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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잠녀 / 김희숙

 

 

[우수상] 피랑 / 송용탁

저마다의 바다

 

너무 많은 집들이 바다를 향해 걷고 있었다

 

툴툴 내리막을, 

 

굴러떨어지는 말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 크게 숨을 참고 한숨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살다보면 숨쉴 수 없는 곳에서도 숨쉴 수 있게 된 말들이 있다. 수몰된 자리에서 이토록 따듯한 지붕들을 이해하기 위해 쉬운 감탄사보다 욱신거리는 종아리가 좋았다.

 

타지인을 안내하는

저마다의 골목이 생기고,

 

얼룩진 물안경도 없이 그저 물길따라 걸으면 저 바다도 늦잠을 잔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벽에 부딪쳤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면 모두들 벽 속에 숨는다. 푸드득, 

 

계절이 바뀌면 나무도 새도 꽃도 

홑겹의 붓질로 새로 피겠지

 

천사가 버리고 간 젖은 날개를 입기 위해 줄 선 사람들

 

벽에 갇힌 날개는 어디로 날아가고 싶은 걸까. 두 손 가득 시를 쥐고 웃어보면 날개가 자랄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헤엄을 쳤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태우고 물질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파된 사람들

 

달려오는 파도를 보면 

모래사장에 그립다라는 말을 써 볼 

조그만 담력도 사라지게 된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골목을 돌아 자꾸 벽에 부딪친다

 

수몰이 끝나면

수많은 골목도 유적이 될거야

그저 섬이 된 지붕뿐의 연속이었다고,

 

저마다의 그리움을 지우기 위해 다시 밀물이다. 하나의 표정만 허락된 석상처럼 우두커니,

 

골목의 연대를 선사했다

 

저 바다가 멈추지 않았다

저마다의 피랑을 안고 돌아가는 붉은 공중이 있었다

 

 

[우수상] 바다의 알고리즘 / 고훈실

바다가 생의 척추가 된 순간부터

저 둥근 해원을 빠져나갈 수 없다

아버지의 파도는 0과 1의 미로

이물에서 고물로 이어지는 포물선이

출항을 허하면 난바다 어디쯤에서

아버지의 투망은 기호열이 복잡했다

물오른 바닷장어 뽈락 쏨펭

한 그물씩 올리면

어긋난 타이밍처럼 빈 햇살만 가득했다

바다는 갈수록 가난해져

열일곱 처음 배에 올랐던 기억과

수심을 읽은 아버지 등마저 홀쭉하다

촘촘한 그물로 아버지를 에워싼

생의 비린내가 무한 생성되고

못 박힌 손바닥에 성근 손금이 남은 건

짠내 나는 명령어가 한 생을 깎았다는 증거

막막하게 펼쳐진 수평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고 천이고 만이라서

당신이 명명한 바다는 무한 복제된다

과부하로 충혈된 파도

컵라면 뚜껑에 노을이 미끄러지면

흰 포말의 데이터가 바다를 귀납하고

다시 출력하는 저녁이다

어창엔 펄떡이는 몇 마리의 기호들뿐

우주를 향해 팽창하다

섬의 뿌리로 되돌아간

오늘의 허선은 순서도로 풀 수 없다

흉어 메트릭스 몇 토막 잘라 내

알짜 프로그램으로 만선을 꿈꾸는

내일,

출항은 영원히 미지수다

아버지의 해문만이 닫힐 줄 모른다

[우수상] 등대 공작 시간 / 김맹선

제10회 등대문학상 시상식… 안경희 작가 대상

대상 1편·최우수상 3편·우수상 9편 등 총 13편 시상

 

해양수산부가 주최하고 울산지방해양수산청과 울산항만공사, 한국항로표지기술원이 공동주관한 ‘제10회 등대문학상 공모전’의 시상식이 8일 롯데호텔 울산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수상자 및 가족, 울산해수청장, 울산항만공사 사장, 한국항로표지기술원장, 울산문인협회장 등 약 50명이 참석했다.

 

제10회 등대문학상 공모전에는 총 800편의 작품이 접수돼 대상과 함께 최우수상이 각 분야별(소설, 시/시조, 수필)로 1편씩 총 3편, 우수상은 3편씩 총 9편이 선정돼 상장과 함께 총 상금 2천750만원이 수여됐다.

 

‘고래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한 안경희 작가는 시상식에서 “쉽고 다양한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책이 지닌 유용성과 이로움의 가치 추구를 통해 어려운 시대 많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소설을 쓰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양진문 울산해수청장은 “등대문학상이 바다와 함께 하는 우리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 내길 기대하며, 앞으로도 국내 최고의 해양문학상으로 도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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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의 빛 / 손석만

 

 

1

새벽 등대 빛은 운석의 속도로 마중을 간다 밤새 지친 배들을 향하여,

극의 좌표로, 돌아온 어제의 노을은, 레일을 타고와 만선이 풀어놓은 아침 부두에 어슬렁거린다

날름거리는 바다의 혀 속에서 건져 올린 갈치는 아침빛을 자른다

 

사람들은 심심하지 않을 때까지 바다를 담아 주문을 외운다 어떤 사람은 카멜레온처럼 바다를 사냥한다

 

갈매기가 안개를 밀치고 기웃거린다

 

2

빌딩이나 등대의 빛은 같은 질량이나 소음이 다르다 등대는 홀로 거리에 서 있고,

빌딩은 도시의 바다에 빛을 마구 뿌린다 바다속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물고기처럼, 사람들은 빛 속으로 살기 위해, 죽도록 살도록 죽도록 몰려다닌다

 

등대의 빛으로는 만선이 들어온다 속에는 빌딩 속사람들처럼 바다가 네모로 쌓여있다

 

네모에서 갇힌 사람들, 냉동인간이 아니고 살아서 바다 속 멸치처럼 떼거리로 지하철 해초사이를 헤엄친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으면 바다를 주문하여 오린다

 

항구와 바다, 수평선은 한통속이다 등대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물컵 안 수평선 아래에도 항구와 바다가 있다

 

사람들은 등대를 치켜들고 부라보를 외친다 항구를 마시면서 바다같은 소음을 밀어낸다

이 모두가 바다가 생산한 비린내에서 시작되었다 등대가 보는 앞에서

 

 

 

제9회 등대문학상, 대상에 손석만 작가 ‘등대의 빛’ 선정 - 울산제일일보

2021년도 ‘제9회 등대문학상 공모전’에서 손석만의 시 ‘등대의 빛’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최우수상은 수필 부문에서 지영미의 ‘해무’와 소설 부문에서 신수나의 ‘메르쿠리우스의 달’이

www.uj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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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아버지의 노래 / 최형만

 

 

물아래 물길을 여닫는 밤

통통배는 물때만 되면 바다로 갔다

바짓단까지 양말목을 올린 아버지는

기척도 없이 문턱을 넘으셨다

어린 나는 꿈결 같다 말했고

아버진 만선이 부른 꿈이라 했다

텅 빈 물간에 낯빛이 붉어지는 동안

목숨의 중심까지 맨몸으로 지났다

밍크고래의 주검이 하얗게 밀려든 날

비취색 물빛만 그물코에 꿰다가

공선으로 돌아오신 아버지

손등을 쓸어간 해풍에 바닷새도 떠나고

실금 간 어창은 선잠에 들었다

빈 몸으로 흔들릴 때마다

자줏빛 쓴물을 가슴에 들이는 아버지

은빛 물살을 몰고 온 날치 떼도 없다

그믐처럼 휜 너울에 속내를 게워내고서야

통째로 몸을 여는 바다

해국의 꽃그늘이 엎드릴 때면

몇 개의 계절이 수평선을 넘어갔을까

파랑 찬 바람이 환하게 길을 내자

물꽃을 쥔 아버지가 물을 타고 오신다

뭍으로 온 햇귀에 잠을 깨면

천 길 바깥에서도 풍어가가 들리는 것이다

 

