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 후
뒤를 돌아다보던 손님은
나를 靜物로 바라보고 있었다.
꼬리표처럼 길어진 손님의 그림자만을
꼭 잡고 있던 내 손 틈새로
어둠이 스며들었다.
밤은 사람을 진실되게 만든다.
검은 잎을 부대끼며 서 있던 나무 아래에서
손님은 잠시나마 충혈된 눈을 하고 서 있어도 되고
나는 모진 말을 뱉어내도 상관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금방 후회할 말들을 너무 쉽게 했다.
말은 입에서 흘러 의미를 가진다.
흔한 충고로 누군갈 변화시킬 수 없듯이
손님의 齒石같은 외로움도
같은 종류의 것이었던 걸까?
하나의 점처럼 멀어진 손님이
무어라 소리를 냈지만
곧 어둠이 그의 입을 막았고,
반쯤 잘린 토막말만이
공중에서 절뚝거리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떠나는 역할만을 맡는
손님에게 분노했다.
마음을 닫고
누군가 삼킨 아픔을 마시면서
들풀처럼 쑥쑥 자라난 나느
아버지가 그러한 것처럼
목 끝까지 차오르던 울음을
꾹 삼키고
살아가가 위해서
익숙하게 돌아섰다.
첫사랑
점을 뺀 자리에 또다시 작고 까만
점이 자랐다.
살을 떼어낸 자리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자라난 점을 보다가
왜 흔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가를 생각했다.
돈을 주고서라도
깨끗하게 빼 내고 싶었던
못난 점들이
살을 뚫고 끈질기게 자라났다.
- 이번이 벌써 세 번째요.
의사는 끝끝내
부주의한 나의 관리를 탓하며
이제는 깨끗해질 때도 되었다 외로했고,
나는 다시금 점을 뺐다.
울긋불긋 점이 빠진 자리에는
못이 빠진 못구멍처럼 얼룩이 남았다.
어쩐지
내 얼굴 위로 온통 그 사람이
걸어 다닌 흔적투성이일 것만 같다.
집으로 가는 길
구슬이 가득 들어 있던 주머니가
풀어져버린 것처럼
무언가 다짐의 눈빛을 밝히던
사람들이 지하철 안으로 쏟아진다.
시간의 유리병에 담긴 사람들은
고르지 못한 내 이빨처럼
불편한 듯 몸을 뒤척였지만
막상 문이 열리자
누구도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다시금 차창이 어두워진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무심한 눈길들을 피해
나는 차라리 가방에 담겨지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기다렸던 공간이 나올런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저 내려야할 곳이 제각각인 몸을
잘 정돈된 책처럼 배열한 채
같은 어둠 속을 덜컬덜컹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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