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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끓이다 / 장현숙

 

 

책은 책마다 맛이 다르다

 

초록 표지의 책에선 식물의 맛이 나고 지구에 관한 책에선 보글보글 빗방울 소리가 나고 어류에 관한 책에선 몇천 년 이어온 강물 소리가 난다

 

곤충에 관한 책에선 더듬이 맛이 나, 이내 물리지만

 

남쪽 책장은 마치 텃밭 같아서 수시로 펼쳐볼 때마다 넝쿨이 새어 나온다 오래된 책일수록 온갖 눈빛의 물때와 검정이 반들반들 묻어있다 두꺼운 책을 엄지로 훑으면 압력밥솥 추가 팔랑팔랑 돌아간다

 

침실 옆 책꽂이 세 번째 칸에는 읽고 또 읽어도 설레는 연애가 꽂혀 있다 쉼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누군가와 겹쳐진다 그러면 따옴표가 보이는 감정을 챙겨 비스듬히 행간을 열어놓는다

 

새벽까지 읽던 책은 바짝 졸아서 타는 냄새가 났다

 

책 속에 접힌 페이지가 있다는 건 그 자리에서 눈의 불을 켜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일기장이 제일 뜨겁다 그 안에는 태양이 졸아들고 별이 달그락거리면서 끓기 때문이다

 

책을 끓여 식힌 감상을 하룻밤 담가 놓았다가

여운이 우러나면 고운 체로 걸러내야 한다

그 한술 떠 삼키면

마음의 시장기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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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힘들 때 찾아온 아버지의 선물"

 

치과 진료 중이었습니다. 손에 꼭 쥔 전화기 진동이 울려 잠깐만요 전화 좀 받아볼게요 하고 접한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윙윙거리는 기계음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귀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열흘 전 곁을 떠나신 아버지 얼굴이 어른거렸습니다. 병간호 잘해줘서 고맙다고 등을 토닥여주시며 무슨 일이든 잘 될 거라던 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장과 그 흐름은 그 사람의 성격과 같다고 하는데, 나는 종종 한 박자 느리고 생기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꼭 맞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책들의 제목을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세상에 제목들만큼 알맞은 문장이 있을까요. 또 책들은 그 맛이 제각각입니다. 짠맛 신맛은 물론 마음에 꼭 맞는 맛들도 있습니다. 새벽까지 읽던 책이 뜨겁게 졸아서 내 가슴속 지워지지 않는 맛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제 시를 뽑아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 김병택, 양영길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문장의 흐름과 이미지를 선연하게 가르쳐주신 윤성택 시인님 감사합니다. 시클, 김산, 이종섶, 이수정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교수님들과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료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경애하는 엄마, 동생 현남, 옥희 그리고 늘 곁에서 응원해 주는 남편 김병기, 민서, 민규, 주오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심사평] 현실 속 사물과 상상력의 절묘한 조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총 71편이다. '시적 산문'을 산문시로, '공상'을 '상상력'으로 오해하고 있는 소수의 작품을 빼면, 대부분의 작품은 보통 이상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미리 마련한 심사 기준에 유의하면서 모든 작품을 정독한 뒤, 토론 대상으로 삼을 4편의 작품을 선정했는데, '여름의 부피들', '발자국 상점', '구석구석의 힘', '책을 끓이다' 등이 그 작품들이다.

 

여름의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엄마'를 시적 이야기로 다루고 있는 '여름의 부피들'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 널려 있는 상투적 비유가 작품을 진부하고 느슨하게 만들고 있는 점이 지적되었다.

 

상상력은 현실에 토대를 둘 때에만 나름대로의 가치를 발휘한다. '발자국 상점'에서는 여과 장치 없이 생경한 모습으로 드러난 상상력이 독자의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상의 전개가 치밀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의 힘'에서의 '구석구석'이라는 핵심어는 추상성에 의존하는 단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쉬웠다.

 

'책을 끓이다'는 현실 속의 사물인 '책'과 그에 수반하는 작자의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시어 운용의 능숙한 솜씨가 사물을 자유롭게 바라보는 능력을 배가하고 있는 점이 크게 돋보였다. 시적 화자의 스탠스가 분명하여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장점에 속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에 합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와 함께 더 정진하기를 바라고,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 심사위원: 김병택(시인, 문학평론가), 양영길(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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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을이 설원이 되는 동안 / 이예진

 

금값이 올랐다

언니는 손금을 팔러갔다

 

엄마랑 아빠는 이제부터 따로 살 거란다

 

내가 어릴 때, 동화를 쓴 적이 있다 내가 언니의 숙제를 찢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언니도 화가 나서 엄마의 가계부를 찢었고 엄마는 아빠의 신문을 찢고 아빠는 달력을 찢다가, 온 세상에 찢어진 종이가 눈처럼 펄펄 내리며 끝난다

 

손금이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집에 남고 싶은 것은 정말로 나 하나뿐일까? 언니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더는 찢을 것이 없었다 눈이 쌓이고 금값이 오르고 검은 외투를 꽁꽁 여민 사람들이 거리를 쏘아 다녔다

 

엄마는 결국 한 돈짜리 목걸이를 한 애인을 따라갔지 아빠는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오겠다고 했다

 

따로 따로 떨어지는 눈과

따로 노는 낡고 지친 눈빛을

 

집이 사라지고 방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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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소화되지 않는 '선천적 슬픔', 그것들이 있어 펜을 듭니다

 

글을 쓰면서 이 순간이 오길 기대했는데, 막상 때가 되니 어떤 말도 서툴고 어색한 것 같습니다.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고민한 지 수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한글날에 태어났으며 돌잡이로는 연필을 잡았습니다. 그게 제가 시를 쓰는 이유가 될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지웠다 쓴 문장들이 쌓여서 집을 세우고 가족을 만들고 사람이 되는 과정은 즐겁기도 괴롭기도 했습니다. 여러 사건들이 있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버둥대는 저와, 우리가 있었습니다.

 

나의 언니들 중 한 명은 저를 선천적 슬픔이라고 부릅니다. 아직도 몸 안에 소화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펜을 잡는 것 같습니다. 하루는 꿈에서도 시를 썼습니다. 일어나서 그 문장이 날아갈까 봐 비몽사몽 옮겼습니다. 그날 카페에 앉아 있는데 저만 멈춰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학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언젠가 현실에 잡아먹힐까 봐 두려웠습니다.