 

 

 

 

 

 

[우수상] 만조의 시간 / 길덕호

 

 

달도 부풀어 올랐다

꽃대는 부러지지 않았다

 

꽃들이 개화하는 시기 

등대 밑에는 캐다 만 조개며 바지락이

피다 만 꽃잎처럼 입술을 오물거린다

 

물때가 들어오면

어머니는 바람 빠진 갯벌을 벗으신다

달은 아직 채 뜨지 않았고

꽃잎은 그대로 숨죽이며 있었다

 

펄 및에 숨었던 꽃잎들

결박당한 몸을 스스로 푸는 시간

바닷물이 마른 몸을 양수로 가득 채우는

생명들 꽃 피는 순간

 

등대도 자신의 몸을 부풀려

먼 바다 위에 별빛으로 띄운다

 

바다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윤슬은 턱밑까지 차올라

이슬로 맺힌다

 

항구는 아랫도리 활짝 열어젖히고

만선의 꽃덤불을 들고 오시는 아버지

부푼 돛의 몸을 풀러 어머니에게 오신다

 

만조의 시간은 만삭의 시간

달빛도 해산을 하고

꽃봉오리 울음을 낳았다

 

 

 

 

 

 

 

 

 

[우수상] 도마 / 김은혜

 

 

 

 

 

 

 

[우수상] 청각 / 정순연

 

김치 속 고명으로 맛들인 향기

잘근잘근 씹어보면 먼 바다가 온다

아버지 질긴 한 생이 푸른 뿔로 돋았을

 

물들고 물 날 때 꽉 잡은 거미손이

한 세기 건너뛰며 가족사를 적어 간다

땀 절은 삭은 작업복 소금꽃 피우며

 

춤사위 계속되는 관객없는 무대에서

거친 숨 몰아쉬며 일몰 앞에 몸을 푼다

밥상 위 싱싱한 말씀 윤슬처럼 눈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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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바다설계사 / 이희경

 

[우수상] 간절곶 / 이양숙

 

 

 

 

[우수상] 울기등대를 찾아왔다 / 최선주

 

 

금물결 꽃잎처럼 한없이 아름다워

포말이 낙원인양 힘줄처럼 당겨지고

고래의 아랫도리엔 예쁜 새끼 두 마리

 

은은한 푸른 바다 유혹에 반했는지

물안개 피는 바다 포경은 녹이 슬고

은은한 통통 장단이 자장가로 들린 듯

 

보름에 한 번씩은 물길이 바뀌어도

사나운 거친 파도 살갗을 쓸어가도

포효도 울부짖음도 가족애로 꽃핀다

 

이제는 고즈넉해 새살림을 차리려나

불빛이 황홀해서 위쪽을 닮아 가나

포말이 금빛이 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우수상] 등대와 등대 사이에 문이 있다 / 김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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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장생포/손석호


어미고래의 아랫배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와
날마다 찾아드는 싱싱한 파도에게 젖을 물리는 장생포
비탈진 골목 꼭대기에 몸뻬바지 입은 꽃무늬 등대 앉아있다
한동안 찾아오지 않던 고래를 기다리듯
지팡이로 등대 몸통을 지탱한 채 
잦감처럼 비워진 젖무덤을 바다 쪽으로 축 늘어뜨리고 있다
먼 바다로 나간 아비가 돌아오지 않던 몇 해
새끼 고래처럼 매달리던 자식 때문에
리어카에서 삶은 고래 고깃덩이를 토막 내며 살았다는 그녀
언젠가 해체되던 어미고래의 말간 눈을 본 뒤로 
누군가 떠올라 장사를 접었다며
낡은 닻줄같이 늘어진 팔을 휘젓는다
널어둔 미역에서 떨어지던 바닷물 멎고
고래박물관 너머, 풀어헤친 노을 저고리 사이로 붉은 젖이 비치자
고래 숨구멍처럼 벌렁거리며 밀물을 몰아오고 
젖이 불듯 금세 팽팽해지는 선착장
난바다의 뱃속이 왁자하게 쏟아진 부두 저편 난간에
어선을 따라온 해풍에게 무언가 중얼거리며
저무는 그녀의 입술
어선이 젖을 빨듯 부두를 물고 출렁일 때
새끼 고래를 업은 듯 구부리며
다시 돌아온 고래처럼 아비도 돌아올 거라고
고래가 오래된 물길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처럼 긴 항로의 어디쯤에서
장생포를 얘기하고 있을 거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다.

 

 

 

[우수상] 찬란한 / 이수진

 

[우수상] 피어라, 골리앗! / 우종율

 

[우수상] 바다와 재계약하다 / 최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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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소금꽃의 시간 / 김형미

 

계절을 앓는 꽃들은 소금기 가득한 시간을 머금고 있다

 

빈 가슴에 가두고 졸여야 했던 것들

 

썰물을 따라잡지 못해 조바심치던 날들이 지나갔다

 

뒤척일 때마다 찰랑이는 들물에 하루하루 젊음처럼 위태로웠다

 

흐린 날이 많아서였을까 몇 방울 흩뿌리는 소나기에도 녹아내리던 아버지의 허술한 결정지엔 며칠째 아무런 낌새가 없다

 

마른 시간의 뼈마디에서만 하얗게 만개하는, 꽃

 

여름 동안, 쇠잔한 어깨로 읽어가던 바닥경전을 지니고 있었으니 발끝을 세우던 염부의 기도는 경계를 지우는 흰빛의 아득함이 아니었다

 

더는 어떤 물기도 흘러나오지 않을 것 같은 검붉은 얼굴에 하얀 기다림이 서린다

 

제 몸의 물을 다 쏟아내고서야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아버지

 

마지막 순간에 남긴 빛의 눈물 같은 순백의 결정체 앞에

 

나의 각오는 결정되었다

 

마른 뼈들이 맞추어지듯 설산이 일어서고 있다

 

 

 



[우수상] 넙치의 잠 / 김영욱


쓰러져 누운 할머니의 뒤통수가 납작하다


눈꺼풀도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하얀 시트 위에서 거품만 뻐금거리는 윤달,


잠녀의 치어들이 꿈틀거리는 눈동자 위에

갯바위 따개비 소라처럼 들러붙은 저승꽃이 붉게

피어나는 깊은 바다의 넙적 물고기


세월의 수압을 등줄기에 새겨 넣고

화석처럼 굳어버린 반쪽 몸둥이, 외눈박이의

퇴화된 한 쪽 눈처럼 백태 낀 봄날,


추자 횟집 앞바다가 뿌연 물방울로

몸서리치고 있다


산소통에 매달린 목숨이

고생대 갑주어처럼

검푸른 우주의 단단한 리듬으로

어둠을 받아들이고 있다


횟집 수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깨어나지 않을 긴 잠에 든 오래된 잠녀,


꿈의 부쳑조차 부레를 잃고

가장 깊숙한 생시의 펄로 빠져드는지,

이따금 성한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수억 년 전 추억으로 가라앉고 있다


말해 봐요, 할머니,

그렇게 등짝 떼지 않는 건

바다에 빠뜨린 젊은 씨알을 줍기 위해선가요,

뭍의 나날이 이 꼴 저 꼴 눈꼴 시려

눈 감아버린 건가요, 말해 봐요, 할머니


머잖아 너울거리는 레이더를 꺼버리고

물고기자리로 돌아갈 잠녀, 물속에 잠들어 있다


할머니 뒤통수가 넙치처럼 납작하다






[우수상] 들망어업 / 유종인

- 숭어떼 벼랑 관측소


개복숭아꽃들이 산벼랑에서 파도소리를 듣는다

벼랑 아래 들린 복숭아 가지 하나는

아찔하지도 않은가 벼룻길 파도소리를

진분홍 꽃잠의 허공 베개로 삼고 있다


한낮 졸음에 결린 눈까풀 사이로

숭어떼가 오수와 각성 사이로 빠져나갈까

눈을 부비는 망보기는 막다른 벼랑의 척후병,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숭어떼들이란

