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없음

728x90

 

[대상] 줄타기 따방* / 손석호

   

매달린 세상의 등산 법

내려가는 등산이 있다

 

바람의 이파리 털어 운세 점치며

발목 묶인 새처럼 스스로 묶인다

내려다보면 자궁 밖 같아서

탯줄처럼 놓지 못하고

종일 휘파람새 흉내 내며 부르는

군데군데 울음 매듭진 트로트풍 노래

밧줄에 꼬인다

허공 딛고 빌딩 안 들여다보며

층층이 스치는 밟지 못한 유년의 계단들

초침처럼 발 뛸 때

어디선가 만났던 사람

닦다가 가볍게 노크하면 창 열어줄 것만 같아서

장력의 만만찮음 견디며 유리벽에 스스로를 그리는 동안

어느새 노을 뒤따라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덧칠한다

지상은 잠시 시간을 놓는 산장

꽁꽁 묶인 하루 풀어놓고

다시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정상

닦아도 닦이지 않는 얼룩으로 눕는다

밤새 노래해도 메아리 없는 반지하 방에서

날아오를 내일의 높이 가늠하며

태엽 감는다

산정 팽팽하게 압축되고 있다.

  

* 줄타기 따방 : 고층빌딩 유리창 청소 일을 연고 없이 혼자서 하는 사람을 칭함

  

  

   

  

  

[금상] 비단벌레 / 박복화

  

맑은 유리창 너머

남자가 잰 손놀림으로 뜨거운 아버지를

비질을 하는 동안

시간은 침묵으로 충혈되고

희뿌연 재 사이로

살아있는 희망처럼 웅그리고 있는

검푸른 비단벌레 한 마리.

  

태워도 태워도 더 이상 태울 수 없는 것도 있는가

이 악물고 살아온 여든의 생

흔들릴 때마다 붙잡고 버텼을 기둥

아버지의 몸에서 아버지의 일부가 되어

마지막 숨소리까지 받아냈을 저것

  

남자가 조심스레 건네는

치아보철물,

유물처럼 남았는데

일생 층층이 반짝이는 집을 지으시던 흙손

정작 당신은 낮은 지붕, 욕심 없는 담장

그럴싸한 장식 하나 없으시더니

마침내 먼지처럼 가벼워진 육신은

고요한 항아리 속에 누이시고

  

부끄럽지 않은 가을

푸른 하늘을 가벼이 날아가는 아버지

금록색 날개 환하게 펼치며

이승에서 전설로 오래오래 살아계실

내 가슴속 비단벌레

  

  



  

[은상] / 안명숙

  

망치로 맞으며 내 자리를 만드는 것은

평생 벽에 갇혀 사는 일처럼 아린 일이다

  

더 이상 바닥이고 싶지 않은 것들, 버릴 수 없는 것들,

갇히고 싶지 않은 것들,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붙들어 보여주는 것이 내 일이라면 일인 것을,

주인공이 되지 못함에 아파하고 내 어리석은 열등의 나날.

  

더 이상 바닥이고 싶지 않은 것들, 버릴 수 없는 것들,

기억하고 싶은 것들 보여주고 걸어두고 머물게 하라

그게 내 일이지 않은가?

  

모두 다 나를 떠났을 때

우두커니 내가 벽에 못 박힐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거운 액자를 들고 있을 때, 똑딱거리는 시계를 받치고 있을 때,

허름한 바지를 들고 있을 때의 추억 때문이다

  

흘러가는 시간에 반비례로 내가 아직 못 박혀

사는 것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그림이, 허름한 윗도리가, 흘러가는 시간이,

머물고, 쉬고, 즐기게 했던 내 꿈인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은상] 비닐봉지 / 나동하

<!--[if !supportEmptyParas]--> <!--[endif]-->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 비닐봉지 갇혀 있다.

속도의 물결이 일으킨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가시에 찔리고 돌부리에 긁힌 상처들 위로 선명한

간밤의 트럭 바퀴 하나

<!--[if !supportEmptyParas]--> <!--[endif]-->

연이은 속도는 구멍이 촘촘한 그물이 되어

빠져나갈 틈 하나 보이지 않건만

잠시 느슨해진 속도의 틈으로

조심스레 한쪽 발을 들이밀어 보는 봉지

먼지처럼 더 이상 고통 없는 순간을 고대하다가도

속도에 부딪혀 나뒹굴던 간밤의 기억 되살아나

얼른 발을 거둬들인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순한 공기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관절이 꺽이고 예민한 살갗이 또 벗겨졌다.

쇳기 어린 속도의 냄새

회오리바람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쿵쾅거리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상처 하나 없는 얼굴로 떠오르는

형형색색의 풍선들처럼

한 점 검은 풍선으로 하늘을 누비고 싶었던 오랜 바람 하나,

새로 태어난 강철 바람에 꼬깃꼬깃 구겨지고 있다.





