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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중얼거림 /


작은 새떼들의 움직임에도 긴장한 덤불은 움찔 거렸다

때마침 몇 개의 성긴 눈발이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순간 산은 고요하고 겸허하다

고도에 오를수록 변화에 민감하게 수축하는 고막의 예감이여

쉽사리 사람을 받아드리지 않는 산의 경계를 넘어 설 때

보이는 것만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

작열하는 빛도 이곳에서는 예리하게 날 선 얼음의 파편일 뿐

몇 번의 바람엔 투명한 물고기 떼가 나면서 살을 뜯었다

산을 오를수록 아팠다 사실, 산을 오르기 전에

나는 모든 표현들을 버려야 했다

그러나 실수는 얼마나 많은 필요성을 가지고 생에 기생하고 있는 것이냐

발을 디딜 때마다 억척스럽게 달라붙는 검불들처럼

중얼거림은 쉽사리 입가를 떠나지 않았고

내 생의 대부분이 그러하였듯

길 가 풀 잎 하나에도 착실하게 괄호를 쳐 나갔다

가령 빈 것에도 무게가 있다면

누구도 쉽게 서로를 설명하려 들지 않을 것이니 보라

상처란 뜻하지 않게 생겨나는 것이고

때로 공중의 바람 또한 무기가 될 수 있듯이

축복 받은 은빛 갑옷을 두르고 허리를 꺽은 나무를

정상을 향하여 갈수록 길은 명확해지고

사물들은 단순하여지기도 하였으나 나의 단어들은 몇 번이고 공중으로

떠밀려 올라가는 눈발들처럼 어느 풍경 속에도 쉽게 머무르지 못하였다

눈사태가 일어 난 듯한 어느 길목 앞에서

정승처럼 우뚝우뚝 솟은 나무들의 무리에 갇혔다




[심사평] 


대학문학상이 지닌 행사적 의의는 대학생들만이 지닐 수 있는 신선한 패기와 기성시단과는 구별되는 주제의식,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서정에 대한 기대에 있을 것이다. 충대문학상이 연륜을 더할수록 권위를 지니며 전국 대학생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도 그 동안의 당선시들이 지닌 품격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선작 <쓸모없는 중얼거림> 역시 이러한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수작이다. 언어를 다루는 수사적 능력이나 감성이 개성적이며,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저력도 만만치 않다. 다만 일부 설명적 어투가 다소 불만스러우나, 그조차 ‘쓸모없는’듯 하면서도 쓸모 있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 이 시의 매력이 있다. 이 한 편을 고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편의 우수한 작품들을 제외시키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졸업을 앞두고>가 지닌 진솔성, <씨앗>에 깃들어 있는 독창적 상상력, <시뮬라시옹><신의 미소> <눈사람> <까치집> <벚꽃> 등의 서정성과 현실인식은 접어두기 아까운 소중한 자산들이었다. 당선자를 포함하여 응모자 모두가 더욱 정진하여 값진 결실을 거두길 빈다.


- 심사위원 손종호(인문대학장, 시인), 이형권(국문·조교수)




[당선소감]


5월의 마지막 봄볕에 광합성 작용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휘적휘적 베란다로 나가니 낯설고 푸른빛이 환하다. 무엇일까 하고 눈가를 쓱쓱 닦고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작년 가을, 화분에 던져 놓았던 감자의 줄기라는 것을 알았다. 오래되어서 거름이라도 되라고 버린 것들 중에 몇 개가 기특하게 싹을 틔우고 꽃망울까지 단 모양이다. 이렇게 자라는 동안에 물 한번 주지 않은 나를 많이도 원망하였으리라. 이런저런 미안한 마음에 젖어 있는데 당선 소식을 들었다. 당선 소감을 쓰라고 하는데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른한 봄볕에 누어 몸을 말리며 뭐라고 써야하나 고민하는 동안에 생각나는 것이라곤 그립고 고마운 사람들뿐이다. 먼저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준 최대규 선배에게 가장 먼저 이 기쁨을 타전한다. 또 자기의 일인 것처럼 흥겨워 할 시목의 식구들과 생각보다 먼저 눈물이 되는 어머니(내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이름은 김경순이다), 바람결에라도 막내아들의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아버지, 형과 형수, 막내 조카 준영이 그리고 곧 태어날 조카들부터 내 시를 기꺼이 읽어주는 경제학과 정치학과 친구들까지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 작은 마음의 밭에 희망의 씨를 심어 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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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폐교에서 / 장은선


