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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을숙도1 / 최재영

 

을숙도를 아시나요

갈대가 제 몸을 흔들어대며 을숙을숙 으쓱거리고

찬삼백리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와

물길의 유구함으로 다시 피어나는 곳

을숙도 갈대밭에서

나는 그들의 말뜻을 읽는 중입니다

어느 연대기를 작성하고 있는지

갈대를 빌미로 까칠해지기 쉬운 것들이

주로 이곳에 서식하고 있어요

바람이나 철새나 몸 안에

그리운 풍향계 하나씩 품고 있을까요

해질녘 맹렬하게 타오르는 낙조는

오래 전 가락국의 신화를 아련하게 읊조리고

멀리서 찾아 온 철새들이

고단한 제 생을 마음껏 펼쳐보는 을숙도

을숙도 갈대는 오래된 신전입니다

일억 년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채

물결마다 철새의 황홀한 노래가 출렁이죠

누구나 한번쯤 이곳에 기대어

생의 속내를 목 터져라 소리치고도 싶겠지요

살짝 을숙도의 내면에 귀 기울여 보실래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의 역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 을숙도 :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소재,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여 한때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다

 

 

 

 

 

[최우수상] 감천문화마을의 골목축제 / 허금주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갈라진 손가락 끝으로 꿈을 박음 질하던 시간들이 리어카 바퀴를 붙들고 걸어 와 잔을 건넨다 좌판 널빤지가 기댄 울타리, 늘어진 나팔꽃에 걸리는 붉은 기억들 휘어지고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비행飛行의 날개 다독이면서 저마다 부호로 떠돌며 앓 고 있는 외로움은 탁한 막걸리로 흐려 있었다 세월 좋 아 나비 리본으로 머리 올린 화장 짙은 처녀애들 값싸 고 질낮은 노란무 몇 잎 씹으며 교과서에서 배운 순수 를 키우러 휴학한 친구에게 엽서를 쓴다 친구여, 그대 는 절룩거리며 걸어 오는 어둠 속 차가운 꿈줄기를 당 겨오는 기쁜 울음으로 오라 마을을 빠져 나간 무소식은 남은 우리 슬픔으로 푹 젖어서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 두들기며 부르는 오월의 노래, 그 저녁을 가득 메웠다

 

 

 

 

[우수상] 맹금머리등*을 읽다 / 김현욱

 

 

어떤 편지는 도착하는데 수백 년이 걸린다

 

낙동강 하구가 수신한

거대한 편지에는

참수리와 솔개와 매의 봉인이 결연하다

함백산에서 하구까지

맹금류가 호위한 것이 분명하다

 

모래톱에서 펼쳐진

물결무늬 누런 갱지에

세모고랭이와 갈대 군락의 필체가 준엄한 것은

녹조와 실지렁이가 들끓는다는

전방의 풍문 때문이다

 

이제야,

맹금머리등을 읽는다

 

흐르는 것은 흐르게 하고

살아있는 것은 그대로 두어라

 

맹금머리등에 아로새겨진

낙동강의 나지막한 육성이

해거름,

거룩한 물빛으로 돋쳐 오른다

 

*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 내에 맹금류 형상을 닮은 무인도. 멸종위기종인 솔개, 참수리 등의 맹금류와 알락꼬리마도요 등이 관찰된다. 2011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얻었다.

 

 

 

 

 

 

[가작] 갈맷길을 걸으며 / 이우식

 

 

길은 본래 없다지만

갈래도 많다 하지만

 

마음속 대동여지도

펼쳤다가 접었다가

 

한 번도

못 와 본 길을

걷고 또 걸었다네

 

자석이 못을 끌듯

달이 바다를 당기듯

 

잎새가 바람결에

새처럼 허공을 날 듯

 

사하에

오기 전부터

난 이 길을 걸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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