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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대산대학문학상 시상
시부문 박희수 등 6명, 상금 각 5백만원 및 해외문학기행

제7회 대산대학문학상은 박희수(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3), 남윤수(소설,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2), 이오진(희곡,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3), 김주성(씨나리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 장은정(평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4), 문부일(동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3) 씨가 차지했다.

수상작품은 시부문 <삼면화> 외 4편, 소설부문 <당신의 얼굴>, 희곡부문 <가족오락관>, 씨나리오부문 <상흔록>, 평론부분 <기하학적 아우라의 착란>, 동화부문 <콩나물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외 1편 등이다.

심사는 조정권, 이문재, 김선우 시인(시부문), 최인석, 공지영, 한강 소설가(소설부문), 이윤택, 장성희 희곡작가(희곡부문), 김전한 씨나리오작가(씨나리오부문), 최원식 평론가(평론부문), 김병규, 원종찬 아동문학가(동화부문)가 맡았다.

지난 1월 21일 교보생명 소강당에서 시상식이 열린 이 상은 대학 문예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역량있는 대학생 신진문인을 발굴하기 위해 대산문화재단과 창작과비평사가 공동으로 주관한 것으로, 이번 수상자에게는 각각 5백만원의 상금과 해외문학기행 기회가 제공됐다.

▲ 박희수
▲ 남윤수
▲ 이오진
▲ 김주성
▲ 장은정
 

출처 : 김경애의 시와사랑
글쓴이 : 시와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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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베로니카 외 3편

 

 

베로니카*/박채림

 

 

  우리는 애초에 하나의 몸이었다. 아니, 몸짓이었나?

 

  나는 당신 손등에 잘못 그어진 흉터. 지난밤 꿈에 길게 칼자국을 남긴 얼굴 가린 귀신. 당신의 잘 웃지 못하는 왼쪽 입꼬리. 저장도 안하는 참 못 나온 쎌카. 당신이 태어날 때 처음 보고 놀란 그 환환 빛처럼, 나도 버튼이 잘못 눌린 복사기에 얼굴이 끼었을 때 태어났어요. 그 환환 빛 말이죠. 내가 어머! 하고 부끄럽게 비명을 질러보았는데요. 그 순간에도 나는 스무개, 서른개로 늘어나고 있더란 말이죠.

 

  우리는 죽은 쥐들과 귀신 들린 인형과 벌레들이 우글대는 베개 등등. 캄캄한 지구에서 신나게 달리기를 하는 중이죠. 시든 꽃을 들고 제일 먼저 당신에게 도착하면 신나서 팔짝팔짝 뛰어올라요. 잘못 도착한 세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인이네요. 누군가 우리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전에 최대한 수줍게 웃으면서 악수 청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어요.

 

  깜찍한 상상들 지겨워요. 우린 그냥 하나의 소문일 뿐인데요 뭘. 내가 나랑 또 나랑 나들이랑 손에 손잡고 귓속말로 내가 누구인지 수소문하는 동안 살비듬이 떨어져나가듯 내가 또 한움큼 세상에 나동그라졌어요.꽉잡아. 이런 말할 새도 없었죠. 스무개 서른개씩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나를 왕창 흘리고 다녔어요.

 

  저기 사납게 쏟아지는 빗방울 보이나요. 저 신나게 튀어오르는 물의 분열증. 창밖을 서성이며 호시탐탐 안을 노려보는 형형색색의 눈동자들. 깨어지고 다시 손잡기놀이 하며 소리 지르고 웃고 울고 발악하는 한바탕 술래잡기. 수없이 얼굴 바꾸며 쏟아지고 지워지는 지구의 상상. 나였는데 다시 보니 당신이었고 또 그였으며 이젠 그녀였는데 알고 보니 다 나더라 아니 다 당신이더라 하는 물기 어린 장난말.

 

  저기 찌라시 같은 내가 보이네요. 그래요 우리는 애초부터 과대광고였어요.

 

 

*끄시슈또프 끼에슬롭끼 감독의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맛있는 입술/박채림

 

 

   

  나를 만져봐도 괜찮아요. 경멸하는 얼굴이라면 나쁘지 않겠지만 당신의 부끄러운 표정은 견딜 수가 없으니 그냥 무심하게 만져보세요. 간지럽지 않아요. 할퀴거나 하지 않을게요. 우리 주인님 손톱 끝에 매달린 무수한 눈알들은 매번 붉게 충혈되어서는 도로록 도로록 빨주노추 검은자위를 굴리고는 했는데요. 내 털을 헤치고 맨살로 만져지는 시선들 때문에 나는 밤새 간지러워서 몸서리를 치곤했어요. 그러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요. 뭣하면 보답하는 뜻에서 오늘밤 부엌 창문을 살짝 열어두는 것도 좋겠네요.

