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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장림포구 / 최일걸

 

장림포구에 이르러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내지 않는

표류기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알록달록한 색체의 향연의 중심부에 닻을 내린다

우두커니에 침몰 직전의 위기감을 묶는다

내가 포구에 하역하는 여독은

온전히 내 몫이 아니었다

일정 부분 너의 몫이었다

모국어마저 낯설게 하는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도무지 나의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다

햇살의 거친 붓놀림이 나를 훑고 지나가면

인상파 화풍에 휩싸인 나는

단숨에 숨은그림찾기가 되어버렸다

상념이 풍차처럼 어지럽게 맴을 그렸다

장림포구에선 길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그림자들이

벌떡벌떡 일어선다 벽에서 툭툭 튀어나온

그림들이, 힘차게 걸음을 내딛는다

거리 곳곳에서 마추지게 되는

다양하고 이색적인 조형물들과의 조각 맞추기는

통성명 없이도 두텁고 살갑다

본국으로 송환 중인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자꾸 나의 국적을 묻는다 장림포구 위에 뜬구름들이

망명정부처럼 소란스럽다 포구에

정박한 선박들이 출항을 서두르는 듯

일제히 들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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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을숙도에 살어리랏다 / 박복영

모래가 쌓일수록 발자국들이 엉킨 해질녘

썰물 든 자리에 수런거리는 

새 발자국과 내 발자국이 

흩어 모여 뒤엉켰다 갈뿌리처럼

물결 따라 떠밀려간 바람 같은 아버지는 

갈숲에 이르러 돌아오지 않는 바람이 되었다

똬리 튼 뿌리의 안간힘처럼 

미로 같은 날들의 어둠을 헤치며

그날 저녁을 맞은 어머니는 

더 이상 모래톱에 새겨지던 

자전거 바큇자국을 찾아나서지 않았다

안개 낀 날에 안개꽃이 된 갈꽃들을 뽑아 

어머니는 놋그릇을 닦았고

푸른 녹을 지울 때마다 

비린내를 터뜨리며 일어서는 갈꽃처럼 살았다

내일을 꺼내느라 닳은 어머니의 손톱 속 

비린 계절을 지나며 깨어나던 형과 나

바람을 삼키며 아버지가 떨어뜨린 

발자국을 찾아 흔들린 적 있다 

부푸는 갈숲에 발목을 묻고도 

지붕에 널어둔 생선을 뒤집으며 

어머니는 가려웠던 우리들 생의 등을 긁어주었다

엉킨 발자국을 푸느라 발자국을 다 써버린 갈숲에서

우리는 휜 갈꽃을 뽑으며 야윈 무릎을 세웠다

갈대들의 수런거림이 

소란스런 파도소리와 동거하며 잠이 들고

모래톱에 물결무늬가 그리움인 양 새겨지는 을숙도

모래가 쌓일수록

비린내가 빨래집게처럼 흔들리는 생을 꽉 물고 

놓지 않고 있다

 

* 을숙도 :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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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하구에서 / 이정록

 

우리네 삶도 저 강 같은 것

언젠간 다다를 하구를 모두 생각하지 

저기 백합등 아래 가로누운 도요등

부지런한 강물이 오랜 세월

물살의 흘림체로 쓴 모래섬의 서사

바람이 한 페이지 넘기면

물새가 행간을 짚어 가는 곳

각진 표정 지워 낸 모래알이

고스란히 서로에게 스며드는

여정에 마침표를 찍기까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왔겠지

흥그럽게 들판을 가로지르다

기슭을 맹렬히 후비긴 해도

물가 오두막 검게 탄 얼굴은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리

무엇을 떠나보내고

무엇을 깊숙이 묻어

그 많은 생명에 방을 마련해 두었나

어디서 손을 잡았고

어떻게 손을 놓았든

삶의 끝에서도 저럴 수 있다면

느긋하고 넉넉한 강의 끝처럼

물새가 노을을 가르는 저녁

하루의 생이 저리 뜨거운데

우리 한 생은 어떨까

[가작] 굽다리접시 / 원기자

저는 괴정동에서 태어났어요

얼마나 많은 계절이 스쳐갔는지 알 수 없지만

붓끝으로 저의 속살을 살살 헤집던 고고학자가

몇 백 년은 족히 흘렀다고 하네요

어느 대감마님 집에서 귀한 대접 받다가

만장을 휘날리며 앞서가는 마님의 장례 행렬을 따라

여기까지 왔어요

함께 매장된 부장품들은 

놀란흙을 끌어안고 바람의 뼈가 된다는 걸 

그의 후손들은 알까요

그때부터 매끄러운 테두리는 빛을 잃고 

온몸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긴 세월을 견뎌왔지만

눈부심처럼 빛나던 고결함은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구덕산 줄기의 유적은

한 사내의 섬세한 손놀림으로 다시 빛을 찾았어요 

다른 계통의 유물들도 저처럼 

모서리를 곧추세우고 박물관 유리벽 안에 자리를 잡았네요

이제 고분을 기억하는 건

부서진 햇살 아래 우뚝 솟은 아파트 외벽이지만 

괴정동 주민들은 알까요

돌덧널무덤에서 태어난 저를 

 

 

 

 

[심사평]

8회 사하모래톱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은 117450편으로 시242, 시조 85, 동시53, 수필40, 소설 16, 동화 14편 이었다.

상당수의 작품들이 사하구를 배경으로 한 지역성을 잘 부각시키고 있었다. 문학성과 창작성은 뛰어나지만 지역성을 살리지 못한 글은 심사에서 배제하였다.

 

운문분야 대상작장림포구장림포구가 움직이고 있는 역동성을 잘 보여주었다. 시적 형상화는 물론이고 시에 담긴 이야기가 전하는 내용도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최우수작을숙도에 살어리랏다을숙도의 풍경을 내면화 한 따뜻한 사랑의 눈길이 돋보였다. 시는 두근거리는 가슴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꽃이다. 우수작하구에서마음을 열고 자연의 숨결을 포착한 시인의 예민한 감각이 느껴진다. 깊은 사색을 통해 무한히 확장된 시인의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가작굽다리 접시우리가 나선 길에는 누군가 먼저 간 흔적이 남아 있다. 흔적이 남긴 생생한 모습을 내면화 시키는 미적 태도가 돋보였다.