동심원을 둥글고 둥글게 그리며

뭉게구름 따라 줄지어선 나무들

하기식 하던 가슴들 나지막하게 울리던

 해맑은 풍금소리 멈추고

시냇물에 햇살이 구부러지는

먼지 낀 유리창 안엔

주인 잃은 낡은 책상과 걸상들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찌푸린 얼굴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가지치기 안 돼 머리를 풀어헤친 교목들

누구를 원망하듯 하늘을 뚫어대도 


재빠른 다람쥐들 예전의 악동들처럼

오르락내리락 체조경기를 하고 있다

뛰고 숨고 넘어지다가

선생님 발자국소리에 화들짝 놀랐을

실내화 한 컬레

교실 밖 세상 문으로 쓸쓸히 향하여있고

여름날 물방개치고 물수제비뜨던

개구쟁이들이 화살로 쏘아 맞히던

하이얀 백묵조각들

읽다가 못다 읽은 동화로 흩어져

어느 길에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서로를 호명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심사평] 

 

  2백31편에 이르는 가편(佳篇)들을 심사하면서 우리는 작품을 뽑기보다는 제외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남은 작품이 「산골 폐교에서」「못생긴 소나무」「문상」「겨울-아버지의 유년시절」「내가 눈이 되어 내린다면」등의 5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산골 폐교에서」를 당선작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완성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서경적 묘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나, 시 전편에 흐르고 있는 정서는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애틋한 그리움, 소중한 추억들이다. 다만 종결부에 나오는 ‘화살로 쏘아 맞히던’과 ‘무엇이 되어 만날지’와 같은 싯구에 기성시인의 체취가 느껴진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시상 전개에 무리를 주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애써 접어 두기로 하였다. 공모제의 장점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의 완성도에 집착하므로 나머지 네 편을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으나 내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들 가운데 어느 한 편을 뽑아도 좋을 만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충대문학상의 연륜과 함께 응모작들의 평균 수준이 향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음은 큼 기쁨이었음을 밝히면서, 더욱 정진하시길 한 마음으로 빈다.


- 심사위원 : 손종호(시인, 국문학과 교수), 이동규(시인, 회계학과 교수), 현영민(영문학과 교수)





[당선소감] 


 아침에 뜻밖에 전화를 받았다. 문학상에 당선되었다는 나보다 밝고 명확한 목소리다. 전화에는 갖가지 사연들이 오고 가는데 이렇게 기쁜 말들이 오고 갈때도 있다.

 민들레가 홀씨를 우주의 송신탑처럼 퍼뜨리는 계절의 여왕 오월의 끝자락에서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들도 열흘을 못간다더니 화사하던 철쭉과 연산홍이 저물어가 누렇게 탈색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다시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만개하여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찔러댄다. 그리고 어머니와 소녀인 딸이 아카시아 이파리를 따서 서로 가위 바위 보를 하며 한걸음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아가고 있다.

 세상살이도 저렇게 꽃잎을 세며 나아가는 것처럼 자연의 순리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급하게 달려가고 있는 걸까? 

 이 바쁜 디지털 시대에도 그것을 떠받치는 것은 살냄새가 풍기는 아나로그 문화인 것 같다. 이것은 문학이 홀대를 받아 존재가치를 잃으면서도 스스로 융성이 꽃피어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유행처럼 번지는 이농현상과 더불어 시골에는 그림 같던 산골분교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덩그러니 빈 건물에는 꼬마주인들을 잃은 채 다람쥐 산토끼 청솔모등이 간간이 들리는 정류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주한 어린이들은 도시의 아파트단지 옆 협소한 운동장에서 온갖 확성기 소리와 차량의 먼지 등으로 맑고 순수했던 정서를 잃지는 않을까 도시의 온갖 문명을 즐기면서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시골과 동심의 아련한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소외된 것들은 존재의 그림자를 투영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거울이 돼주고 두레박줄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원래 인간이 선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도 바르게 가려고 애쓰기 때문에 어설픈 글이나마 붙들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작품을 선하여주신 심사위원님과 충절의 땅에서 전통 있고 훌륭한 문학상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충남대학교 관계자님들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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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 박은선