 

  나는 그냥 고양이고요, 두 개의 코트를 입고 있어요. 얼룩말과 겨울 하늘이 교차할 때마다 밤과 낮이, 어제와 오늘이, 주인님과 당신들이 자꾸만 몸을 바꿨어요. 무수히 내 몸을 애무하는 당신들과 주인님과 얼룩말과 겨울 하늘이 가난한 표정을 내 몸에 돋을새김할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기꺼이 죽었어요. 그러고는 꿈 한자락에 내 웃음소리를 묻혀갔잖아요. 주인님과 당신들은 자꾸만 악몽이라고 나를 원망했지만요.

 

  주인님이 풍선 불 듯 내 항문에 공기를 불어넣어요. 말랑말랑한 내 몸이 애드벌룬처럼 마구 부풀어오르네요. 생선 비린내 진동하는 내 얄미운 입술에 입 맞춘 주인님 때문에 나는 또 간지러워서, 둥실둥실 떠올라요. 발밑의 지구는 슬프고 황홀한 오렌지빛이에요. 바닥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비슷한 모양새라서 더 슬픈걸요. 저기 긴 실타래 풀고 있는 주인님의 얼굴이 보여요. 따뜻한 달에 입 맞추려고 나는 더 높이 높이 떠올라요. 주인님의 저 순진한 눈알들이 보이나요. 저 슬픈 상상들을 포식하는 달의 작은 입술에선 벌써부터 달콤한 냄새가 나요. 부럽다고 데룩데룩 소리치는 눈알들은 사실 내 뱃속에 모두 있어요.

 

  나를 만져봐도 괜찮아요. 내게 입 맞춰도 괜찮아요. 창문은 아무래도 좋아요. 내 분홍색 배를 뒤집어 귀를 대봐요. 괜찮아요. 세상에 맛없는 욕망들도 있는 법이죠. 달도 눈알도 악몽도 모두 내 뱃속에 집어넣고 휘휘 저었어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저기요. 뭣하면 그 입술 잠깐 베어 물어도 괜찮나요. 아주 잠깐인데요 뭐. 아주 짧은 키스라고 생각하면 되는걸요. 네. 아주 잠깐만요.

 

 

심사평(349명 응모)

자기세대의 분열증을 21세기적 감수성으로 재기발랄하게 그려

 

시 쓰기에서의 넉넉함이나 새로움을 운문적이냐, 산문적이냐 하는 관점에서 살펴볼 일만은 아니다. 시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에게 세계와 우리들 자신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하는 셈이고, 그 ‘무엇인가’는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진실로 밝혀준다. 시는 단순한 운율이 아니라 구체적 알맹이인 리듬, 즉 이미지로서 존재한다. 때문에 시적 이미지의 본질적인 새로움은 말하는 이가 존재의 창조성을 얼마만큼 실현했느냐가 중요하다. 운문적 형식이든 산문적 형식이든 자신의 절실함을 빼어난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시적인 것에 도달한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서로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모두는 오늘날 시의 성취가 될 수 있다.

 

제6회 대산대학문학상 시부문에 응모된 작품들은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시의 산문화가 큰 흐름을 차지하고 있다. 젊은 대학생들은 온갖 욕망들이 들끓는 도시 속의 삶 사이에서 발생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산문적 형식으로 고문하고 비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쓰기일수록 자신만의 내면화된 기법이 요구되며, 개체적 존재의 세속성과 욕망의 미세한 균열을 자신의 시속에 드러낼 수 있는 변별력 있는 목소리가 요구된다.

