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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 ‘이제, 문학은 어디로 가는가?’

-46호 가을호 게재작품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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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상징계의 절벽에서

 

완성되지 않는 글쓰기의 도정에서 늘 지쳐있는 제게 큰 위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쓰기란 없는 것을 찾고, 도달 불가능한 것을 지향하며, 상징계의 절벽으로 자신을 끝없이 내모는 일입니다. 그것은 늘 실패이고 당혹이며 고통입니다. 그래도 눈먼 사람처럼 글의 미로에서 헤매는 것은, ‘아버지의 법칙을 거부하며 상식을 조롱하고 공리를 의심하는 것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지속적인 힘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90년대 초반 등단한 이후 영문학 연구를 핑계로 20여 년간 문단을 떠났다가 다시 문학적 글쓰기를 시작한 지 이제 5년여밖에 되지 않는 신인입니다. 문학 앞에서 제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제 가슴은 늘 설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학은 언어라는 무기물無機物을 건드려 매혹의 생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은 반복을 혐오하며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사막에서 새로운 물길을 찾는 작업입니다. 그 고단한 코뮌의 동지들을 사랑합니다. 부족한 제 글을 수상작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계간 시와경계에 경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굿모닝, 에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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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코비드시대의 진단과 시 창작 방향 제시에 돌올한 성과

 

4회 시와경계 문학상 심사를 마쳤다. 금년부터 평론도 심사범위에 포함하였다. 시부분과 평론부분 중에서 한 분야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잡지가 좋은 시와 우수한 평론을 만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에서이다. 심사 작품은 2019년 겨울 호부터 2020년 가을 호까지 발표한 신작시’, ‘특집시’, ‘오늘의 주목할 시인’, ‘신인특집에 게재한 306편과 기획특집에 게재한 평론까지 총 310편이다.

 

심사위원은 손진은 이대흠 우대식 천수호 시인이다. 심사위원께 필자의 이름을 삭제한 총 310편의 작품을 보낸 후 최종 10편을 선정하도록 하였다. 보내온 40편 작품의 필자를 복기한 결과 정우영 시인이 2, 정학명 시인의 두 작품이 각각 1표씩, 오민석 시인의 평론이 3표였다. 논의할 사항도 없이 오민석 평론가의 이제, 문학 어디로 갈 것인가가 선정되었다.

 

심사평은 아래와 같다.

 

오민석의 이제, 문학은 어디로 가는가?를 올해의 시와경계 문학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글은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문학사의 통찰은 물론, 현 시대 문학의 나아갈 바를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명쾌하게 진단함으로써 시인들의 창작 방향의 제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문학이 사라짐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가장 큰 전제이고 필자가 밝힌 문학사의 통찰이다. 이는 이상과 백무산 시에 대한 견해에서 두드러진다. 필자는 그런 맥락에서 개인성과 사회성의 불가피한 연결을 죽음의 위협을 동반하며 각인하고 있는 코비드-19’를 주목한다. 지금 우리 시는 탈근대(postmodern)’를 넘어 코비드 시대로 넘어가고 있으며, 이제 세계는 코비드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누어질 것이라고 선언한다. 코비드가 우리에게 던져준 새로운 인식은 바깥(지구)의 운명이 자신(개인)의 운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것을 근대적 개인을 대체하는 공동체적 개체의 출현으로 잡고 있다. 개체성과 공동체성을 동시에 구비한, 주체의 안과 밖을 동시에 사유하는 겹 주체성(double subjectivity)’.

 

모든 변화의 산물들은 활용의 대상이지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문학 환경의 변화도 고찰하면서 시각적 이미지와 문자언어가 서로 만나는 디카시를 사라짐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장르라고 보는 점도 충분히 공감한다.

 

단언컨대, 이 글은 최근 우리 시단의 문학담론 가운데서 예지와 통찰, 미시성과 거시성의 조화 등에서 단연 돋보이는 비평이다. 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이대흠 우대식 천수호 손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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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표정 / 손진은

 

 

두어 달 전 명절 끝날 산책길

인적 뜸한 고향 신작로를 지나다 들었네

 

점잖지 못하게 왜 그랬어?