 

혼자서만 이 자리까지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될 때까지 도와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오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름들이 생각나서 하나씩 호명해 봅니다. 저를 위해 적금도 들자고 약속한 두 언니, 재진과 미도, 김박예란과 친구들(다래 선주 길란) 지윤 나은 서영 유경 수많은 언니들이 있어서 지금의 선천적 슬픔을 견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쓰던 태의와 산하 세실, 든든한 나의 꼬맹이들 다윤 유현 현경 나연 채영 수은 그리고 니은 받침이 즐거운 여자들 은진 세륜 윤진 민선 은영 우리 오래도록 쓰자, 애정하는 호짜 식구들, 9월의 예버덩 식구들, 대학원 친구들과 9기 콩자반 아이들, 도운과 현영 하령 덕분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찬, 내가 너의 방공호가 되어줄게.

 

영원한 애제자가 되고 싶은 영미와 하린, 어렸던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조차도 저를 믿지 못할 때 끝까지 확신을 준 동생 현정이와 하정이. 너희들의 언니라서 기뻐, 계속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우숙과 재현에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박상수 선생님, 남진우 선생님, 편혜영 선생님, 신수정 선생님, 안주철 선생님, 김언 선생님, 양근애 선생님 이영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담담하게 펼친 일상의 세목들로, 가계·욕망·폭력의 민낯을 기록하다

 

새로운 시인의 작품과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면 으레 의심을 품게 된다. 이 의심의 방향은 작품과 시인이 아니라 이것을 대하는 스스로를 향한다. 이제껏 내가 시라고 여겨왔던 것들을 되짚어보고 추궁하는 것이다. 불안과 함께 하지만 그렇다고 안도를 바라는 일은 아니다. 늘 내가 가진 관점이 보기 좋게 깨지기를, 그리하여 아프게 갱신되기를 원한다. 물론 이 모든 일은 함께 쓰는 이가 아니라 함께 읽는 이로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심사에 임하는 위원 모두가 이러한 마음이었다.

 

'나의 마을이 설원이 되는 동안' 외 4편을 투고한 이예진 씨를 202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로 정한다. 시인의 언어는 선명하고 정직하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진술들을 차곡차곡 쌓아 어느새 의무도 당위도 필요 없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아울러 시인은 파편화된 삶의 장면들을 그러모아 큰 서사를 만들어내는 데 능숙하다. 불필요한 제스처 없이 일상의 세목들을 담담하게 펼쳐내면서도 그 안에 가계와 욕망과 폭력 같은 유구한 것들의 민낯을 기록한다.

 

시인이 창출해내는 이미지 역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사유와 관념을 단단히 비끄러매면서도 일순간 낯선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지점들이 인상적이었다. 부디 앞으로도 사유와 언어, 서사와 이미지 사이를 마음껏 횡보하며 시작(詩作)해주기를 당선자께 바란다. 진정한 문학적 자유로움과 균형감이란 조심스레 살피며 걷는 일이 아닌 어떤 극단까지 나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니까.

 

시와 문학은 현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순하게 응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하는 일에만 복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살아가며 여전히 읽고 쓰는 일만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낙선한 분들에게 마음을 다해 위로를 전하고 싶다. 아직 말해지지 않은 시와 살아낼 시간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도 함께.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시간을 마주하게 될까. 불안전하고 불완전한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의심을 품어야 할까. 그러면서도 어떤 온전한 미감에 깨어지지 않을 삶을 기대야 하겠지. ‘신춘문예’. 계절만 벌써 새봄이다.

 

- 심사위원 : 이수명, 김민정, 박준(대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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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빙 / 윤계순

큰 강에 얼음이 얼 때

얼음은 일사불란하게 얼지 않는다

얼었다가 다시 무수한 조각으로 부서지길

몇 차례 반복한 다음에야

평평하고 두껍게 언다

단단한 것들은 경전(經典)의 고리처럼

파륵 파륵 넘겨지다가 다시 한 권으로 뭉친다

티베트 승려들의 논쟁엔 손뼉을 치는 주장이 있어

셀 수 없는 의견으로 나눠지고

다시 이어 붙는 합의

그런 일들의 끝에 큰 강은

하나의 얼음판으로 얼어붙는다

얇은 추위에 몇 겹의 추위가 달라붙고

쩡쩡 얼음 조각들의 합의가 밤을 울린 다음에야

흐름이 멈춰 서듯 얼어붙는다

그런 물도 추우면 저희끼리

쩡쩡 뭉치지만

분분한 의견의 투합이 겨울을 건너와

지탱했던 제 몸을 다시 풀면 봄이다

그러니 녹는 순서는 그저 얼음 밑

흐르는 속도에 맡겨두면 되는 일이다

햇살이 조각나는 일을 두고

나뭇가지들은 저의 일직(日直)인양 분분하지만

지상의 결빙이 풀려야 비로소

햇볕도 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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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당선 통보 전화기에 귀를 대고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오후 2시 햇살이 창문을 넘으려다 반짝 멈춰 섭니다. 유리창 온도가 피워 낸 동백 한 송이가 마치 장미꽃 한 다발 같았습니다. 겨울 다음엔 봄이라지만 나의 좌절과 설렘은 늘 겨울에 있었습니다. 봄은 그 고배의 여파를 받아내느라 힘겨웠습니다. 시는 마치 한여름 나무 그늘 같았습니다만 늦게 출발한 시 쓰기는 치열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졸음과 자책 사이에서 시는 늘 겉돌았지만, 그동안 몇 번의 최종심 탈락은 오히려 당선의 기쁨을 연습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여름, 어머니를 찾아 미로 정원을 헤매시던 아버지가 어머니 곁으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이제 양친은 부모님이라는 호칭으로만 남았습니다. 많이 보고 싶습니다. 기쁘게 내려다 보고 계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를 핑계 삼아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제 시를 읽어주시고 소중한 기회를 주신 안도현, 손택수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국불교신문사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별다른 표현 없이도 힘이 되어주는 내 가족들, 양성규씨, 종화, 종원, 박홍희, 준우, 선우 고맙고 사랑해! 작은아들 종원아, 너는 행운아야, 그동안 고생했어. 오래도록 같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일을 함께 헤쳐온 나의 형제자매들,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돈독히 뭉쳐보자.