 

산문분야 대상작 소설 1979년 그 겨울 강 끝 마을1979년의 하단 갈대밭을 배경으로 야산의 억센 억새풀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진다. 탄탄한 주제의식으로 작가의 내적 성찰과 여정을 잘 녹여 낸 수작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우수작 수필 그리운 어머님의 탯줄고향 상실이 가져다주는 현대 인간의 스산한 내면 을 영혼의 방향성을 지닌 맛깔스런 글 솜씨로 잘 그려내었다. 우수작 동화 쇠제비 갈매기의 귀향철새 쇠갈매기 쇠돌이의 성장과정을 작가의 예리한 눈과 감각으로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가작 소설 을숙 그라데이션을숙도 위에 펼쳐진 노을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 작가를 통해 을숙도의 아름다움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한정된 지역을 배경으로 창작해야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작성이 돋보인 작품들이 많았다. 강력한 서정의 울림이 전이되어 심사위원들도 정서적 파장으로 심사하는 동안 행복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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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모래톱 탁본 / 김겨리

 

 

명사십리에 새발자국 수두룩하다

썰물에 쓰고 밀물에 퇴고하는 바다의 서사,

밀물이 화선지처럼 모래사장의 요와 철에 골고루 펼쳐지면

먹방망이에 해풍을 듬뿍 묻혀 바다를 본 뜨는 어머니,

씨감자 캐듯 아버지 배를 부리고 먼바다로 떠나시면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종교는 바다,

사하의 바다는 탁본체로 편찬된 어머니의 서재였다

해풍에 깎여 심하게 문드러진 아버지의 지문은

먼바다 일렁이는 격랑을 닮았다고

횟배 앓는 내 배를 쓸어내리며 혼잣말처럼 들려 주시던 얘기로

파도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지문이 저랬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내 지문을 바라보면 물결체의 행간들이 출렁이곤 했다

바다를 수소문해 아버지의 기별을 듣는 밤이면

창가 정화수에 푹 잠긴 보름달을 보고 손이 닳도록

어머니가 밤새 빌고 빌었던 치성은 무엇이었을까

물새들 자정 녘까지 모랫벌에 모여

도래지로 돌아갈 탁상공론할 때

어창이 묵직해진 아버지가 귀항을 서두르고 계시다는 걸

어머니는 짐짓 어떻게 아셨을까

아버지가 물길을 차곡차곡 개키며 뱃머리를 뭍으로 향할 때

어머니는 치부책처럼 가슴에 탁본된 사하의 밤바다를

달달 외우고 계셨던 거였다

갑골문자로 새겨진 문장들

의태어로 필사한 바다의 서사가 한 장 한 장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집대성될 때

모래톱은 어느새 아버지의 궤적으로 편찬된

어머니의 서재가 되어 있었다

 

 

 

 

 

[최우수상] 을숙도 해풍국수 / 구봄의

 

 

바닷가 귀서리 바지랑대가 횡렬로 비스듬하다

여러 폭 국수 가락들 간간한 바람에 흔들리며

수 천 갈래 은파금파로 길게 술렁인다

 

국수가 마르는 동안 여섯 살 나는

해변 뙤약볕에서 무럭무럭 까매진다

조가비는 캐스터네츠, 조막손으로 달가당 쳐본다

금모래에 파묻힌 신발 외짝을 파내어

작은 발을 가만히 집어넣을 때

고등게들이 발가락에 음표처럼 달라붙는다

은빛 굽이치는 수평선을 다섯 번 그어보면

저녁 해도 오선지에 내려앉을 거라고

오래도록 들여다봤던가

 

엄마는 음보 그리듯 국수가닥을 쓰다듬는다

손가락 새로 환하게 날아오르는 갈매기들,

기우는 햇살 뒤집어 쓴 채

그 여운이 멀찌감치 있는 내게 엉겨 붙는다

힘센 말미잘처럼 내게 착 달라붙는 엄마의 촉감

 

덜 자란 생각이 꾸둑꾸둑 마를 때까지 해풍 속을 지나

게딱지같이 나지막한 집으로 간다

발개진 종아리가 마중나온 저녁

그제야 허리를 펴는 당신의 눈빛에도

애잔한 물결이 인다 그 찰진 가락을,

나는 유년에 또박또박 베낀다

 

 

 

 

 

[우수상] 물고기 벽화에서 푸른 세상을 만나다 / 강달수

-감천 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로 헤엄쳐 가는 물고기 떼를 따라 반야바라밀 달빛을 따라 문화마을을 산책한다 할아버지 이마처럼 주름진 골목길 따라 걸어가는 발자국을 담벼락에 기대어 선 울긋불긋 화분들이 자꾸 붙잡는다 앞집 지붕이 뒷집 마당이 되고 또 그 집의 지붕이 뒷집 마당이 되는, 오두막들 사이로 미로미로의 꿈들이 별처럼 빛난다 숯검댕이처럼 검게 내려앉은 어둠이 지붕위에서 노닐다가 담쟁이 넝쿨처럼 휘적휘적 담벼락에 내려앉는다 초승달과 함께 맴 돌다가 감천 앞바다에 철썩이는 파도처럼, 큰 고니가 좋아하는 을숙도 세모자기처럼 땅바닥에 늘어붙는다 밤이슬 촉촉이 문화마을에 젖어들면 6.25 피난길 난리통 밥풀 같은 허기들이 별들마저 구름에 가려져 칠흑 같은 감천문화마을 골목길 국화꽃 속에서 춤을 춘다 평생 공동어시장에서 고등어와 갈치의 비늘에 찌들어, 비린내 나는 삶을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지치고 버거웠을까? 울컥울컥 가슴에 응어리진 상처들과 얽히고설킨 슬픈 낱말들을 삼키고 있는 항운노조원들의 눈동자를 별빛도 사라진 새벽, 그믐달이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고 충혈된 두 눈을 때 묻지 않은 이슬로 문질러 준다 침묵과 정적만이 지붕위로 걸어 다니고 있는, 모두가 잠든 새벽! 온갖 상념들이 새벽바람에 낙엽처럼 굴러 간다 삶의 쓰디 쓴 알맹이와 상처 난 낱말들이 다 빠져 나가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가로수의 가랑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만 휑하니 날아간다 마을에 동이 터도 애기 울음 한 번 들리지 않고 아침 답에 등교하는 초등학생 한 명 보이지 않는 마을 손주 손녀들의 재롱이 그리웠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웃음소리조차 미로미로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버렸는지 흔적도 없이 바람에 날려간다.