한 마리가 곧 수 백마리의 군중심리로 선회한다

집에 두고온 치매 노모의 배변 걱정도

전방에 군 뱇;된 아들 생각도

개복숭아나무 뿌리너겁에 잠시 묶어둔 채

망잡이의 눈초리는 삼엄한 전시를 방불하는 적막 속이다


고요하고 소슬한 파란의 기척이 오기까지

바다 길목에 쳐둔 그물은 물비늘 하나 뜨지 못하는 기다림,

오지 않는 것은 언젠가 옥야 말 것이라는

천혜의 요새에 납작 엎드린 망잡이의 등짝 위로

복숭아 꽃잎이 무등을 태워줘요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숭어 속살에 복숭아 과육처럼 차오를 단맛은

쓴 침이 고이는 감시의 주리를 틀고 틀어야 오는가


한순간 푸른 물빛이 검푸른 빛으로 생색을 낼 때

짜릿한 전율이 몸을 훑는다 망잡이의 무전기가 말문이 트이고

수백의 숭어떼를 하늘로 헹가래치듯 잡아올릴 때

검푸른 물빛은 은빛의 파닥거리는 꽃숭어리들로

잠시 승천의 환호성을 들망 그물 위에 피워올린다

길목에 걸린 숭어떼들의 눈부신 개화,

저 숭어 꽃들의 비린 향기는 어부의 가슴에 벅차오른다


 






[우수상] 소라게의 집 / 조주안


갯벌은 얼핏 낙원과 가깝지만 파도가 깍지 못한 뼈들로 꾸며진 고원입니다

지도에 새겨지지 못한 방들로 가득한 하룻밤의 도시입니다

나는 껍데기들에게 세 들어 장례를 치러주는 오래된 악시입니다 나는 파도소리에 숨겨진 맑은 음악을 찾아 늘 깜박이를 켜듯 귀를 열고 터울 좋은 집들을 응시하죠


껍데기 속엔 뱃고동 소리처럼 비어있는 깊이만큼 감상적인 여정이 담겨있죠 나는 그 여정들을 읽으며 감정을 가다듬고 미지의 세계를 상상합니다 시간이 흘러 다니기를 좋아하듯 나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때마다 늘 시선은 바닥에 두어야 합니다 파도 속에서 떠밀려오는 것들과 떠밀려가는 것들을 능숙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집을 떠나보내는 일은 늘 여운이 남습니다 나는 새로운 집을 얻을 때마다 지붕 없는 해변의 방들을 생각합니다 살기 위해선 집이 필요하지만 방은 언제든지 만들고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배웠습니다 숨구멍이 있다는 건, 그곳에 방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집들의 내력이 쌓일 때마다 내 몸에도 울림통처럼 이름 모를 방 하나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매일 밤, 바다에 비친 텅 빈 달이 울음을 뱉으며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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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등대 문학상> 시부문 최우수 - 조수일

 

염장이 아버지


조수일



갯가의 지친 오후가 바람에 쓰러진 후 아버지는 이름 있는 모든 지느러미를 소금에 절여 냈다
아가미는 아가미대로
창란은 창란대로
부위별로 도려낸 자리
왕소금을 한 움큼씩 되박아
고통스러움을 향기로 추출하고 있다


상처 자리에 환한 영혼을 켜는 염장이


오늘은 풀치 떼가 가득하다
은빛 꼬리지느러미의 소란스런 비린내를
건넌방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날개를 읽어 캄캄하던 내 안이 분주하다
푸른 곰피자락이 너울거리는 홑이불을 배에 감고 문가로 기어간다
빳빳한 비닐 앞치마를 두른 채
작업을 서두르는 아버지 어깨에 잔잔한 파동이 인다
지느러미의 촉수 하나 다치지 않으려는
손놀림에 안도한 풀치 떼가
나 몰래 지난 세월을 뱉어낸다


아버지의 지문 안으로 녹아든 소금물
삶의 경계를 허물며 스러지고


풀,풀,풀잎처럼 말라 가벼워진 육신으로
하늘을 날게 될 풀치 떼
어둠만 드나들던 내 겨드랑이에
어느새 푸른 지느러미가 돋는다


기장항 입구,
한 많은 목숨처럼 바람에게 세월을 주고
소금으로 웃음을 절여내는 아버지
그물망처럼 촘촘히 시간을 엮고 있다

 

//                                                 

 

출처 : 고성문학회
글쓴이 : 박봉준 원글보기
메모 :

[우수상] 해안선에 대하여 / 김태수

해안선은 
아버지가 마음먹은 대로
묶을 수 있고
풀 수 있고
당길 수 있는
줄이었다

해안선이 아니었다면
목선은 난바다로 떠내려갔을 것이고
주복어장은 파도에 헝클어졌을 것이고
물고기는 끝없이 표류했을 것이고
미역은 널어 말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해안선이 튼실한 줄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섬마을이 허물어지자
산의 발톱에도
바다의 이빨에도
끄덕없던 해안선은 그만 없어지고
아버지는 생업을 접고 말았다

해안선은 
떠돌이가 되어
아버지 꿈자리에 맴돌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붙잡지 못하고 떠나셨






[우수상] 서해에서 / 진서윤

비어있는 것들에게도 당도할 기슭이 있구나
한랭전선이 통과한 서쪽 바다
북서풍의 물살에 빈 형체들이 밀려온 방파제를 본다
텅 빈 깡통과 플라스틱 용기 안에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가득 들어 있다
망망대해를 건너온 저 빈 여정들엔
모두 이국의 문자가 적혀 있다
가벼운 방향으로 밀려
혹은, 밀려간 어느 순정이
당신의 동쪽이었을까

시간은 둥둥 떠서 흘러오는 것일까
깊은 뭉치의 물길이 밀려와
얇은 파도의 끝자락으로 쌓이는 해안
소리만 요란한 부유물이다
바다가 혼잣말을 쌓고 있다
멀리 앓고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물 위에 무덤을 파는 이국의 문자들
익사체에 시작점 892바코드가 일렁인다
끊임없이 울렁울렁하며
서해의 모세혈관을 통제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가작] 간절곶 등대 / 조경섭

1
동해의 명치끝에 간짓대 자리가 있다

낮달이 발광기 안으로 빨려들어 간 어스름 녘
사내는 노을이 휘도는 나선형 계단을 오른다
등명기에 덮인 무명천을 걷어낸 후
급물살을 타는 곳까지 빛의 경계를 구획하기 위해
손때 묻은 항로표지를 펼친다

물의 절해고도 넘어오는 뱃고동소리 따라
불쑥불쑥 나타나는 해무가 불안을 가중시킬 때도
얇게 퇴적되는 파도의 숨소리조차 놓친 적이 없다
어떤 배들은 어창 속에
별자리와 연결된 허공을 훔쳐 달아나려 했지만
사내의 정교한 탐색에 걸려들었다
수명을 다해가는 반딧불이 빛까지도 재생해서 쓰는
그는 빛의 명인
파도 속에 터지지 않은 번개를 숨겨놓아도
점멸의 발원지인 자신의 등대에서 지정된 항로만을 터준다

2
그 옛날 고래를 쫓던 포경선이
이곳의 횃불 수신호에 따라 태평양으로 월경하고 돌아와
닿을 수 없는 불모지를 해도에 그려 넣었을 것이다
간절곶 앞바다에
1백80만 캔들의 불빛이 90해리 밖까지 비추는 지금,
멀리 유조선이 지나가고 컨테이너선이 뒤따른다
등대 안에서 사라지는 항로는 항시 비장했고
잠 속까지 깨어있는 사내는
낯익은 바다 위로 하늘 성좌를 풀어헤친다