끝으로 같이 기뻐해 주는 문우들, 친구들, ‘사랑하나 시 한 줄’ 동인, 맨 처음 출발 시점이었던 대전시민대학‘시삶’의 안현심 선생님과 동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성은주 시인, 대전 문학관 수강 동기들 모두 고맙습니다.

[심사평]

불교신문이라고 해서 불교 소재나 공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강박을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두 해째를 맞은 한국불교신춘문예 시부문의 첫인상을 공유하면서 심사위원들은 200여 명의 1,100편이 넘는 작품 중 예심을 통과한 김동임의 ‘꽃’ 외 4편, 조현미의 시조 ‘분꽃, 누이’ 외 4편, 윤계순의 시 ‘결빙’ 외 4편을 중심으로 최종 심의에 들어갔다.

우선 ‘꽃’은 상징계의 제도 언어에 대한 부정의 어법이 소박한 가운데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소품이었으나 동봉한 단형 시편들의 편차가 극심하여 안정감을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시조 ‘분꽃, 누이’는 방직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옮겨오면서도 은유의 동일화 욕망을 저만치 여의면서 리듬과 형상과 뜻이 하나의 트라이앵글을 이룬 가편이었다. 형상과 뜻이 경직되지 않도록 시조의 리듬을 조직화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당선권을 다툴 만하였으나 역시 함께 읽은 ‘어떤 곡예’ 같은 작품의 기시감을 쉬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이미 기성의 시조들과 경쟁을 하고 있으리라 예측되는 이 시인이 돌파해나갈 세계의 기꺼운 파열을 기대하는 것으로 미련을 달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당선작 ‘결빙’은 불교 소재의 선입견을 극복하면서 재배치를 통해 오리려 낯설게 만드는 인식의 렌즈가 돋보였다. 결빙의 물리적 현상에서 손뼉 치는 논쟁과 합의의 동시성을 읽는 눈은 결빙과 해빙의 이분법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손쉬운 진술이나 설명이 아니라 제시된 이미지에 의해 역설적 사유의 공간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집중적인 관찰력과 성실한 묘사력, 뜻의 과잉 전달과 일방통행을 유연하게 만드는 시적 이미지의 힘이 크다고 하겠다.

당선자와 참여해준 모든 분들의 정진을 바란다. 아울러 한국불교신문의 지극한 노고와 보람이 보다 드넓은 지평 위에서 지속할 수 있도록 문학장 안팎의 관심 또한 증폭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심사위원 안도현ㆍ손택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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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에서 / 신나리

 

비 오는 새벽 요강을 몇 번이나 비워낸 할머니는 내가 잠에서 깰까 아침이면 부엌에 가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약을 많이 먹어 몸에서 쓴 내가 났다 나한테는 미묘한 매실 냄새가 비가 퍼붓는데도 두 냄새가 멈추지를 않았다

 

푸른 논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뚫린다던 엄마는 절대 할머니 곁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시골에 살면 우울증에 걸린다나 나 어릴 때 친구 하나가 너희 엄마 불 꺼진 매장에 혼자 앉아있더라 전해 준 적이 있다

 

할머니는 방에 걸린 무수한 액자들과 함께 살고 있어 나는 양심이 없으므로 엄마에게 몇 마디를 했다 얼마나 불쌍한지 외로운지 결국은 심심한지 할머니가 엄마는 고집 있고 성질 나빠 아빠랑 살기 어려웠을 거래 우리는 웃다가 콧물을 흘렸다

 

다음날 어떻게 잘 지낼지 생각하느라 도통 밤에 잠을 못 잤다 희망을 벗어날 길 없어 욕망을 추스를 틈 없이 이른 아침 아이돌 노래에 맞춰 산책하다 고추밭에서 누군가 칼로 난도질한 복권 여러 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죽은 삼촌 방에 앉아 뭘 하는지 할머니는 모른다 노래기 잡고 거미랑 싸우며 그냥 해보는 데까지 해 보는 겁니다 이를 갈면서도 이를 숨기느라 진을 빼고

 

같이 목욕을 하자더니 결국 혼자 손으로 몸을 문질러 닦았다 나가 있으래서 나가 있었다 할아버지 생전에 할머니가 비누로 씻고 밥을 차리면 비위 상해서 못 먹겠다고 상을 물렸다고 한다 그깟 소리 듣기 싫어서 그때부터 물로만 문질러 닦았다는데

 

이도 없고 밥 먹고 솟아야 할 기력도 권태도 없어 보이는 할머니와 저녁을 먹는다 기름 친 음식이 먹고 싶어 우유에 탄 진한 커피도 마시고 싶어 죽겠는 와중에 어김없이 체한다 할머니가 내 커다란 배를 문질러 준다

 

늙은 엄마를 사랑하지 못할까 눈물 찔끔 흘리는 내게 희망이 절망이 될까 한 글자 쓰는데 벌벌 떠는 내게 마을의 수호신 장승처럼 너무나 큰 할머니 끈질긴 여름밤 비는 쏟아지고 미물들이 발광을 한다

 

할머니 옆에 꼭 붙어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 우뚝 선 자존심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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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멋부릴 줄 몰라 솔직하게 쓴 시…더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았으면

 

엄마랑 동생이랑 오빠들이랑 노래방 갔다가 돌아오는 길 동물 사체가 있고 폐우물이 있었다. 블로그 이름을 우물에 빠진 날로 짓고 폐우물 사진을 걸어 두었다. 아빠와의 싸움을 매일 적었다. 조그만 친구들이 우물을 보러 와 자주 앉았다 가곤 하였다. 우리에게 우물이 있어서.

 

점잖지 못하게 괜히 들여다보고 귀를 기울이던 날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지워지지 않는 상처는 자연히 생겼다. 회복이 어렵다는 걸 잘 생각하려고 노력하였다. 가슴에 우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한 번 누를 때마다 더 깊어지는. 그곳에 나를 내려 두고 오면 된다. 우리는 호흡할 수 있다.

 

나는 시를 존재라고 느끼고 있다. 탐욕의 얼굴을 한 시를 본다. 이 세계를 이해해 보려다 피눈물을 흘리는 시를 본다. 얼마 전 이태원역에 갔다가 기도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마주하였다. 이 존재를 사람들 곁에 세워 현실을 살게 하겠다. 책임감을 가지고 쓰겠다. 외롭지 않은 문학을 만들겠다.

