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투고된 700여명의 작품을 나누어 각 3편씩을 뽑아 모두 9편을 가지고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투고자의 정보를 알 수 없도록 이름과 주소, 학교명을 가린 채 진행한 이 첫 번째 작업에서 우리들은 우연히도 3편을 일치시킬 수 있었다. 시를 보는 눈이 서로 다를 줄 알았는데, 논의를 해갈수록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운데 2명이 공동으로 뽑은 1편을 한 분이 추천하여 모두 4편을 가지고 최종 심의를 하였다.
「우선 앵무새 혀 사용법」외 4편을 응모한 분의 표제시는 앵무새의 혀를 펜으로 전환하는 비유적 기법이 매혹적이었다. 한 사물을 다른 사물로 대체하는 시의 기본기를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다른 시「말」에서도 “혀끝에 속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이라는 느닷없는, 그러면서도 상상이 가능한 낯선 진술이 마음에 들었다. 긴 호흡을 통한 긴장의 유지와 균일한 작품성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메시지 전달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인력」외 4편을 응모한 분의 시는 행간이 좋았다. 짧은 호흡의 시지만 언어가 행간을 신선하게 뛰어다닌다. 수준 높은 인식이 존재한다. “한 바퀴를 다 회전하는 손잡이는 없다 딱 반 바퀴 돌고 다시 반 바퀴를 되돌아 문이 열리면”이라는 식의 진술이 그렇다. 다른 시 「트랙」은 시간에 의해서 구축되는 인간의 운명을 비유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던진 것과 놓친 것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인식에 공감했다. 그러나 간혹 건너 뛴 행간을 되돌아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다음날로 가는 새벽」외 4편을 응모한 분의 작품 가운데, 섬세한 요리의 상상력으로 죽음을 응시한 「동물적인 죽음-Melting pot」와 「가로등 밑」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하였다. 우선 이 분의 시는 잘 읽혔다. 시행을 따라가면서 심상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은유가 깊었다. 특히 주목한 시는 「가로등 밑」이었다. 정황묘사가 세밀하고 트릭과 능청, 기대 배반의 말부림이 좋았다. 한마디로 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차에 치었는데/ 바나나껍질 옆으로 날아가 같은 포즈로 누었다”라는 표현들이 그랬다. 공부를 쉬지 않으면 대성할 분이다.
어떤 문학적 장면을 가지고 나타날 것인가. 한 시인의 출현이라는 것이 단지 그의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시단과 문학사의 의미 있는 표정이 되는 것임을 생각해볼 때, 그리고 그것이 더욱이 젊고 도전적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일 때, 이 기대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이 막 도래한 어떤 장면 앞에 멈추어 서게 될 것인가, 하는 설레임은 작품들을 읽고 심사하는 내내 이어졌는데, 그래서인지 심사는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게 되는 장고 속에 치러졌다.
올해 시부문은 총 278명이 응모하였다. 응모작들 대부분은 이미지의 탄생이나 이의 감각적 포착, 언어의 기쁨들을 적절하게 감지하고 있어서, 무엇이 시가 되는 것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응모자들이 선배시인들의 영향에 많이 눌려 있는 점이다. 영향이라는 것은 물론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받는 것이 받지 않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영향의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그것이 확장과 변전을 넘어 탈환의 가능성을 얼마나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몇몇 젊은 시인들의 어법이나 이미지가 생경하게 감지되고 있는 작품들을 대했을 때 아쉬움이 컸다. 출처를 들고 다니기보다 출처를 뚫고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논의가 길어진 원인 중의 하나는 응모자의 작품들이 각각 수준이 고르지 않다는 데에도 있었다. 한두 편의 작품이 잘 생겼어도 나머지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좀 더 기다려야할 것 같았다. 따라서 작품들의 고른 완성도와 개성을 겸비한 최후의 1인을 찾기 위해 고심해야만 했다.
1차 심사를 거쳐「중력」외 4편,「불의 리듬」외 4편,「몸 없는 집」외 4편,「폭력의 역사」외 4편,「낙타가 타들어간다」외 4편,「당신을 암기합니다」외 4편을 2차 심사에 올렸고, 이 중「불의 리듬」외 4편,「몸 없는 집」외 4편,「폭력의 역사」외 4편을 놓고 최종 심사에 들어갔다. 논의는 쉽지 않았다. 셋 모두 완성도와 나름의 개성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었고, 나름의 미흡함이 느껴졌다.
「불의 리듬」외 4편은 물질적 상상력의 기하학적 구성이라는 독특한 전개 방식이 돋보였다. 응결과 도약, 밀폐와 전진, 구상과 추상의 대면과 교차가 인상적이었다. 이 힘의 균형이 장점이라면, 또 한편으로 이 균형을 무너뜨린 속살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 같았다. 잠긴 문이 스스로 열리는 지점까지 더 나아간다면 피가 돌고 힘이 붙을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보였다.