 

 

 

 

 

[가작] 다대포의 시간 / 김나비

 

 

다대포에 가면 재첩국처럼 뽀얀 기억이

모래톱 위에 반짝이지

 

싱싱한 재첩을 솥에 넣고

보글보글 새벽을 끓이던 어머니

그 진한 국물 한 사발에 취한 밤이 벌떡 일어날 때

세상모르고 자던 어린 나는

어머니 빈 자리를 더듬으며 꿈속을 파고들곤 했는데

 

새벽 별을 머리에 이고 국 팔러 나간 어머니

버스에 덜컹덜컹 두려운 가슴을 실었다지

목 안에 자꾸만 감기는 소리를 풀며

남몰래 사이소 사이소 연습을 했다는데

부끄러워 올라오지 않는 말을 끌어당겨

허공에 널곤 했다는데

 

골목에 들어서면 목소리가 숨어서

얼굴만 빨개지다가도

집에 두고 온 자식들 곤한 숨소리가

모래알처럼 머릿속에 펼쳐지면 떨리는 손을 불끈 쥐고

화끈거리는 얼굴로 재첩국 사이소를 외쳤다지

 

재첩국 사이소, 노래가 골목에 허밍처럼 돌아다니고

양푼을 들고나온 아낙들에게

부추를 가득 얹은 시원한 시간을 건네주었다지

 

그렇게 한나절 외치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건 겨우 몇 끼의 쌀

옹기종기 기다리는 아이들, 먹일 생각에 힘든 것도 잊었다는데

 

다대포에 가면

새벽을 깨우던 어머니, 그 뽀얀 목소리가

모래톱 위에 반짝이며 떠다니지

 

 

 

[심사평]

 

7회 사하모래톱 문학상 공모전은 사하구의 을숙도, 다대포 등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소재로 한 작품과 사하구의 역사, 문화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응모대상으로 했다. 응모분야는 시, 시조, 동시를 아우르는 운문분야와 단편소설, 수필, 동화를 포함하는 산문분야였다. 접수된 작품은 산문 86(53)과 운문 574(118)으로 예년에 비해 산문의 응모 편수가 줄었고, 운문의 응모 편수는 늘어났다.

 

운문분야의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특히 대다수의 작품이 사하구의 지역성을 잘 드러내는 편이었는데 이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선에 들지는 못했지만 동시와 시조 중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좋은 작품이 적지 않았는데, 이는 예년과는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심사를 통과한 20 명의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논의 끝에 다시 10편으로 압축하였고 이 가운데서도 다시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찾았다.

 

대상작으로 뽑힌 분이 응모한 다섯 편의 작품은 모두 뚜렷한 시적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모래톱 탁본을 대상작품으로 골랐다. 이 작품은 사하에서의 유년체험을 형상화한 것으로 시적 화자가 들려주는 가족사가 완성도 높은 비유에 의해 전달되는 수작이었다.

 

최우수작 을숙도 해풍국수역시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 작품 역시 대상작과 마찬가지로 사하에서의 유년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다양한 심상들과 밀도 높은 표현들 특히 돋보였다. 같이 응모한 감천 마을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었다.

 

산문 분야에서는 자신의 체험을 지역성과 문학적 성취로 잘 녹여낸 수작을 찾기 위해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모았다. 선에 든 작품 중에서 큰 고니의 귀환을 대상 작품으로 정했다. 충실한 현장감과 작품 구성력이 완성도를 높이는 수작이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배 타러 가요 도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잘 스며들어 있으면서도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동화로 수상작에 오른 승학산에 뜬 할머니의 달 , 수필모래톱 때문에도 지역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진정성이 문학적 성취를 이룬 수작들이다.

 

사하모래톱 문학상 공모전은 사하구의 지역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할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심사위원들이 검토한 상당수의 응모작은 사하구의 지역성을 잘 살리고 있어 반가웠다. 뿐만 아니라 예년에 비해 독창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어서 뜻 깊었다. 여느 해 못지않은 수상작을 내보일 수 있어서 마음이 흐뭇하다. 다음해에도 사하구의 지역성을 들어내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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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감천, 그 골목 / 김은혜

 

 

푸른 지붕 잎맥을 채우고 돌아오는 밤

낡은 벽화에 그려진 비릿한 물고기 비늘

붉은 가로등 불빛에 몸을 뒤척인다

좁은 골목들이 엮여있는 회로 사이에서

먼지에 덮인 방은 홀로 주파수를 맞춘다

아버지는 달팽이관처럼 등짝 웅크린 채

무음이 되어가는 허공을 듣는다

듬성듬성 빈틈이 보이는 정수리 위로

반질하게 새어나온 하얀 안테나들

공중에 온기 없는 숨들이 공명하자,

아버지가 얼굴 위로 느슨한 현을 당긴다

오래된 악보를 삼켜낸 아버지는 그저

낮은 한숨 몇 개를 음표처럼 달싹인다

알 수 없는 기호처럼 아버지의 글자들이

단 한번도 표음되지 못한 채 바스라진다

몇 개의 귓불들이 어둠 속에 차가워지고

아버지가 휘어진 안테나를 달고 뒤척인다

낡아가는 뒤통수에 수신되는 작은 음파들

재생되지 못한 말들이 파동을 타고 온다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는 어디쯤에서

작은 귓불을 따뜻하게 기울이고 있을까

 

빗금이 쏟아지고 전류가 흐르는

새치가 번뜩이는 아버지의 둥그런 뒷모습

그 꼭대기 마다 파동처럼 바람이 분다

멀리, 가로등 번진 어두운 골목 아래

허공을 삼킨 물고기가 아가미를 뻐금거린다.