햇빛 한줄기 내 몸 속을 꿰뚫고 지나가는 듯이

밤마다 심장을 긁던 흐느낌

불안하고 나쁜 꿈이 배던 비명을 한 접시 썰어줘

호박문진 속에 갇힌 날들이 나를 불러

손 닿을 수 없는 가려움을 호소하는 것처럼

어디 광포한 시름을 남김없이 다 부어줘 

머리카락 사이로 마구 흘러내리는 나지막한 욕설을

날아오르는 바람을 밟으며 힘겹게 질질 끄는 발소리를

킬킬, 덤으로 다시 뜨겁게 데워줘

물 오른 강가 버들개지를 비껴

낮게 흐르는 물소리

물소리를 따라

보랏빛과 흰빛의 장다리꽃이 가득하던 날들을

자꾸 잊은 것만 같아 

뜨겁고 단단한 벽으로 울다

섧도록 그리운 것들을 마시고 싶어

여 봐

몸 밖으로 떠도는 길을 안으면 목 안이 화끈해질까

시시껄렁한 이 가슴도 뻐개질 만큼 화사할까

펄럭이는 저 밖의 풍경 더 어두우면

별이 내리는 세상의 무덤을

가득 한 번 썰어줘

썰어줘 봄이니.

 

 

 

 


[심사평] 

 

 오늘날 다원화되고 있는 문화와 생활환경 때문인지 컴퓨터, 자판기, KTX와 같은 특이한 소재를 선택한 시들이 증대되고 다양한 형식 실험을 하고 있는 시들이 현저하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예년과 달리 나타난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적 형상화가 미흡하고, 미학적 긴장을 유지하지 못한 시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음은 아쉬운 국면이었다.

 독특한 소재를 원용한 시편들 가운데 「편지」와 「자판기」는 특히 선외로 밀어두기가 아쉬웠다. 이 두 분의 응모자는 조금만 더 수련을 쌓는다면, 앞으로 매우 독창적인 시세계를 이루리라 생각한다.

 선자들은 마지막까지 남은 「우리동네」「산수유나무의 저녁」「포장마차」의 세편을 두고 고심하였다. 다만 「우리동네」는 시의 완성도는 높으나 일부 싯구가 70년대 모 일간지의 신춘문예 당선시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되었고, 논의 끝에 결국「포장마차」를 당선작으로 하였다.

「산수유나무의 저녁」은 시상 전개가 아기자기하고 그 수법 또한 범상치 않았으나, 물병에 꽂힌 나무와 시적 화자의 인식 변화가 유기적인 이미지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쉽게도 선외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미 독자적인 시세계를 지녔다고 판단되니 더욱 분발하시길 바란다.

 당선작 「포장마차」는 몇 가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자의 또 다른 응모작까지를 포함하여 미래의 가능성 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활달한 상상력, 개성적인 어조와 반복이 가져다주는 독특한 내면적 율조와 울림은 신뢰할 만한 덕목이라 하겠다. 부디 선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더욱 정진하길 빈다.


- 심사위원 : 손종호 국문학과 교수(시인), 현영민 영문학과 교수, 이동규 회계학과 교수(시인)

 


 

[당선소감]

 

 쓸쓸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월에는. 타박타박 더디게 걸어가는 내 걸음 위에 눈이 부시게 서러운 햇빛이 그토록 쏟아져도 이제 더는 외로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꽃이 지는 오월, 그 오월의 산길에서 아프게 끓었던 사랑처럼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을 웁니다.

 시를 사랑했습니다. 그냥 사랑했습니다. 사랑했으므로 아무 이유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움 때문에 때로 못 견디게 아파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천형을 꺼이꺼이 앓았습니다. 

 이러다 영영 단 한번의 눈길도 내게 안 주는 건 아닐까? 날 알기는 아나? 이런 나를?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나는, 가는 길을 익혀두려고 뒤늦게 학교에 왔습니다. 늦었으나 가는 길을 익혀두는 것은 행복했습니다. 행복하였으므로 속으로 뜨겁게 운 적이 많았습니다. 수업의 휴식 시간 중에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이리 눈길만 주어도 벅찹니다. 정말 벅차요. 