「몸 없는 집」외 4편은 오래 들여다본 언어들과 삶의 풍경들, 단정하고 깊이 있는 성찰로 매편마다 차분한 전개를 하고 있어서 눈길을 머무르게 했다. 언어로 내밀한 호흡을 해온 오랜 내력이 느껴졌다. 앞으로 이 호흡이 좀 더 출렁이면서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가파른 자유를 향해 스스럼없이 나아가기를 지켜봐야할 것 같았다.
당선작으로 선정된「폭력의 역사」외 4편은 거침없고 활달한 언어들이 쏟아져 나와 전투를 치르는 언어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언어의 물욕, 언어의 사심, 언어의 돌출과 이물감이 사물들을 느닷없이 헤집고 벌려놓는 장면들이 신선했다. 언어가 사물들의 위태로움을 편들고 부유하는 것은 언어가 스스로 사물이 되고 사물의 잉여가 되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했다. 비록 이 과정이 함께 수록된 시들에서 이미지까지 부서지고 해체되는 무차별성으로 종종 인도되지만, 이러한 위기와 모험에까지 두루 격려를 보낸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큰 시인으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가 망설여진다. 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이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책을 읽는 사람을 간간이 볼 수 있었는데, 순식간에 그런 사람들까지 집어삼킨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을 대학생 예비 시인들은 어떻게 부리고 있을까. 요즘 젊은 시인들이 쓰는 작품과 대학생들이 쓰는 작품은 분명히 구분될 거라는 기대가 모아져, 설레는 마음으로 응모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편차가 심해 같은 사람이 쓴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글을 쓰는데 있어 게으름보다 더 나쁜 습관은 조급함일 것이다. 차서 흘러넘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이야말로 글을 망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실하지도 않은 것을 절실한 척 가공해서 쓰는 글은 여지없이 독자에게 들키고 만다. 절실함을 너머 절박함을 가지고 쓰는 글이야 말로 독자를 압도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기 급급한 응모작과 여기저기에서 기성시인의 시를 옮겨와 짜깁기한 응모작을 만날 때는 가슴이 아팠다. 또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길을 택해 손쉽게 시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갈 수 없는 길을 걸어가야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 외로움을 견뎠을 때 얻게 되는 쾌감이 진정 시가 아닐까.
반복해서 응모작을 읽는 동안 만들어진 시와 그렇지 않은 시를 분별해낼 수 있었다. 처음 읽을 때는 그럴 듯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틈이 벌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포장만 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속에서 잘 발효된 이미지를 사용하기 보다는 책이나 영화, 인터넷에서 보고 느낀 조각들을 끌어다 쓰고 있었다. 무의식의 도움 없이 현재의식만으로 시를 쓰다 보니 한계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상상력은 기발한데 끝까지 끌어가는 집요한 의지가 부족한 작품도 여럿 보였다.
예심에 오른「나는 빛보다 작았다」외,「시계론(論)」외,「아이다호」외,「기절낙지」외,「눈 오는 전주」외,「산책 하는 이의 즐거움」외, 「뱀눈나비」외, 일곱 명의 작품을 놓고 고심한 끝에「산책 하는 이의 즐거움」외,「뱀눈나비」외, 두 명의 작품을 최종 논의하게 되었다. 앞 응모작은 한 번에 쓰여진 것처럼 자연스러운 반면 압축이 되어 있지 않았고 초점을 맞추는 데도 실패했다. 뒤의 작품은 이미지를 정확하게 포착하여 묘사하는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었으나 형식의 면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해서 이미지를 포착해 꿰어 엮는 능력이 예사롭지 않아보였다. 당선작품으로 뽑아도 손색없는 작품이었다.
당선작으로 뽑힌「산책 하는 이의 즐거움」외 4편은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상상력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함께 투고한 두 편의 작품은 함량미달이었음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처절하게 데생도 하지 않고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심사위원들은 당선자의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린 동자승, 주지스님 따라 계곡 갔다가 맑은 물 속 흐르는 얼음 보고 깜짝 놀란다. 경을 외지 못해 졸던 계절은 그해 겨울의 선율이었고 눈 쌓인 대숲이 딱, 분별 꺾으며 만들던 화음이었다. 예끼 이 녀석, 전생에 무엇이었길래 이리 말을 안 듣는고? 스님, 스님, 난 전생에 계곡물이 콸콸 흐르는 물소리였어. 어린 부처가 웃는다. 그리고 폭설(暴雪), 절이 완벽하게 고립된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총무가 핸드폰으로 여기저기에 연락을 취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동자승은 경내에 가만히 앉아 풍경 끝에 맺히는 이슬을 멍하니 바라본다. 한 방울의 맑은 음악은 자기 속에 주위의 모든 세상을 담아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