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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헐적 / 윤성택

 

한끼 굶었더니 밤하늘에 별이 긁힌다

튀밥 같던 잠조차 다만 낮의 허기인 게라고

가로등은 불빛 한 주먹 움켜쥐고도

뭔가 모자라 담벽을 다신다

 

삼킬 수 없는 것들만 몸을 애정하고

애정한 밤들만 상냥하게 액()을 때우는지

기척을 한 입 베어 문 개가

들러붙은 골목을 컹컹 뱉어낸다

 

식도 끝에 있는 대문을 오래 잊어주는 것과

복도 끝에 있는 너를 잃어주는 것의 의식인가

단식을 한다는 건 마음으로 돌입하는

예감에게 건네는 공복

 

이별을 시작하고 하루 몇 달은 괴롭지만

그때를 지나면 통증도 사라져

감에 의존하여 반년이고 일생이고

추억을 견딜 수 있다고

 

얼마간 당분간 별안간 내가

굶주린 거울 속에서 걸어 나와

요리조리 몸을 재볼 즈음이면

사랑도 농성이더라,

삭발한 감정이 물그스름한 죽이더라

 

구름 한 덩이 밤하늘에서 떠내는 야식처럼

한 끼는 나를 굶고

굶은 나는 한 끼를 생각해

정갈하게 꿈을 파먹는다

 

 

 

 

 

 

[수상소감] 먼 미래에서의 상상이 나를 현재케

 

마음 속 번번이 이는 불빛을 어쩌지 못하고 살았다. 그것이 시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을 즈음 너무 많은 날들이 나를 읽어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의식이 가닿는 곳까지 걸어가 기다려야 한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그 막다른 곳, 뚫리는 한 점 불빛. 시는 그렇게 점으로 떠도는 나의 피륙이다. 뭉쳐지는 활자로 목격될 때마다 아리고 아슴아슴하다. 때로 밀쳐두었던 메모도 스쳐 지나는 간이역처럼 나였던 환기였으므로. 그때의 눈빛이 잊힌 과거 속을 상상으로 대체해간다. 아니 먼 미래에서의 상상이 나를 현재하게 한다. 부족한 시를 눈여겨 봐주신 심사위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 부끄러움이, 더욱 정진하고 실천하기 위한 계기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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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가전 수거 차량처럼 / 신용목

비온 뒤 지구는 커다란 비눗방울 속에 갇힌 것 같다. 울고 난 뒤 너는 너만큼의 비눗방울 속에 갇힌 것 같다.

차 마실래?
아니,
아무도 저어주지 않아서
물고기는 어항 속을 저 혼자 빙빙 돈다.

물고기는 녹지 않는다.
아픈 사람의 입술에 물려주는 젖은 헝겊처럼 빨래가 널려 있다. 빨래는 어항 같다. 아무도 마시지 않는다.

소리가 들린다. 차들이 왔던 길을 가는 소리.
물속처럼,
너는 오후를 조용히 보낸다.
후후, 불며 졸음이 졸음을 마시는 동안에도 옷은 조금씩 빨랫감이 되어간다.

책을 펼치고 어떤 문장도 읽지 않는다.
그래도

책 속에는 사랑이 있다. 이야기는 사막이거나 바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폭풍우를 건너는 낙타가 있고, 죽어버릴 거야. 문을 쾅, 닫고 나가서는 어느 모퉁이 식당에서 국수를 삼키는 순간이 있고
책 속에도,
책처럼 조용한 사람이 있다.
끝.

창문을 닫으려고 창가로 간다.

너머엔 학교가 있다. 여름이 운동장에 물길을 만들고 사라진 뒤 아이들은 다시 빗방울처럼 돌아올 것이다. 팔, 구, 사, 오, 전화번호를 크게 알리며 중고가전 수거 차량이 지나간다.

어항은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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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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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학회學會 / 박해람


 한 켤레의 물을 신고 걷는다.


 자꾸 흘러내리는 물의 기장機長


 물광내는 남자를 알고 있다. 수 천 겹의 물을 덧바른 남자의 손엔 까만 물때가 끼어 있었다. 적란운積亂雲인듯 하지만 흑연黑鉛이 낀 손톱이 열 개. 아침마다 짐승 하나가 송곳니로 빠져나가면 입속을 헹궈내던 물. 남자가 물로 닦아온 것들은 다름 아닌 짐승들의 발, 한 켤레의 구두가 번식시키던 질긴 노동.