새벽이 한걸음 한걸음 걸어온다

 

 

 

 

[최우수상] 을숙도가 온다 / 최형만

 

모래가 쌓일수록 갈대도 길어지는 곳

갈밭 길을 걸으면 놀란 갈게들이 흩어진다

지나온 시간보다 밀려온 날이 많은 을숙도는

갯바람에 그을려도 검어질 줄 몰랐을까

남새밭 너머 불어온 바람에도 메밀꽃을 피운다

흐르는 강물의 소리로 계절을 말할 때마다

고니는 오래된 저녁을 날았는데

큰기러기는 뭉툭한 부리로 갯벌을 파해쳤다

새가 많고 물이 맑아 을숙,

얼핏 개흙을 읽어가는 이름이다

천삼백 리 물의 여정이 하구에서 끝날 때

철새는 해 질 녘 어느 하늘을 날았을까

낙조에 물든 날갯짓 따라 사각사각 흔들리는 을숙,

둘러보면 떠밀린 에덴처럼 멀리 있다

갯내가 좋아 갯메꽃을 피우는 사하의 밤에

철새가 물고 온 울음도 모래탑을 쌓는데

싱싱한 강바람에 얼굴을 돌려온 세월

은빛 물살을 낚아챈 붉은부리갈매기가 떠나면

나는 어디에서 붉어질 수 있을까

세모고랭이 피면 상처도 연꽃이어서 을숙,

팽팽하게 걸린 현수막에는 생태체험이 적혀있다

바람 부는 날에 혼잣말을 해도

젖은 땅을 빼곡하게 기억하는 언어들

물그림자 그림처럼 걸리면 을숙도가 온다

 

 

 

 

[우수상] 쥐섬 솥섬 고리섬의 시간 / 고훈실

 

 

그 섬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안개바람이 일었다

몰운대 어디메쯤 긴 목을 빼고

시간의 지층이 단애를 이룬 섬과 섬의

꼬리를 본다

손 내밀면 잡힐 듯 지근한 거리에

점점이 떠 있는 그리운 여우족(族)

글썽이고 반짝이는 바다에

주둥이를 담그고 해당화 눈빛으로

섬과 섬을 넘나든다

고기잡이 배들이 돌아올 때면

갈매기보다 먼저 파도를 탄주하는

삼도귀범의 푸른 여우

물속 산맥을 내질러 바다의 내장을

성글게 끊어 먹고

머리만 우뚝한 태초의 시간을 내민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 여우, 수평선을 지나

닿을 수 없는 시간의 이음매가

자갈마당에 밀려온다

그 밤 여우가 삼킨 별들이

다대포 앞바다를 환하게 밝혔다

 

 

 

 

[가작] 고니와 새섬매자기* / 한승엽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고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

초록의 꽃대가 낙동강 하굿둑에서 하늘거린다

수십 센티까지 자라고 자라

꽃들이 갈색으로 익어갈 무렵이면,

국경을 월담하듯 찬 공기 뚫으며

날갯죽지의 근육을 달랠 틈도 없는

고니가족들의 긴 울음소리 들려오고

고비마다 구름다리를 건너는 심정으로

긴 목과 납작한 부리를 앞세워

매순간 타고난 집중을 펼치며 날아오는데

금방이라도 잡힐 것처럼

산과 강줄기가 멈추지 않고 흐르더니

모래톱, 아늑한 모래톱이

수천만 개의 눈빛으로 반짝이며 일어서고

차가웠던 뺨이 환히 달아오를 때

저 한복판 끄트머리에서

더 환하게 물들어 있는 것들이 보이자

견딜 수 없는 허기에 정신이 없다가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자세로

아니 무리지어도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서

사뿐히 내려앉고 있다

순간, 새섬매자기는 인연을 눈치 채고

꽝꽝 얼어붙는 혹한 속에서도

평화의 순례가 시작된 것을 알았을까,

무엇인가 춤추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새섬매자기: 고니가 먹이로 즐겨 찾는 다년생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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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모래톱 / 윤빛나

 

몇 겹 이빨로 사납게 오르내리던 수난의 고집쟁이

가막조개 부둥켜안은 모래들의 습관을 긁어내던

똥색 월급봉투, 사그락 사그락

그 이름, 빨갛게 달구어진 희망 찬 사발을 건네주던 사막

붉은 노동 한 잔의 입을 걸어 잠근

숯검댕이 아버지 낡은 어깻죽지가

짊어지고 오던 막걸리 냄새 절뚝절뚝

그리움 푹푹 빠지는 신평공단길 골목창 지나

개망초 피는 집에 갓난쟁이 발톱들이 찾아오면

그 자욱한 찬장을 열어, 한 홉 사하의 꿈 물려주시던 어머니

가시리 풀 끓여 신문지 발라놓은 둥지는 만원이었다

냉이꽃 찌그려져 검은 모기 한 마리 갇혀 있던 동공 속

양은 빛 하오를 비추던 오래된 저녁

섬돌 위에 사람인자 걸어 놓은 검정 고무신 십일 문짜리

몇 땀 궤매 신은 작은 바다가 데리고 온

발가벗은 생멸의 알갱이들

참빗 쟁기를 뚝뚝

무명의 옷을 벗기던 안개의 머리카락

곱게 빗겨놓은 모래 언덕

깊고 긴 강물의 비밀만큼 쌓이고 만나서

종잇장처럼 헤어지던 방목지

사철 농구같이 구부러진 손가락

푸르른 전설이 기어 와서

사하의 궁전을 짓던 모래의 고향

청보리 빛 목소리 들리는 선잠결에

사하의 노래가 여울져오면

사글셋집 달빛 이불을 끌어당기는 새벽

울엄마 달여놓은 재첩국 한 양동이 보글보글

부추빛 사랑 한 다발 썰어놓고

일어나소, 일어나소, 아버지를 깨우던 멀구슬남 소반상

뒷문 밖 재두루미 엄마, 팔십 살 먹은 괘종시계

새벽밥을 먹여 놓고, 모래톱을 본다.  