3
키를리안 사진기처럼
우문의 바닷속에서 현답의 뱃길을 찾아내는 등대
어둠의 한복판으로 날아든 사내가
물과 허공만 그려 넣은 해도를 펼치고
퇴색하지 않는 야광으로 바다를 단단히 고정한다

어둠을 파고들어 빛을 꺼내는 간절곶에서는
수만의 반딧불이가 젖은 날개를 털고 있다





[가작] 철렁, 푸른 치맛자락 휘날리고 / 박지한

풀렁이는 해 조각을 건져 올리고
불면의 닻을 올린다
쏟아지는 아가미들 뒷 켠에 펄럭이는 도도한 물길

한 낮 땡볕에 와 닿는
저 밧줄의 윈치 감아올리고
밤새 지새웠던
불멸의 포세이돈이여, 길을 열어라

지난 염병할 그리움에다가
낙담마저 전신되는 쇄빙선의 침몰, 풍문에
지흔 따윈 백파에 내던지고
저 단단한 선수를 겨냥하여
강건한 깃대에도 나는 서툴게 튕겨났다
분분한 어깨에, 멈출 수 없는
고독보다 깊은 여름밤이 낯설어졌고
저 멀리 낮게 부상하는 용오름,
황량한 곳을 헤치고
원양의 발목을 탕진한다

달아나는 새떼들, 붉게 차오르고
긴박했던 순간을
연체하는 팽팽한 피로 속에

수백만 톤의 해무를 가르며
쇳덩이 철렁, 푸른 치맛자락 휘날린다






[가작] 낙지의 생애 또는 슬픔에 / 전길중

1
덥석 물은 주낙에 꿰어 몸부림치는
타우린의 슬픔이 소주 한 잔에 젖을 때
위로한 어떤 변명의 말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우수와 낭만을 얘기하며 웃었고
그런 날은 비가 내렸다
너는 본능적으로 흡반을 밀착시켜 버둥댔지만
꼬들꼬들한 질감을 용서받지 못했다

2
일각의 목숨이 날 선 칼에 저항한다
핏물 배인 도마에서 통통 튀는 울음으로
아무리 외쳐대도 푸른 바다는 오지 않았다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고독이 핏줄을 타고
맥없이 빠져나간다
새끼들 위해 제 몸 내놓는 알레고리가
질근질근 씹힌다
별을 키우던 갯벌이 가물가물하다

3
역류성 식도염을 앓는 바다가
태풍이 물어온 소식에 잠을 설친다
불길한 예감이 갯벌을 덮는다
어둠을 젓는 가늘고 긴 손의 춤사위를
해석하려 한 것이 참으로 어리석었다
발가벗은 행위예술가의 슬픔이 배어있다고
목숨을 건 마지막 걸작품이었다고
새삼스레 수선 떨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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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등대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김정혜 김성배

 

■대상
그 섬이 불렀다 / 김정혜

 


욕지댁은 살아있을까?

욕지댁 딸이라 놀리던 언니들은 엄마 사십 구제 날

전쟁의 막바지 유복자 가슴에 묻고 뭍으로 온 오십년 전 그녀를 꺼냈다

세끼 밥과 나만 챙겨 업고 매일 용두산에 올라 수평선 바라봤다 했다

수평선 너머로 욕지댁은 가고 욕지댁 딸로 남은 나는

다리 밑에 주워온 아이보다 더 싫었던 말에 참 많이 울었다

약한 엄마 대신 가슴 열어준 그녀가 숨 쉴지 모를 그 섬이 불렀다

이틀 동안 섬 안길 걸으며 동그란 등으로 생선 말리며

아직도 삶의 지문 새기는 욕지댁들에게

부산 보수동 살은 적 있냐고 막연히 물었다

고메 밖에 심을 게 없어 뭍에 간적 있지만 금세 돌아왔다 했다

욕지 구석구석 함께한 남편이 파도에 쓸리고 쓸려

하염없이 동그래져가는 돌들의 소리 들으며

친정집 그녀들과 다른 나의 기질 이제 알았다 했다

뼈와 살을 돋우게 해준 젖줄이 덤으로 준 섬살이의 생명력을

 

 

 

 


■우수상

파도가 푸른 타자기를 치다 / 김성배

 


내 심연에 푸른 타자기 한 채 살고 있다
탁, 탁, 탁
사부자기 맨발의 유채꽃이 자진모리로 나서서
서성이던 파도가 굿거리장단 흥얼거리는
진지리길을 따른다
옷깃을 여미던 등대만 바다를
먹끈의 어둠으로 적어나가고 있다
참꽃 각질이 이는 하늘이 시든다
질 줄 아는 것이 피는 법도 안다고
입술 다 닳도록 파도가 바위에 쐐기문자를 새긴다
곰삭은 노을은 몸이 단 수평선에
이백여섯 개 뼈가 뒤틀리는
절정의 죽방렴을 쳐 놓는다
아직도 바람을 헤메던
나의 바다를 이렇게 엮어내기가 힘겨울까
파란 여백 위에 몸을 부려놓지만
숨찬 파도 얼룩 같은 활자판만 달그락거린다
질박한 바다를 이고 살아간다는 건
갈매기 울음에 절여진 이름 석 자에
물음표와 마침표의 투망을 던져놓는 일이다
'마침표를 찍는다고 끝은 아니다'
만년을 녹슬지 않는 질긴 파도소리가
동대만을 가득 메운다
하루해의 주름 속에서 지는 것들을 위한
맛있는 해거름을 바래하기로 한다
맛조개, 우럭조개, 불통조개, 바지락, 쏙……
무꽃 핀 갯벌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저녁은 날것으로 잘 살아있다

 

 

 

 

 

시/시조부문 심사평

 

총 861편 가운데 예심을 거쳐 결선에 오른 작품은 70편이었다.
70편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70편의 경향을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바다나 등대를 소재로 한 시인들의 사물에 대한 태도를 비유적인 기법을 통하여 형상화한 작품들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바다 체험을 바탕으로 개인의 삶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는 경향이 다소 있었다. 그리고 바다를 글쓰기와 연결시켜 형상화하는 작품들도 다소 있었다.
입상작 8편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시 속에 자신의 삶이나 살아온 생애가 진솔하게 녹아 있는 <그 섬이 불렀다>를 시 부문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골랐다. 동일인의 작품인 <어머니의 바다>도 수작이었으나 한 편을 고른다면 <그 섬이 불렀다>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의 삶을 객관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개연성을 획득한 솜씨가 뛰어났다. 특히 시적 인물인 ‘욕지댁’의 강인한 삶은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국의 전통적인 여인상 내지 어머니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 심사위원 전원이 금년 등대문학상의 대상으로 결정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우수상 <파도가 푸른 타자기를 치다>는 구체적 공간을 감각화하고,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는 솜씨가 탁월하였다. 그러나 삶의 진솔한 면에서 <그 섬이 불렀다>에 밀렸다. 또 다른 우수상 <등대를 노래하다>는 긴 호흡으로 다층적인 주제를 형상화하는 능력은 돋보였으나 군데군데 버렸으면 하는 시어들과 표현들이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가작 <몇 층의 바다>, <바다 일기장>, <홍어>, <날치의 비행술>, <바다의 비밀 듣는다>도 모두 수준급이었으며, 바다체험과 사물들을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는 솜씨는 뛰어났다. 그러나, 시인 자신의 진실한 삶을 이입시키는 데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
작품들이 모두 해양문학상으로서의 바다체험이 다이나믹한 이미지들로 점철되어야 한다
는 점에서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 앞으로 해양과 바다체험이 녹아 있는 대작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시/시조 본심 심사위원 양 왕 용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메모 :