여동생을 오빠란 놈이 그렇게 하면 어째?

아침 공기를 잔잔히 물들이는 어떤 중년의 음성

 

그 오빠는 보이지 않고 하,

누렁이 한 마리가 고갤 숙여

그 말 고분고분 듣고 있는 곁엔

누운 암탉 한 마리

 

(아마 옛 버릇을 참지 못하고

유순하던 개가 닭을 물었던 모양)

 

머릿수건을 쓴

그의 아내인 듯한 환한 여인은 또

왜 암 말도 안 하고 아궁이에 장작불만 지피고 있었는지 몰라

 

가축 두어 마리, 가금 대여섯

키 낮은 채송화 분꽃, 해바라기와 사는 필부인

그 사내 부부의 울타리 너머

꿈결같이 들은 그날의 음성과

 

실수 때문에

가책 받은 얼굴로 고갤 숙이던

그 착한 개의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가 다 죄인인 듯 마음이 저려온다네

 

알아듣기나 했으려나, 그 말?

메아리 소리가 곱게 울리던 그날 아침

내가 진정 못 본 것은 또 무얼까?

 

 

 

 

그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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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 내가 얼마나 모르는가를 일깨워주는

 

129일 오전 아홉시 사십오 분, 기말고사 문제를 출제하다 울리는 전화벨 소릴 들었다. 마감을 못 맞춘 원고가 있었구나!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좋은 꿈 꾸셨나요?” 하는 저 편의 말씀과 함께 당선 소식이 건너왔다.

 

생각의 필라멘트를 당겨올리자 수십 년 전의 푸르던 문청 시절이 따라왔다. 내게서 떨어져 나온 수십 년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에게 묻는다. 그동안 무수한 낫질을 통해 길어올린 것이 퍼석한 몇 다발의 환하고 아픈 상처뿐이었냐고, 그 소출에도 잘 먹고 잘 잤냐고?

 

풍경 속을, 골목과 인파 속을, 내 속을 걷다보면 못나고 비루하고 작은 것들이 내 속마음을 알아보고 속내를 털어놓을 때, 그때마다 아린 내 손가락 끝에 피어난 몇 송이 시!

 

하는 일이 시를 가르치는 일이다보니, 동서양의 시편과 지혜들을,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때가 많다. 그들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시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몸짓과 육성을 하고 있는지, 영원히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어쩌면 내가 얼마나 모르는가를 알아가는 게 남은 시인의 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시를 제대로 대접하는 일이 아니랴?

 

내 삶의 존재이유인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부족한 시편들에 손을 들어준 심사위원님들께는 더 좋은 시편들로 인사드리고자 한다.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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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3회 시와경계 문학상 심사 대상은 2018년 겨울 호부터 2019년 가을 호까지 발표한 신작시특집시그리고 오늘의 주목할 시인에 발표한 신작시 총 314편을 대상으로 하였다.

 

심사위원은 시인의 이름을 지운 시작품만을 이메일로 받았다. 블라인드 심사 방식이었다. 1차로 각 10편씩을 선정해 편집실에 보냈다. 편집실에서 총 40편의 시인을 찾아 복기해 본 결과 김명인, 고주희, 남길순, 심재휘, 박소란, 박윤배, 유희경, 이산하, 이승철, 이위발, 이종섶, 장이지, 조성웅, 김광선, 김수우, 김태형, 권애숙, 손현숙, 송경동, 송진권, 윤은경, 이경림, 이영주, 정한용 시인들의 시가 1,2편씩 언급되었다. 그중에서 손진은, 김윤이 시인의 시들은 3번 중복되었다. 논의 끝에 손진은 시인의 시 개의 표정을 선정하기로 했다. 심사평은 아래와 같다.