 

 

 

 

 

 

 

 

[최우수상] 을숙도 억새 / 김영욱

 

저것은 기다란 은빛 물고기

 

한때는 물 맑고 먹이 많던 바다에서

자손대대 번식을 약속했으나

바람에 살 다 뜯기고 뼈만 남아

하얗게 샌 머리칼을 부비며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가르고 서 있다

 

감기지 않는 문망울은 어둠 속에 감춰두고

꼬리지느러미를 면사포처럼 흩날리며

바람을 뿌옇게 애태우고 있다

 

그래도 한때는 옆선을 세워 물결을 주름잡던

저것은 은빛 물고기

 

어느새 제 속을 다 비우고 뭍으로 올라와

물구나무 자세로 허리를 살랑이며

달빛 아래 칼춤을 추고 있다

 

바람과 바당이 흘러한 밤바다

날개를 훔치다 푸새가 되었지만

물의 나이테를 부력으로 키워온 습성대로

바람의 갈기로 구름의 올가미를 만들고 있다

 

언젠간 하늘 끝까지 자맥질하고 싶던 욕망만큼

남몰래 부레를 부풀리는 몸부림이여,

맞은 바라기에서 들려오는 겨울 소식에

날로 여위어가는 은빛 날개여,

 

앙상해서 더욱 우아한 변신이어라.

 

 

 

 

 

 

 

 

 

 

[우수상] 모래경단 / 김지영

 

잔치가 벙어졌다아입니꺼

울 할매가 안보고도 척척 맹그는 만두맹키

동글동글 경단이 넓은 사장에 항거석인기라예

이래 빠르고 솜시 좋은 좋은 기 누구 작품인고 궁금하지예

달랑게라고 있심더

부끄럼이 많아가 대낮에는 모래집에 숨어있지예

그카다가 어두버지모 실찌기 나와가

눈자루 끝에 달린 크담한 눈동자를

요래조래 굴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븐가 말도 몬합니더

달랑달랑 집게발로 모래를 떠가 먹고는

남은 찌꺼기로 예쁜 경단을 만든다아입니꺼

뒷설거지를 요래 멋지게 하는 청소부 보셨는교

덕분에 다대포에 가모 나래비 선 경단을

우리한테 날마다 선물로 준다아입니꺼

오늘도 선물 받으러 함 가보까예

 

 

 

 

 

 

 

 

 

 

[가작] 모래톱의 오랜 기억 / 김용철

 

아버지가 고기잡이 나가신 날이면

설빔을 자꾸 입어보던 어린 밤이

강변 나루에 애기부들처럼 서성였다

어머니는 밤새 대청 작은 팔각상 위 놋그릇이

부처님인 양 절을 했고

건너방 누이의 짚단 같은 이불 속은

음악방송 주파를 맞추느라

모스 신호기 두드리는 공비보다 신중했다

 

지난 밤 비는 강을 억수로 뒤집어 놓았을 거다

윗물에 놀던 놈이나 수문에 서성이던 숭어들도

물이 잔뜩 올랐을 것라며

원양어선 선장이 된 양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

나룻배를 저어 가신 아버지

사라지는 배를 보며 돌아오던 길

논두렁을 달리던 연두색동 고무신도

물고기 마냥 팔딱거렸다

그날 밤 강물은 수문을 넘고 강둑을 밀어냈다

아침 나루터에는 수초에 엉켜 찢긴 그물이

아버지 주름처럼 놓여 있었다

비가 며칠째 내리고

포구에 묶인 배의 기척이 외기러기 울음이 되어

어두운 허공을 밟고 사라졌다

강이 둑이 넘던 날

이버지의 나룻배는 바다가 되었다

물이 바지던 날 하구언에는

강변 가장자리 수풀보다 넓은 모래톱이

아버지의 만선처럼 떠올랐다

갈대머리를 풀고 물고기처럼 주변을 서성이다

해질 무렵 서쪽 하늘이 바다에 붉은 울음을 짙게 토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온 오래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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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몰운대 시편 / 유종인

 

푸른 안개와 주홍빛 구름에 가려서

근해(近海)는 거칠 거 없는 바람의 행로가 되었나

아니다 크나큰 돌부리처럼 구름에 가린 섬들에 발이 걸려

어떤 바람은 코가 깨져서 드디어는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던 몸을 드러낼 뻔 했던 곳,

안개가 서서히 밀릴 때면

그게 바람이 몸을 얻어 진솔의 옷 한 벌 갈아입는 기척이려니 싶은 새벽,

광야와 어둔 골짝을 지나 사막에서마저 흘리고 다닌 몸

어디 내 맞는 옷이 있는가 안개의 탈의실 한켠에 선 바람을

붉은어깨도요와 삑삑도요와 알락도요가

큰노랑발도요마저 불러 바람의 보일락말락한 허릿살을 흘끔거릴 때

바람은 차마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몸을

안개와 구름에 가린 섬 뒤로 숨기며 산산이 흩어지듯

저 투명한 방랑기, 저 색깔을 입힐 수 없는 역마살(驛馬煞)

도로 안개에 능놀다 부푸는 구름그림자마저 털고

몰운대의 긴 한숨처럼 묵묵한 갯바위의 정수리를 짚고 사라진다

 

 

이에 홀로 묵묵한 섬들이

안개의 주렴 너머에서

이제껏 파도와 적막의 뒷배를 자처한 섬들의 으늑한 행색을

습습한 몰골법(沒骨法)으로 뭉클하게 그려내는 수묵(水墨)의 파도소리,

번지는 그 파도에 조금씩 섬의 눈썹그늘이 짙어오고

새삼 소금물에 갈퀴발이 저린 괭이갈매기의 울음도

횡축(橫軸)의 몰운대도(沒雲臺圖) 왼쪽 한귀퉁이에 붉은 낙관(落款)으로 찍힌다

 

 

이제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 안개와 구름 속에서 한 피붙이로 살갑던

섬들마저

 