 

사랑으로 늘 꽉 껴안아 주는 나의 연인 슬, 채현, 아미, 진영, 혜인에게 고맙다. 언어를 통한 만남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준 나의 벗 윤원, 지원, 선빈에게도 고맙다. 날 고독하고도 풍요로운 인간으로 길러 준 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집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다.

 

언제나 도망칠 궁리로 가득 차 있던 나를 계속 바라봐 주신 정끝별, 안미옥 선생님께, 혼자 걸어가던 나의 시를 불러 세워 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평] 할머니·어머니·나로 이어지는 여성…서사의 저력 육화한 수작

 

시의 새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낯선 언어와 다른 시선뿐만 아니라 이미 익숙해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정서들을 재배치하는 데서도 온다. 먼저 ‘새들의 주식회사’는 말과 이미지를 빚어내는 제작술이 돋보였다. 동봉한 작품들의 수준 또한 두루 균질한 편이어서 신뢰할 만했으나 완성에 급급한 나머지 시적 공간이 더 확장되지 못하고 발상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오래된 습관’ 외 네 편은 당대의 그늘진 삶을 다루면서도 활달한 어조와 아이러니한 맥락 속에서 시상을 곱씹게 하는 힘이 있었다. 다만, 함께 읽은 작품들에서 탈골하듯 드러나는 비유의 도식성은 숙고를 요청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당산에서’ 외 네 편은 자기 안으로 함몰되지 않고 타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몸과 마음을 돌리는 시적 운동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당선작은 할머니에서 어머니 그리고 나에게로 이어지는 여성 서사의 저력을 육화한 수작이다. 독백이나 넋두리 수준의 사담에 연루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그 또한 상투화된 기우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우리는 기꺼이 시인의 모험에 함께하기로 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의 공덕이 부식토로 깔려 있음을 잊지 않고 정진하길 바란다.

 

- 심사위원 : 김사인 시인, 손택수 시인·노작 홍사용 문학관 관장, 진은영 시인·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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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의 엔딩 / 한상우

 

 

저녁을 덮고 누워 허공의 멱을 잡는 젓갈 냄새가 쓰다

어둠은 한낮을 낫질하던 허리를 펴 동족인 별을 음미하고

나는 잠이 무거워진다

꿈에 이끌려온 틀 떨어진 모서리 전쟁터

무기도 군량미도 없이

숨 쉬는 입들만 깊은 서쪽 어디쯤 되는 나라

맨몸으로 포격 맞는 판자촌 사이에서

주사기로 틀어막은 비명이 뜯겨 날아간다

막바지 전투라는 공이 울린 건

방어선을 넘어온 쓰레기 수거차의 반 박자 빠른 멜로디 때문

누전된 전쟁터로 다시 끌려간다

거미와 박쥐가 시시덕거리는 지붕 없는 흙색 창고

난민으로 탈바꿈하는 병사들은 군번줄 없이

녹슨 군번으로 정리된다

박쥐가 배급해준 빵이 딱딱하다

뱃속을 긁어대는 빗물에 불린다

팔다리 없는 물컹한 기억들이 벽 쪽으로 기울다 무너진다

꽃잎을 따듯 파편을 지우는 거미

틈을 보인 바닥에선 구더기가 팝콘처럼 튀어 오른다

허투루 빗자루를 찾다 그만두기로 한다

한창 뜨겁다는 아이돌 노래가

모스 부호 라디오에서 총성으로 빚는다

십이월을 막 지나는 오전 여섯 시가 실눈을 모로 뜬다

바람이 폭격하다 목이 꺽이는 소리가 창문까지 다가온다

모처럼 새우등이 펴진 아내

마침표를 찍지 않는 전사로 디자인된다

주머니 없는 소매 긴 전투복으로 강의 바깥 문을 열고 선

방아쇠 없는 뒷모습이 모서리를 가린 거울보다 간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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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중부광역신문 2023 신춘문예 1395편 접수…당선작 확정

 

“1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 가운데 상당수 시 작품은 우열을 가리기 매우 까다로웠다. 특히, 결선에 넘어온 30편의 ‘시(詩)’들은 전반적으로 수준이 뛰어났고 당선작 선정에 쉽지 않았다”

 

올곧은 창간 정신으로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지난 2009년 3월 16일 창간한 중부광역신문이 2023년 창간 14주년을 맞아 제1회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한 결과, ‘시(詩)’ 1395편이 접수돼 대상의 당선작으로 한상우씨가 응모한 ‘모서리의 엔딩’ 이 확정됐다.

 

‘제1회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공모’는 올해 창간 14주년을 맞은 ㈜중부광역신문과 (사)청주시문학협회 주최로 개최됐으며 충남일보 충북본사, 퍼블릭뉴스 충청광역사 등이 주관으로 진행돼 응모자 연령대는 물론 미국 등 외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다양하게 고모에 참여해 뜨거운 관심이 반영됐다.

 

지난해 12월 5일까지 응모 된 ‘시’ 작품들은 같은 달 17일 심사위원회의 1차 심사(예심), 2차 심사(본심) 과정을 통해 평가됐다.

 

심사위원은 정종진 문학평론가(전 청주대국문학교수, 문학박사)를 심사위원장으로, 성낙수 시인(신춘문예추진위원장, 중부광역신문 고문), 김이철?김나비 시인이 평가 진행했다.

 

심사 결과,‘제1회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공모’대상의 당선작으로 한상우씨가 응모한 ‘모서리의 엔딩’ 작품이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선정됐다.

 

우수작으로는 △김숙영 ‘내게는 내가 너무 많아요’ △고영석 ‘겨울섬-별의 헤테로토피아에서’ △배종영 ‘납작한 힘’ △김건휘 ‘여자가 여자를 만나다’ △남상민 ‘어둠의 외곽에서’ 등 5개 작품이 수상 명단에 올랐다.

 

정종진 심사위원장은 “결선에 넘어온 30편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수준이 뛰어났고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며 “모든 장단점을 따져 심사위원들은 가슴에 와닿는 출품작으로‘모서리의 엔딩’를 당선작으로 뽑는 것에 의견을 일치했다”고 말했다.

 

신춘문예준비위원장 성낙수 시인은 “‘제1회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공모’는 미국 등 외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1395편 응모작품이 출품됐다”며 “일정한 수준을 갖춘 작품이 많았다”고 밝혔다.

