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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미용실 / 조선이

 

 

우주역 1번 출구엔 가위질하는 달이 떠 있어요.

 

해질녘이면 실눈이 열리는 유리 캡슐

야간 시술, 꼬리별 속눈썹 가능

눈웃음에 부서지는 하루를 마감하고

낮과 밤의 눈을 바꾸고 싶으면 찾아가는 곳.

 

미용사는 거울에 비친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려요.

손님, 머리 모양을 보름달처럼 바꿔볼까요?

 

그녀는 달의 둘레와 지름까지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 같아요.

달빛을 흔들어 분화구를 찾아내고

암모니아 냄새를 맡고 새치를 골라내기도 하지요.

 

저 멀리 계곡에선 북두가 어렴풋이 물길을 열어요.

솜누스*가 출렁이면 달의 뒷면에서 은하수가 쏟아져요.

헤어캡에서 터지는 기포소리

토끼가 달팽이관에서 고개를 내밀기도 해요.

 

그녀는 다시 만날 걸 약속이나 하듯

달그림자를 지우며 복숭앗빛 매니큐어를 발라요.

헤어캡에서 부적 같은 손톱달 하나씩을 꺼내줘요.

 

창밖으로 보이는 우주역 앞에는

갈 길 모르는 지구인들이 웅성거리고 있어요.

암스트롱이 살다간 집을 그들은 찾을 수 없어요.

 

툭툭 잘라낸 속눈썹이 전갈자리 같아요.

애인과 함께 안드로메다로 떠날 그날을 생각해요.

 

* 잠의 신

 

 

 

 

[당선소감]

 

벚나무에 봄비가 맺혀있는 오전 이삿짐 사다리가 올라갑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의자는 치워지고 누구의 의자는 채워집니다. 지난달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와 출근 준비하던 중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겹벌이하고 있었습니다. 불안한 생활 앞에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가 또 다른 세계에 한 발 내딛습니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기에 남들보다 두서너 배 더 노력해야 했습니다. 새벽이 올 때까지 단어를 찾고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좌절과 끈기로 버텨온 시간에 첫 번째 봄꽃처럼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봄비처럼 언 땅에 낮은 자세로 더욱 정진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위안과 희망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기택 교수님의 찰진 회초리가 무서웠지만 그게 보약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울음나무문우님들 채율, 재순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이 고맙고, 두 딸 수연, 수아 사랑한다.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박덕규 교수님과 김흥기, 최대순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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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통과해 올라온 작품을 또 한 번 거르고 나니 <돌고래> , <노이즈마케팅> , <맑은 엄마> , <중심> , <새벽틀> , <오늘의 운세> , <골목에 스위치를 켠다> , <목화> , 그리고 <달밤미용실> , <바지랑대> , <파릉> , <책장 다비(茶毘)> 외 등 12인의 응모작이 남았다. 전반적으로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어서 여러 차례 다시보기를 했다. 그 결과 뒤에 남은 4인 작품으로 좁혀졌다.

 

<책장 다비(茶毘)>는 낡은 책장에 있던 책들을 버리는 내용이 새로워 보였는데 비워야 비워지는 것들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필연적 과정이 부족해 보였다. <파릉>파릉등 봄작물을 경작하는 광경이 실감나게 그려졌지만 시상의 일관성이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바지랑대>젖어 늘어진 생의 무게를 떠받치는바지랑대의 형상이 볼 만했지만 언어의 중복이 심했다.

 

<달밤미용실>은 직장인을 위해 야간에도 문을 여는 미용실의 분위기를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시다. 그 미용실이 우주역 1번 출구에 위치한다는 공간설정, 미용사가 달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 같다는 직유, 솜누스(잠의 신)가 출렁일 때 달의 뒷면에서 은하수가 쏟아진다는 환유 등이 단순히 재치에 그치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해학에 맞닿아 있었다. 미용실을 들어갔다가 나오기까지의 경과를 흐트러짐 없이 형상화한 데서 만만찮은 역량이 느껴졌다. 함께 보낸 시 <움푹 들어간 곳> 등도 안정감 있는 시였다.

 

<달밤미용실>을 당선으로 올리고 축하의 말을 전한다.