저마다 떨어져선 하얀 파도를 홑이불마냥 섬둘레로 끌어다 입고

몰운대 쪽으로 갈매기를 날린다

아까 안개와 구름 속에서 봤던 거는 눈감아 주기야, 몰운대여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어슴푸레 가리웠던 그 서늘한 장막 속에서는

어눌한 여명과 눈두덩이 뜨거워지는 먼동을 기다리며

한 생애에 두 번의 풍광에 능노는 오지랖을 사는 거야

안개와 비구름에 잠겼던 섬들이 깨어나며

 

 

몰운대에게 그윽한 눈웃음을 제비갈매기떼로 대신 날리는 거였다

 

 

 

 

[최우수상] 다대첨사(僉使) 윤흥신(尹興信) / 윤주동

 

1

 

임진년 그 함성에

그날의 모습으로

 

노을에 부서지며

소리쳐 오는 파도

 

쏘아라

비장한 군령

그 외침도 들린다.

 

 

 

2

 

왜군의 침략으로

핏물에 찌든 바다

 

그때의 울부짖음

귓전에 생생한데

 

순절(殉節)

다대첨사 윤흥신

 

 

파도 되어 묻혔나.

 

 

 

 

 

 

[우수상] 구평 가구프라자 / 배옥주

 

노부부를 내려놓은 3번 마을버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탈길을 오른다

산번지에 둘러싸인 가구 동네

볕 좋은 기슭의 가구대통령쥔장은

땡 처리 소파에 누워

노마진의 백일몽을 건너간다

길없슴 팻말을 간판처럼 끼고 서 있는

가나안포장공장

선물 같은 박스들은

지나간 봄날처럼 겹겹 포개져 있다

비옥한 약속의 땅에서

벌나비들이 젖과 꿀을 찾는 사이

사거리에 들어선 <나무마음> 공방

물푸레 책상은 누구에게 편지를 쓰려는 걸까

서랍의 속마음을 펼쳐놓고

푸른 물의 생각에 잠겨 있다

구평농장을 떠난 한센인들은

어디선가 간절한 삶을 꾸려가고

문드러진 발목으로 한 생을 버티는 의자 셋

느티그늘과 개미들이 쉬어가도록

기울어진 배려를 내준다

신평을 내려다보는 옥수수밭이

건장한 어깨로 울타리를 치는 구평

토박이로 자란 칡넝쿨은

 

 

거북섬을 향해 느린 순을 뻗어간다

 

 

 

 

 

 

[가작] 을숙도, 백조의 춤 / 김영욱

 

 

먼 길을 돌고 돌아온 강물은

짠물을 만나는 을숙도에서 쉬어갑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긴 여행에 지친 철새들도 을숙도에서 쉬어갑니다

 

저녁이 오면

태양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갯벌 위에선

백조들의 공연이 시작되지만,

 

사람들은 모릅니다,

발레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하얀 날개옷 입은 목이 긴 백조의 전설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백조들은 한 다리로 서서 잠을 잔다고,

발레리나의 원조가 우아한 백조라는 사실도

모른 체, 아는 척을 합니다

 

갈대숲이 들썩입니다,

긴 다리를 드러내고 날갯짓하는 무용수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갈대들도

하늘로 날아오르는 동작을 배우고 싶어

외발로 서서 꼬박 일 년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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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모래톱에서 정착을 꿈꾸다 / 문영길

 

개어귀 떠밀려온 물결이

제 힘으로 피난처 만드는 게

흥미롭던 철새가

희망 한 포기 물고와

모래톱에 심었다

 

모래알 같은 다짐으로

쌓이는 내일이

때를 준비하는 기착지에서

처음의 의미로 나붓이 눕히던

정착을 망설이던 눈빛

안식의 모래톱에서

단단해지는 결심이 되었다

 

도요등 모래섬은

바닷바람도, 파도도

철새도, 노을도

잠시 머물렀다 갈 뿐

주인 되는 걸 허락하지 않는

무소유의 터였다

 

아미산 벼룻길 내달린

시선 끝에서

모래톱 쌓고 허물길 다반사

불완전한 현재를

다시 설계하는 꾀꾀로

선착순의 꿈들을 들여다본다.

 

 

 

 

[최우수상] 대티고개 어머니 / 윤상용

 

바람아, 니그 집 아버지, 사람살이 버무려

간밤 짭조름한 세월 한 잔을 마셨고

고개 숙여 새끼들 한 놈, 두 놈, 쓰다듬던 새벽.

곱디고운 어머니 회화나무 핀 대티고개 넘어

절영도 대평동 골목창까지

재첩국을 팔러 가셨다.

한 그릇, 슬픔이 다 무엇이냐

묻지 마이소.

울아버지 속 달래줄 부추빛 슬픔 썰어

둥둥 띄운 환희의 국물 한 사발

재치국 사이소, 재치국 사이소!

무심하게 너를 업고 오르시던 고갯길 어머니의 노래.

하얗게 등을 세운 쌍봉낙타들.

그렇게 가막조개 잡아

한 솥, 숙명을 바글바글 끓여 쪽머리에 이고

그 마르고 구부러지던 사막을 걸어가서

작은 사랑 한 양동이 울어예던 솔티고개 어머니.

통통통 물애기 데리고

사하의 바다로 건너가셨다.

 

 

 

 

[우수상] 이름 얻은 산 / 박민정

 

이름 없는 산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어

가끔 새들이 찾아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려주고

이름 없는 산만 외롭게 남겨둔 채 날아가 버렸지

 

학이 되면 좋겠어요

한 마리 학이 되어서 훨훨 하늘을 날면 좋겠어요

이름 없는 산은 새들이 부러워 매일매일 기도를 했지

 

고려 때 이름 없는 산에 무학대사가 찾아왔어

이름 없는 산이 안타까운 무학대사는

학이 나는 것 같다며 승학산이라고 이름을 주었어

그 때부터 사람들은 이름 없는 산을 승학산이라고 불렀어

 

승학산은 이름이 불릴 때마다

신이 나서 날개를 폈어

한 마리 학이 되어

사람들 가슴 속으로 훨훨 날아들었어.