 제게 넘치는 용기를 주신 충대문학상 심사위원님들께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대전대 박명용 교수님, 김명원 교수님, 이진우 교수님, 정순진 교수님, 김상열 교수님, 송경빈 교수님 감사합니다. 저의 가장 좋은 친구인 남편 공선영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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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中風) / 배민애


용서해다오, 나의 잠 속에는

아직도 수천 마리 나비떼가 창백하게 날아다닌다.


기억의 중추가 마비된 채로

아버지의 해마는 과거와 현재 사이를 절뚝거린다.

혈관을 타고 도는 바람 가는 곳마다

우울증의 촉수를 키워내는 합병증을 만들고

밥숟가락 하나 드는 일이 당신에게는

일생을 일으키는 일과도 같아

끼니마다 L-튜브로 공급되는 것은 여분의 그리움

위를 채우고 나면 요관에 꽂은 줄로

방광에 차 있는 희망을 말끔히 비워줘야 한다

조금만 늦게 빼줘도 해독되지 않기에 희망은 치명적이다

댁네의 인생 손상률은 몇 퍼센트인가요,

평생 불구를 선고받은 꿈이

궁지에 몰린 얼굴로 말을 걸다 입이 돌아간다


용서해다오,

네 탓을 하려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 헛손질을 한다


창 밖으로 붉은 달이 돌고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고단함에

침상 머리맡마다 놓인 간병인이 머릴 꾸벅거린다

늘 바람처럼 흔들리며 살아왔던 당신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은 채로 침대 속에 고여 있다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 불어와 당신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

두개골 속에 갇혔던 나비떼가

바람과 함께 요관을 타고 빠져나온다

다 용서했다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울면서 차례대로 제 날개를 떼어낸다

생의 도난율이 높을수록

기다리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아버지

육신을 신전 삼아 풍장되고 있었다




[심사평]


 충대문학상의 연륜이 깊어지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시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상상력 또한 심화되거나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또한 기성시들이 지닌 유형화에서 벗어나 각기 자신들만의 개성을 담고 있었다.

 세 사람의 선자가 짧은 시간 안에 합의를 볼 수 있을 만큼 당선작 <중풍>은 독창적인 시세계를 이루고 있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소재로 하면서도 냉정하리만치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기법을 보여 준다. 아버지와 나를 연결해주는 수천 마리 나비떼의 이미지도 개성적이지만 ‘L-튜브로 공급되는 것은 여분의 그리움’이라거나 ‘방광에 차있는 희망’ 등의 표현은 그 시력(詩歷)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최종심에 올라온 <횡단보도에도 봄이 머문다>와 <케르베로스> <막차>는 어느 한 편도 버리기 아까운 역작들이었으며. 마지막까지 남아 경합한 <숲 속, 떨림>은 섬세한 서정성과 선 굵은 시상 전개가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대학문학상이 기성 시단으로 나아가는 문학지망생들의 한 관문이라면, 금년의 충대문학상 시부문은 기성 시단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금년 한 해의 것이 아니길 빌며 응모자 모든 분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국어국문학과 손종호 교수(시인), 회계학과 이동규 교수 (시인), 영어 영문학과 박영원 부교수




[수상소감]


 어디인지 모르는 바다에 배를 띄운 기분이었습니다.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지금 가는 이 길이 맞기는 한 것인지 늘 두렵고 막막했습니다. 어두운 항구에서 몇 해를 정박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계절이 바뀌고 사람들이 오고 갔습니다. 내내 바다를 보는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소망하는 것처럼 애틋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답을 알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선뜻 다시 배를 띄우지 못한 날들. 그보다 힘들었던 것은 주위에 어떤 배도 드나들지 않는 창백한 정적이었습니다.