 

- 심사위원 박덕규(시인·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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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어 / 길덕호

 

 

해가 뜨기 전 골목은 깊은 바다가 된다.

어제 뜬 별이 성게처럼 유리창에 들어가 박히고

달빛 떠난 적막만이 청니 덮인 푸른 길을 내었다.

골목 어귀에는 바람의 물결이

아가미로 들썩이는 낙엽들을 이리저리 골목길로 내몰아

잠들지 않는 가로등을 등대 삼아

저마다의 항로를 향해 무겁게 철썩인다.

 

어두운 골목 바위틈에선 담배의 빨간 불빛이

야광석처럼 공기를 빨아들이고

빛을 보고 모여든 심해어 한 무리

크릴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추위에 오그라든 비늘을 깃으로 세운다.

해풍에 돛을 올린 사람들

삼삼오오 자신의 지느러미로 헤엄치며

집어등 밝힌 인력 사무소 앞에 묵묵히 모여 든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면서

깊은 해연의 푸르스름한 자궁 안

어머니의 따스한 첫 부름을 생각해 본다.

부드러운 물결 같은 그 한 마디가 탯줄을 타고 들어와

뼈를 세우고 심장을 뛰게 하였지.

양수 같은 새벽 공기가 바다의 모습을 한 채

사람들을 안개 속으로 이끌고 있었다.

 

파도 한 점 없는 갯벌 같은 해저의 광야

골목의 탯줄을 따라 출렁이는 한 무리의 물결

울먹울먹 꽃으로 뼈를 세우는

심해어 한 마리

굵은 몸짓의 자맥질로 깊은 바다를 유영하면

태양은 그제야 수평선에서 입질을 시작한다.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 당선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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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한탄강 물윗길을 걸어갑니다. 물은 발 아래로 흐르지만 소리는 늘 귓전을 맴돕니다. 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들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최상의 시어들입니다.

 

때때로 노을이 익어가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시상들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의 물줄기는 말라만 가고 메마른 시간들이 지나만 갔습니다. 동력이 떨어지고 지칠 때에 투데이신문에서 보내주신 기쁜 소식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된 듯합니다.

 

늘 옆에서 응원해 주는 가족들, 우리 선생님들, 시문학 동아리 친구들 감사합니다.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던 귀한 친구, 또 그 옆에서 빙그레 웃으며 글을 봐주던 소중한 친구들 정말 감사합니다. 기쁨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은 잠시 책갈피에 넣어두고 기쁨의 꽃잎만 추려내어 감사의 꽃다발을 드립니다. 졸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글이기에 더 열심히 쓰라는 채찍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산이 되고 바람이 되고 강물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심사평]

 

예년보다 더 많은 직업군에서 더 깊은 직장 체험을 안고 시의 세계로 들어왔다. 196인의 총 919. 이 중 예심을 통과한 30인의 작품에서 수준이 좀 떨어진다 싶은 것을 빼고 나니 <심해어>(길덕호), <선인장>(황용녀), <연근조림을 먹지 않는 이유>(김종태), <문서 세단기>(김미향), <장미꽃무늬 팬티에 관한 소문>(오정순), <삼신할미의 고뇌>(김경희), <겨울로 가는 시계>(이정근), <울음이 흘러넘치는 날의 뒷면일지도>(김수수), <늦은 나라의 이상한>(박선영) 등이 놓였다. 이들을 두고 다시 오래 정독했는데 그 까닭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서라기보다 보다 완성도 높은 시 한 편을 찾기 어려워서였다. 대부분 체험을 비유하고 상징하는 표현을 즐기고 있었는데, 시의 전개 과정에서 일관성을 잃고 있었다.