 물을 덩어리라고 인정하지 않는 학회學會의 간사를 지낸 남자를 알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물의 뼈는 쉬지 않고 졸졸 소리를 낸다고 했다. 돌 속에서 성호를 그은 물의 종류 중에는 나무빨래판이 있다고도 했다. 또 물을 세공해 파는 남자도 알고 있었는데 물은 와장창 소리가 없어 절대 깨지지 않는다고 했다. 바닥에 흘려도 쓸어 담을 빗자루가 개발되지 않았음으로 파편이 되지 못한다고도 했다. 또 어릴 때 물을 동생으로 둔 친구는 틈나는 대로 물을 업어주었는데 가끔 따뜻한 물이 등을 적셨다고 했다. 물이 울고 물을 달래다 짜증을 내면 친구의 엄마는 물 흐르는 대로 살아라,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하류에 모여 살던 신발들을 찾으러간 친구는 발목을 삼킨 물에게서 평생 허우적거리는 법을 배워왔다고 했다.


 가끔 그런 생각은 안하나?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는 물은 물물교환 하듯 지구의 곳곳을 섞어놓고 한 모금으로도 사막과 대항할 수 있고 모래들의 주인이며 지구의 제곱미터들의 합산이기도하며 모든 돛들의 정박지이기도 한 물은 미시시피와 황하의 그 길고 긴 거리로 지구를 둘둘 감고 있다는 생각 같은 것 말이다.


 물을 세공하는 남자와 물광내는 남자와 아가미가 달린 구두를 신고 뻐끔뻐끔 걸어가는 남자는 같은 이름을 하고 선미船尾라는 이름의 한 여자를 사랑했던 내 친구인데 훌쩍훌쩍 울고 있는 물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물엔 매운맛과 뜨거운 온도가 들어있고 단맛과 신맛이 들어있지만 맵고 뜨겁고 또 달고 신맛은 그날그날의 표정일 뿐이라고, 꼼지락거리고 비늘이 돋는 열 개의 발가락을 신겨주고 가는 것이다.


 밀물을 접안시키는 도선사導船士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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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대육각형 / 조연호

― 시인의 삶


   나는 꽤 어지러운 사람인 채로 팔려나갔다. 그러자 햇빛이 들이쳐 내 구경꾼이 변색했다. 여름엔 철물공장이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러니까 공장장은 여름이 끝나길 기다렸다. 강 위를 걸어 온 자가 가축이 누웠던 자리의 수취인인 걸 계절의 겉봉을 찢으면서 알게 되었다. 만두피 같은 지느러미를 환절기와 바꾸느라 강어귀는 희고 맑았다.

 

   철물은 매번 모양이 육각형이었다. 아리따운 처녀들은 배설한 소년을 배웅한다. 매미여, 밭을 태운 죄는 일 년을 가니 너는 다음해에 오너라. 날개만을 위해 울음 안쪽을 메우다보면 하루의 입술은 짧고 공기의 취미는 길다. 누나들은 자가발전의 방을 가지고 가출했는데 안쪽으로는 무수히 주름을 접어둘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수가 줄지를 않았다. 육각형 안엔 삼각형도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물을 끓일 수도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방울만이 방울을 반겼다. 인부들이 허공에 협궤를 박는 모습이 구석방 하나 안에 모조리 들어가 있었다. 가끔 흐르는 땀을 모래가 대신하기도 했고 구르지 않는 바퀴를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 여름의 손수건이 겨울의 대육각형 끝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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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감정 / 최문자


재가 된 그를

북쪽으로 가는 거친 파도 위에 뿌렸지만


그는 익사하지도 떠오르지도 않았다


죽음은 아무래도

내게 잘못 보내주신 낯선 짐승


도심 어느 골목에 멍하니 서있는 얼룩말 한 마리


그가 없는 밤이 가면

밤이 왔다


우리만 모두 살아있는 새벽

내다버린 유품들이 비를 맞았다


죽음은

한 장을 넘기면 또 한 장의 털이 다른 가슴


무턱대고 퉁퉁 불은 후회의 조합들


얼룩말의 감정을 만드는 모조 같은 하양과 검정


부스럭거리며 살아서 온다


전에는 닳도록 시만 썼는데

시에서 한 사람을 빼는 일


안보일 때까지 깜빡거리는 흑백의 잔등이다


검었다 하얘졌다 하는 심장 사이

하는 수 없이 숫자로 가는

눈물투성이 초침 사이


내일 켜질 불빛은 또 다른 검정


내가 아닌 그도 아닌

이것은 어떤 잠일까


스칠 때마다 슬픈 소리가 났다


세상은 언제부터

나를 마구 읽어내는 격렬한 독자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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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각五角의 방 / 김종태

 

겨울나무들의 신발은 어떤 모습일까, 쓰러진 나무는 맨발이고 흙 잃은 뿌리들의 마음은 서서히 막혀간다 차마고도를 온 무릎으로 기어넘은 듯 가죽등산화가 황달을 앓는 뇌졸중 집중치료실, 수직의 남루와 사선의 슬픔 사이로 스미는 잔광에 빗살무늬 손금이 꼬물거린다