 어두운 달밤을 함께 항해할 이도 정박할 이도 없이, 누구도 보여주지 않고 말해주지 않으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저 덩그러니 정박하고 있을 뿐인 한 채의 배. 그 백지같은 시간이 막막하게 쌓여가는 동안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그저 오래된 집착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애착인지 집착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와중에 그래도 한번 도전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상을 받고자 함이 아닌, 그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내가 맞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확인받고 싶음이었습니다. 헛방다리 짚듯 위태위태하게 걷던 이 길에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부족한지 스스로 더 잘 알고 있기에 손을 더듬으며 걷는 이 길에 한 걸음 더 보태라고 주신 격려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다시 배가 새로운 돛을 달았습니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항구에도 새 바람이 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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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티재 넘다 / 천영애

 

지분거리던 슬픔이 예까지 따라올 건 또 뭔가

끊어질듯 더하는 길 따라 어느 한 구비에서

푹 주질러 앉으며 허리 꺾고 감당하고 싶었던 것인데

끝내 따라올 건 또 뭔가

나무들 옷 바꿔 입고 시치미 뚝 뗀 채 나 몰라라 하고

염치없이 잎보다 먼저 피어올랐던 꽃 진지 오래인데

어쩌자고 자꾸 따라오는 건가

어디에서 한 목 놓아 터지자는 건지

이놈의 슬픔 참 질기기도 하다


미나리 파는 여자의 미나리 꽃 같은 머리칼이

서걱서걱 바람에 요동치는데

꿈쩍 않고 견디는 저 깊은 자리

한 철 공들였던 것들 구불텅한 찻길에 내어놓고

미동도 없이 길만 바라보는 저 여자

슬픔이란 그 무슨 반찬 같은 것도 아니고

베어내도 자라고 또 자라는 미나리 같은 것도 아니고

여름이 온다고 꽃 환하게 피울 재간도 없는 것이

어쩌자고 혼자 헐티재 그 아름다운 길 넘어 오는지


질퍽한 미나리꽝에서 미나리 파는 여자 애꿎은 미나리만 저벅저벅 밟아댄다

묵음의 음표 같은 긴 장화 신은 발이

베어내도 자라고 또 자라는 미나리를 밟는다

질기게도 따라붙는 슬픔도 저벅저벅 밟아서

길 위에 내어놓고 팔 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헐티재 어느 모퉁이에서

천년을 지고 가는 바위처럼 꿈쩍 않고 견딜 것을


슬픔은 어쩌자고 눈치도 없이 자꾸만 따라오는 건지



[심사평]


 충대문학상의 연륜이 깊어서인지 예년에 비해 응모작의 편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물론 양적 증대가 질적인 수준의 향상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충대문학상의 권위가 높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상력이 활발한 대학생들의 시는 무엇보다 한국시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심사위원들의 기대 또한 높았다. 심사과정에서 느낀 공통된 소감은 전체적으로 시적 감수성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점이다. 현실주제에 관심을 두는 사회학적 상상력 보다는 일상적인 소재, 자연친화적인 상상력의 시들이 증대되었다.

 우리의 기대만큼은 아니었으나 당선작 ‘헐티재 넘다’를 만날 수 있었음은 다행스러웠다. 예년의 경우 종심에 오르는 작품이 대개 10편을 넘었으나 금년에는 불과 6편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당선작 ‘헐티재 넘다’는 짐짓 전통적인 서정에 기대어 있는 듯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서정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3연에서 시상이 심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지만, 시 구조의 견고성과 함께 독창적인 운율은 매우 개성적이며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여 시인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부디 정진하여 큰 시인으로 대성하길 빈다.

 당선작과 함께 겨룬 작품은 ‘소리의 기원’, ‘불효설계도(不孝設計圖)’, ‘초병’ 등이었다. 특히 ‘소리의 기원’은 시적완성도가 높아 끝까지 심사위원들의 선정을 어렵게 하였으나 ‘침묵’, ‘슬픔’과 같은 시어의 반복이 시상을 단조롭게 한다는 공통된 판단에 따라 아깝게 선외로 밀려나게 되었다.  응모자 여러분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국문학과 손종호 교수(시인), 회계학과 이동규 교수(시인), 영문학과 박영원 교수

 

 


[당선소감]


 당선을 예견했다면 오만일까.  문학다운 문학을 해보기 위해서 철학을 공부하는 만학도여서 젊은이들의 축제의 장에 끼어들기가 좀 뭣했지만 졸업하기 전에 스스로 기념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공부하는 철학이 사유에 도움이 되었음을 말하고 싶다.

 글을 쓴다는 일은 나를 끝없이 몰아댄다. 나는 잠을 아끼고, 노는 것을 아끼며 읽고 쓴다. 글이 내 생애를 규정지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은 글 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면서.

