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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 박은선


햇빛 한줄기 내 몸 속을 꿰뚫고 지나가는 듯이

밤마다 심장을 긁던 흐느낌

불안하고 나쁜 꿈이 배던 비명을 한 접시 썰어줘

호박문진 속에 갇힌 날들이 나를 불러

손 닿을 수 없는 가려움을 호소하는 것처럼

어디 광포한 시름을 남김없이 다 부어줘 

머리카락 사이로 마구 흘러내리는 나지막한 욕설을

날아오르는 바람을 밟으며 힘겹게 질질 끄는 발소리를

킬킬, 덤으로 다시 뜨겁게 데워줘

물 오른 강가 버들개지를 비껴

낮게 흐르는 물소리

물소리를 따라

보랏빛과 흰빛의 장다리꽃이 가득하던 날들을

자꾸 잊은 것만 같아 

뜨겁고 단단한 벽으로 울다

섧도록 그리운 것들을 마시고 싶어

여 봐

몸 밖으로 떠도는 길을 안으면 목 안이 화끈해질까

시시껄렁한 이 가슴도 뻐개질 만큼 화사할까

펄럭이는 저 밖의 풍경 더 어두우면

별이 내리는 세상의 무덤을

가득 한 번 썰어줘

썰어줘 봄이니.

 

 

 

 


[심사평] 

 

 오늘날 다원화되고 있는 문화와 생활환경 때문인지 컴퓨터, 자판기, KTX와 같은 특이한 소재를 선택한 시들이 증대되고 다양한 형식 실험을 하고 있는 시들이 현저하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예년과 달리 나타난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적 형상화가 미흡하고, 미학적 긴장을 유지하지 못한 시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음은 아쉬운 국면이었다.

 독특한 소재를 원용한 시편들 가운데 「편지」와 「자판기」는 특히 선외로 밀어두기가 아쉬웠다. 이 두 분의 응모자는 조금만 더 수련을 쌓는다면, 앞으로 매우 독창적인 시세계를 이루리라 생각한다.

 선자들은 마지막까지 남은 「우리동네」「산수유나무의 저녁」「포장마차」의 세편을 두고 고심하였다. 다만 「우리동네」는 시의 완성도는 높으나 일부 싯구가 70년대 모 일간지의 신춘문예 당선시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되었고, 논의 끝에 결국「포장마차」를 당선작으로 하였다.

「산수유나무의 저녁」은 시상 전개가 아기자기하고 그 수법 또한 범상치 않았으나, 물병에 꽂힌 나무와 시적 화자의 인식 변화가 유기적인 이미지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쉽게도 선외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미 독자적인 시세계를 지녔다고 판단되니 더욱 분발하시길 바란다.

 당선작 「포장마차」는 몇 가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자의 또 다른 응모작까지를 포함하여 미래의 가능성 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활달한 상상력, 개성적인 어조와 반복이 가져다주는 독특한 내면적 율조와 울림은 신뢰할 만한 덕목이라 하겠다. 부디 선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더욱 정진하길 빈다.


- 심사위원 : 손종호 국문학과 교수(시인), 현영민 영문학과 교수, 이동규 회계학과 교수(시인)

 


 

[당선소감]

 

 쓸쓸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월에는. 타박타박 더디게 걸어가는 내 걸음 위에 눈이 부시게 서러운 햇빛이 그토록 쏟아져도 이제 더는 외로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꽃이 지는 오월, 그 오월의 산길에서 아프게 끓었던 사랑처럼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을 웁니다.

 시를 사랑했습니다. 그냥 사랑했습니다. 사랑했으므로 아무 이유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움 때문에 때로 못 견디게 아파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천형을 꺼이꺼이 앓았습니다. 

 이러다 영영 단 한번의 눈길도 내게 안 주는 건 아닐까? 날 알기는 아나? 이런 나를?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나는, 가는 길을 익혀두려고 뒤늦게 학교에 왔습니다. 늦었으나 가는 길을 익혀두는 것은 행복했습니다. 행복하였으므로 속으로 뜨겁게 운 적이 많았습니다. 수업의 휴식 시간 중에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이리 눈길만 주어도 벅찹니다. 정말 벅차요. 

 제게 넘치는 용기를 주신 충대문학상 심사위원님들께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대전대 박명용 교수님, 김명원 교수님, 이진우 교수님, 정순진 교수님, 김상열 교수님, 송경빈 교수님 감사합니다. 저의 가장 좋은 친구인 남편 공선영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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