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방생 / 최영오
설거지하는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며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하고 묻는다
고희를 앞둔 어머니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깊다
백수인 내가 MBC 퀴즈가 좋다에 빠져 세상의 지식과
내가 걷어들일 수 있는 돈을 셈하는 동안
무엇으로 태어날 것인가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날 것인지에 대해
어머니는 배운 아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싶어 하셨다
절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머니가 오늘
염불도 없는 목탁소리 빈 술청을 한동안 울리고 간 후부터
당신이 다시 한 번 사람으로 태어나야 할 이유를 퀴즈문제처럼 또박또박 중얼거리셨다
나는 몇 번의 기회를 놓쳤고 퀴즈가 좋다고 끝나기 전에 상을 물렸다
지붕을 가득 덮었던 상수리나무들. 잎 진 풀숲에서
푸드득 날아가는 멧새 바라보며
어머니 가슴에 갇힌 새 한마리 날려주리라 생각했다
새알 같은 도토리 하나 뒤꼍의 가파른 벼랑을 타고 굴러왔다
조급해진 나는, 도토리 옆구리에 담배를 비벼껐다
할머니가 스님들을 따라다니며 곡식을 얻어와서
그 다리품으로 손자들 죽지 않고 살았으니, 오늘 스님들에게
한 됫박이라도 더 주려고 하는 거지, 다시 태어나기는 무슨
색이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신다
당신이 난 아들들이 또 아들들을 낳으니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당신을 밟을 것이고
때로 먼 손자를 그리우면 그들의 신발에라도 묻어 다닐 거라고 하신다
나는 열심히 웅변하는 소년처럼
그래도 잘사는 미국에 태어나는 게 어떻겠냐고
아, 엄마는 영어를 모르니 우리나라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아니, 내가 결혼을 하면 내 아들의 손녀로 태어나라고
흰소리를 한다
[당선소감]
어느 날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 방문 앞에는 라면 두 박스, 5kg 쌀 두 포대, 김치 한 통이 놓여있었다. 다음 날 친구 철이에게 들을 수 있었다. 라면이나 쌀이야 근처 슈퍼에서 샀겠지만 김치를 싫고 학교까지 오셨을 최문자 교수님. 속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재주가 없는지라 전화도 못 드리고 넘어갔지만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그 때 방문 앞에 놓여있던 사물들의 풍경이 스승의 따뜻한 관심으로 남아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받는다는 것보다 행복한 것은 없다. 따뜻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시를 쓰게 했다. 왜 교수님뿐이겠는가. 철마다 반찬을, 쌀을 나르던 철이. 매일 차비를 뺀 모든 돈을 내 손에 쥐어주고 가던 윤구형. 힘들어 할 때마다 언제나 내 현실생활의 방향을 잡아주던 선영이형. 패배의식에 사로잡힐 때마다 ‘나 같은 놈도 있소!’ 하고 나타나던 후배 범구. 그리고 경석이. 술은 공짜요 밥은 서비스라던 학교 앞 무번지 누나. 술 먹고 보낸 메일에 술 드리시고 답장을 주셨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박철화 선생님. 제3 문학동인회의 희선이 선배, 영범이 형 그리고 선후배들. 학교의 세기말 동인들…… 정말이지 말로는 다 호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습작을 했다.
수많은 인연들이 나를 키웠다. 그래!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사람들이다.
끝없이 저를 일으켜주신 최문자 교수님. 시어 하나 건들지 않고 꼼꼼하게 제 시를 읽어주신 채호기 교수님(교수님, 고백하면 제가 자살을 결심했을 때 저를 살린 건 『슬픈 게이』였습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그러나 엄한 스승으로, 말씀 한마디 없이 저를 가르치시는 박덕규 교수님. 그리고 정동환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도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드는,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물겨운 어머니, 큰누나, 형제들. 조카 수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연숙이에게도.
원고를 보낼 때마다 등단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이번에 안 되면 10년 후에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던, 졸업을 앞둔 문학청년을 건져주신 심상위원 선생님들 그리고 대산문화재단에도 깊은 감사 올립니다.
이제 시작하는 풋내기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모자란 것들은 채워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정진하겠습니다.
* 작품은 <창작과비평> 2003년 봄호에 수록되었습니다.
