, 회장 김소엽)가 주최하고 한국기독교문인선교회가 주관한 ‘제5회 신춘문예 신앙시’ 수상작이 발표됐다.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실시한 이번 공모에 총 5000여편이 응모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심사결과 대상 1편, 최우수작 1편, 우수작 2편, 밀알상(장려상) 9편이 선정됐다. 대상은 제인자의 ‘달팽이와 나’, 최우수작은 김승철의 ‘은총’, 우수작은 정미경의 ‘그렇다면, 나사들은’과 유지호의 ‘해질 무렵에’이다.

 

이번 응모작의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유승우 심사위원장은 “예년보다 더 많은 작품이 응모되었고 작품의 수준도 높았다”며 “신앙적 요소에 대한 접목, 사물의 속성을 이미지로 잘 형상화시킨 시적 형상성, 감동 등을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10명의 예심위원들은 지난 7일 모임을 갖고 하나님의 뜻이 담긴 사물의 속성을 잘 형상화한 25명의 본선 진출작을 엄선했다. 이어 8일 진행된 본심에선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위촉한 이길원(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시인, 권택명(외환은행 나눔재단 상근이사) 시인과 유승우 시인이 최종적으로 올라온 25명의 작품에 대한 집중토의를 거쳐 당선작을 결정했다.

 

시상식은 27일 오전 9시 20분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11층 그레이스홀에서 열린다.

 

김소엽 회장은 “5000편이 넘는 시가 응모됐다는 것은 신앙시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라며 한국 문학과 기독교 문학의 발전을 위해 기도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대상 제인자 △최우수작 김승철 △우수작 정미경 유지호 △밀알상 박점득 최수은 이수진 홍수헌 구금섭 정진미 정예영 이강천 김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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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 / 김승철

 

 

새가 못이 되어 날아와 박힌다.

외마디 신음만 들릴 뿐,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로

달이 새파랗게 질려 보고만 있다

툭 소리에 머리칼은 깃털처럼 흔들리지만

나무는 날아가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는다

떨어지는 것들은 깃털이 아니라 그늘진 울음이 된다

쇳조각의 속박이 아닌

은색 알갱이가 스며드는 뿌리의 언약은

밑동이 잘려도 나무를 말없이 버티게 한다

금속의 차가운 시간은 되레 떠내려갔던 해를 염원한다

 

 

느슨하지만 진한 여명에

못이 새가 되어 강가에 가 목을 축인다

녹슨 부리에서 녹물이 그림자를 벗기고

핏빛으로 새어나온다, 둔탁한 쇳소리가 고인다

씻겨라, 씻어라

나무의 주인은, 물의 주인은

새와 못의 주인은 양팔을 뻗고도

은은한 강물을 영겁으로 흘러 보낸다

다만 아프다 말하지 않았다

 

 

 

 

[수상소감] 끝없이 반성하며 글 쓰겠다

 

어릴 적 급한 일이 생겼을 땐 전 엄마를 불러댔습니다. 엄마가 만능해결사가 아니란 걸 안 나이에, 저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합니다. 용기를 달라고, 지혜를 달라고, 신념을 달라고. 이 본능적이고 가엾은 울음을 들어주시는 분은 딱 한 분입니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저는 모범적으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다만 시를 쓰면서 끝없이 저를 반성하고 이 세계를 한 획이라도 조금씩 배워나간다는 자세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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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사장 김성기)와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한문예총, 이사장 김삼환, 회장 김소엽)가 주최한 ‘제5회 신춘문예 신앙시 시상식’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 11층 그레이스홀에서 열렸다.

 

이날 대상 제인자, 최우수상 김승철, 우수상 정미경 유지호, 밀알상(장려상) 박점득 채수원 이수진 홍수헌 구금섭 김순길 정진미 정예영 이강천씨가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김소엽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황폐해진 현대인의 정서를 아름답게 가꾸고, 국민 정서를 기독교 정서로 바꾸어 가기 위해 공모전을 마련했다”며 “말씀을 형상화시켜 감동을 주는 신앙시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고훈(안산제일교회) 목사는 격려사에서 “기독교문학의 알맹이는 구원이어야 한다”며 “기독시인은 감동을 뛰어넘어 영혼구원을 일깨우는 작품을 써야 하기에 그 사명이 크다”고 말했다.

 

김성기 사장은 축사에서 “쉽게 분노하고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신앙시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치유의 힘이 있다”며 “아름다운 신앙시를 통해 순수한 신앙을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시적 메타포가 풍부한 수준작들이 많이 응모됐다. 유승우 심사위원장은 “모든 사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이며 그 속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며 “본선에 오른 작품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을 말씀으로 이어낸 수준작들이었다”고 평했다. 대상을 수상한 제인자씨는 “시가 따뜻한 밥 한 공기처럼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다가가길 바란다”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한편 명성교회, 신촌성결교회, 안산제일교회의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구능회 한문예총 부회장의 사회로 정재규(대석교회) 목사의 기도, 김소엽 회장의 인사말, 구본홍 CTS TV 사장과 이길원 국제펜한국본부 이사장의 축사, 유승우 시인의 심사평, 시상, 나채운(전 장신대 교수) 목사의 축도 등으로 진행됐다. 수상자들은 시상식 후 서울 여의도 한문예총 세미나실로 자리를 옮겨 시낭송 및 친교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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