 

또, 성낙수 신춘문예추진위원장은 “시상금을 200만원으로 준비했지만 내년에는 시상금을 보다 현실화하고 시인들 신인 등용문 역할로 전환해 보는 것도 청주시문학협회 발전에 도움이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그는 “충북 지역신문에서 유일하게 시부 신춘문예를 실시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청주시문학협회와 공동주최로 하고 있어 더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제1회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공모’에서 대상으로 당선된 한상우씨는 “마당을 다져준 시처럼문학회, 멍석을 마련해 준 청주시문학협회, 판을 키워 준 솜다리문학회, 차거운 머리를 가슴의 불로 옮겨주신 이상미 교수님과 전문수 교수님, 들꽃 같은 남혜란 시인님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아울러 그 외 지도해 주신 모든 분과 영광을 안게 해주신 관계자분들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시상식은 중부광역신문 창립일인 오는 3월 16일 15시 상당구청 대회의실에서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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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영화 / 이진우

 

서른다섯 번을 울었던 남자가 다시 울기 시작했을 때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람이 슬퍼지려면 얼마나 많은 복선이 필요한지

관계에도 인과관계가 필요할까요

어쩐지 불길했던 장면들을 세어보는데

처음엔 한 개였다가 다음엔 스물한 개였다가

그다음엔 일 초에 스물네 개였다가 나중엔 한 개도 없다가

셀 때마다 달라지는 숫자들이 지겨워진 나는

불이 켜지기도 전에 서둘러 남자의 슬픔을 포기해버립니다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니까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니까

이 사이에 낀 팝콘이 죄책감처럼 눅눅합니다

극장을 빠져나와 남은 팝콘을 쏟아 버리는데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다고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라고

누군가 중얼거립니다

이런 얘기들은 등뒤에서 들려오곤 하죠

이런 이야기들의 배후엔 본 적도 없는 관객을 다 아는 세력이 있죠

문득 다시 궁금해집니다

뻔한 것들엔 아무 이유도 없는지

안 봐도 안다는 말에 미안함은 없는지

우리의 관계는 상영시간이 지난 티켓 한 장일 뿐이므로

텅 빈 극장엔 불행과 무관한 새떼들이 날아다니고 있을테지만

그것들은 다른 시간대로 날아가지 못합니다

가끔 이유 없이 슬픈 꿈을 꾸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예스이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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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살갗이 있고 피가 도는 ‘살아있는 詩’ 써나갈 것

 

운이 좋았습니다.

 

겸손도 아니고 그것을 가장한 교만도 아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행운들을 지금 다 써버린 건 아닌지, 그래서 남은 인생을 불행하게 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까지 합니다.

 

감사한 분들의 이름부터 불러 보겠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이외의 다른 말은 떠오르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가족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감정을 충만하게 해주는 Bassment167의 멤버 철하와 봉겸이, 지금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주신 도원이 형과 종상이 형, 조금 많이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기를 바라는 지훈이, 그리고 제 부족한 시들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주신 유계영 시인, 서효인 시인, 박준 시인, 김기택 시인, 장석주 시인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 누구에게보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고집부리던 아들을, 그 일을 하다 허리를 다친 아들을, 그래서 몇 달째 생활비조차 주지 못하는 아들을 항상 사랑해주는 엄마에게, 가장 큰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심사평] 당선자가 시집을 낸다면 누구보다 먼저 살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열세 분의 작품들이 취업 절벽, 사회 양극화, 저출산, 이주 노동, 기후 재난 같은 사회의 현안을 제치고 기분에 쏠린 현상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기분이란 미시적 영역에 천착한 시편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이번 신춘문예의 공동 주제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을 지경이다. 현실에 반향하는 내면의 메아리이고, 생의 사소한 기미를 머금은 감정 생활의 한 조각이라는 점에서 기분을 배제할 이유는 없겠지만 이 쏠림은 다소 염려스럽다. 이것이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오늘의 비정한 세태를 반영한 징후이고, 자기애의 과잉 때문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 탓이다.

 

그렇다면 이 사소한 감정의 굴곡인 기분이 어떻게 시의 모티브가 되는가를 눈여겨볼 수밖에. 먼저 경험과 이미지 사이 표면 장력이 작동하는 힘이 느슨한 시, 얕은 경험과 조각난 이미지의 흩어짐으로 끝나는 시, 감각적 명증성을 견인하는 데 실패한 시를 걸러냈다. 최종으로 남은 ‘멜로 영화’ 외, ‘손자국’ 외, ‘연안’ 외 등등은 좋은 시는 “운명을 동봉한 선물”(파울 첼란)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생의 변곡점일 수 있는 순간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그러쥐고 모호함을 뚫고 나오는 시적 명증성을 붙잡은 한 응모자의 ‘멜로 영화’ ‘홈커밍데이’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이 시들은 범속한 생활 감정을 의미가 분광하는 이미지로 빚어낼 뿐만 아니라, 자연스 언어 감각과 섬세한 느낌의 표현은 시의 풍부화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었다. 숙고와 머뭇거림에서 길어낸 사유를 자기의 리듬에 실어 전달하는 능력, 능숙한 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듯이 시를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은 분명 귀한 재능이다. 이 응모자가 첫 시집을 낸다면 서점에서 누구보다 먼저 시집을 구입해 읽고 싶다는 게 우리 속마음이다. 당선 문턱에서 멈춘 두 예비 시인께도 아낌 없는 박수를 드린다.