[가작 ] 전망 좋은 집 / 박경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나의 집이 높은 곳에 있다 멀리 마주 보고 있는 가난한 집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힌다 저녁이 되면 세상에 집들이 저렇게 많았었나 숨어 있던 집들이 들통난다 외로움에 눈물도 들통이 난다 그 사이 어디쯤 절도 한 채 보이지만 부처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창을 열어두고 바람이 그 곳에서 이 곳으로 불어와 주길 바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지붕 사이로 새어나오는 소리 부처님 귀는 당나귀 귀 간지러움에 나의 방 벽지가 온 몸을 긁어댈 때마다 나는 자주 부스러졌다 여러 번 옮기고 싶었지만 저린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아직 부처는 저린 다리를 펴지 않고 있다 퉁퉁 부은 다리만 주무르다 돌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나를 찾아온 사람들 그 때마다 나는 미끄럼틀에 태우고 싶었다 나의 집을 그 때마다 나는 이름 부르지 못하고 부처님 귀는 당나귀 귀 당나귀 귀 소리쳐 본다 너무 멀리 있으므로 멀어지는 다리들 자꾸만 가늘어지는 다리들 가련한 부처들 아직 저린 다리를 펴지 않고 있다 부처는 다만 가까이 있는 것을 멀리 바라보는 고고(高苦)한 나의 집
정물화
나는 정물화를 견디기가 힘들다
둥근 탁자 위
아무리 쳐다봐도 기색 하나 변하지 않는 뻔뻔한
부끄럼 없는 붉은 사과
국화를 가득 담고 입을 다물지 못해
헐떡이다 숨이 멎은 꽃병
주름 잔뜩 잡고 흘러내리는
늙은 식탁보
잠시라도 눈을 돌린다면
사과는 굴러 떨어지고 쿵쿵거리고
꽃잎은 시들고
꽃병은 까닭 없이 금이 가고
금 사이로 물이 줄줄 흐르고 꽃잎은 더욱 시들고
늙은 식탁보는 촘촘한 주름을 흘리며
수명을 다 할 것이다
할 것이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초점을 잡으려고 연필 끝을 세울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있다
나는 탁자로 다가가
사과의 엉덩이를 받쳐주고
꽃병의 입술을 그릴 수 있게,
국화 몇 송이를 꺼내고
흘러내린 탁자보의 턱을 올려주고
싶도록 가만히 있는 정물이 공포스럽다
창 밖으로 딸꾹질하는 바람이 지나간다
초대
밤 사이, 거미가 어제보다 한 뼘이나 더 내려왔어
요즘 머리카락이 푸석해지고 있어
아무리 땋아도 썩은 동아줄처럼
툭툭 끊겨 어디로도 닿을 수 없어
분명 어디가 아픈 거야, 하루 종일 빈 방에
혼자 누워 천장만 바라 봐 왜
거미는 모서리에서 출발할까
전화를 걸어 누구든 초대했지
툭툭 끊겨, 두려워하지마
걸음은 점점 더 안전해질 테니까
붙들기 위해서 투명할 뿐
꿈을 꿔, 나는 착한 노파처럼 물레를 돌리고 있어
누군가 물레에 찔려 잠들면 입을 맞추지
만 다시는 깨어나지 않아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아 점점
나는 말라가는데
탐스럽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오늘은 검은 거미줄이 더욱 투명해
오늘은 거미가 두 발로 걷고 있다.
오징어
한때 참 부드러웠던 몸
을 이제는 어루만질 수 없지, 술잔을 기울이며
찢는다 우리는 헤어졌지
죽음과 가까운 것을 빛이라고 믿었던 마음
으로부터 메말라버린 몸
어두운 바다 속으로 별들이 몰려들었던 밤
그 때 우리는 헤어졌지
돌아서면서 열 개의 발가락만 꼼지락거렸지
열 개의 발가락이 열 개의 발이 되도록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사방으로 얽혀버렸지
이미 타들어버린 질긴 몸
자꾸만 우물거렸지
술로 축이면서 우물거렸지 자꾸만
팍팍해졌지, 오른 손과 겹쳐지는 가슴부터
어깨가 아픈 새
빨랫줄에 앉았다 날아간 새들처럼
바람에 날아가려다 집게에 물려
간신히 살아남은 옷은 죽은 새
뚝뚝 핏방울 흘리는 축축한 몸
다 마를 때까지 허파에는 바람이 가득 들어차고
이런 날은 빨래를 널기에 좋은 날씨야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와
날아가기엔 더 더욱 좋은 날씨지
긴 두 소매만 계속 펄럭이는데
어깨에 생긴 두 개의 이빨 자국
막 빨랫줄에서 걷은 옷을 입으면
햇살 때문일까 온 몸이 간지러워
[당선소감]
아주 오랜 동안 나는 게을렀다. 어느 날인가는 등교길에 들리는 반야심경 독경 소리를 듣고는 시를 쓰고 있지 않다는 불안감과 무기력함에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한 두 해의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흘러갔다.
집에서 제일 큰 방을 쓰고 있던 나는 제일 작은 방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책 장 두 개와 침대, 앉은뱅이 책상이 전부였다. 간신히 쓰고 있던 시를, 천천히 다시 써나가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아무도 없는 빈 방에도 먼지가 쌓인다는 것이다. 내가 시를 쓰지 않는 동안에도 시는 내 안에서 보이지 않게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너무 잘 쓰고 싶었던 마음이 불안감을 던져 주었고 그것이 게으름으로 위장된 게 아닌가 싶다.
수상 소식을 알려드리자 이제 드디어 시인이 되었느냐고 되묻는 순진하신 어머니께 제일 감사드린다. (시 써서 돈이 되냐고 가끔은 타박하시지만 은근히 시 쓰는 딸을 자랑스러워하심을 나는 다 알고 있다.) 또 매일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오지 않았냐고 재촉하며 물었던 나의 꾸러기 재연 오빠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쳐 주신 홍신선, 박제천, 이종대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수상보다 상금을 더 기뻐하고 있을 시분과, 희곡분과 사람들에게도 고마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열 다섯 살 어린 소녀의 시심을 키워주셨던 김미진 선생님의 고마움을 이 순간 기억한다.
더 열심히 쓰라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감사드리며 더욱 치열하게 달릴 내 발뒷꿈치를 쓰다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