 

심사는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예심과 본심을 통합하여 진행하였고, 1차 심사를 거쳐 압축된 13명의 시들이 본심에서 논의되었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박채림(서울예대 2학년)의 「베로니카」외 3편은 언어의 세공이나 시적 개성의 새로움에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시인은 재기발랄하고 그로테스크한 발상을 잘 아우른다. 자아란 상충되고 보완되는 다발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피해의식에 물들지 않은 21세기적 감수성으로 전해준다. 우리는 허위적인 세계 속에서 상충되는 여러 자아들에 눌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특히 「베로니카」는 자기 세대의 분열증이 전 세대와 어떻게 다른지 그 변별점을 인상적으로 그려나간다. 버튼이 잘못 눌린 복사기에서 토해져 나오는 ‘찌라시’로 비유되는 이 세대의 분열증은 “잘못 도착한 세계에서” ‘소문’이고 ‘이방인’일 수밖에 없으나, 그것은 내면의 어둠을 확 벗어던진 발랄한 감각에 의해 구성된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렇다. “저 슬픈 상상들을 포식하는 달의 작은 입술은 벌써부터 달콤한 냄새가 나요. 부럽다고 데룩데룩 소리치는 눈알들은 사실 내 뱃속에 모두 있어요”(「맛있는 입술」). 그러나 이 시인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감각들은 안으로 응축되지 못한 채 가볍게 떠오르는 경향이 있다. 시는 감각적인 쾌감도 중요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설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울림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자기의 감성을 살리면서 시적 조화를 심화시켜나갈 새로운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참된 자아가 언어를 찾아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눈부신 사건이 된다”(테드 휴즈)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편 당선작과 끝까지 자웅을 겨룬 각기 다른 응모자의「바람실」과 「수화를 듣는다」는 서정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감정을 뜨개질하는 솜씨가 뛰어나고 안정된 시적 품격을 보여주었으나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게 밀려났다. 또한「악몽」은 언어유희에 바탕을 둔 발랄한 상상력이 장점이었으나 테크닉에 머문 한계가 지적되었다. 수상자에게는 정진을, 응모자 여러분께는 건필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 김승희 김정환 박형준

  

출처 : (사)충북시를사랑하는사람들
글쓴이 : 반소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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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폭설의 기억/백상웅-  

 
1
북받친 사람처럼 눈 쏟아졌다.
녹슨 용골 드러낸 어선은 급한 마음에 뱃머리를 항구로 돌리고 육지를 밀었다.
눈발은 그대 아픈 곳에 관심도 없어 척추 부러진 어선을 껴안았다.
뼈마디 뚫고 솟아오른 엔진이 늙고 비릿하였다.
눈덩이가 기름때 낀 심장을 철퍽 삼키며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파란 페인트칠 벗겨진 앙상한 배를 하얗게 씹으며,
눈발을 고장난 어선의 멱살을 잡던 쇠줄을 깨물어 끊었다.

 
2
백년 만의 폭설이라고 했다. 마을 바깥에 그리운 이 있었지만,
발신음은 산을 넘지 못하고 귓바퀴에 차가운 신호음만 뿌렸다.
귓밥을 파내면 짠한 이름만 묻어나왔다.
주먹 쥐면, 길은 튼 손등처럼 툭 끊어졌다.
그리움도 백년 만에 부러졌을까?
혼자 남을 때, 내 사랑의 방식은 바닥에 깔려 출항을 기다리는 그물이었다.
겨울볕에 누워, 얼고 젖기를 반복하며 어선의 등에 업히기를 한없이 기다리는 것.
발자국은 방파제 끝까지 질질 끌려다녔다.
눈덩이가 바다로 떨어질 때 배의 후미는 출렁 가라앉았고,
폐선의 굽은 등에 꽂힌 깃발은 외로운 이의 발자국을 내놓으라는 듯,
하얀 쇠창살에 갇힌 수평선을 그만 놓아주라는 듯,
온몸으로 울며 눈송이의 귀싸대기를 올리고 있었다.
허공 속에 오롯이 찍혀 있는 눈송이의 발자국,
오래 서 있었기에 단단한 발자국이 먼 바다로 밀려가고 있었다.


<2>-아버지의 터널/백상웅-

 
공주에서 천안 사이, 아버지가 뚫었다는 터널을 지나간다.

 
산의 늑골 속으로 고속도로를 집어넣던 아버지,
속도가 없는 터널 속에서 길은 늘 바위 속에서 똬리를 틀고 꼭꼭 숨어 있었다.

 
어느 겨울에는 뒤돌아보니 눈발이 둥근 출구를 쇠창살처럼 가리고 있었다고 한다.
감옥, 속에서 오히려 환한 아버지의 눈은 석달쯤 벽만 보고 살았다.
맞은편 쪽으로 나가기 위해 밤낮으로 허공에 백열등을 매달고 구멍을 뚫었는데,
터널이 마침내 뚫린 날, 감옥에서도 밀려난 아버지의 눈에 터널은 한마리 거대한 구렁이로 보였다고 한다.