 

- 심사위원 : 장석주 시인,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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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 / 황사라

 

 

속이 보이지 않는 것은 싱싱해요

벌려지지 않는 조개는 살아 있는 거래요

 

나를 단단히 여미고 싶을 땐 시장에 가요

 

횟집 옆 원단가게 사장님은

둘둘 말아 놓은 천을 풀어 보여주시는데

아득한 바다가 출렁대는 줄 알았어요

 

바위에 붙어 있는 게 굴만 있겠어요

저기 좌판 한 자리에 앉아 

수십 년 동안 곰피를 팔아 온 할머니

손등 위에 물결무늬가 깊게 새겨졌네요

 

흥정은 늘 미끄럽기 마련이지요

손 안의 물고기처럼

자칫하면 놓쳐버리고 말아요

 

하루하루 쳐지는 나의 감정도 

얼음조각으로 덮어 놓으면

조금 더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바위에 수없이 부딪치면서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파도

물길을 잃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데요

 

골목의 해류를 따라가다 보면

지느러미를 펄떡이는 물고기들 

 

나는 잊었던 기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예스이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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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눈 내리는 ktx 안에서 등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책이 자꾸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흘러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6년 시를 처음 접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였지요. 제가 접한 시들은 예전에 알고 있던 시들이 아니었습니다. 시가 전해주는 의미와 감정의 결도 모른 채 수십 권의 시집을 필사했습니다. 그럴수록 시는 더욱더 혼미한 곳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불현듯 ‘시는 본래가 그런 것이다’라는 어디선가 본 글이 떠올랐습니다. 삶처럼 시도 그럴 수 있겠구나, 삶과 다를 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앞선 등단자분들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라고. 오직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산 아카데미 길상호 선생님, 시클 하린 선생님, 걷는 사람 김성규 선생님, 박형준 교수님을 비롯한 동국예술대학원 교수님들, 시로 좋은 예시를 보여주신 많은 시인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중대포엣, 블루버드 선생님들도 고맙습니다. 크리스티나, 필립보 네리, 너희들이 있어 엄마는 항상 웃을 수 있단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심사평]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쳐 보인 시적 진정성 

 

이미지의 부조화와 언어표현의 부정교합으로 빚어내는 파격미 혹은 의외적 정서충격도 소통의 가능성을 전제로 했을 때 유의미하다. 투고한 많은 작품들이 새로움의 추구라는 강박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은 실험적 언어표현을 과도하게 구사한다든지 열린 언어 구조로 너무 많은 것을 독자의 몫으로 떠넘기는 경우를 본다. 의미맥락을 간추릴 수 없거나 일상적 의미맥락에서 너무 멀어진 경우가 많다.

 

주제의 치우침 현상 때문에 예심을 넘어서지 못한 작품들이 많았다. 사회적인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루었을 때 변별력을 잃고 또한 상식을 넘어서는 개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투고된 많은 작품들에서 산문화 경향이 뚜렷했다. 압축과 생략 그리고 비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내는 (혹은 감추어두는) 시의 언어적 속성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긴 시간 고립된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문장 특성도 자주 발견되었다. 고립된 시간을 견디며 혼자 읊조리는 독백형, 사변형의 문장들이 그것이다. 배출 혹은 배설과 다른 지점에서 씨 쓰기의 이유는 찾아져야 한다는 점에서 얼마간의 우려를 하기도 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 가운데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아보카도', '밀리터리룩의 이중성', '활어', '검은 고양이'다. 이 작품들과 함께 제출한 다른 작품도 참고하여 시인이 그의 시 세계를 계속하여 펼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도 가늠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아보카도'에서 견디기 힘든 폭염 속 시적화자는 “비닐하우스가 녹아내려 그 안에 자라고 있던 푸른 식물들이 다 타버릴지도 모를 날들”을 떠올린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밀리터리룩의 이중성'은 위선과 관능과 관음을 도덕으로 위장한 ‘이곳’(도시)에서 ‘그곳’으로의 이탈(혹은 일탈)하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표현했다. 시의적절한 문제의식과 함께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단순 서사에 머물거나 설명적 요소가 강하여 형상화가 미흡하다거나 정서 수준으로 용해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검은 고양이'는 빚어내는 이미지가 발랄하고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상상이 흥미롭다는 점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그 이미지와 상상이 과잉된 측면이 있고 그 어떤 메시지로 수렴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활어'는 바닷가의 삶에서 읽어낸 활력과 긍정의 힘을 그려낸 작품이다. 어렵지 않은 표현으로 끌어가는 시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안정감이 있다. 그가 펼치는 정서에 신뢰를 갖게 하는 노련함이 보인다. 서정성도 잃지 않고 있다. 그 어떤 섬광 같은 새로움이 아쉽지만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역량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의 없이 「활어」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하였다. 

 

- 심사위원 : 김사인(문학평론가)·복효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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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의 말言 / 함종대

 

 

발톱은 발의 말이다

발은 한순간도 표현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나는 낮은 곳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짓눌리거나 압박받는 곳에서 나오는 언어는 어감이 딱딱하다

그렇다고 낮은 곳 아우성이 다 각질은 아니어서

옥죈 것을 벗겨 어루만지면 이내 호응한다

늦은 퇴근 후 양말을 벗으면

탈진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발가락들이 하는 말을 더럽다고 외면한 날이 많았다

안으로 삼킨 말이 발등으로 통통 부어오른 날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에게 내미는 말을

나는 야멸차게 잘라내며 살았구나

오늘은 발을 개울에 데려간다

물은 지금 머무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라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아는 양

같은 족을 만난 듯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

발이 내어놓는 울음인지 물의 손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이 봄나무에 물오르듯 올라온다

머리를 낮게 숙여 두 손으로 발을 잡아본다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는지 볼까지 흠뻑 젖었다

개울이 발의 울음소리까지 보듬는 걸 보면

오래전부터 산의 발등이나

나무들의 발가락을 어루만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개울도 울컥거릴 때가 있어 강에 발을 담근다

바다는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 하구를 보듬는다

장사가 어려워 가게를 폐업하던 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뭍의 등을 철썩철썩 쓸어내린다

 

 

 

 

예스이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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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농작물을 해치는 유해조수 퇴치용 울타리 지원사업이 있어 읍사무소에 밭 울타리 신청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당선 전화를 받았다. 낙선한 줄 알았는데 늦게 받은 소식이라 더욱 기뻤다. 부족한 글에 손 내밀어 주신 심사위원님, 전북도민일보에 더욱 노력하는 참신한 글쟁이 모습으로 보답하고자 한다.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읽고 감동 받을 수 있는 눈높이 낮은 시에 큰 울림을 새기고 싶다. 

 

위에서 ‘유해조수有害鳥獸’ 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그 들은 내 글의 뿌리이며 줄기다. 지게 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다닐 때나 7km 정도 산길을 걸어서 등하교하던 시절 보았던 산토끼 고라니 멧돼지들은 지금까지 내 습작 노트 속을 뛰어다닌다. 무엇엔가 쫓기던 고라니가 건너편 산등성이까지 치달아 문득 멈춰 서서 뒤돌아보듯 마흔을 넘기며 책을 다시 잡았다.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호사는 바라지도 않는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도매시장엘 다닌 지 30년 가까이 되었다. 상인들이 가게 문을 열기 전에 물건을 납품하고 4시에 우리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 현실 탓을 하며 주저앉고 싶기도 했다. 글을 포기한 날보다 한 줄 글이라고 쓴 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 글감을 마음에 품고 일했다. 그러다 보니 원가 이하로 물건을 팔아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족한 남편을 반듯한 아비로 남편으로 포장해 준 아내 박경혜에게 당선의 공을 돌린다.

