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 바오밥 / 구광렬
열대아프리카의 나무가
온대의 내 소소한 정원에 뿌리내릴까 싶다
신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나무
수명이 오천년이나 된다는 나무를 심는 일은
명주실 한 타래를 위해
끊어진 누에고치에 새삼 숨을 불어넣는 일과
깨져버린 꿈을 잇기 위해 조신 눈을 감는일
문드려져 사라져버린 지문을 다시 새기고
흐릿해진 손금에 새로이 먹을 먹이는 일
무엇보다 뵌 적 없는 조상에게
엄숙히 제를 드리는 일과 흡사핟는 생각이
잠자는 이마에 새는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오늘 그 바오밥나무 씨앗을 묻기에 이른다
그 씨앗,
찬바람 불고 눈 내리면 동동 얼어붙겠지만
지구의 온난화로 여름이 한 만년쯤 될,
천년 그 어느 끝자락 쯔음
미이라 내장 속 과일 씨처럼 문득 싹을 틔워
다섯 장 흰 꽃잎만 만국기처럼 흔들리고
죽은 쥐 모양의 열매 달랑, 고양이처럼 웃으면
가지보다 더 가지 닮은 나무의 뿌리는
지구별의 한 복판을 뚫고
불쑥 반대편 이웃정원의 나뭇가지로 솟아
남반구북반구 대척점 사람들
모두 한 나무에서 움튼 열매를 나누고
손자의 손자들은 집 한 채 크기 둥치에
대문보다 더 큰 구멍을 내
찰폰, 십이촌 한 나무 한 가족을 이룰 것이니
지나날, 강 저쪽을 망각해
도강의 꿈을 저벼렸던 새 한 마리
뿌리보다 더 뿌리 같은 가지 위에 앉아
그 평화스러운 나눔을 지긋이 바라볼 때
그 즈음
이 정원엔 눈이 내려도 좋을 것이다
씨앗을 쥐었던 내 손바닥, 화석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가작] 쌩쌩 자전거포 / 홍성준
강변역 실골목 끝자락
삼각지처럼 모래를 안고 잠든 쌩쌩 자전거포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석기시대 동굴처럼 지면에 반쯤 묻혀 있다
도시 중앙에서 밀려나
아슬아슬하게 졸고 있는 고인류
끊어진 자전거 등골에서 흘러나온
갈빛 척수 액이 그의 주위에서 출렁거리고
표면 위로 어금니가 뭉툭하게 깎인 톱니들이
먹다 남긴 수초처럼 흩어져 있다
메마른 바람의 혀가
건어물처럼 매달린 늙은 바람개비를 돌리자
외로운 자전거 바퀴살이 살갑세 웃었다
햇볕에 희미하게 고무 타는 냄새
인적 드문 자전거포를 향해 그늘진 녹물은 흐르고
골목 건너 삼천리자전거 가게로 새물길이 트인 후론
길을 잃은 자전거만이 가끔 떠밀려온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것일까
또 한대의 자전거가 길을 잃고 떠내려 왔다
지면에 납작 엎드려
아스팔트 바닥을 핥아대는 늙은 바퀴
남자는 캄캄하게 기름때가 거미줄 친
지문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자전거의 비밀스러운 내력을 더듬던 손이
태생이 검은 내장을 실타래처럼 뽑아
물에 던져 넣었다
구멍 난 바퀴튜브가
물속에서 거친 숨을 헐떡거리고
남자는 종기처럼 곪은 구멍을 메웠다
쓴맛을 보고 잔뜩 부푼 타이어는
자전거를 달고 다시 세상 속으로 떠났다
지겹게 내리쬐는 햇볕도 시들해져
수명을 다해 저물어가는 가로등 불빛처럼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지고
표류하듯 떠다니는 도시에 닻을 내린 남자
그는 곧 물결 밖으로 밀려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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