 
속도는 금세 아버지를 잊었다.
늙은 두더지의 말린 가죽처럼 마루에 앉아 볕을 쬐는 아버지,
나는 창호지 구멍에 갇혀 있는 아버지를 방 안에서 훔쳐보고는 했다.
아버지는 저렇게 평생 갇히기 위해 전전긍긍 살았나?

 
터널을 통과하니 폭설이다.
아버지의 터널에서 나는 서서히 멀어져야 한다.
눈발을 파헤치며 버스가 두더지처럼 기어가기 시작한다.


<3>-코끼리 무덤/백상웅-

 
이 노란 코끼리는 지축을 쿵쿵 울리며
걸어오지 않았다, 숲에서 숨을 거둔 뒤에야
대형트럭에 혼자 실려 왔다
늪으로 걸어가서 스스로 가라앉지 못한
기름진 심장은 마지막 두근거림까지 뜨거웠다
주인이 흥정을 끝내고 숲으로 돌아간 뒤
백제폐차장 앞마당, 코끼리는
딱딱한 땅에 코를 박고 깊은 잠이 들었다
코끼리가 여기까지 끌고 온 육중한 길이
땅에 내려놓은 코끝에서 마침내, 끝났다
아름드리나무의 옆구리를 때려 쓰러뜨리고
하늘 속의 번개를 끌어내리고
무허가 판잣집의 처마를 귀뺨 치듯 날려버리던
이 길쭉한 코는, 아파트를 벌떡벌떡 일으켜 세우고
주름진 들판을 반듯하게 잡아 펴던
고독한 손이었다, 고독해서
아무지 잡아주지 않아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코끼리의 손,
그렇다고 진흙 위에 물렁한 발자국을 새겨
대지에 심장의 엔진소리를 들려줄 수도 없는
코끼리의 발은 이제, 녹슬고, 뻣뻣하고
거무튀튀하다, 이 노란 코끼리는 울고 싶을까
혈관을 잘라내고 뭉클했던 오장육부를 떼어내기 전에
크게 한번 울어 지평선을 자욱하게 물들이고 싶은 것일까
땅에 자신의 무덤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데
제 코를 한치도 들어올릴 수 없어
작고 까만 눈 감을 줄 모르는 이 노란 코끼리를
그렇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이구동성
포클레인이라고 불렀다


<4>-꽃 피는 철공소/백상웅-

 
철공소 입구 자목련은 과연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망치질 소리가 앞마당에 울려퍼지면요
목련나무 우듬지에 남은 살얼음에 쨍 하고 금이 가요
내 친구 스물일곱살은 강철을 얇게 펴서 봄볕에 달구죠

 
한 잎 한 잎, 끝을 얌전하게 오므려 묶어서
한 송이 두 송이, 용접봉 푸른 불꽃으로 가지에 붙여요


내 친구 스물일곱살의 팔뚝에도 꽃이 벙글거려요
팔목에 힘을 줄 때마다 자목련꽃이 팽팽하게 열리죠
자색 화상 위에 푸른 실핏줄이 돋아나요
그걸 보고 여자들이 봄날처럼 떠나기만 했대요

 
용접봉을 손아귀에 쥔 내 친구 스물일곱살
오늘은 철공소 마당에서 철목련을 매달아요
가지마다 목련꽃이 벌어져서 햇볕을 뿜어대죠

 
꽃 핀 철문은 허공에 경첩을 달고 식어가고 있고요
밤에는 하늘에다 꽃잎을 붙이느라 잠도 못 자요


<<백상웅 시인 약력>>


*2006년 제5회 대산대학문학상.
*200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과 재학 중.  

출처 : 시와 글벗
글쓴이 : yangg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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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 이지우

 

뭘 해도 안된다는 친구의 주정은
날 가지고 하는 복화술이다.

젊어선 많은 경험 쌓으라던데
집에선 그 방황 어찌 견딜까
그저 집 평수만한 시야로
앞날을 꾸려본다.

젊음이란 아름답다며
이쁘장한 가수는 지저귀고
못난 우리는 그 노래 따라 짖으며,
못사는 걸 알고도 잘살려고 하니
리얼리스트에다 이상가라며
스스로에 체 게바라의 초상을 붙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수염 없는 혁명가 하나
노을 지는 가로등에 기대고는 읇조리니,
나는 못나도 내 삶은 못나지 않기에
꽃이 피는 청춘 아름답지 못해도 아름답거라.

