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중얼거림 /
작은 새떼들의 움직임에도 긴장한 덤불은 움찔 거렸다
때마침 몇 개의 성긴 눈발이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순간 산은 고요하고 겸허하다
고도에 오를수록 변화에 민감하게 수축하는 고막의 예감이여
쉽사리 사람을 받아드리지 않는 산의 경계를 넘어 설 때
보이는 것만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
작열하는 빛도 이곳에서는 예리하게 날 선 얼음의 파편일 뿐
몇 번의 바람엔 투명한 물고기 떼가 나면서 살을 뜯었다
산을 오를수록 아팠다 사실, 산을 오르기 전에
나는 모든 표현들을 버려야 했다
그러나 실수는 얼마나 많은 필요성을 가지고 생에 기생하고 있는 것이냐
발을 디딜 때마다 억척스럽게 달라붙는 검불들처럼
중얼거림은 쉽사리 입가를 떠나지 않았고
내 생의 대부분이 그러하였듯
길 가 풀 잎 하나에도 착실하게 괄호를 쳐 나갔다
가령 빈 것에도 무게가 있다면
누구도 쉽게 서로를 설명하려 들지 않을 것이니 보라
상처란 뜻하지 않게 생겨나는 것이고
때로 공중의 바람 또한 무기가 될 수 있듯이
축복 받은 은빛 갑옷을 두르고 허리를 꺽은 나무를
정상을 향하여 갈수록 길은 명확해지고
사물들은 단순하여지기도 하였으나 나의 단어들은 몇 번이고 공중으로
떠밀려 올라가는 눈발들처럼 어느 풍경 속에도 쉽게 머무르지 못하였다
눈사태가 일어 난 듯한 어느 길목 앞에서
정승처럼 우뚝우뚝 솟은 나무들의 무리에 갇혔다
[심사평]
대학문학상이 지닌 행사적 의의는 대학생들만이 지닐 수 있는 신선한 패기와 기성시단과는 구별되는 주제의식,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서정에 대한 기대에 있을 것이다. 충대문학상이 연륜을 더할수록 권위를 지니며 전국 대학생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도 그 동안의 당선시들이 지닌 품격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선작 <쓸모없는 중얼거림> 역시 이러한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수작이다. 언어를 다루는 수사적 능력이나 감성이 개성적이며,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저력도 만만치 않다. 다만 일부 설명적 어투가 다소 불만스러우나, 그조차 ‘쓸모없는’듯 하면서도 쓸모 있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 이 시의 매력이 있다. 이 한 편을 고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편의 우수한 작품들을 제외시키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졸업을 앞두고>가 지닌 진솔성, <씨앗>에 깃들어 있는 독창적 상상력, <시뮬라시옹><신의 미소> <눈사람> <까치집> <벚꽃> 등의 서정성과 현실인식은 접어두기 아까운 소중한 자산들이었다. 당선자를 포함하여 응모자 모두가 더욱 정진하여 값진 결실을 거두길 빈다.
- 심사위원 손종호(인문대학장, 시인), 이형권(국문·조교수)
[당선소감]
5월의 마지막 봄볕에 광합성 작용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휘적휘적 베란다로 나가니 낯설고 푸른빛이 환하다. 무엇일까 하고 눈가를 쓱쓱 닦고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작년 가을, 화분에 던져 놓았던 감자의 줄기라는 것을 알았다. 오래되어서 거름이라도 되라고 버린 것들 중에 몇 개가 기특하게 싹을 틔우고 꽃망울까지 단 모양이다. 이렇게 자라는 동안에 물 한번 주지 않은 나를 많이도 원망하였으리라. 이런저런 미안한 마음에 젖어 있는데 당선 소식을 들었다. 당선 소감을 쓰라고 하는데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른한 봄볕에 누어 몸을 말리며 뭐라고 써야하나 고민하는 동안에 생각나는 것이라곤 그립고 고마운 사람들뿐이다. 먼저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준 최대규 선배에게 가장 먼저 이 기쁨을 타전한다. 또 자기의 일인 것처럼 흥겨워 할 시목의 식구들과 생각보다 먼저 눈물이 되는 어머니(내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이름은 김경순이다), 바람결에라도 막내아들의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아버지, 형과 형수, 막내 조카 준영이 그리고 곧 태어날 조카들부터 내 시를 기꺼이 읽어주는 경제학과 정치학과 친구들까지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 작은 마음의 밭에 희망의 씨를 심어 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대학문학상 > 충대문학상(충남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6회 충대문학상 당선작 (0) | 2012.10.04 |
---|---|
제47회 충대문학상 당선작 (0) | 2012.10.04 |
제48회 충대문학상 입상작 (0) | 2012.10.04 |
제49회 충대문학상 입상작 (0) | 2012.10.04 |
제52회 충대문학상 당선작 (0) | 2012.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