 

최종에 남은 것이 <연근조림을 먹지 않는 이유>, <선인장>, <심해어> 3편이었다. <연근조림을 먹지 않는 이유>는 어릴 적의 아픈 추억을 되살리는 상징물로 연근을 내세운 구체성이 주목됐지만 경험을 설명하는 어투가 강했다. <선인장>메마른 세계를 건너가는 삶의 시간을 사막의 선인장에 비유하는 참신성이 목마른 내가 선인장 즙을 빨아먹는 서술로 잘 표현됐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시적 긴장을 잃어버렸다. 앞으로, 하나의 정황에서 시적 현실을 형상화하는 일을 과제로 삼는다면 크게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심해어>는 새벽 골목을 깊은 바다, 일자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을 심해어로 비유하는 상황 설정을 끝까지 하나의 시적 정황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면서/ 깊은 해연의 푸르스름한 자궁 안/ 어머니의 따스한 첫 부름을 생각해 본다.”로 막노동 일터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담아내는 정서적 형상도 볼만했다. 함께 보낸 <대걸레의 인생>, <신쥐라기 시대> 역시 오랜 시작 과정을 짐작케 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시적 패턴이 다소 규격화돼 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하며 당선으로 올린다.

 

심사위원 박덕규(시인·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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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리다 / 구봄의

 

 

해질녘 유리창은 노을 꽃밭이다

건물 사이 골목들은 저녁을 수혈 받고

다크서클이 진 내 눈가에도 붉음이 감돈다

모니터 서류가 적재물처럼 쌓여 있다

바탕화면 아이콘들을 징검돌처럼 건너는 상상을 한다

내일 사표를 낸다면 부장의 표정은 어떨까

과장의 얼굴을 클릭하면 무엇이 쏟아질까

김 대리의 짜증을 압축하면 용량은 얼마나 될까

기획적으로 살아왔는데

나에게 창문은 습관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하드웨어가

대기하고 있던 화면을 곧바로 보여준다

 

인공 창문에 젖어 인공 풍경을 살았다

가끔 불 꺼져 있는 나의 모니터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죽이며 누군가 방문한 적이 있었을 거다

거기 미끄러져 갔을 당신과 나의 데칼코마니

지난주엔 누군가 날개를 가진 듯

유리창 사이를 퍼득이다 주저앉았다

누군가의 비명소리는 너무나 쉽게 지워졌고

다음달 재계약의 순간은 숨막히게 다가왔다

 

일순간 환해지던 노을의 몰락

오목새김으로 온전히 내게 남는다

개밥바라기 별은 얼마큼 먼 거리였던가

각오한 듯 창문 앞에 선다

긴 각목처럼 팔이 늘어나는 착각에 빠진다

반대편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는

나를 닮은 누군가의 등을 만진다

그도 비참을 웅얼거리며

나와 같은 방향을 품었을 거다

핏빛 노을과 내가 서로 자물린다

전화벨이 울린다 뒤돌아보니

모니터 속 서류들이 조금 더 쌓여 있다

이제 그만 계약을 끝내야 할까

죄 없는 죄인처럼 또다시

윈도우 앞에 끌려가야 할까

더이상 기회가 없다며 저녁이 문을 닫는다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 당선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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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직장인 신춘문예 응모하셨나요?’ 일 가는 중에 무심코 받은 전화였다. 직장 전화번호를 물으시길래 순간 의아했다. ‘좋은 일 있을 것말끝을 흘려들으며 버스 안에서 폰을 꼭 쥐고 환승 정류장을 두 번 지나쳐 허겁지겁 내렸다. 환승 정류장으로 바삐 걸으며 직장 도착 시간을 재촉하고 한편으론 응모작이 본심에 올랐나? 실감 못하는 먹먹한 상태로 허둥거렸다. 몇십 년 일하는 와중에도 배우고 읽고 쓰면 언젠가는 써질까, 몸속에 잠긴 시름이 시심으로 가로질러 나갈 수 있을까. 복막암 걸려 죽은 고양이 잭을 껴안고, 목공근로자 아들에게 아침 출근 때 매일 생과일 주스를 갈아주면서도, 주위의 소소한 사물들과 말문을 트려고 시의 눈썰미를 다독였다. 아들의 힘든 노동을 들어주고 그걸 시 형식으로 형상화하자 맘먹으니 뭔가 울컥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시 호흡이 그의 노동과 같기를 매번 시도했지만 항상 실패했다. 실패작을 다시 고쳐 쓰고 그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근로에 지친 아들에게 시 읽기는 고역일지도 모른다. 내게 시 읽기는 근로 후의 휴식이었다.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누군가의 메모를 냉장고 문에 붙여뒀다. 출가한 딸네 가족에게 수시로 안부를 묻듯이, 똑같은 하루하루를 거르지 않을, 읽고 쓰는 노력을 다하려고 스스로 다짐한다.