 

작금의 우리 시가 독자와의 소통보다는 개성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쪽에 매우 경도되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의 언어 사용과는 전혀 다른 어법으로 좀처럼 독자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언어형식과 함께 시의 의미마저도 그 이해와 수용을 모두 독자에게 맡기는 열린 구조를 지향한다. 너무 열려 있으면 거기가 집안인지 집 밖인지 모르고 독자들은 헤매다가 주저앉고 만다. 이때 소통 부재 혹은 난해를 말했다가는 독해 능력의 부족을 고백하는 꼴이 되어 쉽사리 그렇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가독성 운운했다가는 낡은’, ‘덜 새로운’, ‘개성이 없는쪽으로 분류되기 십상이다.

 

우리 시단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시에 다가가는 데 큰 무리가 없으면서 읽을수록 그 함의가 새롭고 그 감동의 폭과 깊이가 커지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거듭 읽을 때마다 시가 다가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시편이 있었다. 개의 표정은 깔끔하게 그려진 한 편의 그림을 보듯, 잘 짜인 짤막한 이야기를 듣는 듯 자연스럽게 읽히며 시인이 마침내 전해주고자 하는 시의 고갱이가 편안하게 잡히는 힘을 지녔다.

 

집에서 기르는 암탉을 물어뜯은 개를 점잖게 타이르는 집주인이 있다. 그런 일이 그저 일상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아내가 있고 가책 받는 개가 짖는 착한 표정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가축 두어 마리, 가금 대여섯/ 키 낮은 채송화 분꽃, 해바라기들이 한 풍경을 이룬다.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이루는 둥근 세계가 이 한 그림에 들어있다. 어떻게 보면 이것들은 사슬의 관계, 포식과 피식의 관계 속에 있으나 이 그림 속에서 이들은 위계나 등위가 매겨져 있지 아니하다. 암탉과 개의 관계는 남매의 관계로 그려져 있고 이 가축과 가금과 인간 또한 한 가지 생명으로 옆자리에 그려져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죄인인 듯한 마음을 느낀다고 했다. 나도 저 개처럼 형제를 물어뜯은 적이 있다는 것과 저 개 주인처럼 생명 가진 것들을 같은 높이로 보지 못했다는 뉘우침은 아닐까? 어찌 보면 동체대비의 불교적 자비관으로 읽힐 수도 있는 커다란 함의를 담고 있다.

 

시적 진실이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그리고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은 진술에 담길 수 있다는 매우 지당한 본보기로서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김혜영 오홍진 김효선 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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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악기의 고백 / 김효선

 

 

첫눈이 온다고 했을 때 눈을 감았다

비가 내린다고 했을 때 귀를 닫았다

오후 다섯 시부터

태양은 매일 자신이 죽는 곳으로 인간들을 인도한다*

이 세상에 우연히 없다고 생각해?

 

줄을 튕기면 바다거북의 심장소리와

암소가 내지르는 비명과

산양의 창자에서 쏟아지는 핏물

12월이면 나는 사라진다 수수께끼처럼 휘파람을 불며

나는 공기의 모든 것

 

늦게 오는 눈물이 있다

기다림 끝에 더 긴 기다림이 있을 거라는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다시는 그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달은 사라진다

살점이 아직 무릎 뼈에 붙어 있다

 

죽는 것도 죽지 않는 것도 아닌

잊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하는

이 세상에 영원히 없다고 생각해?

이별할 때 버드나무를 꺾어주었다는

옛사람의 눈빛으로 소금을 켠다

내지르는 비명은 달콤하다

 

17년 땅속에서 버틴 대가는

고작 두 시간동안 치른 정사

네 목소리를 들은 건 일주일이다

물론 옷을 벗고 있었다는 건

너만 아는 비밀

 

* 파스칼 키냐르

 

 

 

 

 

어느 악기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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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에 뜬 섬에서

 