 글쓰기가 낭만인 시절은 지나갔다. 글쓰기가, 특히 시 쓰기는 치열하게 한번 덤벼보아도 좋을 내 삶의 이정표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읽고, 다니고, 사유하며, 쓴다.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젊은 날의 문학도가 대학을 기점으로 치열한 삶의 한 방식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대학이 시 쓰기의 한 기점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 나는 새로운 전환점에 와 있다. 철학을 공부하고부터 나는 늘 철학과 문학의 경계선에 발을 디딘 채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철학공부가 많을 때는 책상위에 시집을 깔아놓고, 문학 쪽으로 치우친다 싶으면 철학책을 얹어 두었다. 어느 한 쪽도 소홀하고 싶지 않았고,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싶었다.

 젊은 학생들의 축제의 장이 되었으면 좋을 충대문학상을 나이 든 만학도가 받아가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충대문학상이 전국적인 대학생 문인들의 축제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심사위원들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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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오르다 / 박희준


어느 날 전봇대에 말야

뿌리가 나고, 뿌리가

불타는 노을 속에 잔뿌리 내리면

그 힘찬 뿌리의 행진

도시의 어둠 향해 뻗어가는 힘은 말이지

마치 눈과 귀는 땅속에 박고

물구나무선 나무처럼 거꾸로 서서

전봇대는 발에 핏줄을 발끈 세우겠지

양철지붕 슬레이트 맞붙은 골방

찌릿찌릿 퓨즈를 스스럼없이 지나

쥐똥 얼룩진 천장에도 수액을 쏟아놓겠지

잎사귀를 양껏 벌리고 앉은

작은 키의 명아주잎사귀처럼

어둠 밝히는 불빛은 바로

전봇대가 땅으로부터 빨아댄 양분이야

봐봐, 뿌리는 세상 곳곳 다리 끝으로

배고픈 아이에게 젖을 물리듯

칭얼대는 어둠밖에 둥그런 가슴 내놓고

불빛을 한 모금씩 나눠주는 거겠지

생각해봐 그리하여 마침내 오오

한 그루 전봇대가 꽃봉오리 매다는 것을

그 속에 아직 깨어나지 않은 희망의 말들

환하게 아아 수동*을 밝혀주는 거겠지

뿌리가 나눠준 일용의 양식 좀 보아

산 아래 무성한 건물들이 자라고

우거진 시멘트 숲에도 별이 뜨는 것처럼

우암 기슭에 터지기 시작한 저 불들 좀 보아


* 수동 : 청주시 우암산 기슭에 위치한 달동네



[심사평]


  무기물/무생물을 의인화하여 대상에 대한 독창적인 인식을 개진하는 것은 시창작의 오래된 방법론이다. 의인화는 무감하게 잠자는 존재를 일깨워 살아있는 만상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이다. 의인화는 시의 의의 가운데 하나인 존재에 대한 활성적 인식을 통해 넓고 깊은 세계를 발견하는 데 일조한다. 당선작 <우암, 오르다>는 의인화 혹은 활유적 상상력을 흥미롭게 보여준 작품이다. 중심 소재인 “전봇대”에서 “도시의 어둠을 행해 뻗어가는” “힘찬 뿌리의 행진”을 연상하고, 도심에 펼쳐진 전깃불의 풍경을 “우거진 시멘트 숲에도 별이 뜨는 것”과 동일시한 점이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전깃불을 “희망의 말들”이라고 함으로써 문명의 이기에 대한 새롭고 포용적인 관점마저 제공하고 있다. 시의 방법과 인식이 마뜩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피아노 숲>도 당선작 못지않은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시상의 흐름이 다소 불안정한 부분이 있어 아쉬웠다. 이외에 <대나무의 生>, <선풍기>, <벚꽃 보살>, <발인>, <터미널> 등도 일정한 수준을 확보한 수작들이었다. 이들은 조금만 더 가다듬는다면 충분히 당선권에 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설명적 진술이나 관념적 언어를 줄이고 비유의 구체성과 깊이를 확보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이번 문학상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훗날을 기다린다.


