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맨 끝 방 / 김정현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새기려 할수록 점점 지워져만 갔다 내 몸 곳곳
허기의 냄새 같은 게 통증처럼 쌓여 있었다 지하철 한구석,
한나절 깨부쉈던 건물 부스러길 입 안 가득 우물거리다 집 앞까지 오면
어느새 밤의 입구였다 무심히 내다 버렸던 생일을 허겁지겁 식어 빠진 미역국에 말 때
마음 언저리 슬며시 커졌던 어떤 불빛은 내가 불어 보기도 전에
꺼져 버렸다 가만히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으면 누군가의 살갗에서 맡았던 냄새 설핏,
구겨진 가슴 한쪽이 욱신욱신하면서도 조금 퍼지는 듯도 했지만
결국 슬픔도 나를 잠시 어루만지다 슬며시 떠나 버렸다
종일 나르던 벽돌 한 장처럼 쓰러져 간신히 잠이 들면 아침은 매번 추락하듯
당도해 있었다 새벽 끝자락 뭉뚝한 절벽 꼭대기 내가 사는 방 한 칸에서 내려다본 이 도시는
푸르스름하게 입 벌린 채로 혼곤히 잠들어 있는 무지갱처럼 생겼고
나는 언젠가 가파르게 뿌리내린 계단에서 선연히 굴러떨어지며
심장 한편에 가까스로 불을 밝히려는 어둑어둑한 사람의 영혼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비로소 내 이름 적힌 집 한 채 쓸쓸히 얻을 것 같았다 아무도
내가 어디 사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누구나 다 아는 듯해 나는 늘,
남몰래 번진 곰팡이처럼 눅눅하게 빈방을 떠났다가 아릿아릿
빈방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 심사위원 문동만, 안현미, 김현(이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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