 

바른쪽 이마로 서녘 하늘을 보려는 글썽임이다

마음의 파편으로 서늘한 가슴을 잡는 암벽등반의 안간힘이다

 

기억은 끝끝내 한 점일까, 그곳에 느리게 닿아가는 사투들, 그 점을 먼저 안으려는 투신들, 어디로 향할 수 없는 주저함에 몸을 닫는 밤이다 피와 살의 경계로 한 가닥 비행운이 흐릿하다 지상의 방들은 언젠가 병실일 터이지만 스멀거리는 약냄새는 낯익도록 말이 없다 모든 비유는 환멸을 향한다고

 

이토록 고요한 읊조림이 있었던가

기역자 양방향 창에 퇴실한 부음처럼 눈발이 부딪힌다

 

첨탑으로 치솟는, 입간판에 주저앉는 맨몸의 무너짐 허나 감각이 사라진, 고통은 있으나 느끼지 않는 언어도단이다 두세 마디 허공 사이 헐벗은 역설은 굳건한 방정식으로 내려앉을까 눈물 속으로 들어간 시간이 와디처럼 흘러가면 사구 위 푸른 꽃잎을 회색 속옷으로 덮어주고 싶다

 

침대 밖으로 나와 있는 무릎은 여전히 고도를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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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백서 / 김상미

 

아주 가끔은 우울하고 대부분은 명랑해요

사람들은 내가 명랑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

명랑은 우울보다 격조가 더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명랑하고 싶어요

무엇에든 광적으로 집착하는 체질이 못 되거든요

광적인 집착은 병적인 우울을 낳지요

언제나 노심초사 전전긍긍

어디에서 불행이 오는지 어디로 행복이 달아나는지

쉴 새 없이 탐색하고 추적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점점 명랑에서 멀어져 우울한 괴물로 변해 버리죠

정말이지 나는 그런 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단것보다 쓴 것을 더 좋아한 탓인지

여하한 고통 위에 또 고통을 세워 그 안에 아무리 사나운 북쪽 창을 달아 놓아도

내 열병은 시들 새도 없이 하루 만에 거뜬히 끝나 버려요

쓸데없이 진지하고 쓸데없이 합리적이고 쓸데없이 현실적인

값비싼 망원경 따위는 집착 강한 우울한 사람들에게나 모두 줘 버려요

나는 그냥 바람 부는 길가에 앉아 무언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릴래요

무언가가 다가와 황홀하게 나를 감동시켜 주길 원할래요

로댕의 대성당처럼 가우디의 카사 밀라처럼 언제든지 떠나고 싶은 지중해처럼

지로나의 내밀한 구시가지처럼 고야의 검은 집처럼 김정희의 아름다운 세한도처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뒤뚱뒤뚱 해맑은 어린아이의 단순 명쾌한 웃음소리처럼

오성의 드높은 담장 단번에 밀치고 들어오는 놀라운 명랑에

자연스레 내 온몸 빠져들기를 원해요

아주아주 오래된, 처음과 끝 같기를 원해요

너도나도 창백한 백합꽃 같은 우울에 매달려

격조 있던 본래의 심연 구기고 구겨 뒤틀린 철갑 같은

고상 찬란한 신종 우울증

끊임없이 생산해 내며 자랑스레 뻐기든 말든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언제나 명랑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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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망坐忘 / 원구식

 

 

1

어느 돌은 여기

어느 돌은 저기

 

온 우주의 신비가 여기저기

흐르는 천년의 세월이 여기저기

 

그저 무심히 이 돌을 보다

그저 무심히 저 돌을 보다

 

, 오늘도

하루 해가 다 갔구나.

 

어느 돌은 여기

어느 돌은 저기.

 

2

강가에 앉아 시간의 미이라인 돌을 본다. 이것은 정지된 시간의 풍경. 돌이 흐르는 물속에 멈춰져 있다. 마지막엔 물처럼 시간을 잊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돌은 더 딱딱해져야 할 것이다. 물은 옆에서 끊임없이 시간을 풀어놓는다. 생로병사의 바람이 순식간에 그 물기를 말려버렸지만, 아직 멀었다. 돌 속의 시간은 여전히 촉촉하다. 네가 감히 하루아침에 일생의 환락을 저 돌 속에 넣을 수 있겠느냐? 하루아침에 앉은 채로 머리털이 하얘지고, 구부러진 허리가 안락을 향해 하염없이 무너져 내려도, 이승의 육신이 물처럼 온전히 흘러가 버릴 수 있겠느냐? 윤회의 맷돌이 멈추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간을 잊어야 할 것이다.

