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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향해 쏘다 / 우동식

 

활시위를 당기기 전

고수는 표적을 먼저 보지 않는다

눈을 감고 먼저 밑그림을 그려내는 일

출발선에 선 나를 조준하는 것이다

캄캄한 어둠에서 마음의 눈으로

윤곽을 하나둘 조각해 내는 일이다

줌통을 흘려 쥐고 태산처럼 뻗치는 힘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단전에 힘을 넣고 정지된 호흡 사이로

손끝에서 발끝까지 오직 하나,

밀도 있는 영상을 조합하는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살을 떠나보내기 전

무균질의 진공상태로

순도 높은 심장을 키우는 일이다

살을 놓는 맑고 경쾌한 소리

방향과 높이와 사거리로

명중은 이미 나의 평정인 것이다

눈을 감으면 내가 보이고

눈을 뜨면 네가 보인다고

반사되지 않는 빛은 어둠일 뿐

과녁은 목표가 이미 아니다

너에게로 가기 전 내 안의 어둠을 향해 살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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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눌한 독백 / 김태우

 

몸둥이만 가지고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바다의 물결을 가르던 지느러미의 불규칙한 호흡이

온 몸을 긁어도, 아가미에 잘린 언어를 제떄 뱉지 못해

길을 잃어도 그녀는 몸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통조림이 되고 싶어요. 그녀가 뱉은 첫마디에서

나온 낯선 언어의 부스러기들

한국을 향해 온 감각 없는 꼬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태국의 바다 향은 지워지지 않고 따라다닐 뿐

등 푸른 그녀의 입에서 떨어지는

건조한 언어에게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몸을 구겨 넣을게요. 머리도 허리도 모두 버릴게요

통조림이 되어 한국으로 데려다주세요

그녀의 입 주위 근육이 흔들렸다

아가미 대신 선택한 폐에는 낯선 공기가 가득했다

한국에 도착해 처음 온 그 곳,

주인이 밟아 통조림을 부셨다 도마 위에 넘쳐흐르는

토막처럼 그녀의 혓바닥은 살아 있었다

수돗물이 묻은 동공이 둔해졌다

한국에 첫발을 내딛었던 그녀

고향을 바라보며 잠을 잤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뱃속에서 영원히

 

엄마 한국은 지낼 만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라는 메아리는

바다를 건너 신나게 헤엄을 쳤다

목적이 없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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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 K씨 / 이명윤

 

자판은 *빵을 굽거나 생선을 튀길 수 있다
자판에서 밥이 나오고 월세가 나오고
밀린 전기요금이 나온다
숙련된 손이 자판을 두드리면
다각, 다각, 다다다각,
모니터 속에 발자국을 남기며 그가 달린다
그의 눈을 자세히 보면
분해된 자음과 모음과 숫자와 이름 모를 기호들이
물고기처럼 유영한다
언젠가 그가 심혈을 기울려 만든 새 이름의 상품이
어디론가 날아간 뒤
온 우주를 뻘뻘 뒤지다 돌아온 그는 수시로
시간을 저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각, 다각, 다각각, 다다다다다,
생각의 재봉틀로 밥이 조립되고 
단추 구멍 같은 시간 속으로 그가 달린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는 땀을 거의 흘리지 않는다
두 눈이 낮달처럼 휑하거나 뒷골이 팍팍 댕기는 것은
노동의 갸륵한 표식이다
그의 바지는 늘 깨끗하고 바지 속 두 다리는
식물처럼 바닥에 닿아있다

늦은 밤 사무실
그가 표의 창살 속에서 무의식의 기호로 갇혀 있다
비쩍 마른 두 손이 하얀 세상을 길게 쥐어뜯는다
하루의 전원이 좀체 꺼지지 않는다.

 

* 남진우시인의 시‘요리사의 밥상’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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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바오밥 / 구광렬

 

열대아프리카의 나무가

온대의 내 소소한 정원에 뿌리내릴까 싶다

 

신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나무

수명이 오천년이나 된다는 나무를 심는 일은

명주실 한 타래를 위해

끊어진 누에고치에 새삼 숨을 불어넣는 일과

깨져버린 꿈을 잇기 위해 조신 눈을 감는일

문드려져 사라져버린 지문을 다시 새기고

흐릿해진 손금에 새로이 먹을 먹이는 일

 

무엇보다 뵌 적 없는 조상에게

엄숙히 제를 드리는 일과 흡사핟는 생각이

잠자는 이마에 새는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오늘 그 바오밥나무 씨앗을 묻기에 이른다

 