디스 한 개비 다 타들어가고,
고이 잠든 어미 깨우러 간다.

 

 


 


사춘기 / 정민아 (동덕여자대학교 문창과 4학년)


나를 불어줘요! 비눗방울처럼 당신의 입술에서 나는 다시 투명하게 부풀어오르고 싶어요 당신의 입김은 새 엄지발가락을 톡 튀어 오르게 하고 그러면 몸 구석구석에서 발가락같은 작은 돌기들이 버섯처럼 솟아오를 거예요 내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요! 내 겨드랑이에선 나물들이 돋아나요! 나는 꼼지락거리며 나를 일으킬 거예요 날아갈래, 요 다듬어지지 않는 까칠한 말들 사이로 '하지만'은 없어요 '그러나'도 없어요 내 가슴팍에는 가슴이 봉긋 솟아오르고, 나는 남자할래요 흰 뼈들은 옆구리에서 발라내 그냥 버려요 나를 빗장뼈로 닫지 말아요 쉼표로 날 열어요 나를 일간지처럼 읽지 말아요 할 수 없으면 그냥 덮어요





4인용 식탁

아침 6시 30분
사마귀 같은 의자가
식탁 위에 아침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체크무늬 교복에 담겨진 고3 아들이
식탁 위에 차려진 밥상을 보고
의자에 앉는다

첫번째 의자가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부장 손이 들어오는 팬티에 걸쳐진 딸이
두번째 의자에 앉는다
두번째 의자가 딸을 먹기 시작한다

가슴 한복판에 퇴직서가 꽂힌
아빠도 앉는다
이혼서류의 엄마도 앉는다
배고픈 의자들
삐그덕대며 씹기 시작한다

식탁 위에 오고가는 말 하나 없이
네 식구가 조용히 사라져 간다
끄윽, 의자가 트림을 한다.


 


그녀의 노래 

                               
그녀의 입에서 툭툭 혀가 튕겨나와요
그녀는 줄에 혓바닥을 매달아요
바람이 불어와요
나뭇잎처럼
혓바닥들이 한꺼번에 흔들려요
우수수 떨어지는 것들은
없어요
혓바닥이 나를 길게 핥아요
나는 분홍색 캐러멜처럼 쭉 늘어나요, 고인 침을 삼켜요, 날 흘리지 말아요
나는 위태롭게 흔들려요, 쓰러지지않아요
연골이 생크림처럼 부풀고 나는 부드러운 춤을 추어요, 나를 더 길게 핥아줘요
그녀의 혓바닥들이 내 못에 달라붙기 시작해요,
떨어지지 않아요
나를 점점 덮어가요
나는 하와처럼
사라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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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술집에 전등은 모두 여섯

 알코올에 온몸 흠뻑 젖을 때까지

 사람들은 잔을 기울인다

 바람한 점  없는 술집에서 전등들은 보이지않게 흔들린다

 사람들이 잔을 기울일 때마다

 보 일 듯 말 듯,  조그맣게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다

 밤마다 사람들은 술에 젖은 입술로 시를 쓴다

 

 그들의 하루를 시로 쓰자면 몇천만 가지 표현으로 부족하다

 사람들의 얼굴은  서서히 주홍빛으로  물든다

 창작의 고통은 혀가 꼬이고 눈동자가 풀렸다

 어떤사람은 단어를 쏟아내느라  입에서

 붉은 토사물이  넘쳐 나오기도 한다

 

 대머리 시인, 팔불출 시인, 사업가 시인,깡패 시인, 미성년자

 시인,바람둥이 시인, 발기부전 시인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시들을 들어달라 아우성친다

 그 아  우  성 속에서

 늙은 노새처럼 또 하루의 밤이 깊어간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전등들은 시를 쓴다

 다음날이면 기억해내지 못할

 그들의 시어를 가지고 글을 쓴다

 인간들을 그려내는 것이 전등이 하는 일,

 그곳에 매달려 있는 이유다

 

 시처럼  콩나물을  씹어대고

 오징어를  찢어대도

 전등은 말이 없다

 침묵하라!  침묵하라!

 쓰기 위해선 침묵하라!

