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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봉하연


어릴 적 내 방엔 다락이 있었다

문은
얇은 합판으로 오래되고 낡아서 아무리 힘껏
닫아놓아도 조금씩 사이가 벌어졌다

나는 잠들기 전이면 그 틈 속으로
나를 혼자 두고 밭으로 가는 엄마의 오토바이 소리
안방에서 탕탕 발을 구르던 할머니의 주정
내 팬티 속에 손 집어넣던 막내 외삼촌의 숨소리
가끔씩 37사단에서 날아오던 훈련기의 굉음
같은 것들을 밀어넣다가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곰팡이처럼 핀 맹독 같은 어둠 속에서
서걱서걱 벽에 댄 스티로폼을 갉아대는 쥐, 쥐새끼
처럼 소굴을 만드는 나의 기억들
그후로 틈은
잘 기른 기억들을 떼지어 내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중에 한 마리, 게워낸 막걸리처럼 쉰내 나는 트림 속으로
자장, 자장, 자장, 자장,

그리고.
오래된 기억들이 다락방 먼지처럼 일어서서
내 첫 남자의 무게만큼이나 나를
숨막히게 하는 밤
오늘도
나의 한쪽 벽에 나타나는
낡은 다락문
꼭 닫히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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