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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이야기 / 김성훈


끈으로 묶는
옥스포드 형태의 소가죽 구두를 샀었다
가죽이란 목숨 있는 것의 벗겨낸 피부이니
나는 소의 피부를 두 발로 지르밟고
코뚜레에 줄을 묶어 이십여 해를 살아온 셈이다
등이나 뱃가죽을 벗겨내어 무두질을 하고
이런저런 염료로 물을 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구두가 된 나의 소는
채찍을 맞고 한몸 가득 묵형墨刑을 받은 채
억지로 부드러워진 등이나 혹은 배로
말하자면 온몸으로 걷거나 기거나 구르고 있는 것이다
내 한 마리 구두는
이 괴롭고 어색한 오체투지로
업장을 바랑 삼아
윤회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신발 한 켤레 없이
축생도 서러운 길을 맨발로 걷다가
또 다시 신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맨발의 신엔 신발이 없다
하루치 윤회의 길을 끝내고
쇠마구간 같은 신발장 속에 들어간 네 곁에 누워
나는 너의 고단했던 날들을 위로한다
오래 되었구나 우리의 인연은
이제 끈을 풀어 나의 구두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
부끄러워라
나의 가죽은 누구를 위해 한 켤레 구두가 되어 보나

 

 

 

 

 

 

[심사평]


2020년 제17회 부천신인문학상에 투고한 작품들은 다소 편차가 있었지만 몇몇 작품들은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두 심사위원은 의견의 일치로 투고작 101번의 「구두 이야기」를 당선작으로 선정했습니다.


구두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이 작품은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로 말미암아 물질가치에 경도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반성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돈을 내고 구입한 구두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물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뿐 그것의 생명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그렇지만 당선작의 세계 인식처럼 구두는 생명이 있는 소가 희생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는 구두가 된 뒤에도 인간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바치는 존재입니다. 당선작은 이와 같은 주제의식으로 물질주의에 함몰된 현대인들의 비인간성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구두 이야기」는 주제의식이 깊을 뿐만 아니라 구성이 견고하고 문장도 단단합니다. 아울러 함께 응모한 작품들도 수준이 고른 편입니다. 오랫동안 시 쓰기에 매진해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창작이란 부단하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더욱 정진하시길 기대합니다.


이외에 투고작 104번 「대장간 온도계」 외의 작품들도 주목했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삶을 담아내는 데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어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제재에 대한 감정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문장 쓰기에 유념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투고자 115번 「막」 외의 작품들도 돋보이는 개성과 문체가 관심을 끌었습니다. 제재에 대한 주체적인 관점을 독자와의 소통으로 연결시키면 좋겠습니다.


나름대로 연륜을 갖고 있는 부천신인문학상에 응모한 모든 분들께 감사와 응원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천신인문학상의 지향성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문학 청춘, 시대를 울려라.

 

심사위원 맹문재, 김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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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가로등 / 박동민

 

도끼가 나무를 생각하는 밤 발톱 빠진 길고양이 담장 위에서 녹슨 바람을 긁어대고 버려진 전봇대를 꼭 껴안은 알뿌리들의 시든 선율 나무가 도끼를 생각하는 밤 칼날 같은 세금 징수원의 눈을 피해 창문은 벽이 되고 그 자리에 내걸린 그림 속 벌목공들 눈 비비며 걸어 나와 도끼 대신 악기를 들고 나무 대신 악보를 켠다 납덩이를 찬 발목들의 힘겨운 비상 털갈이 하는 개들의 가래침 누런 이빨로 웃는 불규칙한 달의 음계여 쏟아지는 톱밥이여 밤의 수문장도 잠드는 시각 톱날 같은 은색 지퍼를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줄 끊어진 기타가 썩은 독기를 동쪽으로 끌고 갈 때 가로등은 생각한다 왜 쇠기러기는 무딘 눈꺼풀로 수많은 밤을 찍어대는지 마음의 후렴이 종지부를 찍을 수 없는 날갯짓을 계속하며 보이지 않는 유리창을 두드리는 이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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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존재의 검정 / 박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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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집 / 서금숙

 

사람을 까먹었다

편안한 잠을 까먹었다

까먹은 기억을 까먹었다

집은 포장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사람 없음을 표시 해놓은 빈 상자다

커다란 짐짝이 되어 포장테이프로 입을 막았다

 

단층집 옆 이층집 옆 미용실 옆 수선 집 옆

지름길을 가려고 시작된 행보가

느티나무 숲길을 이루고 평상에 앉았을 마을 풍경 안

상심의 저녁을 건너다 봐야하는 곳으로 점찍어 두었지만

버릴 것인가

버려질 것인가

실존의 언덕을 돌아설 뿐

소유했던 집은, 시간은 있었던가

 

개가 짖어대던 골목

버려진 화분이 버려진 집을 지킨다

 