 

 

 

[가작] 초승달의 마무리 / 윤상근

- 을숙도 생태관에서

 

거먕빛 동여맨 철새

에도는 갈밭에서

한바탕 군무를 추며

비상하는 큰고니들

을숙도

너름새에 맞추어

완성한 저 풍경화.

 

어빡자빡 갈마들어

들레는 하굿둑에

짬짜미

환호성 넣어

그려내는 학춤 폭에

초승달,

꽁지깃 살짝 들고

마무리 낙관 찍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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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을숙도1 / 최재영

 

을숙도를 아시나요

갈대가 제 몸을 흔들어대며 을숙을숙 으쓱거리고

찬삼백리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와

물길의 유구함으로 다시 피어나는 곳

을숙도 갈대밭에서

나는 그들의 말뜻을 읽는 중입니다

어느 연대기를 작성하고 있는지

갈대를 빌미로 까칠해지기 쉬운 것들이

주로 이곳에 서식하고 있어요

바람이나 철새나 몸 안에

그리운 풍향계 하나씩 품고 있을까요

해질녘 맹렬하게 타오르는 낙조는

오래 전 가락국의 신화를 아련하게 읊조리고

멀리서 찾아 온 철새들이

고단한 제 생을 마음껏 펼쳐보는 을숙도

을숙도 갈대는 오래된 신전입니다

일억 년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채

물결마다 철새의 황홀한 노래가 출렁이죠

누구나 한번쯤 이곳에 기대어

생의 속내를 목 터져라 소리치고도 싶겠지요

살짝 을숙도의 내면에 귀 기울여 보실래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의 역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 을숙도 :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소재,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여 한때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다

 

 

 

 

 

[최우수상] 감천문화마을의 골목축제 / 허금주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갈라진 손가락 끝으로 꿈을 박음 질하던 시간들이 리어카 바퀴를 붙들고 걸어 와 잔을 건넨다 좌판 널빤지가 기댄 울타리, 늘어진 나팔꽃에 걸리는 붉은 기억들 휘어지고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비행飛行의 날개 다독이면서 저마다 부호로 떠돌며 앓 고 있는 외로움은 탁한 막걸리로 흐려 있었다 세월 좋 아 나비 리본으로 머리 올린 화장 짙은 처녀애들 값싸 고 질낮은 노란무 몇 잎 씹으며 교과서에서 배운 순수 를 키우러 휴학한 친구에게 엽서를 쓴다 친구여, 그대 는 절룩거리며 걸어 오는 어둠 속 차가운 꿈줄기를 당 겨오는 기쁜 울음으로 오라 마을을 빠져 나간 무소식은 남은 우리 슬픔으로 푹 젖어서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 두들기며 부르는 오월의 노래, 그 저녁을 가득 메웠다

 

 

 

 

[우수상] 맹금머리등*을 읽다 / 김현욱

 

 

어떤 편지는 도착하는데 수백 년이 걸린다

 

낙동강 하구가 수신한

거대한 편지에는

참수리와 솔개와 매의 봉인이 결연하다

함백산에서 하구까지

맹금류가 호위한 것이 분명하다

 

모래톱에서 펼쳐진

물결무늬 누런 갱지에

세모고랭이와 갈대 군락의 필체가 준엄한 것은

녹조와 실지렁이가 들끓는다는

전방의 풍문 때문이다

 

이제야,

맹금머리등을 읽는다

 

흐르는 것은 흐르게 하고

살아있는 것은 그대로 두어라

 

맹금머리등에 아로새겨진

낙동강의 나지막한 육성이

해거름,

거룩한 물빛으로 돋쳐 오른다

 

*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 내에 맹금류 형상을 닮은 무인도. 멸종위기종인 솔개, 참수리 등의 맹금류와 알락꼬리마도요 등이 관찰된다. 2011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얻었다.

 

 

 

 

 

 

[가작] 갈맷길을 걸으며 / 이우식

 

 

길은 본래 없다지만

갈래도 많다 하지만

 

마음속 대동여지도

펼쳤다가 접었다가

 

한 번도

못 와 본 길을

걷고 또 걸었다네

 

자석이 못을 끌듯

달이 바다를 당기듯

 

잎새가 바람결에

새처럼 허공을 날 듯

 

사하에

오기 전부터

난 이 길을 걸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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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달동네 이야기 / 이상록

 

길을 찾아 떠돌다

길 끝에 폭포처럼 서는데

몸뚱어리 내주며 기대라는

옥녀봉이 따스워라

뒤따라온 누구든 같은 처지

고향 달이라도 가까이 보자며

몸을 낮춰 쌓은 층계가

견고한 탑을 이룬 것이다

참 아름다워라

햇빛의 평등을 믿는

평범한 사람들

어깨를 토닥여 주려고

노을이 집집마다 방문한다는

감천 달동네

힘줄 같은 골목엔

풍화를 거역한 무릎이 펄떡이고

더운 숨이 닿는 벽에는

소금꽃도 그림 같다는 것이다

 

 

 

 

 

 

[우수상] 아버지의 다대포 / 이효중

 

누구의 입김도 닿지 않은

첫 바다를 베어 물며, 나는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어스름이 붉어진 해거름을 풀어 헤친

당신의 시간은 정박하지 않는 배였다

 

휴지가 없는 고단한 여정을 바다에

새기며 긴 포말을 가르는 어선에

몸을 싣고, 불러지지 않은 배의

배를 불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다림을 던졌다

 

인생에도 이자가 있다던 당신의

말처럼, 바다에 생을 걸친 평생을

수심 깊숙이 내려놓고 당신은

또 다시 어느 바다로 떠났다

 

기다림이 없는 물길은 일출을 따라

단정한 입을 닫아 그 안에 잠든

아무개의 사연을 기술한다

 

듣는 사람 하나 없는 자전의

세월이 물길 위에 부서진다

 

 

 

[우수상] 을숙도 울음 / 김완수

  

싱싱한 바람 활이 갈대밭의 줄을 켜

잠자던 수초들도 귀 쫑긋하는 을숙도

물 맑은 강섬에 가면 겨울 소리 들린다

 

새들이 내려앉아 울음을 묻어서일까

강을 넘겨보던 새가 섬이 되어서일까

을숙도 이름 부르면 새소리도 들린다

 

머리맡 꼭짓점은 강어귀로 향해 두고

강물과 바닷물 섞어 멱을 감는 삼각주

울음은 뱉는 거라며 젖은 소리 토한다

 

마른땅도 물들이는 섬의 노을빛 울음

바람으로 연명하며 목을 놓던 을숙도가

갯내에 가슴이 멘 듯 잠깐 숨을 고른다

 

 

 

 

[가작] 감천문화마을 / 강달수

 

 

알록달록 섬 속에

대구 내장 같은 미로迷路 그려놓고

숨은 그림 찾기를 한다.