 자신을 뜨겁게 달구는 것

 술집에 전등은 모두 여섯

 영업이 끝나고 불이 꺼지면

 전등들은 제각기 자신이 쓴 작품을 발표한다

 어떤 전등은 큰소리로 낭독하기도 한다          -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

             

          

출처 : 지리산을 사랑하는 문학모임
글쓴이 : 지리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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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론 / 서덕민

 

괄호는 묶음의 형식이지만

비어있음의 형식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잔득 묶고 있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괄호는 어쩌면

모호함의 형식일 수도 있다

가령 내 어머니가 그렇다, 그녀는

주로 미지수를 묶고 다니므로

무엇인가를 들어 있다 할지라도

전혀 알아볼 수 없다

아니, 텅 비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괄호는

등호를 거리낌없이 뛰어넘어도

결코 균형이 무너지는 법이 없다

괄호가 사라진 자리에 어롱어롱한 자국

어머니란 한 쪽 변에

잠시 여자를 비워둔 여자일까

 

미지수를 묶고 다니는 그녀

미간을 둥그렇게 찡그리며

눈물을 흘리면, 작고 예쁜 괄호가 생긴다

내가 앓아야 할

세상의 모든 아픔 앞에서

그녀의 눈가는 언제나 먼저 축축해지는 것이다

나도 별 수 없이 그녀의 괄호 안에 묶이는 것일까

그렇게 그녀가 모두 묶어서

미리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일까

 

괄호란 여자의 형식이다

어렵고 아픈 것들로 가득 찬

텅 비어 있는 내 어머니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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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봉하연


어릴 적 내 방엔 다락이 있었다

문은
얇은 합판으로 오래되고 낡아서 아무리 힘껏
닫아놓아도 조금씩 사이가 벌어졌다

나는 잠들기 전이면 그 틈 속으로
나를 혼자 두고 밭으로 가는 엄마의 오토바이 소리
안방에서 탕탕 발을 구르던 할머니의 주정
내 팬티 속에 손 집어넣던 막내 외삼촌의 숨소리
가끔씩 37사단에서 날아오던 훈련기의 굉음
같은 것들을 밀어넣다가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곰팡이처럼 핀 맹독 같은 어둠 속에서
서걱서걱 벽에 댄 스티로폼을 갉아대는 쥐, 쥐새끼
처럼 소굴을 만드는 나의 기억들
그후로 틈은
잘 기른 기억들을 떼지어 내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중에 한 마리, 게워낸 막걸리처럼 쉰내 나는 트림 속으로
자장, 자장, 자장, 자장,

그리고.
오래된 기억들이 다락방 먼지처럼 일어서서
내 첫 남자의 무게만큼이나 나를
숨막히게 하는 밤
오늘도
나의 한쪽 벽에 나타나는
낡은 다락문
꼭 닫히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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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방생 / 

 

설거지하는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며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하고 묻는다

고희를 앞둔 어머니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깊다

 

백수인 내가 MBC 퀴즈가 좋다에 빠져 세상의 지식과

내가 걷어들일 수 있는 돈을 셈하는 동안

무엇으로 태어날 것인가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날 것인지에 대해

어머니는 배운 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싶어 하셨다

절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머니가 오늘

염불도 없는 목탁소리 빈 술청을 한동안 울리고 간 후부터

당신이 다시 한 번 사람으로 태어나야 할 이유를 퀴즈문제처럼 또박또박 중얼거리셨

나는 몇 번의 기회를 놓쳤고 퀴즈가 좋다고 끝나기 전에 상을 물렸다

 

지붕을 가득 덮었던 상수리나무들. 잎 진 풀숲에서

푸드득 날아가는 멧새 바라보며

어머니 가슴에 갇힌 새 한마리 날려주리라 생각했다

새알 같은 도토리 하나 뒤꼍의 가파른 벼랑을 타고 굴러왔다

조급해진 나는, 도토리 옆구리에 담배를 비벼껐다

 

할머니가 스님들을 따라다니며 곡식을 얻어와서

다리품으로 손자들 죽지 않고 살았으니, 오늘 스님들에게

한 됫박이라도 더 주려고 하는 거지, 다시 태어나기는 무슨

색이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신다

당신이 난 아들들이 또 아들들을 낳으니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당신을 밟을 것이고

때로 먼 손자를 그리우면 그들의 신발에라도 묻어 다닐 거라고 하신다

나는 열심히 웅변하는 소년처럼

그래도 잘사는 미국에 태어나는 게 어떻겠냐고

아, 엄마는 영어를 모르니 우리나라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아니, 내가 결혼을 하면 내 아들의 손녀로 태어나라고