칼과 도마가 사라졌는데 안전하지 않다

진혼곡이 흐르는 영혼 없는 그림자만 섰다

토닥이는 그릇소리, 옹기종기 밥 먹는 소리,

쏼라거리며 넘나들던 셋방 사람들의 웃음소리,

난닝구 구멍을 뚫고 날아온 술로 푸는

그간의 이야기가 살아남지 못했다

사람이 나가고 물도 나가고 전기도 나가고

캭 하고 뱉어 낼 가래침도 없다

두고 온 빈 상자 홀리는 트럭야채장수의 목청도 없다

더 작은 상자 속으로 실려 간 사람들

집에 매달린 믿음을 버렸다

버려진 상자 안에 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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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 양가을

 

열일곱 살에 마음을 죽인 아이가 있었다

거꾸로 손에 쥔 칼로

마음이란 데를 어디든 찾아서 망설임 없이 찔렀더랬다

그녀가 마음일 곳이라 생각한 데는

통증 없이 통증이 오는 곳

내가, 벌레 아닌 이유가 있을까, 그리 생각하면서

머리 가슴 배를 여린 손으로 어른처럼 쑤셨더랬다

 

숨죽인 아이는 죽은 듯 잠을 잤고 잠만 잤지

그녀는 꿈에서도 죽어만 갔고

죽어가는 자길 보며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더랬다

 

우울하게도 참담한 건 기어코 아침이 왔다는 신호들

아침엔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아침엔 올 수가 없다고

미지근한 햇살이나 덜그덕거리는 분주함이나

굳은 몸을 일으키는 동작 같은 것들은

밤새 축적한 통증을 아이 몸에 꽁꽁 동여맸단다

아이야 오늘도 살아야지 하고, 그랬다 했다

 

아이는 밤새 죽인 마음을 머리 가슴 배에 아무렇게나 붙이고

구역질나는 아침을 집어삼키고

사람 같은 걸 겨우 형상하고서

어제와 어제처럼 걸었다

 

그렇게

이럴 수는 없다고 이럴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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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 성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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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과의 관계 / 이정화







[심사평] 


부천이라는 단일 지역의 신인문학상 시 부문 공모에 72명이 360편의 작품을 응모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시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것인데, 작품을 읽어보니 시 쓰기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갖추지 못한 초보적인 작품이 많아, 질적이 면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취미로 시를 쓴다고 해도 신인문학상에 응모한다면 식민지시대부터 최근까지 우리 근현대 시문학을 지탱시켜온 주요 시집을 100권 이상은 정독하고(그중의 몇 권은 책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읽고) 창작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 정도는 이해하고 수백 번 쓰고 버리는 습작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당선작을 뽑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지만, 어느 정도의 수련을 거치고 시에 대한 열정을 보인 작품들이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마지막까지 논의가 된 작품은 벽장과의 관계」 「봉지들이 터졌다」 「뒷걸음질」 「저녁놀4편이었다. 벽장과의 관계는 벽이나 다름없으면서도 언제든지 여닫을 수 있는 벽장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주목할 만했다. 벽이면서도 필요할 때는 장이 되고 감추고 싶은 너저분한 물건들을 던져놓고 문만 닫아놓으면 그만인 편리한 곳이어서 평소에는 방치해 두지만 갈수록 추억의 가치가 커지는 대상에 대한 관찰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기억의 끝”, “먼지 낀 추억”, “오래된 감정과 같이 습작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상투어가 거슬렸다. 봉지들이 터졌다는 응모작 중에서 가장 패기 넘치고 상상력이 자유로운 시이다. 이 시는 상품 포장이 많아지면서 봉지들이 흔해져서 이제 공해가 될 지경인 현실을 재미있게 꼬집고 있다. 어디서나 터지고 밟히는 봉지들에 대해 쓰고 있지만 그 봉지는 또한 현대인의 모습을 환기시키고 있어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즐겁게 자극하고 있다.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도 읽을 만하기는 했지만, 아직 거칠고 덜 다듬어졌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장난스러운 구절들이 있어서 선뜻 밀기가 주저되었다. 뒷걸음질콘크리트 사막인 삶의 터전에서 자기 앞에 찍힌 강아지, 개나리, 하루살이 등의 발자국을 보며 자신의 걸음이 뒷걸음질임을 발견하는 반성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문명의 힘에 조금씩 죽어가는 몸 밖의 자연과 몸 안의 자연에 대한 시적 인식을 보여준 점은 볼만했으나 그 시적 인식은 상투성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저녁놀은 풍경에 매혹되는 순간이 시가 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시적 순간이 무엇인지 묻고 있는 시이다. 풍경화와 시적 순간을 연결하는 상상력은 독특하나 월척을 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짜릿한 손맛에 대해 배가 부르다고 끝내버려서 아쉬웠다. 그 손맛과 짜릿함 속에 들어있는 질문을 상상력으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시가 되는데, 적당히 쓰고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네 편의 작품은 각각 장점과 한계가 뚜렷하게 보여서 심사위원의 동의를 단번에 얻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네 편중에서 벽장과의 관계가 시적 인식이나 창작 방법에서 가장 착실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여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이 들쭉날쭉한 반면에 이 응모자의 작품은 고른 수준을 보여준 점도 참고하였다.