 

항상 격려해주시는 주위의 지인들. 미숙한 표현이지만 평생 근로의 시를 응원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먼저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애증으로 갈등할 때도 더러 있지만 서로 지켜주는 가족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늘 응원해주는 딸과 사위 손자 시후 지후 사랑해. 중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해. 묵묵히 지지해주는 아들 가람이의 축하도 고마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먼저 등단한 신재희 씨, 너무나 고마워요. 몇 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송빙관(松聘館)시인사숙, 정인, 나들목, 소미, 경요님. 다정다감한 어머니 같은 권영숙 시인께도 고마움을 전해요. 그 칼칼하면서도 달달한 고추장 맛처럼 시를 써볼게요. 모두 고맙고 애절한 시간이었어요. 메르스 기간에 야외 시 수업을 못 잊어요. 제 부족한 학력으로도 오롯이 문학의 길로 저를 이 자리에 서도록 이끌어준 유종인 시인 사부님 감사드려요. 학력이나 스펙 같은 사회적 편견에 맞서 당당히 걸어가라는 당부 잊지 않을게요. 하린 시인 교수님, 구애영 시인님, 시클창작특강반 문우님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시 창작의 어려움을 서로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어서 힘과 용기를 가집니다. 고마움을 전할게요. 두 해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편안하게 일하게끔 해주시는 두레 정육식당사장님 내외분께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일하는 생활 속에 시를 익히고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힘들겠지만 꾸준히 거듭 시를 붙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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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압기 / 이상근

 

 

너무 강렬한 힘을 품어서, 그는

늘 울고 있다

 

처음으로 밀물을 들일 때

심장이 울컥, 수축을 접었다

이제부터 홑몸의 호흡이 시작된다

 

그는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그에게

오는 에너지와 그에게 기댄 저항 사이

적당한 거래, 팽팽한 긴장은 덤으로 주어지는 책무이므로

내부에 흐르는 피의 밀도를 긴밀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는 벼락의 세기를 제한하는 등급에 따라

그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그를 감싼 철갑은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떨림과 자극을 허용하므로

체온을 조절하여 시간의 기울기로 세운다

 

그에게는, 순종하지 못하는 까다로운 신경망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을 부풀리는 변형된 돌연변이,

예민한 촉각으로 낯선 진동을 끼워 넣었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기댄 저항들이 그의 위상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에게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의 터전을 만들어

그의 견고한 영역에서 공명共鳴하고 있다

 

그는,

그가 버거워하는 힘을 수긍할 수 없어 울음에 조바심을 실었다

홀로 남겨진 아버지의 들판처럼 그의

곱아 굳어버린 열 손가락은 허허로운 확장을 꿈꾸지만

들판은 마지막 노역勞役, 바람이 왜곡된 파장으로 찾아왔다

 

서숙*이 바람에 뒤척이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울음을 멈추었다

그를 둘러싼 곁가지들이 파편으로 흩어진다

 

* 조의 방언(경기,경상,전라,충남)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 당선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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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경춘선 숲길을 걸었다. 기차가 달릴 때보다 사람이 지나는 철로의 품이 훨씬 넓었다. 경적을 멈춘 기차 한 칸이 호시탐탐 도망가기를 원했고, 사람들은 기차에 빚지고 온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따로 배우지 않아 생짜로 쓰인 글에는 자꾸만 욕망이 불거져 나왔다. 사람과 길이 어우러지듯, 나무와 길이 서로에게 안위하듯, 그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늦은 나이이지만 이대로 날이 저문다면 부끄러운 일이므로, 다잡아 다시 길을 걸어야겠다.