흰소리를 한다

 

 

 

 

[당선소감]

 

어느 날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 방문 앞에는 라면 두 박스, 5kg 쌀 두 포대, 김치 한 통이 놓여있었다. 다음 날 친구 철이에게 들을 수 있었다. 라면이나 쌀이야 근처 슈퍼에서 샀겠지만 김치를 싫고 학교까지 오셨을 최문자 교수님. 속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재주가 없는지라 전화도 못 드리고 넘어갔지만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그 때 방문 앞에 놓여있던 사물들의 풍경이 스승의 따뜻한 관심으로 남아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받는다는 것보다 행복한 것은 없다. 따뜻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시를 쓰게 했다. 왜 교수님뿐이겠는가. 철마다 반찬을, 쌀을 나르던 철이. 매일 차비를 뺀 모든 돈을 내 손에 쥐어주고 가던 윤구형. 힘들어 할 때마다 언제나 내 현실생활의 방향을 잡아주던 선영이형. 패배의식에 사로잡힐 때마다 ‘나 같은 놈도 있소!’ 하고 나타나던 후배 범구. 그리고 경석이. 술은 공짜요 밥은 서비스라던 학교 앞 무번지 누나. 술 먹고 보낸 메일에 술 드리시고 답장을 주셨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박철화 선생님. 제3 문학동인회의 희선이 선배, 영범이 형 그리고 선후배들. 학교의 세기말 동인들…… 정말이지 말로는 다 호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습작을 했다.

수많은 인연들이 나를 키웠다. 그래!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사람들이다.

끝없이 저를 일으켜주신 최문자 교수님. 시어 하나 건들지 않고 꼼꼼하게 제 시를 읽어주신 채호기 교수님(교수님, 고백하면 제가 자살을 결심했을 때 저를 살린 건 『슬픈 게이』였습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그러나 엄한 스승으로, 말씀 한마디 없이 저를 가르치시는 박덕규 교수님. 그리고 정동환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도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드는,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물겨운 어머니, 큰누나, 형제들. 조카 수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연숙이에게도.

원고를 보낼 때마다 등단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이번에 안 되면 10년 후에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던, 졸업을 앞둔 문학청년을 건져주신 심상위원 선생님들 그리고 대산문화재단에도 깊은 감사 올립니다.

이제 시작하는 풋내기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모자란 것들은 채워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정진하겠습니다.

* 작품은 <창작과비평> 2003년 봄호에 수록되었습니다.

 


[가작 ] 전망 좋은 집 / 박경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나의 집이 높은 곳에 있다 멀리 마주 보고 있는 가난한 집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힌다 저녁이 되면 세상에 집들이 저렇게 많았었나 숨어 있던 집들이 들통난다 외로움에 눈물도 들통이 난다 그 사이 어디쯤 절도 한 채 보이지만 부처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창을 열어두고 바람이 그 곳에서 이 곳으로 불어와 주길 바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지붕 사이로 새어나오는 소리 부처님 귀는 당나귀 귀 간지러움에 나의 방 벽지가 온 몸을 긁어댈 때마다 나는 자주 부스러졌다 여러 번 옮기고 싶었지만 저린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아직 부처는 저린 다리를 펴지 않고 있다 퉁퉁 부은 다리만 주무르다 돌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나를 찾아온 사람들 그 때마다 나는 미끄럼틀에 태우고 싶었다 나의 집을 그 때마다 나는 이름 부르지 못하고 부처님 귀는 당나귀 귀 당나귀 귀 소리쳐 본다 너무 멀리 있으므로 멀어지는 다리들 자꾸만 가늘어지는 다리들 가련한 부처들 아직 저린 다리를 펴지 않고 있다 부처는 다만 가까이 있는 것을 멀리 바라보는 고고(高苦)한 나의 집

 

 


정물화

나는 정물화를 견디기가 힘들다
둥근 탁자 위
아무리 쳐다봐도 기색 하나 변하지 않는 뻔뻔한
부끄럼 없는 붉은 사과
국화를 가득 담고 입을 다물지 못해
헐떡이다 숨이 멎은 꽃병
주름 잔뜩 잡고 흘러내리는
늙은 식탁보
잠시라도 눈을 돌린다면
사과는 굴러 떨어지고 쿵쿵거리고
꽃잎은 시들고
꽃병은 까닭 없이 금이 가고
금 사이로 물이 줄줄 흐르고 꽃잎은 더욱 시들고
늙은 식탁보는 촘촘한 주름을 흘리며
수명을 다 할 것이다
할 것이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초점을 잡으려고 연필 끝을 세울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있다
나는 탁자로 다가가
사과의 엉덩이를 받쳐주고
꽃병의 입술을 그릴 수 있게,
국화 몇 송이를 꺼내고
흘러내린 탁자보의 턱을 올려주고
싶도록 가만히 있는 정물이 공포스럽다
창 밖으로 딸꾹질하는 바람이 지나간다