그 씨앗,

찬바람 불고 눈 내리면 동동 얼어붙겠지만

지구의 온난화로 여름이 한 만년쯤 될,

천년 그 어느 끝자락 쯔음

미이라 내장 속 과일 씨처럼 문득 싹을 틔워

다섯 장 흰 꽃잎만 만국기처럼 흔들리고

죽은 쥐 모양의 열매 달랑, 고양이처럼 웃으면

 

가지보다 더 가지 닮은 나무의 뿌리는

지구별의 한 복판을 뚫고

불쑥 반대편 이웃정원의 나뭇가지로 솟아

남반구북반구 대척점 사람들

모두 한 나무에서 움튼 열매를 나누고

손자의 손자들은 집 한 채 크기 둥치에

대문보다 더 큰 구멍을 내

찰폰, 십이촌 한 나무 한 가족을 이룰 것이니

지나날, 강 저쪽을 망각해

도강의 꿈을 저벼렸던 새 한 마리

뿌리보다 더 뿌리 같은 가지 위에 앉아

그 평화스러운 나눔을 지긋이 바라볼 때

 

그 즈음

이 정원엔 눈이 내려도 좋을 것이다

씨앗을 쥐었던 내 손바닥, 화석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가작] 쌩쌩 자전거포 / 홍성준

 

강변역 실골목 끝자락

삼각지처럼 모래를 안고 잠든 쌩쌩 자전거포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석기시대 동굴처럼 지면에 반쯤 묻혀 있다

도시 중앙에서 밀려나

아슬아슬하게 졸고 있는 고인류

끊어진 자전거 등골에서 흘러나온

갈빛 척수 액이 그의 주위에서 출렁거리고

표면 위로 어금니가 뭉툭하게 깎인 톱니들이

먹다 남긴 수초처럼 흩어져 있다

메마른 바람의 혀가

건어물처럼 매달린 늙은 바람개비를 돌리자

외로운 자전거 바퀴살이 살갑세 웃었다

햇볕에 희미하게 고무 타는 냄새

인적 드문 자전거포를 향해 그늘진 녹물은 흐르고

골목 건너 삼천리자전거 가게로 새물길이 트인 후론

길을 잃은 자전거만이 가끔 떠밀려온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것일까

또 한대의 자전거가 길을 잃고 떠내려 왔다

지면에 납작 엎드려

아스팔트 바닥을 핥아대는 늙은 바퀴

남자는 캄캄하게 기름때가 거미줄 친

지문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자전거의 비밀스러운 내력을 더듬던 손이

태생이 검은 내장을 실타래처럼 뽑아

물에 던져 넣었다

구멍 난 바퀴튜브가

물속에서 거친 숨을 헐떡거리고

남자는 종기처럼 곪은 구멍을 메웠다

쓴맛을 보고 잔뜩 부푼 타이어는

자전거를 달고 다시 세상 속으로 떠났다

지겹게 내리쬐는 햇볕도 시들해져

수명을 다해 저물어가는 가로등 불빛처럼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지고

표류하듯 떠다니는 도시에 닻을 내린 남자

그는 곧 물결 밖으로 밀려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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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진달래꽃 / 김병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락가수가 부른다 마야라고 했던가 목소리가 뻥뻥 뚫린다
마야 저 잉카제국의 라틴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저 마야
공중파 방송을 타고 뿌려지는 시인 김소월
한 세기를 건너뛰고 가요차트 1위까지 오른다
님을 보내지 못하는 애달픈 곡소리가 락으로 전이된다
락, 락의 정신을 소유한 저 시원한 목소리에
진달래꽃이 피었다 스피커에서 찢어질 듯 퍼져나온다
가끔, 체 게바라 사진이 걸린 뮤직비디오 라틴아메리카
수염에서 흘러나오는 여성락커의 진달래꽃은
영변(寧邊)에 약산(藥山)보다 너무 멀리서 온 것일까
목소리에 힘이 실린 만큼 진달래꽃은 시들시들해져간다
메가박스 복합상영관에서 줄을 서고 있는
저 헤드폰 귀를 봉합하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린단다
브라운관 현란한 조명아래 마야가 진달래꽃을 부른다
베이스 기타와 전자 기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드럼은 찢어지고 있었다
더 강렬하게 불러야 고막정도는 너끈히 찢을 수 있어야
듣기가 더 좋다 주파수를 잘 맞추어야 들리는
도로를 잡아먹을 듯 덤비는 스포츠카 광폭타이어
안락한 가죽시트와 중저음 스피커를 통해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의 비트박스
비 내리는 영동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스포츠카 유리창이 빗방울을 떨어낼 정도의
그래야 속도감이 최고의 절정을 만들어 낸다
진달래꽃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한 세기를 넘어온 시인
광폭타이어 속도를 아시는가
사뿐히 즈려 밟고 가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
5분안에 끝나버리는 락의 속도에는
락커가 시인이 된 시대
한달도 못되어 폐기될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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