왜 하필 일까 생각했습니다. ㅅ과 ㅓ, 그리고 ㅁ이 만나는 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섬에서 태어나 섬에 살았지만 한 번도 을 궁금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바다 위에 떠 있어 지리학적으로 이라고 했거니 했습니다. 하늘에서 제주도를 내려다보면 이라는 글자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얼키설키 사람들 집이 모여 있고 바다는 마을을 빙 둘러 감싸고 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셈이지만 한 번도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용암이 솟아올라 뜨거움과 차가움으로 반복했을 시간. 우린 여전히 과거의 시간을 살면서도 미래만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을 자꾸 반복해서 말하다보면 묘한 울림이 옵니다. 짧게든 길게든 한 글자 은 가다가 멈춘 기분이 듭니다. 거기 섦?().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 섬처럼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요. 그냥 우스갯소리입니다. 흔히 섬은 문학 혹은 문화적으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학에서 고독은 떼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몰입의 가장 큰 핵심은 고독, 절대고독입니다. 그 몰입에서 상상력, 창조의 샘물이 솟아나고 시가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봤을 때 섬은 고독하기 딱 좋은 환경입니다. 누군가 엎어지면 바닷물이 턱 밑에서 출렁거린다고 할 정도로 제주는 바다와 가깝습니다. 바다는 또 얼마나 고독한 지요. 끝이 없는 심연과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자면 순간순간의 기억과 삶이 물밀 듯이 달려옵니다. 파도와 바다가 한 몸인 것처럼 인간의 육체와 정신도 그 안에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섬에서 시를 씁니다. 어디엔들 상처가 없겠습니까마는 시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힘이 있습니다. 상대고독을 절대고독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는 가다가 서게 하는 ’, 그 섬에서 꾸는 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와경계 문학상은 어쩌면 이 제게 주는 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고독해지고 조금 더 명랑하게 시를 쓰겠습니다. 섬에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날입니다. 곧 남풍이 불고 바닷물은 잠방거리기 좋은 계절입니다. 바다를 남쪽을 조금 나눠 가진 날이었으면 합니다.

 

 

 

 

[심사평]

 

어디까지나 시인은 작품으로 말하는 존재여야 한다. 또한 좋은 작품을 쓰는 시인에게는 문단의 여러 사항에 묶이지 않고 독자와 만날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 한다. 부언하자면 시인은 좋은 시를 써야할 의무가 있고 잡지는 좋은 시인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다. “창작에 있어서는 엄격한 경계를, 좋은 시를 쓰는 시인에게는 경계 없는 잡지를이라는 시와경계의 슬로건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이번 제2회 시와경계 문학상 선정은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두었다. 1, 2, 3차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만나게 된 작품은 성윤석 시인의 흰개와 이태관 시인의 연리지, 김효선 시인의 어느 악기의 고백그리고 임재정 시인의 기차는 미루나무 이파리를 지나네와 기혁 시인의 오란비였다.

 

이 다섯 분의 작품 중 어느 한 분을 시와경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시적 연륜으로 보나 그간 위 시인들이 펼쳐온 시세계로 보아도 이미 알려질 만큼 탄탄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시인들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최종심에서 만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제2회 시와경계 문학상 수상자로 김효선 시인을 선정한 데는 심사위원의 추천 수와 함께 시와경계의 창간 정신에 부합한다는 점을 들었다.

 

김효선 시인은 2004년 등단 이후 첫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는가 하면 2018년 제2회 서귀포문학작품상을 수상함은 물론 아르코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그만큼 좋은 작품을 창작해 오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번 수상작 어느 악기의 고백"존재가 빛나는 순간을 고통 속에서 포착하여 다른 존재로 거듭 승화시키는 안목이 탁월"했다. 풀어 말하자면 너라고 지칭하는 매미의 한 생이 고통스런 의 생으로 치환되어 재생된다. 비유적 주제는 사랑의 탐구가 되겠다. 17년이란 어둠 속 기다림 끝에 오는 삶이란 게 고작 사랑의 절정 2시간과 절박한 울음의 2주간이 다인 매미의 한 생을 통한 사랑의 탐구라 할 수 있겠다.

 

매미의 생이란 게 어쩌면 2, 2시간이란 절정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거나 거꾸로 그 절정의 삶 뒤 늦게 알게 되는 긴 기다림의 카오스 상태를 자연스럽게 연속되는 하나의 어떤 차원으로 이끌고 가는 솜씨를 내보인 것이다.

 

지난 2018년 가을호 김효선의 소시집 비평을 썼던 고성만 시인도 김효선의 시는 내면적 요소가 많다. 언어와 언어를 연결하는 고리가 여리고 섬세하다. 고전과 현대가 아울리고, 외국과 우리나라가 연결되고 뭔가 툭툭 끊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간결한 무늬로 얽혀있다. 결이 고운 시다.”라고 평했다.