728x90

[제1회 주변인과문학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이인호 외


본상
반구대 암각화 / 이인호
-痕迹 4
 

 

오래된 화물칸 같은 그의 손이
과일들을 부려놓는 동안
플라스틱 바구니 사이로 물방울이 날렸다
날리는 물방울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덜 마른 항해의 흔적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고래 울음소리가 들려
그가 장터를 옮겨다니는 것도
바다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푸른 트럭이 처음으로 도로를 달릴 때
그의 머리에서도 바닷물이 솟구쳤다
숨구멍으로 솟아오르던 아슬아슬한 포말
북극이 가까워지면 고래들이 뿜어 올린
물줄기는 소나기구름이 된다고 했다
비린내 가득한 빗줄기 쏟아지고
사내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뒤통수를 긁적였다
푸른 파라솔을 펼치는 사내의 숨구멍에서
더운 김이 조금씩 솟아올랐지만
소나기는 이내 굳게 닫혀버렸다
장이 파하고
사내의 차가 고래울음소리를 내며 떠난 자리
소나기가 새긴 고래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금상
제 몸속이 보이나요 / 김소나

 


내 몸은 반반이여요
오른쪽은 오렌지 색, 왼쪽은 검은색이지요
오른쪽은 노래하고 왼쪽은 책을 읽죠

입이 근질거리고 손발이 제멋대로 춤을 춰요
오른쪽은 자꾸 구름 너머만 쳐다봐요
하늘에서 양몰이 놀이를 하죠

왼쪽은 오른쪽을 잡아끌고 라임 오렌지 나무 밑으로 도망가요
조각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 때,
달콤한 향이 풍기는 것이 옆에 있죠
오른쪽은 나무를 꼭 끌어안아요

등이 달아 올라요
오른쪽은 나무의 심장이 되어 버린 것 같죠.
왼쪽은 케플러의 법칙을 읽고 있어요
왼쪽을 보다가
오른쪽은 천천히
반쪽을
삼켰어요
메아리처럼 목구멍이 점 점 커지죠

'이제
제 몸 속이 보이나요.
심장에서 날아다니는 노란 노래가 들리지 않나요'

저는 라임 오렌지 나무가 되요
나무 안으로 들어가 쉬어요
지친 발을 주물러요
제 곁에서 라임 오렌지 향이 시럽처럼 녹아내려요

 

 

 

 

은상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고비를 겪다 / 이기록

 

 

1. 무료함

 

   너의 머리를 들여다보는 일은 내 청춘의 일부분이다. 매직이다. 너를 이 자리에 놓아두고 있는 일상에서 난 울란바토르로 향한다. 일어서지 못한 너의 육신을 담는 일이다. 길게 팔을 남겨두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웃음이 문을 열어두자 넘어 들어온다. 또박또박 말하는 법은 어디서 배워왔을까. 꿈꿀 수 없는데도 잠은 밀려온다.

 

2. 다들 진정하시라

 

   이제 도착한 해변은 바다가 없다. 아주 많이 기도해왔다. 오래도록 촉촉해지고 싶다고 바람처럼 적나라하게 살아왔다. 사구에 치자 꽃처럼 매달린 낮달을 보고 있다. 냄새를 맡기려 찾아온 섬들이 거침없이 바다를 오르고 있다. 지평선으로 숨어버리는 파도 누군가 찾으려 손바닥을 비비며 눈을 누른다. 이제 기도가 시작되었다. 어차피 신앙 따위는 삼켜버렸다.

 

3. 오늘도 그대들의 발자국은 사라진다

 

   “고비 고비”라고 말하면 풀들은 사라졌고 물고기들도 모래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언제부턴지 이불을 털 때마다 낙타를 숨긴다. 서성이던 얘기들은 커튼을 내리고 손목을 잘라냈다. 만질 수 없는 것들이 생겼다. 망각하고 기억하고 다시 망각하는 일들이 어색하다. 흰 돌멩이를 가져온다. 물속에 누워 꿈을 쏟아 붙는다. 수챗구멍 속에 밀려들어 간다. 단 한 번의 이름을 부르고 뛰어내리듯

 

4. 비를 몰고 오는 새들

 

   누가 이렇게 잠들었는지 살아온 사랑은 겨울을 지내고 있다. 닫힌 문들은 열리지 않는다. 이제 바람과 화해할 수 있다.

 

 

 

 

은상
봄꽃개론 / 유다인

 

 

도서관 뒷뜰에 후일담처럼
『봄꽃개론』이 꽂혀 있는 줄 아무도 모르겠죠
가장 높은 서가에 꽂힌 책을 읽으려
송곳니에 침을 묻혀 겹꽃잎을 넘기는 나는 독서광 애벌레
봄비에 책장이 젖은 목련의 뒷페이지에서
나는 각주처럼 부화했어요
뻐꾸기가 세입자 신고도 하지 않고
불쑥 옥탑방 까치부부네에 탁란을 하러 온 날 밤이었죠
우산 부리에 쪼인 지렁이 시체를
일개미 군단이 굴로 운반하던 밤이었죠
사람들이 하나 둘 가방에
공무원 수험서 한 떨기씩 품고서
열람실로 모여들어요
그들의 연체된 청춘은 언제나 비문이 가득해요
꽃받침으로 잘 제본된 한 권의 책이 되려면
뽀얀 목련잎에 활자들을 배설해야 하죠
가끔 쪽수가 빳빳한 달이
둥근 제 몸을 감싸쥐는 날이면
팔랑거리는 달빛이 날개가 되는 꿈을 꾸어요
제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발구름 소리를 낮춰 주실래요?
오래오래 이 꿈을 꾸고 싶거든요.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