 

 

 

[심사평] “낮은 곳에서 서로 힘이 되는 것들의 속내를 미려하게 묘사”

 

‘시인은 ‘시’를 매개로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구현하고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파장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으로 202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 673편을 읽는 동안 여러 번 행복하였다. 너무 많은 비유가 오히려 흠집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사물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역량껏 드러낸 좋은 작품들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새겨읽고 싶었다.

 

여러 번 정성 들여 읽는 단계를 거쳐 1차로 선정한 일곱 작품은 「서폐」, 「눈과 발」, 「가장 낮은 곳의 말」, 「동백낭 아래」, 「회색 늑대」, 「유성」, 「마두금」이었다. 일곱 개의 시를 되풀이하여 읽고 난 후 「서폐」와 「눈과 발」, 「가장 낮은 곳의 말」을 2차로 선정하였다. 

 

박승균 님의 「눈과 발」은 적절한 수사와 시적 장치들이 좋았고, 차분하게 주제를 끌고 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뭉클한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읽을 맛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있을 법한, 그리고 어느 작품에선가 본 듯한 결말이 마음 한구석을 서운하게 했다. 

 

노수옥의 님의 「서폐」는 ‘책허파’라는 독특한 소재를 온전히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능숙한 언어의 운용이 돋보이고 작품의 분위기를 책임지는 시적 화자의 시선 처리와 묘사도 정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경합했으나 매우 아쉽게 되었다. 

 

202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함종대 님의 「가장 낮은 곳의 말」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가장 낮은 곳의 말」은 시상을 무리하게 전개하지 않으면서, 청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매끄럽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도 시의적절하였다. ‘발톱’이라는 오브제에서 시작한 시적인 사유를 거침없이 확장해내는 활달함도 돋보였다. 낮은 곳에서 서로 힘이 되는 것들의 ‘속내’를 미려하게 묘사해내는 점도 작가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했다. 대한민국 시단에 무르익은 기량을 맘껏 펼치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김영(시인, 전북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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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 김미경

 

 

요즘 뒤에 있는 것들이 좋아집니다

 

당신처럼, M에게도 빈티지 공간 하나 있었죠 그때 M은 무척 어렸고, M을 업었던 등은 순하고 따뜻한 조도를 갖고 있었어요 잠투정하던 M이 눈물 콧물 번진 얼굴로, 그곳에다 새근새근 잠을 기대놓으면, 달빛도 베이지색 커튼을 수직으로 드리웠죠

 

그거 아세요

이 세상 어린 잠들은 모두 수직이 키웠다는 거

 

비밀스런 달의 뒤뜰도, 사다리타고 내려오듯 위에서 아래로 점점 깨어나고, 이따금 놀다가던 천왕성도, 목련꽃 켜 둔 그녀의 뒤란까지 따라왔던 초록 이파리도, 명지바람이 업어 키웠죠 달이 지구 그림자를 컬러로 인화해 준다는 뉴스가 뛰어다니던 날, M은 쓰러진 그녀를 업고 응급실로 달리던 중이었다는데요

 

건초처럼 가벼워진 그녀 몸이

M의 등에서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렸다는데요

 

그동안, 들판과 벼랑마다 피는 꽃이 달랐던 것도 다 그 이유였을까요 늙은 수직은 어린 수직 위에서 온전히 잠들기 어려웠을까요 그 등에는, 당신의 위급한 잠조차 기대기 아까웠던 걸까요

 

의사선생님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응급실에 불안한 숨을 눕혀놓고서, 시든 파 같은 그녀 등이, 그믐달보다 어둡게 식어가는 걸 보았다는 M, 어떻게 알았는지 공중을 열고 문병 온 태양도, 가로보다는 세로의 언어로 토닥이다 가고, 달도 허공에 벽지처럼 서서 회복을 기다렸다는데요

 

M의 빈티지 침대는

꿈속에서, 울고 보채던 어린 벼랑을 등에 업은 채

신음하다 눈 감았고요 숨진 침대를 상여가 -어영차 수거해갔죠

 

우리는 따뜻한 수직의 잠을 기억하는 족속들,

M을 본 건 며칠 후였습니다

 

잔뜩 웅크린 어깨로, 사망진단서 팔랑이는 손을 데리고 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그 앞을 스친 버스 안에는, 흔들리는 손잡이에 오늘 태어난 졸음을 기대놓은 사람들,

 

사람들이 저녁마다 집으로 향하는 것은, 자신의 등 어디쯤에 있는 벼랑 하나가, 어리거나 늙은 주인들을 애타게 부르기 때문, 당신이 퇴근하는 골목이 가끔씩 캄캄한 것도, 등에 업은 아기 깰까봐 가로등도 자는 척 눈 감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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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성경 말씀이 시와 저를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전혀 생각 못했던 당선전화를 받고, 하얀 밥물이 끓어 넘치듯 내 속에서 사계절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초년시절과 청년시절, 성인이 되어서까지 평생 시를 동경했지만 통성명도 못한 채 헤어지고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저는 필리핀에 살고 있습니다. 유년의 친구를 찾듯, 어느 날, 시가 저를 찾아와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하더니 새벽에도 저를 깨워 소재들을 툭툭 던져 주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매일 그것을 공부하며 쓰는, 시와의 즐거운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놀라운 시 창작 강의 채널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명희문학TV’는 제가 먼 타국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며 어려움을 겪다가 만난 최고의 생수였고, 그 동안 모르고 써왔던 시 창작 기법에 대한 큰 배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시에서 몰랐던 것들을 무수히 깨우쳤습니다.

 

이제 돌아보건대,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내게 말을 걸어주는 우주만물에게도 고맙습니다.

 

때로 제가 가장 지쳤을 때 손 잡아주시고 응원해주신 존경하는 스승님,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뜨겁게 시를 발굴하고 있는 시시각각과 다락방, 다줌 문우들, 앞으로 꼭 문우님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응원합니다.