- 심사위원 손종호(시인,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형권(문학평론가, 국어국문학과 교수)




[당선소감] 불타는 가슴으로


  뜨거워지고 싶었습니다. 미적지근하게 데워지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따사로이 스며드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시라는 불씨를 만난 후론 줄곧 행복한 시간들뿐이었습니다. 물론 힘들었던 시간들이 간혹 제게 찾아왔지만 시는 제게 어떠한 미사여구도 어울리지 않을 멋진 옷을 재단해주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운풍경들은 제 가슴속에 또 다른 세계를 열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핑계들로 그 따스함에 녹아 안일하게 나태해 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제 자신에게 더 채찍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겠습니다.

  지금 저는 새하얀 한지 옆, 먹을 갈며 침묵하는 학생에 불과합니다. 시란 저의 멘토가 되어준 제 주변의 곳곳에 작은 풀벌레 소리들, 꽃잎에게서 많은 교훈을 얻어 가슴에서 풀어내 담아낼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곁에서, 혹은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조용히 스며들고 있을 모든 순간들 속에 스쳐간 모든 인연들이 언제나 저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졸업 후 한 번도 제대로 찾아뵙지 못한 명석고등학교 은사님들, 저의 문학의 길의 첫발을 내딛게 해주신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언제나 함께 해주신 시정신학회 선배님들과 후배들, 기쁘다고, 속상하다고, 아프다고 하면 함께 소주잔을 들어준 친구들. 그리고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제가 상을 받을 수 있기까지의 가장 큰 원동력이 돼주신 아버지, 어머니께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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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 / 송인덕


빨랫줄에 걸린 할머니 조각보에

햇살이 조각조각 펄럭인다

명주실로 서로를 꼭꼭 붙들어 매고 있어

이쪽 저쪽 색깔들로 건너다닐 때마다

햇빛이 제 색깔을 바꾸며 논다

오래전 내 기억이 아직 어려서 뛰어 놀 때에도

우리집 남루한 밥상을 덮고 있었던 조각보


저 조각보는 우리집 가족사다

가족이어서 오히려 불편한 몇 명의 색깔들

그 틈이 헐거워질 때면

할머니는 손수 그 조각과 조각 사이를 집으셨고

저마다 울긋불긋한 가족

낡은 할아버지가 떨어져 나가시고 그 자리에

동생의 노란 색깔이 덧대졌으며

어쩌다 누군가의 불평이 실밥처럼 불거지면

“뭐든 같이 사는 게 좋은 뱁인거여”라는 입버릇을 꼭꼭 저며

새것이 되던 조각보


가난한 물이 빠져

이제는 그 색색의 기억들도 희미해져

허기진 밥상같이 텅 빈 마음들

그래도 예전을 생각하면 참 선명하던 밝던 색깔들

단단하게 명주실로 연결된 가족들이

오전, 빨랫줄에서

서로 튼실하게 엮인 채 팔랑거린다

한 집안의 내력이 잘 말라가는 오전이다





[심사평]


  한 편의 시가 참신성과 완성도를 두루 갖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참신성에 이 무게중심을 두다 보면 완성도가 떨어지고, 반대로 완성도를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참신성이 부족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 부문 심사는 작품들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얼마나 조화롭게 갖추고 있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 공모한 시 묶음을 읽으면서 심사위원들은 대체적으로 신인다운 패기와 열정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작의 초보자들은 완성도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도전적이고 창발적인 시상을 보여주는 게 일반적인데, 그 반대 현상을 목도한 것이다. 조금 서툴러도 새로운 시문법과 개성적 언어를 찾아나서는 예리한 전위정신이 아쉬웠다고 하겠다.

  이런 가운데 <조각보>, <거울을 품고 있는 저수지>, <내복>, <낯선 정겨움> 등의 작품이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이 네 작품은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고 토론과 토론을 반복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조각보>를 당선작으로 뽑는 것으로 마음을 모았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참신성과 완성도를 고루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조각보>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각보’라는 사소한 사물의 내력을 ‘한 집안의 내력’에 빗대어 표현한 기발한 작품이다. 작은 소품을 매개로 발발한 이미지뿐 아니라 일상과 서사를 아울러 개진할 줄 아는 솜씨가 마뜩하기 그지없다. 큰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박영원(충남대 영문학과 교수), 이형권(충남대 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당선소감]


  온종일 비가 왔다. 낮은 곳에 고인 빗물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 한 점 한 점 비꽃을 피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끔씩 물방울이 둥둥 떴다가 터지기도 한다. 사람 사는 것이 그런 것일까. 빗물의 파문과 파문처럼 인연이 겹치면서 서로를 알게 되는 것…