 

푸른 지붕마다

파도를 입주시켜 놓은 마을

골목을 휘감는 안개 속에서도 비린내가 난다.

 

초록 담벼락과 노랑 옹벽을 따라

쇠못 물고기들이 이끄는 데로

헤엄쳐 다니던 사람들

 

또 다른 섬이 되어

푸른 스템프 용지를 들고

섬 사이를 둥둥 떠다닌다.

 

 

 

 

[가작] 몰운대 소나무 / 김미순

 

 

온 몸 나부끼고 비바람 겪으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는 혼

오로지 나라 위한 몸짓으로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호령할 것같은

조선 수군의 명예를 지킨

정운 장군

때로는 돌담 틈새로 먹구름으로 밀려왔다

몸이 밀려가는 다대포구 모래톱처럼

창백하게 늘어져 있는 모서리마다 어둠이 살아

숨 몰아쉬며 맨 먼저 아침을 맞이하였고

네 안의 바다 다시 한 풍경을 보자

붉은 몰운대 주름바람은 현기증 일으킨 슬픔

아파서 웅크리고 내앞에 쓰러진다

그대는 누구시던가

아직도 임진왜란 핏빛 그림자 할퀴며 날아다니고

물결치던 그날 땅속에 박혀

그 통증 오백여년 세월이 흘러 나왔으니

서녘에 지는 붉은 해보다

먼저 큰 가슴으로 내려 받았다

낙동정맥 산빛은 검은 산자락으로 내려앉고

강선대 거친 치마폭에 싸여 어쩔 줄 몰라할 때

홀로 떠 있는 불꺼진 눈으로

조국의 이마를 생각한다

 

 

 

 

[입선] 모래톱 이야기 / 이우식

 

모래톱

겨울 철새들

 

발자욱에 담긴

먼 나라 이야기

 

텃새들은

모래톱에 쓰인

'ㄱ,ㄴ,ㄷ' 글씨 읽으며

 

한 번도 못 가 본

그 먼 나라 계절 한 모퉁이에

훌쩍 가 있다

 

모래톱

여름 철새들

 

지저귐에 실린

먼 나라 노랫가락

 

텃새들은

모래톱에 숨은

'도,레,미' 화음 찾으며

 

한 번도 못 가 본

그 먼 나라 계절 한가운데에

벌써 가 있다.

 

 

 

 

[입선] 천년의 흐름-을숙도 / 정동수

 

 

젖은 발목,

강의 중심을 붙들고 있다

 

저 두 발에서 시작된 외길

 

무너지고 쌓이며 쓸려가는

생명의 끝없는 파동

 

굽이지는 물길은

제 울음을 굴려 떠나가는데

 

어느 세월쯤이면 침묵할 수 있을까

어느 깊이면 침묵하고도 아프지 않을까

 

굽이진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라면

우린 어느 굽이를 돌고 있는지

 

어느 곳에서 풍랑이 일며

어느 곳에서 잔잔한 물살로 흘렀을까

어느 곳에서 깊어지며

어느 곳에서 소리내어 흘렀을까

 

별빛 곱게 징검다리 놓인 날

저 굽이 돌아나오는 소리

千年의 소리

 

 

 

 

[입선] 을숙도 그 섬은 / 박영환

 

 

을숙도, 그 섬은

남사당 미소년을 기다리는 순이처럼

다시 찾아온 새들을 맞아

행복하다

자리를 비우고 있던 외로운 때도

가슴 가득 북소리를 안고

귀향을 믿었고

그들도 약속을 잊지 않고 손을 흔들며 찾아왔다

섬은

여름 내내

하얀 허벅지에 핏물이 들도록

삼을 삼고

물레를 자아 베를 짠

갈대정원을 내어놓는다

누구는 또 떠나갈 철새이니

제 발목 잡아

상처받아 울기 전에

너무 깊이 마음 주지 말라고 하지만

애써

그들의 집은 여기이고

여행에서 돌아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부리로 쓰다듬고 나래로 감싸는

진심을 믿는다

새들이 펼치는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축제 마당은 늘 감동적이다

비록 또 역마살이 도져 떠난다 해도

아니 떠날 수밖에 없을지 몰라도

혼을 빼앗는

저 찬란한 춤사위가 있는 한

원망하지 않고

머리를 곱게 땋아 입에 물고

그들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을숙도 그 섬은 지금

아무 것도 부럽지 않고 황홀하기만 하다.

 

 

 

[입선] 다대포 편지지 / 김정임

 

 

편지지가 있습니다

파도가 줄쳐놓은 모래밭 편지지

오로지 발자국으로만 쓰는 편지지입니다

삼삼오오 혹은

외로운 당신이

바다를 앞에 놓고 사연을 씁니다

 

모진 사랑에 대하여

푸슬푸슬, 한 세상 사는 일에 대하여

 

그럴 땐 갈매기도 조약돌도 가만히 있습니다

 

마음 부려놓은 당신들 훌훌 떠나면

달랑게가 풀게가 줄줄이 나와서는

오자를 바로잡고 밑줄을 긋습니다

 

빈 행간은 달빛이 찬찬히 읽어내어

돌아가는 당신들 야윈 어깨를

환하게 토닥입니다

파도는 조용히 사연을 지웁니다

그리고

새로운 편지지를 마련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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