[우수상] 등대를 노래하다 /조우리

1
난 작은 옷 조각을 아직도 입어요

2
녹말냄새 나는 선착장 달이 차자 무릎 위 달의 어감은 베갯잇 같았다
먼데 별 하나가 붉은 실화처럼 뜨거웠다
영혼의 깊은 아가미로 어둠은 수면에 묵었다
허공의 혼혈아처럼 뭍섬들도 서성댔다
흰 달이 여기 흙의 마음으로 바다에 흘러왔다
천천히 틈바구니란 말씀 하나가 뭍에서 내려왔다 그때 등대는 온다
파도는 고요를 씌우고 가는 물푸레에 실렸다
조용히 해안열차 달리는 밤하늘소리 듣다가 기찻길 속 할머님의 기도가 그리우면
거기 내가 첫 들고 왔던 운율을 부르고 싶다
세상 그리워지는 것들 가운데 가장 사무치게 떠오르는 것을 알고
그런 우리 마음가짐이 녹지 않았을 단문 울리다가
그 어느 날 누군가의 첫 굶주림처럼 하늘도 세상 그림에 빈 가슴 먹먹하던 날,
뜨거운 빛에 풀리는 밤의 음악들 바다 곁에 들려주고 싶다

3
경건한 별빛이 무릎을 꺾으면 그제야 밤의 사제가 촛대에 불을 밝힌다
어둠은 춥고 가늘고 어둠은 마치 깊은 도읍지의 여인 같다
내 영혼의 바다는 지금 곡선의 어머니다 간절한 우주 하나가 환절기로 밀려온다
누구든지 이 물 항아리 같은 파도를 건널 때마다 안과 밖의 지도가 안개에 깔렸다
깊숙이 어둠에 갇혀 두리번거리게 되는 생화다, 바다의 어조란
칙칙하고 ㅌ\캄캄한 선술집에서 한 곳을 응시하며 등을 띄우고 싶은 작은 욕망이다
손끝의 물안개가 포구로 떨어진다 가만히 무씨 하나 지켜주고 싶었다
 과분한 그대 사랑이 중력에 잠길지라도 가장 맑은 숨소리로 손등 위에 씻겨주고 싶은 밤
고단한 몸으로 질주하던 모든 것들이 오늘 순례지의 객이다
등대는 미열의 꿈과 같은 안식을 꿈꾼다 나는 오랜 바다의 풍습에 내일을 헌화하고 싶다

4
조카의 결혼식 전날 아버지의 승용차 타이어가 찢어졌다
가족은 온통 자꾸 거구로 후진했다
중고타이어 백화점엔 찢어진 바퀴 뿐, 바퀴가 굴러갔던 그 자리
볼트 풀고 서서히 팽팽했던 마찰력을 잠재운다 고무에 빛나는 가시들이 등뼈처럼 뚫렸다
마지막 생의 바퀴라며 큰일 날 뻔 했단다 바퀴가 망가지던 날 바다의 노래를 불렀다
새벽녘 아버지는 그렇게 제 자신의 지나날을 잊고 서간체로 너울거린다
혀끝에 찍어보았던 숱한 얼굴들 떠올려보며 다시 먹빛 바다를 묻힌다
바다의 시간은 잃어버린 세계와 열려 있다
어지러운 사연들을 빛으로 조금씩 물들일 때마다 파도는 잔잔해졌다
가족은 투박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마음처럼 애틋하다
얼굴이 조금씩 닳아가는 환영이 있다
딱딱하거나 물렁물렁한 열꽃하나 슬픔이 자지러진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처럼 먼발치에서 등대는 내 마음의 친구이자 아버지다






[가작] 몇 층의 바다 / 송향란

미처 깨어나지 못한 젖은 시간을
겹겹이 몸에 두른 건어물집
바다의 무늬만 남은 오래된 상처를 꺼내놓고
돌아누운 음습한 시간을 달래고 있다
수족관 속 작은 바다를 헤집으며
습한 공기를 밀어내는 질펀한 그늘이
기웃거리는 창에 매달려 있다
낯익은 풍경 속에 잠긴 바다
건어물집 간판에 실타래처럼 뒤엉킨다
나른한 침묵을 깨고
얼어붙은 수족관을 들여다본다
먼 바다를 그리는
유리벽 속에 갇힌 아가미들은
지금 안거 중이다
거친 물결을 뚝뚝 썰며
출렁거리는 파도를 게워내는,
질주하는 욕망을 잠시 내려놓는다
푸른 이마를 감춘 몇 층의 바다
오래 피멍든 마음을
낯선 시간 밖으로 밀어 낸다
붉은 피 낭자한 도마 위로
눈 부릅뜬 성난 바다가
거친 지느머리를 쏟아 낸다






[가작] 바다 일기장 / 임은주

바다를 음독하는 잠긴 하늘이 열렸다
바다는 해묵은 일기장
바다에는 잃어버린 내가 살고 있다

낙싯대 없이 바다를 꺼내 들었다
파도를 넘길 때마다 헤엄치는 살 오른 문장들
하늘을 후줄근하게 물들였다

방치해 두었던 무제의 일기장
소산한 낱말들이 한 곳으로 응집하고 있다
문자의 각을 세우고 제목을 반듯하게 추켜세웠다

아무렇게나 방생한 치어들
의문의 바다를 하염없이 떠돌아다녔었다
두 손 담그고 바다를 휘휘 저였다
하늘에서 등 푸른 성어가 파드닥거렸다
엄마의 푸근한 손이 시린 배를 어루만졌다

이마위로 스르륵 보름달이 번져왔다
광휘한 모서리가 행복하게 쿡쿡 찔렀다

바다를 꺼내어 읽는 순간
나는 온통 시푸른 하늘이 되어 갔다
바다에는 잃어버린 내가 살고 있다






[가작] 홍어 / 김대성

밖은 허전하고 안은 비좁았다
불빛이 닿을 수 없는 곳
눈은 내렸으나 눈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 살았다
바다에 나가야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파도의 왼손, 왼팔, 외다리, 한쪽 눈으로 밀려왔다
두엄 속에서 죽은 사내들을 꺼냈다
홍어의 검은 향속으로 사내들이 돌아오고
다시 먼 객지로 떠났다
혼자 마을을 돌아다니는 등대 빛을 따라
낯선 사내들이 도착했다
몇 날 며칠 홍어를 삼키며 바다에 나가 죽는 법을 배웠다
발끝에 걸어온 길들을 매달았다
술값과 방세 대신 바다표범을 생각하는 동안
이불 홑청을 뜯어 수의를 짓고
홍어 애를 삼키며 제단을 만들었다
마을엔 눈은 또 내렸으나 사내들은 다시
파도를 보지 않았다






[가작] 날치의 비행술 / 김재근

파도의 숨소리로 수면은 출렁이고
물고기에게 입술을 그려주면
내게도 날개가 생긴다
옆구리를 찢고나온 단단한 날개의 힘으로 
이제 하늘에 오르겠다

심해에 들어 아가미가 부서져도
꿈속 부레가 어두워 날개가 찢어져도

바다가 환해질 때까지
파도가 끓어오를 때까지

한낮 태양의 불꽃을 삼키며 하늘을 난다
햇빛에 그을린 소금의 힘일까
살갗을 옥죄는 수압의 공포를 견디며
바닥을 치며 기포를 밀며
꿈이 떠오를 때까지
날치는 수면을 박차고 솟구친다

연약한 아가미로는 천둥과 번개를 이길 수 없다
흐릿한 눈동자로는 짐승의 울음을 들을 수 없다
원죄의 컴컴한 물속에서 부레마저 잃을 수 없다

태초의 힘으로 빛의 음성을
수면에 산란하며 체위를 바꾼다
태풍의 성난 순간을 부수며
저물지 않는 백야의 허공을 위해
나는 온몸으로 바다를 노래한다