 

앞으로도 등단 지면, 지역성 등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시 창작을 위해 정진하기를 시와경계도 적극 응원한다.

 

심사위원 이성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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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8 / 이성렬

 

 

뚝섬 못미처 시작된 승객들의 말싸움은 지친 듯 금세 사그라졌다. 열차의 규칙적인 마디음에 섞여 신음하듯, 왕십리를 지났을 때 기차 바퀴가 발을 끄는 소리가 아닌 ?이를 가는 듯한 삐익삐익 또는 낑낑 소리와 같은 음향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가 누구를 부르는 것인가신당역에 내려 반대 방향의 열차로 갈아탔을 때, 소리는 두 역 사이 지점, 기억 속의 광무극장과 중국집 육합춘의 옛 자리에 일치하였다. 겨울날 무쇠 난로에 손을 데우며 보던 영화 <지옥문>과 모친은 곗날 회식의 추억이 서린 곳. 왜 이제 누구를 부르는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물었지만, 그 낡은 숨결들은 어느 날 가계를 접은 후에 시장 밖으로 걸어 나간 표구점 주인의 의족처럼 간 곳 없었다. 조악한 극장 간판의 울긋불긋한 색상을 다시 모을 수 있다면, 육합춘 잡탕밥의 고소한 냄새를 실어 온 공기 입자들의 떨림을 재현한다면. 어떤 결심 때문에 세상 밖으로 사라져갔는지. 숨을 접은 두 유령의 사연을 알아볼 수 있을까. 지금의 이 난전은 그때의 연옥이 맞는가? 이들이 소멸하기로 작정한 순간, 우리는 혹시 다른 세상으로 갈라져 나온 것 아닌가? 골목을 건너는 고양이가 애매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광무주차장에 쭈그려 앉아 오래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가로수 잎사귀에 새겨진 늙은 패잔병들의 유서가 몸을 뒤틀었다. 길 건너 빌딩 우듬지의 전광판에서, 최초의 인류 루시가 거닐던 내륙의 병든 아이가 마른 입술을 달싹여 속삭였다. 우리는 용도가 소진되면 껍데기만 남게 되는, 모든 기억을 소거한 후 세상 밖으로 스러질, 언제라도 시장으로부터 내쳐질 시간의 잔상이 아닌가? 그나마 남은 생을 탕진하며- 아무도 읽지 않는, 어떤 무대에도 오르지 못할 검은 대본을 그림자 속에 펼치는 희곡 작가의 기침 소리처럼, 빈터에 울려 퍼지는.

 

 

 

 

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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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전문지 '시와경계'(편집인 김남규)는 제1<시와경계 문학상> 수상자로 이성렬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2017년 가을호에 발표한 소시집 작품 중 '유령 8'이다.

 

시와경계 문학상은 시인의 세계관을 견지하면서 우수한 작품을 발표하는 시인들을 격려하고자 제정한 상이다. 이번 수상작 선정은 지난 1년 동안 '시와경계'에 발표된 신작시를 대상으로 했다.

 

심사위원들은 이성렬 시인을 뽑은 이유로 "사물이 내보이는 진실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시인으로 사물에 숨어있는 저마다의 '역사'를 언어의 빛에 비추는 작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했다.

 

특히 수상작인 '유령 8'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 시장의 세계로 용도가 사라진 모든 것을 유령으로 만드는 비정하고 냉엄한 사회상을 그림으로써 따뜻한 서정이 필요함을 일깨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성렬 시인은 195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및 KAIST 졸업하고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 수여했다. 2002'서정시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는 '여행지에서 얻은 몇 개의 단서', '비밀요원', '밀회'와 산문집 '겹눈'이 있다. 대한화학회 이태규 학술상, 문학청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상식은 오는 23일 오후 4시 대전 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서 열린다. 시상식에는 제18회 시와경계 신인상을 수상한 문설, 김령, 권은좌 시인에 대한 시상식도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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