 

교회 선교사님과 박시인님, 조시인님, 사랑하는 친구들 언니들 오빠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오래전 저의 어린울음과 칭얼댐을 포근하게 재워주시고 길러주신 하늘나라에 계시는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두 분의 등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음을 고백하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제 시의 손을 잡아주신 전남매일 신문사 담당자분들과 심사위원님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쉼 없이 더 정진하여 우주만물,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따뜻한 시인의 길을 열심히 걷겠습니다.

 

끝으로, 제가 주저앉을 때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으로, 나와 시를 특별하게 묶어주셨던 나의 목자 되신 예수님께 오늘의 영광을 돌립니다.

 

 

 

[심사평] 시적 사유의 깊이와 상상력에 중점

 

책상에 쌓인 원고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삶이 팍팍한 시대에도 문학을 향한 열기는 뜨겁다는 것을 느꼈다.

 

시적 사유의 깊이와 시적 구성, 상상력의 폭과 넓이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그중에 ‘광합성 야구’, ‘서부 우회도로’, ‘기억제본공장’, ‘등등’이 군계일학처럼 눈에 들어왔다.

 

‘광합성 야구’는 아버지의 서사를 ‘오렌지’와 연결한 참신성이, ‘서부우회도로’는 ‘누룽지 냄새’로 그려낸 그리움의 풍경이, ‘기억제본공장’은 책을 제본하듯 기억을 제본해 나가는 상상력이, ‘등등’은 “수직”을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표현한 점이 참신했다. 엄마의 등도 햇살도 벽도 수직성으로 ‘어린 것’들을 키워낸다는 발상의 능력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작품들이 일정한 수준에 올라와 있어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울림의 폭이 큰 ‘등등’에 손이 갔다. 함께 투고한 작품들에서도 사회적 현상과 문제를 바라보고 새롭게 표현하는 등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 소통의 폭이 큰 점도 믿음이 갔다. 큰 축하를 보낸다. 큰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당선되지 못한 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 심사위원 :강대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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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 / 한이로(필명) 

 

내 방엔 거울이 하나

나는 언니였다가 나였다가

 

서로 다른 옷을 입을 때

살짝 삐져나오는 다디단 표정

 

나란히 서면

자꾸 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거야

우리에겐 곁눈질이 있으니까

 

이따금씩

거울을 볼 때

나를 잊어버리는데

 

나는 잘 있니?

 

학교를 벗어던진 우리는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 위로 쏟아진 자동차들 사이로 뿔뿔이

흩어진다

 

반으로 나눠진 마카롱,

사라진 쪽이 너라고 생각하겠지

 

바닥에 번진 우리의 그림자를 지우느라

붉어지는

늦은 오후의 얼굴들

 

간호사가 건네는 푸른 옷을

얼굴처럼

똑같이 입고 우리는

 

사이좋게

캐스터네츠를 악기라고 말하고 난 뒤의 기분을

반으로 접는다

 

다른그림찾기와

같은그림찾기가

다른 말로 들리니?

 

내 방엔 거울이 하나인데

두 개

 

매번 언니였다가 나였다가

 

입꼬리 살짝, 올라간다 

 

 

예스이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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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작품, 삶과 같아 언제나 미완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아득하기엔 아린 나날이어서 먼 듯하지만 가깝고 가까운 듯하지만 먼 거리였다.

움켜쥐어도 끝내 잡히지 않는 햇살, 그럼에도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보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듯.

빛살을 엮어 만든 밧줄과 같은 인연의 힘으로 여기에 서 있다.

고마움과 미안함은 이따금 동의어로 쓰인다.

시를 쓰면서 그림을 생각하곤 했다. 그림을 그리며 시 쓰는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저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며 걸었다.

걷는 것은 견디는 것과 닮았다.

작품은 삶과 같아서 언제나 미완일 뿐, 오늘의 뿌듯함이 내일의 부끄럼이 되곤 한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시간처럼 이 또한 성근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빛나는 밧줄을 길잡이 삼아 환한 저 너머로 다시 걷는다.

제 시의 맨 앞에 계신 이용헌 시인님, 박동기 작가님,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버지 어머니 큰모 삼촌 막모, 그리고 브라더 복문.

끝으로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심사평] 발랄한 상상력 뒷면에 감춘 저항의식…詩 본원적 매혹 느껴

 

본심에 올라온 열아홉 분의 작품은 제각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쁘고 단정한 서정시에서부터 종교성을 띤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넓었으나,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거나 새로운 전망,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말이 많았고, 사유와 상상력을 자신의 언어로 정련한 작품을 보기 힘들어 아쉬웠다. 산문적인 시의 경우, 시의 내러티브가 전개되면서 의미와 이미지가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하는데, 반복에 그치거나 오히려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 대상으로 남은 것은 '데칼코마니' '흰색 위의 흰색' '유리방' 세 편이었다.

 

'유리방'은 산문시인데 밀도 있는 전개와 예리한 언어감각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세상 혹은 세상의 폭력에 대한 은유나 상징으로도 읽힐 수 있는 유리방 속 존재들의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시를 읽는 맛을 느끼게 해 주었으나,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문제의식이 보다 다양하게, 입체적으로 표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흰색 위의 흰색'은 말레비치의 그림 <흰색 위의 흰색>을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언어 구사가 빼어났다. 묘사와 진술의 능력이 돋보였고 시를 끌고 나가는 힘도 있었다. 그러나 평면적이었다. 눈덧신토끼와 스라소니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구체적 자기 경험과 겹쳐졌으면 시의 깊이와 울림을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데칼코마니'는 경쾌한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정서의 파동을 지닌 작품이었다.

 

그동안 우리 시가 보여준 거울에 대한 상상력과는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면서 자아·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인식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발랄한 상상력의 뒷면에 감추어져 있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의식, "이따금씩/ 거울을 볼 때/ 나를 잊어버리는데// 나는 잘 있니?" 같은 질문들, "다른그림찾기와/ 같은그림찾기가/ 다른 말로 들리니?" 같은 유희, 이것들을 한 편의 시에 유기적으로, 또 차분하게 담아내는 능력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두 심사자는 시의 본원적 매혹을 느끼게 해 준 '데칼코마니'를 흔쾌한 마음으로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 심사위원 : 이하석 시인·전동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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