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받을 채비 / 이서
망초꽃 위에 앉은 고추잠자리가 꼬리를 공중으로 치켜들수록
가을 하늘은 점점 맑아지는데
누가 어스름 뜬 부두막에 군불을 지핀다
연기는 하늘에 부스럼을 일으키듯 꾸물댄다
공복으로 떨고 앉은 달이 굴뚝으로 와서
방구들로 불 들어가는 소리 듣는다
공복의 국경을 넘은 장닭 우는 소리여
마을의 길이란 길을 죄다 지우는 그믐이여
그러나 어둠은 별의 주소를 적었다 지웠다 하듯
달의 선반에 몰래 올려놓고 바람 속을 걸어본다
나는 아버지가 속곳에 지린 똥무더기같이 환한
불을 때고 눅눅한 풀로 모깃불 놓고
토방에 앉아 미어터지게 밀려오는 뭇별자리를 본다
굶주린 사마귀 날개소리가 힘에 겨웁게 나는 사이
줄 끊겨 날아간 연기는그만 어정어정 주저 앉는다
그때 첩첩 골짜기에서 나온 바람이 삭고
섬돌 뒤에 숨은 귀뚜라미가
큰 여치 울음만 골라 쳐부수며 울고
중추절 앞두던 달 구렁이가 늘그막 허물을 벗는다
게으른 가증이 오듯이
가만히 수척해진 물소리를 보듬어 안는 첫서리같이
나는 복사뼈가 시려도, 나뭇잎이 물드는 시월을 맛본다
실핏줄 잔뜩 웅크린 나뭇잎 몇 개 인사 시늉 하듯이
내 앞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떨어질 때
저만치 집의 그림자도 첫눈 받을 채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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