바람에 눈동자를 씻으며
소금을 집어삼킨 아가미의 힘으로
눈동자에 고인 태양의 금빛 힘으로
온몸에 물갈퀴를 문신처럼 박으며
날개가 연주하는 음악으로
푸른 바다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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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등대의 재발견 / 한승엽

 

물결의 얼굴이 수십 개로 보이지만

겉돌지 않는 불빛처럼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면

이미 등대가 바다의 손금을 읽었다는 증거이리라

 

물결 속에 온 마음을 맡겨

미끄러지는 생을 단숨에 휘어잡는

저 예리하고 든직한 눈썰미가 뭇시선들을 강타했다면

지금쯤 물결의 혼란스러움은 좀 누그러졌을까

 

뱃길을 닦는 노동으로 어깨가 뻐근할 때까지

등대의 눈은 붉어진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온전히 잠들 수 없는 몸짓으로 뒤척이고 있다

 

새삼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의식이 가라앉았다가 한 순간 떠오르는 것처럼

불끈 솟은 몸집이 전부가 아니다

더 빠르게 밀려오는 것들을 마법처럼 다루느라

자신도 모르게 구도자의 자세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설령 어느 날 빛을 잃어버려 목 놓아 울고 싶은

물결 위에서도 꼼짝없이 서 있을 뜨거운 눈빛,

오늘도 타고난 집중력으로

칠흑의 밤바다를 가로질러 꽃 같은 영혼에게로 향한다

 

아슬아슬한 자리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고래심줄 같은 등대가 바로 당신의 등 뒤에 있다.

 

 

 

 

[상] 책 읽는 등대 / 김미숙

- 화암추 등대

 

등대는 독서광이다

낮이나 밤이나 바다를 읽는다

은사시 나뭇잎처럼 반짝이는 아침 햇살아래

멍게, 해삼, 전복, 소라를 채취하는

해녀들의 숨비 소리와

저녁노을 속 나뭇잎 같이 작은 통통배 위

노부부가 힘겹게 그물을 올리고 있는 모습과

물살을 가르며 날쌔게 자나가는

돌고래 떼의 웃음소리를 읽는 등대

양떼구름을 몰고 가는 늑대바람을 읽다가

월광소나타의 피아노 소리 같은 달빛과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된 신화를 읽기도 해

거센 파도와 비바람 헤치며 돌아오는

어선들을 읽을 때 남모르게 숙연해지기도 하지

바람이 거칠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서진처럼 눌러 놓은 섬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바다를 읽다가, 바다에 반해, 시인이 되어버린,

그가 바다시집을 출판했다

시인의 이름은 화암추등대

오늘도 길이 남을 시 한편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다

 

 

 

 

 

 

 

[가작] 등대의 염원 / 김창석

 

뭍으로 오르려다 추락하며 스러진다

파도의 손 사례에 차갑게 눈을 뜨면

해조음 환청에 떨며 수평선에 기대서고

 

네 안부 침잠하다 부표로 다시 뜨고

흔들리며 서 있었을 오랜 목마름조차

먼 바다 물결너머로 되돌리며 서 있다

 

수천 년 지켜온 섬 파도에 멍들어도

어둠 속 어깨 짚고 올라온 꽃대처럼

여러 날 요통 참으며 조바심 깁고 앉아

 

경계병의 눈처럼 발아래 굽어보며

가슴속에 묻어 뒀던 오래 된 비원처럼

익명의 횃불이 되어 널 위해 타고 싶다

 

 

 

 

 

 

 

[가작] 청사포의 쌍둥이 등대 / 서상규

 

 

청사포를 밝힌 청사초롱인가

좌심실 우심방으로 나란히 서 있는

빨강 등대와 하얀 등대가

심장 박동으로 불빛을 퍼트린다

동백꽃 피듯 부풀어 오른 동맥을 

새볽게 번진 윤슬로 뻗쳐

아름다운 언약의 항로를 연다

두근거리는 가슴에서 공명하는

생명의 벅찬 선율이

실고추와 실파 같은 음계를 일궈

거친 파랑을 잔물결로 잠재운다

심장을 연주하는 깊은 울림이

짙은 안개로 덮인 심해에

은빛 파장으로 물길을 틔운다

어둠을 혈청의 반짝임으로 깨우며

두 몸을 한 쌍으로 엮은 불빛이

전생의 물고기인 양 유영한다

수평선에 경계로 맞닿은 허공 속

쌍둥이 별자리가 떠오른다

심장의 동력이 뻗어나간 소실점에

푸른 별을 켜든 청사초롱으로

좌심실 우심방이 나란히 빛난다

청사포에서 첫사랑을 이룬

빨강 등대와 하얀 등대가

새날로 둥근 해를 띄워 올린다

 

 

 

 

 

 

[가작] 내 오랜 습관, 야행(夜行) / 심근섭

 

외눈박이에 야행인 나는

오늘밤도 깜빡깜빡

점멸의 눈빛을 보낸다

 

여기가 바로

안전한 대피소라고,

지금 내가 비상구라고

끊임없이 눈짓을 한다

 

낮이면 물컹한 아픔에 젖어

턱 괴고 잠을 자고

밤이면 들메끈 고챠 메는

내 오랜 야행의 습성

 

나를 믿고 칠흑 속을 오가는

시선들 담보로 잡고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저 수평선으로 달려 나간다

갈 듯 나앉는

수평선 너머로 이것을 내 할일이라 믿는 게

내 오랜 야행의 버릇이다

속 깊이 접어둔 말들

바다에 환하게 꽂아보는 게

단 하나의 기쁨이다

 

 

 

 

 

 

 

[가작] 등대의 사랑법 / 우동식

 

선돌처럼, 빈 배 한 척 묶어두고

바람에 퉁기는 벅수로 섰다

빙하기 이후 팔천년을

음색고운 공명을 울리는 가문비나무여서

느리게 자랐으나 거칠어진 껍질 속에

질 부드럽고 결 총총한 사랑은

눈멀고 귀 닳았으나

바다를 향해

뒤척이는 바람을 잠재운다

님의 바다는 푸르고 잔잔해서

더 넓고 깊은 곳으로 출항을 하지만,

궂은 날 파도 일고 해무 잔뜩 끼어

온몸 칭칭 동여 메어 질 때 느끼

이놈의 사랑법은

느슨해지거나 조이거나 흔들리면서

매듭을 짓기도 하고 풀기도하면서

두 심장을 직조하는 질긴 끈,

매어 있지 않은 사랑도 없다

풀어두지 않는 사랑도 없다

쉬이 마음 풀어 비운

그 자리에 등대로 서 있는 것이다

 

 

 

 

 

 

 

 

[가작] 아버지의 등대 / 이동우

 

마당 백열등 갈아 끼우자, 번쩍

500와트의 등명기 빛이 내게로 쏟아진다

마당 깊은 집으로 이사온 후

줄곧 아버지가 갈던 등

 

스친 바람에 바지랑대가 힘없이 쓰러지던 밤

젊어서부터 등대지기로

섬 끝자락에서 파도를 모으던 아버지는

속이 좋지 않다며 병원에 간 뒤

날이 밝고 백열등이 꺼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수술대를 집어삼킬 듯 덤비는 너울과

수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마취에서 제때 깨지 못한 아버지는

깜박이는 등댓불을 찾아 한참을

선미도 앞바다를 헤맸다

수술실 무영등이 산란한 빛은 바다 위에서 잠시

은비늘처럼 반짝였을 뿐 이내 심해로 사라지고

 