 

 


초대

밤 사이, 거미가 어제보다 한 뼘이나 더 내려왔어
요즘 머리카락이 푸석해지고 있어
아무리 땋아도 썩은 동아줄처럼
툭툭 끊겨 어디로도 닿을 수 없어
분명 어디가 아픈 거야, 하루 종일 빈 방에
혼자 누워 천장만 바라 봐 왜
거미는 모서리에서 출발할까
전화를 걸어 누구든 초대했지
툭툭 끊겨, 두려워하지마
걸음은 점점 더 안전해질 테니까
붙들기 위해서 투명할 뿐
꿈을 꿔, 나는 착한 노파처럼 물레를 돌리고 있어
누군가 물레에 찔려 잠들면 입을 맞추지
만 다시는 깨어나지 않아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아 점점
나는 말라가는데
탐스럽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오늘은 검은 거미줄이 더욱 투명해
오늘은 거미가 두 발로 걷고 있다.

 


오징어

한때 참 부드러웠던 몸
을 이제는 어루만질 수 없지, 술잔을 기울이며
찢는다 우리는 헤어졌지
죽음과 가까운 것을 빛이라고 믿었던 마음
으로부터 메말라버린 몸
어두운 바다 속으로 별들이 몰려들었던 밤
그 때 우리는 헤어졌지
돌아서면서 열 개의 발가락만 꼼지락거렸지
열 개의 발가락이 열 개의 발이 되도록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사방으로 얽혀버렸지
이미 타들어버린 질긴 몸
자꾸만 우물거렸지
술로 축이면서 우물거렸지 자꾸만
팍팍해졌지, 오른 손과 겹쳐지는 가슴부터

 


어깨가 아픈 새

빨랫줄에 앉았다 날아간 새들처럼
바람에 날아가려다 집게에 물려
간신히 살아남은 옷은 죽은 새
뚝뚝 핏방울 흘리는 축축한 몸
다 마를 때까지 허파에는 바람이 가득 들어차고
이런 날은 빨래를 널기에 좋은 날씨야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와
날아가기엔 더 더욱 좋은 날씨지
긴 두 소매만 계속 펄럭이는데
어깨에 생긴 두 개의 이빨 자국
막 빨랫줄에서 걷은 옷을 입으면
햇살 때문일까 온 몸이 간지러워

 

 

 

[당선소감]


아주 오랜 동안 나는 게을렀다. 어느 날인가는 등교길에 들리는 반야심경 독경 소리를 듣고는 시를 쓰고 있지 않다는 불안감과 무기력함에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한 두 해의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흘러갔다.

집에서 제일 큰 방을 쓰고 있던 나는 제일 작은 방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책 장 두 개와 침대, 앉은뱅이 책상이 전부였다. 간신히 쓰고 있던 시를, 천천히 다시 써나가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아무도 없는 빈 방에도 먼지가 쌓인다는 것이다. 내가 시를 쓰지 않는 동안에도 시는 내 안에서 보이지 않게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너무 잘 쓰고 싶었던 마음이 불안감을 던져 주었고 그것이 게으름으로 위장된 게 아닌가 싶다.

수상 소식을 알려드리자 이제 드디어 시인이 되었느냐고 되묻는 순진하신 어머니께 제일 감사드린다. (시 써서 돈이 되냐고 가끔은 타박하시지만 은근히 시 쓰는 딸을 자랑스러워하심을 나는 다 알고 있다.) 또 매일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오지 않았냐고 재촉하며 물었던 나의 꾸러기 재연 오빠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쳐 주신 홍신선, 박제천, 이종대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수상보다 상금을 더 기뻐하고 있을 시분과, 희곡분과 사람들에게도 고마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열 다섯 살 어린 소녀의 시심을 키워주셨던 김미진 선생님의 고마움을 이 순간 기억한다.

더 열심히 쓰라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감사드리며 더욱 치열하게 달릴 내 발뒷꿈치를 쓰다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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