  우산 속 누군가의 어깨가 어색하게 부대껴왔다. 저녁부터 문득 생각난 듯 내리던 비는 어딘가 낯설었지만 오랜만에 느껴본 습한 기운에 몸이 나른해졌다. 차갑지 않았던 비는 마음의 온도… 그러고 보면 무엇이든 버리고 떠나려는 사람은 비를 사랑한다. 눈이 쌓여 녹아가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울컥울컥 솟아나는 마음이 침수(寢水)되는 지점에서, 거리가 비에 젖어갔다.

  사람을 오래 쳐다보지 못하던 습관을 만들어준 것도 사람이었고, 다시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를 가르쳐준 것도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준 상처와 부대끼며 살던 스물 다섯해 동안 천천히 배워온 것 같다. 따듯한 마음을 뿌리치지 않는 법.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왔고, 내게서 떠나갔다. 다가온 사람은 내게 없던 기쁨을 심어 주었고 멀어진 사람은 내게 없던 상처를 심어주었다. 기쁨과 상처가 글자가 되어 내 주위를 맴돌았고 그 중 몇 개의 글자를 붙잡아 두고 종종 밤을 새웠다.

  생각해 보면 내게 있어서 시를 쓰는 행위가 사랑을 하는 행위랑 많이 닮아 있다. 바깥에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했다면 원고지 속에서는 나와 세계 사이에서 무척이나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곳을 탈피하고 싶었고, 내 옆에서 울고 있는 이들에게 나의 때탄 소맷자락을 빌려주고 싶었고, 수없이 많은 질문 속에서 알 수 없는 끓어오름으로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시로써 나는 소통하고 싶었다.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지만, 정작 수상소식을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문자 한 통 보낼 용기조차 없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나를 웃게 해서 고마운 사람들, 나를 아프게 해서 고마운 사람들, 늘 곁에 있어서 고마운 사람들… 모두 고맙다. 지금보다 더 용기를 내서, 더 오래 오래 함께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 주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열심히 더 아프게, 또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시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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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대신문방송사에서 주최한 제51회 충대문학상의 입상 결과가 발표됐다. 시 부문에서는 선민서(고려대 국어교육·4) 양의 <두 마리 학은 가만히 제 날개를 접고>가 당선됐다. 소설 부문에는 곽태중(대전대 문예창작·3) 군의 <회색취>, 수필 부문에는 최영정(단국대 문예창작·4) 군의 <구름 낀, 맑은 날>이 당선됐다. 이번 문학상에는 시 2백46편, 소설 91편, 수필 30편으로 총 367편이 응모됐다. 올해 응모편수는 지난해 응모편수(총 400편)에 비해 약 30편정도 줄었다. 하지만 소설은 지난해(74편)보다 응모작이 늘었다. 시상은 26일 3시 총장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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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 / 이연서(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

 

마을 입구 외촌 할매네 가게엔

개미때처럼 시꺼먼 소문들이 드글거렸다

죽은 새의 배를 갈라

외촌 할매가 새점을 쳐준다 했다

신작로를 따라 온

유행가 같은 사람들은

외촌 할매네 가게를 자꾸만 에돌았다

사내사이들은 찝찔한 연애담을

질겅이고 돌아와

이 집 저 집으로 퍼트리곤 했다

큰아들 하모니카가 부는 바람의 악장이

마을 입구에 솟대처럼 서서

가끔씩 풀썩풀썩 쓰러진다고도 했다

고추밭을 가로질러 마을 경계를 넘나들던 사내들은

살찐 꿈들을 키워 잡아먹곤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노린내들은 날개를 접과 앉아

자꾸만 먼 곳을 보는 사내들을 감시했다

천하대장군 입에서 욕설처럼 빗물이 줄줄 새던 날

비바람처럼 흘러다니는 노래가 손 끄는대로

신작로를 따라갔다는 할매네 큰 아들,

이정표 없이 흘러다니던 음악들은

사내들을 어디론가 인도해 주지 않았다

바람의 꼬리를 물고

모르는 음악들이 우리들의 입으로 옮아왔다

마을 입구에 직립으로 서서

솟대는 비스듬히 자라나는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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