병실 오후를 조금씩 갉아 먹는 투병과 간병

만조가 되고 폭우가 흐르면

하늘에서 바다로 물길이 이어져

수평선은 무의미해지고

병상마다 사연들은 가득해도

모두가 침묵하는 중환자실

아픔을 숨기기 위해 신음을 삼키는 자정께

팽팽한 긴장감은 누군가의 비명에 깨지고

그제야 눈치 보던 다른 아픔들이

전염된 듯 제 소리를 낸다

병을 달래듯 병명을 되뇌며 수발드는 가족들

 

생일 때면 한 번씩 전화하던 아버지의 목소리에선

갯내음이 묻어났고 등롱 주위로 모여든 갈매기들은

끼룩끼룩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등대는 빛도 어둠도 배도 파도도

모두가 아우러지는 곳이지,

헐벗은 바위 위의 삭막한 탑이 아니라던 아버지

 

아버지의 암 그림자를 업고 돌아온 저녁

대문을 열자 마당 백열등이 나를 안내한다

비 내려 질척이는 앞뜰에 다문다문 놓인 돌들

아버지의 등대가 비춘 길을 따라 걸어온 날들

통통배 한 척이 등댓불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온다

 

 

 

 

 

 

 

[가작] 등대의 시원(始原) / 장인

 

등대의 시원(始原)

바다는 늘 갓 태어난 간난아이처럼 온몸이 주름 투성이였다.

뱃길따라 또 다른 주름이 접히고 펴졌다.

파도의 써레질.

뒤파도가 앞파도를 가르고 접고 펼쳐진다.

경계 너머의 탈영토, 아장스망(Agencement), 다중체, 리좀(Rhizome).

출렁임은 주름이다.

전율, 출렁임, 감동, 흐느낌. 주름은 무늬. 무늬는 결.

바위도, 해변도, 절벽도 무늬와 결로 가득 차 있다.

곡률이다, 연속체의 미로다.

파도는 60억년을 쉬지 않고 출렁이고 있다.

지구의 생성과 함께 했다.

그리하여 시간은 파도처럼 흐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아직도 수평선 너머에서 밀려오고 있는 중이다.

등대가 파도의 얼룩을 덧칠하고 지우고 또 덧칠한다.

극한의 소진 상태로 밀고 나아가기 위한 몸짓일까?

그리하여 파도보다 더 큰 이유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잣대로는 그 이유를 알기 어려운 파도의 몸짓.

부표의 몸살보다 더 아픈 몸짓이 어디 있으랴.

바닷가 모래사장은 잠시 쓰러져 있기에 아주 좋은 곳.

사람들과 소주병이 나란히 누워 있는 곳.

이곳이 등대가 있어야 할 시원(始原)이구나.

 

 

 

 

 

 

 

 

[가작] 하얀 등대섬 / 정연희

 

 

 

하얀 등대섬

저구에서 소매물도로 가는

뱃길을 따라가다 보면

모양대로 지어진 이름들,

긴 뱀처럼 생겼다는 장사도

말의 형상을 지닌 마미도

편하게 누워있는 소 모양의 어우도

 

‘멀고 먼 바다의 섬’ 소매물도로 가는 길에

종이배처럼 떠있는 섬들은

뿌리 없이 둥둥 떠 있지만

섬마다 하얀 등대를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섬 이름만큼이나 생업이 소박한

어부의 조상의 조상을 지켜낸 하얀 등대,

아들은 촘촘한 그물로 멸치를 잡고

어머니는 빛나는 가을햇살에 등줄기 푸른 멸치를 말리고 있다

그물을 깁고 있는 아버지의 등이

오늘따라 더 둥글다

 

하얀 등대가 살리는 가족이다

찬 바위를 밟고 시퍼런 바다를 지키는

단 하나의 의지

밤이면 품었던 해를 쏘아 내고

살신성인으로 홀로 서서도

정작 외로운 등대라는 이름만 지닌

멸치가족을 살리는 빛기둥이다 

 

 

 

 

 

[가작] 등탑에 오르면 / 김완수

 

 

속초 동명항에 가면

등탑도 바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등대인 걸 알 수 있다

바다의 푸르른 표정이 눈부셔

대로 난 철 계단을 오르듯

정신이 휘청거릴 것 같으면

뒤돌아 속초의 이목구비 한 번 보고

잠시 여정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곳

그러다 또 일상이 해무처럼 아른거리면

숫기 없는 설악산의 행방을 찾으며

떠나온 이유를 깨달을 수 있는 곳

 

돌산의 뜯기는 울음을 딛고

민충정공의 혈죽같이 자라다가

기어이 탑으로 선 걸까

홰를 든 대에 오르면

옛 산의 살점 같은 갯바위들 보이고

바위 등을 두드리는 파도 소리 들린다

저 멀리 떨어져 나간 영금정은

바다 위에 틀어 앉은 기억의 암자겠지

 

방파제도 등탑과 바다를 가르지 못하는 밤

달빛을 등에 업고

축항의 비린 면을 가리키는 등대전망대

속초 동명항에 가면

등탑도 바다의 얼굴을 살피는

등대인 걸 알 수 있다

 

 

 

 

 

 

[가작] 바다 우체국 / 최선옥

 

 

 

갯메꽃 속으로

 

뭉게뭉게 해무를 전송하는 바다

 

출어는 셔터를 내리고 걸쭉한 경매와 짭짤한 웃음은 지워졌다

 

 

 

속달로 부쳐온 파고 높은 사연들을 뒤져도

 

행방이 묘연한 행간,

 

먼 항로를 따라간 그는 언제쯤 반가운 소식을 보내올까

 

안부 궁금한 마음에 닿은

 

갈매기우편은 소인이 흐릿하다

 

 

 

서성이는 오후 뒤로

 

쓸쓸함을 들쳐 멘 묽은 어둠이 걸어온다

 

삼십 촉 달을 켜도 표정이 어두워 포장마차는 서둘러 불을 밝히고

 

모락모락 일몰 한 솥이 끓는다

 

 

 

익숙한 무료가 장마를 읽고

 

도마에 기록하는 바다체에 툭툭 잘리는 다족류의 하루

 

오래된 만선이 잔술로 비워진다

 

 

 

바다는 매번 파랑주의보에서 맞춤법이 틀리고

 

어두운 저녁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다

 

나선형계단을 올라가 촉수를 올리는 밤,

 

등대우체국에서 야광의 추신이 건너온다

 

 

 

파도에 그을린 묵은 우표 같은 얼굴을 붙여

 

넋두리를 동봉한 밤은 저마다의 섬으로 꽂히고

 

불면을 밝혀 낡은 주소를 다시 분류하는 우체국

 

수취인불명의 소식이 반송되듯

 

새벽녘이 되어서야 빛은 흘러나간 등대를 거두어들인다

 

 

 

 

 

 

 

 

 

[가작] 구엄 도대불* / 이타린

 

 

 

 

 

포구의 밤 길이 나로 하여

 

열리던 때가 있었지

 

오래 서 있어 등줄기가 당기는 동안은

 

새의 날개가 돋는 듯도 했었어

 

밤사이 시나브로 물너울에 기대어

 

애월 앞바다를 지키는 동안

 

물밑에선 거대한 오페라의 그림자처럼

 

바리톤과 베이스 음이 들려오곤 했었지

 

빛 한줄기 입술을 내어 파도를 따르면

 

긴 밤 내내 기울던 빛이 느리게 식어가고

 

최초의 빛은 여전히 나의 뿌리에서

 

촘촘히 울고 있었으므로 비로소

 

물의 길을 찾아낼 수 있었어

 

새별오름의 공양을 바라보는 날은

 

복사뼈까지 차오르는 물의 부레 안쪽을

 

잘 절여진 거품으로 덧대며

 

구엄리 포구의 소금빌레가 조명등 안으로

 

갇히는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었지

 

간절한 이의 기도 같은 수평선이

 

고이 접힌 태양을 한 뼘씩 밀어 올리면

 

바다와 하늘이 둘이 아니란 걸 이젠 알아

 

멀리 데칼코마니처럼 어선 한 척이

 

갯바위의 후렴처럼 일렁이는 새벽

 

가슴의 행간마다 아스라이

 

길을 내는 물길을 따라 무장 해제된 나는

 

이제부터 마법에 잠기는 시간이야

 

 

 

 

* 도대불 : 전기로 켜는 등대가 들어오기 전에 포구를 밝혀 주었던 등대의 원형

 

 

울산지방해양항만청(청장 정수철)등대를 주제로 한 2회 등대문학상 공모전당선작을 3일 발표했다.