 

3

흐르는 물소리

부는 바람소리

 

이 장엄한 아침 햇빛으로 보아

그림자도 붉은 저녁 놀빛으로 보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돌이 시간을 먹고

딱딱해진다.

 

흐르는 물소리

부는 바람소리

 

 

 

 

 

 

nefing.com

 

 

 

[수상소감] 대책 없이 앉아 있는 자세에 대하여

 

때로, 마약의 도움이 없이 환각에 이르는 순간이 있다. 멍청히 서 있을 수 없으니까 앉는 것이다. 그럴 때 시간이 정지되고 풍경이 독약처럼 풀려 참선에 드는 것이다. 좌망이다. 사물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하염없는 시간이 내게로 전이된다. 세상의 모든 이유를 너무나 갑자기 처절하게 깨닫고 만다. 그러니까, 환각이 돈오라면 좌망은 점수다. 풍경은 강과 숲과 계곡의 시간을 물처럼 빨아먹는다. 무심히 돌아앉은 돌들도 다 시간 부자이다. 바람이 대책 없이 풀잎을 흔들어댄다. 어쩌란 말이냐? 나는 앉아 있는데, 서 있을 수 없어서 앉아 있는데, 끊임없이 풍경의 뒤통수가 열린다. 우주의 배꼽이 보인다. 나는 강가에 앉아 데려가기의 명수인 물과 바람에 몸을 맡긴다. 물이 내게 말한다. 바람이 네게 준 건 호흡이 아니라 율동이다. , 그렇구나. 그러니 앉아서 흔들리지 않는 춤을 춰라. 너는 이미 사물들에게 이해되었다. , 그렇구나.

 

그런 날이면 마틴 백패커를 메고 완행열차를 타고 싶다. 하염없이 덜거덕거리다가 이름 없는 역에 내려 닭똥을 사고 싶다. 그걸 가방에 넣고 산으로 들어가 세상에 거름을 주고 싶다. 나의 기타는 바람의 현을 탄주할 것이다. 그러면 열릴 것이다. 천국에 이르는 길이. 갑자기 앙리 미쇼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마약은 필요 없다. 다른 방법으로 살기를 선택한 자에겐 모든 것이 마약이다.” 나는 지금 대책 없이 앉아 있다. 풍경의 내부가 열린다.

 

 

 

[심사경위]

 

1시와표현작품상 선정을 위해 편집위원들이 2011년 봄호(창간호)부터 2011년 겨울호에 발표된 모든 신작시를 대상으로 예심을 하였다. 편집위원들이 각자 열편씩 선정한 작품을 대상으로 다득표를 집계한 결과 다음과 같이 9편의 작품이 본심에 선정되었다

 

김길나 휴지, 그 붉은 흔적(가을호)

리 산 수용미학(봄호)

박은정 죽음을 완성하는 손(가을호)

신달자 광야에게(여름호)

원구식 좌망坐忘(봄호)

이기철 활자생애(겨울호)

장만호 유령(봄호)

정병근 석양의 콘크리트(여름호)

조말선 손에서 발까지(겨울호)

 

작품상 심사위원회는 9편의 후보작들을 집중적으로 읽고 검토했다. 문학상이 아닌 작품상이므로 문학적 공헌이나 경력을 모두 지우고 한편의 작품이 달성한 시적 완성도와 시세계의 성취가 기준이었다. 모두 일정한 시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들이어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긴 논의 끝에 원구식의 좌망坐忘을 제1시와표현작품상으로 결정하였다.

 

원구식의 좌망坐忘은 간결한 시적구도와 형식에 도가道家적 사유의 깊이를 집약한 점이 좋게 생각되었다. 지금까지 많은 시인들이 도가적 사유를 형상화하였으나 무위無爲라는 주제에 집착한 나머지 초월적 사유를 철학적 개념으로 드러내는 일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시란 성정性情을 드러내는 일이다라는 동양 시학의 정신에 비추면 을 중요시한 셈이다. 시란 사유의 깊이와 더불어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서정抒情의 깊이가 같이 확보되어야 한다. 시작에서는 양자의 균형이 쉽지 않다. 대개의 작품들은 어느 한쪽의 과부하 때문에 시적 완성도를 망치고 만다. 그러나 원구식의 좌망坐忘은 포착한 제재를 집요하게 형상화하고자 하는 의 깊이도 확보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편은 모두가 밝은 세상에 있는데 나만이 홀로 우매하고나하는 노자의 성찰을 좌망坐忘으로 드러낸 수작이다.

 

원구식은 과작을 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작인 만큼 작품에 들이는 힘과 에너지의 집중도가 좋다. 1시와표현작품상이 원구식 시인의 시 창작 인생에 화려한 불꽃을 위한 기름이 되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예심) 송기한 이성혁 서안나 김영찬 / (본심) 오세영 김백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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