 

거칠고 둔탁한 글을 뽑아주신 장석남 교수님께, 오래도록 세상과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겠다는 다짐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문학의 확장성 측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투데이신문사와 세월의 켜가 두터워 이제는 믿음이 된 직장 선후배님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늘 미덥지 못해 걱정을 앞세우시는 양가 부모님, 나와 함께여서 힘겨웠을 식구들에게도 작은 위안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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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 / 한영희

 

 

묘지 울타리를 가르는 찔레나무들

언제부터 그 아래 살았는지 모른다

어젯밤

어깨를 들썩이던 여자가 축축함을 내려놓고 간 후

의자는 전염병에 걸린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어둠이 걷히기 전에

아기 눈빛 같은 이슬을 모아 세수를 마쳐야 한다

환경미화원의 빗자루는 나의 넓은 품을 달래줄 것이다

따스한 햇살로 아침밥을 지어먹고

밤사이 뭉친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을 덜어내기 시작하면

나는 만삭의 배가 불러온다

겉옷의 색이 점점 야위어 간다

더운 바람은 계절도 없이 불어오지만

체온은 비석아래 쌓여가는 먼지를 닮았다

허물어져 가는 몸에서 꽃을 피우고

나비가 내려와 노란 꽃가루를 털고 간다

목련꽃봉오리 피워 물었던 가지에서

내부수리 중 푯말이 숨을 쉰다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 당선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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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대표 박애경)이 국내외 직장인(비정규직 포함)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8년 직장인 신춘문예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번 직장인 신춘문예는 ()투데이신문사, ()한국사보협회,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한국문화콘텐츠21이 공동주최해 지난해 121일부터 2018131일까지 작품을 접수, 220일 심사를 완료했다.

 

한국문단에 새바람을 일으킬 역량 있는 신인작가와 기업문화 창달에 기여할 직장인 예비문인 발굴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신춘문예에는 시 부문 총 887(투고자 201), 소설 부문 총 118(투고자 111), 수필 부문 총 157(투고자 63) 등 많은 작품이 접수됐다.

 

의사, 주차요원, 문화재단 직원, 교수, 교사, 간호사, 공무원, 세무사, 법무사, 학원 강사, 연구원, 경비원, 출판인, 연극인, 일용직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응모했다.

 

기대 이상의 호응에 당초 각 부문 당선작만 내려는 계획을 변경해 가작을 추가했다.

 

시 부문은 한영희 씨의 응시3편이 당선됐다. 가작은 원옥진 씨의 그림자 놀이3편이다. 시 부문 심사를 맡은 박덕규 시인은 “‘응시를 당선작으로 놓은 것은 현실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끝까지 객관성을 유지해 바라보려는 태도를 신뢰하게 돼서다. 이건 시적 견고함에 해당하겠는데, 함께 보낸 작품 모두에 이런 면이 잘 느껴졌다고 평했다.

 

박 시인은 “‘그림자 놀이는 없는 대상을 생생한 존재로 드러낸 그 힘만으로 당선작에 밀릴 것이 없는데 함께 보낸 작품이 이런 수준에 못 미친 아쉬움으로 가작에 머물게 됐다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소설 부문은 최민하 씨의 카와라우가 선정됐다. 가작은 배석봉 씨의 사앙골이라는 작품이다. 소설 부문 심사를 맡은 김선주 소설가는 “‘카와라우는 취업을 위해 뉴질랜드로 진출해 갖은 고초를 겪어내며 영주권을 취득하여 뿌리를 내리려는 세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고 있다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예술적인 감동을 주는 작가적 역량을 높이 인정하며 주저 없이 당선작으로 올렸다고 밝혔다.

 

김 소설가는 “‘사앙골은 병이 깊어 마지막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미학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문장을 좀 더 갈고 닦았으면 하는 아쉬움에서 가작으로 정했다고 전했다.

 

수필 부문은 이수정 씨의 드므1편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가작은 김연희 씨의 붓이 내는 소리1편이다. 수필 부문 심사를 맡은 이명재 문학평론가는 “‘드므항아리, 달을 품다와 함께 필자 자신의 항암치료 체험과 할머니의 유물을 전통적인 문화로 연결시킨 품격을 살린 글로서 돋보였다서구적인 현대문물 속에서 우리의 옛 것을 되살린 작가의 노력이 가상했다고 평했다.

 

이어 “‘붓이 내는 소리는 글씨와 그림에 애착을 보인 예술가로서 생업에 종사해온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딸의 효심을 잘 그려낸 글이라며 선정 이유를 전했다.

