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器 (외 4편)
한 그루 소리에 매인 가지들이 문을 닫고 모든 소리는 사라지는 쪽으로 옮겨 간다
이때 현絃은 끊어져 있다
줄이 끊어진 악기가 벌판에 오래 서 있다
바람이 열리지 않는 소리를 두드리다 돌아가고
전정剪定한 가지들 빈 틈마다 음표들이 돋는 봄이 되면
푸른 손들이 현에 달라붙을 것이다
조만간 날아오르는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될 것이다.
화두話頭가 방음에 붙어 녹슬어 가고 있다
미처 감기지 못한 짧은 탄성이 내는 계절
되돌아오지 못하는 소리를 잘라
귀를 키운다.
공중조율에는 실음이 손끝에서 버려지고
연주가 없는날, 적요한 햇빛만 무음으로 가지를 휘고 있다
현이 돋아나는 날씨
공명이 몰려오는 곳으로 꽃들이 졌다
소리가 여럿이 되는 무렵
수십 줄의 현에서 검은 음이 떨어져 넓어질 것이다.
지난 겨울 부러진 가지 들에는 불구의 소리가 있고
단단해진 목질의 내부에
무기 가득한 악보가 길다
소리를 모으는 곳은 가지 끝이 제격이지만, 가장 높은 음은 가장 먼저 끊어지기도 하여
흩어지는 곳 또한 가지 끝이 제격이다
흩어지는 방식
새의 흔적에 나무들이 긴 회랑처럼 앉아 있다.
혼자 타는 나무는 없다.
물기가 날아오르며 연기를 흉내 내는 나무들
혼자 날아가는 구름은 없다
여러 개의 방을 거느린 직선의 저택에 숨어 있는 것과 열린 것이 함께 있다
아궁이 저쪽이 꼭 방은 아닐 것이고
울음을 보태는 곳이 꼭 아궁이 앞만도 아닌 것처럼
아직 젖어있는 것들의 흩어지는 방식이지
부친의 방들이 타이머 안에서 잘라지고 마르고...
문 저쪽에서 재가 되어 나올 때까지
양쪽의 세상에 마음을 두고 흐느끼다 그치다 연기처럼
내 몸에 첫 불을 밀어 넣을 때를 생각하는 시간
제일 뜨거운 곳은 눈일 것이라는 확신.
나무는 어느 방에 불을 키우고 있는지
가장 불붙기 쉬운 잎들은 다 털어버리고 있는 철
그 틈 틈을 열어
구름을 채워 넣고 있는 시간
첫 불 앞에서는 혼자 우는 울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
연기는 구름의 흔적이라고 필기된 나무의 그늘 한 장을 오래 보관하고 있다
그곳에서 물의 냄새가 났던가
희고 넓은 연기에다 나도 첫 문장을 적는다.
맨 처음 한 줄,
첫 불 들어가는 빈 방이 있다.
타워크레인
잣나무 밑동에 사다리가 걸쳐져 있다.
작년 가을, 이氏 아저씨 마지막 나무에 오른 흔적이다.
흔들리는 공중, 마지막 잡았던 힘
걸어서 내려오라고 누군가 치우지 않은 길이다.
꼭대기에 열매를 달아놓는 습성
사람을 겨냥한 나무의 비책 같다.
사다리는 나무의 飛階쯤 될까
신갈에서 용인 가는 어디쯤 중단된 공사장
타워크레인 꼭대기에 승강기가 매달려 있다
자본의 열매가 하나 둘 떨어져 오르내리는 것을 잃은 크레인
이氏 아저씨는 잣나무 밑동쯤에
직립을 거두어들이고
사다리를 비워놓았듯.
나뭇가지 물어 나르던 새들 집은 늘 비어있다
半月은 빈 달이 아니듯
나무는 새 열매를 얻어 계절을 채워갈 것이고
높은 곳은 비어있는 때가 많아 空中.
지상과 몸 바꾸며
계절의 이름을 만들어냈듯
없는 사람을 따라간 계절은 간절기쯤 될까
누군가 잡고 흔드는 듯 공중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다.
뒤늦은 관계
날아오르지 못한 소리들 틈에 귀를 꽂습니다. 움직이는 것이 늘 소리는 아니었지요. 귀를 넣기 전 벌써 닿아버린 소리 시제를 고칠 겨를이 없습니다.
꽃잎이 깨져
겹겹의 잎들이 날리는 봄날의 허공
모든 색은
깨진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겠지요.
공중에서는 불규칙이 규칙일 수 있습니다. 천둥은 번개 속에서 걸어 나오고 비행운은 소리르 바삐 비행시킵니다. 귀르 움직여야 소리를 잡을 수 있지요.
붉은 색깔과 한 얼굴은 서로
안면을 모르는 관계이겠지요.
땅에서는 경적 음을 알아차리기 전, 마찰음으로 닿는 때가 많아서 비행운이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슬픔은 스프레이로 뿌려지고
오래 일어나지 않아 지워지갰지요.
인저리 타임
터널 입구, 인저리 타임이 주어진다
후반전까지 무승부, 터널 안에서 치러진 3분
터널 빠져나오는 데는 4분,
승부수는 터널 밖 봄날이었다
잎들이 긴 수액의 터널을 지나서 가지 밖으로 혀를 내밀고 있었다
장자의 꿈처럼 지난 가을 터널 지나온 것 같은데
밖은 봄이 되어 있었다
산 것을 위한 생석회 분사는 늦가을부터 봄까지 이어졌고
두문불출의 시간은 결국 산 것들을 향한 권면의 시간
그 모두를 건너 오늘 오일장이 섰다
곡식들, 마른 고추들이 지키던 낯익은 좌판에는
이른 봄 것들이 나와 앉아 있다
그 한쪽, 메두즐 각진 모서리마다 겨울 칩거들이 발효되어 있고
팔려나가지 못한 것들이 장 바닥에서 난처한 하루를 계량하고 있다
인저리 타임도 끝이 나고, 장날도 저물고
장자의 꿈은 다시 어느 터널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하루를 계량하던 계량법으로 그 꿈을 계량하면
지난 겨울은 가장 긴 터널, 4분이었을까
난처한 봄날, 잔설이 어제 묻힌 송아지 얼룩처럼 곳곳에 박혀 있다
'문예지 신인상 > 시인시각신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회 시인시각신인상(홍순영) (0) | 2011.08.13 |
---|---|
제4회 시인시각 신인상 당선작 (0) | 2011.08.13 |
제3회 시인시각 신인상(김미량) (0) | 2011.08.13 |
제3회 시인시각 신인상(김호기) (0) | 2011.08.13 |
제3회 시인시각 신인상 당선작(주영헌) (0) | 2011.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