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달동네 이야기 / 이상록
길을 찾아 떠돌다
길 끝에 폭포처럼 서는데
몸뚱어리 내주며 기대라는
옥녀봉이 따스워라
뒤따라온 누구든 같은 처지
고향 달이라도 가까이 보자며
몸을 낮춰 쌓은 층계가
견고한 탑을 이룬 것이다
참 아름다워라
햇빛의 평등을 믿는
평범한 사람들
어깨를 토닥여 주려고
노을이 집집마다 방문한다는
감천 달동네
힘줄 같은 골목엔
풍화를 거역한 무릎이 펄떡이고
더운 숨이 닿는 벽에는
소금꽃도 그림 같다는 것이다
[우수상] 아버지의 다대포 / 이효중
누구의 입김도 닿지 않은
첫 바다를 베어 물며, 나는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어스름이 붉어진 해거름을 풀어 헤친
당신의 시간은 정박하지 않는 배였다
휴지가 없는 고단한 여정을 바다에
새기며 긴 포말을 가르는 어선에
몸을 싣고, 불러지지 않은 배의
배를 불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다림을 던졌다
인생에도 이자가 있다던 당신의
말처럼, 바다에 생을 걸친 평생을
수심 깊숙이 내려놓고 당신은
또 다시 어느 바다로 떠났다
기다림이 없는 물길은 일출을 따라
단정한 입을 닫아 그 안에 잠든
아무개의 사연을 기술한다
듣는 사람 하나 없는 자전의
세월이 물길 위에 부서진다
[우수상] 을숙도 울음 / 김완수
싱싱한 바람 활이 갈대밭의 줄을 켜
잠자던 수초들도 귀 쫑긋하는 을숙도
물 맑은 강섬에 가면 겨울 소리 들린다
새들이 내려앉아 울음을 묻어서일까
강을 넘겨보던 새가 섬이 되어서일까
을숙도 이름 부르면 새소리도 들린다
머리맡 꼭짓점은 강어귀로 향해 두고
강물과 바닷물 섞어 멱을 감는 삼각주
울음은 뱉는 거라며 젖은 소리 토한다
마른땅도 물들이는 섬의 노을빛 울음
바람으로 연명하며 목을 놓던 을숙도가
갯내에 가슴이 멘 듯 잠깐 숨을 고른다
[가작] 감천문화마을 / 강달수
알록달록 섬 속에
대구 내장 같은 미로迷路 그려놓고
숨은 그림 찾기를 한다.
푸른 지붕마다
파도를 입주시켜 놓은 마을
골목을 휘감는 안개 속에서도 비린내가 난다.
초록 담벼락과 노랑 옹벽을 따라
쇠못 물고기들이 이끄는 데로
헤엄쳐 다니던 사람들
또 다른 섬이 되어
푸른 스템프 용지를 들고
섬 사이를 둥둥 떠다닌다.
[가작] 몰운대 소나무 / 김미순
온 몸 나부끼고 비바람 겪으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는 혼
오로지 나라 위한 몸짓으로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호령할 것같은
조선 수군의 명예를 지킨
정운 장군
때로는 돌담 틈새로 먹구름으로 밀려왔다
몸이 밀려가는 다대포구 모래톱처럼
창백하게 늘어져 있는 모서리마다 어둠이 살아
숨 몰아쉬며 맨 먼저 아침을 맞이하였고
네 안의 바다 다시 한 풍경을 보자
붉은 몰운대 주름바람은 현기증 일으킨 슬픔
아파서 웅크리고 내앞에 쓰러진다
그대는 누구시던가
아직도 임진왜란 핏빛 그림자 할퀴며 날아다니고
물결치던 그날 땅속에 박혀
그 통증 오백여년 세월이 흘러 나왔으니
서녘에 지는 붉은 해보다
먼저 큰 가슴으로 내려 받았다
낙동정맥 산빛은 검은 산자락으로 내려앉고
강선대 거친 치마폭에 싸여 어쩔 줄 몰라할 때
홀로 떠 있는 불꺼진 눈으로
조국의 이마를 생각한다
[입선] 모래톱 이야기 / 이우식
모래톱
겨울 철새들
발자욱에 담긴
먼 나라 이야기
텃새들은
모래톱에 쓰인
'ㄱ,ㄴ,ㄷ' 글씨 읽으며
한 번도 못 가 본
그 먼 나라 계절 한 모퉁이에
훌쩍 가 있다
모래톱
여름 철새들
지저귐에 실린
먼 나라 노랫가락
텃새들은
모래톱에 숨은
'도,레,미' 화음 찾으며
한 번도 못 가 본
그 먼 나라 계절 한가운데에
벌써 가 있다.
[입선] 천년의 흐름-을숙도 / 정동수
젖은 발목,
강의 중심을 붙들고 있다
저 두 발에서 시작된 외길
무너지고 쌓이며 쓸려가는
생명의 끝없는 파동
굽이지는 물길은
제 울음을 굴려 떠나가는데
어느 세월쯤이면 침묵할 수 있을까
어느 깊이면 침묵하고도 아프지 않을까
굽이진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라면
우린 어느 굽이를 돌고 있는지
어느 곳에서 풍랑이 일며
어느 곳에서 잔잔한 물살로 흘렀을까
어느 곳에서 깊어지며
어느 곳에서 소리내어 흘렀을까
별빛 곱게 징검다리 놓인 날
저 굽이 돌아나오는 소리
千年의 소리
[입선] 을숙도 그 섬은 / 박영환
을숙도, 그 섬은
남사당 미소년을 기다리는 순이처럼
다시 찾아온 새들을 맞아
행복하다
자리를 비우고 있던 외로운 때도
가슴 가득 북소리를 안고
귀향을 믿었고
그들도 약속을 잊지 않고 손을 흔들며 찾아왔다
섬은
여름 내내
하얀 허벅지에 핏물이 들도록
삼을 삼고
물레를 자아 베를 짠
갈대정원을 내어놓는다
누구는 또 떠나갈 철새이니
제 발목 잡아
상처받아 울기 전에
너무 깊이 마음 주지 말라고 하지만
애써
그들의 집은 여기이고
여행에서 돌아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부리로 쓰다듬고 나래로 감싸는
진심을 믿는다
새들이 펼치는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축제 마당은 늘 감동적이다
비록 또 역마살이 도져 떠난다 해도
아니 떠날 수밖에 없을지 몰라도
혼을 빼앗는
저 찬란한 춤사위가 있는 한
원망하지 않고
머리를 곱게 땋아 입에 물고
그들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을숙도 그 섬은 지금
아무 것도 부럽지 않고 황홀하기만 하다.
[입선] 다대포 편지지 / 김정임
편지지가 있습니다
파도가 줄쳐놓은 모래밭 편지지
오로지 발자국으로만 쓰는 편지지입니다
삼삼오오 혹은
외로운 당신이
바다를 앞에 놓고 사연을 씁니다
모진 사랑에 대하여
푸슬푸슬, 한 세상 사는 일에 대하여
그럴 땐 갈매기도 조약돌도 가만히 있습니다
마음 부려놓은 당신들 훌훌 떠나면
달랑게가 풀게가 줄줄이 나와서는
오자를 바로잡고 밑줄을 긋습니다
빈 행간은 달빛이 찬찬히 읽어내어
돌아가는 당신들 야윈 어깨를
환하게 토닥입니다
파도는 조용히 사연을 지웁니다
그리고
새로운 편지지를 마련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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