 

당선작 상금은 단편소설 200만원, ·수필은 각각 100만원이다. 한편, 시상식은 39일 금요일 오후 3시 한국프레스센터(20) 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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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寂寞) / 김우진

 

 

정전은 늘 기습적이다 불빛을 집어삼킨 새벽 두 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어둠의 똬리를 튼 이곳은 바퀴들의 귀착지, 속도에 지친 길들이 한 자리에 멈춰 있다 저 길들이 잠을 털고 일어서는 시간, 어둠도 어디론가 쏟아져 내릴 것이니

 

희미한 불빛으로 어둠 속을 휘젓는다 쭈그러진 어둠의 주름살이 펴지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어둠에 묶여 살았다 이곳은 도시의 늪, 통째로 먹이를 삼키는 악어가 살고 있다 불빛 한 점으로 이 늪을 점검한다 지난여름, 한 여자가 악어에 물린 기억을 조심스럽게 플래시로 밀어낸다

 

달리던 길도 숨을 멎은 시간, 어둠 속에서 무럭무럭 살찐 적막의 푸른 살점을 떼어내어 입 큰 악어에게 던져준다

 

천장에 숨어사는 고요가 바닥에 엎드려 있다 저 고요의 현을 밟으면 짐승의 울음소리가 튀어나올 것이다 두려움이 집요하게 달려든다 몸에 고인 졸음이 빳빳해지고 보폭이 좁아진다 켜켜이 쌓인 적막에 등이 서늘해지는 순간, 신발을 질질 끌고 소리와 동행한다 지하 배수펌프가 덜컥 주저앉는 소리에 놀란 천장의 거미줄은 사유의 알을 쏟아 놓는다 보일러 배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 배후를 알 수 없는 저 뒤편 생각이 쭈뼛 일어선다

 

수십 층 적막의 무게가 어둠 속으로 떨어진다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 당선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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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조흥준 <심리테스트> 외 1편 

 

[우수상]  송지아 <ㅁ> 외 1편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 당선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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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패기냐 관록이냐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많은 심사가 그렇듯이 투고된 작품 수에 비하면 눈여겨봐야 할 작품의 수가 그리 많지 않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편 읽어가다가 절로 작품을 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탁자 밑으로 내려놓는 작품보다 탁자 위에 두고 다시 꼼꼼히 읽고 판단해야 할 작품이 자꾸 늘어갔다.

 

두 심사자가 각각 10명을 선에 올려 서로 돌려보고 그 중에 4편을 집중 논의하게 됐다. <우지서원에서>는 한국 역사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바탕으로 한 고전적 어투가 생생했다. 그 대신 그것이 지금이라는 시대 상황이나 일상을 담아내는 그릇으로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염려가 컸다. <대화의 방>은 반대로 현실을 읽어내는 어법이 분명했다. 다만 그 어법에 적용된 패턴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는 점이 아쉬웠다.

 

결국 두 편이 남았다. <ㅁ> 외 4편을 투고한 송지아씨는 한글 자음을 제목으로 내세운 데서도 느껴지듯 이미 오래도록 다양한 언어 훈련을 해온 것으로 짐작됐다. 이미지를 만들고 그중의 특별한 것을 상징화하는 능력이 각별했다. 이에 비해 <심리테스트> 외 2편을 투고한 조흥준씨는 대기업의 취업과정에서 쓰이는 ‘기업 인적성 및 직무적성검사용 테스트지’를 시의 전면에 내세울 만큼 패기를 숨기지 않았다. 기성에 도전하는 패기는 많은 경우 치기로 전락할 우려가 있는데 이 경우는 색달랐다. 독자를 ‘테스트지’의 ‘시적으로 보이는 언어들’에 젖어들게 하고는 결국은 그것이 감춰진 기성의 폭력성을 느끼게 하는 전 과정을 끈기 있게 버텨냈다.

 

관록(송지아)이냐 패기(조흥준)냐, 둘 사이에서 기성의 언어를 전복시키는 힘을 더욱 맹렬하게 키워나가라는 뜻에서 패기 쪽 손을 들었으니 전자가 우수상을, 후자가 최우수상을 받게 됐다. 축하하고, 함께 한국 시단을 가꾸어 보자고 손 내밀어 본다. 당선작은 (사)한국사보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네트워크지 3월호에 게재된다.

 

- 심사위원 : 박덕규,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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