 

등대문학상 당선작은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됐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단편소설 부문 대상에 양진영(서울 노원구·사진)씨의 얼음 등대가 뽑혔다. 얼음 등대는 남극을 무대로 한 신선한 착상의 작품으로, 주제가 선명하고 구성이 탄탄할 뿐만 아니라 문장도 깔끔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최우수상에는 시 부문 한승엽(제주시)씨의 등대의 재발견’, 수필 부문 이동열(충북 청주시)씨의 희망의 등대가 각각 수상했다.

 

우수상은 시 부문 김미숙(울산 동구)씨의 책 읽는 등대’, 단편소설 부문 김성준(서울 성북구)씨의 등대의 노래’, 수필 부문 김형옥(울산 울주군)씨의 어머니와 등대가 각각 꼽혔으며, 이외 각 부문 가작 총 30편이 선정됐다.

 

울산항만청은 시상식 장소 및 날짜를 추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수상자에게 개별 통보할 예정이다.

 

한편, 해양문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해양문화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개최된 이번 공모전에는 시(시조) 648, 단편소설 46, 수필(수기) 105편 등 약 800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2회 등대문학상 수상자 명단

 

대상 양진영 얼음 등대최우수상 한승엽(/시조) ‘등대의 재발견이동열(수필/수기) ‘희망의 등대우수상 김미숙(/시조) ‘책 읽는 등대김성준(단편소설) ‘등대의 노래김형옥(수필/수기) ‘어머니와 등대가작 김완수, 김창석, 서상규, 심금섭, 우동식 , 이동우, 장인수, 정연희, 최선옥(/시조) 김경순, 김득진, 김은혜, 김학규, 문호성, 박슬기, 서혜린, 신상현, 안병기, 최석규(단편소설) 김유석, 김현주, 박원종, 서상호, 서은정, 유진선, 이서, 이정혜, 하요아, 황숙이(수필/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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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등대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등대의 시 / 이병일

 

 

나는 검은 물기를 등줄기에 지고 안개 젖은 수평선을 바라본다
저만치 어스름의 저녁이 오고
내항선이 뭍으로 오르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가장 먼 곳에서부터 첫 별이 뜨듯 나는 천천히 빛줄기를 세운다
 
나는 등 푸른 저녁이 온다고 우는 흑염소 새끼와
길 붉은 언덕의 풀꽃들이
벼랑을 기어오르는 해풍으로 꽃대를 세우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바다가 종일 파랑파랑하게 빛나는지 묻지 못했다
 
나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풍경을 읽기 시작한다
방어진 해녀가 물질하며 파도와 주고받는 이야기와
어둠이 삼켜 보이지 않는 것들마저 엿보게 되었다
그래도 모르는 척 지나가면서 폐선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어둠 저편에서 깜박거림을 켜는 화암추 등대였으니
밤바다를 건너는 물길의 하루마저 뭍의 세계로 건너가게 했다
투명하지만 차갑고 단단한 물결들을 통해
나는 말향고래의 신화를 모래톱 위에 켜켜이 풀어놓기도 했다
 
나 자신이 희고 아름다운 바다의 얼굴이 될 때
사계절 내내 어제의 피로가 쌓여 있는 밤의 물결 사이로
이쁜 해파리들의 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달빛이 내 뒤통수를 쓰다듬을 때
나는 우아하고 부리가 긴 바닷새의 잠에 꿈을 심는다
 
그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새 삶이
바다와 등대 사이에서 시작된다고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했다

 

 

[심사평]

   제1회 등대문학상 공모전에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응모해 왔다.
 전체 응모작 수준 또한 부문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었으나 전국 평균치를 웃도는 역작들이 많아 앞으로 이번 공모전이 더욱 열기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시조 부문에서는 상투적이거나 생경한 언어가 시적 분위기를 해치는 작품을 예선에서 걸러내고, 폭 넓은 상상력의 프리즘을 통해 서정적이면서도 내면세계에 대한 천착과 시적 긴장감이 있는 우수작을 선정해 심사의원들이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등대의 시'를 최우수작으로, '노인과 바다'를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수필 부문에서는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9편을 대상으로, 지역성과 향토성을 바탕으로 바다의 이미지와 삶을 연관시킨 미적구조가 어떻게 펼쳐져 있는 가를 심사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심사위원간의 합평과 재독을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

 그 중 소재에 대한 참신한 해석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있는 '조금새끼'와 '비나리'를 우수작으로 선정한 후, 더욱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문장력, 참신한 소재발굴, 바다에 대한 깊은 해석력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조금새끼'를 최우수작으로 '비나리'를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소설 부문에서는 대체적으로 글의 기본인 문장력이 탄탄하거나 소재 장악력이 뛰어난 작품들이 많았다.
 응모작을 여러 번 숙독한 결과 최종적으로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이 '실종', '고래사냥', '여름의 끝', '바다가 준 선물' 등 네 편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탄탄한 문장고 소재 장악력 등 많은 장점이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서의 바다에 대한 천착이 부족하거나, 구성의 긴장감이 미흡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더욱 분발을 기대해 본다.
 대상작은 각 부문 최우수작을 중심으로 심사위원간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결과 수필 '조금새끼'를 선정했다.
 해운항만청과 해운 항만공사가 주최하고, 울산신문사와 울산문인협회가 주관하는 등대문학상 공모전이 앞으로 더욱 발전해 바다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을 증폭시킬 계기가 될 뿐 아니라 한국해양문학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공모전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끝으로 제1회 등대문학상 공모전에 입선하신 분께는 축하를 낙선한 분께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단
 


[부문별 입상자 명단]

 
■시/시조 부문
최우수상 '등대의 시'(이병일·서울 도봉구)
우수상 '노인과 바다'(엄미영·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가작 '어머니의 바다'(류현서·울산시 남구)
가작 '처녀출항'(김동관·울산시 중구)
가작 '울산 포구'(김갑주·울주군 범서읍)
가작 '바다 맛, 그리고'(김미영·울산시 남구)
가작 '등대(부제-당신을 기다리며)'(김수빈·울산시 북구)
가작 '등대'(박인관·경북 경주시 산내면)
가작 '바다의 혼불이여 날갯짓이여'(하순호·울산시 남구)
가작 '자물쇠 곳간'(제인자·울산시 남구)
가작 '등댓불 아버지'(성희경·부산시 해운대구)
가작 '바다의 위로'(최민정·울산시 동구)
가작 '바다풍경'(서순옥·울산시 남구)
가작 '울기등대'(박동환·울주군 온산읍)
가작 '등대'(김숲·울산시 동구)
가작 '등대와 배'(이미희·울산시 남구)
가작 '등대도 슬도도 울지 못하고'(김영숙·울산시 동구)
가작 '먼 바다를 돌아서'(이정민·울산시 남구)
가작 '고래 포의 전설'(백동진·울주군 범서읍)
가작 '등대는 달빛에 잠들고'(함영옥·울산시 북구)
가작 '방어진 등대불'(송봉채·부산 해운대구)
가작 '돛배를 띄우다'(최정희·경기도 이천시)
가작 '간절곶 등대'(박미향·경남 사천시 삼남면)'
가작 '아귀의 바다'(한산월·울산시 남구)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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