심사위원: 박몽구,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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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앞치마 / 손영자

 

꽃무늬 에어프런 두른 친구 엄마가 부러웠던 어린 시절

엄마는 잿빛 투박한 앞치마를 두르셨다

 

어스름 새벽부터 자정을 넘길 때까지

앞치마는 생선 비린내를 풍기며

인근 골목으로 배달을 다녔다

 

항상 아랫배에 매달려 엄마 손처럼 늘 젖어 있던 앞치마

양쪽 볼룩한 주머니엔 땀에 젖은 하루가 담기고

퀴퀴한 비린내와 근심도 들어 있었다

 

자정 넘긴 늦은 시간

하루치의 노동을 세며 잠을 떨치던 엄마

생선이나 야채를 주무른 거친 손을 볼 때마다

알반지를 낀 친구 엄마 하얀 손을 생각했

 

장시간 허리에 묶여 고된 일을 끈낸 하루가 풀릴 때

부종으로 시달린 다리를 접을 수 있었다

잠든 머리맡에 놓여 있다가

새벽녘 부스스한 잠을 털고 일어나면

앞치마도 엄마의 허리를 잡고 함께 일어 났다

 

엄마의 무릎처럼 튼튼한 앞치마도

조금씩 엄마와 함께 늘어 갔다

내가 그토록 싫어 했던 앞치마

가끔 장터에서 얼룩진 앞치마를 만나면

울컥, 그리움이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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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교양 / 황인욱

 

흑사병의 역사를 뒤로하고 눅눅한 지하를 거닐던 쥐들이

시장의 외곽으로부터 이곳저곳을 누비며 악마의 씨앗을 뿌린다

높은음자리표를 따라 선율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면

이내 악마는 굽어보는 선단 위에서 지휘봉을 들고

품위 있는 연주를 시작한다

귀품 있는 ㄴ귀족부인의 영국식 치마 끝자락을 타고

머나먼 땅에 도착할 때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들조차 악마의 연주에 황홀해 마지않는다

 

기사는 투구를 쓰고 오래된 갑옷을 걸친 채

악마의 교향곡을 음미하곤,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간다

형용할 수 없는 정의감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퍼지며

죽음을 바라볼 때 경건해진다

 

기사는 오래된 나무 단상 위에 올라서

이내 악마를 단두대 앞에 세운다

단두대의 핏물이 바구니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았으리라

바구니 가득한 수많은 머리들 중 하나로 남겨질 악마의 자취

하지만 악마는 자신의 운명 앞에 미소로 응답한다

곧 칼날이 공간을 비틀고 악마의 목을 강타하니

사람들은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악마의 바람이 이루머지며

악마는

저주받은 암흑 속에서 휘파람을 분다

기사의 죽음은 단지 악마의 비석 앞에 놓인

안개꽃 다발 속에 하나의 이파리에 불과할 뿐

악마를 찬송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광장 가득 울린다

이 얼마나 고결한 교양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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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 강현진

 

육각의 눈송이들이 내리는 겨울

그 안에 갇힌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들

책장이 육면으로 서로 마주 보고

책들은 서로 잠그고 쉬쉬하며

벌집 모양의 도서관 계단을 오르내리게 한다


당신은 어디에 꽂혀 있는가

낡은 책의 첫 페이지를 거꾸로 읽어보기도 했다

붉은 활자들이 새 주둥이가 되어

내가 흘리는 눈물들을 받아마셨다

책을 한 삽씩 파묻을 때마다

도서관 가운데 나무가 한 뼘씩 자랐다

천사들이 나무를 오르며 꽃을 던지고

7개 태양을 등불 삼아 미로를 통과했다

책을 넘길 때마다 당신의 발자국은 정교했다

칼로 도려낸 글자들을 호주머니에 넣고

돋보기로 흰 페이지를 불사르며

고양이의 토막 난 꼬리들을 주워 담는데

아린 열매들이 가슴에서 떨어져 내린다


날이 저물면 책들은 경사가 지고

내 사랑도 반쯤 기운다

작게 빛나는 달을 쥐고

책장 위에 쓰러져 있던 당신을 발견했을 때

얼어붙은 당신의 페이지에 입김을 불고

숨겨진 구절들을 손으로 더듬는다


독이 묻은 당신을 읽으며

소리 없이 죽어가는 밤

나무가 영혼을 뚫고 뻗어 가

건물을 불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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